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논문 ○
시 교육에 도입된 이론적 지식의 몇 가지 오류˙˙˙˙˙˙˙˙˙˙˙˙˙ 李崇源˙˙˙ 1
문학 교육에서 이론의 위치 ˙˙˙˙˙˙˙˙˙˙˙˙˙˙˙˙˙˙˙˙˙˙˙˙˙˙˙˙˙ 윤여탁˙˙˙
常套的 表現考 ˙˙˙˙˙˙˙˙˙˙˙˙˙˙˙˙˙˙˙˙˙˙˙˙˙˙˙˙˙˙˙˙˙˙˙˙˙˙˙˙˙이지호˙˙˙
패러디를 통한 시 쓰기와 창작 교육 ˙˙˙˙˙˙˙˙˙˙˙˙˙˙˙˙˙˙˙˙˙˙유영희˙˙˙
1. 언어지식 지도의 필요성과 방향˙˙˙˙˙˙˙˙˙˙˙˙˙˙˙˙˙˙˙˙˙˙˙˙이성영˙˙˙
2. 문법 내용의 조직 방식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심영택˙˙˙
3. 국어학적 관점에서 본 언어지식 영역의 지도내용˙˙˙˙˙˙˙˙˙권재일˙˙˙
4. 언어능력 신장의 관점에서 본 언어지식 영역의 지도내용 최영환˙˙˙
5. 언어지식(문법)의 교수 학습 방법˙˙˙˙˙˙˙˙˙˙˙˙˙˙˙˙˙˙˙˙˙˙김광해˙˙˙
6. 언어지식의 체계화 연구의 방향과 과제 (종합토론 내용정리) ˙˙˙˙
<총서안내>˙˙˙˙˙˙˙˙˙˙˙˙˙˙˙˙˙˙˙˙˙˙˙˙˙˙˙˙˙˙˙˙˙˙˙˙˙˙˙˙˙˙˙˙˙˙˙˙˙˙˙˙˙
국어교육연구
1995. vol. 2, pp. 1-
시 교육에 도입된 이론적 지식의 몇 가지 오류
李 崇 源
1. 시 교육과 지식의 문제
시를 가르친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시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의미와 구체적인 시작품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그 말 속에 내포되어 있다. 물론 전자와 후자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시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작품의 예를 들어야 할 것이며, 구체적인 시작품을 가르치는 데 시에 대한 일반적이고 개략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일반 이론을 알아야 함은 물론 구체적인 시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시를 가르치는 사람 역시 다른 누구보다도 시에 대해 정확하고도 폭넓은 이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이런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 더 바람직한 시 교육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구태여 논증할 필요가 없다.
시 교육이 이루어지는 국면을 학교교육에서부터 고찰한다면 그것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중등학교를 거쳐 대학의 교양과목에까지 이어진다. 대학의 어문학과에 입학한 사람은 전공 시간에 다시 시를 배운다. 시 교육은 학교교육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형태의 사회교육기관에서 문학의 이해라든가 문예창작론, 시작법 등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고 거기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시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상적인 생활의 국면에서도 시를 가르치는 일은 정규적인 강의의 형태를 취하지 않은 상태로 행해지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 시가 등장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지하철 역의 벽면이라든가 공영 공원의 조형물에도 시가 게시되어 있다. 심지어 상품 광고에도 시가 이용된다. 이렇게 시작품을 자꾸 보여주는 것도 넓은 의미의 시 교육에 속한다. 음악을 가르치려면 음악을 자꾸 보여주고 사진을 가르치려면 사진을 자꾸 보여주어야 하는 것처럼, 시작품을 많이 읽게 하는 것은 시 교육의 좋은 방법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대중들에게 시를 많이 읽게 하고 시를 알게 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시 교육이 다양한 형태로 행해지고 있는데, 시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그 방법은 어떤 것이 효과적이고 시 교육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한 탐구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않은 듯하고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한 합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물론 국어교육론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내에서 읽기 교육의 일환으로 시 지도 방법이 논의된 사례는 많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앞에서 필자가 말한 여러 형태의 시 교육을 포괄하는 내용은 아니다. 문학교육 쪽의 학문적 탐색이 깊어지면서 문학교육의 이론적․철학적 근거를 천착한다든가 서사적 담론과 서정적 담론이 지니는 특성을 교육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담론들이 학습자들에게 심미적으로 체험되는 양상을 탐구하는 중요한 논문들이 나왔다. 이러한 논의들은 문학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음은 물론이고 문학 교육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커다란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접근 방법이 이론의 체계를 세우려는 의욕이 앞서서 그 논의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 문학 교육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 학문적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에서 시 교육은 시에 대한 일반적 이해력을 심어주는 것과 더불어 시작품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어떤 것이 시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시 교육이 행해지는 국면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이 제출될 것이다. 한때 중등학교의 시 교육 시간이 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치우치는 현실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가지 교육 여건이 바뀜으로써 시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 교육이 대체되는 상황은 없어졌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시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전혀 쓸모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론적 지식은 추상의 레벨이 높은 것이어서 많은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을 간단한 어구로 제시할 수 있게 해 준다. 비유라든가 이미지, 상징 등의 개념어들이 다 이론적 지식의 소산이다. 말하자면 각 단계의 이론적 지식은 시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발판 노릇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초보적 단계의 시 교육에도 그 단계에 맞는 이론적 지식의 전수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시 교육에 도입된 이론적 지식 중 그 지식 자체가 잘못 이해되어 오류를 보이는 예가 적지 않다.
이 글은 문학교육에 도입된 이론적 지식 중 그 내용이 잘못 소개된 것을 찾아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쓰여진다. 이론적 지식의 오류를 다루는 것은 그것이 다루기 쉽기 때문에 먼저 다루는 것이지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이 글은 지엽적이고 말단적인 사항을 다루는 듯한 인상도 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이 교육의 영역에 들어와서 그것이 학습자에게 전수되고 그 잘못이 증식되는데 그것을 알고서 가만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못된 이론적 지식은 잘못되었다는 그 점 때문에 시 교육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앞에서 시 교육이 이루어지는 국면을 넓게 잡았듯이 이 글의 검토의 대상도 그 폭을 넓게 잡았다.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 및 참고서, 고등학교의 문학 교과서 및 참고서, 일반인을 위한 문학개론서 및 시론서가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자료에 나타난 오류 중 이론적 지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였다. 잘못된 이론적 지식의 경우에도 단편적인 것은 제외하고 시의 이해에 중심을 이루는 것만을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타당치 못한 설명이 나와 있는 문헌에 대해서 일일이 그 츨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작업의 목적이 어떤 이론이 잘못 도입되었는가를 밝히는 데 있지 어떤 책이 잘못된 서술을 하였는가를 밝히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이론이라고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여 그 타당성을 검토한 후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기서 검토하는 내용이 특수하거나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식에 속하는 것들인데 그 잘못된 상식이 시 교육에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론적 지식의 근거는 출처를 밝혔지만 그 지식이 도입된 문헌은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2. 시의 갈래와 시를 보는 관점의 문제
몇 개의 문학개론 책과 시론 책에 시의 종류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고 거기에는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 등의 유형 구분과 서정시, 서사시, 극시의 갈래 구분이 들어 있다.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시의 갈래를 나누는 설명방식은 최근에 개인이 저작한 시론 책에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문학 교과서 몇 종은 여전히 서정시, 서사시, 극시가 시의 종류라고 설명하고 있고 참고서는 대부분 예외없이 시의 종류에 서정시, 서사시, 극시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종류에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가 있고 주정시, 주지시가 있는 것처럼 서정시, 서사시, 극시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우선 이들의 구분은 그 층위가 다른 것이다. 서정시, 서사시, 극시의 구분은 시의 형태나 내용에 의해 유형을 나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갈래 구분이다. 이것은 문학의 커다란 갈래를 나누는 과정에서 유래된 것이다.
문학의 갈래를 서정, 서사, 극의 세 양식으로 나누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ꡔ시학ꡕ에서부터다. 물론 이 분류는 그의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이 ꡔ공화국ꡕ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에 문학을 긍정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가 ꡔ시학ꡕ이란 저술을 남겼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갈래 구분으로 보편화되었다.
시인은 ①호메로스가 한 것처럼 때로는 서술체로, 때로는 작중 인물이 되어 말할 수 있고, ②그러한 변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체로만 말할 수 있고, ③모방자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실연(實演)하게 할 수 있다.
여기서 ①이 서사시를, ②가 서정시를, ③이 극시를 말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서사시나 극시와 대비해 볼 때 서정시는 작중 인물을 모방하는 것도 아니요 제삼자의 행동과 말을 그대로 복원해 내는 것도 아니요 다만 자신의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여기 나타나 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안점은 ③의 비극에 있었고 ②에 대해서는 단순히 언어에 의한 감정의 모방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서정시에 대한 그의 생각을 현대의 어법으로 확대 해석해 보면 서정시는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사건을 서술하거나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는 이미 그 시대에 서정시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문학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없었고 ‘시’라는 용어로 문학 전반을 지칭했다. 따라서 위의 아리스텔레스의 말은 문학자가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때 위와 같은 세 가지 양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위의 설명은 시의 갈래를 구분한 것이 아니라 문학일반의 갈래를 구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 방식은 고전주의 시대를 넘어 19세기 헤겔(G.W.F. Hegel)의 시대에까지 전승되어 헤겔의 ꡔ미학ꡕ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헤겔 ꡔ미학ꡕ 3부는 낭만적 예술에 대한 서술인데 그 마지막 장이 시에 대한 설명이다. 헤겔은 여기서 시의 갈래를 서사시(die epische Poesie), 서정시(die lyrische Poesie), 극시(die dramatische Poesie)로 나누고 있다. 여기 사용된 ‘시’라는 용어 역시 지금 우리가 보는 형태의 시가 아니라 문학 일반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물론 헤겔은 서사시, 극시 부분에서 그 시대까지의 서사문학이나 극문학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서사시, 서정시, 극시라는 용어는 문학의 갈래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술어임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다.
고대의 서사시는 지금 소설로 정착되었고 극시는 지금 드라마로 정착되었다. 서정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정시로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배우는 시는 대부분 서정시에 속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시론’에서 서정양식의 중심을 이루며 가장 오랜 역사적 연조를 지닌 서정시를 배운다. 말하자면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서 시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서정시이다. 모든 것이 운문으로 표현되던 근대 이전의 문학을 설명할 때 서사시, 서정시, 극시로 구분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지만, 서정시의 개념에 해당하는 지금의 시를 설명하면서 시의 종류에 서사시, 서정시, 극시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근대 이후 쓰여지는 시 중에서 서정시의 감정 중심적인 세계에 미흡함을 느낀 사람들이 서사양식이나 극양식의 특성을 차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담은 시가 쓰여지고 드라마의 형식을 취한 시가 시도되기도 한다. 이것은 서정시의 울타리에서 이탈하여 다른 갈래로 이행해 보려는 특수한 시도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시의 유형을 나누는 일반적 양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의 일반적 현상을 설명하면서 시의 종류에 서정시, 서사시, 극시가 있다는 설명 방식은 사라져야 마땅할 것이다.
시의 종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시 일반론에서 보게 되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시를 보는 관점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설명은 오류는 아니지만 약간의 해명이 첨부되어야 할 사항이어서 여기에 거론해 두려 한다. 개론서에는 시를 보는 관점에 모방론, 표현론, 효용론, 객관론이 있다는 설명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고등학교 일부 문학 교과서에도 반영되어 있고 그런 관계로 대부분의 참고서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에이브람스(Meyer Howard Abrams)의 도식을 빌어 온 것이라는 사실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에이브람스는 낭만주의를 연구한 그의 저서 ꡔ거울과 등불ꡕ의 서두 부분에서 서구 비평이론을 네 가지로 나누어 개관하였다. 그는 예술작품의 전체적 상황을 구성하는 네 요소로 작품, 세계, 예술가, 청중(독자)을 설정하고 작품과 각 요소와의 관계에 의해 문학을 보는 관점이 구분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작품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세 요소를 주위에 배치하여 비평이론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도식을 만들었다. 에이브람스의 이 네가지 관점의 구분은 비단 시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구문학의 전통 속에서 문학을 바라본 관점이 변천해 온 양상을 개괄한 것이었다. 그후 알렉스 프레밍거(Alex Preminger)가 엮은 ꡔ프린스톤 시학 사전ꡕ의 시 이론 부분에 이 설명이 제시되자 우리의 개론서에서는 마치 시를 보는 관점에 이렇게 네 가지가 정립되어 있는 듯이 이 도식을 소개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설명은 공식처럼 보편화되었다.
에이브람스의 의도는 이 네 가지 문학관을 설명한 후 모방론적 문학관에서 표현론적 문학관으로 변한 낭만주의 시대가 문학사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이룩한 시대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에이브람스는 문학관이 변천해 온 양상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낭만주의 문학관이 차지하는 위치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 도식을 창안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도식이 문학을 보는 관점을 요령있게 설명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시를 보는 관점으로 바꾸어 놓으면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오늘날의 시를 논하는 데 위의 네 가지 요소와 그것에 근거를 둔 비평이론이 동일한 층위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유럽문학 전반을 대상으로 한 비평론의 전개를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는 위의 네 항목이 그 나름의 동등한 비중을 지닐 수 있지만 현재의 시를 보는 관점을 염두에 둔다면 역시 표현론적 관점이 우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작품과 독자의 관계를 중시할 때에도 과거와 같은 윤리의식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정서적 감화라든가 독자 수용의 측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효용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객관론은 작품 그 자체를 분석하는 일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초로 하여 다른 관점으로 얼마든지 이동할 수가 있다. 따라서 에이브람스의 도식을 원용하여 시를 이해하는 관점을 설명할 때에는 그 이론의 성격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시를 설명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도 제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야콥슨의 은유와 환유
체코 구조주의 출신의 학자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언어 사용의 두 가지 양상을 수사학의 용어를 빌려와 은유(metaphor)와 환유(metonymy)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은유와 환유가 우리가 수사법에서 이야기하는 은유법, 환유법과는 그 내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야콥슨의 사고를 연장시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은유법과 환유법도 그의 관점에 의해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처음의 발상 자체는 수사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시론 책 중에는 이것을 수사법의 은유와 환유를 설명한 것으로 오해하여 수사적 표현에서 그 예를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야콥슨의 이론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실어증 환자의 상태를 관찰한 결과 두 가지 유형의 장애를 발견하였다. 즉 일군의 사람들은 ‘아이가 밥을 먹는다’고 말할 경우 ‘아이’에 해당하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애를 먹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환자들은 각각의 단어는 떠오르되 그 단어를 연결짓지 못해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그 대상에 해당하는 단어를 선택하지 못해서, 다시 말해서 선택의 축에 이상이 생겨서 실어증이 걸린 것이고 후자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짓는 결합의 축에 이상이 생겨서 언어 장애가 나타난 것이다.
