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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문 언덕
조 혁 신
모래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멀리 헐벗은 언덕, 초라한 가옥들이 웅크리고 있는 산동네가 황사에 가려 뿌옇다. 초봄의 매운바람이 풍경분식 유리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유리문을 경계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은 그럭저럭 평온해 보인다. 야채장수와 달걀장수가 경쟁이라도 하듯 확성기로 꽥꽥 거위울음 같은 소리를 질러댔으나 소음은 점점 멀어지고 곧 잠잠해졌다.
한기준은 의자에 걸터앉아 유리문 밖 거리를 막연히 쳐다보았다. 화사하게 봄옷을 차려입은 여대생들이 삼삼한 몸매를 뒤뚱거리며 연이어 지나간다.
처음 이 골목에 들어왔을 때 기준은 삭막한 동네 분위기에 적잖게 당황했었다. 동네 여자들의 싸늘한 눈초리. 먼저 인사라도 받아야겠다는 심보로 수탉처럼 목을 곧추 세운 사내들. 불량한 아이들. 하나같이 그들은 기준 부부를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눈빛을 흘기고 있었다. 눈빛만큼이나 송림동 부처산 8번지 사람들과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쓰레기봉투를 왜 남의 집 앞에 놓는 거유. 냄새나게.”
이사 온 첫날부터 송림슈퍼 철수엄마는 제 가게 옆에 쓰레기봉투를 두었다고 까탈을 부렸다. 송림슈퍼 옆 전봇대에 기대어 쓰레기봉투들이 켜켜이 쌓였기에 기준은 무심코 그곳에 쓰레기봉투를 내다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송림슈퍼 여자는 유독 기준만을 몰아세웠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군대는 댕겨왔나?”
“예비군엔 편입됐는가?”
“전입신고는 했나?”
뭐 꼬투리 잡을 게 없나 하는 표정이 역력한 송림복덕방 송영감은 통장 위세를 떨며 생쥐상을 치켜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귀찮게 굴었다.
“일회용품 쓰면 백오십 벌금에 처하는 거 알죠?”
“알켜 줘야 알지.”
협박조로 말하는 구청 직원이 얄미워 퉁명스럽게 대응하기라도 하면, 구청 직원은,
“어디 허가증 좀 봅시다.”
하고 관료적인 말투로 기준을 쏘아 붙였다.
기준이 세든 건물은 무허가 건물이라 음식업 허가증이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배알 꼴리는 일이었지만 기준은 호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구청 직원에게 쥐어주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먹구 살게 없어 하는 짓이니 좀 봐주십쇼.” 하고 얼렁거리며 통사정을 해야 했다.
맘에 차지 않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부처산 언덕은 왜 그렇게 방정맞게 가파르고, 바람은 살이라도 뜯어먹을 듯이 불어대는지 약간 뚱뚱하고 추위를 타는 한기준으로선 이곳이 실로 시베리아 유배지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놈의 동네는 바람두 사람을 닮아 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드남’ 하는 볼멘소리를 기준은 늘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어찌됐든 기준은 이곳 송림동 부처산 8번지에 정을 붙이고 살아야 했다. 이곳 산동네는 그가 신혼살림을 차린 인생의 새로운 출발지였기 때문이다. 비록 두 식구가 겨우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궁색한 단칸방이지만 가게청이 딸린 이곳은 그의 혈거이자 생존 터전이기도 했다.
끼이익.
귀청을 찢는 금속성이 울리고 가게 문이 열렸다. 기준은 이사 온 첫날부터 레일이 찌그러진 여닫이 알루미늄 새시 문을 고쳐야겠다고 되씹곤 했는데 만만찮은 수리비용 때문에 입때껏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어서 옵쇼!”
기준은 입에 밴 소리를 반사적으로 질렀다.
처음 ‘어서 오십시오’ 라는 소리를 지를 때는 낯이 간지럽고, 여간 어색하고 쑥스러웠던 것이 지금은 장삿물 좀 먹었다고 어지간히 익숙해져, 가게 문 열리는 소리만 나면 기준은 탁자에 머리를 박고 낮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서 옵쇼’ ‘안녕히 갑쇼’ 하고 목청을 돋우곤 했다.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손님 같지는 않았다. 풍경분식점을 찾아오는 손님이라야 근처 전문대생 아니면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연령대를 넘어선 사람들은 대개 시비를 걸러오는 사람 아니면, 물건을 팔러 오는 장사치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가게청에 들어온 사람은 술집 포주처럼 보이는 중늙은이 여자였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기준은 경계의 눈빛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의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고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가게청을 휘둘러보기만 했다. 주름살이 거미줄처럼 엉킨 얼굴에 덕지덕지 화장을 하고 입술에 피 칠을 한 듯 시뻘겋게 루주를 바른 중늙이 여자는 단단히 심술궂은 얼굴이다.
‘웬 무식한 여잔가? 예의도 없이.’
속으로 씹어 삼키는 중에도 오늘 하루가 결단코 녹녹치만은 않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가슴 한편에 똬리를 틀었다.
