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토1리(엄현, 신기)
<위치 및 환경>
면소재지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의성방면으로 약 9km 지점에 위치한 분토 1리는 엄현과 신기 두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 엄현마을의 안산과, 남쪽으로는 남대천 건너서 안태봉산과 서쪽으로는 수봉산이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다리미봉, 우등산, 선창산으로 둘러싸인 동향 마을이다. 마을앞 남대천에는 국도 5호선의 확장에 따라 교량이 3개나 놓여져 있으며, 남대천을 경계로 하여 의성읍 용연리와 인접하고 있다. 엄현마을은 1640년경 능주목사를 지낸 신열도가 개척하였으며, 그 후 신석호가 단구 서당을 건립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서당의 이름을 따서 마을명칭을 '단구'라고도 하였으며, '엄현'이라고도 불렀다. 엄현은 3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아랫마을과 윗마을 신기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신기마을은 약 150년 전 한집, 두집이 모여 살면서부터 마을을 형성하였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자연부락 3개 마을을 합하여 분토 1리라 개칭하였다. 옛날에는 84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이농현상으로 도시로 이주하고, 지금은 70여 가구에 12개 성씨가 서로 도우며 살고 있다.
<마을 이름(지명 유래)>
마을을 개척한 신열도가 단구(丹丘)라는 이름을 사용한 본동의 토양이 황토점질과 연관되었으리라고 후세인들은 생각되며, 엄현이란 동명은 일제말엽에서 오늘날까지 사용하나 행정구역으로는 분토1리라고 하는데 역시 단구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된다.
○ 분토,분토골 사백 년 전 의성김싸가 너덜에서 이주하여 개척하고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주위에는 아홉 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여, 어떤 지관이 찾아와 구봉 중 봉두산이 봉의 알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어 길조라고 하여 기뻐하였으나, 앞산 갈모봉이 사혈(蛇穴)임을 알고 분함을 토해낸다는 뜻으로 분토(墳吐)라하여 지명으로 전해왔다. 그후 마을이름이 분할 분은 좋지 못하다고 하여 비옥한 흙을 토해내는 동네란 뜻으로 분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엄고개, 새터와 더불어 한동네를 이루고 있다.
○ 범고개, 엄현 : 마을안 고개의 이름을 따서 엄고개, 엄현이라 한다.
○ 새터 시기 : 새로운 터를 개척하였다고 하여 신기라 부르며 새터,새터거리라고도 한다.
○ 갓골재 : 달비봉과 우산등 사이에 있는 골짜기
○ 개사리다리(문사교, 개사교) : 엄현 서남쪽에 있는 다리 (1932.12.31 준공)
○ 개사리 모랭이 : 엄현에서 문흥으로 가는 모퉁이
○ 돌방배미 : 엄고개 남쪽에 있는 논 ○말배미 : 엄고개 남쪽에 있는 논
○ 멍애배미 : 엄고개 동쪽에 있는 논 ○서남목지: 분토에 엄현으로 넘어가는 고개
○ 성유골 : 엄고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성풍지(成豊池) 소리못 ; 분토 동북쪽의 못
○ 장구목지 : 달비봉에 있는 긴 등성이, 장구처럼 생겼음.
○ 큰골못(구봉지) : 분토 동북쪽의 못
○ 호방고 ; 엄고개 남쪽에 있는 논, 호박밭을 개간하였다 함.
