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학>, 2005년 겨울호.
<대담 원고>
맹문재 : 안녕하세요. 먼저 근황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김종미 : 뭐, 근황이랄 게 있나요? 그냥 잡히지 않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지내고 있죠.
맹문재 : 김 시인께서는 첫 시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랜 시작 끝에 출간하는 시집이어서 남 다른 감회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시집에서 내세우려고 하는 면이나 관심 영역이 있을 것 같은데, 소개를 부탁합니다.
김종미 : 사실 최근 저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등단한 지도 꽤 되고 보니 저의 시에 제 스스로가 좀 물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제가 써온 작품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세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첫 시집이라 가족사나 저의 개인적인 내력 등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고 봅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의 작품 중에서 「생일선물」이 있습니다. 저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창작 동기와 아울러 주제가 궁금하네요.
김종미 : 「생일선물」은 저의 출생기와 관련이 있는 작품입니다 친정엄마가 저를 낳을 때 초산이었는데 아주 힘든 난산이었어요. 머리부터 나와야 할 아이가 엉덩이부터 나온 거지요. 그런 경우 아이가 빠져나올 때 겨드랑이와 턱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데 저는 턱이 걸려버린 거예요. 그때는 병원시설이나 의술이 열악할 때라 시간을 자꾸 끌면 산모와 아기가 다 위험했답니다. 이러다가 안되겠다고 산모라도 살려야겠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가 막힘을 주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 제가 태어 난 거죠. 그런 사연이 있는 친정엄마가 몇 년 전 생일선물로 신발을 사오셨어요. 신어보라고 하는데 그 신발이 약간 작아 발을 애써 밀어 넣는 순간 저의 출생기가 생각났어요. 빡빡한 새 신발이 새삼스레 엄마가 첫 임신한 자궁 같아서 코끝이 찡했죠. 아직도 저는 발이 아픈 엄마의 새신발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맹문재 : 「하루살이 양말」란 작품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김종미 : 저의 하루는 우리 집 남자 셋에게 양말 꺼내주기를 시작하여 양말 수거로 끝낸다고 할 수 있어요. 남자들의 양말은 여자들의 것보다 훨씬 오염되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또 대개는 뒤집어져 있죠. 저는 이 양말들을 매일 뒤집어 세탁하면서 낡아가는 양말에 낡아가는 내 인생을 반추해봅니다. 식구들이 새로 세탁한 양말을 신고 하루를 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데는 그 뒤에 주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있죠.
맹문재 : 이번 시집에서 김 시인이 가장 아끼거나 애정이 들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요? 왜 그런지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네요.
김종미 : 「모노드라마」 연작 중 「소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 이른 나이에 등단한 것도 아닌데 등단하고 나니 저도 참 멋모르고 등단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말하자면 너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등단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글 쓰는데 대해 강한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그래서 등단하고 한 일년 간 통 글을 쓰지 못했어요. 어쩌다 들어오는 청탁도 신인이 당돌하게 거절을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죠. 일년 넘게 내 나름대로의 노력과 고민 끝에 발표한 것이 「모노드라마」 연작인데 그 첫 작품이 「소나기」입니다. 주제가 내 자신이었는데 우선 삶의 변방에서 어슬렁거리는 내 자신을 무대 중앙으로 올려놓고 한번 관찰해보자는 뜻이었죠. 그 때 상당한 반응을 얻었는데 제 시세계의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이라 제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맹문재 : 김 시인께서는 좋은 작품의 기준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김종미 : 무엇보다 잘 읽히는 시를 꼽고 싶습니다. 긴 시든 짧은 시든 한 줄을 읽으면 그 다음 줄이 읽고 싶은 시가 매력이 있다고 봐요. 끝까지 읽고 나면 이미지가 남는 시, 즉 주제가 명징한 시를 저는 좋아해요.
맹문재 : 저는 개인적으로 부산 지역의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마산이나 진해 등에서 활동하는 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만하․차한수․강은교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시지만 최영철, 성선경, 김언희, 정익진, 김형술, 유홍준, 주종환, 이영수, 김언, 김참, 노혜경, 김이듬, 송창우, 장정임, 하선영, 박서영, 조말선 등등 참으로 많은 시인들이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 시인들의 특성이랄까요, 시인들의 근황에 대해서 아는 대로 소개를 해주실 수 있는지요?
김종미 : 제가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별로 아는 시인이 없어 죄송하네요. 정익진, 김언, 김형술, 박서영, 김언희, 유홍준 시인 등과 연락을 주고받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부산은 미술도 그렇지만 문학에서 모더니즘의 경향이 강세죠. 항구도시라 기질이 개방적이고 열정적이고 거칠기 때문에 상상력도 거친 것 같습니다. 그 거칠음 속에 품고 있는 유정함이 부산 시인들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맹문재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의 시단에 대해서, 특히 서울 중심의 시단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김종미 : 요즘은 지방지 출신 시인들의 활동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많다고 해도 손으로 꼽을 정도니 숫자적으론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시인들이 서울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서울에 인구가 많으니까)을 감안한다면 적다고만은 할 수 없겠죠. 서울에 있는 시인들의 숫자가 하도 많다보니 지방 시인들은 사교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우선 안면이 있는 시인의 글을 우선적으로 보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지방 시인들은 정말 눈이 번쩍 띄게 잘 쓰지 않는 한 주목 받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 만큼 발표지면도 확보되지 않구요. 그래도 요즘은 잡지가 많이 생겨서 옛날보단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맹문재 : 근래에 관심 있게 읽은 작품이나 관람한 영화 또는 전시 등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김종미 : 전에는 시집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소설이 참 재미있어요.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나 파울로 코엘료, 아멜리 노통의 소설이 재미있어요. 환상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데도 현실과 괴리되지 않는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영화는 얼마 전에 비디오로 ‘그루미 선데이’를 보았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 예술가의 음악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죠. 그 영화를 보고나서, 자신의 작품을 읽고 누군가가 죽는다면 어떻겠냐고 어느 시인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시인은 영광이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저는 작가로서 그만큼 독자를 감동시킬 작품을 써야 하는데, 그런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이 과연 영광일 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맹문재 :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김종미 : 이제 덕분에 첫 시집을 내게 되었으니 새로운 시세계를 모색해야겠죠. 그동안 바쁜 일도 많았는데 올해로 다 정리될 것 같아 앞으로는 시 작업에 몰두해볼 생각입니다. 첫 시집을 준비해보니 이제야 비로소 시가 보이는 느낌도 들구요. 이제까지는 시가 저에게 위로를 주었지만 앞으로는 제가 시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