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륜배열 |
2-6-0 |
실린더직경 ×행정(mm) |
350×560 |
운전정비중량(ton) |
34.3 |
연결면간거리(mm) |
9,132 |
최대폭(mm) |
2,642 |
최대높이(mm) |
3,405 |
최대견인력(ton) |
6.545 |
최대속도(km/h) |
55 |
동륜직경(mm) |
1,070 |
제작년도, 제작사 |
1899년 미국 BROOKS사 |
탄수차정비중량(ton) |
- |
이 당시의 기관차는 모두 자동연결기, 공기제동기 및 공기펌프를 갖추고 있었으며, 차량의 중량은 28ton~88ton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여객열차 중에서 가장 큰 발틱형의 경우 총중량 150ton, 견인력 14.85ton의 제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차량 13량을 견인하여 운행하였다.
나) 만주철도 위탁 경영시대(1917.7~1925.3)
1917년 7월 31일 일본은 한국철도의 경영 주체를 총독부 철도국에서 남만주 철도(주)로 바꾸었고, 이에 따라 위탁경영이 시작되었다.
초창기 차량은 주로 미국제 수입제품이었으나, 만주철도의 자체제작 방침에 따라 1922년 미국 Baldwin사의 파시(Pacific)형을 설계를 변경한 후 제작하여 운행하였다. 개량된 파시형의 운전정비중량은 150ton으로, 이후 5차례에 걸쳐 개량이 이루어졌고, 국내철도의 선로상태 및 환경에 적합한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아 여객열차용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화물열차의 경우 역시 미국제인 미카(Micado)형을 개량 설계하여 사용하였으며, 주요 특징으로는 한국산 저칼로리 갈탄 사용을 위한 화상면적 확대를 통해 연소율과 함께 보일러 효율을 높인 것을 들 수 있다.
<파시(Pacific)형 증기기관차>
차륜배열 |
4-6-2 |
실린더직경 ×행정(mm) |
600×660 |
운전정비중량(ton) |
94.4 |
연결면간거리(mm) |
21,900 |
최대폭(mm) |
3,200 |
최대높이(mm) |
4,552 |
최대견인력(ton) |
12,870 |
최대속도(km/h) |
95 |
동륜직경(mm) |
1,750 |
제작년도, 제작사 |
1921년 미국 BALDWIN사 |
탄수차정비중량(ton) |
56.7 |
다) 총독부 철도국 직영시대(1925.4~1945.8.15)
1925년에 일본은 한반도에서 대륙으로의 교통량 증가에 대처하고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만철의 위탁경영을 해제하고 총독부 철도국을 설치한 후 직접경영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미국제 차량의 근본적 개조를 통한 자체설계 및 제작에 착수하였다.
최초의 개조차는 푸러4형으로 서울역사가 신축된 1925년에 제작되었으며, 주요특징으로는 예전에 비해 60% 확장된 화상면적, 취약점이었던 불꽃방지에 대한 배려, 확대된 기관차의 크기 등을 들 수 있다.
<파시(Pacific)형 증기기관차>
차륜배열 |
2-6-2 |
실린더직경 ×행정(mm) |
410×610 |
운전정비중량(ton) |
65 |
연결면간거리(mm) |
10,800 |
최대폭(mm) |
3,010 |
최대높이(mm) |
3,940 |
최대견인력(ton) |
9.130 |
최대속도(km/h) |
90 |
동륜직경(mm) |
1,520 |
제작년도, 제작사 |
932년 한국 경성공장, 일본 제작각사 |
탄수차정비중량(ton) |
- |
※ 1932년~1939년 경인선 쾌속 열차용
그리고 만주침략을 위한 산악지대의 지하자원 개발과 관련하여 급구배와 산악지대에 적합한 강력한 견인력을 갖는 기관차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마터(Mountain)형 기관차를 개발하였다. 최대축중이 22ton으로, 주요 특징으로는 복원력이 큰 4륜 보기대차형식의 새로운 장치가 설치되고 자동급탄기와 보일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인 장치가 설치된 것 등을 들 수 있다.
