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크로드(silk road)가 함의하고 있는 바는 단지 비단 교류의 길로서 무역로(貿易路)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의 문화 및 문명 교류의 역동적인 소통이다. 광의적 의미의 실크로드는 BC 8000년 경 충적세에 일어난 인류의 대이동 및 유라시아 대륙의 몇 갈래길로 소급하여 유추할 수 있으며, 정수일, 『씰크로드학』, 서울: 창작과 비평사, 2001.
협의적 의미는 BC 1세기 파르타인이 로마인에게 전해준 신비한 옷감인 중국(세레스)의 비단을 시작으로 이루어진 극동아시아와 유럽사이의 무역거래에서 기록에 남은 최초의 교역상품, 비단의 교역로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BC 750년 경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족의 발현, 한나라의 무제가 서역과의 무역을 중개하던 흉노족의 정벌 계획을 시작으로 경제적 주도권을 직접적으로 관할하고자 하는 열망, 알렉산더가 동방정벌로 연유된 서구문화의 유입 등은 경제적․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실크로드에 놓여진 지역들에서 일어난 조로아스터교, 배화교, 불교 등의 종교와 예술은 그로 인하여 활발한 동서 문명의 교류를 일구어 내게 되었다. 한국과 실크로드의 연관에 있어서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대(북방 유라시아에 기원)가 한반도까지 이루어진 것과 고조선 시대에 북방 유목기마민족문화의 한반도 유입 등의 사실은 정수일, 『문명의 루트-실크로드』, 서울: 효형출판사, 2002, 166쪽-177쪽.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한국과 서역의 관계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음악의 시작을 명징할 수 있는 바는 없으나 그 시작을 종교 및 문화․문명의 창조와 교류 연구로써 추론해보는 것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사고방향일 것이다. 특히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동양문화 전반에 대한 숙고는 그러한 추론의 과정에서 매우 의미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는 한국의 음악학 연구에 좀 더 깊은 관점을 열어주고 일반인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며, 한국의 문화 전반의 체계적인 발전에 있어서 반드시 강조되어야하는 바이다.
2.
한국에서의 음악학 연구는 주로 음악사학적인 연구 및 동아시아음악연구에 집중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 및 기존에 제외되었던 18․19세기의 음악을 포함하여 본격적으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의 음악을 통시적인 시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한국, 중국, 일본의 비교음악연구에 제한되었던 동양음악에 대한 연구는 동북아시아 및 남아시아까지로 확대되어 논의하게 되었다. 한국음악에 대한 수평적․수직적 연구는 필연적으로 동양음악 전체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필요로 하였고 이 과정에서 실크로드에 있는 동양의 많은 지역들의 음악간의 상관성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동양학자에 의한 실크로드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 말 일본의 장택화준(長澤和俊)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 들어서 실크로드와 한국문화의 관계를 미술, 건축, 종교, 음악 분야 등에서 활발하게 논의를 이루어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정수일의 『씰크로드학』(2000)의 발간을 통해서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연계되는 학문적 결집의 필요성을 새삼 각인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올해 9월에 열렸던 아시아 태평양 음악학 학술대회 (전주, 2003)의 주제가 바로 실크로드 음악이었으며 여기에서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남아시아 등을 포함하는 실크로드의 음악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들 나라들에서 보이는 악기간의 동일함 및 상관성 혹은 문헌이나 유적 등에서 남아있는 사적 증명을 단순히 맞대어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들의 학자들과 음악을 직접 접하고 함께 논의함으로써 적극적인 소통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인평의 본 저서는 그러한 적극적인 소통의 과정의 현 단계에서 한국음악학자의 실제 답사 및 음악적 경험을 통해 실크로드의 음악을 저술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3.
