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경북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줄기는 그야말로 여행의 보고(寶庫)다. 펼쳐진 산과 바다의 푸름을 눈으로 뿐만 아니라 '맛'으로도 볼 수 있는 게 바로 이곳이다.
굽이굽이 도로들을 병풍인 양 둘러싸고 있는 태백산 줄기마다, 파도에 햇살이 부서지는 해안도로마다 맛집들이 숨어 있다. 그나마 오염이 가장 덜 된 곳이라서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임을 강조한다. 봄 동안 산자락에서 캐온 온갖 나물, 항구에서 갓 들여온 해산물의 '신선함'을 입 안 가득 채워보자. 멋진 추억으로 가득 차 있을 당신의 이번 바캉스에 완벽한 마침표가 될 것이다.
표재용.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 (1) 약초를 비벼 먹는다 - 봉평 허브나라
휀넬 꽃잎, 로즈마리, 세이보리, 베질, 시소잎사귀….
무슨 꽃꽂이에 들어간 식물 이름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양푼 그릇 안에 담아 고추장 팍팍 넣고 비벼 먹는 비빔밥 재료들이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 '허브나라'(033-335-2902) 안에 있는 '자작나무집' 레스토랑에 가면 이런 천연 허브들로 만든 비빔밥(8000원)을 맛볼 수 있다.
상추.갓 등 일반적인 채소류를 포함한 각종 허브 10여종이 한 그릇에 폭 담긴다. 철마다 허브 종류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모두 이곳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것들이다. 깻잎과 비슷한 향이지만 잎이 더 부드러운 시소, 미나리와 비슷하지만 더 은은한 향을 지닌 이탈리안 파슬리 등, 일반 시장에서 사기 힘든 비싼 재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주홍빛의 휀넬 꽃잎은 데코레이션이 아닌가 싶어 처음엔 먹길 주저하게 되지만 일단 씹으면 그 매콤하면서도 은은한 향에 금세 반한다.
이토록 저마다 짙은 맛이어서 자칫 역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이곳 원장 이두이(59.여)씨의 노력 덕분이다. 가장 맛있는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마치 고대 중국 전설의 신농씨처럼 여러 허브를 직접 맛보았다. 현재 이곳에서 팔고 있는 허브 닭찜(한마리 3만원), 허브 제육정식(1인분 1만원), 허브 그린샐러드(한그릇 1만원) 등 10여종 모두 이씨가 직접 개발한 메뉴다.
식사 후 2층에선 허브로 우려낸 각종 차를 무료로 맛볼 수 있다. 정식 메뉴를 먹은 경우 영수증만 보여주면 된다. 허브잼을 발라 먹는 허브 토스트, 허브 떡, 허브 아이스크림 등도 있어 차와 함께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다.
2만평 규모의 허브나라에는 어린이 정원.향기 정원.셰익스피어 정원 등 7개 테마별로 100여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어 좋은 볼거리가 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근처 흥정계곡에선 간단한 물놀이도 즐길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8시~오후 6시. 관람료는 어른 3000원, 초.중.고생 1500원이며 숙박시설로 펜션 10개동이 있다.
▶ 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장평IC를 빠져나와 우회전, 6번 국도를 타고 봉평으로
간다. 무이리.흥정리 입구를 거쳐 허브나라에 닿는다. www.herbnara.com
(2) 야들야들 곤드레 나물 - 정선 동박골 식당
"한치 뒷산의 곤드레.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 나지…."
정선 아라리 '부부'편의 한 대목이다. 곤드레.딱주기 모두 정선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산나물들. 특히 곤드레 나물은 해발 700m 이상, 청정한 고산지대에서만 자라기에 우리나라에선 정선.평창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취나물 비슷하지만 털이 억세지 않고 매끄럽다. 씹으면 야들야들하다. 삶아서 소쿠리에 담긴 곤드레 더미에선 비를 흠뻑 맞은 소나무 숲의 향기가 묻어난다.
'왜 하필 이름이 곤드레일까?'