라) 광복이후 교통부 시대(1945.8.15~1963.8)
광복직전인 1945년 7월 국내에서 운행되던 증기기관차는 총 1,167량이었으나 광복후 남과 북으로 분단됨에 따라 남쪽은 총 534량의 기관차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때의 증기기관차 차종으로는 푸러, 사타형의 탱크식 증기기관차와 터우, 소리, 미카, 마터, 파시형의 텐더식 증기기관차 등을 들 수 있다. 또 여객열차용으로 푸러, 타우, 파시형이 사용되었으며, 화물열차용으로 소리, 미카, 마터형이 각각 사용되었다.
1954년 4월 전쟁 중 UN군이 사용하던 디젤전기기관차 4량을 인수하면서 증기기관차시대가 디젤차량 시대로 전환이 되었다. 이후 상태가 양호한 증기기관차를 선별하여 연소장치를 기름연소식으로 개조한 후 사용하였다.
마) 철도청 시대(1963.9.1~현재)
1963년 제3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수립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철도차량분야에서도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디젤차량이 도입되었고, 1967년 8월에는 증기기관차의 공식 운행이 마감되었다. 이 후에 운행되는 열차는 주로 관광열차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역에서 증기기관차 종운식 거행 사진>
2. 디젤기관차
가) 개요
디젤기관차는 디젤엔진, 엔진의 회전력을 전기로 바꾸는 발전기, 발전기의 전기를 받아 바퀴를 돌려주는 전동기를 기관차에 갖추고 거기다 대형 디젤엔진용 대형연료탱크까지 싣고 다녀야 하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정비에도 많은 비용이 드는 차량이지만, 지상설비가 필요 없어 지금까지 국내 철도의 주력기종으로 사용되어 왔다.
전력변환설비만 탑재한 전기차량과 비교해 볼 때, 엔진, 동력전달장치에다 연료까지 싣고 다녀야 하므로 차량 중량당 출력이 나쁘고 동력 효율도 낮다.
그러나 전차선, 변전소 같은 지상의 전철화 설비가 필요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열차 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곳에서는 디젤차량 운행이 기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세계 영업노선 길이의 약 80%에서 디젤차량이 운행되고 있다.
디젤기관차는 1941년 이후 세계적으로 대량생산이 시작되어 이후 10년 만에 약 4만대가 생산된 기록이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500량 이상 사용되고 있어 동력차의 주력기종 역할을 하고 있다. 아래의 표는 1955년부터 1999년까지 국내에서 보유하였던 디젤차량의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디젤차량 연도별 보유 현황(1955~1999년)>
디젤차량의 역사를 살펴보면, 1883년 독일에서 30마력 엔진을 실은 2축 내연동차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시험 운행을 하였고, 1913년 스웨덴에서는 차량에 디젤기관을 처음으로 장착하였다. 이때의 디젤동차는 간선이 아닌 지선에서의 1량 운전이 원칙이었으나, 그 후 성능이 좋은 동력전달장치가 개발되어 차량 여러 대를 한꺼번에 연결하여 운행하는 편성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술발달로 인해 점차 엔진의 경량화 및 출력증강이 가능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간선열차로도 사용되었다.
2차 세계 대전까지 상당한 보급이 있었다. 특히 1932년 베를린~함부르크간을 최고속도 160km/h, 평균속도 123km/h로 달린 2량 편성 디젤동차 Fliegender Hamburger의 운행은 디젤차량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이후 각 국에서의 디젤차량에 의한 고속화 경쟁은 2차 대전으로 인해 점차 약화되었다.
전기차량의 등장과 함께 속도경쟁은 현재 전기차량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나) 특징
디젤차량은 전기차량과 마찬가지로 동력을 집중한 디젤기관차와 동력을 분산한 디젤동차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긴 편성의 간선열차에는 디젤기관차를, 지선의 소단위 열차에는 디젤동차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새마을호 열차로 사용되는 Push-Pull형 디젤동차는 명칭은 동차이지만 8량 편성의 양쪽 끝에 기관차가 붙어 있어 동력집중식 차량으로 볼 수 있다.