일반적인 언어 생활에 있어서 ‘아이가 밥을 먹는다’는 문장의 ‘아이’에 대치할 수 있는 많은 항목들이 나열될 수 있다. 어린이, 소년, 꼬마, 아동, 소아 등 유사성을 지닌 많은 항목 중 아이라는 말이 선택된 것이다. 여기서 세로로 나열되는 이 항목들을 계열적 관계(paradigmatic relation)에 있다고 하는데 그 각각의 항목들은 유사성(similarity)의 원리에 의해 나열된다. 한편 ‘아이가’ ‘밥을’ ‘먹는다’라는 세 어구가 모여서 한 문장을 이루는 것은 각각의 어구가 서로 인접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결된 것인데 그렇게 가로로 연결되는 항목들은 통사적 관계(syntagmatic relation)에 있다고 있다고 말하며 각각의 항목들은 연속성(contiguity)의 원리에 의해 연결된다. 야콥슨은 유사성의 원리에 바탕을 둔 계열적 관계를 은유라고 했고 연속성의 원리에 바탕을 둔 통사적 관계를 환유라고 했다.
이러한 선택의 축과 결합의 축은 비단 언어 현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구조주의자들은 식생활이나 의복의 착용 등 문화의 양상까지 이러한 관계에 의해 설명하려고 했다. 즉 쌀밥과 미역국과 배추김치가 있다고 할 때 이 세 항목은 연속성의 원리에 의해 연결되는 환유적 관계의 음식이다. 즉 밥을 먹고 국을 떠먹고 김치를 반찬으로 먹는 것이 정상적인 식사법이다. 여기에 대해 쌀밥과 잡곡밥, 미역국과 시금치국, 배추김치와 겉절이 등은 각각 유사성의 원리에 바탕을 둔 은유적 관계의 음식이다. 즉 쌀밥과 잡곡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미역국과 시금치국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물론 배추김치와 겉절이는 둘 다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둘이 유사한 관계에 있는 음식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가 옷 입는 것도 이런 관계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야콥슨은 “시적 기능은 등가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고 말하였다. 선택의 축은 야콥슨의 개념으로는 은유이고 결합의 축은 환유에 해당한다. 등가의 원리는 유사성의 원리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원래는 선택의 축에 해당하는 요소다. 그러면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등가의 원리가 투사될 때 시적 기능이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의 시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純潔이다.
三月에
젊은 느티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김춘수, 「나의 하나님」 전문
이 시에서 하나님은 여러 개의 매개항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 중 ‘늙은 비애’(가) ‘푸줏간에 걸린 살점’(나) ‘놋쇠 항아리’(다)는 부정적 이미지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부정적 이미지를 세 개 열거한 다음에는 ‘어리디 어린 순결’(라) ‘삼월의 젊은 느티나무 잎새’(마) ‘연두빛 바람’(바) 등의 긍정적 이미지가 제시되는데, 7행의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은 부정적 이미지에서 긍정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징표의 기능을 한다. 이 시의 문맥을 산문으로 정확히 바꿀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윤곽은, 하나님의 존재가 일상적 삶의 맥락에서는 낡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고 푸줏간의 살덩이처럼 죽어버린 존재 같지만 그래도 나의 하나님은 불멸의 존재이며 어린이처럼 순결하고 봄날의 바람처럼 청신한 존재 의의를 지닌다는 의미로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 앞의 부정적 이미지는 서로 간의 유사성을 지니고 연결되었고 뒤의 긍정적 이미지 역시 유사성에 근거하여 연결되었다. 따라서 앞의 (가), (나), (다)와 뒤의 (라), (마), (바)는 각각 유사성에 바탕을 둔 은유(야콥슨의 용어)의 관계에 있고 (가) (나) (다):(라) (마) (바)는 의미상 대립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나의 하나님은 늙은 비애다’라고 할 때 ‘하나님은’이라는 주어와 ‘늙은 비애다’라는 서술어는 연속성의 원리에 의해 연결되어 한 문장을 이룬 것이므로 환유(야콥슨의 용어)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과 ‘신’, ‘주님’, ‘창조주’ 등의 말은 선택의 축에 나란히 나열될 수 있는, 다시 말해 유사성을 지닌 말들이다. 그러나 ‘늙은 비애’와 ‘하나님’은 표면적으로는 유사성이 없는, 이질적인 말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이질적인 두 말을 연결하여 A=B의 형식으로 붙여 놓았다.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말은 원래 선택의 축에 속해 있는 등가성을 지닌 말을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시적인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것은 일상적인 진술이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늙은 비애다’라는 말은 분명히 시적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등가가 아닌 것 같은 두 말을 등가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결합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적 기능은 등가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 것”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나의 하나님은 늙은 비애다’라는 말은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은 시인이 주관적으로 생각한 어떤 유사성에 의해 두 개의 어구가 결합된 것이다. 즉 형식적으로는 말과 말의 결합이므로 환유로 보이지만 사실은 주관적 유사성에 의해 폭력적으로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은유에 속한다. 시의 언술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되어 있고 위의 시는 이런 언어 사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야콥슨은 시에는 은유가, 산문에는 환유가 중심원리가 된다고 말한 것이다. 야콥슨은 이러한 은유와 환유의 원리가 모든 담화에 다 적용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러한 야콥슨의 개념이 수사법에서 이야기하는 은유와 환유에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보겠다.
모란꽃 이우는 하얀 해으름
강을 건너는 청모시 옷고름
仙桃山
수정그늘
어려 보라빛
모란꽃 해으름 청모시 옷고름
박목월, 「牧丹餘情」 전문
이 시에서 ‘~름’으로 끝나는 세 행은 음악적으로 동일한 어감의 말이 통사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것 역시 등가의 원리가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된 것으로, 일상적 어법과는 구분되는 시적 기능을 나타낸다. 각 시행에 제시된 정경은 부드러운 해조와 은은한 아름다움이라는 유사성에 의해 선택된 말들이므로 은유적 사고의 발현이다. 그리고 각각의 정경의 내적 연결은 결합될 만한 전후 관계(연속성)에 의해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환유의 원리가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2연의 ‘청모시 옷고름’은 수사법으로 보면 환유에 속한다. 전통 수사법에 기대면, 부분으로 전체를 가리키는 것을 제유라고 하고 특징이나 소유물로 대상을 지시하는 것을 환유라고 한다. 즉 ‘청모시 옷고름’이라는 말은 청모시 옷고름을 띤 한국 여인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고의 과정에 의해 분석해 보면, 한국 여인과 그가 입는 의상은 연속성의 원리에 의해 결합되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한복 의상과 옷고름 역시 연속성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한국 여인’을 ‘청모시 옷고름’으로 대치한 것은 환유의 원리에 의거한 것이다. 여기서 수사법에서의 환유와 야콥슨의 환유의 개념이 부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만일 ‘그대 마음은 청모시 옷고름’이라는 시구가 있다면 이것은 ‘그대 마음’과 ‘청모시 옷고름’의 유사성에 바탕을 둔 표현이기 때문에 은유의 사고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그리고 수사법으로도 이것은 은유에 속한다. 결국 야콥슨의 개념이 그 나름의 독특한 시각에 의해 정립된 것이지만 그것이 전통 수사학의 개념과도 어긋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4. 시의 화자
근자에 시의 화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화자를 중심으로 시작품을 분석하려는 작업이 적극적으로 행해졌고 시 교육의 측면에서도 화자의 문제를 원용한 고찰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시의 화자에 대해 분석할 때에 소설의 화자를 분석하는 방법을 원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재고해야 될 문제이다. 소설의 나레이터와 시의 퍼스나는 그 의미와 기능에 있어서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 있는 것이다. 소설의 화자는 사건 전개에 개입하기도 하고 사건의 바깥에 놓이기도 하면서 위에서 말한 대로 사건 전개 전체를 주도한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중시하면서 그것의 주관적 표출에 관심을 둘 뿐 사건의 구성이라든가 인물의 설정 등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서정시의 퍼스나와 서사물의 나레이터가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公無渡河歌」의 경우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조선 나루터의 뱃사공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배를 손질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술병을 들고 강으로 달려들었다. 그 뒤에 그의 아내가 울부짖으며 쫓아와 말렸으나 결국 남편은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아내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비탄의 심정을 토로한 후 자신도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곽리자고는 집에 돌아와 아내인 여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여옥은 감격하여 공후를 끌어안고 그 노래를 불렀고 이웃의 친구에게도 그 노래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은 백수광부의 아내와 여옥, 두 사람이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비탄의 심정을 직접 노래했으며 여옥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백수광부 아내의 심정을 추체험하여 노래를 불렀다. 그러므로 백수광부 아내의 노래에서는 시인과 화자가 일치하는 데 비해서 여옥의 노래에서는 시인과 화자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곽리자고는 그 사건을 목격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그 전말을 이야기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서사적 행위를 한 것이다. 말하자면 곽리자고는 그 이야기의 나레이터가 된 것이다. 서사는 반드시 이야기를 듣는 대상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여옥이 청자가 되어 곽리자고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만일 곽리자고가 그 사건을 어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그것은 극양식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처럼 서사나 극은 반드시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행동을 보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는 그러한 대상없이 말하는 사람 혼자만으로 존재한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저 혼자의 감정을 스스로 노래한 것이고 여옥 역시 백수광부 아내를 퍼스나로 내세워 자신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물론 그 노래의 형식은 님에게 호소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겉으로는 청자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실은 홀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서정시의 화자이다. 말하자면 소설의 나레이터는 청자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지만 시의 퍼스나는 청자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나레이터와 구분하여 이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시의 화자를 설명하는 데 자주 원용되는 이론은 채트먼(Seymour Chatman)과 야콥슨(Roman Jakobson)의 이론이다. 채트먼은 소설 화자의 기능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가하였다. 채트먼은 서사물의 작가와 독자,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정리한 바 있는데 이것은 시의 화자를 설명하는 시론 책에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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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작가―ꠐ내포 작가―(화자)―(청자)―내포 독자ꠐ―실제독자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이 도표에서 실제 작가(real author)는 실제로 현실 속에서 생활을 하고 글을 쓰는 작가를 뜻하고 실제 독자(real reader) 역시 현실 속에서 돈을 내고 책을 사 보는 독자를 뜻한다. 따라서 실제 작가와 실제 독자는 작품외부의 맥락에 존재한다. 네모로 묶여진 곳에 있는 네 요소가 실제의 작품을 구성하는 전달 과정에 해당한다. 내포 작가(implied author)는 실제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을 읽어 줄 내포 독자(implied reader)를 상정해 가면서 화자를 설정하여 사건을 꾸미고 인물을 배치해 가며 작품 전체를 주도해 간다. 채트먼은 드라마적인 대화의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라든가 내포 작가의 일방적인 논술 형식으로 된 작품을 고려하여 때로는 서사물에서 화자(narrator)와 청자(narratee)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위에서 보는 것처럼 화자와 청자를 괄호로 묶었다. 여기에 대해 리몬-캐넌(S. Rimon-Kenon)은 반론을 제기하였다. 어떤 서사물이고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인 한 화자와 청자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내포 작가와 내포 독자는 작품 내의 전달 상황에 참여하지 않는 요소이므로 분석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소설 이론쪽에서도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방법을 시의 분석에 끌어들이면 적지 않은 무리가 생긴다. 시에서는 내포 작가와 내포 독자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화자가 청자를 설정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경우에 내포 작가와 내포 독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소설과는 아주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가령 다음의 두 작품을 보자.
세월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김사인, 「지상의 방 한 칸」 전문
아들아, 나 죽어 이 집의 울타리가 되리라.
칼 뽑아 네 어미 아름다움 버혀 가려던
눈먼 무리 앞에 무릎 꿇 순 결코 없어
황망한 칼빛 아래 내가 죽거든
아들아, 억새풀 엉겅퀴 새 돌 눌러 날 묻지 말고
우리집 마당 가운데 나직하게 묻어다오.
혹 떨어져 나간 내 뼈 있거든
밤마다 숫돌에 갈고 갈아 화살촉 만들고
흩어져 날리는 머리칼 있거들랑
빠짐없이 추려 모아 화살줄 매어다오.
앞 못 보는 너희 아빌 핍박하러 오는 무리
날만 새면 사립문 앞에 눈 치뜨고 모이리니
내 어이 죽어선들 한적한 산그늘이나 떠돌며 다니리
아들아, 이 어민 속 붉은 꽃으로 꼭 다시 피어난다.
나 죽어도 내 집의 울타리꽃으로 피어난다.
도종환, 「울타리꽃」 전문
화자와 청자의 측면에서 이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지상의 방 한 칸」의 경우 화자는 시인 자신과 거의 일치하고, 청자는 없거나 자기 자신이거나 확정되지 않은 다수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인은 자신의 괴로움을 누가 듣건 말건 혼자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시로 써서 발표한 것을 보면 그 시를 읽어줄 어떤 독자를 상정한 것이기는 하다. 화자의 말을 들어줄 청자는 화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화자의 처지에 동감하며 격려의 뜻을 보낼 사람들일 텐데 그렇다고 청자가 어느 부류로 한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울타리꽃」은 이와 달리 화자와 청자가 표면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 화자는 자신과 가정을 지키려다 죽는 어머니이고 화자는 뒤에 남아 싸움을 계속해야 할 아들이다. 화자는 직접 청자에게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말하자면 시인 도종한은 뒤에 숨고 어머니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뜻을 말한 것인데 독자들은 이 시의 생각과 감정이 시인 자신의 그것이라는 것을 모두 파악한다. 그리고 시인은 화자의 결곡한 어조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될 것을 노린 것이다.
「지상의 방 한 칸」은 내포 작가와 화자가 일치하고 있고 시인이 직접 불특정 다수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굳이 내포 작가나 내포 독자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울타리꽃」의 경우는 화자는 어머니이고 청자는 아들인데 그 둘의 관계만으로 시의 의미가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를 읽어줄 다수의 독자들에게 저항의 의미가 확산될 것을 기대하고 있으므로 작품 내부에 내포 작가와 내포 독자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에서 청자를 설정하여 화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경우 그 생각은 비단 화자와 청자에게 국한되지 않으므로 그런 작품들은 거의 다 이런 형식을 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화자가 아들로 설정되어 있고 청자인 어머니에게 그 먼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나라에 가서 살 것을 권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나라로 가서 살 것을 권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시인의 뜻은 이 시를 읽어줄 독자들이 모두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실제작가’ 신석정의 분신인 ‘내포작가’는 아들 ‘화자’를 내세워 어머니 ‘청자’에게 이상세계에 가서 살 것을 권유하였는데 그것을 통하여 이 시를 읽을 ‘내포독자’들이 그 생각을 공유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채트먼의 도식에 의해 시의 화자를 분석하거나 그 결과를 설명할 때 이와 같은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시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로만 야콥슨은 발화의 일반적인 형식을 세 가지로 나눈 바 있다. 즉 발화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이야기의 내용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것을 시의 전달맥락과 관련지어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화자(시인) ――― 메시지(작품의 언어와 의미) ――― 청자(독자)
야콥슨은 화자 중심의 발화가 화자 자신의 정조를 주관적으로 드러내는 양상을 띠고 청자 중심의 발화는 상대방에게 명령․권고하거나 애원하고 호소하는 양상을 띠며 화제 지향의 발화는 사실을 보고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객관적인 발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많은 개론서들이 화자의 유형을 설명할 때 야콥슨의 이 도식을 원용하고 있다.
