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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운 기름과 헬몬의 이슬 (시편 133:1~3)
시편 133편은 3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성경 장이기는 하여도 하나님의 계시된 교훈의 뜻은 헬몬산 같이 높고 구약시대 성직자의 머리에 붓는 보배로운 기름과 같이 보배롭고
거룩한 진리의 향기를 풍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시편 150편중 성전에 올라갈때에 부르는 노래 15편중에 열네번째 있는 축복의 시편이며 본장의 축복은 여호와께서만 주시는 영생의 축복인 것이다. 여기에 교훈된 축복의 상징은 아론의 머리에서 그의 수염으로 그의 수염에서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보배로운 기름과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헬몬의 이슬로서 상징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는 무리는 화평으로 연합하여 동거하는 자라고 하였다. 시편기자가 형제라고 말한 사실의 개념은 부정모혈의 육정의 형제나 또는 동일 민족의
개념의 형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의한
언약안에 있는 형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10에서 사도요한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먼저 기름으로 상징된 특별한 축복과 두 번째 이슬로 상징된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축복이 있다.
1. 보배로운 기름
이 기름은 출30:22~26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지시하신 자료를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제조하여 특별한 장소 곧 하나님의 성소에 보관하고 하나님의 성소의 기구에 발라서 그 기구가 거룩하고 성별된 성구가 되게 하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사람에게 부어 그 사람으로 성별된 임직자가 되게 하는 이름으로서 이 기름을 거룩한 기름 또는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기름에는 두가지의 뜻이 있다. 객관적인 뜻은 성령을 상징한다. 그럴때에는 아론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1)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요 히3:17
(2) 큰 대제사장 히4:14
(3)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히6:20
(4)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게시고 하늘보다 높이 오르신 존귀하신 대제사장이며 히7:26
(5)영원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이시다 히10:12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장은 매일 서서 섬김에 비하여(히10:11) 예수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요 이론의 머리의 기름은 성령의 상징이요(행10:38) 이 성령의 기름이 수염으로 흐르고 옷깃에 흘러 내려서 그를 믿는 모든 성도에게로 흐르게
되는데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오순절 은혜에 믿는자가 참예케 되는 은혜임을 알 수 있다.
예수 앞에 겸손이 무릎을 꿇는 신자는 예수로 말미암아 성령의 은사의 기름을 받는 자이다 기름이 변치 아니함과 같이 성령의 은혜는 변함이 없다. 기름은 향기로운것과 같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긴다(고후2:10).
그리고 이 기름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인증을 받는 이유는 이 기름이 보배롭기 때문이다(사43:4) 또한 이 기름을 받게 될 때 마음이 새로워진다(삼상10:6) 이 기름을 받을때 힘이 나고 기쁨이 넘치게 된다(삼상16:13).
이와 같은 기름의 은혜는 특별한 것이로서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은혜이며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 택하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이 기름의 은혜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될 때에는
성도의 기도에 비유할 수 있다. 출30:22~25에 이 기름의
자료는 다섯가지로 되어 있으니 여기에는 모두 영적인 뜻이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희생을 상징하는 몰약(沒藥)과
힘을 다하는 육계(肉桂)와 순결을 상징하는 창포(菖蒲), 성품을 상징하는 계피(桂皮)와 그리고 정성을 상징하는 감람유(橄欖油)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실 때 이 다섯가지가 완전히 구비된
기도를 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다.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의 첫째 조건이요 계속적 조건인 그의 기도를 배우는 일이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증거도 위의 내용이 들어있는 기도를 하는
것이요 형제의 일치성과 연합성의 증거와 축복받은 향기가
곧 이러한 기도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 헬몬의 이슬
여기 헬몬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땅 북쪽에 있는 헬몬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헬몬 산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요 큰 산으로서 산 중턱 위로부터는 언제나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그 뜻이 희다는 뜻으로 헬몬이라고 부른다.
이 헬몬산은 높고 크고 동함이 없고 변함이 없고 언제나
쳐다 볼때 위압감을 주는 면에서 크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이요 동하지도 변하지도 아니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비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슬에 비유 하였으니 호15:5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라고
하였다.
기름이 변함이 없음에 비하여 이슬은 밤마다 계속하여 내리는 특징이 있다. 이슬이 내림으로 식물의 성장이 있고 결실이 있으며 또한 비가 내리는 결과가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보배로운 기름에 비유하고 다음으로 자연 은혜는 이슬로 비유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동시에 이 자연 은혜도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때에 풍성하게 주어지고 하나님께 범죄시에는 이 은혜가 거두어 지거나 제한되며 장애를 가져오지만 백성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은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자연적 은혜도 그들의 신앙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이슬
본문에 헬몬은 단수이고 시온의 산들은 복수이다 여기에도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헬몬의 이슬은 어디에 내릴까? 시온의 산들에게 내린다. 다시 말하면 이슬과 같이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고 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밤마다 계속적으로 내리는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에 내리는가? 바로 시온의 산들에 내린다. 시온의 어떠한 산들일까?