<새마을호 디젤동차>
<7400호대(GT26CW-2) 디젤전기기관차>
기관형식 |
16-645E3 |
정비 중량(ton) |
124 |
주발전기 형식 |
AR10 |
실린더(경mm×행정mm) |
230×254 |
축당 중량(ton) |
22 |
정격(A) |
4,200 |
싸이클 |
2 |
치차비 |
57:20 |
출력(kW) |
2,130 |
견인 마력(HP) |
1,800 |
제동장치 형식 |
26L |
T/M 형식 |
D77B |
대차 형식 |
CO-CO |
최대속도 (km/h) |
150 |
정격(A) |
1,075 |
제작년도, 제작사 |
1989년 한국 현대 정공 (주) |
디젤차량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동력 즉, 열차를 끄는 힘을 내는 엔진과 이 엔진의 회전력을 바퀴에 전달하여 바퀴를 돌려주는 동력전달 장치이다. 동력 전달장치에는 기어의 이빨수를 적당히 조합하여 필요한 회전수를 만들어 내는 치차식도 있으나 주로 전기식과 액체식을 많이 사용한다. 전기식은 엔진의 회전력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낸 다음 이 전기로 모터를 돌려주고 다시 이 모터가 바퀴를 회전시켜 주는 방식을 뜻한다. 반면, 액체식은 엔진과 연결된 1차 회전축과 바퀴에 연결된 2차 회전축 사이에 액체를 이용한 트랜스미션을 사용하여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디젤동차의 경우 경량화 등의 이유로 주로 액체식을 사용한다.
<디젤전기기관차(GT26CW-2) 형식도>
2공장이나 역구내에서 차량들을 붙이거나 떼는 데 주로 사용하는 입환용 디젤차량의 경우 액체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디젤기관차의 수가 많은 미국에서는 전기식을 채용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 나와 있는 차량은 현재 인천지하철에서 사용되고 있는 70ton급 입환용 디젤기관차이다.
<70ton급 디젤기관차(인천지하철, 대우중공업제작)>
다) 발달사
1955년 3월 유엔군으로부터 견인 800마력(정비중량 94.5ton, 최고속도 105km/h)의 소형 기관차 2000호대(SW-8형) 4량을 인수받아 국내에서 최초로 운행하였다. 이후 어려운 국내경제상황으로 인해 1970년대말까지 대부분 차관자금에 의해 도입을 하였고, 미국의 EMD/GMC사로부터 완전조립체 형태로 도입을 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경제발전으로 인해 1979년 현대정공에서의 디젤기관차 7581호(견인 3000마력, 정비중량 132ton, 최고속도 105km/h) 조립 및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해연도 9월 18일 서울역에서 국산 디젤전기기관차 운행식을 거행하였다. 이때부터 외국업체와의 기술협력 또는 자체개발을 통해 대부분 국내에서 조립,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1984년에는 현대정공에서 제작된 국내개발차량이 최초로 외국에 수출되었다.
디젤기관차의 형식별 주요장치 제원
3. 전기기관차
전기기관차는 선로 위에 설치된 가선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움직이는 차량으로 디젤기관차에 비해 견인성능이 뛰어나고 급구배와 작은 반경의 곡선에서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 산악지형이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차량이다. 현재 가장 우수한 철도 수송방식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 국에서 전기철도화가 진행되고 있다. 속도향상에도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어 고속철도의 경우 대다수가 전기기관차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전기기관차는 1879년 독일 지멘스사에서 제작한 기관차(약 20명 견인능력)로, 베를린 박람회에 출품되어 운행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9년 경성(현 서울)의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노선 25.9km를 노면전차가 최초로 운행한 것이 전기철도의 효시이다.
해방 후 최초로 운행된 전기기관차는 1972년 태백지구의 생산품을 수송하기 위해 고한-증산간 10.7km 구간에서 운행된 차량인데 차관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이후 전기기관차는 중앙, 태백, 영동선 등 산악지대의 산업선에서 주로 외국차량이 도입되어 운행되었다.
국내기술로 최초 제작된 전기기관차는 1986년 대우중공업에서 제작된 8091호이었으나, 차량이 고가이고 부품공급과 유지보수가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은 고장이 발생한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4대가 만들어진 후 제작이 중단되었다.