분위기가 심상찮아 기준의 처도 설거지를 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라면 얼마에 파우?”
여자는 가게 안을 대충 둘러보고 나서 기준에게 하는 소린지 기준의 처에게 하는 소린지 따지듯이 물었다.
“예?”
중늙은이 여자는 큰길 버스정류장 앞 송림식당 주인이었다. 한 달 전, 계약기한이 지났다고 세든 사람을 내쫓은 동네에서 성질 고약스럽기로 소문이 난 여자다. 쫓겨난 식당 주인은 이 년 전에 권리금 팔백 만원을 주고 가게에 들어왔는데 생각만큼 장사가 되지 않아 월세나 겨우 내며 근근이 버티다가 계약기한이 지나자 식당에서 손을 털었고, 주인여자가 송림식당을 거저 차지했다는 것을 기준도 귀동냥으로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시침이 뗄 생각 말라구. 여기서 라면을 천 원에 판다고 하던데 뭘.”
여자는 표독이 묻어나는 소리로 쏘아붙였다.
“무슨 소릴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기준은 송림식당 여자가 비록 어머니뻘 되는 연장자이지만 남의 영업집에 와서 다짜고짜 따지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공손히 대답했다.
“그딴 식으로 장사하면 안 돼. 누군 천오백 원에 라면 파는데, 누군 천 원에 팔면 되겠어. 양심두 없이.”
여자의 을러대며 말하는 투가 갈수록 가관이었다. 송림식당 여자는 기준네 부부의 인상이 만만해 보인 터라 더욱 드세게 시비조로 씨부렁댔다.
희한한 경우였다. 분식점 라면 값이 땅값처럼 공시지가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라면을 천오백 원에 팔든 천 원에 팔든 그건 장사꾼이 정하기 나름 아닌가. 기준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생트집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 그런 소릴 듣구 왔는지 모르지만. 우린 라면 천오백 원에 팝니다.”
“허튼 수작 하지 말어! 내 다 알구 왔다구!”
여자는 황금빛 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아주머니도 천 원에 팔면 될 것 아녜요. 우리가 라면을 얼마에 팔든 아주머니가 도대체 무슨 상관예요? 참, 별꼴 다 당하네.”
지금까지 여자의 하는 꼴을 물끄러미 지켜만 보던 기준의 처가 따지듯 쏘아붙였다. 송림식당 여자는 갑자기 드세게 나오는 기준의 처의 태도에 뒤꽁무니를 빼며,
“함께 먹구 사는 처지에 서로간 사정을 봐줘야지. 새댁도 장사를 해서 알 테지만 상거래란 질서란 게 있는 법이구. 상 도리로 치자면 누굴 뺨치구 얼러선 안 되는 법이지. 더군다나 조막만한 동네에서 함께 장사밥 먹는 처지에 물건 값 가지구설랑 장난쳐선 안 돼.”
하고 기세등등했던 태도를 우물우물 누그러뜨렸다.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으니 염려 마시고 돌아가세요. 아주머니야 세월이 한적한지 모르겠지만 우린 지금 장사 준비하느라 바빠요.”
기준의 처는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드러내며 송림식당 여자를 밖으로 내몰았다.
“젠장. 라면을 천 원에 팔든 만 원에 팔든 왜 상관야.”
방금 전까지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찍 소리도 못 내던 기준이 송림식당 여자가 돌아가고 나서야 한마디 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사실 8번지 골목 분식점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말이 대학가 상권이지 장사 형편은 변두리 상권보다 못하면 못했지 눈곱만큼 나을 것이 없었다. 흔히 대학가 하면, 뻘겋고 퍼런 네온 간판이 방정맞게 번쩍이고 술집이다, 밥집이다, 고기집이다 해서 흥청망청 거리는 걸로 기대하겠지만 이곳 8번지 대학가는 사정이 영 딴판이다. 학교가 워낙 외진 산동네 꼭대기에 들어선 데다, 학생 중 다수가 서울에서 통학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송림동 8번지를 썰물처럼 빠져나가 제물포역 앞 유흥가로 몰려들었다. 그러니 8번지 골목은 점심 끼니때에나 밥 한술 뜨러 오는 손님이 있을 뿐,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흥청대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골목에 분식점은 잇달아 들어섰지만 장사가 되는 곳은 두서너 군데에 불과했다. 그래서 분식점마다 제 살 깎아먹기 식으로 천오백 원짜리 라면을 천 원에 팔며 어떻게든 손님을 끌어 보려고 두 눈에 쌍불을 켜는 것이다. 결국 이 집에서 음식 값을 내리면 저 집에서 들고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한판 질펀하게 싸움질을 한다.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정은 부처산에 터를 잡고 학생들 쌈짓돈만을 오매불망 바라보고 사는 부처산 장사치들 간 흔히 있는 다툼이었다.