이것을 앞에서 설명한 내용에 적용해 보면 「지상의 방 한 칸」은 명백히 화자의 감정을 나타내므로 화자 지향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정시 역시 화자의 감정을 드러내므로 이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비해 「울타리꽃」은 청자에게 앞날의 일을 당부하고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청자 지향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청자에게 의미의 중심이 놓이고 화자는 그 의미가 희석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청자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화자의 사고와 감정이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말하자면 화자의 사고와 감정이 청자의 행동에 그대로 이양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석정의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다음의 시편들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후반부
노래해다오. 다시는 부르지 않을 노래로 노래해다오. 단 한번만 부르고 싶은 노래로 노래해다오. 저 밤하늘 높디높은 별들보다 더 아득하게 햇덩어리 펄펄 끓는 햇덩어리보다 더 뜨겁게, 일어서고 주저앉고 뒤집히고 기어오르고 밀고 가고 밀고 오는 바다 파도보다도 더 설레게 노래해다오. 노래해다오. 꽃잎보다 바람결보다 빛살보다 더 가볍게, 이슬방울 눈물방울 수정알보다 더 맑디맑게 노래해다오. 너와 나의 넋과 넋, 살과 살의 하나됨보다 더 울렁거리게, 그렇게보다 더 황홀하게 노래해다오 환희 절정 오싹하게 노래해다오. 영원 영원의 모두, 끝과 시작의 모두, 절정 거기 절정의 절정을 노래해다오. 바닥의 바닥 심연의 심연을 노래해다오.
박두진, 「書翰體」 전문
위의 두 편의 시는 상대방에게 어떤 일을 권유하고 애원하는 어법을 취하고 있다. 그 발화의 형식만 보면 야콥슨의 구분에 의한 청자 지향 발화의 예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 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역시 여기에는 화자의 사고와 감정이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은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유하고 있으니 젊은 시인들의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화자 자신이 눈처럼 순수하고 영원한 존재 앞에서 자신의 울분을 토로하고 정직한 존재로 서고 싶은 소망과 의지를 상대방에 대한 권유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를 뱉어내고 싶은 자아의 충동은 사실 이 시의 화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박두진의 「서한체」 역시 노래해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스스로가 그러한 영원 절대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화자의 의도가 없다면 시 자체가 애초에 성립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시는 표면적으로 청자 지향의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라도 결국은 화자 중심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야콥슨의 세 가지 발화 형식을 시에 직선적으로 대입하게 되면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트먼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야콥슨의 발화의 유형 구분을 시의 화자 분석에 무절제하게 도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화자의 분석 방법은 아직 중․고등학교 시 교육 단계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의 시 교육에서는 상당히 그 영향력이 크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 논문까지 나오고 있어서 이것에 대한 경계를 해 두지 않을 수 없다.
5. 시의 운율과 압운
우리나라 시 교육에서 가장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운율에 대한 부분이다. 개론서를 보면 리듬, 운율, 압운, 율격 등의 용어 사용에서부터 많은 혼란을 보이고 있으며 해당 내용의 설명과 그 예시 작품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용어의 설명도 정확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중요한 하나는 우리나라 시론 책이 모델로 삼고 있는 서구의 운율론이 어느 하나의 이론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책을 참고하여 시론 책을 썼을 텐데 그 참고도서가 기대고 있는 논리의 틀을 파악하지 못한 채 부분적인 내용만을 떼어서 옮겨오다 보니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서술이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중세 유럽시의 운율을 설명한 책과 19세기 영국시의 운율 구조를 설명한 책과 시의 음악성의 본질을 해명한 책을 부분적으로 참조한 후 그 내용을 조합해 놓는다면 그 서술이 일관성을 잃을 것은 뻔한 노릇이다.
서구의 정형시, 그것도 영국의 정형시를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를 몇 개 나열한 다음, 그 의미도 부정확하게 제시해 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20세기 한국시의 운율 구조나 음악성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 시의 운율을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서구 운율론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전통 시가의 운율 양상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그 운율적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여 우리 나름의 운율론의 체계를 세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방면에 일찍 관심을 가진 김대행, 조동일, 성기옥 등의 학자들이 그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좋은 성과를 내놓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과들이 아직 시 교육의 현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운율에 대한 설명 중 특히 오류를 많이 보이는 것은 압운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영국 정형시를 창작하는 데 지켜진 규칙이므로 어쩔 수 없이 영어권 시를 중심으로 그 개념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영국 시의 라임은 원래 시행의 끝음이 같은 음으로 끝나는 것을 뜻한다. 같은 음으로 끝나되 강세가 있는 모음이 동일하게 끝나거나(slow - glow) 모음과 그 다음의 자음이 동일하게 연결될 때(buying - crying) 완전운(perfect rhyme)이라고 하고, 마지막 자음만이 같을 때(love - move ; on - tone) 반운(half rhyme) 혹은 불완전운(imperfect rhyme)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강세 있는 마지막 음절이 동일하게 끝날 때 남성운이라고 하고 강세 없는 음절이 동일하게 끝날 때 여성운이라고 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라임이 넓은 의미로는 같은 위치에 같은 음이 반복되는 것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광의의 라임과 구분하여 시행 끝음의 동일한 반복만을 말할 때는 end rhy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이 용어를 보통 각운이라고 번역해서 쓰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먼저 썼음직한 이 번역어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미 일반화된 말이기에 쓰지 않을 수 없다. 각운과는 달리 시행의 중간에 있는 음과 시행의 끝에 있는 음이 같은 음으로 반복될 때 혹은 시행의 중간에 있는 음끼리 동일하게 반복될 때 그것을 중간운(internal rhyme)이라고 한다. 다음의 예가 그러한 것이다.
The splendour falls on castle walls
And snowy summits old in story:
The long light shakes across the lakes
And the wild cataract leaps in glory.
―A. Tennyson, 「불어라, 나팔을, 불어라」(Blow, Bugle, Blow) 일부
이 시에서 falls와 walls, shakes와 lakes가 각각 중간운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walls와 lakes는 운을 이루지 못하지만 story와 glory는 완전한 각운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중간운은 각운과는 별도로 성립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 인용에서 1행과 3행 첫머리에 The가 반복되고 2행과 4행 첫머리에 And가 반복되고 있지만 이것은 라임이 아니다. 라임은 같은 음의 반복이지 같은 글자나 같은 단어의 반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각운이나 중간운과는 달리 시행의 내부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에 같은 음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에는 어두운(語頭韻, alliteration), 모음운(assonance), 자음운(consonance)이 있다. 어두운은 여러 단어의 첫머리에 같은 자음이 반복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윈번(Swinburn)의 시 「아틀란타로부터의 합창」(Chorus from ‘Atlanta’)에서 “For winter’s rains and ruins are over,/And all the season of snows and sins;”처럼 r음과 s음이 단어 첫머리에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위의 테니슨의 시에서도 2행의 s음의 반복, 3행의 l음의 반복을 어두운의 예로 찾을 수 있다. 모음운은 자음 사이의 모음이 같은 음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하며 자음운은 다른 모음 뒤에 자음이 같은 음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ꡔ프린스턴 시학사전ꡕ 신판에서는 그것을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 놓았다.
이러한 영국 시의 압운의 유형은 사실 우리 시의 이해에 별 도움이 안된다. 더군다나 영국 시에서 규칙성을 가지고 지켜진 것은 각운 정도이며 어두운은 고대 게르만어계의 시에 주로 사용되던 것이고 모음운 역시 고대 로만스어계 시에서 사용되었을 뿐 18세기 이후 영국 시에는 그 부분적인 흔적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앞에서 지적한 우리쪽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압운에는 두운과 요운과 각운이 있다는 설명이 시론 책마다 나오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설명을 이제는 그만 폐기해 버려야 할 것이다. 어떤 책에는 모음운과 자음운을 요운(internal rhyme)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흔히 시행의 첫머리에 같은 음이 반복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두운은 우리 시에는 물론이고 영국 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영국 정형시에는 ‘각운’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중간운’이 드물게 사용되었으며 ‘어두운’과 ‘모음운’, ‘자음운’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시의 압운 유형에 해당하는 이 다섯개의 용어는 혼동이 없도록 운율론적 차원에서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 시에서는 압운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시도된 예는 보이지만 압운이 규칙적으로 사용된 예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시에서 두운이나 요운, 각운을 운위하는 것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 얘기다. 다만 어두에 같은 음이 반복되어 음성적 효과를 가져오는 방법은 우리 시에도 보이는 것으로 그 시적 효과에 대해서는 시의 음악성의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음성상징의 테두리에 넣어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다.
6. 남는 말
여기까지 우리 시 교육의 현장에 도입된 문학이론 중 그것이 잘못 적용된 몇 가지 사례를 검토해 보았다. 이 글에서 거론한 이론들을 그 자체로 독립시켜 놓으면 그것은 그 자체의 정당성을 지닌 훌륭한 이론이고 문학의 이해와 분석에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론이 시를 설명하는 국면에 도입될 때 모순이 발생한다. 가령 서사시, 서정시, 극시의 구분은, 흔히 시로 지칭되던 유럽 근대 이전의 문학을 대상으로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다. 또한 야콥슨이나 채트먼의 이론도 그 자체의 코드 내에서는 모순이 없다. 그것이 시에 도입되어 시를 설명하고 시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보조이론으로 활용될 때 문제가 야기된다.
이러한 잘못된 이해가 논문의 논거로 사용될 때는 그 논문의 오류를 비판하면 된다. 그런데 교과용 도서에 내재해 있는 이론적 지식의 오류에 대해서는 학술적 차원의 비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의 차원에서 방관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거기 서술된 내용을 점검하여 그 오류를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학문이건 교육이건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작업인데 진리를 추구하는 마당에 잘못된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이 작업을 통하여 시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데 도입된 문학이론 전반을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하고 그 타당성을 새롭게 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요즘 활발히 전개되는 문학교육론의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국부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문학학에 종사해 온 필자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커다란 과업을 이룰 수는 없다. 문학교육론의 커다란 틀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문학교육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세부적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일도 중요하다. 무수히 많은 개별적 사실을 다 다룰 수 없어서 추상의 체계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는데 개별적 사실을 떠난 추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시 교육에 도입된 문학이론의 오류를 다루었을 뿐, 시 교육에 지식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그 지식은 어떤 종류의 지식인가, 지식을 통한 시 교육은 우리에게 어떤 효능을 주는가 하는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필자는 힘이 닿는 대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려 하는데, 필자보다는 문학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동학들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시를 가르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해명인데 이것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파헤쳐야 할 평생의 과업이다.
문학 교육에서 이론의 위치
윤 여 탁
1. 문학 교육의 새로운 모색
국어 교육 연구는 그 동안 학문적 정체성(正體性) 확보를 위한 논의를 활발히 전개하여 왔다. 이런 과정에서 국어 교육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려는 노력을 전개하였다. 이런 논의를 통하여 국어를 대상으로 한 국어 교육은 ‘사용’으로서의 국어 활동과 ‘문화’로서의 국어 활동이라는 두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견해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이런 원칙적인 합의를 토대로 국어 교육학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즉 국어 교육학의 연구 대상, 연구 영역, 연구 방법, 교과 과정에 대한 구체화 작업이 이론과 실제의 측면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국어 교육 각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각 영역에 대한 논의들도 나름의 이론적 토대를 확보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검증 작업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구체적이고 진지한 연구 작업들을 통하여 국어 교육 내에서 문학 교육의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즉 그 동안의 국어 교육에서 ‘사용’ 원리만을 강조하여 학문적 폐쇄성으로 흐를 수 있었던 가능성을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열린 가능성의 장(場)을 새롭게 펼치고 있다. 어떻든지 국어 교육에서 문학 교육의 위상은 여러 도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 학문적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한 일부 연구자들의 노력의 덕분에 새로운 장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한계도 아울러 노정하고 있다. 즉 국어 교육학이 이론 학문이면서 실천 학문이라는 이중성때문에, 이론이 강조될 경우에는 국어 교육의 독자적인 영역이 무엇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되고, 실천이 강조될 경우에는 교육이라는 일반적인 틀 속에 함몰되기도 한다. 특히 문학 교육은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이론과 그 교육적 변용 사이에서 심각한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그 대체적인 원인은 문학 이론과 문학 교육 이론 사이에 놓이는 변별적 자질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데에서 연유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의 일환으로 ‘문화’ 이론이 도입되었다. 문화의 원리가 국어 교육에서 중요한 만큼, 문학 교육에서 문화 개념의 도입은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일부 성과들은 문화 이론에 대한 소개에 머물거나 문제 제기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전이 아니라 당대 문학 및 문화와의 연관 속에서 가르치고자 한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들의 시가 갖는 난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대시의 존재 방식과 그것이 반영하고 있는 문화적 배경의 이해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당대의 문학(진정한 의미의 현대 문학)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문화 교육론이라는 입장에서 통하여 이상과 김수영의 시를 분석한 글의 한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우리 문화 전통과는 다른 이상(李箱)과 김수영(金洙暎) 시의 난해성의 원인을 ‘반고백(反告白)’으로 분석하여, 이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글은 이 논문은 핵심축의 하나인 현대시의 존재 방식은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또다른 축인 문화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이 배경과는 다른 ‘반고백’의 의미에 대한 충분한 설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즉 문화를 문학 교육에 도입하는 중요한 이유인 문화적 배경(원리)의 해명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문제 제기는 바로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이 비판한 인문학 주의, 문학 주의의 범주(다르게는 교양의 범주) 안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문학 작품(무엇)을 가르치는 방법(어떻게)에 대한 고려만 있지,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고려를 생략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런 경향은 이후의 논문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먼저 문화의 관점에서 문학 교육을 접근하고 있는 글들은 문학과 문화의 관계나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문학을 인문학 일반으로 곧바로 치환하는 인문학자 일반의 오류를 같이 범하고 있다.(특히 위기론을 논할 때 두드러짐.) 또한 문화 개념이 문학 교육에 도입되게 된 문제 의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즉 문화가 생성할 수밖에 없었던 문화적 배경, 사회적 상황, 사상, 이데올로기를 분석하여 제시하지 못하고 문학의 현상적 차원을 분석하거나 문학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여, 그것을 문화로 설명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분류학의 기본을 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문학은 문학이다. 그리고 이런 문학은 여타 예술 장르들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문화의 한 영역일 뿐이다. 또한 문학을 변용시킨 영화, 비디오, 연극 등은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술 영역의 하나일 뿐이다. 특히 영상 예술은 문학의 변용체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의 해석에 직접 연관시키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문학 교육에는 활용될 수 있다. 이것 역시 문화라는 큰 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류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미자각과 개념의 혼란에서 오는 이런 문제점은 문학 교육의 본질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문학 교육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김대행 교수의 원론적인 문제 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앞의 글들과 같이 문학 교육의 문화론적 접근을 꾀하고 있으면서도, 문학 형식과 내용에 대한 교육적 해석과 그 문화론적 의의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글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문학의 이론과 문학 교육의 이론이 보여주는 변별점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으며, 문학을 왜, 어떻게 가르쳐야 되나도 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견지할 때, 문학 작품의 분석은 문학 연구자들의 몫이고, 이런 문학 작품을 교육하는 데에는 나름의 개별적인 특성이 있다는 문학 교육론자들의 일반적인 합의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이런 차원의 문제 의식에서 논의의 출발점을 삼고자 한다. 즉 시 작품의 분석을 토대로, 이를 가르치는 데에 작용하는 여러 원리와 변인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단순한 문학적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는 문학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내면화 또는 문학 작품의 확대 재생산) 어떤 문화적 배경과 이론이 작용하고 있나를 분석하고, 그 의의를 구체적으로 살피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 그 동안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이자, 문학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꾸준히 그 의미가 점검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본고에서는 분석의 텍스트로 삼고자 한다.