1998년에 독일회사와의 기술제휴로 속도가 150km/h로 향상된 신형 인버터 제어방식의 전기기관차(8101호대)가 개발되었다.
국내에서 제작된 전기기관차의 외형과 주요 제원은 다음 표와 같다.
<8091~4호대 전기기관차(1986년 대우중공업 제작)>
<8101~2호대 전기기관차(1998년 대우중공업 제작)>
4. 도시철도차량
1973년 5월 대일차관자금에 의해 전동차 186량(철도청 126량, 서울지하철 60량)이 구매, 계약되었으며, 1974년 4월 일본에서 차량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1974년 8월 15일 서울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개통 당시에는 6량 편성(Tc M M M M Tc의 4M2T로 구성)으로 철도청 126량(6량×21편성)과 서울지하철 60량(6량×10편성) 등 총 186량이 운행되었다. 철도청의 AC25kV 60Hz와 서울 지하철의 DC 1500V구간을 직통 운용함으로써 도시철도용 전기차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76년 대우중공업(주)에서 2량의 국산화 제작에 성공해 전동차를 전량 국내에서 제작하게 되었고, 현대정공(주)는 1981년부터, (주)한진중공업은 1988년(당시 조선공사)부터 전동차를 제작하게 되어 국내3사 전동차제작 경쟁체제가 도래하였다.
1988년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되었고, 이에 따른 교통 대책의 하나로 과천, 분당 및 일산선 건설이 추진되었으며, 이 선로에 운용할 차량으로 새로운 시스템인 인버터 제어방식 전동차가 투입/운용되었다.
기존 1호선의 복복선화 추진에 따른 차량 증강과 노후차량 대체를 위해 투입될 전동차의 차량시스템을 구형인 저항제어방식에서 신형인 인버터제어방식으로 변경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래서 최초의 인버터 제어방식 차량이 1987년 5월부터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운행되고 있는 도시철도차량의 호선별 주요 제원과 성능규격은 다음표와 같다.
도시철도차량 호선별 주요 제원
5. 수송차량
가) 객차
초창기 시대의 객차는 대차 중앙관통식(中央貫通式)으로 길이 15m, 폭 3m, 자체 무게 11ton 정도인 목조 차체였다. 이들 객차는 대부분 미국에서 도입되었으며 일부는 일본회사 제품이었다.
이후 객차의 차체는 초기의 목재에서 점차 개량되기 시작하였다. 1915년경에는 강재로 설계되기 시작하였고 1927년 이후에는 철골 목재를 사용하였다. 1929년 이후부터 더욱 강도를 강화하기 위하여 차체 전체를 강재로 제작하였다. 차체 지붕은 처음에는 이중형으로 제작하였고, 1924년부터 둥근 지붕으로 고쳐 열차 저항과 제작비 경감에 주력하였다.
강재를 사용하는 것은 안전운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으나 필연적으로 중량이 증가되는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용접 설계, 금속 기구류 경감, 경합금 채택 등의 방법으로 차량중량을 줄이는 노력을 하였으며 1932년경부터는 구형강을 사용한 차체를 제작하게 되었다.
객차를 국내에서 자체 제작한 것은 1932년에 경쾌 열차용(輕快列車用) 경3등 객차 화하1형을 경성공작소에서 제작한 것이 처음이었다. 경인선에서 운행된 화하1형은 차체 중량이 27ton 정도밖에 안되는 가벼운 차량으로 강도가 뛰어나 정원을 늘릴 수가 있어 이후 계속 증차되어 갔다.
이후 수송인원이 많은 경부선에 사용된 특급 아카쯔키용으로 중량 32ton의 경량객차가 개발되어 투입되었다. 이 차량은 연결부에 차체와 같은 형태의 덮개를 씌우고, 전망차는 끝 부분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제작하여 전체적인 저항 감소를 위해 노력했고, 차량 방음을 위해 차체에 납을 넣고 차체 전면에 플란넬을 바르는 등 소음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이후 제작된 표준 3등차 하9형는 하8형에 비하여 차체 중량이 약 7ton정도 줄어들었다.