기준은 담배를 빼 물었다. 아내는 장사 준비를 하느라 밥을 짓고 야채를 다듬고 분주한데 기준은 아침부터 하는 일없이 살이 푸지게 오른 엉덩이를 의자에 뭉그적대면서 유리문 너머만 본다. 기준의 뭉그적거림은 아내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다. 아까 아침에 대판 부부싸움을 벌이고 속이 틀어져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기준의 처도 남편을 무시한 채 장사 준비에만 열중했다. 사납게 칼질을 하는 것은 남편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내가 투덕투덕 칼도마질을 할수록 기준은 ‘그래. 어디 네 맘대로 해봐라.’ 하는 똥배짱으로 밀어붙였다.
기준의 처가 남편에 대해 불평을 갖는 건 남편의 물러터진 성격 때문이었다. 방금 송림식당 여자가 와서 허무맹랑한 시비를 걸고 넘어져도 찍 소리 한마디 못하는 것처럼 남편이란 인간은 팥고물 없이 속에 밀죽만 가득 찬 풀빵 등속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만큼 물렁물렁 했다. 남편 말로는 뭐, 중학교 때까지 씨름을 했대나. 하지만 결혼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남편 한기준은 허우대는 임꺽정 같은 인간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영 허방이었다.
오늘 아침 일만 해도 그랬다. 기껏 장을 봐 오라고 시켰더니 이 인간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는 건지 아니면 인근 시장 장사치들 돈주머니만 배불려주려는 수작인지, 장을 본 물건이란 게 죄다 썩어 문드러진 것 아니면, 그나마 제대로 된 물건은 턱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온 것뿐이었다.
진물이 쭉쭉 흐르는 마늘하며 쓸데없이 한 무더기 안고 온 팔뚝만한 무는 죄다 바람이 들었고, 다섯 근이나 되는 돈가스용 고기는 흐늘흐늘 풀어졌고, 양배추는 속이 텅 비었고, 김밥용 김은 시세 보다 천원을 더 주고 산 건 제쳐두더라도 몇 년을 묵힌 것인지 모르게 빛깔이 불그데데하고 묵은 군내가 풀풀 묻어났다. 장사꾼은 한두 푼에 울고 웃는다고 했는데 오히려 기준은 인근 야채 깡시장 상인들의 봉이었던 셈이다.
“장사를 하자는 거야. 말아먹자는 거야.”
기준의 처는 양배추 통을 바닥에 팽개치며 성깔을 부렸다.
평소 같으면 기준은 아내의 핀잔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 것이다. 헌데 이날 아침, 기준은 이십 킬로 쌀 한 포를 짊어지고 양손에는 야채 보따리를 한 무더기 들고 딴에는 서두른답시고 시장에서부터 가게까지 파발꾼처럼 한달음에 달려와 숨이 씨근벌떡 차오르고 혈압이 잔뜩 오른 상태였다. 그래서 그만 부아통을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발치에 굴러다니는 양배추를 집어 들고, 보란 듯이 재차 패대기쳤다. 양배추는 부엌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누군들 알구 그랬나! 아침부터 이 여자가 정말. 장사꾼들이 주는 대로 받아왔지. 난들 지랄 맞은 무가 속이 바람이 났는지 염병이 났는지 알게 뭐야.”
하고 기준은 아내에게 큰소리를 버럭 질렀던 것이다. 바깥 숙맥이 안에서는 되레 큰소리친다더니 기준이 꼭 그 꼴이었다.
순간, 아내의 울 듯 말 듯 감정이 북받친 표정을 보고 기준은 ‘아뿔싸! 내가 뭘 잘했다구 지랄이지.’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이놈의 여편네 요번 참에 단단히 버릇을 잡아 놔야지. 어디 갈 때까지 가자.’ 하는 심통 맞은 심사로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그러면서 ‘장사구 뭐구 될 대루 되라.’ 하고 지금까지 딴청을 부렸던 것이다. 아내는 기가 죽었는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뭉개진 양배추를 줍고 돌아서서 제 할 일만 말없이 할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마누라란 신혼 초부터 확 드세게 잡아 놔야지.’ 하고 기준은 기가 살아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뒤돌아선 아내가 낮게 훌쩍거리자 기준의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며 조금씩 허물어졌다. ‘사과를 하긴 해야겠는데. 사내 체면에 먼저 말을 꺼내기두 그렇고…….’
점심시간은 한가했다.
