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체수필) 불우의 여성 천재조각가 - 카미유 클로델에게

[청다]

불우의 여성 천재조각가 - 카미유 클로델에게

                                                         이 유 식

 카미유 클로델이여, 당신이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어느새 64년이 흘렀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지금부터 50여 년 전 일이었으니 당신이 저 세상으로 떠난 지 십수년이 지나서였답니다. 새파란 젊은 대학시절 문학도로서 말라르메, 장 콕토, 폴 발레리, 포올 클로델을 알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당신의 4살 손아래 동생으로 프랑스 시단의 큰 별이었던 포올 클로델에 관해 공부하면서 당신이 천재 조각가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나는 그 후 당신에 관해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1990년대에 들어와서 당신의 생애를 담은 프랑스 영화 「카미유 클로델」을 보고 비로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뒤 당신에 관한 전기까지도 구입하여 읽어보았답니다. 영화와 전기를 통해 나는 한 남성으로 당신의 기구한 생애에 동정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카미유 클로델이여, 당신과 로댕과의 만남은 참 운명적이구나 싶었습니다. 당신의 나이 20살이던 1885년에 당신은 프랑스 예술가 살롱전에 「젊은 여인상」을 출품했다지요. 이것이 그 당시 최고의 조각가인 로댕의 눈에 띄인 것이 계기가 되어 곧 그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때 로댕은 이미 44살의 중년이었지요. 밤낮 같이 있다 보니 자연 제자에서 연인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그 정황은 쉽게 이해는 될 법합니다. 더욱이 로댕은 한때 자기의 모델이었던 로즈 뵈레와 결혼은 않은 채 20여년간 동거해 온 처지이니 권태도 날만한 시기가 아니었던가요. 로댕이 당신을 만나고 또 당신에게서 젊음의 기(氣)와 예술적 영감까지 얻을 수 있었고 당신 역시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었으니 제자에서 연인으로의 이행은 불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런데 참 운명적이구나 싶은 일이 또 하나 더 있군요. 로즈 뵈레가 로댕을 만났을 때가 20세 였다지요. 그때 당신이 태어났고 다시 이십년 후 로즈처럼 당신이 로댕을 만났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은 삼각관계였으니 어찌 로댕을 향한 당신의 순수한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겠습니까. 숨은 사랑이 아니라 떳떳한 사랑 아니 떳떳한 부부관계까지도 생각해 보았겠지만 로댕이 로즈와의 끈끈한 정을 끊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으며, 그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었겠습니까.

 그리고 카미유 클로델이여, 이런 일들만이 아니지요. 당신은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조각가였다오. 조각예술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라 아무도 여성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던 19세기 후반에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많은 홀대를 받았을게고 또 예술적 가치까지 폄하 당해야 했으니 오죽이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비평가들로부터 무책임한 험담도 들었죠. 당신의 걸작품들이 한때 로댕의 제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로댕의 영감과 충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까지 떠들어댔으니 말입니다. 후일 미술사가들 로부터 당신이 오히려 로댕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당신의 작품이 로댕을 앞서는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그런 험담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았다 싶습니다.

 카미유 클로델이여, 당신의 전기를 읽고 당신의 속사정을 알았을 때 나는 왜 당신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미친 사람과 같은 생활이나 행동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오. 로댕과의 파국으로 차츰차츰 내면세계가 허물어져 갔고 또 작업실을 뛰쳐나와 독자의 삶을 살 때 당신의 작품은 팔리지 않는 대신 로댕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고 미술협회 회장이 되니 더욱 명성을 누리면서 작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데 역으로 당신은 지독한 가난속에서 살아야만 했지 않았나요. 로댕의 이름으로 팔러나간 작품 중에는 당신이 만들어 그가 사인을 했던 것들이 상당 수 있었다니 분통도 터질 법 했겠습니다.