안전성능을 높이는 노력을 하였으며, 차량정원도 늘릴 수 있는 차체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였다.
1961년 이후에는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객차 도입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IDA (Inte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OECF(Overseas Economic Cooperatom Fund), 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등 차관을 통해 수송량 증가에 따른 소요 차량을 연차적으로 보충하였다.
1963년도에는 1차 IDA 차관으로 경량화된 특급객차(통일호) 115량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여 운행하였으며, 1968년과 1969년 사이에는 KFX(Korean Foreign Exchange) 자금으로 최초로 객차에 전기냉난방이 설비된 관광호(이후 새마을로 개명) 객차를 구입하여 운행하였다.
1970년대 초부터 국내에 철도차량제작회사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국내 수요가 늘어난 고속 및 고급 객차에 대한 국내 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1974년과 1975년 사이 4차 IBRD차관으로 도입된 객차 228량 중 발전차 5량과 새마을 객차 14량은 일본에서 도입되었고 통일호 객차 209량은 당시 한국기계(현 대우중공업)에서 경량객차(특급)를 국내에서 최초로 제작하여 납품하였다. 또한 1975년도에 국내 자금으로 전기냉난방이 설비된 관광호 객차 2량을 국내에서 제작하여 납품하는 등 철도용 객차 국산화를 위한 노력이 증가하였다.
1977년에는 특급 객차와 새마을 객차 등의 장점을 보완한 고유 모델인 우등(무궁화) 객차가 개발되어 첫 운행을 하게 되었고, 발전차도 국내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현대차량(현 현대정공)과 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는 각각 우등차 2량과 발전차 1량을 제작/납품하었다. 이 당시부터 국내 철도차량제작회사가 3개사로 늘어났고, 이후 철도 객차는 거의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을 대비하여 1986년에는 최초로 자동승강객차 출입문 설치, 객차간 출입문 자동화, 저장식 오물처리기 설치 등 승객의 편의성이 도모된 스테인레스강판의 최신형 새마을객차를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철도제작회사들은 철도의 고급화 및 고속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새마을호 객차 내부 사진>
이 당시 새마을호의 특징으로는, 외형구조로 측창을 타원형으로 넓게 하였으며 차체하부를 가릴 수 있도록 스컷트를 내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종래 지붕 위에 있던 에어컨을 양단부 승강대 위 지붕 밑에 매입형으로 설치하여 미관을 좋게 하고 동시에 주행 저항을 감소시켰다는 점, 객실출입문도 자동문으로 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실내 구조를 FRP내장판으로 제작하였으며, 실내선반도 FRP판으로 덮었다. 또 실내조명을 간접 조명방식으로 하여 실내 분위기를 은은하게 하였으며, 선반 하부에 개별 독서등을 설치하여 개인마다 소/점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냉방장치도 종전의 집중 그릴 방식에서 중천정 양측 몰딩 부분에서 실내천장에 걸쳐 냉기가 분산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실내설비를 고급화하였다. 의자의 경우 회전식으로 등받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 안락감을 한층 향상시켰다.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강제순환 저장식 오물처리기가 설치된 선진국 수준의 환경친화형 차량이 탄생하였다.
철도차량의 고속화 및 고급화를 도모함으로써 철도 이미지가 향상되었다.
나) 화차
초창기 경인철도에서는 유개차 16량, 화물완급차 4량, 무개차 8량 등 합계 28량의 화차가 영업에 투입되었다. 이 때의 화차는 길이 9m, 폭 2.4m, 적재화물 23ton 정도의 능력을 가진 차량이었으나, 경부철도의 운행에 따라 길이 약 10m, 폭 2.4m, 적재화물 27ton 정도의 화차로 개량되어 운행되었다.
