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 박 희 설
제작지휘 : 이 현 석
극 본 : 이 환 경
연 출 : 장 형 일
<야인시대 111회>
씬 : 황금마차 앞 (밤)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명동의 오상사들과 삼우회 식구들이 서로 대치해 있다. 팽팽한 긴장이 황금마차 주변을 감싸고 있다. 돼지와 도꾸야마, 독사, 삼수, 망치들의 면면이 스쳐간다. 명동 쪽의 오상사와 맨발들도 전투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돼지와 오상사가 그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온다.
오상사 : 이봐, 돼지...? 준비는 됐나?
돼지 : 물론... 자, 이제 그만 인사를 나눠보자구...
오상사 : 좋지... 들어와...
격투가 시작된다. 돼지와 오상사가 주변을 빙빙 돌며 그들을 향하고 있다. 한참을 서로 견제하던 그들. 오상사가 날라차기로 돼지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내 돼지에게 허리가 잡혀 자빠진다.
오상사 : (빙긋 웃으며) 손기술이 좋구만... 아주 쓸만해.
돼지 : 여유부리지 말고 계속해봐. 허리를 부러트려줄 테니까...
오상사 : 다시 말하지만 오늘 네 머리통은 박살날 줄 알라구. 알겠나?
다시 서로를 노리며 시선을 교환하다가 접전이 붙는다. 현란한 오상사의 발차기들이 보여진다. 그러나 번번이 돼지의 유도 기술에 붙잡혀 고전하는 오상사. 용호상박이다. 한참동안 치고 잡히고 꺾이고 혈투가 계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돼지는 비지땀을 흘리며 힘들어한다. 오상사는 더욱 빠르게 돼지 주변을 교란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결국 오상사의 뒤돌려차기가 돼지의 얼굴에 정통으로 작열한다. 돼지가 일어나려 애쓰지만 이미 승부는 끝났다. 오상사가 먼지를 툭툭 털며 명동 쪽을 본다.
오상사 : 또 없나...? 이번에는 누구 머리통을 박살내줄까?
도꾸야마 : (나서며) 인사한번 거창하구만... 오상사라고 했나? 내가 상대해주지. 나 도꾸야마야.
오상사 : 도꾸야마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도꾸야마 : 그래....? 그럼 이 순간부터 잘 기억해두라구..
도꾸야마와 오상사가 붙었다. 초반부터 치열한 접전이 이어진다. 막상막하... 한참동안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난투가 벌어진다. 한순간 오상사가 밀리는가 싶더니 다시 전세가 역전되며 도꾸야마가 수세에 몰린다. 빈틈을 보인 도꾸야마. 오상사가 기회를 잡고 계속 밀어 부친다. 결정타를 날리려는 순간, 독사가 뛰어들며 오상사를 막아낸다. 독사에게 몇 방을 허용하는 오상사. 그때 맨발이 그런 독사를 막아서며 상대한다.
맨발 : 오상사는 잠시 쉬라우. 내가 상대해 주갔어.
독사 : 좋지... 한번 해보자구...
다시 맨발과 독사가 붙었다. 주먹 난타전이 이어진다. 마치 복싱경기를 하듯 때리고 피하고 막아낸다. 이들의 접전도 한동안 계속된다. 한참만에 둘은 엉겨붙듯 서로에게 근접해 있다. 상대방을 밀며 힘겨루기를 한다. 그때 순간적으로 맨발이 독사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무릎으로 강타한다. 결정타가 먹혔다. 그대로 쓰러지는 독사. 오상사가 명동패들을 지휘한다.
오상사 : 됐어... 이제 치고 들어가....
동시에 우 하며 달려들어가는 명동패들. 삼우회원들도 이에 질세라 덤벼든다. 수적으로는 명동이 불리하다. 그러나 모두들 독기를 품은 듯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밀고 들어간다. 대 혈투가 벌어진다. 각목과 쇠파이프가 나른다. 그 혼란과 소용돌이, 함성 속에서....
씬 : 이정재의 집 외경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리고 있다.
씬 : 동 집 서재
전화를 받는 이정재. 심각하다. 이억일이 그 옆에 함께 해 있다.
이정재 : 나 이정재야... 그래, 조고문은 어떻게 됐나? 소집명령은 전달된 건가?
조열승 : (소리) 예, 회장님. 비상을 걸어서 상인연합회로 다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이정재 : 일이 급해. 일단 지금 병력 가지고 즉시 황금마차로 출동하라구. 그리고 도착하는대로 최대한 싸움을 말리도록 해. 충돌이 더 커져선 안 돼. 알겠나?
조열승 : (소리) 예, 회장님.
전화를 끊는다. 이정재는 답답하다.
이정재 : 억일아...?
이억일 : 예, 회장님.
이정재 : 종로 경찰서에 연락해서 협조를 요청해. 우리 삼우회 식구들은 취중이라 더 방치했다간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몰라.
이억일 : 예, 알겠습니다.
이억일이 급하게 전화기를 돌린다. 이정재의 초조한 모습에서....
씬 : 동대문 상인연합회 앞
수많은 트럭들이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켜놓고 대기해 있다. 각 차마다 동대문 어깨들이 가득 타고 있다. 한쪽에서는 막 지역 부대원들이 도착하고 있다. 그 일각에서 보고를 받고 있는 이석재.
이석재 : 왕십리 쪽에선 몇 명 왔나?
사내 : 비상대기 인원으로 20명 출동했습니다. 곧 후발대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석재 : 청량리 부대는....?
사내1 : 30명입니다.
이석재 : 일단 모두 차에 올라.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 바로 출발한다.
사내들 : 예....
사내들이 모두들 트럭 위로 오른다. 그때, 조열승이 막 건물 쪽에서 나온다.
조열승 : 어떻게... 다들 모였나?
이석재 : 급한 대로 사태 진압할 병력은 되는 것 같습니다.
조열승 : 사태 진압이 아니라 싸움을 말리라고 하더구만.
이석재 : 싸움을 말려요...?
조열승 : 회장님 명령이여.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구..... (하다가) 지광이는....?
이석재 : 좀 전에 그쪽으로 고바우를 보냈습니다.
조열승 : 그래...? 그럼 우리가 먼저 출발해야겠구만. 자, 가자구...
이석재 : 예, 형님. 자, 출발한다...
조열승과 이석재가 찝차에 오른다. 막 상인연합회를 떠나는 그 차량들에서...
씬 : 어느 호텔 외경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아오마스 : (소리) 하하하.... 오늘 정말 즐거웠소.
씬 : 동 나이트 밀실
유지광과 아오마스, 최창수, 낙화유수들이 함께 해 있다.
아오마스 : 이정재 회장님도 마지막까지 함께 계셨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최창수 : 그러게 말입니다. 꼭 주인공 없이 잔칫상 받는 기분이라 영 찝찝합니다.