전인평의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는 서양음악학자들에 의해서 주로 연구되어왔던 동양음악 전반에 대한 실제 답사 및 연구를 전문적인 지식과 무겁지 않는 기행문체로 서술한 책이다. 특히 서아시아의 영역으로서 동양음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터키 및 아랍지역의 음악을 함께 다룸으로써 이제까지 한국 내에서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등 동아시아로 주로 제한되어왔던 동양음악의 연구 범위를 폭넓게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는 저자가 1985년 인도의 현장 답사를 시작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경험한 음악 전문여행기이다. 그는 중국, 일본, 인도, 네팔,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몽골,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아랍, 그리고 터키의 음악과 문화적 특성에 대한 여행담을 나라별 12 편으로 나누어서 기술하고 있는데, 본래 실크로드를 지칭하는 오아시스로나 초원로 보다는 해로에 중심을 두어서 실크로드 위에 놓인 이들 나라들의 음악과 풍습 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선 중국 편에서는 경극, 초나라의 편종, 리장, 장안, 돈황, 광시, 티베트, 광둥 지역에서 체험한 음악 여행과 관련된 음악사적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경극을 설명하면서는 간단한 전문적 설명과 더불어 영화 패왕별희를 소개하여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점이 돋보였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음악을 ‘낙타 위의 악사상’에서 보이는 비파와 그 음악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중앙아시아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곡경 혹은 직경, 또는 4현 혹은 5현 등으로 구분되는 비파의 종류는 실크로드 루트에 의한 음악 교류를 제시하는 사실들 중 하나인데, 아시아 전역의 음악을 연구하면서 필연적으로 언급해야만 하는 부분이었고 이러한 내용을 본 저서에서는 너무 전문적이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관심을 일반인들로부터 일으키는 데에 적절했다고 본다. 또한 중국의 음악 뿐 아니라 위생습관이라든지 귀신을 쫒아내는 동고춤 등을 소개하면서 음악을 이루는 전통․문화적 특성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짧게 서술된 일본 편에서는 노와 가부키를 그 내용으로 하여 이들 장르에 관한 설명 뿐 아니라 연주자와 나눈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일본 전통음악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한국음악과의 대비를 간단히 서술하였다.
중국과 일본 편에 이어서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네팔에 대한 음악 기행이 나타난다. 인도 편에서는 인도인들의 종교와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소개하면서 북인도와 남인도의 구분을 음악적 비교 보다는 북인도 대표악기인 시타르와 남인도 대표 악기인 비나를 대비하여 설명하였고 벵골지방의 음유시인인 바울 또한 소개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인도의 민속음악이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인도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성악음악을 제외하고 악기를 중심으로 인도음악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인도 음악 악기 중에서 고대 현악기인 비나와 수입․개량 현악기인 시타르를 대비하여서 논의한 것은 매우 적절하였으며, 저자의 답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음악과의 상관 가능성 등을 제기한 것은 한국음악학자 입장에서 인도음악을 바라보는 적극적 시각을 나타낸 것으로 의미있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모헨조다로 유적지가 있는 파키스탄 편은 주로 여행담을 중심으로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주로 서술되어있으며 음악에 관하여서는 수피즘음악인 크발리(qawali)만을 언급하였는데, 현재 파키스탄 음악문화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제시해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파키스탄은 다른 회교권 국가와는 달리 오랜 역사를 인도문화와 연관을 맺어왔던 나라로서 예전에는 인도대륙의 일부였기 때문인데, 이는 1974년 인도로부터 분리된 방글라데시와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1947년 인도대륙으로부터 독립되기 전에는 인도문화를 공유했던 지역으로서 독립이후 파키스탄 내 힌두교인들은 인도로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의 많은 무슬림 인구가 파키스탄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따라서 현재 파키스탄의 인구 대부분이 아프카니스탄 출신이라 할 수 있다. 독립 이전의 파키스탄 음악은 인도 음악(특히 북인도음악)과 동일한 흐름이었지만, 독립 이후 이슬람 법도에 충실하게 임하려는 음악문화적 분위기로 인하여 표면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음악은 크발리일련지 모르지만, 내부적으로는 인도의 전통 음악 및 대중음악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편에서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화려한 도시였던 우즈베크스탄의 사마르칸트, 그리고 부하라, 타슈겐트를 여행하면서 접한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현재 중앙아시아에 있는 고려인(카레이스키)에 대한 언급이라던지 당나라에서 유학생활을 한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에서 등장하는 ‘속독(束毒)’이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란계 민족인 소그드인의 춤을 묘사한 것이라고 『삼국사기』를 인용한 점 등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실크로드 소통로의 선상에 놓는 중요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크로드 전역에 걸쳐서 발견할 수 있는 류트류의 악기를 중앙아시아의 크이약에 관한 설명과 사진을 통해 생각해 보는 것과, 남미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오카리나, 노래극인 ‘마나쉬스’ 등에 대한 설명은 다양한 지역 간의 연계성을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국 농악의 장단이 중앙아시아에서도 발견된다는 점과 양 지역의 놀이 형태가 매우 비슷한 점을 들면서 좀 더 밀접한 관계를 엮어보고자 하였다. 