정확한 어원은 밝혀진 바 없단다. 정선읍내에서 곤드레 전문 '동박골 식당'(033-563-2211)을 운영하고 있는 이금자(50.여)씨에게 물어 보니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춘궁기에 산자락마다 흐드러지게 돋아난 곤드레를 따서 삶아 먹으면 풍부한 영양분 덕에 졸음이 몰려올 정도로 포만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이씨는 아우라지 출신, 정선 토박이다. 부업 삼아 집에서 하숙을 치던 8년 전, 하숙생들에게 차려준 곤드레로 만든 밥이 큰 인기를 끌자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곳의 주 메뉴는 곤드레나물밥(1인분 4000원).돌솥밥(1인분 6000원).가마솥밥(1인분 5000원. 3인 이상) 등. 모두 이씨가 어릴 적부터 먹던 음식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들이다.
그 중 가장 대중적인 게 돌솥밥이다. 돌솥 속에 찹쌀과 멥쌀을 넣고 그 위에 곤드레 나물.참깨를 얹어 익혀낸 것. 먼저 밥을 떠내 사발에 옮겨 닮고 장과 함께 비벼 먹는다. 장은 직접 담근 된장에 양파 등을 넣고 볶아낸 '막장', 조선간장과 왜간장을 적당히 섞은 '양념간장', 그리고 고추장까지 모두 세 가지다. 식성에 맞게 골라 비벼 먹으면 되지만 이씨는 그 중에도 양념간장을 추천한다. 나물의 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장은 강원도산 콩을 사다가 갈아 직접 메주를 쒀 만든다. 이런 장으로 만든 된장찌개에도 강원도의 구수함이 담겨 있다. 밥을 떠내고 난 돌솥에는 숭늉을 부워 누룽지탕을 해 먹는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는 '황기 막걸리'. '산삼 대용'이라 불릴 만큼 영양가 높은 한약재인 황기와 강원도산 옥수수로 만들었다. "점토질인 데다 석회 성분이 많은 토양이라 예부터 굵고 품질 좋은 황기가 많이 났다"는 게 이씨의 설명. 도착 세시간 전쯤 가게에 미리 전화하면 주인이 냉장고에 넣어 마시기 적당한 온도로 맞춰 내준다. 곤드레 부침과 함께 한잔 걸치면 신선이 따로 없다. 곤드레는 주로 4 ~ 6월에 수확한다. 따온 나물은 일단 한번 삶은 뒤 냉동고에 보관해 일년 내내 쓴다.
▶ 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진부IC로 나와 정선 방향으로 59번 국도를 타고 내려온
다. 정선 읍사무소 쪽으로 우회전해 가다 정선1교 못 미쳐 삼천리자전거 앞 네거리에서 왼편을 보면 간판이 보인다. www.gondre.co.kr
(3) 감자 옹심이 - 정동진 심곡 쉼터
감자 옹심이는 생감자를 갈아 나온 전분을 빚어 수제비를 뜬 뒤 조갯살을 우려낸 국물에 끓여낸 강원도 토속음식이다. '쉼터'는 겉모습은 초라하고 옹색하나 동네 사람들이 "너무 알려지면 음식맛이 변한다"며 쉬쉬할 정도로 감자 옹심이를 잘 끓인다고 소문났다.
걸쭉한 국물에서 으깬 감자 알갱이와 수제비를 땀을 뚝뚝 흘리며 건져 먹고 메밀과 콩가루를 버무려 빚은 칼국수를 떠먹어야 제 맛이다. 밑반찬으로 내놓는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는 싱싱하고 달기까지 해 손님들이 따로 싸달라고 말할 정도. 정동진 선크루즈 가는 삼거리에서 동해방향으로 직진, 3㎞ 내려가면 심곡이란 마을이 나온다. 마을 초입 바로 오른편에 천막으로 만든 가게가 심곡쉼터. 한 그릇 3000원. 033-644-5138.
(4) 소라찜 - 삼척 주막식당
소라는 보통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삼척 '주막식당'주인 윤광섭(59)씨는 25년 전부터 특별한 소라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바로 손수 개발했다는 소라찜이다.
