감사의 마음으로 ‘앵그리 정신’을 깨라
백성호 기자의 영혼을 울린 한 구절-원불교 이선종 서울교구장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 제104호 | 20090308 입력
이선종 교무 그를 아는 사람은 다들 ‘여장부’라고 말한다. 그만큼 사회문제와 환경문제 등에 대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종교환경회의 공동대표, 원불교 교정원 문화부장, 새만금생명평화연대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지금은 원불교 수위단원과 서울교구장, 여성정화단 총단장을 함께 맡고 있다. | |
5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은덕문화원에서 원불교 이선종(65) 교무를 만났다.
그는 원불교 서울교구장이자 수위단(원불교 최고의결기관)의 일원이고, 여성정화단(원불교 전체 여성 교역자들의 모임) 총단장을 맡고 있다. 그에게 원불교전에서 가장 가슴에 담는 한 구절을 물었다.
이 교무는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는 구절을 꺼냈다.
어찌 보면 ‘바른생활 표어’ 같은 무덤덤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화두’가 담겨 있었다.
이 교무는 “1960, 70년대 한국인들은 ‘헝그리 정신’으로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앵그리(Angry) 정신’으로 산다. 다들 분노 속에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고통스럽겠느냐”고 짚었다.
-사람들은 왜 분노하고, 왜 원망하나.
“자기 관점으로 살기 때문이다. 자기 관점에서 사람을 보고,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자기 관점에서 경계(흔히 ‘번뇌가 생기는 순간’을 뜻함)를 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원망을 한다. 그 원망이 잘못인가.
“그렇다. 잘못이다. ‘나’라는 존재는 원망으로 빚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뭘로 빚어졌나.
“무한한 은혜로 빚어졌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공기와 비 없이 우리가 살 수 있나.
그런 대우주의 한량없는 보시로 ‘나’가 빚어졌다. 햇빛 주고, 바람 주고, 이슬 주는 그 은혜로
지금 내가 살아 있다. 은혜는 이뿐만 아니다. 부모의 대자비, 사람들의 대협동, 법률의 대보호
덕분에 내가 있다. 그 은혜를 깨달으면 원망 없이 살게 된다.”
-왜 그 은혜가 안 보이나.
“원망 속에 자신이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우주에 가득한 은혜를 보지 못하는 거다.
이 무한한 은혜 속에 살면서도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원망을 ‘탁!’ 깨야 한다.”
-어떻게 깰 수 있나.
“감사하는 마음이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원망을 부순다. 원망이 생기면 일단 멈추라.
그리고 근원적인 은혜를 생각하라.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마음의 원리조차 모른다.”
-마음의 원리가 뭔가.
“마음의 원리는 우주의 원리와 똑같다. 내가 소우주이고, 밖에 있는 이것이 대우주다.
그게 둘이 아니다. 이걸 모르니 가족과 부딪치고, 친구와 부딪치고, 상사와 부딪친다.
이 우주의 사시(四時)가 순환하고, 일월(日月)이 왕래하고, 주야(晝夜)가 변천하는 데
언제 부딪친 일이 있던가.”
이 교무는 탁자 위에 놓인 원불교전을 가리켰다.
“이것이 경전이다. 그런데 이건 가장 낮은 경전이다. 불경도, 성경도, 원불교전도 마찬가지다.
이것만 떠받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세상만사가 경전 아닌 것이 없다.
세상의 산 경전을 알아야 한다.” 세상 경전, 이 교무는 그게 둘째로 높은 경전이라고 했다.
-그럼 가장 높은 경전은 뭔가.
“내 양심, 내 인격의 경전이다. 그게 최고의 경전이다.
종이로 된 경전과 세상이란 경전을 통해 나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양심 경전’ ‘인격 경전’이란 최고의 경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종이로 된 경전에만 매이면 어떻겠나. 그럼 그게 종이 뭉치가 되고 만다.”
-원망하는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리면 어찌 되나.
“천하의 은혜가 나를 향해 온다. 그런 은혜의 기운을 받게 된다.”
-왜 그런가.
“이 우주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이 대우주는 은혜의 기운, 살려내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걸 깨칠 때 철이 난다. 어른이 됐다고 철이 난 게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철이 난 게 아니다. 마음의 철이 나야 한다.
그러니 내가 우주에 존재하는 공식이 ‘은혜’고, 행복하게 사는 공식이 ‘감사’다.”
중앙일보 문화부 종교 담당 기자. 종교는 박제가 아닌 생명이어야 함을 믿는다. 중앙일보 종교면에 칼럼 『현문우답』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