한가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세월아 네월아 호시절이지만 기준과 같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의 장사꾼에겐 입술이 마르고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일이었다. 남들은 한참 분주히 일을 하며 알뜰살뜰 돈을 긁어모을 때, 한가롭게 가게청에 죽치고 앉아 담배나 꼬나물고 있다는 건 기준에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가게청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아내와 싸우지만 않았어도 말을 건네 붙여 볼 텐데.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기준은 신문을 벌써 두 번째나 뒤적거리고, 줄담배를 태우며 지루한 시간을 죽였다. ‘내가 왜 장사를 시작해서 이 고생인가’ 하는 후회가 가슴팍에 차올랐다. 그런 낭패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두려움으로 뒤바뀌었다. 폭풍 전야처럼 고요한 시간들. 차라리 시간이 후딱 지나가 밤이 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으면 싶었다. 형편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뭐 그리 죽는시늉이냐고 하겠지만, 기준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혈기왕성한 사내의 알량한 자존심마저도 구겨져 무기력한 피로감에 몸서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시침이 한 시를 가리켰다. 여태껏 밥통엔 밥이 꽉 차 있고, 밑반찬은 말라붙고 있다. 맞은 편 딕시랜드 햄버거 가게와 밀알칼국수 집도 파리를 날리는 눈치였다. 학생들은 새카맣게 내려오는데 이들은 한기준의 풍경분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건너편 아래 영분식으로만 몰려갔다. 풍경분식에 들어오는 손님이라야 영분식에 자리가 들어차 어디로 갈까 기웃거린 끝에 꿩 대신 닭이다 하는 식으로 오는 이들이었다. 그나마 그런 손님들마저도 밀알칼국수 집과 나눠먹는 형편이었다. 어쩌다 손님이 들면, 음식장사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허우대 큰 주인장 한기준을 보고 오던 발걸음을 허정허정 되돌리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이래저래 풍경분식은 파리를 날렸다.
기준은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 공기를 쐬니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담배를 뽑아 물었다. 평소 담배를 자주 피우는 편이 아니었지만 손님이 없는 날은 바짝 타 들어가는 속마음이나 달랠 겸 이렇듯 줄담배를 태우곤 했다. 밀알칼국수 집 여자가 바깥에 나와 윗동네를 기웃거리다가 기준과 눈이 마주쳤다. 칼국수 집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칼국수 집 주인 여자는 윗동네 분식집은 장사가 어떠나, 하고 염탐을 하는 것이리라. 윗동네라야 불과 십오 미터 떨어진 지척이었다. 윗동네 음식장사도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다만 순희 할머니가 운영하는 만나분식점은 학교 정문 앞 길목을 차지하고 있어 목이 좋았고 순희 할머니의 음식 솜씨도 맛깔스런 게 썩 괜찮았다. 때문에 부처산 언덕길 장사치들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형편과 달리 만나분식엔 아침부터 파장할 때까지 손님들이 버글버글 했다.
대학생들 점심시간이 끝나고 중고등학교 점심시간이 된 모양이다. 짧은 머리에 학생들이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고통분담. 가격파괴. 오늘의 특별 메뉴, 쇠고기콩나물비빔밥 이천삼백 원. 웃기고 있네.”
한 떼의 고등학생들이 기준이 가게 유리문에 붙여놓은 메뉴판을 슬쩍 쳐다보며 낄낄대며 지나갔다. 그 메뉴판은 기준이 손님을 끌어볼 요량으로, 제 딴에는 일종의 광고 효과를 기대하고, 형광색지에 매직펜으로 정성스레 써놓은 것이다.
‘애초부터 분식집을 차리는 게 아니었는데……사내놈이 이게 뭔 짓거리란 말이냐!’
기준은 후회한들 흘러간 두만강 옛 노래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속을 태웠다. 기준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푸른 허공을 향해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날려 보냈다.
결혼을 앞둔 작년 겨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딴에는 회사에서 유능한 사원이었다. 헌데 그의 그 물러터진 성격이 그를 실업자의 길로 내몰았다. 그는 회사에서 수입 원목의 입출고를 관리하는 자재 담당였다. 일이란 비교적 간단해서 입출고 원목 수를 서류에 기록하고 도장을 찍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의 직속 상사인 오 과장이 원목 입출고가를 조작해서 뒷돈을 챙기는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오 과장은 기준에게 대학 동문이라는 걸 은근히 내세우며 자신의 비리를 슬쩍 눈감아 달라 요구했다. 기준은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으나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인간적인 유대를 들먹이며 통사정하는 오 과장의 집요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날 그는 오 과장에게 이끌려 단란주점에서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곤 취해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깼을 땐 여관방이었고 그의 양복저고리 속주머니엔 두툼한 봉투가 찔러져 있었다. 결국 한기준은 오과장의 비리에 연루되어 덜컥 해고되었던 것이다.
그런 전후 사정도 모르고, 기준이 분식집을 한다고 했을 때. 그의 장모는,
“한 서방은 뭐 좋은 계획 있는감? 넘들은 들어갈라고 용을 써도 못 들어가는 놈에 직장을 하루아침에 떡하고 때려치우니 원. 사지는 멀쩡해갔고 겨우 한다는 짓거리가 그래 잘난 분식집인가? 넘들이 사위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인자부텀 분식집 사장님이라고 해야겠구먼.”
하고 비아냥거렸다.
송림동 부처산 8번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한기준에 대한 뒷공론은 무성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분식집을 하고는 있지만 한 씨는 가방끈이 꽤 긴 것 같다니깐. 한 씨네 살림방에 가보면 사방을 온통 책으로 병풍을 쳤고, 병풍을 치고도 모자라 책을 베개 삼는다구요. 모르긴 몰라도 한기준 그 사람, 대학시절 운동권에 몸을 담아 감방을 들락거리기도 한 모양이요. 그렇지 않구설랑 배울 만큼 배우고 사지가 멀쩡한 사내가 코딱지만 한 분식집에 틀어박혀 어떻게 마누라 등쳐먹고 살겠냐 이 말이지요.”