2. 문학 작품의 교육적 의미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문학 교육 연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를 해명하는 데에 무게 중심이 놓여야 한다. 그리고 이 요건들은 교육이 실천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모든 국면에는 교육의 이념 즉 이데올로기가 알게 모르게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라는 내용 영역에서는 교육의 체계를 이루는 제도와 그 체계를 지탱하는 교육 정책에 깊이 작용하고 있으며, 어떻게의 방법적 측면에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교육 매체(텍스트나 여타의 교육 vehicle)의 선정에 작용한다. 또한 왜라는 문제는 교육의 가치와 효용성을 결정하는 근본 문제로, 교육의 포괄적인 목표가 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교육의 이념에서 자유스러울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방법의 측면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내용이든지 교육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목표가 설정되더라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예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즉 문학 작품의 감상(이해, 분석, 해석)의 다양한 방법 중에서 어떤 관점을 택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런 문학 작품 감상 방법의 다양성은 교육과 연구의 무정부주의로 해석되기도 했고, 그런 혐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후기 산업 사회의 다원적 사고와 맞물려서 이런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여러 방법론들 속에는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 감상에 작용하는 작가 ─ 텍스트 ─ 독자라는 의사 소통 과정의 틀이 교사 ─ 텍스트 ─ 학생이라는 문학 교육의 틀로 변이되어 절대적인 역할을 하면서 깊이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이 사이에 작용하는 제도적 장치이자 권위적인 존재로 작용한다. 아무리 자율 학습을 강조하더라도 교사의 자리와 그 역할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학생은 이런 교사의 가르침(지식)을 수용・적용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습자가 문학 작품을 수용하는 과정에는 교사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과정에는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학 연구 방법론이라는 지식 체계 또는 문학 이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학습에 작용하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을 구비한 자는 교사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은 아직 그런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초보적이고 인상적인 분석 능력밖에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진 교사와 이런 교사의 지배를 받는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관계는 일방 통행이 손쉽게 선택된다. 그러나 교육은 일방 통행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올바른 교육은 학습의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학생 스스로 작품을 분석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적용 능력, 창의성, 표현력을 증진시키고 열어주어야 한다.
또한 문학 교육은 문학 작품을 매개로 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 즉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된다. 아울러 정확한 분석을 기초로 한 의미화 작업이 요구된다. 이에 비하여 그 동안의 문학 수업은 문학 작품의 분석 자체나 편향된 분석 시각의 전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람직한 문학 수업은 텍스트라는 교육의 내용(대상)을 분석하는 외에도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인 의미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때 의미화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내면화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항들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국화 옆에서」를 학습하는데 작용하는 여러 요소들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따져보기로 한다.
1) 「국화 옆에서」의 교육적 분석
「국화 옆에서」라는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먼저 이 작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 시는 해방 직후 ꡔ경향신문ꡕ(1947. 11. 9)에 발표된 서정주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ꡔ서정주 시선ꡕ(1956)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생명파’로 지칭되던 초기의 시세계를 넘어서 그의 중기시의 세계인 ‘신라 정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놓이는 작품이다. 강렬한 생명 의식의 추구나 신비로운 동양적 전통관과도 일정한 거리가 있으며, 일제 강점기 말기의 친일이라는 개인적 부끄러움도 어느 정도는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식물적 이미지를 통하여 대지와의 수평적 자세로부터 하늘로 향한 일어섬의 수직적 상상력의 발현이며, 정신적 삶의 소중함 또는 상승적 삶의 경건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해석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 시에 대한 현학적인 해석이나 의미 부여보다는, 작품을 중심으로 우리가 비교적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해석의 한 예를 먼저 살펴보자.
이 작품은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거쳐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꽃의 모습에서 삶의 깊이와 생명의 본질적 모습을 읽어내고자 하는 심층적 주제 의식을 담은 시이다. 이러한 주제는 서정주가 초기시에서 탐구한 생명성을 보다 인생론적 관점에서 심화시켜 시적 정서를 승화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심화된 주제 의식을 뒷받침해주는 요소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운율의 측면에서 보면 이 시는 4음보의 7.5조 율격을 바탕으로 안정되고 정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운율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소재를 선택하고 다루는 태도의 측면이다. 우선 이 시의 중심 소재인 국화는 본래 동양에서는 4군자의 하나로 지조(志操)와 절의(節義)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된 국화꽃의 모습은 풍상을 겪은 중년 여인인 ‘내 누님’으로 비유됨으로써 보다 일상적이면서도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끔 한다. 아울러 소쩍새와 천둥, 무서리 등의 자연적 소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 혹은 자연 속에 동화된 인간적 삶의 원형을 탐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번째 특징적인 측면은 그러한 소재에 투영된 세계관 즉 작자의 인식의 측면이다. 이 시는 각 연의 전개 과정의 배경을 봄, 여름, 가을이라는 계절의 순환으로 제시하는 한편, 생명의 신비가 우주적 인연의 가능성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어떤 인연에 따라 생겨난다는 불교적 윤회관 및 인연설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신비함과 존엄성에 대한 깨달음을 수많은 괴로움과 시련의 결과로 파악하는 독특한 상상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제시된 누님의 모습은 확실히 어떤 성숙하고 은은한 동양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곧 삶의 욕망을 격정적으로 노래했던 시인이 조화로운 삶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적 경지를 확보했음을 뜻한다. 관조적이고 반성적인 어조의 시풍은 생명파로서 시인의 지속적인 자기 변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해석 외에도 몇 가지 구조와 관련된 사실의 해석이 첨가될 수는 있을 것이다. 즉 이 시는 전체적으로 4연의 구조를 지닌 기승전결이라는 논리 전개 방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1~2연이 국화꽃이 피기까지 겪은 사실의 객관적인 기술인 것에 비하여, 3~4연은 꽃과 시적 화자인 ‘나’와 관련시키는 주관화를 꾀하고 있다. 또 각연의 앞의 2행은 자연적 현상을 기술하고 있음에 비하여 나머지 다른 행에서는 그 현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고대 시가의 전통적인 시작법인 전경후정(前景後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문학사적인 위치에 대한 평가나 해석도 덧붙여질 수 있다. 여러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서정주는 우리 현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학생들이 평가하는 데에는 이미 내려진 기존의 이런 평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인 개인적인 이력이나 우리 문학사의 흐름과도 관련시켜서 해석할 수도 있다. 굳이 역사주의나 문학 사회학의 이론을 도입할 필요는 없겠지만, 역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스러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위와 같은 해석 일반은 이 작품을 가르치는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설명이다. 특히 위에서 인용한 해석은 운율, 구조, 소재, 주제와 같은 문학 내적인 사실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전통, 독자 반응, 작자의 의도와 같은 문학 외적인 사항들에 대한 설명도 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나름의 의미화 단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문학 작품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분석에 이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어떻든지 문학 교육의 현장에서는 문학 작품에 대한 정확하고 꼼꼼한 읽기가 필수적이다. 과장하여 말하면 백과사전적인 지식과 무정견적인 지식의 총화를 이룩하여야 한다는 무리한 주문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수준의 학습자를 상대로 하여야 하는 교육이라는 현실의 여건을 생각하면, 이런 요구에 부응하는 일은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어떤 문학론의 비판에도 할 말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학 교육에서 문학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 문학 이론 또는 문학적 지식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습의 장에서는 이런 지식의 축적과 함양을 교육의 한 목표로 설정하여야 한다. 다만 문학 교육은 이런 지식의 전달이나 축적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을 여기서는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2) 「국화 옆에서」의 문화 교육적 의미
문학 교육의 이론은 문학 작품 분석의 틀을 교육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에 작용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작용이라는 개념은 일방적인 전달이나 주입이 아니라 상호 작용의 원칙이 실현될 경우이며, 이 때 교육의 효과는 증진된다. 즉 문학 작품과 그것을 향유하는 교사, 학생들의 관계가 교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문학의 수용과 내면화가 작품을 읽는 향유자 자신들에게서 실현된다.
더구나 제도 교육이라는 반강제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문학 교육 현장을 벗어나면 이런 상호 작용의 원리는 문학 향유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실제로 제도 교육의 밖은 대중 문학 또는 대중 문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처럼 장애물없이 접근하는 대중 문화와 문학에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독자에게 길러주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대중 문학과 문화의 향유자들에게 고급 문학 또는 문화를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적인 장치와 전문가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비록 이런 시도들이 ‘순문학주의’, ‘엘리트주의’,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문학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태를 강너머 불 보듯이 방치할 수만은 없다. 소비 사회라는 대세의 흐름 속에서 대중 문학이나 문화와는 다른 건전한(?) 문학과 문화가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 교육은 이런 고급 문학과 문화가 지속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문학 교육을 문화라는 큰 틀 속에서 논의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은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즉 문학의 일시적 위기론이나 흐름과는 차원이 다른 큰 흐름과 맥락에서 문학의 존재론적 배경과 그 현상, 원리(속성), 작용의 문제를 바르게 구명할 수 있는 계기를 문화론과 문학 교육의 문화 교육적 측면에서 찾고 있다.
특히 이미 형성되어 있는 현상으로서의 문화가 아닌 작용태로서 문화를 보는 관점은 문화와 문화 향유자간의 상호 작용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문학 작품이 교육되는 우리 문화의 원리와 배경을 살피는 것은 문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의 하나이다. 문제는 발생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수용론적인 차원에서 그 문화적 배경과 작용 원리를 교육 현장에서는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화 옆에서」라는 시 수용의 문화적 배경을 한 번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문학 교육에 작용하는 문화적 배경의 유형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의 하나가 이데올로기이다. 또 시인의 의식 속에 암암리에 작용하는 문화적 전통이나 생활 속에서 사유를 지배하는 사고 과정이 논의될 수 있다.
먼저 앞의 절에서 작품을 분석한 사항들을 기초로 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이 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즉 전통 시가의 대표적인 시조에서 많이 나타나는 전경후정이라는 시작법과 서정시의 여성주의 문학 경향, 전통적인 4음보 율격의 실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국화로 대표되는 소재의 상징적 의미 실현이 이 시에는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시가의 전통은 특히 시조의 양식적 특성이었으며, 이런 양식 실현의 배경은 양반으로 대표되는 사대부 정신과 주자학이라는 유교 정신이었다. 아울러 발생론적 측면에서 이런 전통의 수용은 서정주가 어린 시절 한문을 수학했던 체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와 사상은 그에게서 창조적으로 발전 계승되어 우리 시의 폭을 확충하였으며, 깊이를 심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 시는 시작법상 전경후정의 이분법을 쓰고 있지만, 논리의 전개 방식으로는 기승전결의 4단 구성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이분법이나 4단 구성의 논리 전개 방식은 우리 전통적인 시가인 시조의 구성 원리로 설명될 수 있은 것으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역시 이런 구성 원리와 논리 전개 방식을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관점에서 우리 시가의 서술 방식을 통하여 논리 구조와 사유 체계, 문화 체계를 설명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특성 역시 문화적 전통의 배경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어떻든지 이 시의 사유 방식은 우리의 시가나 교술적인 글의 사유 방식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우리 전통적인 충효(忠孝)의 이념으로 대표되는 순응주의를 계승하고 있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저항하기보다는 나름대로 견디고 적응하기를 권하는 삶의 모습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있다. 이는 그의 유교적 학문 체험이나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되는 종교 체험인 불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우리 나라 불교는 호국 불교로 설명될 수 있는 대승불교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종교적 체험 역시 충효로 대표되는 순응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정신, 사상, 종교의 기반 위에서 형성된 이데올로기가 그의 작품의 기조를 이루며, 이런 경향이 해방이후 그의 문학 세계의 전개에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고(忍苦)’, ‘생명 탄생의 지난(至難)’ 등의 용어로 설명되는 그의 「국화 옆에서」는 이런 이데올로기적 지향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런 속성은 어려운 시대를 참고 견디기를 바라는 국가의 지향성과 맞아 떨어졌으며, 이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어떻든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학생과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맥락 속에서 교육되어야 정책이 요구하는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아울러 문학 교육 연구자들은 이런 문화적 맥락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문학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교육의 문화적 맥락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정신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 특징이 규정된다. 그리고 문화의 결정체(結晶體)라고 일컬어지는 문학이 왜 가르쳐져야 하는가는,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과 그것을 가르치는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또 이런 배경이 일치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문학 교육은 문학을 포함하는 전(全) 문화의 본질과 속성, 작용의 원리를 제대로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도 문학의 이론이 필요하고, 더 넓게는 문화 일반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학습이 필요하다. 다만 이런 이론들은 문학주의나 문화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서 교육이라는 실천적 현장을 항상 고려한 가운데에서 검토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3) 「국화 옆에서」의 교육적 의미에 대한 비판
앞의 1절에서 이루어진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문학 이론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문학 학습의 현장에서는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이 해석이 학생 스스로 자율 학습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또한 이 해석이 전하고자 하는 지식 내용을 학습자인 학생 일반이 제대로 암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문학 교육에서 이런 작품 분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학습자의 수준이나 단원의 학습 목표에 따라서 교육되는 분석의 내용 범주도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즉 이미지를 분석하는 경우와 시의 구조를 설명하는 경우, 시의 표현을 학습하는 경우에 따라 내용은 현격히 다를 수 있다. 더구나 문학 작품의 수용적 측면에 대한 학습의 장에서는 이런 개별적인 지식보다는 통합적인 분석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런 점 역시 문학 교육에서 무엇에 해당할 뿐이다. 궁극적으로 문학 교육에 의미 있게 작용하는 것은 어떻게의 문제와 왜라는 문제이다. 왜,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느냐는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교육에는 너무 많은 변인들이 작용하고, 그 변인들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어 교육 특히 문학 교육에서 「국화 옆에서」를 교육 내용으로 삼을 때 고려할 요소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먼저 발생론적 차원에서 이 시가 발표되었던 시대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고려와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설할 필요가 있다. 즉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의 시련 뒤에 찾아온 해방정국이라는 새로운 희망과 혼란기에 발표되었다. 이런 맥락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차원에서, 이 시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관점은 문학 사회학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감수하여야 한다.
특히 이런 해석의 근간에는 서정주 개인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력도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는 1930년대 모더니즘적인 경향과 생명 의식을 추구한 ꡔ시인부락ꡕ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그 ꡔ시인부락ꡕ의 동인으로는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여상현, 김상원 등이 활약하였다. 더구나 그는 일제 말기에 친일 행적하기도 한다. 또한 해방을 맞은 후 그의 주변에 있던 많은 인물들은 친일 상처를 치유하려고 ‘조선문학가동맹’이나 ‘조선문필가협회’의 활동에 적극 가담한다.
이런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려는 서정주라는 시인 자신의 자화상을 새롭게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행적과 행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만일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거울 앞에 선 ‘누님’은 시인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시적 화자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인생의 풍상을 겪고 이제는 담담한 심정으로 인욕(忍辱)의 세월을 곱씹고 있으며, 여러 고통스러운 기억을 넘어서 새로운 탄생의 의미를 찾고 있다.
교육의 장에서는 이처럼 적극적인 문학 작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시대와 사회의 소명 의식과 관련하여 문학 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해방 이전을 살았던 세대에게는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으로 작용했던 것 중의 하나는 친일 문제였다. 특히 시대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인이자 문인이었던 서정주의 자의식 세계도 이런 문제에 자유스러울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문학 교육의 장에서 「국화 옆에서」를 채택할 때에는 이런 시가 교육되는 수용적 상황과 그 문화적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문학 작품이 수록되는 교과서 정책 또는 교육 정책의 핵심에 작용하는 원리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의도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이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되는 배경은 정치적으로는 독재 정권의 불합리한 폭정과 경제적으로는 이들 정권에 의해 수행된 경제 개발 정책이었다. 소위 개발 독재의 폭압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량한 국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 희생이다. 대의(大義)를 위하여 개인의 권익은 어느 정도 제한받을 수 있고, 이런 제한이야말로 가족과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는 명분이 대두하게 된다.