요리법은 아구찜과 다를 바 없다. 인근 정라진항에서 들어오는 어른 주먹만한, 싱싱한 소라를 깨끗이 삶아 두툼하게 썬 뒤 하루쯤 냉장실에 재워둔다. 이후 손님이 올 때마다 소라와 마늘.쑥갓.미나리.콩나물 등을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 쪄 낸다.
고추냉이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한 소라의 맛과 향긋한 미나리 향이 밥상을 물린 뒤에도 한참 동안 입가를 맴도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삼척 시내로 들어와 우체국까지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중(中.2인분) 2만원. 033-572-2222.
(5) 막회 - 울진 사동횟집
탁트인 바닷가나 도회지 한복판이 아니라 논밭 한가운데 자리잡은 판잣집 같은 작은 식당. 바로 막회(무침회) 하나만을 파는 사동횟집이다. 그러나 "동네에서 제일 장 잘 담근다"고 소문난 칠순의 김경희 할머니가 내놓는 막회는 전국에서 배달 주문을 받을 정도로 예사롭지 않다.
매일 새벽 인근 사동항에서 들여온 싱싱한 참물가자미.오징어.수가자미 등을 파 다지듯 가늘게 썰어 푸짐하게 담아낸다. 그 위에 밭에서 따온 양파와 상추를 숭숭 썰어 올린 뒤 일년 이상 묵힌 고추장 양념장을 얹어낸다. 진한 양념장 맛이 만만치 않은데도 뼈째 씹히는 회가 달고 고소하다. 생선을 다져 넣어 묵힌 김치도 별미. 둘째 아들도 울진 읍내에 따로 막회집(054-783-0428)을 차릴 정도로 소문난 맛이다. 한접시(3인분) 2만원. 054-788-6517.
(6) 헛제삿밥 - 안동 까치구멍집
헛제삿밥은 옛 양반들이 밤참을 해먹을 때 기름 냄새 풍기는 게 미안해 '제사를 지낸다'는 핑계를 대고 상을 차려낸 게 시초라고 한다. 까치구멍집은 1982년부터 헛제삿밥으로 명성을 쌓아온 집이다. 주인 서정애(52)씨는 시어머니에게서 솜씨를 전수받았다. 제삿상 차림인 만큼 상에 오르는 요리 수만 20여가지. 주인 이씨가 직접 집에서 만들어 오는 청포묵을 비롯, 굴비.각종나물 무침.돔배기라 불리는 상어고기.쇠고기 산적.안동간고등어.각종 전요리 .명태로 우려낸 무태국 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시내 법흥교차로에서 좌회전, 안동댐 가는 길에서 월령교 못미쳐 왼쪽에 있다. 양반상 1인분 1만원. 054-821-1056.
(7) 태백 서쪽엔 없는 뚜거리탕 - 양양 옛골
혹시 꾹저구(뚜거리)를 아시는지.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으로 흐르는 1급수에서만 잡힌다는 민물 고기다. 뚜거리탕은 내장을 따낸 뒤 한번 삶아 고기를 갈아내 탕을 만들어 얼핏 보면 추어탕처럼 보인다. 강원도 양양군 구다리 옆에 자리잡은 '옛골'은 뚜거리탕의 제 맛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집이다. 주인 이건용(54)씨가 매일 식당 앞 남대천에서 잡아오면 부인 조경희(49)씨가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을 푼 뒤 파.부추 등을 굵게 썰어넣고 다시마와 간장만으로 간을 맞춰 끓여낸다. 민물고기탕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소하고 뒷맛이 산뜻하다. 손으로 뜯어 넣은 쫀득쫀득한 수제비를 건져먹는 것도 재밌다. 1인분 5000원. 033-671-5954.