치마폭이 넓은 송림슈퍼 철수 엄마가 허튼 소릴 지껄이면 그 소문은 금방 뻥튀기 되어, 한기준 그 사람이 가끔 맹하게 하늘을 쳐다볼 때가 있는데 그건 예전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그런 것이다. 그의 오른쪽 머리에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땜통이 있는데 그건 전기고문을 받은 흔적이라는 식의 뜬소문이 떠돌아다녔다. 부처산 8번지 주민들의 추측대로, 이를테면 한기준은 운동권 학생 출신이긴 했다. 하지만 8번지 주민들이 떠올리는 것처럼 전경을 각목으로 후려치고 거리를 쑥밭으로 만드는 행동파는 아니었다. 여느 386세대의 청춘들처럼 기준도 일종의 낭만파였고 양심세력이었다. 또한 순정파에 불과했다. 부처산 8번지 주민들의 오해와 달리, 그의 살림방에 가득 들어찬 책은 학창시절 문예부에서 활동하던 때에 읽은 소설책 나부랭이였고, 머리에 난 흉터는 학창시절 술에 취해 지하 자취방으로 기어들다 계단에서 굴러 생긴 상처였다. 또한 바깥에 나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건 가게에 손님이 없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기준은 반쯤 탄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며 집주인인 천광교회 이 권사에게 서먹서먹한 인사를 건넸다. 주인 여자는 곁눈질로 기준을 흘겨보더니 대문을 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보름 전부터 기준네 부부를 대하는 주인집 식구들의 태도는 냉랭했다. 주인집과 틀어진 것은 기준이 주점 간판을 올렸을 때부터이다. 그러니까 분식만으로는 별로 벌이가 신통치 않아, 궁여지책으로 저녁에 술이라도 팔아볼 속셈으로 기준은 주점 간판을 올렸던 것이다. 명색이 대학교 앞이고 하니 잘만 하면 푼돈이라도 만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당장 주류상에 전화를 넣어 막걸리와 소주 한 짝을 배달시키고 없는 밑천 탁탁 털어 그릇도 몇 벌 더 장만했다. 그러나 주점 간판을 올린 첫날부터 말썽이 생겼다.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보고 밤늦게 귀가하던 이 권사댁 식구들이 풍경분식에 주점 간판이 걸리고 가게청에서 흔전만전 술판이 벌어진 것을 보고 기겁을 한 것이다.
“한 씨, 있수?”
주인집 여자가 가게 문을 비시시 열고 밖에서 기준을 불렀다. 주인집 여자, 이 권사는 잔뜩 골이 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기준은 손님들이 주문한 두부김치 접시를 아내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술장사를 하면 어떡하우?”
“예?”
“난 말이지 한씨가 분식점을 한다기에 세를 내준 거지. 술 팔아먹으라구 가게를 내 준 게 아니란 말이우.”
이 권사의 치떠진 두 눈에는 분노와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 기준은 주인집 여자의 매서운 눈초리에서 마치 자신과 아내를 악마, 굳이 교회 말씀을 빌자면 사탄 족속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 예. 그게…… 벌이가 영 신통치 않아서…….”
기준은 더듬더듬 말끝을 흐렸다. 그의 얼굴이 절박함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밖을 내다보는 기준의 처도 어리둥절 막막한 얼굴빛을 띠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술을 팔면 되겠어. 그것도 학생들에게.”
기준이 흐리멍덩하게 대답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인집 여자는 벼린 칼로 무를 썰 듯이 또박또박 따지고 들었다.
“고등학생한텐 술 팔지 않고 대학생들에게만 팝니다만. 시끄럽게 굴지 않도록 조심할 테니 아주머니가 사정을 좀 봐주시지요.”
그러나 기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게청에서 술에 취한 학생들이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래를 불러 제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술이 잔뜩 오른 학생 하나가 바깥으로 비실비실 튀어나오며 꾸역꾸역 질펀한 토사물을 길 한가운데에 토해냈다. 주인집 여자는 고개를 돌리며 낯을 찌푸렸다. 기준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사정이고 뭐고 간에. 술장사는 안 되니 그리 아시우.”
주인집 여자는 기준을 매몰차게 닦아세우곤 뒤돌아섰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주인집 여자에게 쫓아가 ‘내가 술장사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예수님도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나눠 마셨다는데. 그 포도주는 술이 아니면 설탕물이냐.’ 하고 대판거리로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기준은 남과 티격태격 다투는 걸 꺼려하는 성격이라 제 속으로만 끓어오르는 부아를 삼켰다. 그러더니 시간이 지나자 기준은 오히려 주인집 이 권사 댁 식구들이 모두 기독교 신자이고 큰아들이 목사이기 때문에 세든 사람이 술장사를 하는 것이 교회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라며, 제 먹고 살 길은 안중에도 없이 주인집 사정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다음날, 기준은 주점 간판을 내렸다. 주점 간판을 내리는 일로 기준은 아내에게 속 빈 인간이라는 소리를 한마디 들어야 했다. 팔다 남은 막걸리와 소주는 기준이 매일 한두 병씩 마셔 지금은 소주 댓 병만이 냉장고 안에 깊숙이 처박혀 있다.
