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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김하인의 모정이라는 산문집을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읽으며 나는 흑- 하고 흐느꼈다. 마지막 장은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선산 아버지 곁에 묻히셨는데 묘비에 새겨진 문구를 소개하며 끝을 맺는데 그 묘비의 문구가 가슴에 깊숙이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구는 이렇다.
우리를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를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해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자식 일동
나에게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이 계신데, 이젠 뼈만 앙상하니 남아서 깃털처럼 가벼운 엄마가 계신데, 아니 뼈조차 다 닳아서 제대로 서 있지도 앉아 있기도 불편하신 엄마가 계신데 나는 얼마나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김하인은 경북 상주에서 오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인 탓에 이미 사십대 중반을 넘어선 그이지만 시종일관 엄마라고 부르며 평생에 걸친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절절히 풀어 놓는다.
선생님과 결혼해서 창문께에 사루비아나 맨드라미 화분을 예쁘게 키우는 게 꿈이었던 엄마, 그러나 정신대를 피해 선본지 한달도 채 안돼 전기기술자인 아버지와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치룬 혼사, 아들 다섯을 낳고, 오로지 자식들을 먹이고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어떤 머슴보다도 더 일에 평생을 묻혀 살아온 고생 뿐인 엄마의 삶.....
엄마는 작가인 막내 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작가는 선뜻 대답을 못했는데 그 이유는 가난과 자식 때문에 고생만 하신 평범한 삶이 그저 모든 엄마들의 평범한 삶일 뿐이라는 고정관념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일상의 고난과 괴로움을 이겨낸 평범한 삶이야말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깨달은 것이다. 엄미의 삶은 이 땅의 모든 여자 혹은 엄마들의 평범한 삶이지만, 작가는 묻는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쳐 살아 오신 평범한 삶이 눈물겨운 감동이고 은혜가 아니라면 세상 어디에서 그런 애틋한 마음을 찾겠느냐고..... 자식에게 젖을 물려주고 밥을 먹게 해 주고 책을 사 주고 먼 외지로 유학을 보내준 엄마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감동적이지 않다면 도대체 그 무엇이 감동적인가하고........
이 책은 2부 12장으로 구성된 산문집으로 이 가을 엄마를 그리워하는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
12가지 이야기 중에 또 한번 눈물을 적시게 한 이야기는 장군 황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초등학교 시절에 집에는 여러 가축을 키웠는데 그 중에 장군 황소는 온 가족이 사랑하던 힘도 세고 덩치도 크지만 더없이 온순한 황소였다.어느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큰 형의 등록금을 위해 장군 황소를 팔게 된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던 황소,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에감한 장군이가 도축장 입구에 들어서자 꿈쩍을 하지 않는다. 장정 여러명이 끌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이 때, 어떤 아저씨가 멀찌기에서 장군이를 바라보고 있던 어린 하인에게 줄을 끌어보라고 한다. 하인은 아버지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장군의 줄을 잡아 당기는데.......순간 하인과 장군의 눈이 마주치고 장군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장군이는 모든 것을 체념 한 듯, 도축장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데...... 짐승과 사람의 경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 날 밤, 아버지는 밤새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하인은 밥도 먹지 못하고 토악질을 하고, 악몽을 꾸고, 엄마는 장군황소의 여물통을 붙잡고 흐느껴 운다...... 하인이 어른이 된 뒤 엄마에게 그날 밤 왜 그렇게 우셨느냐고 물으니, 장군이는 남편과 아들을 하나로 섞어 놓은 것처럼 든든하고 볼 때마다 힘이 나는 소였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왕처럼 군림하던 아버지, 일 할 때는 물론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이지만 남자란 존재는 술이든 잡기든 여자든 무엇으로든 일상의 고통을 잊을 무엇을 만들 줄 알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결코 어느 것에서도 비켜 날 줄 모르고 온전히 온몸으로 삶에 복무하던 어쩌면 미련퉁이인지도 모르겠다.
새처럼 가벼워진 우리 엄마,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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