유지광 : 하하하... 괜찮습니다. 아까도 보셨지만 저희 회장님은 항상 아랫사람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아오마스 : 아무튼 오늘 단합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다행이오. 우리 삼우회의 앞날이 훤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 자.... 한잔씩 더 들 마십시다. 최창수 오야붕, 그 잔 비우고 내 술 한잔 받아요...
그들 그렇게 술을 주고받는데 문이 열리며 고바우가 급히 들어온다.
유지광 : 아니, 고바우....? 무슨 일이야....?
고바우 : 형님.... 큰일났습니다...
유지광 : 큰일이라니....?
고바우 : 지금 우리 삼우회 식구들하고 명동패들이 붙고 있습니다.
모두들 : ............?
유지광 : 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고바우 : 오늘 단합대회 기념으로 명동을 친다면서 각파 20명씩을 모아서 황금마차라는 캬바레를 부수러 갔습니다.
유지광 : 뭐야...? 황금마차를 부수러 가......?
고바우 : 예... 거기가 오늘 개업하는 날인데 명동 애들이 다 모이거든요.
유지광 : 뭐야....?
놀라는 유지광들의 표정에서...
씬 : 다시 황금마차 앞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혈투다. 여기저기 피투성이로 널브러져 있는 어깨들... 오상사와 맨발이 선두에서 들어오는 삼우회 식구들을 사정없이 갈기고 있다.
오상사 : 계속 밀어 부쳐... 물러서지 말고 들어오는 대로 밟아버려...
맨발 : 한 발짝도 물러서지마. 밀리면 끝장이다. 인정사정 보지 말라구...
명동 쪽은 독기로 싸우고 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삼우회 쪽 인원이 더 많지만 오히려 전세는 불리하다. 도꾸야마와 독사가 소리소리 치며 독려한다.
도꾸야마 : 뭣들 하나? 겁먹지들 말라구. 계속 몰아붙여.... 물러서지마.
독사 : 놈들은 다 합해야 우리 반도 안 돼. 치고 들어가... 어서....
그런 와중에도 도꾸야마와 독사는 계속해 들어오는 명동 쪽 공격을 막느라 정신이 없다. 망치도 밀려오는 어깨들을 걷어차고 막아내느라 바쁘다. 그 한쪽 삼수와 돼지들도 미친 듯이 각목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삼우회가 불리해지고 있다.
돼지 : 이거 아무래도 우리 쪽이 불리해. 놈들이 죽기로 싸우고 있다구.
삼수 : 그렇다고 지금 물러설 수도 없잖아?
돼지 : 이미 우리 쪽 기세가 꺾였어. 일단 후퇴를 시키는 게 좋겠어.
삼수 : 이거 정말 미치겠구만...
그때다. 멀리서 경찰들의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점점 더 가까워지면...
오상사 : 뭐야.....? 경찰들 아니야...?
맨발 : 이런 젠장.... 이제 막 기선을 잡았는데.... 경찰이 왜 오는 거야?
오상사 : 경찰이고 뭐고 무조건 다 태워버려... 총공격이야... 그대로 밀어부쳐.. 다 죽여버려.....
맨발 : 좋아... 엎어버려..... 계속 밀어 부쳐...
동시에 와 함성을 지르며 명동이 더욱 기세를 올린다. 점점 밀리기 시작하는 삼우회. 급기야 하나 둘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삼수는 보다가 안타깝고 다급하다.
그 사이에 선두에 있던 망치가 대원들을 말리다가 맨발의 각목에 나가떨어진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그때 경찰차가 골목 쪽에 접어들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 소리치고 있다.
경찰 : (소리, 가까워지면서) 경찰이다..... 경찰이다..... 모두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체포한다....... 어서 해산하라....
돼지 : 안 되겠어. 일단 애들 후퇴를 시키자구. 다들 이미 뒤로 빠지고 있어...
삼수 : 제기랄.... 모두 후퇴해라..... 후퇴하라구....
명령과 동시에 삼우회 대원들이 우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후퇴를 하면서도 죽기로 들어오는 명동 쪽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선두에 있던 독사와 도꾸야마. 당황스럽다.
도꾸야마 : 뭐하는 거야? 후퇴하지마... 치고 들어가라구...
독사 : 들어가... 도망치지 말라구, 이 새끼들아.... 밀어 부쳐....!
도꾸야마와 독사는 악을 쓰며 각목을 휘둘러댄다. 그러나 썰물처럼 밀려나는 삼우회들. 명동패는 계속 따라붙으며 총공격이다. 도꾸야마들이 죽기로 막지만 그들 주위에 남은 식구들은 없다. 어느새 포위된 도꾸야마들. 오상사가 냉소를 띄며 다가온다.
오상사 : 해치워버려.
뒤이어 명동 쪽 대원들의 무수한 각목세례가 이어진다. 도꾸야마와 독사는 몇 명을 막아내는가 싶더니 이내 감당할 수 없는 공격에 서서히 무너지고 만다. 경찰차들은 이미 황금마차 앞으로 포진하고 있다.
경찰 : (소리)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는 경찰이다. 지금 당장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즉시 발포하겠다. 해산하라.. 해산하라...
쓰러진 독사와 도꾸야마. 그 모습이 처절하다. 맨발이 다가가 쇠파이프로 도꾸야마를 들춰본다.
도꾸야마 : (고통스럽다) 이 새끼들....
맨발 : 이봐... 정신 없이 다들 도망치는데 혼자서 무슨 영웅 행세야?
오상사 : 됐어.. 그만하면 바짝 정신들 들었을 거야. 일단 애들을 뒤로 물리자구.
맨발 : 모두 해산해라... 황금마차 안으로 다 들어가...
경찰들의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맨발과 오상사가 삼우회 식구들이 도망간 쪽을 보며 웃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 명동 이화룡의 사무실 외경
이화룡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 동 사무실 안
전화를 받고 있는 이화룡. 정팔이 함께 해 있다.
이화룡 : (전화) 기래...? 아주 잘 했구만, 잘했어 오상사.. 하하하... 삼우회 식구들이 다 줄행랑을 쳤단 말이디...? 내레 오상사들이 해낼 줄 알고 있었어... 기래... 기래.... 경찰이 왔다면 더 이상 쳐들어오딘 못하겠구만.... 일단 거기서 대기들하고 있으라우. 우리 쪽에서도 일부러 자극하디는 말아. 싸움이 길어지면 불리해 질 수도 있어... 알간?... 기래.. 내가 곧 그쪽으로 가보갔어. 이만 끊네.... (끊는다)
정팔 : 오상사가 해냈습니까?
이화룡 : 내레 말하디 않았어. 오상사는 죽으면 죽었지 결코 물러설 친구가 아니라고 말이야.
정팔 : 대단하구만... 대단해.. 아니 고작 그 병력 가지고 백여 명이나 되는 삼우회 식구들은 막아냈단 말입니까?