<전 설>
♠ 구정자들 안태봉산에서 문흥학교 쪽으로 향한 들을 구정자들 이라 하는데, 50.60년 전까지 논을 갈면 기와 조각 및 토기조각 등이 출토된 것을 보아 이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었지 않느냐(아홉 정자)하는 설이 있고, 인근부락을 길붓, 상문, 하문, 분토, 엄현 등 지역을 살피면 또 일설에는 구정자란 설도 한번쯤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남대천 건너 마을 안산의 형태가 범의 형상을 닮아서 <범머리>라 부르고 있으며, 그 앞에 들을 구정자들이라 하고, 그곳을 <구사리(狗舍里)>또는 개사리라고도 한다. 구정자(狗亭子)라 함은 개가 모여 노는 곳을 의미하며, 개사리는 개들의 집을 뜻하기도 한다. 범의 먹이가 되는 개들이 구정자에서 많이 모여 놀아서 먹이가 풍부하다는 것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항상 풍족하고 넉넉하게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콧등 정산에 묘를 쓰면 마을에 화를 입게 된다는 구전이 있다. 남쪽에는 안태봉산이 있는데 옛날 조문국때 경덕왕의 태실이 있다고 전하며 지금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 가새행사 북쪽에 위치한 달비봉에 매년 7월이면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농악과 가무를 즐기며 한바탕 농사의 풍년도 기원하면서 놀이를 즐겼다. 오늘날의 하계 휴가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 제비혈 신기마을 뒷산 선창산을 제비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부터 마을에는 집집마다 대문이 없어 봄이면 제비들이 날아와서 둥지를 틀곤하였으나, 6.25사변 이후 가옥의 구조개선으로 대문을 달고부터인지 또는 농약피해 등으로 인한 것인지 제비가 오지 않는다.
<주요 지명>
○ 수봉산:엄현마을의 뒷산이다.
○ 선창산:신기마을의 뒷산, 신선이 하강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산이 수려하다.
○ 범머리:남대천 건너 마을의 안산이며, 범의 형태를 닮아서 부르는 이름이다.
안산에 등을 세분하면 첫째가 범머리등, 두 번째가 넓덕등, 주개등, 콧등, 부엉이덤, 꼬리부분에 해당되는 마지막등을 화세방 모퉁이라고 부르고 있다.
○ 금당들(구정자):범머리 앞들을 말하며, 개들이 모여서 놀았다는 구전이 있다.
○ 개사리:구정자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들의 집을 의미한다
○ 다리미봉(달비봉):생긴 모양이 옷을 다리는 다리미 형상을 하여 불러진 명칭이다.
○ 우산배탈(우산등):신기와 엄현마을 사이에 구안국도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등과 형상이 비슷하여 우산등이라 하였다.
○ 엄현지:엄현마을 중앙에 위치하며, 엄현지로 하여금 천수답이 수리 안전답으로 바뀌었고, 농사용 용수 및 화재시 방화수로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엄현지는 몽리면적에 비하여 담수량이 적고 또한 수원이 충분치 못하여, 해마다 한발로 걱정하던 중 지역주민의 힘을 합해서 양수장을 설치하였다.
○ 검단들과 검두보 : 검단이란 이름은 옛날 검단이란 스님이 원당2리 웃골 앞에 보를 막았다고 하여 검단보라 하고 검단들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자랑>
♠ 엄장섭의 효행 엄장섭은 6남매의 장남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친절하며,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이 대단하다. 부모님께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와 더불어 항상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혀드리고, 따뜻한 밥을 정성껏 지어 드리며, 5km나 떨어진 의성읍 경로당까지 모시고 가서 편히 즐기시게 하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한다는 것은 천성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행이라고 본다.
♠열녀 오귀헌의 순정 100여 년 전 구한말 때 양반가문의 신우기와 결혼한 오귀헌은, 결혼한지 3일만에 신랑 신우기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후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신랑을 찾아보았으나, 신우기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양반 가문의 법도 때문에 개가도 못하고 일생을 남편 신우기만을 기다리다 생을 마감하였다. 노년에 남편 형의 아들인 신응기를 양자로 맞이하여 후사를 이었으나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 손으로 신진호, 신경호가 있다.