몽고 편에서 또한 야탁과 산조 가야금의 비슷한 점을 제시하고 이 악기들이 몽고에서 먼저 기원했을 가능성과 한국에서 먼저 기원했을 가능성에 대한 가설을 각각 세우고 설명하면서 학문적인 의문에 대한 후속 연구 필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동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들에 이어서 저자는 소위 인도차이나 반도라고 불리우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들 중에서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세 지역의 문화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여기서 제외된 미얀마와 캄보디아는 실제로 실크로드 소통을 나타내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도의 문화를 받아들인 캄보디아의 크메르(Khmer)문화, 그리고 이를 받아들인 미얀마의 음악문화, 그리고 다시 미얀마의 음악문화를 받아들인 태국의 음악 등은 지역 별 독특한 문화적 특성 뿐 아니라 이들 나라간에 공유된 동질성을 시대별․문화전통별로 독자적으로 형성한 문화라고 볼 수 있기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세 지역에 이어서 저자는 마지막으로 아랍 편과 터키 편을 구성하였으며, 아랍편에서는 아랍음악의 장단과 악기를 설명하면서 선율악기인 우드(ud)와 산투르(santur), 그리고 타악기인 다프(daf) 등을 중요시 언급하고 이 지역의 음악적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랍지역을 설명하면서 이란 지역을 아랍으로 포함시켜서 서술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란은 엄격히 말하자면, 파르시(Farsi)언어를 사용하는 페르시아 권으로 분리해야하며, 터키가 아랍어가 아닌 터키어를 사용하기에 정통 아랍권에서는 제외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이슬람권의 용어아래에서는 이란과 터키가 포함될 수는 있으나 이슬람권과 아랍권이라는 용어는 어느 정도 구분되어야하며, 이슬람권 내에서 아랍권과 페르시아권으로 구분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지적해본다.
한편 터키 편에서는 터키의 문화를 실제 현지 답사와 폭넓은 지식으로써 소개하면서 이 지역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은 실제 답사와 경험에 베어 나온 숙련된 서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쉬크(Asik, 음유시인), 세마춤(Sema), 그리고 터키의 군대행진곡 등 특징적인 터키의 음악장르에 관해 설명되어진 바는 한국음악문화와의 비교 뿐 아니라 실크로드 음악에서 제기되는 특징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다양하게 논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였다고 본다.
4.
본 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의 구성방법으로 제시되어있다. 우선 첫 번째는 실크로드에 놓여진 12개 나라들의 대표적 음악장르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 두 번째는 저자의 답사 여행 경험을 가벼운 문체로 이야기하는 여행담, 그리고 마지막은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과 실제 답사경험을 토대로 제시하는 한국음악과 실크로드 음악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즉 12개 나라들의 음악 기행을 기술하면서 음악역사 및 이론을 한 책에서 자세히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에 각 나라 음악의 특징을 전체가 아닌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는 부분 혹은 일반인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표적 음악장르에 관하여 간단한 소개 및 설명을 한 것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몽골의 음악에서는 흐미와 올린도를 중심으로, 일본 편에서는 노와 가부끼, 인도 편에서는 인도의 악기인 시타르와 비나, 파키스탄 편에서는 크발리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어떤 지역의 음악에 대해서 전체적인 개론적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때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그 음악을 이루는 문화와 전통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는 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의 구성방법인 기행문체의 여행담이다. 그리고 한국음악과 실크로드 음악의 관계에 관한 문제들에 관하여 저자 개인적인 의견 및 물음을 던지는 세 번째 구성방법은 본 서가 이론서나 기행문에 머물지 않고 진지하고 창의적인 학자적 사고 방향을 함유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의 『비단길 음악과 한국음악』(중앙대학교 출판부, 1996)과 『아시아음악연구』(중앙대학교 출판부, 2001), 그리고 『실크로드와 한국문화』(서울: 소나무, 2000)와 <객석>에서 연재한 실크로드 음악에 관한 집필과정 등의 오랜 연구 경험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구성방법에 의해 본 서에서 음악기행이라는 형식으로써 안정적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따라서 전인평의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는 한국음악에 대한 논의를 전문적이지만 무겁지 않게 한국과 실크로드, 동양음악 전반으로의 관점으로 확대시켜주었으며 이를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 및 일반인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이질적으로 여기었던 서아시아를 포함한 거대 동양권의 음악을 동서 문명의 소통로를 통한 동질적인 시각으로 숙고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