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정섭형(교대2회)은 지난 12월 12일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고 우리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정섭형은 훌쩍한 키(185cm)에 건장한 체격의 거구에 속했으나 정섭형은 언제나 우리 후배들에게 다정다감한 형 이었습니다. 형은 무엇이든 후배들에게 베풀어주려고 하는 가슴이 매우 따뜻한 선배로 통했고, 동기들에게는 후덕한 인정 넘치는 친구로- 선배님들에게는 예의 바르고 성실한 후배로 인정받고 살아오신 좋은 형이었습니다.
경남에는 교대2회 동문들만 50여명이나 계시지요 교대 2회 선배들은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 몇분(여)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교육장, 장학관, 전문직을 거쳐 교장으로 경남교육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왔고 현재도 학교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섭형도 대부분의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40대 초반에 교감(5년), 전문직(7년)를 거쳐 교장(8년)을 마치고 남은 임기를 교단에서 원로교사로 재직하고 계시다가 불치의 병(간암)을 이기지 못하시고 일찍이 우리들의 곁을 떠나시게 되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통탄해 마지않을 수 없습니다.
정섭형이 우리들의 곁을 떠나시던 날 생전의 형을 잊지 못하는 후배동문과 동기분들, 그리고 많은 선배님들이 참석하셔서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김정섭-.
인간사를 논하면 누구나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 왔노라고 말합니다. 정섭형의 일생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정섭형은 고향이 진주 진양군인데도 불구하고 남도 거제의 풍광과 인심 그리고 동문(거제에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많음)들이 좋아 거제를 고향 삼아 거제를 자랑삼아 영원히 살겠노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 왔지요.
교사시절-
1972년 유난히 춥던 겨울 어느 날 밤 마산 월영초등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아서 늦게까지 아이들 연습을 시키고 귀가하고 있는 껄쭉하게 큰 정섭형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서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나 반갑고 아쉬워서 집에 빨리 가봐야 된다는 형을 붙들고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형의 고달픔, 외로움,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 나의 심정과 너무나 흡사해서 술도 잘 못하는 형과 나는 통금시간이 다 되도록 서로가 서로를 달래고 위로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시간-, 현재 부딪치고 있는 시간은 제법 길게 느껴지지만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볼라치면 너무나 빠르다는 것을 느껴게 됩니다. 이후 정섭형과의 만남은 동문회때 두서너번 스쳐 지나다가 15여년이 지난후 1988년도에 장학사가 되신 정섭형과 연구시범 보고회에서 만나 또 한번의 정겨운 선후배의 자리를 갖게 되었고 그때 형이 나의 진로에 대해 많은 충고와 힘을 보태 주셨지요.
정섭형은 남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성품이나 우리 동문들에 대한 정은 누구 못지 않게 강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1995년도부터 교장으로 근무하시면서 형은 모든 교직원들을 하나같이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대하시고 또한 행동으로 실천하는 학교경영을 통해 형과 함께 근무하다가 떠나온 모든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대 하게 될때 형이 우리 동문의 선배라는 점이 저에겐 얼마나 가슴 뿌듯한 자랑이 아닐 수 없었답니다.
금년 8월초 형은 이미 불치의 병을 앓고 계시는 것을 자신도 알고 계셨으면서도 동창회를 위해 동창회비까지 보내주시는 성의를 뒤늦게 알게된 저희들은 무슨 말로 그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섭 형-.
형은 거제가 마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참석은 못하나 내 뜻은 우리 동문들과 함께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동창회 행사때 마다 성의를 표해 주신 점에 대해 그 뜻을 높이 기려 형의 영전 앞에 경남 동문들의 이름으로 그 고마운 뜻을 전해 올립니다.
정섭형-
이제 -
세상사- 아쉬움, 그리움, 외로움, 고달픔, 모두 잊으시고-
부디 - 편안히 잠드소서
첫댓글 경남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우리 동문은 한 가족 입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나 힘든일이 있을때는 다함께 해결해 가도록 다같이 노력합시다.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극락왕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