저녁 햇살이 따갑게 가게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내는 장을 보러 밖으로 나갔고, 한기준은 혼자 가게에 남아 설거지를 했다. 아내가 점심상을 차려주지 않아 기준은 지금까지 끼니를 굶어야 했다. 밥통엔 아침에 해놓은 밥이 남아 있었지만 기준은 저녁밥만큼은 아내와 함께 들기로 작정을 했다. 그는 설거지를 끝내고 아내 대신 저녁상을 차려놓을 속셈이었다. 도란도란 밥술을 뜨며 은근슬쩍 아내에게 화해를 신청하면 모질지 못한 아내도 맞장구쳐서 웃어 주리라. 이런저런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끼이익.
“어서 옵쇼.”
한 떼의 고등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오늘은 저녁 장사가 좀 되는 날이구나.’ 모처럼 기준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학생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그들은 돈가스 둘, 라면 둘, 떡볶이 하나를 주문했다. 기준이 혼자서 주문을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찼다. 하지만 그는 마치 라면을 끓이고 돈가스를 튀기는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익숙한 동작으로 주문을 받은 음식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솥을 얹은 화덕에 가스 불을 붙이고 두루치기로 쓸 물을 끓이고, 그릇에 반찬을 담고, 숟가락 젓가락을 손님 머릿수에 맞게 골라놓고,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고, 돈가스 접시를 장식하고, 고기를 튀겨내고, 라면봉투를 뜯어 라면을 냄비에 던져 넣는다. 그의 등줄기와 이마에 흠뻑 땀이 흘렀지만 스스로 대견스러울 정도로 재빠른 동작이었다.
“아저씨, 밥 한 그릇만 더 줘요.”
“그래. 그래.”
학생들은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치우더니 천연덕스럽게 담배를 꼬나물었다.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상소리를 섞어가며 지껄이기 시작했다. 기준은 못 본 척 뒤돌아서서 설거지에 열중했다.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게 못마땅했으나 그들이 손님인 이상 나무랄 수 없었다.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순간 새시 문 열리는 예의 ‘끼이익’ 하는 금속성 소리가 귀청을 후비고, 학생들이 후닥닥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기준이 허겁지겁 뒤쫓아 나갔으나 이미 한발 늦었다. 녀석들은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 도망치고 있었다. 맨 나중의 녀석은 돌아서며 기준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여유를 보였다.
“젠장, 오늘 장사는 글러먹었다!”
기준은 가게청으로 들어와 혼자 신경질을 부리며 빈 그릇을 챙겼다.
기준은 투덜대며 설거지를 했다. 재수 옴 붙은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러나 기준의 오늘 하루의 불행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한참 그릇에 비누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1톤 트럭이 기준의 풍경분식 가게 문을 떡 가로막으며 멈춰 섰다. 기준의 가게 바로 옆 일신중고가전센터 주인 장기팔이라는 사내의 트럭이었다. 기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 달 전부터 장기팔은 기준의 가게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물론 중고 냉장고나 세탁기 따위의 가전제품을 부리려고 잠시 차를 세워 두는 것이지만, 양심이 돼지털끝 만치라도 있다면, 남의 가게 앞에, 그것도 출입문을 가로막고 차를 세우지는 않을 일이었다. 처음 기준은 바빠서 그러겠지 하고 이해를 했다. 그런데 갈수록 장기팔이라는 사내는 눈꼴사납게 굴었다. 한번쯤은 사정이 이래저래 해서 차를 잠시 세우니 이해를 해 달라 양해를 구할 법도 한데 이 자는 기준의 가게 앞이 제 집 앞마당이라도 되는 양 전용 주차장인 양 뻔뻔스럽게 차를 세우곤 했다. ‘내가 맘이 좋아서 참는다.’ 하고 기준은 지금까지 그렇게 참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준의 심사도 그리 편치 않은 형편이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저 무식한 작자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어야겠다 하고 굳게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물론 아침에 아내와 다투지만 않았다면, 고등학생들이 음식 값을 떼먹고 달아나지만 않았다면, 기준은 그냥 속없는 사람처럼 넘어갔을 것이다. 기준은 비눗물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벗고 던지고 마음을 단단히 도슬러 잡아먹고 밖으로 나갔다.
“여보쇼. 차를 대려거든 좀 돌려 대시죠. 남의 가게 문 막지 말고……”
그러나 나갈 때 드잡이라도 한판 하려던 기세와는 달리 막상 기준의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는 모기소리였다.
장기팔은 차문을 열다 말고 마치 명예훼손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너부데데한 얼굴과 추켜올린 어깨는 웬 개새끼가 버릇없이 짖나 하는 식의 거만한 태도가 엿보였다.
