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季 봉사활동 보고서 봉사부차장 김윤석
1989년 8월 30일 오후 6시기 되어서야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우리 선발대는 봉사활동 지역인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선발대의 수는 5명. 5명으로는 작업량이 벅차리라는 생각과 군청의 지원사항에 걱정을 하며 내려섰다.
우리의 숙소로는 함평군 학교면 학교국민학교로, 군수님의 도움으로 회관에서의 숙소보다 한결 나은 곳을 구한 셈이었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할 이곳은 함평균 학교면 학교2구 이암마을과 학교4구 오동 마을로써 가구수는 각각65가구, 83가구. 주민수는 각기 180명 정도 . 학생수는 유치부 13명, 초등부35명, 중등부 26명이 되는 곳이었다.
마을이 면소재지와 근접하여 있어 보는 눈이 많아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으며, 우리가 도착했을땐 이번 수해와 폭풍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어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잠시 활동 내용을 보자면, 노력봉사는 산지 농로 보수 및 제초작업, 하수도 정리, 마을 청소 및 쓰레기장 정리, 빨래터, 마을 놀이터 만들기 등으로 자세한 것은 아래 그림과 같다.
교육봉사는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를 대상으로 율동, 편지쓰기, 예절등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대민봉사는 영화상영, 경로잔치 및 가축진료, 방역소독 그리고 군수님과 주민들과의 대화시간 마련등이 있었다. 봉사활동 내용과 하루생활은 날짜별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89년 7월31일 (선발대)
봉사활동 첫날이라는 생각으로 6시에 기상하여 8시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두팀으로 나누어 한팀은 군수님, 면장님, 교감선생님을 만나뵙고 여러가지 도움의 부탁 말씀을 드렸고, 다른 한팀은 다시 교내와 교외팀으로 나누어 교내팀은 학교청소 및 전기 배선등을 하였고 교외팀은 땔감과 식당에 필요한 돌 등을 존비하였다. 저녁엔 선후배 간담회를 가진 뒤 잠자리에 들었다.
89년 8월 1일 봉사활동 첫째날
오늘은 드디어 본팀이 오는 날
오전에 작업을 마치고 기다렸지만 오는 도중 차의 고장으로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여 선발대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오후 4시쯤이나 도착하여 바로 입소식과 집정리를 마친 후 Circle 홍보 및 주민현황 파악등의 섭외활동을 가졌다. 저녁에 8시30분부터 조별 친교시간이 있었으나 도중에 주민들의 방문으로 주민들과 대화시간을 가졌다. 주민들로부터는 이암마을의 유래와 부탁말씀을 들었다. 잠자리는 내일의 기대속에서 11시가 되어야 들 수가 있었다.
89년 8월 2일 봉사활동 둘째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5시 30분. "기상"이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89년도 하계봉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 노력봉사로는 이번 수마가 할퀴고 간 제방 공사였다. 제방공사는 흙을 퍼 푸대에 넣어 쌓는 일로 무척 힘들었으나 회원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자세와 마을 주민들과 같이 함으로써 힘들줄도 몰랐고 일의 진척 또한 무척 빨랐다.
여회원들을 주축으로 한 교육봉사는 옆 마을에서까지 오는 바람에 예상외로 학생수가 많아 교육시키느라 비지 땀을 흘렸다. 저녁식사후 오후8:30분부터는 자체 program인 [청봉 퀴즈 아카데미]를 하였는데 회칙, 상식, 넌센스 등 문제가 다양하여 회원들의 일반 상식이나 회의 관심도를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8월 3일 봉사활동 셋째날
오늘도 어김없는 고함소리와 함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였지만 웬지 회원들의 얼굴이 무겁기만 하다. 아무래도 어제의 작업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 몇 명의 환자들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이정도의 고통이 우리들의 정신을 흐리게 할 수는 없었다. 오늘도 다부진 각오로 제방공사를 마무리 하였고 대민봉사로 방역소독을 하였다. 기계가 낡고 조작이 미숙하여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어느 한 곳 빼놓지 않고 구석구석 소독하였다. 제방공사중 이곳에 수해복구하러 오신 4기 정남균 선배님이 방문하셔서 라면, 음료수등을 지원하시고 회원들을 격려하시고 돌아가셨다.
오늘자체 즈로그램은 이심 전심이었는데, 회원들의 그림보다는 이를 설명하는 회원의 기지와 유머어로 한바탕 웃음으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 수가 있었다 .
89년 8월 4일 봉사활동 네째날
갈수록 찌는 듯한 더위는 더해만 갔고 우리의 열정 또한 뜨거워만 갔다. 오늘은 빨래터와 놀이터 만들기를 했는데 빨래터는 개울가의 쌓인 흙을 퍼내고 시멘트로 빨래터를 만드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손수레 2대와 삽이 고작이어서 흙을 파내는 일은 하루 종일 걸렸다. 그리고 옛 공장이었던 터를 놀이터로 개조하기 위해서, 산으로 부터 흙과 자갈을 채취해서 경운기로 운반해 왔으며, 이 운반해 온 흙을 단단하게 다졌다. 또 비가오면 질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배수로 팠는데 땅이 굳어서 파는데 애로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더위와 싸우면 열심히 해준 덕택에 놀이터로써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저녁엔 영화 상영이 있었다. 그러나 통제 미흡과 잦은 고장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89년 8월 5일 봉사활동 다섯째날
기상시간이 30분 늦춰진 탓에 좀더 잘수가 있었지만 일어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픈회원이 많아 군으로 진료를 갔었고 군청에 들려 자갈의 지원과 군수님과의 대화시간들의 부탁 말씀을 드렸다. 노력봉사는 빨래터와 산지 농로 보수등이 주종을 이루었고 모든 것들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자체 프로그램인 청봉공화국 대통령 모의 선거는 기호 1번 획건당(획기적이고 건설적인 당)의 당수 백여시 (본명 백순금)후보가 당선되어 내각까지 발표하였으나, 하기스당의 기호2번 임모(본명 임종수) 회원의 쿠테타로 정권을 빼앗겨 저녁에는 운동장에서 시원하게 (?!!'"" ) 보낼 수가 있었다.