멀리는 중세의 보편주의 윤리 의식이었던 충효라는 덕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런 정책은 교육적으로는 순응주의 교육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가깝게는 일제가 충량(忠良)한 황국신민을 양성하기 위해 추진했던 교육이나 문화 정책과 별로 다르지 않은 정책을 이 땅의 집권자들과 그 정책 수행자들은 수립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된 배경에는 우리 문학의 한 조류를 이루었던 여성주의 문학 경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경향도 순응주의나 중세 보편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저항보다는 소극적인 협조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에 의해 선호된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현대는 친일 문제와 같이 비교적 가치 평가가 분명한 문제마저도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한 혼란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이 궁극적으로는 이와 같은 교육 정책과 이념 수립에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위와 같은 교육적 의미의 해석에는 지나친 과장과 억측이 개입되고 있음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적 관점이 교육의 장에서는 필요하다.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문학 작품 교육의 내용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작품의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그 의미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학 교육에 작용하는 어떻게의 문제와 관련된 관점의 문제이며 문학 교육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 문학 교육의 이론이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즉 문학 교육의 이론은 문학 작품 분석의 틀 위에서, 그 교육적 의미를 해석하는 단계에서 작용하는 이론이다. 이 차이를 국어 교육의 ‘표현’과 ‘이해’와 관련하여 설명하면, 앞의 절에서 살핀 문학 작품의 교육적 분석인 전자는 국어 교육에서 국어 활동을 실현하는 행위인 ‘이해’의 영역이라면, 이 절에서 살핀 교육적 의미를 해석하는 후자는 ‘표현’과 관계된 이론과 능력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학 작품의 분석 이론도 문학 교육의 이론과 더불어 교육의 장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문학 교육의 이론적 탐색과 다양한 접근을 통하여 문학 작품 교육의 의미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틀을 교육에 관여하는 사람 모두가 마련하여야 한다. 특히 교사는 이런 실력과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3. 이론의 문학 교육적 의미
국어 교육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학이나 언어학과 관련된 이론의 위상은 배우지 않아도 될 지식일 뿐이라고 주장된 적이 있었다. 이런 주장은 국어 교육의 영역을 사용과 문화의 양 측면으로 확장한 지금 이 순간에도 별로 변화되지 않았다. 문학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아도 문학 교육, 국어 교육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아직도 용도폐기되지 않았다.
이런 견해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교육 과정에서나 올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새로운 교육 과정에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표현과 이해라는 넓은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말하기, 쓰기, 듣기, 읽기의 네 영역이 아직도 국어 교육의 핵심이며, 문학이나 언어학은 이런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국어 사용의 가장 높은 수준이 문학 작품임이 인정되어, 국어 교육 전 영역에 걸쳐 문학 작품은 중요한 내용이 된다. 한 예로 검인정으로 ‘문학’이라는 독자적인 교과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서’라는 교과에서도 문학 작품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어’ 과목에서도 문학 작품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차원은 조금 다르지만 ‘작문’이나 ‘화법’에서도 문학 작품이 제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문학 작품은 국어 교육에서 크고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학 작품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본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이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문학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는 기초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경우 문학의 이론은 배경 지식이 아니다. 배경 지식 이전의 문제이며, 배경 지식 이후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학 교육의 확실한 실체이다.
우리 문학 교육의 현상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신비평으로 대표되는 분석주의가 도입되어 문학 교육이 지식이나 문학 용어를 전달하는 데 머물렀다는 비판은 아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느끼기만 하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見)’의 시대로 다시 갈 수는 없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학 교육이 문학 작품의 분석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작품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물론 이런 단계마다에는 각기 다른 이론들이 작용하게 될 것이다. 분석의 단계에는 문학의 이론이, 해석의 단계에는 문화의 이론이, 교육의 단계에는 문학 교육의 이론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이론들은 문학 교육이라는 큰 틀 속에서 결합하여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만 문학 교육이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적인 역할이 아닌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학문적 틀을 중심으로 문학 교육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론적 토대를 갖추지 못하고 문학 교육은 바르게 전개될 수 없다. 실천적 열정만을 가지고 문학을 가르치고, 그 방법을 연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문학 교육은 실패할 수도 있는 과학 실험이나 잘못 관찰할 수도 있는 자연 관찰과는 다르다. 작품을 분석하는 이론의 차이에 의해 다른 견해를 보일 수는 있지만, 잘못된 분석의 결과를 교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교육 과정과 교과서는 5년마다 바뀌고 있는데, 교육의 주체들이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현상은 학교라는 제도 교육에 한정된 것이다. 학교를 벗어난 밖은 더욱 심각한 정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하는 조류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도 문학 교육과 관련된 제반 이론에 대한 철저한 무장은 절대로 필요하다.
교사를 포함한 고급 독자들이여,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실을 학생이나 일반 독자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의 고통스런 기억을 생각해 보자. 이제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식의 수준에 머물더라도 우선 작품 분석의 이론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의 효용을 교육 현장의 맥락에서 점검해야 한다. 이럴 수 있을 때, 문학 교육을 위한 이론들은 살아 있는 이론이 될 수 있으며, 가치 있는 이론이 될 것이다.
국어 교육에서 문학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먼저 문학을 제대로 알 것을 제안한다. 다음으로 그것이 교육의 제재라는 사실을 문학 교육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교사, 학생, 교육 공무원, 교과서 집필자 등)은 잊지 말도록 권한다. 그리고 교육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닌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투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자.
4. 맺음말 ꠏꠏ 열린 가능성
몇 해 전에 어느 기업인이 ꡔ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ꡕ는 책을 내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현장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이 말은 우리 문학 교육의 처지에서는 더욱 실감나는 문제 제기적 화두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국어 교육은 과거의 잘못된 시각에 대한 반성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려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에서는 실용주의 학문에 밀려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같은 기초 또는 교양 학문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문학을 논하는 자나 가르치는 자 모두가 문학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대중 문학이나 대중 문화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든지 아니면 그것과 공생할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본고는 우리 문학 교육의 한 단면을 분석하여, 문학 교육에 관련된 여러 이론의 중요성을 점검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학 작품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교사와 학생이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임을 밝히고자 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편으로 문학 이론과 문화적 배경이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어떤 문학 작품이건 다양한 분석이나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실천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본고에서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교육적 차원에서 분석하여, 그 생산과 수용의 문화적 배경을 밝히고자 했으며, 이런 분석과 해석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가지는 교육적 의미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제기는 또다른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확한 문학 작품의 분석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화 작업을 수행하지 않고는 바른 문학 교육의 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의 현학 취미나 상아탑의 고고함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는 이론을, 실천적인 교육의 현장에 어떻게 끌어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앞으로 문학 교육이라는 이론 학문, 실천 학문을 담당한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길은 무수히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만이 아닌 교육, 문화라는 더 넓은 범주 속에서 문학 교육이 실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범주와 계열이 약간씩 다른 이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바르게 정립하느냐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가능한 길이 많은 만큼 다른 곳으로 빠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도 아울러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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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套的 表現考
-신재효본 ‘남창 춘향가’와 ‘심청가’를 중심으로-
이지호
-목 차-
Ⅰ.서론 Ⅱ.상투적 표현의 개념와 범주
Ⅲ.상투적 표현의 용법
1.묘사적 용법
2.논증적 용법
Ⅳ.상투적 표현의 미적 효과
Ⅴ.결론
Ⅰ.서론
일반적으로 문학에서의 언어 표현은 참신하고 독창적이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표현의 독창성은 문학성 평가의 중요한 잣대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詩)를 논할 때 주로 운위되는 말이지만 소설과 같은 산문의 경우에도 은연 중에 적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문학에서 상투적 표현은 독창적 표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연 표현과 표현 사이에, 즉 독창적 표현과 상투적 표현 사이에 가치 우열을 매길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치 우열을 굳이 매긴다면 특정 표현이 특정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문제 의식에서 ‘상투적 표현’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상투적인 표현과 통용할 수 있는 말로는, ‘켸켸묵은 표현’, ‘판에 박힌 표현’, ‘전형적인 표현’, ‘관습적인 표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투적 표현에 대한 선입견의 하나는, 상투적 표현이 작가의 안이한 문제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문학에서 표현의 독창성 여부로 우리문학의 문학성을 판별하려고 한 최초의 시도는, 고전시학의 신의‧용사(新意‧用事) 논쟁을 들 수 있다. 용사는 경전(經傳)이나 선행 문학작품의 표현을 그대로 따거나 환골탈태하여 작가의 표현 의도를 드러내는 것을 말하므로, 이는 일종의 상투적 표현에 해당한다. 그런데 용사는 우리 고전문학에서 이인로가 적극적으로 긍정한 이래로 매우 중요한 문학 창작원리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창작방법을 매우 격렬하게 비판하고 나선 이규보와 같은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규보 역시 용사 그 자체를 거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신의를 용사보다 더 높이 평가했을 뿐이다.
이규보가 신의가 없다는 이유로 용사를 비판한 것과는 달리 표현 그 자체를 문제 삼아 상투적 표현을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즉, 고대소설이 저열하게 평가되는 이유로 상투적 표현을 거론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투적 표현의 미적 효과를 높이 평가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정재호는 무엇보다도 상투적 표현은 당대 독자들이 작품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기능을 한다는 데 주목한다. 배혜옥은 판소리 사설의 상투적 표현의 기능을 작품내적 기능과 작품외적 기능으로 나누어 살피는 논문에서, 전자는 상투적 표현이 독자들의 언어적 경험 속에 이미 굳어져 있는 영상을 되살려 주는 것으로, 후자는 판소리의 현장성과 관련하여 독자(청자)의 미적 쾌감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정서적· 미적 체험의 마디를 ‘긴장-이완’, ‘몰입-해방’이라는 상태로 반복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견해들은 상투적 표현에 특유한 기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다시 말하면 상투적 표현과 비상투적 표현의 상대적인 가치 우열 판단을 거부하고, 양자의 독립적인 존재 이유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러한 견해가 공감을 얻는다면, 문학교육에서의 문학성의 평가와 작문교육에서의 쓰기의 평가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2. 상투적 표현의 개념과 범주
상투적 표현은 표현된 바가 누구에게나 낯익은 것이어서 그 표현 의도를 쉽게 알 수 있는 것, 달리 말하면 의도하기만 하면 그에 걸맞는 표현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상투적 표현은 당대인의 공통적인 스키마에 의지하는 것이고, 그래서 상투적 표현은 문맥에 의해 그 의미나 표현 의도가 제약되거나 부가되지 않는다. 상투적 표현의 의미는 고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두보와 같은 글재주’는 상투적 표현이 되지만, ‘두보와 같은 풍채’는 상투적 표현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상투적 표현의 개념에 따라 상투적 표현을 추출할 때 그 단위를 미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 통상 상투적 표현 단위는 구 또는 문장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상투적 표현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상투적 표현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사건과 장면 단위의 상투적 표현 단위를 상정할 수도 있다. 이에서 더 나아가 ‘행복한 결말’과 같은 구성의 층위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상투적 표현의 개념과는 달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투적 표현이냐 하는 문제, 즉 상투적 표현의 범주를 확정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투적 표현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는 전고수사(典故修辭), 사은유(死隱喩), 관습적 상징, 관용어, 속담 등이 있다. 이렇게 하면 어떤 표현이 상투적이냐 아니냐가 명백하게 드러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위에서 예를 든 것 중에 속담을 제외한 나머지는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고수사의 경우, 그 전고가 당대인의 보편적인 스키마로 이미 자리잡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상투적 표현이 될 수 없다. 고전소설에 나오는 수없이 많은 전고를 당대인들이 모두 쉽게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투적 표현이냐 아니냐를 판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마련하는 한 방편으로, 모든 글을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특정 표현이 일정 정도 이상의 빈도로 사용된 표현만을 선별하는 작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어느 정도의 출현빈도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독창적인 표현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 표현된 것이므로 상투적 표현의 기준 출현 빈도는 2 회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기준으로 하면 거의 모든 표현이 상투적 표현에 속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상투적 표현을 따로 떼어 내어 고찰하는 의의가 상당히 감소될 것은 명백하다. 또 다른 문제는 출현 빈도와 상관 없이 상투성을 따질 수 있는 표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자가 다행하여, 세 걸음의 뛰어와서, 도령님께 올리오니’ 의 예를 보자. ‘세 걸음에 뛰어와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걸음에 달려와서’라는 상투적 표현의 변형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상투적 표현인가 아닌가.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산술적 통계자료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상투적 표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산출적 통계의 허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보조적인 잣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상투적 표현은 그것이 지시하는 바가 당대의 보편적인 사고와 합치됨을 당대의 언중 모두가 보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표현이 상투적이냐 아니냐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표현을 배태시킨 언어집단의 관습적인 사유방식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관습적인 사유방식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는 관습적인 언어 표현을 통해서 그에 내재되어 있는 사유 방식을 추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런 측면에서의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일종의 해석학적 순환의 문제가 된다.
이처럼 상투적 표현의 범주를 획정하는 일은 객관적인 기준 설정의 문제로 인해 손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떤 표현의 출현 빈도와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사고 방식의 유형성이 상투적 표현의 범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상투적 표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어느 정도는 자의성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
3. 상투적 표현의 용법
예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상에서 지각의 자동화를 제거한다. 그러므로 예술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식을 어렵게 하며, 지각을 힘들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기법이다. 러시아 형식주의가 표방한 이 ‘낯설게 하기’는, 예술은 이미지에 의한 사고라는 것, 그 이미지의 목적은 대상에 대한 독특한 지각을 창조하는 것, 즉 대상의 <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시야>를 창조한다는 예술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낯설게 하기’가 대상의 <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시야>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대상의 <인지>’란 대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대상에 대한 <시야>’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해석 관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대상에 대한 <시야>’란 대상에 대하여 새로이 <인지>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낯설게 하기’는 대상 그 자체의 알려진 것에 대한 <인지>가 아니고 대상 그것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새로이 <인지>하고자 할 때의 접근 방식인 새로운 <시야>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법으로 말하자면, 상투적 표현은 ‘대상에 대한 <시야>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하여 기존의 <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인지>를 위한 필요 조건이다. 이와 같은 것은 대상의 묘사에서도 발견되고, 진술의 논증에서도 발견된다. 편의상 전자를 상투적 표현의 묘사적 용법이라 하고, 후자를 상투적 표현의 논증적 용법이라 하겠다.
1) 묘사적 용법
묘사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독창성이 생명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문학에서는-러시아 형식주의가 주된 논의 대상으로 설정한 시에서조차도-상투적 표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독창적인 표현은 그 표현의 의미나 의도를 별도로 설명해 주지 않는 한 의사 전달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독창적인 표현의 의사 전달을 위해서는 상황과 문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황과 문맥은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 상투적 표현에 의해 이루어진다.
독창적 표현이 사상과 감개념 시야 확보에 치중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대상의 새로운 국면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낯설게 하는 것이라면, 상투적 표현은 그것의 효과적인 표출과 전달에 치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묘사적 용법에서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은 ‘표현과 전달의 경제성’이다.