이화룡 : 언제 우리 명동이 머릿수 따지면서 싸웠네? 기딴 건 다 소용없어. 싸움은 그저 깡이라구, 깡....
정팔 : 다행이에요. 오상사하고 맨발이 우리 명동의 자존심을 지켜줬습니다.
이화룡 : 명동의 자존심이라....? 허허허.... 정팔, 우리도 황금마차로 가보자우. 경찰들이 왔으니까 더 이상 충돌은 없을 거야.
정팔 : 예, 형님.
씬 : 황금마차 안
오상사와 맨발, 명동의 어깨들이 함께 해 있다. 모두 지친 기색이지만 표정들은 밝다.
오상사 : 다들 수고 많았다. 역시 우리 명동 식구들이야. 삼우회 놈들도 우리가 뭔가 다르다는 걸 충분히 알았을 거다. 일단 경계들 늦추지 말고 대기해 있도록 해.
모두들 : 예, 형님....
맨발이 오상사 쪽으로 다가온다.
맨발 : 오상사, 아무래도 삼우회 쪽에서 기습을 하기 전에 우리가 미리 선수를 쓰는 게 어떻겠나?
오상사 : 글쎄... 밖에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쉽게 기습을 감행하진 못할 거야. 화룡이 형님도 그쪽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고 말이야.
맨발 : (끄덕인다) 아무튼 오늘 정 말 대단했어. 우리도 그렇지만 삼우회의 그 도꾸야마라는 놈 말이야. 마지막까지 남아서 덤벼붙는데... 그 깡다구 하나는 칭찬할만 하더군.
오상사 : 그래... 무서운 놈들인 것만은 확실하지. 큰형님께서 이쪽으로 오신다고 했으니까 일단 계속 지켜 보자구.
그런 오상사들의 표정에서...
씬 : 황금마차 앞 거리
많은 경찰병력들이 건물 앞을 경계로 지키고 서있다. 경찰간부가 양쪽을 번갈아 보며 답답한 듯 한숨을 날린다.
씬 : 그 거리 어느 골목
근처 골목길이다. 후퇴해온 삼우회 식구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부상자들의 모습도 여럿 보인다. 독사와 도꾸야마도 벽에 등을 기댄 채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모습이다. 삼수와 돼지들이 다가온다.
돼지 : 이거 정말 어이없게 당하고 말았소. 반도 안 되는 병력들한테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다니...
독사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오? 싸우는 도중에 도망을 친 사람들이 누군데....
돼지들 : ............?
독사 : 이런 패싸움에서 한쪽이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걸로 끝나는 겁니다. 사람이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삼수 : 허허... 독사... 좀 말이 지나친 것 같구만.
도꾸야마 : 자, 자.... 그만들 합시다. 이미 상황은 끝났어요. 일단 전열을 재정비해서 다시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끝나선 안 되지요.
그들 그러는 동안 저만큼 여러 대의 차량들이 불을 밝히고 온다. 이석재들이다. 가까이 다가와 그들 앞에선다.
이석재 : 어떻게 된 거야? 벌써 상황이 끝났나...?
도꾸야마 : 죄송합니다, 형님.
이석재 : 죄송하다니...? 그럼 다 당했단 말이야?
독사들 : 면목 없습니다.
조열승 : 이런... 답답한 친구들하고는.... 그러길래 계획도 없이 마구 쳐들어가는 게 어디 있나? 철저하게 작전을 세우고 들어갔어야지.
도꾸야마 : 다들 취중이라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석재 : 안 되겠습니다, 조고문님. 우리 쪽 병력을 보강해서 지금 밀고 들어갑시다.
조열승 : 잊었나? 회장님은 싸움을 말리고 대원들을 해산시키라고 우리를 보낸 거야.
도꾸야마들 : ..............?
이석재 : 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돌아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때, 유지광들이 탄 차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 내려서는 그들.
유지광 : (조열승들을 보고) 오셨습니까?
조열승 : 우리도 연락 받고 막 도착했네.
이석재 : 최창수 오야붕하고 아오마스 오야붕도 오셨습니까?
아오마스 : 아, 예... 오셨습니까?
최창수 : 나, 이거야 뭐가 뭔지.. (주변을 둘러보며) 완전히 박살난 모양이구만.
유지광 : 이봐, 독사... 우리가 당한 건가?
독사 : 죄송합니다, 형님. 우리가 명동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삼우회 식구들이 다들 취한 상태들이라...
아오마스 : 허허... 이거 일이 우습게 됐구만... 우습게 됐어..
조열승 : 이봐, 지광이... 아무튼 회장님께서 이미 지시를 내리셨네. 더 이상 충돌하지 말고 해산하라고 말이야...
유지광 : 회장님께서 말씀입니까?
조열승 : 그래. 우리도 만약을 대비해서 병력을 이끌고 왔지만 회장님 지시인데 어쩌겠나?
이석재 : 정말 답답합니다, 조고문님. 완전히 개망신이에요, 개망신....
유지광들 : ............?
그때, 경찰간부가 몇몇 경찰들과 함께 다가온다.
경찰간부 : 종로서에서 나왔소. 이쪽 책임자가 누구십니까?
조열승 : 이봐, 지광이... 자네가 가보게.
유지광 : (다가가며)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랑 말씀하시지요.
경찰간부 : 아, 이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밤도 늦은 시간이고 다른 곳도 아니고 종로 한복판 아닙니까?
유지광 : ............ (한숨)
경찰간부 : 저희도 이정재 회장님 전화를 받고 이쪽으로 출동을 했어요.
유지광 : 그러십니까...?
경찰간부 : 피차 취중에 벌어진 일들인데 이쯤에서 해산을 하도록 해주세요. 더 이상 충돌이 발생하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유지광 : ...........?
착잡하게 끄덕이는 유지광의 모습에서....
씬 : 이정재의 집 외경
씬 : 동 집 서재
이억일이 전화를 받고 있다. 이정재는 답답한 듯 창 밖을 보고 있다.
이억일 : (전화) 예, 예... 해산을 하고 있다구요...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께 그렇게 전해 올리겠습니다. 예... 예... (끊고) 회장님... 조열승 고문 전화입니다.
이정재 : .........?
이억일 : 삼우회 식구들이 철수하고 있답니다.
이정재 : 다행이구만....
이정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듯 자리에 앉는다.
이억일 : 회장님, 우리 쪽 피해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그냥 이렇게 끝내실 생각이십니까?
이정재 : 지금은 명동과 그런 일로 다툴 때가 아니야... 사건이 더 커지면 손해를 보는 건 우리라구.
이억일 : ............
이정재 : 일단 내일 삼우회 오야붕들을 보자구 해.
이억일 : 예, 회장님.
이정재 : 그래... 지금은 명동과 싸울 때가 아니야... 암......
씬 : 황금마차 외경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이화룡 : (소리) 거 오상사하고 맨발, 내 잔 한잔씩들 받으라우....