89년 8월 6일 봉사활동 여섭째날
어제의 달밤의 체조(?)가 힘들었던지 회원들의 몸놀림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제 봉사활동도 후반기에 접어 들어 노력봉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교육봉사는 경로잔치및 학예회의 연극, 노래, 허슬등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수의대 선배님을 주축으로 돼지백신접종과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였는데 가축들이 눈치가 빨라 주사기를 뒤에 숨기고 돼지를 잡으로 다니는 헤픈닝도 벌어졌다.
저녁엔 뚝사발배 장기자랑이 있었는데, 사회자 준비 미흡과 출현 준비로 인한 이동인원이 너무 잦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올해도 정봉인의 노래실력과 음치의 대가 끊기지 않았을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이날 큰 사건으로는 85년 음치상을 받은 김모 회원이 이날은 장려상을 수상. 회원들의 의혹과 함께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고, 작년음치상에 이어 올해는 참가 자격 박탈상을 받은 박 모회원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란 말을 남겨 모든회원들이 고개를 갸우뚱. [정말 노래 실력이 있나?] 알 수 없제....
89년 8월 7일 봉사활동 일곱째날
모든 작업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오전에는 빨래터와 농로 보수를 거의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군수님이 방문하시어 대화시간을 가졌다. 군수님은 농학과(전남대)출신으로써 우리를 후배로써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리고, 저녁엔 program 으로 명명식 (名하고 名하니 式자 무식)은 했는데 명명은 평소 그 사람의 행동이 성격, 특징등을 파악하여 별명을 붙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program이다. 명명된 별명은 다음과 같다.
김건욱 (행국이), 이승화 (승화 쉴즈), 심경아(포근이), 박재범 (뽀질이),
성제훈 (성고자), 김대순 (타이슨 김), 이유금 (쓰모질리), 오금주 (오달자),
김영주 (방번대원), 전향랑 (미키), 문정희 오뚜기), 양선희 (청봉시스터즈 주장),
이미자 (만득이), 이용기 (보리텐), 김성수 (트라이 김), 이승호 (골빈스키),
류은정 (싸이코) 하상묵(gentleman), 허 혁 (욕 보), 김미연 (숨숴),
천윤희 (야생마), 박종호 (굼뱅이), 강현주 (부르스 상), 문경미 (삐삐),
김지현 (떨떨이), 백순금 (쌕쌕), 서미란 (병아리), 김은영 (지각생),
안병옥 (살모사), 기영택 (맥가이버), 김윤석 (보들이), 정계열 (부엉이),
김용태 (해결사), 원경환 (흑기사), 임종수 (어린왕자), 엄기두 (오발탄),
양삼기 (기브스 맨), 윤상돈 (제이비라), 서신형 (개구장이), 박미령 (재고),
임형석 (빈대) 41명
89년 8월 8일 봉사활동 여덟째 날
오늘도 어김없이 6시에 기상하여 이제까지 한 봉사활동 (노력봉사)을 마무리하였고, 오후부터는 체육대회와 학예회 준비를 하였다. 저녁에 학예회와 잔치를 가졌는데, 학예회에서는 유치부의 귀여운 율동과 연극, 허슬등으로 주민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마친후 Joint meeting에 들어가 서로가 잘 알 수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89년 8월 9일 마지막 날
8박 9일의 긴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부터 설레이는 마음으로 마니또 게임과 반성회를 가진 후 학교 버스에 올랐다. 교육 봉사담당자들은 학생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기 급했고, 남자회원들은 짐 정리에 바빴다.
이암 마을 주민들은 8박9일의 감사의 정으로 감사패를 마련하였고, 군청의 군수님으로부터는 공로패를 받아 가슴 뿌듯함을 느겼다.
'89 봉사활동은 참으로 뜻깊은 봉사활동이 아니었나 보다
어렵게 봉사활동 지역을 찾아내고, 또, 그곳에 정열을 쏟은 우리 청봉인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현 시대적 상황속에서 순수함을 간직하고 자신의 수양과 더불어 남을 위하는 삶이 되기를... 회원 모두가 힘쓰기를 바라며 봉사활동보고서를 마치고자 한다.
끝으로 무사히 봉사활동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군수님 이하 여러 어르신네들. 그리고 선배님들, 회원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청보 26기가 부회장, 차장단을 맡고 있을 때 입니다. 넘 자랑 스럽습니다. 오랫만에 그때 일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정말 뜻깊은 하계봉사 활동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