<경인철도 최초화차(1899년 미국제)>
1) 표준 화차
국내철도의 화차의 경우 처음부터 미국형의 보기차(30ton)가 표준이었다. 1933년에 이르러 신제 화차가 다소 생산되었으나 목조차에 불과했다. 이 시기의 차체의 구조는 어복형의 대(臺)테에서 구형강을 통한 장형대차(長形臺車)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만주침략과 함께 점차 화차 생산이 대량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화차는 용산, 영등포, 인천 등 국내의 각 철도공장에서 제작되었다. 30ton의 보기 유개차(와시프형)와 무개차(도스프형)가 주로 생산되었는데, 수송량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 설계된 45ton의 무개차 위주로 생산이 점차 바뀌어 갔다.
1930년대에는 화차 제작이 활발하였으나 194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자재 부족으로 인해 수리도 여의치 못한 상태였으므로 새로운 차량의 설계와 제작은 중단되었다.
이 당시의 화차는 만주와 중국으로 직통하는 것과 국내에서만 운용되거나 한정된 범위 내에서 운용되는 것으로 크게 구분된다. 중국과 연결되는 직통차는 30ton 보기유개차(와시프형), 무개차(도시프계), 무측차(지사브계) 및 석탄차 등이었는데, 후에 출현한 45ton 고측무개차를 포함하여 주로 한국, 만주, 중국에서 운행되던 화차를 기본으로 하여 설계된 반강제 화차였고 대차는 아치바식이었다. 국내용으로는 대형의 무측차(지고브형 50ton 주강 6륜 보기대차), 저상차(지로브), 탱크차, 통풍차, 차장차 등이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게 되면서부터, 점차 늘어나는 물동량 수송을 위한 부족 화차 확보를 위해 국내 자금 또는 차관 자금을 사용하여 인천에 위치한 공작창에서 차량을 제작하거나 외국제 차량을 도입하는 방안 등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렇게 하여 63년부터 무연탄 수송을 위한 석탄차, 유개차, 장물차를 제작하였고, 63년도에는 1차 IDA 차관으로 일본에서 석탄차 935량을 도입하였다. 또 1966년부터 추진된 대일청구권자금(OECF)에 의한 화차 구입이 1, 2차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1,331량(유개차 578량, 무개차 753량)과 화차 건조용 자재 1,100량분이 1966˜1969년에 걸쳐 입고된 후 인천공작창에서 조립되어 운행에 충당되었다.
객차용 원자재도 들여와 인천공작창에서의 객차 제작 및 보수에 사용하였다.
1970년도부터 추진된 3차 IBRD/IDA 차관으로 구입되는 화차 2,683량 중 2,330량이 국내 제작사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나머지 353량 중 200량은 일본에서 최초로 구입하여 운행한 벌크시멘트차였고, 153량은 대만에서 구입하여 운행한 석탄차였다.
이 당시 3차 IBRD/IDA 차관으로 구입한 화차의 내역을 도표로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3차 IBRD/IDA 차관 화차 구입 내역
이와 같이 외국의 차관으로 구입한 화차는 1987년 벌크차 94량이 마지막이었고, 이후로는 국내 자금으로 국내 차량 제작사에서 전량 제작, 납품하도록 하였다.
특히 1996년 수립된 철도경영개선 5개년 계획에 의해 1997-2001년까지 5년 동안 노후 화차 5,455량이 신조차로 대체 구입되어져 철도안전확보와 수송력 증강에 이바지하였다. 1997년 컨테이너형 유개차, 전개형 유개차, 소화물전용 화차, 냉동컨테이너 화차 등이 제작된 결과 물동량 및 물류 종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2) 특수 화차
해방전에는 운수상의 특수 사정이나 목적에 맞는 특수 화차가 많이 개발되었다. 서부 지방의 무연탄을 수송하던 석탄차(홉빠식 다사형), 북부 지방의 광석 수송에 사용된 개상식(開床式) 광석차, 무산에서 청진으로 광석을 수송하던 광석 운반용 홉빠카 등이 보기 드문 특수화차였다.
또한 압록강 수력발전소의 수차 운반을 위해 만들어진 바닥 중앙이 비어 있는 65ton의 특종차가 있었고, 서양중앙철도회사가 상해에서 입수한 영국제 전강제(全鋼製) 40ton 유개차가 있었다. 영국제인 40ton 유개화차는 구조상 차량 폭이 좁아 국내의 용산공장에서 넓게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외 함경선의 적설지대 운행에 적합한 제설차도 있었다. 또한 고원 철도인 북한의 백무선 궤간에 맞는 협궤철도용의 15ton 화차가 개발되어 운용되기도 하였다.