(1) 성결의 시온산에 내린다
마5:17에 예수님은 산위에 있는 동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시온산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키신 것이요 시온의 개념은 순결과 평화와 사랑과 승리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심령이 시온산과 같이 성결하여질때 헬몬의 이슬이 내리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2) 희생의 갈보리 산에 내리는 것이다.
갈보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다. 이 산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헬몬의 이슬이 죄가 없이 인내로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3) 기도의 감람산에 내린다.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라고 요8:1에 기록되어 있다. 감람산에는 기도하러 가신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려 언제나 가신곳이 감람산이였다. 여기에 가셔서 철야하시며
기도하시고 밤마다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눅21:38에 기록되었고 유명한 겟세마네 골짜기도 이 감람산에 있는 한 골짜기 인 것을 알 수 있다.
(4) 승리의 갈멜산에 은혜의 이슬은 내린다.
왕상18:45에 엘리야 선지자는 이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인과 싸워서 승리하였다. 우리 신앙인의 일생은 전쟁하는 일생이다. 우리 속의 영의 사람이
밖의 육의 사람과 싸우고 세상과 세속으로 더불어 싸우고,
죄악과 거짓종교과 싸워서 승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나님의 이슬이 내리는 사실을 성경이 증명하고 신앙의 간증자들이 증언하고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사실이다.
(5) 말씀의 헷틴산에 축복의 이슬이 내리는 것이다.
마5장에서 7장의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바로 헷틴산에서
하신 것이다. 나는 이 헷틴산을 말씀의 헷틴산이라고 이름지었다. 마5:1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고 제자들이 그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셨을때 입을 열어 축복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호렙산 아래 이르렀을때 하나님이 산에 강림하셔서 말씀하셨고 영적 이스라엘의 시작이되는 제자들에게 산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도 말씀을 받기 위한 합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사55:3에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고 하셨고
눅10:39의 마리야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들었으며 마24:5에 네 제자는 조용히 나아와서 들었으며 출19:4에는
잘 들으라고 말씀하시고 신6:6에는 듣게된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기록하신 말씀을 가지시고 성령으로 말씀하신다 말씀이 임하는 곳에 헬몬의 이슬이 내린다. 헬몬의 이슬이 내리는 심령은 은혜에 젖어있는 심령이 된다. 헬몬의 이슬이 내리는 가정은 사랑으로 열매맺는
가정이 된다. 헬몬의 이슬이 내리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요 결실이 있는 교회가 된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시고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간것과
같이 우리도 나의 생각의 자리를 떠나고 속되고 얽매이는
자리를 떠나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서 신앙의 원리가 되는
말씀을 받고 신앙의 내용이되는 말씀을 받으며 신앙의 결과가 되는 말씀을 받자. 헷틴산의 설교는 마5장에서 7장까지 3장으로 되어있고 5장은 신앙의 원리, 6장은 신앙의 내용, 7장은 신앙의 결과가 되는 말씀을 예수께서 하신 것이다.
4. 여호와께서 거기서 복을 명하셨으니 곧 영생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현세에서 바로 받는자는 그것이
영생으로 이어지고 영생으로 결집되어 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생이라는 말의 또 다른 말은 바로 구원이라는 말이다.
사도요한은 요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마틴 루터는 이 말씀을 가리켜 작은 복음이라고 하였으니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창21:33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장막 곁에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아브라함이 심은 에셀나무는 그 뜻이 시작한다, 번성한다의 뜻이 있으니 아브라함의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어 보낸후의 삶이 바로 영생의 삶에 연결된
시작의 삶이었다고 볼수 있고 영생하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자의 삶은 바로 영생의 후사임을 알 수 있다.
영생을 시간적 차원에서 말할때는 영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전도서 1:2에 전도자는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다 헛된것에 속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도서3:10에서 그는 하나님은 또한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생각하는 생각을
주셨다고 기록하였다 이와같이 영원이라고 하는 것에 만나게 되는 것 혹은 연결하게 됨으로 비로서 ‘때’라고 하는
것은 참 의미를 가져다 준다.
영원이라는 말의 원뜻은 감춘다 또는 감추인다의 의미의
동사로 명사형이며 고로 영원은 ‘때’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 영원에 내가 만나게되는 것 그것과 연관(連貫)을 가지게 됨으로 비로서 ‘때’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때’라고 하는 것이 다만 순환하여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때’가 순환하면서 되풀이 하는 그것이 바로
전도자가 말한 헛되고 헛되고 헛되어 모두 바람을 잡은것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영원이라는 말의 실체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이
영원의 실체로서 영원이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대하여 대답하고 구하며 질문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사람은 비로서 자기가 어떠한 자인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떠한 목적이 있는가, 자신은 어떠한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게 되어 인생을 힘있게
살게되고 기쁨으로 살게 되며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며 이것이 바로 미리 맛을 보게 되는 영생 얻기에 합당한
자의 삶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다(행13:4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