씬 : 동 황금마차 밀실
이화룡과 정팔, 오상사, 맨발, 그리고 여러 부하들이 함께 해 있다.
이화룡 : 정말 대단들 했어. 꼭 이 이화룡이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구만 기래. 하하하...
오상사 : 과찬이십니다. 어디 저희가 형님만 하겠습니까?
맨발 : 그럼요. 다 형님들 하시는 거 보고 저희가 배운 거 아니겠습니까?
정팔 : 아무튼 든든합니다, 형님. 우리 명동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준 것 같아요. 삼우횐지 뭔지 아마 뜨끔했을 겁니다.
이화룡 : 기럼... 기럼... 우리 명동은 기딴 양아치들하고는 달라. 자존심과 깡다구로 지금까지 버텨온 명동이 아니갔어?
모두들 : ........... (끄덕인다)
이화룡 : 모두 수고들 했어. 그리고 앞으로는 너희들의 시대야. 오상사하고 맨발....
그들 : 예, 형님.
이화룡 : 앞으로 명동을 잘 지키라우. 명동의 자존심을 말이야... 알간?
그들 : 예...
정팔 : 자, 자... 모두 잔을 듭시다.... 자, 오상사가 건배를 청하지.
오상사 : 예.... (일어서며) 자, 모두들 잔을 듭시다. 우리 명동을 위하여.....
모두들 : 위하여.........
그들 술잔을 부딪힌다. 그런 모습들에서....
해설 : 이른바 황금마차 습격사건. 삼우회의 단합대회가 열리던 그 날 동대문과 서대문, 종로의 연합세력들은 명동을 기습 공격하며 대 혈전을 벌리게 된다. 명동이 관리하는 황금마차라는 유흥업소가 종로 지역에서 개업을 했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삼우회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전면전은 앞서 본 것처럼 명동이 배순의 진을 치고 대항하여 이김으로써 삼우회는 크게 망신을 당하고 끝이 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하여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양대 주먹세력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씬 : 인서트 (서울 거리, 낮)
씬 : 두한의 사무실 외경
씬 : 동 사무실 안
두한과 홍영철이 함께 해 있다. 한쪽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정비서.
정비서 : 아, 예 알겄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예. 그럼 수고하시오... 예, 예.... (끊으면)
두한 : 무슨 전화야?
정비서 : 자유당사입니다.... 저.. 의원님의 탈당계가 수리되었다고 하는구만요.
두한 : 그래.... 그거 잘됐구만...
홍영철 : 탈당계라니요....? 아니, 그럼 자유당에서 나오시는 겁니까?
두한 : 음... 그렇게 됐어. 이제 곧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도 있을 거고... 그럼 나 같은 사람들이 굳이 자유당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지. 진작부터 나오려고 했는데 이제야 해결을 보는구만.
홍영철 : 그럼 앞으로 민주당으로 옮기실 생각이십니까?
두한 : 글쎄... 아직 결정하진 않았지만 그냥 홀가분하게 무소속으로 남았으면 해. 어디에 적을 두건 독재와 싸우면 되는 거 아니겠나?
홍영철 : ............ (끄덕인다)
두한 : 그래, 헌데 오늘 어쩐 일이야?
홍영철 : 아, 예... 다름이 아니라 어제 명동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두한 : 사고.....?
홍영철 : 황금마차라고, 종로 수표교 쪽에 새로 개업한 캬바레가 있는데 말입니다.
정비서 : 아, 거긴 나도 들었지요. 명동이 관리하는 곳 아닙니까?
홍영철 : 그래... 그런데 어제 삼우회 식구들이 단합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습격을 한 모양이더라구요.
두한 : .............?
홍영철 : 저도 말로만 들었는데... 굉장했었던 모양입니다. 부상자도 많이 생겼구요.
두한 : 이런... 거 한참 조용하다 싶더니... 쯧쯧쯧.... 화룡이가 화가 많이 났겠구만.
홍영철 : 그런데 명동 쪽은 별 피해가 없답니다. 삼우회 대원들만 된통 당했다니 뭡니까? 거 명동에 오상사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친구들이 아주 박살을 낸 모양입니다.
두한 : 그래....? 그 친구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지. 체구는 작지만 아주 단단하게 생겼더구만.
홍영철 : 아무튼 이번 일로 이정재 회장 체면이 아주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두한 : (한숨)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지... 주먹세계에서 한 번 당한 건 반드시 갚는 게 원칙이거든. 지금 대통령 선거 때문에 몸을 사리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빚을 갚을 거라구... 언젠가는 말이야...
그런 두한의 깊은 한숨에서....
씬 : 동대문 상인연합회 외경
씬 : 동 회의실 안
이정재와 유지광, 아오마스, 최창수들이 함께 해 있다.
아오마스 : 회장님, 어제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유지광 : 다 밑에 애들을 단속하지 못한 저희들 잘못입니다.
이정재 : 젊은 친구들이 술김에 벌린 일이에요. 아무튼 일단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수습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최창수 : 조만간 병력이 정비되는 대로 명동에 진 빚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정재 : 최창수 오야붕... 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최창수 : 예....?
이정재 : 이번 일은 이걸로 매듭을 짓도록 하세요. 지금 시국에 폭력사건에 여루되어선 곤란합니다. 정부통령 선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아오마스 :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최창수 : 거듭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직 저희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정재 : 물론 여러 오야붕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뺏겨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소?
그들 : 예, 회장님.
이정재 : 모든 힘을 나라를 위한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들 아시겠지요?
그들 : 예, 회장님.
이정재 : 그리고 사돈...?
유지광 : 예, 회장님.
이정재 : 앞으로 우리 삼우회 조직도 모두 선거체제로 돌입할 수 있도록 힘을 써주세요.
유지광 : 예, 회장님.
이정재 : 이제 정부통령 지명대회와 함께 정신 없이 바빠질 겁니다. 우리 동대문이나 삼우회 모두 새로운 각오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각오 말입니다...
그들 : .............. (끄덕인다)
이정재 : 이제 다 왔어요. 선거만 무사히 치뤄나면 앞으로는 승리만 남는 겁니다.
그런 이정재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 인서트
숱한 자유당 대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손을 흔들고 입장하는 이기붕과 자유당 간부들, 그 속에 이정재들의 모습도 보인다. 들끓는 대의원들의 환호성과 피켓들 속에서....
해설 : 자유당의 정부통령 지명대회. 지금까지 두 번 연임으로 다시는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었던 이승만이 사사오입이라는 국회개헌안 억지통과로 재 추대되는 이 전당대회는 1956년 3월 3일 시공관에서 있었다. 이때에 이승만의 나이는 무려 팔십 이세. 예상했던 것처럼 자유당은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을 각각 후보로 추대했다.
