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유명한 역사인물을 많이 배출했지만 산둥은 좀 더 특이하다. 이 지역 출신들은 이름 끝에 '자(子)'를 달고 있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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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명칭 끝에 붙는 '자'라는 글자는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 주어지는 높임말이다. 즉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말이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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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교의 시조인 공자가 산둥성 출신이다. 그 뒤를 이어 맹자(孟子).순자(荀子).묵자(墨子).손자(孫子)등 춘추전국시대 이름을 떨쳤고
이후의 중국 사상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던 사람들이 모두 공자와 동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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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이 아니다. 중국 역대 최고 재상이라는 제갈공명, 날과 끌.톱 등을 만들어 중국 목수(木手)의 시조로 불리는 노반(魯班)등도 이 지역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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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제로(齊魯:춘추전국시대의 산둥성을 일컫는 말)에서는 성인(聖人) 아니면 천하제일의 고수가 나온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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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동쪽은 본래 우리 민족인 동이족이 살던 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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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우천왕 때 "해동산북(海東山北)이 천왕관경(天王管境)"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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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해동이라는 것은 "바이칼해의 동쪽"을 말하는 것이고, 산북이라는 것은
"회계산"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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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바이칼호의 동쪽과 절강성에 있는 회계산의 북쪽은 다 천왕의 영토다 이런 말이다. 알고 보면 사실은 중국의 영토가 다 우리 영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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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사람들의 기질도 별나다.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호지』의 무대가 이곳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1백8명의 두령 하나하나가 강직하거나, 성질이 불같지 않으면 하나같이 '사고'치는 인물들이다. 자질구레한 것은 신경 쓰지 않으며 직선적이고 호방하며, 돈보다는 명분과 의리에 충실한 사람들. 산둥인들의 성격을 개괄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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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산둥성 성도(省都)인 지난(濟南)시 난먼다제(南門大街)에서 국수와 만두탕을 파는 노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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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난 뒤 "얼마냐"고 물었다. 나이 50이 될까말까한 아주머니는 "1위안(약 1백60원)"이라고 대답했다. 국수와
함께 파는 만두탕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역시 "1위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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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가 양이 훨씬 많아 보이는데 어떻게 값이 같을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주인장은 "계산하기 좋으니까"라고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양이 그만 물어보라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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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대학 양두안즈(楊端志)교수는 "산둥성은 중국문명의 커다란
특징인 유교문화의 발원지이자 다른 어느 지역에 비해 유가의 가르침이 성행했던 곳"이라며 "원래의 사람들 성격이 그러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전해진 유가의 가르침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 지역의 민풍(民風)은 인문적이며 사람들 성격 또한 정직하고 호방하며 직선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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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둥성의 문화에는 춘추전국 시대 산둥성 동북쪽을 차지했던 제(齊)나라와 서남쪽 노(魯)나라의 두 가지 배경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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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대학 중문과 텅셴후이교수는 "제는 춘추전국시대 5대 강국의 하나로 일찍이 상업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공리주의적인 문화를 꽃피웠다"며 "이에 비해 유교가 발원한 노나라는 줄곧 봉건과 종법질서를 중요시하는 완고한 유가문화가 핵심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맹자와 순자의 차이가 그렇다. 노나라 출신인 맹자에게서는 사람의 성이 근본적으로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이 나왔고 제나라 출신인 순자에게서는 그 반대인 '성악설(性惡說)'이 나왔다. 두 사람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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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른 지역의 중국인들이 산둥성 사람들을 평가하는 말은 대개 일치한다."돈후하며 질박한 옛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산둥인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는 달리 생파와 생마늘을 즐겨 먹으며 남과 시비가 벌어지면
몇 마디 지나지 않아 주먹부터 뻗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방 연극에서도 이러한 성격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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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대학에서 민속학을 연구하는 리완펑(李萬鵬)교수는 "베이징(北京)의 경극(京劇)이 귀족적인 분위기이고 저장성 등지의 월극(越劇)이
문인의 분위기로 부드러운 데 비해 산둥성의 지방극(山東快書)은 매우 직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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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수호지』 무송(武松)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을 보면 이런저런 반주를 모두 생략한 채 바로 무송이 호랑이를 때려 죽이는 대목부터 노래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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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산둥성에 남성의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꼽히는 송(宋)대 이청조(李淸照)는 산둥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다. 요즘 사람으로는 여배우 궁리가 있는데 그녀의 강인하고 곧은 이미지는 산둥사람들의 기질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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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의 운해, 중국 산동성에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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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제나라를 세운 강태공(姜太公)과 공자.맹자.순자를 거쳐 제갈공명, 양산박의 숱한 두목들, 송대 강렬한 애국시를 남겼던 신기질(辛棄疾), 명대 용장(勇將) 척계광(戚繼光)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산둥사람들의 근원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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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학자들 대부분은 산둥이 고대 동이족(東夷族)의 발원지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산둥의 문화, 즉 춘추전국 시대의 제로(齊魯)문화는 기원전 2400~1900년께 지금의 산둥성 지역에서 발달한 용산(龍山)문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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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대학 양두안즈 교수는 "용산문화는 서북에서 발전한 화하(華夏)계통의 한족(漢族)문화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라며 "현재 많은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종합하면 산둥성의 용산문화는 동이의 계통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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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인들은 중국 내에서 가장 한국인과 닮은 사람들이라는 평이 많다. 기질적인 특성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또한 중국 한(漢)대부터
'동이'라 불렸던 경험이 있다. 한국에 정착한 화교들 대부분도 산둥출신이다. 어쨌든 한국사람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산둥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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