♠분토와 궁도 공직에 정년퇴직을 한 손태수는 30여 년 전 전남 여수에서 궁도를 배워 대구 궁도회의 총무이사 부사두=회장 교장-사범, 고문등을 역임하고, 그 제자가 백여 명이 된다. 1997년 2월 대구에서 분토에 이주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게속 수련한 궁도를 중지할 수 없어 의성궁도정을 방문하니, 정을 지키는 여인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활을 쏘는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손태수 회장은 과녘도 낡고 지대도 부적하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거주하는 분토에다 궁도장의 설립을 결심하고 동호인을 모집한 바, 박용호,박채희,배영환,오경환 등 십여 명의 동의를 얻어 활과 화살을 무료로 공급하고, 사비로 과녘을 제작 설치함과 동시, 의성읍에 거주하는 김수영을 만나 궁기를 전수하고 추수가 끝나는 추말을 기하여 궁도수련을 개시할 것을 결정하였음은 앞으로 의성궁도의 발전과 분토궁도의 장래가 촉망된다.
<기타놀이>
○ 씨름대회:남대천 냇가에서 매년 단오절에 비봉,팔성, 길천, 문흥, 분토 마을의 장정들이 모여서 개최하였으나, 지금은 청년들의 감소로 하지 않는다.
○ 윷놀이:구정때 마을 공터에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여 놀이를 즐겼다.
○ 널뛰기,그네뛰기:단오절날 마을 3곳에 그네를 매여 놓고 놀이를 즐겼으며, 널뛰기도 함께 하였다.
○ 마당밟기:정월 대보름날 집집마다 농약을 앞세우고 한해의 액귀를 물리치고 기복을 빌었다.
○ 줄다리기:각 가정에서 볏집을 가져와서 새끼를 꼬아서 그 새끼줄을 굵게 다시 꼬아 동과 서로 편을 나누어 힘 겨루기를 하였다.
<유적>
○ 단구서당 : 약 200여 년 전 신석호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 채미헌 :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기 위해 왕산성골에 신적도, 신달도, 신열도 삼현제가 고사리와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지냈으며 그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 단구서원 : 신적도, 신달도, 신열도, 신채 4위분을 배향함
○ 신기 자매회관 : 1962.1.12 신기마을과 서울대 문리과 대학이 자매결연으로 지은 회관 이며 마을 행사에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휴관이다.
○ 분토경로당 : 1960년 엄갑이의 주선으로 건립하였다.
○ 분토교회 : 신차돌이 건립하였다.
○ 군축협축사 : 1980년 군축협에서 건립하였으며 축협직영으로 축사를 운영하였으나 지금 은 빈축사만 남아있다.
○ 분토궁도장 : 1991년 8월 손태수가 자비 부담으로 건립하였으며 엄현안 골짝에 위치하 고 있다(북쪽에서 서쪽방향)
○ 신기구판장 : 1985년 신재순이 개설하였으며, 박팔복에게 양도하여 10년간 운영하다가 폐업하였다.
○ 외춘당 : 1975년에 안성필이 개업하였으며 그후 1987년 도리원으로 이주하였다.
○ 벽오당 : 반남박씨 박용호의 증조부의 묵이다. 휘는 시수
○ 연주매 : 연주매의 위치는 신제만 댁과 신진선 댁 사이에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고 없 다. 옛날에는 축을 이용하여 연주매를 돌려 보리와 벼를 찧어 식생활에 편의를 도모하 였다. 디딜방아보다는 많은 양을 찧을수 있어 편리하고 인력의 소모가 적다.
♠ 채미헌 소재지:봉양면 분토1리 (왕산성골) 설립일:1934년 호계 신적도와 그의 3남인 인재 신채의 고매한 인품과 학행을 기리기 위하여 단구서원 옆자리에 우아한 건축미를 살려 정자를 건립하였다.
● 단구서원 분토1리 골안 엄현에 자리잡고 있는 단구서원은 350여 년 전 능주목사를 지낸 난제 신열도가 이 마을을 개척하고, 그후 신석우라는 선비가 단구서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어 단구라는 지명이 불리어졌다. 그후 정묘, 병자 호란시에 호계 신적도, 난제 신열도 형제의 충의사상과 고계의 아들 인재 신채의 고매한 유학사상을 전승시키기 위하여 1856년 서원으로 건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