계속되는 대회광경들이 보여진다. 사회석에서 자유당 간부가 열렬히 사회를 보는 모습들이 보여진다. 그러나 중앙의 빈 의석 하나, 바로 이승만의 자리다. 당직자들 의아하게 서로를 보며 수군거린다. 이정재들도 그 빈자리를 보며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초조하고 불쾌한 이기붕의 모습에서...
해설 : (계속) 그런데 이 전당대회에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다가올 선거의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를 뽑는 대회장에 당 총재인 이승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씬 : 경무대 이승만의 집무실 밖 복도
곽영주가 걸어오고 있다. 노크와 함께 들어선다. 문이 닫히면...
씬 : 동 집무실 안
초지에 붓글씨를 써가고 있는 이승만이 흘깃 들어서는 곽영주를 본다. 다가와 정중히 절하는 곽영주
곽영주 : 각하... 당에서 당직자들이 찾아뵙겠다고 하옵니다.
이승만 : 당직자들이 왜 여길 오나...?
곽영주 : 이번 지명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엔 각하를 모시고 부통령엔 이기붕 의장이 선출 됐다고 하옵니다.
이승만은 별 반응이 없다.
곽영주 : 각하, 전국의 대의원이 지금 회의장에서 각하를 기다리고들 있사옵니다.
역시 대답이 없다.
곽영주 : 각하께서 멧세지라도 보내주시는 게 어떨지... 의견을 좀 전해 올리라는 당직자들의 의견이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계속 묵묵부답이다.
곽영주 : 각하..........?
이승만 : (그제서야) 부통령에... 이기붕 의장이란 말이지...?
곽영주 : 그렇사옵니다.
이승만 : 쯧쯧쯧..... (한숨) 부통령이란 자리는 참으로 막중한 자리일세....
곽영주 : 예......?
이승만 : 나를... 이번에 자유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고 했는데... 난 지난 번에 얘기했지만 생각이 읎어...
곽영주 : 예...? 아니, 각하......?
이승만 : 내가 초대대통령에 취임한이래 두 번의 임기를 마쳤어. 민주국가에서는 한 사람이 두 번 하면 물러앉고 다른 사람이 해야하는 게야. 더구나 내 나이 여든이 넘었지 않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 대통령이란 자리보다도 나라를 위하는 사람으로만 남고 싶어.
곽영주 : 아니, 하지만 각하......? 온 국민이...?
이승만 : 이보게, 미스타 곽....?
곽영주 : 예.....?
이승만 : 내 이런 뜻을 공보실에 전하고 담화문을 발표하라구 하게.
곽영주 : 각하.......?
그러나 이승만은 초연한 표정이다.
이승만 : 아참... 미스타곽... 이 글이 어떤가...? 오산에 있는 세마사라는 절에서 정자에 현판을 써달라기에 썼는데....
곽영주 : 각하, 아무래도 출마문제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하심이...
이승만 : (엉뚱하다) 이 세마사라는 곳은 권율 장군이 임진난 때 왜군 십만을 물리친 독산성이랑 성안에 있다고 하더군. 왜군을 무찔렀어요, 왜군....
곽영주가 한숨을 내쉰다.
이승만 : 응... 뭘 하나? 어서 나가보게.
곽영주 : 네, 각하.
곽영주가 힘없이 나간다. 그러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이승만.
이승만 : 만송이 부통령을 하겠다고.....? 그리 약해터져가지구는... 부통령이라면 그래도 조병옥이 쯤은 되어야지....
곽영주 : ...........?
그렇게 도리질을 하는 이승만의 표정에서...
이기붕 : (소리) 뭐야...? 어르신께서 불출마를 선언하셨다구....?
씬 : 자유당사 일각
이기붕과 장경근, 자유당 간부와 한백수들이 함께 해 있다.
이기붕 : 아니, 이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장경근 : 허허.... 청천벽력입니다.. 청천벽력...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으신지...?
이기붕 : 나, 이거야 원... 그 연세에 벌써 노망을 하시는 것도 아니실 게고...
간부 : 의장님... 혹시 제스츄어가 아니실까요?
이기붕 : 뭐요? 제스츄여...?
간부 : 생각해 보십시오. 본래 대통령은 두 번 밖에 안 하시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사사오입으로 이걸 바꿔놓았고 또 출마를 하시라고 하니까... 생각은 있으시겠지만 멋쩍기도 하실 게고...
이기붕 : 이봐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지금....?
발끈하는 이기붕. 신경통이 도지는지 뒷목을 주무른다.
한백수 : 의장님.... 듣고 보니 일리는 있습니다.
이기붕 : 아니, 한실장... 자네까지 왜 이러나?
한백수 : 의장님... 본래 우리 한국인의 미덕은 사양하는데 있습니다. 두 번 세 번쯤은 사양을 해놓고..... 한쪽에선 그래도 해주십사 청원을 올리면....?
이기붕 : 청원....?
한백수 : 아, 전국의 민의가 이렇습니다 하고 계속 거국적으로 떠들고 보여드리는 겁니다. 일단 방법이란... 그게 최선책이 아니겠습니까?
장경근 : 거국적으로 들고일어난다.? 그거 괜찮은 방법이구만...
그제서야 이기붕도 이해가 간다는 듯 끄덕인다.
한백수 : 부통령 후보지명을 의장님께서도 절차상 사양을 하십시오. 그리고 정부와 당의 조직을 총동원하는 겁니다.
이기붕 : 부통령 후보를 사양해.. 그리고 모든 힘을 총동원 한다....?
아직도 이기붕은 찜찜하다. 그러면서도 끄덕이는 이기붕의 표정에서...
씬 : 민주당사 외경
씬 : 동 사무실 안
조병옥과 신익희, 장면, 유진산, 김두한이 함께 해 있다.
조병옥 : 이거 참 재미있게 됐습니다. 이박사가 출마를 포기하다니 말입니다.
장면 : 글쎄요...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신익희 : 맞아요. 이박사 발표를 진정으로 믿어선 곤란하지요. 국회부의장 조경규는 벌써부터 이박사가 재출마하도록 민의가 발동되어야 한다고 했다지 않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자유당 쪽에선 이승만과 이기붕이가 다시 똘똘 뭉쳐서 나올 겁니다.
두한 : 이럴수록 야권에서는 더욱 중지를 모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조병옥 : (한숨) 그렇지... 오늘날 자유당이 저렇게 독재를 할 수 있었던 책임은 야당에도 있다고 할 수 있어... 이보게, 옥계?
유진산 : 예, 박사님.
조병옥 : 조봉암씨 일은 좀 알아봤나?
유진산 : 예, 우리 민주당과 계속 협상은 하고 있습니다만... 의견조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쪽에서도 혁신세력들을 계속 끌어들이면서 계속해 우리 쪽에 양보를 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두한 : 외람된 말씀이지만 명분이나 연륜으로 볼 때 죽산 선생님께서 당연히 양보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장면 : 김의원 말이 일리는 있다마는...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야 얼마나 좋겠나?