(8) 놀라워라 오징어회 - 강릉 사천항 장안횟집
얼핏 보면 비빔국수 같은데 젓가락으로 떠 보니 오징어다. 새벽에 바로 앞 항구에서 가져온 오징어로 만든 회가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다. 집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한 양념이 입안을 얼얼하게 한다. 함께 나오는 미역국 역시 일품이다. 우럭을 우려낸 걸쭉한 국물이 마치 사골국물같다. 한 술 떠 먹으면 오징어회로 자극받은 위가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들면서 시원해진다. 미역국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경포대에서 사천진리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5㎞ 정도 올라간다.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사천항 바로 앞에 횟집이 있다. 1인분 1만원. 033-644-1136.
(9) 바다 담은 전복죽 - 울진 후포항 등대횟집
진짜 전복죽이 어떤 맛이라는 것을 처음 알려준 후포항의 이 조그만 식당은 방파제 바로 옆에서 25년째 전복죽과 회를 팔았단다. 10년 이상 자란 씨알 굵은 전복으로만 죽을 쒀 서울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이름났다. 전복 내장을 섞어 끓여 푸르스름한 빛깔의 전복죽엔 어른 손가락 마디만한 전복 살점이 푸짐하다. 특유의 향과 맛을 죽일까봐 양념은 전혀 안쓰는 게 특징. 시어머니에게 비법을 물려 받았다는 강순기(49)씨는 "한 그릇 팔면 원가도 안 남아 두 그릇 이상만 주문받는다"며 "밑반찬도 가족들이 먹는 것 그대로 내놓아 이상한 것을 넣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한 그릇 1만원. 054-788-2556.
(10) 매콤달콤 양푼 갈비찜 - 대구 벙글벙글식당
27년째 쇠갈비찜 하나만을 내놓는 이곳에 들어서면 두번 놀란다. 싼 가격도 그렇거니와 고춧가루로 벌겋게 양념을 한 것이 얼핏 돼지갈비찜 같아서다. 주인 장영숙(53)씨는 "좋은 고기를 받으려고 납품업자에게 때마다 선물을 한다"고 귀띔한다. 청송.영양에서 받아온 고춧가루에 진간장.설탕으로 간을 맞춘 양념 맛이 매콤달콤하다. 양념이 진해 고기 맛이 숨겨질 법한데 그렇지 않다. 양념에 적당하게 버무려진 고기는 부드럽고 감칠 맛이 돈다. 두툼하게 듬뿍 썰어넣은 의성마늘도 맵지 않고 달다. 중구청을 지나 동인동 네거리 부근 동인파출소 뒤편의 찜갈비 골목에 있다. 1인분 1만원. 053-424-6881.
*** 너 메밀 맞니?
추운 곳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강원도의 대표 작물. 지금이야 웰빙식품으로 각광받지만 먹을 것 부족하던 시절, 이곳 사람들에겐 밥 대신 먹어야 했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래서 강원도엔 메밀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개발돼 있다.
메밀묵으로 유명한 곳은 27년 전통인 원주의 '흥업묵집'(033-762-4210). 김.깨소금.김치.들기름에 버무린 묵(4000원.사진)에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국물을 부어 훌훌 먹는다. "고기 국물을 쓰면 텁텁하기만 하고 메밀맛을 살려주지 못한다"는 게 주인 황경노(78)할머니의 설명.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은 휴일. 중앙고속도로 남원주IC로 나와 충주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흥업리가 나온다.
용평스키장 진입로 주변 '황태회관'(033-335-5795)의 황태메밀국수(5000원)도 별미.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황태머리.뼈를 넣고 육수를 끓인다. 황태는 주인 김순열씨가 직접 운영하는 덕장에서 가져온다. 용평스키장 가는 횡계 외곽도로를 따라가다 횡계2교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
막국수는 곳곳에 유명한 집이 있다. 40년 전통의 춘천 실비막국수(4000원.033-254-2472), 봉평의 고향막국수(순모밀 5000원.033-336-1211), 속초 실로암막국수(5000원.033-671-5547 1인분 ) 등이 대표적. 정선의 콧등치기국수(동광식당.4000원.033-563-0437)도 메밀로 만든다. 국수가락을 쭉 빨아들일 때마다 끊어진 가닥이 냅다 콧등을 친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