(1.1.1)사또 자제 도령님이, 연광은 이팔인듸, 얼굴은 관옥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이청련의 문장이요, 왕우군의 필법이라.(10면:남창 춘향가)
(1.1.2)그 아내 곽씨부인, 그도 또한 현철하여, 임사의 덕과, 장강의 고음과, 동란의 효행 있어, 예기 가례 내칙편과, 주남 소남 관저시를, 모를 것이 바이 없어, 봉제사 접빈객과, 인리의 화목하기, 가장 공경 살림살이, 백집사의 가감이나, 이제의 청렴이요, 원헌의 가난이라, 청전구업 바이 없고, 말만한 단초가의, 조불려석 하난구나.(134면:심청가)
(1.2)춘향 문전 당도하니, 성시가 멀쟌은듸, 산림물색 좋을씨고. 집 뒤의 청산이요, 문 앞의 녹수로다. 시냇가의 두른 버들, 진채봉의 동낼런가. 장원을 덮은 앵도, 계섬월의 살던 덴가.(18면:남창 춘향가)
(1.1.1)과 (1.1.2)는 고전소설에서 보는 전형적인 인물 묘사이다.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고전소설의 인물은 영웅이거나 영웅적인 인물이 대부분이다. 물론 <춘향가>의 ‘춘향’과 <심청가>의 ‘심청’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웅의 조건은 비범한 재능을 타고 나는 것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그 활동이 영웅적이어야 한다. 영웅소설이 사건 위주의 서사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경우의 인물의 소개는 인물의 비범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족하다. 즉, 가장 적은 노력으로 인물을 묘사하고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때 역사상의 비범한 인물에 비기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1.2)는 춘향의 집에 대한 묘사이다. 춘향의 집을 새로이 일일이 그려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기존의 문학 작품의 묘사에 힘입는 것도 노력을 드는 방법일 것이다. 왜냐 하면 춘향의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매우 아름답다’를 형상화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묘사가 새로운 관점이나 사고방식의 표출수단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관념의 상호 확인의 매개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묘사는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전달의 문제이다. 수신자가 발신자와 같은 정서를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말 그대로 어떤 표현이라도 완벽하게 사실과 부합하도록 그려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기보다는 독자의 스키마를 이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이처럼 ‘선명한 인상 부여’를 위한 표현과 전달에는 상투적 표현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2.1.1)“예쁩디다. 예쁩디다. 처음 보던 인물이요. 어찌 그리 소담하고, 어찌 그리 쇄락한지, 남원 오신 원님이며, 책방 오신 아자제를, 여러 등내 보았으되, 그런 인물 처음 보았소. 그림으로 의논하면, 용도 같고 봉도 같아, 형용할 수 없읍디다.” (17면:남창 춘향가)
(2.1.2)그 동내 뺑덕어미라 하난, 홀어미가 있난듸, 생긴 형용 하난 행실, 만고 사기 다 보아도, 짝이 없난 사람이라. 인물을 볼짝시면, 백등칠일 보냈으면, 모돈정병 풀터이요, 육궁 분대 보았으면, 무안색을 하것구나. 말총 같은 머리털이, 하날을 가리키고, 됫박 이마 횃 눈썹의 우먹 눈 주먹 코요. 메주 볼 송곳 턱의, 써렛니 드문드문. 입은 큰 궤 문 열어 논 듯하고. 서난 짚신짝 같고. 어깨난 치 거꾸로 세워논 듯. 손질은 소듸양을 엎어 논 듯. 허리난 짚동 같고. 배난 폐문 북통 만. 엉치는 부자집 대문짝. 속옷을 입었기로, 거기난 못 보아도, 입을 보면 짐작하고. 수종다리 흑각 발톱. 신은 침척 자가웃, 이라야 신난구나. 인물은 그러하고. 행실로 볼짝시면, 밤이면 마을 돌기. 낮이면 잠자기와, 양식 주고 떡 사먹기. 의복 전당 술 먹기와. 젯매를 올리려도, 담뱃때난 뺄 수 없고. 몸 볼 적의 차던 서답. 조왕 앞에 끌러 놓기. 밥 푸다가 이 잡기와. 머슴 잡고 어린양 하기. 젊은 중놈 보면 웃기. 코 큰 총각 술 사 주기. 인물 행실 이러하니, 눈 있난 사람이야, 뉘가 돌아 보것난냐. (173-4면, 심청가)
(2.2.1)“...인물 고운 여인들이, 열행이 적다더니, 꽃 같은 저 얼굴의, 옥 같은 그 마음이, 어여쁘고 아름답다...”(38면:남창 춘향가)
(2.2.2)“봉사님 모르시오. 제집의게 매였지요. 개라도 저 안 주면, 암만 해도 할 수 없제. 한나라 사마상여, 탁문군은 후렸으되, 날 후릴 수 없고, 당나라 이정이가, 홍불기난 돌렸으되, 날 돌릴 수난 없제.”
(185면:심청가)
(2.1.1)은 이도령의 뛰어난 용모를, (2.1.2) 는 뺑덕어미의 못생긴 외모와 악행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묘사 대상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극단적인 단계에 이르러 있는 것이기에 어떤 표현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낼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독자의 스키마마저도 믿지 못하는 수가 있다. (2.1.1)은 아예 ‘용도 같고 봉도 같아’라는 상투적 표현으로도 표현의도를 감당하지 못함을 실토하고 있다. (2.1.2)은 상투적 표현의 열거가 계속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보임으로써 오히려 상투적 표현으로도 묘사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독자의 스키마의 도움을 전혀 얻을 수 없는 비상투적 표현으로도 애초의 표현의도를 거의 충족시키지 못할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작가정신이 비상투적 표현보다는 오히려 상투적 표현을 선호하게 한 것이다.
(2.2.1)과 (2.2.2)는 대조를 통한 강조의 효과를 덧붙여 더욱 선명한 인상을 심어 주려는 표현기법의 예이다. 전자는 변사또가 춘향의 절개를 추어 주기 위해서, 후자는 뺑덕어미가 자신의 거짓맹세를 심봉사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상투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 같은 경우의 상투적 표현은 개별적 사상(事象)의 특수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상투적 표현이 담보하고 있는 일반성을 활용한 것이라 하겠다.
이와는 달리 묘사가 작중인물의 ‘흥취를 드러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작중인물의 흥취는 그 표현이 다른 작중인물 또는 독자의 공감을 살 수 있을 때 그것이 배가되는 법이다.
(3.1)“사랑 사랑 사랑이야. 연분이라 하난 것은, 삼생의 정함이요. 사랑이라 하난 것은, 칠개념 중함이라. 월로의 정한 배필, 홍승으로 맺었으며, 요지의 좋은 중매, 청조가 날았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백곡진주 사 왔으니, 부자의 흉정이요. 천금준마 바꾸오면, 문장의 취흥이라...”(24면:남창 춘향가)
(3.2)“좋을씨고, 구년지수 장마질 제, 볕을 보니 좋을씨고. 칠년 대한 가물 적의, 큰비 오니 좋을씨고. 얼씨고 지아자. 백설 한풍 치운 날의, 해를 보니 반갑도다. 칠야 삼경 캄캄할 제, 달 떠오니 반갑도다. 얼씨고 지아자...”(203면:심청가)
이와 같은 작중인물의 흥취는 비상투적 표현으로는 거의 효과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만큼 표현보다도 전달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상투적 표현이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묘사적 용법의 다른 하나는 ‘에둘러 표현하기’이다. 완곡어법이 반드시 상투적 표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를 들어, “창문 좀 닫아 줄래?”를, “바람이 차구나.”로 대신 표현했을 때, 상대는 그것이 완곡어법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때로는 발신자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투적 표현을 사용하면, 상대가 에둘러 말하는 것이라는 그 의도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1)“신관 사또 도임초의, 내 이름을 어찌 알아, 불러 오라 하셨는지, 암만해도 의심이니, 병들어 누웠는듸, 명재경각 하였더라. 잘 아뢰어 무사하면, 패두네 장한 그 은혜, 아니 잊고 갚아 줌세.(37면:남창 춘향가)
(4.2)봉사라 하난 것이, 섭섭한 일을 보면, 매양 웃것다.
“허퍼, 아기 샅을 만져 보니, 걸림새가 하나 없어. 나룻배 건너가듯, 손이 미끈 지내가니, 아매도 묵은 조개가, 햇조개를 낳았나 보.”(136면:심청가)
(4.1)의 경우, ‘병들어 누웠는듸’는 병을 핑계로 가지 않겠다는 거절의 의사를 완곡하지만 분명히 전달하려는 표현이다. (4.2)의 ‘걸림새가 하나 없어’, ‘나룻배 건너가듯, 손이 지내가니’, ‘햇조개’ 등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찾아낸 표현이다. (4.1)이나 (4.2)가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것과, 자신의 의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상투적 표현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배경묘사를 통해 사건의 전개를 암시한다든지, 묘사하려는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요약적으로 설명하려고 할 때도 상투적 묘사는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2) 논증적 용법
어떤 표현이 상투적 표현으로 인지된다는 것은, 상투적 표현이 드러내고 있는 언어와 사실의 관계가 적절하고도 적합하다는 것을 대다수 언어사용자가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투적 표현은 적어도 그 표현에 익숙해 있는 사람에게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진술로 인정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상투적 표현이 담고 있는 현실 인식은 이미 객관화된 사유 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상투적 표현은 그 자체가 어떤 주장이나 결론에 대한 논거, 그것도 논거로서 결격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가 당대인의 의식 체계에서 이미 검증된 논거가 될 수 있다.
문학에서 논리적 진술을 운위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문학의 하위장르 구분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자아와 세계의 관계, 그 관계 양상은 그 자체가 이미 논리적인 것이다. 예컨대, 자아와 세계의 대결 양상으로 파악되는 소설의 경우,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 비논리적 또는 무논리적으로 전개되리라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문학의 작중인물 상호간에, 작중인물과 독자, 작가와 독자 사이의 설득전이라고 할 때, 이미 논리가 개입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논거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상투적 표현은 또 다른 의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5.1)어사또께 드린 상이, 조금 초라하였구나. 어사또가 눈 내둘러, 이 상 보며 저 상 보며, 분주히 서둘더니, 순천을 바라보며, “여보시오, 순천 영감. 사람 입도 층하 있소.”(74면:남창 춘향가)
(5.2)심봉사 탄식하며,
“목구녁이 원수로다. 선녀 같은 이내 딸을, 내어 놓아 밥을 빌어, 이 목숨이 사자나냐. 네의 모친 죽은 혼이, 만일 이 일 알았으면, 오죽이 섧껏나냐.”(148면:심청가)
(5.1), (5.2)는 연역적 진술에서 상투적 표현이 어떻게 논거로 활용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이것들은 생략삼단논법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만 전제와 결론을 분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5.1)의 ‘사람 입도 층하가 있소?’는 ‘사람 입은 층하가 없다’(대전제), ‘나도 사람이고 당신도 사람이다’(소전제), ‘나와 당신은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결론)를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5.2)의 ‘목구녁이 원수로다’는 ‘인간은 먹어야 사는 존재이다’라는 대전제의 변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상투적 표현은 주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전제, 즉 논거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음을 수 있다. 상투적 표현이 연역적 진술의 대전제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당대인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즉 소견논거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소견논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경험에 의한 사실의 검증을 거친 소견논거, 즉 사실논거에서 비롯된 소견논거이다. 이리하여 상투적 표현은 매우 강력한 논거가 되는 것이다.
(6.1)“...여자의 종신대사, 경솔히 하것나냐. 한나라 탁문군은, 사마상여 문장 풍채, 본 연후의 좇아가고, 당 시절 홍불기는 이위공의 영웅 기상, 본 연후의 찾아 가니, 도령님 생긴 의표, 방자 말만 믿것나냐. 네 눈으로 보았으면, 대강 짐작할 테이니, 광한루 건너가서, 지나가는 아이 같이, 도령님을 보고 오라.”(16면:남창 춘향가)
(6.2)“여보 봉사님, 그리마오 그리마오. 애자지정이야, 어떤 사람 없으리까. 사세 부득하면, 어쩔 수가 없삽기로, 소중랑 돌아올 제, 그 아들 이별하고, 등백도 도망할 제, 그 자식을 버렸으되, 천고의 전한 사기, 시비가 없었으니, 봉사님이 딸을 팔아, 눈을 뜨자 하거드면, 남이 시비하려니와, 낭자의 효성으로, 부친 눈을 띄려하고, 자신 방매하였으니, 시비할 이 뉘 있것소. 쏜 살을 붙들것소. 엎진 물을 거둣것소...”(158면:심청가)
연역적 진술에서 활용되는 논거는 대개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진술이다. 그러므로 이에 적합한 상투적 표현은 대부분의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속담이나 격언 또는 그에 가까운 것이다. 그에 비해 귀납적 진술에서 활용되는 논거는 풍부한 구체적인 사례이다. 그러므로 이에 적합한 상투적 표현은 전고가 된다.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말하는 (6.1)이나, 상대를 설득하려는 (6.2)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귀납적 진술의 논거로 흔히 역사적 인물의 행동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앞의 연역적 진술과는 달리 귀납적 진술에서는 상투적 표현이 언제나 확실한 논거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거하는 사례가 전후사정이 거두절미된 채 동원되기가 쉽상이어서 그것이 주장에 적합한 사례인지 아닌지를 청자나 독자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귀납적 진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화를 가능하게 할 만큼 충분한 사례를 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셋째, 둘째 이유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당대인 모두가 알고 있는 사례의 수는 한정되게 마련이므로 인용되는 말이 상투적 표현을 벗어나는 경우가 흔히 있을 것이다.
(7.1)절대가인 삼길 적의, 강산정기 타서 난다.