“앞으론 차를 대시거든…….”
기준이 한마디 더 꺼내려는 순간, 장기팔은 기준을 한 번 흘기더니,
“좀 전까지는 쪼끔 미안했는데. 그 소릴 들으니 덜 미안한데. 엉.”
기준은 기가 찼다. 미안하면 미안한 것이지. ‘쪼끔’ 미안한 건 뭐고 덜 미안한 건 무어란 말인가. 이 작자가 자신을 깔보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기준은 기분이 잡쳐버렸다. 이런 자들은 사람이 약하게 나오면 더 강짜를 부린다는 걸 기준은 익히 알고 있었다. 막돼먹은 족속들이 하는 수작이란 늘 이런 식이 아닌가. 아니다. 가진 놈 못 가진 놈, 배운 놈 못 배운 놈,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기준도 강하게 뻗대고 나왔다.
“이봐 형씨, 미안하면 미안한 거지. 뭐, 딴 소리야.”
“이 새끼 봐라. 쥐털만 한 놈이 기어오르네.”
장기팔은 팔을 걷어 부치고 다짜고짜 기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 모든 동작이 하나의 동작처럼 일사불란한 게 싸움께나 해본 솜씨였다.
“야 새꺄, 한 번 더 씨부려봐. 엉!”
기준은 숨이 턱 막혔다. 해골문신이 새겨진 사내의 팔뚝은 뜻밖으로 억셌다.
“이거 못 놔!”
“못 논다. 씨펄!”
장기팔은 틀어쥔 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기준은 장기팔의 기세와 징그러운 그의 팔뚝에 낙서하듯 새겨진 해골문신에 주춤했으나, 그깟 문신이야 옛날 소싯적 양아치 시절에나 통하는 이야기이고, 지금은 제 놈도 처자식이 딸린, 그러니까 아무리 꼴통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법치국가에서 법이 얼마나 호되다는 걸 알만하다는 생각에, 까짓 한판 붙어봐야 절구통 엎어놓은 것 같은 놈한테 봉변이나 당하겠냐 싶어,
“어디 쳐라!”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 순간 눈앞이 아찔하고 정신이 어리벙벙한 게 별 몇 개가 보였다. 장기팔의 주먹이 기준의 눈을 강타한 것이다. 기준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장기팔은 연이어 기준의 가슴팍을 걷어차러 황소처럼 돌진했다. 그러나 장기팔의 잇따른 기습 공격은 한기준에게 반격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비록 한기준이 속이 물러터지고 사람 좋은 성격이었지만 공매를 맞고도 허허 웃고 넘길 만큼 싱겁지는 않았다. 게다가 기준은 초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씨름선수로 활약한 바 있어 겉보기와 다르게 몸이 날랬다.
기준은 날아오는 장기팔의 발길질을 한손으로 막고 바깥다리 후리기로 상대를 넘겼다. 실로 오랜만에 써 보는 그의 주특기였다. 장기팔은 뒤로 발랑 나자빠져 한 바퀴 콘크리트 바닥 위를 굴렀다. 이어 눈 깜짝할 사이 기준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기팔의 머리를 겨누고 발을 치켜들었다. 구둣발을 치켜든 바로 그 순간, 기준은 아침에 시장 장사치들에게 속아 물건을 산 것 하며, 물러 터졌다는 아내의 핀잔과, 송림식당 여자의 야료와, 주인집 여자의 냉랭한 얼굴, 음식 값을 떼먹고 달아난 학생 녀석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거기다가 송림동 8번지에 이사 온 날부터 지금까지 그를 괴롭혔던 많은 사람들, 송림슈퍼 여자, 송림복덕방 송영감, 구청 직원 등등이 겁에 질린 장기팔의 얼굴 위에 겹쳐졌다. 기준은 눈을 질끈 감고 장기팔의 얼굴을 세차게 걷어찼다. 발끝에 짜릿한 촉감이 와 닿았고 답답했던 가슴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준과 장기팔은 파출소에 끌려갔다. 한기준의 발길질은 기팔의 이마를 살짝 비껴 기팔의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는 기준 쪽이 더 심한 편이었다. 기준의 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올라 마치 썩은 고등어 껍질 같았다.
“순경 양반. 저 자식, 순 깡패야. 저딴 자식은 몇 년 콩밥 먹여야 한다구.”
파출소에 왔을 때부터, 장기팔은 허리가 아프다는 둥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둥 엄살을 떨며 고소를 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여보세요. 먼저 시비를 건 쪽은 그쪽이라구요. 어디 고소를 할 테면 해봅시다. 오히려 심하게 당한 쪽은 이 사람이라구요.”
기준의 처도 맞고소를 하겠다며 악이 바친 소리로 대들었다. 한기준은 파출소 철제 의자에 몸을 파묻고 고개를 숙인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당직 순경이 소리를 질렀다.
“한기준 씨. 거어, 배울 만치 배운 사람이 함부로 주먹질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기준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고 상처도 크지 않으니 서로 화해합시다. 허허, 이거 원 이웃 간에 서로 몹쓸 짓을 하고 살아서 되겠소.”