유진산 : 듣기로는 이미 진보당추진위원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씨를 그리고 부통령에는 박기출 후보를 내정했다고 하더군요.
조병옥 : (자조처럼) 이 중요한 때에 결국 이렇게 갈라지고 마는 건가..? 결국 이렇게.....
조병옥이 답답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런 조병옥을 보는 유진산의 깊은 고뇌에서....
씬 : 동 민주당사 앞
여러 대의 차가 대기해 있다. 시라소니가 경호대원들과 함께 해 있다. 그때 정비서가 시라소니 옆으로 다가온다.
정비서 : 소니 형님...
시라소니 : 음... 정비서구만... 두한 아우랑 같이 왔네?
정비서 : 예, 지금 조박사님하고 함께 계십니다. 어떻게, 경호 일은 할만하십니까?
시라소니 : 뭐 아직 선거가 시작되기 전이라 별 일은 없어. 본격적으로 유세에 들어가면 바빠지겠디... 그건 그렇고 이승만 박사가 출마를 번복했다믄서...?
정비서 : 뭐 그렇다고 하더구만요.. 그 여우같은 노인네 속내야 우리가 알겄습니까? 다 무슨 꿍꿍이가 있겄지요.
시라소니 : 알다가도 모르갔구만... 정말 정티는 알다가도 모르갔어...
그런 시라소니의 표정에서...
씬 : 동대문 상인연합회 외경
씬 : 동 회장실
이정재가 신문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
이정재 : (소리) 각하께서 출마를 거부하셨다... 도대체 그 어른의 의중은 어떤 것일까? 어찌되었든 각하께서 정말 출마를 안 하실 경우 자유당은 물론이고 우리 조직도 엄청난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가... 무슨 생각을.....?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정재.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이정재가 받는다.
이정재 : 네, 동대문입니다... 아, 의장님이 아니십니까...?
이기붕 : (소리) 그래요, 이회장.. 신문 봤지요?
이정재 : 예, 의장님....
이기붕 : (소리) 정말 사태가 매우 어렵게 됐어요.
이정재 : 그럼 각하께서 진심으로 출마를 포기하셨단 말씀입니까?
이기붕 : (소리) 그거야 지금으로써는 누구도 모르지요. 아무튼 지금 자유당은 물론이고 온 정부가 비상이에요, 비상...
이정재 : ............. (한숨)
이기붕 : (소리) 이회장도 잘 알겠지만 각하께서 출마를 하지 않으시면 지금까지 정성 들여 쌓아온 모든 기반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는 겁니다.
이정재 :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이기붕 : (소리) 서둘러야겠어요. 어떻게 하든 각하의 생각을 바꿔놓아야 하지 않겠소?
이정재 :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보겠습니다.
이기붕 : (소리) 그래요... 이회장은 우선 사람들을 최대한 모아보도록 하세요.
이정재 : ..............?
이기붕 : (소리) 그리고 경찰과 협조해서 관제데모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정재 : 관제데모라고 하셨습니까?
이기붕 : (소리) 각 중요 사회단체에 이미 사람들이 파견됐어요. 부산에서는 벌써 궐기대회가 일어났다고 하더구만. 이승만 박사의 삼선출마관철대회라던가....? 아무튼 이회장도 이때에 조직력을 총동원해서 뭔가를 보여줘야 되지 않겠소?
이정재 : (끄덕이며)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이기붕 : (소리) 일단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주축으로 해서 전국의 상인들을 한번 끌어내 보도록 해보세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이정재 : 예, 물론입니다... 예.. 예...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예...
임화수 : (술 따르며) 정말 형님이 아니었으면 이 임화수가 어떻게 감히 각하를 뵐 수 있었겠습니까? 이 나라에 최고 어른이신 각하를 말입니다.
곽영주 : 사람하고는... 앞으로 자네가 정말 장관이 된다면 그때는 매일 지겹도록 뵈야 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임화수 : 장관... 장관... 하하하 그거야 그렇겠죠... 정말 매일 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님 같은 각하를 형님과 함께 모시면서 가족처럼 사는 거 말입니다.
곽영주 : 가족이라...? 하하하... 그거 나쁘지 않구만 그래... 각하께서도 자네가 다녀간 뒤로 얼마나 흡족해 하셨는지 몰라.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애국심과 충성심도 남다르다고 말이야.
임화수 : (다시 울먹이며) 각하께서 정말 그러셨단 말씀입니까? 각하께서....?
곽영주 : 허허.. 이 사람... 또 또.... 아무튼 종종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하지. 간만에 각하께서 웃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더구만.
임화수 : 형님.... 안 그래도 제가 그래서 각하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요즘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곽영주 : ..........?
임화수 : 저.. 한번 보시겠습니까?
임화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곽영주 : (만류하며) 이봐, 임사장... 됐네, 됐어... 그건 다음에 보도록 하고... 오늘은 내 긴히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임화수 : 예...? 하실 말씀이라니요.?
곽영주 : 자네도 신문을 봐서 알겠지만 어르신께서 출마를 거부하셨지 않나?
임화수 : 아니, 그럼 그게 사실이란 말씀입니까?
곽영주 : 그래.. 지금 당정이 총체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일이 쉽지가 않아.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이 각하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겠나?
임화수 : 그래야지요. 허허... 나 이거야 원... 긴가민가했었는데... 각하가 안 계시는 나라를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곽영주 : 급한 대로 자네 조직과 단체를 최대한 동원해 보게.
임화수 : 사람들을 모으란 말씀입니까?
곽영주 : 자네 지난 부산정치파동 때도 해보지 않았나? 자네가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임화수 : 아.. 예....
곽영주 : 일반 사람들보다 연예계가 동원된다면 그 효과나 파장이 엄청나게 클 거란 말일세.
임화수 : 아, 관제데모 말씀이시군요....
곽영주 : ........ (끄덕인다)
임화수 : 아, 그거라면 이 임화수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연예인들 동원하는 거라면 어디 저 따라올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라를 위한 일인데 발벗고 나서야지요.... 관제데모라....? 관제데모.? 해야지요.. 해야하고 말구요.
그런 임화수의 다짐에서...
씬 : 두한의 사무실 외경
두한 : (소리) 온통 난리들이구만.. 난리들이야...
씬 : 동 사무실 안
두한이 신문을 보며 혀를 차고 있다. 정비서가 뒤에 서서 같이 보고 있다.
두한 : 반공단체들이 이승만대통령 삼선출마권유데모를 해...? 부산에서부터 각 지역을 급속히 번지고 있다...? 허 나 이거야 원...
정비서 : 아주 꼴깝들을 떠는구만요. 꼴깝들을 떨어.. 어이구..
두한 : (계속 읽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나이와 나라를 생각해서 이번 출마를 거부했다...?