저라산 약야계의, 서시가 종출하고. 군산만학 부형문의 왕소군이 생장하고. 쌍각산이 수려하여, 녹주가 삼겼으며. 금강활이 아미수의, 설도 환출하였더니, 호남 좌도 남원부는, 동으로 지리산, 서으로 적성강, 산수정기 어리어서, 춘향이가 삼겼구나.(9면:남창 춘향가)
(7.2)심황후 염용 대왈,
“...주 문왕 첫 정사가, 노자를 안지하고. 한 문제 방춘화시, 사궁을 진휼하니, 백성 중의 불쌍한 게, 나이 늙은 병신이요. 병신 중의 불쌍한 게, 눈 못 보난 맹인이라. 원고자상이, 공부자의 말씀이니, 천하 맹인 다 모아서, 주효를 멕인 후의, 그 중의 유식한, 맹인을 많이 골라, 좌우의 모셔 있어, 성경 현전 외게 하고. 그 중의 늙고 병들고, 자식도 없는 맹인은, 경성의 집을 지어, 한데 모두 모아 두고, 요를 주어 먹이오면, 모고한 그 목숨이, 전학지환 면할 테요. 그 중의 지극덕화, 만방의 미칠 테니, 여자의 소견이나, 언가용즉 채지하옵소서.”(171-172면:심청가)
(7.1)은 남원의 산수정기로 인해 춘향이가 태어났다는 것이고, (7-2)는 임금의 덕화(德化)를 만방에 떨치기 위해서는 맹인잔치의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7.1)과 (7.2)는 귀납법의 일종인 유추에 의한 진술이다. 전자는 저라산 약야계 등과 남원부를 동일시하고, 후자는 주 문왕 등과 황제를 동일시하여 주장의 타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과연 그러한 동일시가 납득할 만한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어쨌든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화자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장의 뒷받침’을 위한 동일시 대상이 역사상의 인물의 출생과 행적이다. 논거가 이른바 전고에 의한 것인데, 이 표현이 한문투여서 어렵게 여겨질 수도 있어 과연 상투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상투적 표현이 가독성(可讀性)을 높이는 데 매우 크게 기여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렇지만 몇몇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고는 그 자의(字意)조차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겠는가. 판소리에서 구사하고 있는 표현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노래를 부르는 판소리 창자는 오히려 드물 것이다. 그러나 상투적 표현이라는 관점에서는 이러한 측면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그러하듯이 단어나 표현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만 그 단어나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투적 표현에 있어서는 이런 경우에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런 표현을 사용한다는 관습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4. 상투적 표현의 미적 효과
본고의 Ⅲ장에서, 상투적 표현의 용법을 크게 묘사적 용법과 논증적 용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판소리의 상투적 표현은 상투적 표현이 아니면 그만한 효과를 드러낼 수 없는 경우에, 그것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본고에서 자료로 삼은 판소리의 경우에는 상투적 표현을 안이한 작가의식의 발로로 평가하는 것은 상투적 표현과 독창적 표현의 대립성을 그 미적 효과에까지 연장시키는 기계적 도식에 사로잡힌 편견일 수 있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그러한 편견은 ‘상투적 표현은 독창적인 표현보다는 미적이지 못하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유일하고 새로운 것만이 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흔하고 켸켸묵은 것은 또한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법이다. 상투적 표현이 비상투적 표현의 기능과 효과를 대신할 수 없듯이 비상투적 표현 역시 상투적 표현의 기능과 효과를 대신할 수는 없다.
어떤 표현에 대한 미적 평가는 그것의 적절성과 유효성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표현의도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미적 평가란 있을 수 없다. ‘침 발라 돈을 세지’라는 표현은 미적인가 아닌가. 신중한 사람은 전후 사정이 결락된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유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다음의 시를 읽은 사람에게 위의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상투적 표현에 대한 미적 평가 역시 상투적 표현의 용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그것의 기능과 효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언어의 기능을 표출 기능과 전달 기능으로 대별할 수 있다면 상투적 표현은 전달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상투적 표현의 논증적 용법은 어떤 주장이나 결론을 상대에게 신빙성 있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소견진술이라고 할 수 있는 상투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화자가 청자를 설득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이다. 만일 화자가 자신의 사상이나 감개념 표출에 전념한다면 청자의 설득이나 그것을 위한 논거 설정은 관심 밖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자가 자신의 의사가 확실하게 그리고 신빙성 있게 청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데 치중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상투적 표현의 논증적 용법은 언어의 기능 중에서 전달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상투적 표현의 묘사적 용법은 화자의 사상이나 감정을 그려내고 설명하려는 언어 용법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논증적 용법과는 달리 언어의 표출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묘사적 용법의 기능이나 효과를 살펴보건대 이 역시 의사의 표출보다는 전달에 적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묘사적 용법은 표현과 전달의 경제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표현이란 의사 전달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또는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할 때 고려될 수 있는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인 표현이란 최소한의 의사표출로 최대한 의사전달을 기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상투적 표현은 새로운 지각이나 시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만일 의사전달이 아니라 의사표출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상투적 표현은 피해야 한다. 상투적 표현의 또 다른 효과로 표현 대상에 대한 선명한 인상 부여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비상투적 표현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청자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즉 화자의 의도 파악을 위한 청자의 노력을 덜어 주려고 한다면 비상투적 표현보다는 상투적 표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흥취의 표출을 위한 상투적 표현은 이와는 약간 양상을 달리 한다. 그 흥취란 말 그대로 화자의 흥취이고 그냥 화자로부터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취는 화자만이 느끼고 발하는 흥취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청자가 화자의 흥취에 동참할 때 화자의 흥취는 최대로 고조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흥취의 표출도 전달을 통해 그 의도를 극대화할 수 있고, 그것을 위해 상투적 표현을 활용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에둘러 말하기 역시 청자의 입장을 고려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전달 기능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상투적 표현은 서정장르보다는 서사장르에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정장르가 세계의 자아화이고 서사장르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기 때문에 서정장르는 언어의 표출기능에, 서사장르는 언어의 전달기능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규보가 신의(新意)를 강조하고 용사(用事)를 폄하했던 것도 이규보 비평의 대상이 한시라는 서정장르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세계의 자아와는 세계를 주관적으로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즉 세계에 대한 자아의 절대적 우위를 드러내는 것인데,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는 用事보다는 新意가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5. 결론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상투적 표현은 문학작품, 특히 서사장르의 문학작품에서 상투적 표현은 비상투적 표현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상투적 표현이 의사전달 나아가서는 청자 또는 독자의 설득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장르의 문학작품에서 상투적 표현이 갖는 미적 효과는 충분히 입증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대표적인 서사장르인 소설의 미학은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세계의 대결 양상의 아름다움에서 규명되어야 할 것이고, 이때 그 대결의 미학을 결정짓는 것이 자아와 세계 각각이 동원하는 설득양식일 터인데, 그 설득양식에 상투적 표현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투적 표현 그 자체가 미적이다 아니다 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단선적인 태도이다. 그러한 평가는 상투적 표현이 구체적인 문학작품 내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내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상투적 표현은 말 그대로 상투적이기가 쉽다. 다시 말해서 상투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다음에 사용한 상투적 표현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부한 표현, 즉 안이한 작가의식의 발로라는 평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료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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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를 통한 시 쓰기와 창작 교육
유영희
<목 차>
1. 문제 제기
2. 표절, 모방 그리고 패러디
3.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 - 패러디
(1)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
(2) 언어 유희를 통한 의미 재구성
4. 패러디 읽어내기와 시 쓰기
1. 문제 제기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문학이 음악이나 미술, 사진 등과 다른 점은 그것이 언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어는 늘 변화한다. 그런데 변화는 아무 것도 없는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있음을 전제로 해서 일어난다. 그래서 언어는 재창조된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 등도 재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각각의 작품들도 작가나 유파 속에 집단을 이루어 존재한다. 그림의 부분부분과 질료는 그런 것들을 벗어나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각조각 나누어 보면 언어는 모두 일상 생활이나 기존의 텍스트 속에 녹아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이 나름대로의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작가의 경우에 한정시켜 살펴보면, 한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일종의 경향을 이루게 되고, 때로는 문단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위를 부여받아 일군의 세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독특한 문체라는 것도 내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모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조합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떤 어휘들을 즐겨 사용하고, 어떤 통사적 구조를 선호하는가가 문체의 외면적인 성격을 규정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날 때, 그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이에 대해 상호텍스트성(간텍스트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왔다. 한 텍스트는 이전 텍스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텍스트에는 이전 텍스트들의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호텍스트성은 다분히 우연적이고 비의도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것은 문화의 일반적인 속성에 의거하여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피력한다. 그러므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개념은 창작자의 의도가 개입된 모방에 이르러서는 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제 위의 두 시들을 살펴보자. 장정일의 시는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한 작품이다. ‘변주’라는 용어가 주는 낯설음은 그것이 주로 음악에 사용되어 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변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리듬, 가락 따위를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는 일’이다. 그러나 장정일의 시를 살펴보면 리듬이나 가락, 즉 시의 형식적인 측면은 거의 김춘수의 작품과 동일하다. 오히려 주제, 즉 내용의 측면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꾸미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형식과 내용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그것이 문학으로, 음악으로 장르를 형성해 간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인식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가 교과서에도 나오는 익히 알고 있는 시를 바꾸어서 새로운 시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이미 김춘수의 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과 관련을 맺고 있다. 시조의 경우, 우리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형식적 자질 및 내용적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조나 한 수 지어 보게.’ 하고 누군가가 권한다면 그 말이 의미하는 뜻이 무엇인지, 그 사람이 어떤 형식의 것을 원하는지 곧 인지하게 된다. 만약 그 사람의 말을 거절할 의사가 없다면 그 형식적 자질을 망가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한 내용을 담아 그가 요구하는 형식의 것을 제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김춘수의 시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미 어떤 형태로든 인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변주를 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 의도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장정일의 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기법을 패러디로 범주화하고 그것의 개념과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에게는 독자로서의 시 쓰기 행위이며 독자에게는 작가의 비평 의식과 창작 의식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표절, 모방 그리고 패러디
표절이나 모방에 대한 논란은 예술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 표절에 대한 시비는 위조 문제와 관련을 맺으면서 끊임없이 쟁점화되어 왔다. 미술에서 위작의 역사는 미술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리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팔리지 않는 동료나 제자의 작품에 자신의 서명을 기입하여 도와주었다는 위작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사실, 그 당시에 그것은 ‘사회성을 갖는 사실’로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사회성과 관련을 맺으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이는 고고학, 미학, 역사학 등의 여러 학문들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가능해졌고, 귀족 중심의 문화가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학의 경우에도 이미 기원전 7, 8세기의 그리스에서부터 명작의 시구나 문체를 모방하는 표현 기법들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사실 문학사를 통하여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 베루길리우스를 비롯하여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드라이든, 존 밀턴,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 로런스 스턴과 같은 영국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표절이나 도용의 혐의를 받지 않은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 표절과 모방의 범주를 확실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표절과 모방은 그야말로 아주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에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표절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91년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서양화 부문 수상작과 관련된 미술 분야의 표절 논쟁과 92년 이인화의 소설 ꡔ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ꡕ에 대해 제기된 문학에서의 표절 논쟁이 그것이다.
여론에서 문제삼기 시작하여 평론가들 사이의 지상 논쟁으로까지 발전한 이번 표절시비의 쟁점은 표절여부와 작가의 윤리성에 대한 논란보다는 이 작품의 표절 여부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식적인 태도와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평론가들이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미술사적 논거 자체의 합당성 여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평론가의 올바른 지적처럼 이제 표절 문제는 윤리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입장의 차이에 근거한 논쟁의 성격이 짙다. 원작 텍스트를 전용한 어떤 작품이 표절 시비의 대상이 되었을 때 비판론자는 이를 ‘표절’이나 ‘도용’으로 규정하지만 옹호론자는 이를 다른 개념으로, 즉 ‘인용’이나 ‘차용’, ‘패러디’, ‘패스티쉬(혼성모방)’ 등으로 규정되도록 진술한다. 즉, 이러한 행위들은 의도의 차이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표절에 대한 명백한 판단 기준이 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의 전체적 맥락인 것이다. 이렇게 표절이나 도용의 혐의를 두는 데 미시적 측면보다는 거시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는 까닭은 문학 작품이 매체로 삼고 있는 언어의 특수성 때문이다. 언어는 시중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사용한 다음에야 비로서 나의 손에 들어오는 화폐와 같아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가치나 이데올로기가 침윤되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의 내용이나 형식적인 측면이 고려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엄밀한 판정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작품 자체의 문학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복사’나 ‘조립’, ‘베끼기’, ‘빌려오기’ 등으로 규정되고 있는 예술 작품의 창작 방법에 대한 용인은 작품의 미적 수준과 일정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자연스럽게 예술 창작의 한 방법론으로 규정되고 있는 모방의 개념으로 넘어가게 된다. 모방은 단순히 견습 작가들이 창작 방법을 습득하는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고대인들이 이룩했던 예술적 탁월성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관점에서도 큰 의미와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남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흉내내는 것은 결점이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미덕으로 간주되었을 뿐 결코 표절이나 도용으로 간주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미술에서 말하는 모방은 일상 경험의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충실한 복제인 단순 모방뿐 아니라 본질의 모방 또는 이념적인 것의 모방까지를 포함해서 광범위한 범주를 갖는다. 문학에서의 모방도 내용이나 형식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세계관이나 창작 방법과 관련된 포괄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
오늘날 모방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창작 방법은 패러디이다. 패러디는 모방의 한 형식이지만 항상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 아이러닉한 전도에 의한 모방이다. 그러므로 근대적 패러디에는 오늘날의 예술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아이러닉하며 비판적인 차원에서의 거리감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차이를 둔 반복으로서의 패러디는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패러디는 당대의 문화적 조건과 여러 모로 결부되어 있다. 현대 예술에서 자아 반영의 양식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증대되고 있으며, 비평적 연구에서 텍스트의 상호관련성이 강조된다는 측면에서 패러디는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패러디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대중 문화의 홍수 속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작품들에 대한 가치 기준이 명확하기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창작 방법을 인정하는 현대의 예술 풍토 때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패러디 사가(historian)들이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서 패러디 작가들로 하여금 패러디 독자의 능력에 의존할 수 있게 해주는 시대에 패러디가 번성했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당대의 문화에 대한 문화적 믿음은 우리가 지각하고 사유하는 행동 방식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서적·심리적 반응들을 조건지우고 수정한다. 우리의 근본적인 믿음들은 우리의 감각, 정서, 지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예술 작품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이중적 기호화를 통해 아이러닉한 전언을 보내고 있는 패러디는 독자의 다양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창작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패러디는 창작 방법으로서뿐 아니라, 창작의 추동력으로서 상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패러디가 작가의 의도와 관련된 단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 관객, 청자 등의 모든 수용자와 전체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다층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3.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 - 패러디
(1)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
패러디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그것이 이미 알려진 텍스트를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수용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재약호화한다는 것이다. 즉, 소설에 대한 소설, 시에 대한 시, 영화에 대한 영화 등의 방식으로 인식되어지는 독특한 텍스트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때로 장르를 뛰어 넘어 소설을 시로, 시를 영화로, 영화를 광고로 패러디하는 실험적인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미 형성된 텍스트를 유사한 내용이나 형식으로 재텍스트화하는 것은 주로 메타 언어적 측면에서 접근된다. 특히, 패러디의 경우에는 그것이 결코 단순 모방이나 패스티쉬에 그치지 않는 새로운 독립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의 획득은 구체적인 텍스트에서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먼저 권위에 의존하여 텍스트에 주목하게 하는 방식이 있다.
