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미래에 어떻게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아니라 우리 자면서 꾸는 꿈 말이다.
꿈의 생리학적 의의는 낮에 우리가 활동하면서 겪은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무의식이라는 넓은 창고에 보관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 때 꾸는 꿈은 자고 일어나면 기억할 때도 있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겪어보니 기억이 나지 않은 꿈을 꾸었다면 그날은 아주 잘 잔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꿈을 꿀 때는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고 한다(REM수면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꿈을 꾸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과정이므로 아주 편하게 자는 것은 아니고 선잠을 잔다고 생각 하면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을 때 흔히 일어나는데 매일 꿈을 꾸느라 잠을 편히 못잤다고 하는데 이럴 경우를 얘기한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과중한 스트레스, 잦은 음주 등으로 인해 배와 뒤허리가 차가우면서 변이 무르고 잦은 설사를 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면 잦은 꿈으로 인해 쾌면을 이루는 횟수가 적을것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신경성 대장증후군부터 치료해야한다.(무슨 돌팔이 의사같네)
어떤 사람은 미래를 예견하는 예지몽을 꾸어서 무당이나 선지자로 추앙을 받기도 한다. 여태까지 나의 꿈은 맨날 그저그런 꿈만 꾸어오던 터여서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다. 하다못해 꿈속에서도 그렇게도 보고싶은 예쁜여자와의 데이트도 해본 적이 없다. 고작 꾼다는게 군대에서 제대 몇일 남겨두고 훈련하느라 뺑이 치는 꿈, 군대 제대 했는데 다시 입대하는 꿈..등등 아주 거시기한 꿈만 꾼다. 요즘도 꿈을 꾸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알면서~~
그런데 내 인생에 딱 한번 예지몽이라는 것을 꾼 적이 있다. 5학년 때다. 지금도 선하게 기억나는데 나는 세기의 악동 최한규 요자식과 짝이었고 앞에는 최상용이 있었다. 사실 그시절의 상용이는 공부 잘하지 운동 잘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요즘 말로 '엄친아' 였다. 상용이와는 같은 과학반이고 해서 정말 친했는데, 이 최한규란 놈이 항상 훼방을 놓고 제 맘에 안들면 폭력으로 지가 원하는 것을 쟁취했던 넘이다. 그래서 언젠가 길상이 한테 한규 녀석을 찾아보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이때의 원수를 갚으려고...(농촌공사 옥천 지부에 근무하고 요즘 공기업 구조조정이 있다는데 무사해야 할텐데~~걱정이다. 하기사 나도 걱정인데~~)
아무튼 초가을의 어느날 나는 꿈을 꾸었다. 상용이의 아버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함자가 최자 건자 영자인듯하다.) 상용이네 집이 우리집에서 멀었지만 자주 놀러가서 부모님과 상철이 형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꿈에 상용이 아버님이 자전거를 타고 가시면서 "선식아 잘 있어" 그러면서 멀리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곰곰하게 생각했다. 뭐지? 그러다가 또 자고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
그런데 학교에 가니 아침 첫시간에 담임인 임상헌 선생님이 "오늘 새벽에 상용이 아버님이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상용이 안왔으니 친한 사람들은 방과 후에 상용이네 집에 다녀오도록~~"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혼잣말로 '세상에~~ 그럴줄 알았어' 속으로 말한것 같은데 이말이 입밖으로 나왔나보다. 짝인 최한규 이넘이 다짜고짜 "이 나쁜새끼 너 뭐라구 했어" 라고 하면서 나에게 그 쪽 째진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다. 나쁜넘 내 속도 모르고...
아무튼 이날 방과후에 상용이네 집으로 같다. 상용이네 집은 농고앞으로 해서 교성리를 지나 김종화네 동네를 거쳐 갔는데 지금의 수도국 가는길 중턱의 산밑의 집이었다.
