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 주간으로 활동
■ 작가 이야기
어슬렁거릴 줄 아는 자의 여유에서 비롯되는 시
이문재는 '도보 고행승'을 꼭 빼어 닮은 시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사막이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고행승의 선(禪)적인 포즈를 흉내내지 않는다. 또한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방랑시인의 음풍농월을 따라 부르는 법도 없다. 오히려 그는 느슨한 산책을 좀처럼 허가하지 않는 도심의 한복판을 걸으며 현실의 풍경을 세세히 돌아 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부분 어슬렁거릴 줄 아는 자의 여유에서 비롯된다.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현대적 삶의 중심에서 그의 시적 모반의 전략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도시를 다음처럼 규정한다. "느림보는/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도시에게 당하고 말지요/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 ―散策詩 3'). 이러한 의식의 배경에는 빠른 것이 미덕이 된 우리 사회의 숨가쁨과 헐떡거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반석(盤石)으로 깔려 있다. 발전을 위한 발전, 그 무한 질주의 급류 속에선 누구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삶의 중요한 가치들은 이런 광(光/狂)적인 스피드에 휘말려 그 흔적을 감추기 십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속도 숭배의 폐해와 위험성에 제동을 걸고, "게으른 사람은 힘이 세다/아프도록 게을러져야 한다//…/게으른 사람만이 볼 수 있다"('게으른 사람은 아름답다')고 당당히 말한다. 전진만 있고 역진(逆進)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그 직핍한 세상을 천천히 에둘러가며 속도의 에스터시에 파묻혀 있던 삶의 진실과 실상을 찬찬히 끄집어낸다. 우리들은 지금 아주 아주 바쁘게, 지나치게 조급하게, 너무나도 조바심치며 앞으로, 앞으로만 줄달음질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시인의 말대로 '경부고속도로'에서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로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어디 한 곳, 오랫동안 편안하게 눈맞춤 할 곳이 없다. 모든 것이 변화면서 질주한다. 지속이 없다. 순간적으로 지지고 볶는다. 식은 땀을 흘리며 이리 저리 뛴다.
그래서 "깜빡거리는 것들은, 위험하다/엘리베이터 표시등, 병원 약국의 번호판/횡단보도 신호등, 카드공중전화의/액정화면, 컴퓨터 커셔……/이것들이 무시로 깜빡거리며/기다림, 기다림인 것을 변질시켜버린다"('저 깜빡이는 것들'). 실로 끔찍한 세상이다. 우리가 이문재 시인의 조금은 헐겁고 느슨한 사색의 소롯길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다림'의 시학과 '느림'의 미학으로 구축된 그의 시의 풍요로움이 가만히, 여유 있는 보폭으로 다가온다. (류신/문학평론가)
■ 대표작
『산책시편』 | 민음사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 문학동네
『마음의 오지』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