통장인 송림복덕방 송 영감이 짐짓 점잔을 빼며 화해를 주선하고 나섰다. 파출소 순경도 고소해 봤자 양쪽 모두 벌금 물고 폭력전과자로 찍히니 합의를 보라고 종용했다. 장기팔은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었으나 사태가 자신에게 별로 유리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언덕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야간부 학생들을 가득 실은 전문대학교 셔틀버스가 좁은 언덕길을 비집으며 기준 부부 옆을 스쳐 지나갔다. 기준과 아내는 말없이 언덕을 올랐다. 동네 여자들과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려나와 기준네 부부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수군거렸다. 기준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한 느낌을 받아 뒤통수가 따가웠다.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측은해서인지 기준의 처는 훌쩍거렸다. 무허가 보신탕가게 박 씨의 막내아들 갑수와 과일가게 길 씨의 큰아들 일남이가 기준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왔다.
“아저씨, 싸움 잘 한다. 장 씨 아저씨는 보통이 아닌데.”
“이 놈들아, 어여 집에 들어가.”
송림복덕방 송 영감이 아이들을 나무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준은 자리를 펴고 드러누웠다. 고달픈 하루였다. 기준은 오늘 하루가 천길만길 꿈만 같았다. 이날 입때껏 누구와 다퉈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마가 씌웠는지 아내에게 성깔을 부리고, 결국에는 사소한 일로 이웃집 사내와 주먹질을 주고받은 것이다.
“얼음찜질 해줄까?”
아내가 물었다.
“됐어.”
“배고프지?”
“아니.”
부부간에 살갑게 말을 나누는 것은 장사를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가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쇼. 한 형, 있소?”
장기팔이었다. 기팔은 가게문턱에 한발을 엉거주춤 걸친 채 서 있었다. 기팔 뒤로 송림복덕방 송영감과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에서 냉면을 파는 하상득 씨가 밤 장막을 비집고 서 있었다. ‘저 자가 또 싸움을 걸려고 하는 수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기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곧, 동네 사람들도 함께 와 있고, 아까 파출소에서 악수까지 하고 서로 통성명을 한 터라 별 일이 없을 것이라 여기고는 가게청으로 내려섰다.
“어쩐 일로?”
기준은 덜퍽지게 부어오른 눈두덩을 멋쩍게 문질렀다.
“술이나 한 잔 함세.”
장기팔은 검정 비닐봉투를 들어 보였다. 쩔렁. 술병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쇼.”
사내들은 가게청 안으로 들어섰다. 기준은 석유난로에 불을 지피고, 송 영감에게 먼저 자릴 권했다. 하상득, 장기팔, 기준이 순서로 자리를 잡고 둘러앉았다. 기준의 처가 간단한 안주거리를 내놓았다. 연이어 소주잔이 돌았다.
“한 형, 보기 보담 단단하던데. 머리털 난 후로 정말 오늘 호되게 임자 만났어.”
“뭘요.”
기준은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송 영감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점잖은 웃음을 띠며 기준에게 물었다.
“잔나비띱니다.”
“그럼, 기팔이가 범띠니 큰 형뻘 되네 그려. 앞으론 이웃 간에 의좋게 지내야지.”
하상득이 거들며 말했다.
“예. 그럼요.”
술자리가 무르익자 데면데면한 사내들의 얼굴에 친근한 웃음이 퍼졌다. 사내들은 잘나갔던 왕년 시절을 한마디씩 끄집어냈다. 송 영감도 젊었을 적 한주먹 했다고 허풍을 떨었다. 기준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술기운이 퍼지고, 송 영감이 먼저 자리를 떴다. 사내들의 허풍은 차츰 넋두리로 바뀌어 갔다. 세상살이는 힘들고, 그래서 술 먹는 거구. 없이 사는 사람은 화풀이 할 데가 없어 애꿎은 연탄재라도 걷어차듯 괜스레 서로를 미워하고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지. 그런데 말이지 정말 사람이 몹쓸 놈이라서 그런 건 아니야. 벌겋게 얼굴을 붉히다가두 쐬주 한 잔 들이키면 쓰렸던 속이 확 풀어져 형님, 아우 하는 거지. 아무렴. 그렇지. 여보게, 노래 한곡 하세. 그럼. 그럼. 얼씨구. 지렁이처럼 꿈틀대다 왕소금 같은 세상살이에 오그라드는 게 우리네 인생이지, 물레방아처럼 돌고 도는 게 인생이지……
기름이 떨어졌는지 석유난로에서 시커먼 그을음이 솟아올랐다. 기준은 불그스름히 타오르는 불꽃을 애꾸눈으로 바라보며 연방 하품을 했다. 꾸벅꾸벅 졸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사내들의 입에서 소주내가 물씬물씬 풍겨왔다. 내일은 오늘 보다 나아지겠지. 기준은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였다. 이윽고 사내들은 탁자에 엎어져 모두 곯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