가보니 상용네 집에서 초상을 치르고 있었고 상용이는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의외로 슬픈 얼굴이 아니라 웃는 모습이어서 안심되었다. 아마 아버지 잃은 슬픔보다는 친구들이 왔다는 반가움이 앞선것이었을까? 어쨌든 방안으로 들어가서 음식도 먹었고, 그러다가 상용이가 화투패를 가져오더니 미나투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때 처음 화투의 묘미를 알았다. 초상집도 처음 가보고~~ ,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너무 어린 나이에 상용이가 아버지를 여의어서 슬픔을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았다. 크면서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진중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내가 청주로 이사 나오면서 상용이를 본적은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때 진천여중앞에 우리 논이 있었는데 아버지랑 일하러 갔다가 귀가하면서 버스터미날에서 상용이가 친구들을 배웅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본것 같은데, 그게 상용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말을 걸지 못했다. 그후 쭈욱~~~세월이 지나고 2002년 연말쯤에 상용이를 처음 보았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감정평가사를 한다고 했다. 키가 많이 크진 않았지만 그 옛날 수더분한 그 모습이어서 많이 반가웠다.
그 뒤로 한 두어번 보고 천안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결혼을 해서 살고 있다. 늦장가 들어 애도 하나 낳았다. 지난 10월 동문체육대회 전에 전화통화가 됬는데 여름휴가를 제대로 가지못해 이때 연휴를 이용해서 남쪽으로 여행을 가서 동문회는 못간다고 아쉬워 했다. 나는 그마음 이해한다 마누라의 손아귀를 벗어나고 싶어도 못벗어나는 결혼 초기의 심정을~~~ 그래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24일에 내가 전화를 해서 통화가 되었다. 아이가 아파서 고생했다는데 잘 있냐는 둥~~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아무튼 늦장가갔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면서 3분의 1은 잠으로 보낸다. 꿈속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싶고 감춰진 욕망을 맘대로 누리고 싶은게 인지상정인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먹고, 연애도 많이 해본놈이 여자를 잘 꼬신다고 했던가?? 나는 영~ 꿈속에서도 시원찮다. 그런데 한 일주일전 내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이 나왔다. 바로 송헤교~~ㅋㅋㅋ(아이 쑥쓰러워라) 꿈속에서 꽤 친한 사이어서 살갑게 놀았는데 찐하게 놀지도 못하고 여드름만 짜주다 깼다.... 에궁 아까버라~~
아침밥을 먹으면서 마누라에게 꿈얘기를 했더니 "아직도 키크냐? 왜이리 꿈얘기가 허무명랑하냐???" 하면서 또한번의 지청구를 먹었다.
새해 2009년 우리 친구들도 꿈속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이 되보기도 하고 재밋게 살았으면 좋겠다..
근데 역시 꿈속에서도 혜교는 이뻤다~~ 음냐 음냐 후루룩(침흘리다 닦는소리)
첫댓글 상용이형 최상철선배는 서울대 법대 나와서 서울지검 부장검사로 있다네..니두 송혜교 좋아하냐 나두 좋아 하는데..
어~~!! 니들 송혜교 좋아하냐? 나두 좋아하는데~~~~
원래는 손예진 더 좋아하는데.. 혜교도 나름 매력있어~~(꿈에선 뭔짓을 못하냐?ㅋㅋ)
꿈이라~~ 난 요즘에두 높은데서 뛰어내리는 꿈 꾼다면~ 그럼 키가 더 클거라는 얘기??ㅋㅋ.. 새해의 꿈은 책 많이 읽어서 유식해지는 거라면~ 그럼 지금은 무식하다는 소리??ㅋㅋ.. 난 멋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꿈인데~~
은수가 더 키가크는 건, 혜교가 선식이한테 영화에 동반출연 제의하는거나 똑같은 일이고, 키때문에 강박관념이 어릴적부터 있어서 그런 꿈꾸는것 같다(가축심리학적인 해석). 새해 꿈이 아니라 새해 희망이겠지. 꿈과 희망은 좀 다른 어감이 있잔나? 지금도 멋있어. 뭘 더 바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