정비서 : 참말로 기도 안 막히네 그려. 아니 고 여우같은 노인네 심보를 모르고 저런단 말이여...? 차릴 예는 혼자서 다 차리고, 잡을 폼은 있는 대로 다 잡고... 그리고 종국엔 틀림없이 못이기는 척하고 나올 거란 말입니다... 아주 제 눈엔 훤히 보이는구만요.
두한 : (한숨) 누구라서 이걸 모르겠나? 아무튼 그 양반은 정말 정치 9단이야... 정부고 언론이고 아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지 않나?
정비서 : 아이고.. 고런 식으로 정치할 거면 나도 대통령 하겄구만요.
두한 : 어쨌든 지켜보자구... 혹시 알아? 정말 나라를 생각해서 물러날 마음이 있을지 말이야.
정비서 : 아따, 순진하시기도 하셔라... 어디 믿을 게 없어서 노망든 노인네 말을 믿으십니까?
두한은 씁쓸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털보와 휘발유가 들어온다.
털보 : 헤헤헤.... 큰형님.... 저 또 왔습니다....
두한 : 오, 그래...
휘발유 : 휘발유입니다, 큰형님... (뒤에 손짓하며) 아, 뭐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아구 : (뒤따라 들어오며) 큰형님, 안녕하셨습니까? 아굽니다.
두한 : 이야.. 아구, 너 정말 오랜만이다.
정비서 : 뭐여...? 아주 한 부대가 몰려오는구먼...
아구 : 잘 지내셨습니까, 큰형님...?
털보 :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큰형님께서 자주 들리라는 말이 생각나서... 헤헤헤....
두한 : 잘 왔어.... 그래, 아구는 요즘 어떻게 지내...?
아구 : 예, 뭐 저야 죽지 못해 사는 거죠....
두한 : 임마, 무슨 말이 그래? 젊은 놈이...? 밥들은 먹고 다니는 거야?
휘발유 : 뭐... 아직... 큰형님, 식사 안 하셨으면 드시고 오십시오.
두한 : 무슨 소리야? 이렇게들 왔는데 밥 한끼는 같이 먹어야지. 마침 잘됐구만. 나도 막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정비서 : .........?
두한 : 요 밑에 고기집이 있어. 거기 가서 같이들 먹자구...
휘발유 : 허, 이거... 괜히 저희들 때문에....
두한 : 아니야... 마침 나도 오늘 고기 생각이 나더라구... 먼저들 가서 기다리고 있어. 곧 따라갈 테니까...
털보 :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먼저 가있겠습니다.
휘발유와 털보들이 나간다. 정비서는 계속 못마땅한 표정이다. 지갑을 이리저리 뒤지는 두한.
두한 : 이봐, 정비서....? 어디가서 돈 좀 빌려봐.
정비서 : 무슨 돈 말입니까?
두한 : 아우들이 왔는데 밥 한끼는 사줘야 할 거 아니야?
정비서 : 그러길래 돈도 없으시면서 무슨 고기를 사주신다고....
두한 : (난감하다, 그러다 시계를 푼다) 자, 이거....
정비서 : .........?
두한 : 가서 전당포에 맡기고 돈 좀 빌려와..... 아, 어서...?
정비서 : 이걸 말씀입니까...?
두한 :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정비서도 그쪽으로 오라구.
두한이 정비서에게 시계를 건네고 밖으로 나간다. 그런 두한을 보며 한숨을 쉬는 정비서에서...
씬 : 명동 이화룡의 사무실 외경
이화룡 : (소리) 위대한 영도자 이승만 박사의 삼선수락을 기어이 관철시키자....
씬 : 동 사무실 안
이화룡과 정팔, 오상사, 맨발이 함께 해 있다. 이화룡이 보던 신문을 홱 접어치운다.
이화룡 : 기가 막히는구만... 기가 막혀.... 아주 연극이 그럴 듯해.
정팔 : 관제데모 말입니까? 허허허.... 뭐 당연한 수순 아니겠습니까? 조연들은 계속 찬양가를 부르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극적으로 등장만 하면 되는 거지요.
오상사 : 그런 생각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겁니까? 관제데모 말입니다.
정팔 : 이박사 밑에 머리 좋은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다들 대학물은 기본이고 외국유학파들이 줄줄이 있어.
맨발 : 나 이거야 원... 그렇게들 공부해서 고작 쓴다는 머리가...
이화룡 : 에이... 쯧쯧쯧... 아무튼 난 이딴 걸 보면 아주 구역질이 나. 기래서 내가 정티의 정자만 들어도 가까이 안 가는 기야.
정팔 : 잘 생각하셨습니다. 정치 그거 웬만큼 비위 좋은 사람 아니면 힘든 겁니다... 그래서 전 이정재를 볼 때마다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이화룡 : 덩대...? 덩대는 또 왜...?
정팔 : 아, 지방에서 데모를 시작했으면 서울이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이 어떻게 하나?
이화룡들 : ............?
씬 : 이정재의 집 외경
대기해 있는 많은 차들. 그리고 주변을 지키고 있는 동대문의 호위들 위로...
이정재 : (소리)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선거에 우리 동대문의 존폐가 달려 있습니다.
씬 : 동 회의실
가족회의가 열리고 있다. 모든 동대문 식구들이 다 참석해 있다.
이정재 : 또한 이박사께서 출마를 안 하시면 정부는 물론이고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모두들 : ......... (면면이 스쳐간다)
이정재 : 언론을 통해서들 알고 있겠지만 지방에서부터 각하의 삼선출마를 지지하는 데모들이 열리고 있어요. 곧 그 대열은 서울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당은 우리 동대문이 앞장서서 그 데모를 이끌어주길 바라고 있어요. 무슨 말인지 들 아시겠소?
모두들 : 예, 회장님.
이정재 : 나 이정재는 우리 동대문과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이번 이승만 각하의 삼선출마 관철이라는 대업을 완수해야만 합니다. 여기 모인 전 오야붕들도 모든 생업을 중단하고 오직 이번 선거를 위해서 총력을 다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모두들 : 예, 회장님.
이정재 : 사돈....?
유지광 : 예, 회장님.
이정재 : 전에도 말을 했지만 사돈은 삼우회를 기반으로 해서 서대문과 종로 전 지역이 데모에 동차할 수 있도록 힘을 쓰세요.
유지광 : 예, 회장님.
이정재 : 그리고 임사장...?
임화수 : 아, 예, 회장님.
이정재 : 임사장이 앞으로 바빠지겠구만....?
임화수 : 안 그래도 어제 영주 형님을 만났습니다.
이정재 : 그래...? 그럼 특별히 말을 안 해도 되겠구만.
임화수 : 예, 알고 있습니다. 제 힘 닿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이정재 : (끄덕이며) 아마도 임사장 힘이 가장 절실할 거야. 수고 좀 하라구.
임화수 : 예, 회장님. 이번에 뭔가를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정재는 끄덕이며 여러 오야붕들의 면면을 살핀다.
이정재 : 자, 동지 여러분... 임사장 말처럼 이번 기회에 한번 제대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시다. 우리 동대문의 힘 말입니다. 동대문의 힘 말이에요...
