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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
천연물질과 합성물질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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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정보 (2004/11.12) |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
나일론, 레이온, 데도론(폴리에스터)과 같은 합성 섬유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구 던져도 깨지지 않고 색상이 고운 플라스틱 바가지도 발전의 상징이었다. 불과 40년 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종잡을 수 없는 법이다. 놀라운 특성을 가진 합성물질에 감탄하던 우리가 언젠가부터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면 모두 인체와 환경에 해로운 '화학물질'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자연에서 생산되는 천연물질이라면 무엇이나 인체와 환경에 '안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연물질과 합성물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오해에 대해서 살펴본다.
애매한 구분
과연 무엇이 '천연물질'이고, 무엇이 '합성물질'일까?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코넬 대학교의 로알드 호프만 교수에 따르면, 그 구분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나일론과 레이온은 무조건 합성물질이라고 여기고, 면(綿)은 우리에게 좋은 천연물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면은 지극히 인공적인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서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자와 역시 인공적으로 합성한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재배한 것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천연물질처럼 보이는 면도 사실 오늘날의 농업 관행을 고려해보면 지극히 인공적인 제품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이온(rayon)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든 비단'라는 뜻에서 '인견'(人絹) 또는 '목견'(木絹)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재생셀룰로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레이온은 부드러운 목재에서 얻은 셀룰로스를 섬유 형태로 뽑아낸 것이다. 그야말로 '천연' 셀룰로스를 매우 간단한 화학 공정으로 가공한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성물질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나일론은 실제로는 물과 공기와 석탄 또는 석유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물과 공기는 대표적인 천연물질이고, 석탄이나 석유도 비록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자라던 식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런 모든 과정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나일론이 가장 천연물질에 가까운 것이고, 면은 가장 인공적인 제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호프만 교수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천연물질과 합성물질의 경계는 분명하지도 않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은 지극히 비민주적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에 빠져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자연이 제공해주는 것만을 이용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횟감으로 인기가 높은 '도다리'의 인공적인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광어'와 '도다리'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자연'을 좋아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생산되는 물질은 무엇이거나 그 생산량이 극도로 적다는 것이 특징이다. 천연 의약품을 사용하는 한방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사실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야생 곰의 쓸개를 말린 웅담이나 인적이 드문 산 속에서 자란 산삼이 귀하게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희귀성' 때문이다. 지금도 진짜 '자연산' 한약재는 인공적으로 재배한 것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자연산의 효과가 더 좋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천연물질에 대한 집착은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천연물질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던 과거에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했던 역사적 진실이다. 자연산 의약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의학은 소수의 지배 계층의 독점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위험한 질병에 걸리더라도 효과가 의심스러운 민속 처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누구나 병원과 약국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공적으로 대량 합성한 합성 의약품 때문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유기 농산물이 더 비싼 이유는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이 넉넉하게 되어서 더 비싼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현대인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천연물도 위험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안전하다는 인식은 자연의 기본적인 삶의 법칙을 무시한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자연에는 정말 다양한 생명체들이 함께 살고 있다. 눈으로 볼 수도 없는 박테리아에서부터 시작해서 수없이 다양한 곰팡이와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생태계'이다.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 기본적인 화학물질을 재활용하면서 살아간다. 곰팡이와 식물은 미생물이 분해시켜 놓은 화학물질을 영양분으로 이용해서 열매를 맺고, 동물은 그 열매를 먹이로 사용해서 살아간다. 동물은 먹이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은 것을 배설하고, 그것이 다시 식물이나 곤충의 귀중한 영양분이 되기도 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후손의 번성을 위해서 살아간다. 자연계의 생물이 인간을 위해서 유용한 물질을 스스로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하게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생태계에서 관찰되는 공생(共生)의 지혜는 생물이 다른 생물종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을 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치열한 약육강식의 생존 법칙 속에서 스스로의 생명과 번식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시적인 균형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한 때 초원과 밀림을 누비던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도 이제는 더 지혜로운 인간의 영향력에 굴복하고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이 냉혹한 자연의 현실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물의 생존 전략은 정말 무섭다. 곤충이나 짐승처럼 위험을 피해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식물이 생존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맹독성의 물질을 이용한 '화학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물은 맹독성의 물질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런 물질을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등산을 할 때에는 정체를 알지 못하는 열매나 버섯을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한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생겨난 것이다. 농경이 일반화되지 못한 미개 사회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을 찾아갈 경우에는 반드시 그 지방의 사람들로부터 무엇이 먹을 수 있는 것인가를 배워야만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도 자신의 후손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씨앗을 더 멀리 확산시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생물에게 유용할 수도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바로 그런 물질을 찾아내서 식용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우리가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농작물과 채소와 과일들이 바로 그런 식물들이다. 물론 그런 식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나 땅에서 자라는 것은 몸에 좋다'는 식의 주장만큼 사실과 다른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유기 농산물을 좋아하려면
농사는 근본적으로 지극히 인공적인 것이다. 우선,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서 우리에게 강한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 종(種)을 선택한 후에 육종이라는 방법으로 쉽게 재배해서 더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형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식물이나 짐승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만든 인공적인 논이나 밭에서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문제는 그런 인공적인 농지에서는 자연의 기본 법칙인 화학물질의 재활용이 단절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려면, 농작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인공적으로 공급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풀이나 음식물 찌꺼기에 동물의 배설물을 섞은 후에 미생물로 분해시킨 퇴비(거름)이다. 그러나 퇴비를 통해서 공급해주는 화학물질 중에서 일부는 땅으로 스며들거나 빗물에 씻겨서 바다로 흘러가 버린다. 그런 자연 손실을 제대로 보충해주지 못하면 결국 그 지역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로 바뀌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유기물을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음식물 찌꺼기와 소변까지도 몹시 아까워했던 우리 할아버지들의 옹색함은 사실 체험을 통해서 알아낸 자연에 대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배설물을 수세식 화장실을 통해서 바다로 흘려보내는 오늘날 우리의 관행은 자연의 재활용 법칙을 근본적으로 단절시켜 버리는 것이다. 만약 화학비료를 이용해서 그런 인위적인 손실을 적절하게 보충해주지 못하면 결국 우리 국토는 황무지로 변해버릴 수도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고약한 냄새와 기생충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우리와 가축의 배설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화학비료와 농약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유기 농산물'이 '무공해'라는 잘못된 인식도 과감하게 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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