해방전의 국내철도는 중국/러시아/만주 등 대륙 철도와의 연결 운수가 활발했으므로, 국내화차와 대륙 철도의 화차는 공통점이 많았다. 이것은 후에 한/만/중의 철도차량 부품의 통일이 도모될 때, 대륙과 호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만기술회의(후의 대륙철도기술회의 혹은 철도차량기술협의회)는 일본/한국/대만/사할린/만철/화북/화중철도의 기술진이 한자리에 모여 기술적인 토의를 하며 정보 교환을 하던 모임이었는데, 각 철도간의 기술교류와 견문확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임이었다.
이전까지 화차는 도입을 하였으나, 해방후인 l963년에는 원자재를 들여와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석탄차 200량을 새로 제작하였다. 자중 21ton의 이 화차는, 대차가 주강제였으며 C형 평축에 의한 2축 대차 시바타연결기에 마이너식 완충기를 사용한 40ton 철제 석탄차였다.
화차의 부품이 국산화되면서부터 철도청은 물론 일반 기업체에서도 철도차량 제작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1965년에 쌍용양회공업(주)은 철도청으로부터 전용화차 운송취급 승인을 받았는데 이에 따라 사기업에서의 전용화차 보유가 가능하게 되었다. 인천의 한국기계공업(주}와 부산의 조선공사에서 국내 최초로 화차를 제작하여 대한석유공사, 한국전력, 충주비료, 쌍용시멘트, 한일시멘트 등에 납품, 운용하게 하였다. 1966년도에는 수출이 증대되면서 경부선에 특급 화물열차 /건설호/를, 호남선에 /증산호/를 운행하게 되었다.
l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 제작한 차량은 일부 사유차를 제외하고는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제작한 40t용량의 화차였는데, 대차형식은 CP대차, CR대차, RCT, C대차로 점차 발전되었으며 볼스타스프링도 중판형 스프링에서 코일 스프링으로 개선되었다. 120t 고무완충기가 장착된 차량이었다.
1971년부터는 대량수송 및 속도향상을 위하여 화차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용량이 50t이고 대차형식은 진동 감쇄장치로 후릭숀블럭이 삽입되고 볼스타스프링의 변위를 크게 하여 유연성을 부여한 NATIONAL C-1형 대차를 취부하였으며, 완충기도 220t 고무완충기로 용량을 대폭 강화하여 열차의 장대화나 고속화에 따른 안전성을 부여하였다.
1973년에는 (주)한국기계에서 제작된 무개차 30량이 대만으로 수출되었다.
6. 한국형 고속철도차량 (KTX, Korea train Express)
90년대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수송량증가를 해결하기 위하여 1994년 6월 프랑스로부터 고속철도차량인 TGV기술을 이전 받아 고속철도차량을 제작하여, 시험구간에서 전기/기계적 특성과 환경적응시험 등 차량조정시험을 마치고 2004년 4월 1일 개통하였다.
현재 운행하고있는 차량 46편성 중 34편성을 국내에서 제작하고 나머지 12편성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차량을 도입하였다.
도입된 차량에 대해 1998년 9월부터 열차편성에 대한 동적시험을 국내공장의 시험선에서 시행하였으며, 1999년 상반기부터 인수검사 및 최종 기능점검이 시행되었다. 국내 제작 34편성은 프랑스 현지에서 기술을 이전 받은 우리 기술진에 의해 제작하였다.
경부고속철도차량은 18,500마력의 강력한 추진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12대의 견인전동기가 장착되어 있다. 또한 내한성을 강화해서 -25℃에서도 정상운행이 가능토록 하였다. 터널이 많은 지형조건을 감안해서 기밀설계를 채택하였고, 열차의 터널 진출입시 발생하는 외부 압력파의 객실유입을 방지하는 환기구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였다. 기존 TGV열차의 마찰/발전제동 2종류 외에 회생제동장치를 추가 설치하여 소비전력의 약 10%를 절약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