단호한 이정재의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서....
씬 : 몽타주
1. 중앙청 앞의 관제데모 자료필름들이 스쳐간다.
2. 경무대 앞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임화수와 눈물들의 모습들..
3. 시청 앞의 관제데모 모습들. 유지광과 별동대원들, 이영숙 부대들의 면면이 보여지면서...
해설 : 이승만 삼선출마를 요구하는 관제데모. 부산에서부터 출발하여 서울로 이어진 이 조작된 민의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들은 애국단체 연합회를 비롯하여 이정재, 임화수의 반공예술단과 상인연합회, 전국노총부인회 그리고 우마차 조합의 소달구지꾼들까지 단체란 단체는 총 동원되었고 이들 중 우마차꾼들의 일인 일당은 당시 돈으로 천환씩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씬 : 시청 앞 혹은 어느 거리
관제데모 대원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플랭카드와 핸드마이크를 들고 외치는 도꾸야마.
도꾸야마 : 이승만 대통령만이 민족숙원인 남북통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불출마를 번의해야 국민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불출마 반대... 불출마반대...
그 소리들.. 따라하는 사람들... 그 한쪽에서 더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손짓하고 부추기는 임화수. 그 옆을 따라붙는 멸치와 쪽박들.
임화수 : 야, 쪽박, 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애들이 이렇게 밖에 안 보여? 누구 얼굴에 똥칠할 참이야?
쪽박 : 일단 각 제작사와 극장에 다 연락을 취해놓았습니다.
임화수 : 나 이거야 어디... 영주 형님에게 왕창 동원하겠다고 큰소리쳐놨는데... 너 말이지.. 오늘 저녁까지 여기 참석 안한 놈들 싹 다 잡아와. 알겠어...?
쪽박 : 예, 사장님.
임화수 : (배우들에게) 더 크게... 더 크게 소리 질러. 더.
배우들 계속 소리지르며 따라하는 모습에서....
씬 :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
사람들로 부산하다. 전화벨소리. 식권을 찍는 사람들. 돈을 세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한쪽에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조열승과 이석재, 유지광들의 바쁜 모습들...
씬 : 경무대 외경
씬 : 동 이승만의 집무실
곽영주가 들어와 읍소하고 있다.
곽영주 : 각하, 자유당에서 당직자들이 한시간 후에 알현을 원한다고 하옵니다.
이승만 : 당직자들이 할 일이 많을 텐데 무엇 때문에..?
곽영주 : 각하... 각하의 삼선출마를 촉구하는 국민의 대표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경무대로 밀려들 오고 있사옵니다.
이승만 : ............
곽영주 : 각하... 잠시 문 박에 나가셔서 귀를 기울려 보시오소서. 수만의 군중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철야농성 중이옵니다.
이승만 : 이보게, 미스타곽...
곽영주 : 예, 각하.
이승만 : 내 듯은 이미 밝힌 바와 같아. 재고해 볼 여지가 없는 거야.
곽영주 : 각하... 삼천만 동포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 주시오소서. 매일처럼 도착하는 각계의 결의문이 십만여 통에 이르옵니다. (봉투를 꺼내며) 그리고 이 혈서를 보시오소서.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혈서를 쓰면서까지 각하의 삼선출마를 바라고 있지 않사옵니까?
이승만 : (보다가 긴 한숨) .............
곽영주 : 각하.......?
이승만 : 이것보라구, 미스타곽...
곽영주 : 예, 각하.
이승만 : 자네는 언제보아도 그 충성심이 대단해. 나는 늘 자네를 볼 때마다 진심 어린 애정을 느끼고 있어요.
곽영주 : 황공하옵니다. 각하.. 오로지 소인에겐 각하 뿐이옵니다.
이승만 : (끄덕이며) 암.. 암.... 하지만 이번 일은 달라. 이미 나는 의지가 확고하게 굳었어... 미스타곽도 그렇게 알고 그만 물러가라구.
곽영주 : 각하.... 아니되옵니다. 이번 출마 일은 한번 더 생각해주시오소서. 각하... 각하...........?
그러나 이승만은 묵묵부답이다. 그런 이승만의 얼굴에서...
씬 : 평화극장 외경
씬 : 동 사장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많은 배우들이 부동자세로 서있다. 잔뜩 불쾌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배우들을 돌아보는 임화수.
임화수 : 이 버릇없는 놈의 새끼들.... 너희들이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오늘 느이들 집합시킨 건 버릇 좀 고쳐주려고 그런 거야...? 이 새끼들 날 뭘로 봤어? 엉?
배우들의 모습도 가지가지다. 정장차림, 분장차림 등등... 한 배우가 기습적인 주먹을 맞고 가발이 떨어져나가고 또 한 배우는 턱을 맞고 뻗는다.
임화수 : 꿇어앉아, 새끼들아....!
모두들 꿇어앉는다.
임화수 : 너희들... 이번 일 말구도 지난번 삼일절 행사에 왜 안 나왔어? 야, 최무룡이, 너 이 새끼..... 얼마나 맞아야 정신차리겠어? 너 오늘 죽어봐라.. 이 새끼.. 엎드려 뻗쳐 이 새끼야... 이 새끼 꿇려....
최무룡 : 사장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임화수 : 옆드려 이 새끼야...
그러자 조직원들이 최무룡을 양팔로 끼고 강제로 엎드리게 한다. 임화수는 미친 듯이 각목으로 팬다. 비명 소리가 계속된다. 그예 나뒹구는 최무룡. 임화수가 각목을 내던지는데 그때 쪽박이 김희갑을 데리고 들어온다.
임화수 : 음... 너 김희갑이... 잘 왔다... 이리와, 이 새끼...
그대로 주먹이 날아간다. 비명과 함께 쓰러지면 다시 일으키는 쪽박들.
임화수 : 너 합죽이 이 새끼.... 죽어야 알겠어?
김희갑 : 아, 왜 이러시는 겁니까?
임화수 : 뭐.. 뭐가 어째...? 너 지난번에 내 작품에 바쁘다고 출연거절 했다면서.? 그리고 이번 소집에 왜 안나왔어...? 뭐? 왜 그래.? 이 새끼야....? (또 주먹을 날린다)
김희갑 : 도대체 왜 때리는 거예요.?
임화수 : 뭐, 뭐...? 뭐가 어째..? 왜 때리는지 맞구 나서 다시 물어봐.
걷어차고 그냥 연타를 날린다. 쓰러진 것을 또 밟는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 악을 쓰며 고통을 호소하는 김희갑. 그러나 임화수는 계속 발길질이다. 그런 임화수의 모습에서 스톱모션이 걸리면서...
해설 : 이른바 김희갑 구타사건. 지금도 연예가의 화젯거리로 남아있는 이 사건은 임화수를 한때 최악의 위기 속에 몰아넣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