 사회적인 냉대와 가난, 그리고 로댕을 향한 질투, 이런 것들이 드디어 증오와 자학 그리고 광기로 변하다 보니 가혹하게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지요. 1913년 3월 13일, 당신에겐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정신병자 아닌 정신병자 생활을 했다지요. 당신은 멀쩡한 정신으로 당당히 자유를 요구도 했지만 번번이 묵살 당하기만 했고 또 당신에게 도움을 줄만한 로댕은 물론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정의 가족들조차 체면을 내세워 등을 돌렸다 했지요. 참 기구한 운명이요, 기구한 팔자이긴 합니다. 20세에 로댕을 만나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그런 나름으로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싶은데 헤어져 약 15년간은 절망의 시기였다 여겨집니다. 그 후 30년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니 기구한 운명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다른 말을 찾을 도리가 없군요. 당신은 1864년에 태어나 80여세가 되는 1943년 그러니까 내 나이 다섯 살 때 이승을 떠났으니 속설로 고래심줄 같은 끈질긴 목숨의 아이러니를 보는 듯 합니다.

 카미유 클로델이여,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하다 싶은 일이 또 있군요. 당신이 갇힌 지 4년이 지나 당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로즈와 로댕이 53년간의 오랜 동거생활을 끝내고 1917년에 보란 듯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당신의 원한이 미쳤는지 2주일 후 로즈가 그만 폐렴으로 죽고 또 몇 달 안돼 뒤이어 로댕마저 77살에 죽었다지 뭡니까. 그러니까 그들이 저 세상으로 떠나고 당신은 26년이란 세월을 쓸쓸히 또 고통스럽게 살다 간 셈이군요.

 카미유 클로델이여, 이제는 당신의 예술작품에 대해 조금 말하고 싶습니다. 예술가는 때때로 자기 작품 속에 자기의 소망이나 꿈 그리고 미움까지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표현한다지요. 당신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어요. 1981년에 내가 난생 처음으로 파리에 들렸을 때 당신의 여러 작품을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답니다. 당신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하얀 석고상 「사쿤타라」(Sakuntala) 말입니다. 마술에 걸려 눈멀고 말 못하는 여인 사쿤타라가 남편과 재회하는 그 모습에서 로댕과의 사랑에 빠진 당신의 숨결을, 당신의 마음을 읽어 볼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1893년도 작인 「성숙」이란 청동제 작품은 한 남자가 완전히 노파의 수중에 들어가 있고, 젊은 여성은 웅크린채 허공을 향해 양팔을 헛되이 뻗고 있는 조각상이었죠. 이러한 모습은 당신과 로댕과의 관계가 드디어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지요. 젊은 당신을 버리고 늙은 로즈에게 이끌려 가는 로댕에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심정을 애절하게 표현했다지요. 그런가 하면 1899년 살롱전에 출품했던 「인생여정」이란 작품에서는 한 여인이 저승사자로 표현된 로즈에게 끌려가는 로댕을 향하여 팔을 뻗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는 당신이 이젠 로댕을 완전히 잃었음을 표현하고 있었지요.

 카미유 클로델이여,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온갖 쓰라리고 힘든 경험을 다한 당신은 지금 저 세상에서도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지 궁금하답니다. 아니면 살아서 생전에 한때나마 당신이 그렇게도 갈망했던 부부의 연을 로댕과 맺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요. 또 이것도 아니라면 로댕과 로즈가 금실 좋게 살고 있다는 소문이나 들으며 가슴아파하며 한숨만 노상 내쉬고 있는지 어떤지 궁금하답니다.

 카미유 클로델이여, 이 세상에서는 비록 불우한 인생을 살았고 또 당대에는 로댕에게 가려 큰 빛을 보지 못하면서 여성조각가라는 이름 때문에 노상 폄하만 당했지만 당신이 남기고간 작품들은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당신을 통해서 ‘인생은 짧고 예술을 길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언젠가 내 자신도 참 외롭구나 싶을 때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2007년 7월 어느 머릿날 잠오지 않는 밤에

                                                               대치동 청다헌(靑多軒)에서

[淨香]

이유심 선생님 올려주신 "카미유 클로텔에게" 수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초영]

향기나는 멋진 수필에 목을 축이고 다녀갑니다. 청다선생님! 파이팅!!!

[기태엄마]

아아!!! 서간체 수필의 매력에 빠져들고, 글솜씨에 빠져들고, 기구한 카미유 클로텔의 생애에 가슴조리며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수필공부를 하는 저에게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영애 올림

[청다]

댓글을 달아주신 세분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