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이 버린 땅. 神이 외면한 땅. 톨레삽 호수(tonle sap)의 물결은 아팠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흙길에 몸을 맡긴 채 30분 이상 가다 보면 고물 자동차는 톨레삽 강가 나루터에 나를 내려놓는다. 이른바 지상에서 가장 못 사는 수상 살림살이를 시찰(?)해 보라는 뜻이다.
네다섯 살쯤의 헐벗은 아이들이 맨발로 쪼르르 달려와 반쯤 오므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원 달러를 구걸한다.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생의 마지막 구걸인양 너도나도 손을 뻗친다. 익숙해져 있다. 표정도 없다.
우린 이미 가이드에게 귀띔을 받은 터라 모른 채 배에 올라탔다. 살이 타는 듯한 더운 날씨 속에서 배 뒤쪽에 또 한 어린이가 배의 안전조정을 하느라 등을 구부리고 있다. 새까만 등이 그림에 나오는 고래 등 같이 휘어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예닐곱 살쯤 된, 학원이다 태권도다 하며 쫄랑쫄랑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다닐 그런 나이다.
톨레삽 호수의 물길을 헤집고 바람과 만난다. 바람은 시원하고 상큼하다. 물살을 잘게 부수며 사방에서 만난 바람의 꼬리들이 뱃전을 후리치며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물위의 집들은 삭은 나무둥치처럼 건들거리며 금방이라도 내게 덮쳐버릴 것 같다. 얽어놓은 집들의 뼈 그림자가 물위에 투명하게 일렁인다.
물결 사이로 도열해 있는 집들의 행렬은 한국농촌의 폐가를 겨우 일으켜 세운 듯하다. 깡마른 아이와 어른들은 습한 기온을 마른야자수 잎에 의존하며 신이 그어준 생명의 한계를 겨우 연명해 나가는 듯 했다. 가난이라는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한 번도 저항해 보지 못한 척박하고 낮은 어깨들이 무심한 물살에 밀리고 있다. 그저 일용할 최저의 양식만 있다면 자식을 낳고 최소한의 교육을 시키며 부초 같은 삶을 아끼며 살고 있다. 지친 살빛을 까맣게 태우며 지독한 노동으로 부대낀 삶이기에 희망이라는 생경스런 단어에 집착하는 모습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물은 거칠고 황토 빛이다. 지독한 악취도 가끔 바람에 실린다. 그들이 내다버린 오물덩이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든 다시 그 물을 퍼 마시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의 한가운데를 여름 날씨처럼 푹푹 쪄내고 있다.
하나님의 전용물인 첨탑 위 십자가가 아무리 많은들, 인심 좋은 부처님이 산에서 꾸물꾸물 걸어 나온들 묘책이 없는 가난이다. 여유와 낭만을 즐기려 이곳 비참을 뜯어보는 나는 분명 죄인이다.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대는 파렴치한 군상들. 찍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축복받은 나라에서 유들유들 찌워 논 비계 살 같은 일상을 렌즈로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는 것인가. 가장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저 작은 어깨 위에 실린 고통의 편린들은 대체 몇 그람의 무게로 사람을 혼절 시킬 것인가. 아이들의 맑고 까만 눈들이 내 위선을 열어 보는 것 같아 자꾸 헛기침을 하며 딴 데로 눈을 넘기곤 했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매달려 짜증과 한숨을 섞는 오만한 내 삶에 페니실린 보다 더 확실한 처방을 구하며 구겨져 있는 맘 갈피를 길게 펴 본다.
섭씨 36도를 갸웃대는 땡볕 속, 배 뒷전에서 모터의 흔들림을 오래 지켜준 여섯 살 꼬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새 가슴보다 작다. 아이의 비릿한 살 냄새가 혈관을 타고 방망이질 한다.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땀 냄새에 젖어 안쓰럽게 파고든다. 목이 멘다.
겨우 지폐 몇 잎을 손에 쥐어 주며 가여운 전신을 힘껏 보듬었을 뿐 내가 건네 줄 말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생각나는 말이 없다. ‘가난은 조금 불편할 따름이다’라고 누가 말했다.
상투적인 미사여구로 헤프게 쏘아보는 단말마는 아닐는지. 칼날 같은 아픔이지만 적당히 달래 두 번 다시 화근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는 입 조심용 부적이 아닐까 싶다. 원 달러를 구걸하는 처연한 눈빛에 죄스럽게 시달린 그날. 슬픔의 신화를 엮어내는 마른 종아리의 유령들이 황 빛 물길 속으로 까무룩 잠기는 악몽을 꾸었다.
그래도 행복지수가 우리 보담 18단계가 더 놓은 세계 12위라는데 내가 감히, 내가 어떤 입 놀림으로 그들의 생각 속으로 건방지게 발을 담근단 말인가.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내 의식의 틀 속으로 천진무구한 그네들을 잠시 가둔 나는, 얼마나 오만하게 삶의 잣대를 주무르며 일상을 버티고 있을까. @
남주희
'시인정신'. '현대수필'로 등단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졸업 대구문화방송 아나운서 현대수필 작가회, 시인정신 작가회 영남문인협회, 영남수필작가회 회원 현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회장 정수 문학회장 영호남 친선 편지글 쓰기대회 대상 정수문학 대상, 혜원 문학상 TBC 대구방송 창사기념 편지글 쓰기대회 대상 한국민족문학 본상 수상 |
첫댓글 그들의 힘듬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좋은 글 감시합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제안 드립니다 한국전쟁 때 만들어진 국제기구인 컴패션이라는 구호 단체가 있더군요 저도 얼마 전 문화방송 내용을 보고 알았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둘러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댓글을 올렸습니다
잠시 창밖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찌프린 날씨 이지만 미시건호에서 부는 바람은 봄의 기온을 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