테레사는 안나 카레니나를 가슴에 안고/ 갈대바구니 저어 희고 견고한 침대 같은/ 토마스의 팔에 착륙했다 가끔 침대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카레닌이라는/ 예쁜 강아지와 함께 그들은 오래 행복했다// 그녀는 어둡고 푸른 물 위를 흘렀다/ 갈대바구니도 없었다 분홍치마 연두저고리/ 떨어진 꽃잎처럼 젖어 옛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그녀를 두려워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입을 가진/ 더러운 개를 키우고 있었다 오래 행복했다
삐삐 아빠는 섬 감옥에 갇힌 채/ 바다로 병을 던졌다/ 병 속에는 살려달라는 내용의 쪽지가 들어 있다/ 삐삐는 말을 타고 바닷가를 지나다/ 병을 줍고 아빠를 구할 결심을 했다/ 힘센 삐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다/ 한 손으로 역기를 들었다/ 삐삐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었다/ 별것 아닌 손짓 발짓만으로/ 스릴 넘치는 액션도 없이/ 하지만 삐삐를 보면 슬펐다/ 세상의 악에 홀로 맞서는 천진한 아이/ 주근깨와 코가 말린 큰 신발을 보면/ 가슴속에서부터 저며오는 눅눅한 우울/ 언젠가 소풍 갔을 때 나는 요구르트병에/ 살려달라고 적은 나뭇잎을 넣어 시냇물에 흘려보냈었다/ 아직 나를 구원하려고 달려온 사람은 없어/ 넓은 바닷가 한 알갱이 모래를 줍는 일이란/ 실제로 삐삐는 죽었다고 했다/ 관 속에 들어간 삐삐를 누가 발견할지/ 삐삐의 말괄량이 짓거리는 여전히 슬프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ꡔ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ꡕ을 패러디한 성미정의 시는 대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래 소설의 스토리를 시로 구성한 후에, 테레사에 대비되는 분홍치마 연두저고리의 그녀를 등장시켜 대비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의 경우에는 주로 내적인 자기 번민이 갈등 상황을 유발하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가정 형편과 같은 외적인 요인들이 갈등 상황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떨어진 꽃잎’과도 같이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더러운 개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집은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집이요, 가족들이 눈치를 보며 자기를 슬금슬금 피하는 집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줄의 ‘오래 행복했다’는 역설적인 진술로 보인다. 어쨌든 그녀에게 일상적인 삶은 되풀이되었을 것이며, 행복이라는 말은 오히려 사치에 가까운 말이라는 의미에서의 ‘오래 행복’인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제목에서도 역력하게 알 수 있다. 개인의 의지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여움’으로 패러디된다. 이것은 존재 자체가 관념적인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삶의 실천적 문제로 전이됨을 의미한다. 즉, 현대에서의 대중적인 삶의 조건들은 사유를 통해 규정되기보다는 상황 자체에 의해 이미 틀로 정착된 것임을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미정의 시는 밀란 쿤데라의 텍스트를 참고로 하였지만, 마침내 자기 독립성을 확보하게 된다.
윤의섭의 시는 텔레비전에서 이미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는 ꡔ말괄량이 삐삐ꡕ에 대한 패러디이다. 이 시 역시 성미정의 시처럼 기존의 텍스트를 구성한 후, 그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풍자적인 기법이 텍스트 전체를 이중화해서 보여 주며 수용자의 해독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악에 홀로 맞서는 천진한 아이’인 삐삐를 보면 신이 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진다. 그 당당함과 용기는 감탄스럽지만 거대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항하기에는 삐삐의 힘이 너무나 나약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삐삐의 행위는 슬픈 것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자신의 작은 실험으로 더욱 견고해진다. 살려 달라고 적은 나뭇잎을 삐삐 아빠가 병을 던졌듯이 흘려 보냈지만, 삐삐는 달려와 주지 않았다. 더 이상 삐삐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희망은 사라지고 나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는 ‘넓은 바닷가에서 한 알갱이 모래를 줍는(찾는)’ 행위처럼 아득한 것으로 퇴화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권위에 의존하는 패러디의 형식은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종교시로 불리우는 일군의 시들도, 성서 등의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권위를 내세우며 은폐된 의도를 기호 해독자에게 툭툭 던진다.
종교시의 경우는 다소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권위에 의존하는 패러디는 일반적으로 풍자적인 기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는 패러디가 아이러니라는 수사 기법에 의해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특성과 맞물려 있다. 패러디처럼 풍자의 경우에도 아이러니를 창작 기법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에 의존하는 패러디와 상당 부분 맞물리기는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의존하고 있는 패러디도 하나의 유형을 형성한다.
아침 티브이에 난데없는 표범 한마리/ 물난리의 북새통을 틈타 서울 대공원을 탈출했단다/ 수재에 獸災가 겹쳤다고 했지만, 일순 마주친/ 우리 속 세마리 표범의 우울한 눈빛이 서늘하게/ 내 가슴 속 깊이 박혀버렸다 한순간 바람 같은 자유가/ 무엇이길래, 잡히고 또 잡혀도/ 파도의 아가리에 몸을 던진 빠삐용처럼/ 총알 빗발칠 폐허의 산속을 택했을까/ 평온한 동물원 우리 속 그냥 남은 세명의 드가/ 그러나 난 그들을 욕하지 못한다/ 빠삐용, 난 여기서 감자나 심으며 살래/ 드가 같은 마음이 있는 곳은 어디든/ 동물원 같은 공간이 아닐까/ 친근감 넘치는 검은 뿔테안경의 드가를 생각하는데/ 저녁 티브이 뉴스 화면에/ 사살 당한 표범의 시체가 보였다./ 거봐, 결국 죽잖아!// 티브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내가 드가?
이 시는 영화 ꡔ빠삐용ꡕ을 패러디하고 있다. 빠삐용이 감옥에 갇혀 탈출하고자 하는 상황과 동물원의 우리 속에 갇혀 있다가 자유를 찾아 도망을 친 한 마리의 표범이 처한 상황을 통해, TV 속에 갇혀 있는 ‘나’ 자신과 현대인들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는 이 시는 그야말로 문명 비판적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빠삐용이 탈출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유를 포기하고 억압적인 삶을 지속하는 드가는 동물원에 남은 세 마리의 표범과 비교되면서 일반화된다. 그것이 자유에 대한 욕구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한 나약한 인간의 본성임이 표면화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결코 그러한 인간의 본성에 거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난 그들을 욕하지 못한다/ 빠삐용, 난 여기서 감자나 심으며 살래’라는 시구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거봐, 결국 죽잖아!’하며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TV를 지켜보는 자신을 깨달으며 문득 놀라게 되는 작가의 모습에서도 그러한 기미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상황에 의존하는 패러디의 경우에도 그 상황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상황으로 대치됨으로써 작가만의 고유한 자기 독립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는 부자집 안방에서 부르는 소리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왜놈이나 지체 높은 양반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고집이나 애국심을 말하려고 이 따위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부잣집 잔칫방 대신에 영화로움 대신에, 장텃바닥이나 어린이 놀이터 가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는 기생년에 잽혀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그가 촌놈이라거나, 오입쟁이라거나, 무슨 속 깊이 감춘 노여움이 있음을 말하려고 이 지랄을 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귀신이 우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귀신 울음 소리에 모두들 소름이 끼치고, 귀신 오는 발자국 소리에 온갖 죄진 년놈들 몸을 움츠렸다고 한다. 그는 거꾸로 귀신을 잠재우는 소리를 냈다고도 한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춘향가 한 대목을 듣고, 그의 재주를 칭찬하려고 이 짧은 세 치 혓바닥 놀리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가슴 추운 날, 다 잃어버린 날, 앉은뱅이·곱사·문둥이, 그래도 무엇 한 가지 남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고 한다. 모닥불이라도 피워, 그의 곱은 손 덥혀 주자고도 한다. 임방울. 그의 시를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 명창으로 특히, 춘향가 중 ‘쑥대머리’ 부분을 더늠으로 잘 불렀던 임방울의 전설적인 삶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시는 임방울의 삶에 대한 자세, 즉 세계관을 근거로 하여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다. 민중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즐겼던 임방울은 신기에 가까운 귀곡성으로 듣는 이를 감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정작 임방울의 삶을 이야기하려고 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님을, 그의 인간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방울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인 시선을 통해, 그것이 강한 부정을 통한 긍정임을 숙지하게 된다. 그 긍정도 과거 지향적이라기보다는 미래 지향적이다. ‘그래도 무엇 한 가지 남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고 한다. 모닥불이라도 피워, 그의 곱은 손 덥혀 주자고도 한다.’에서 알 수 있듯이, 임방울의 삶은 한 판소리 명창의 삶으로 묻혀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삶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쓰고 있지 않다는 화자의 진술은 결국 그의 시를 통해 ‘지금 우리의 시’를 쓰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권위에 의존하는 모든 시가 패러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의 시 텍스트에서는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존경이 주를 이루어 현대적 의미에서의 패러디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텍스트의 인유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패러디가 현대성의 징표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많은 문화 속에 존재해 왔지만 모두 명백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패러디가 편재해 있다는 사실은 패러디의 형식적 정의와 실용적 기능에 대한 재고를 초래한다. 패러디는 진정한 허구성의 패러다임이나 허구 창조 과정의 패러다임은 아닐지라도 확실히 자아 반영의 한 양식인 것이다.
이처럼 메타 언어를 통해 패러디는 오늘의 삶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 패러디에서 행해지는 전통적인 요소의 인유는 단순한 전통에의 복귀라기보다는 그것을 끊임없이 현대화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메타 언어라는 차이를 통한 반복을 통해 패러디는 비판적 거리를 형성하여, 독자들에게 동시대의 문화에 대한 비평적 능력을 획득하게 한다. 이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패러디가 일정한 자기 독립성을 가지고 독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언어 유희를 통한 의미 재구성
패러디의 또 다른 특성은 주로 기법적인 측면에서 언어 유희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언어 유희는 모더니즘과 풍자의 경우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모더니즘에서는 언어에 대한 실험의 한 양상으로 언어 유희가 드러났으며, 이는 주로 인간의 지적 활동의 소산인 경우가 많았다. 풍자에서는 패러디의 언어 유희와 거의 흡사한 양상이 드러나는데, 이는 패러디가 풍자와 갖는 공통된 속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 유희와 패러디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그것은 패러디가 지니고 있는 아이러니한 갈등 상황이 놀이를 통해 해소되고 완화되어 일정한 텍스트적 자질을 형성한다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피아제에 따르면 놀이 상태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발생한다 하더라도 진지한 상황에서라면 불가피하게 철저히 붙들고 씨름해야 할 그러한 갈등이 놀이 상태에서는 어떤 보상이나 청산에 의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를 괴롭히곤 하는 복종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은 현실에서는 굴복이나 반항 또는 어느 정도의 타협에 의한 협동으로 귀결되곤 한다. 그러나 놀이에서는 그 갈등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것처럼 해 버리거나 가능하진 않지만 그럴 듯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맺힌 한을 푸는 방향으로 갈등의 양상을 변형시켜 버릴 수 있다. 놀이가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아가 이런 방식으로 놀이의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 이제 시 텍스트에서 언어 유희적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일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시시껄렁한 詩가 아니라
詩詩껄렁하지 않을 바다를
쓰고 싶었지 파도가
되고 싶었다 時時로
현기증 나는 갈매기로
섬, 섬을 흔들고 싶었지
木船이 되고 싶었다
수평선이 되고 싶었지
싶었다. 싶었, 싶-
피, 피곤한 항해의 하루 저, 접는 닻으로도
다, 다리 짤린 꾸움조차 꾸, 꿀 수 없어요
가, 각질 굳은 신발 거, 거친 수염으로 끌려가는
지, 지상에서 스으을슬 나, 낡아 가겠죠
-지 않았다.
파도 치지 않는 밤마다
노을 불쾌한 저녁마다
향기 나지 않는 낯마다
바람 불지 않는 아침마다
이 시에서는 여러 층위에서 다각적으로 언어 유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열체를 이루는 일군의 시어들이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詩’, ‘詩詩’, ‘時時’ 등의 시어가 언어 유희의 형태를 띤 채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드러나는 활자로 재현되고 있는 ‘지 다 지 다 지 다. 피, 다, 가, 지, 다. 마다 마다 마다 마다’라는 독특한 시어의 재구성도 놀이 형태를 띠며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동시 짓기’라는 부제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텍스트의 가운데 부분에는 <나뭇잎배>라는 동요가 소리나는 대로 씌어 있다. 이는 천진난만함과 느슨함의 상징이며, 시 전체가 상정하고 있는 불쾌함과 욕구의 불충족에 대한 대비적 구조이다. 특히 눌변의 언어로 제시되고 있는 동요의 패러디는 편안함이 아닌 피곤함과 지침으로, 서정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으로 대비되어 있다. 즉, 이 시 텍스트는 여러 층위의 패러디가 텍스트 전체를 통괄하며 녹아 흐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비슷한 음절을 차용하여 언어 유희를 통해 패러디를 구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래 시의 경우에는 피자집인 ‘HUT’과 ‘핫토’라는 발음의 유사성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내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특히, 이 시의 경우에는 제목이 그 시 전체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降雪에 따끈한 보리차 한 잔, 중학 1학년이던 나에게 그런 흐뭇한 겨울밤을 차려준 中國人 호떡집이 그때의 花洞에는 있었다. 핫토 핫토 발음하며 통나무집이라고 뜻새김한 日人 英語선생도 그때의 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에는 있었다. 통나무집을 알지 못하는 나는 덩달아 핫토 핫토 하기만 했다. 그때는 또 서울이 얼마나 추웠던지 방(온돌)안의 잉크며 정강이가 다 얼어붙곤 했다. 한밤에는 불알도 얼어붙고, 달과 별, 꿈도 다 얼어붙곤 했다.
또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의 이름이 지니고 유사성을 이용하여 언어 유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참 세상 많이 좋아졌지,/ 절로 말이 새어나오게시리/ 라디오 디제이까지 청취자에게 속삭인다/ 오공비리로 4행시를 지어주시죠// 대세가 결판나서 그런가?/ 오공의 털로 만들어진 손오공 놈들까지도/ 이젠 단호히 벗어나야 한다고/ 근두운 타고 날아가듯 벗어나야 한다고 떠드는/ 오공, 오공, 오공 시대// 참, 많이 부드러워졌어/ 체제의 손바닥
이 시에서는 ꡔ손오공ꡕ의 주인공 ‘오공’과 제5공화국의 준말인 ‘오공’이 지니고 있는 음운의 일차적인 유사성을 이용하여 두 이미지를 교묘하게 엮어 내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과 손오공의 일화에서 등장한 ‘부처님의 손바닥’을 ‘체제의 손바닥’으로 전이시키고, 그것이 엄격하고 벗어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까불어도 제재를 당하지 않는 부드러운 것임에 새삼 감탄하고 있다. 또 ‘오공의 털로 만들어진 손오공’인 ‘오공’과 생명을 같이 하던 무리들조차도 이제는 단호히 벗어나야 한다고 이곳 저곳에서 떠든다는 풍자적 패러디는 우리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준다.
그런데 같은 풍자적 패러디이지만 풍자의 성격이 보다 강한 텍스트의 경우에는 약간 다른 경향을 드러낸다.
잊을께요 서방님./ 피난민의 봇짐 위에 퍼붓던 소나기도/ 죽은 어미 젖꼭지를 빨며 울던 젖먹이도/ 잊을께요 서방님./ 다락 속에 숨어 있다 겁탈당한 언니도/ 나룻배에 피난민을 실어나른 뱃사공도/ 아직도 이기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이젠 정말 잊을께요 서방님./ 어디로 가실까요 사막으로 가실까요/ 아랫도리로 가실까요 겨드랑이로 가실까요/ 피에 물을 탈까요 물에 피를 탈까요/ 무엇을 드릴까요 서방님./ 뒷모습만 드릴까요 헤어짐만 드릴까요/ 숫처녀의 발가락을 잘라 드릴까요/ 과부의 발바닥을 벗겨 드릴까요/ 그믐밤에 첫사랑을/ 보름밤에 짝사랑을 훔쳐 드릴까요/ 무서워 무서워요 불을 켜요 서방님./ 서방질을 하게 하는 서방님도 잊을께요/ 시아버질 독살한 맏며느리도/ 아들이 아버지를 쏘아 죽인 보리밭도/ 옷걸이에 걸려 있는 과부의 갈비뼈도/ 잊을께요 잊을께요 서방님.
제목과 여성 화자의 독백은 우리의 고전인 ꡔ춘향전ꡕ의 한 대목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가 춘향이와 유사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큰 오산이다. 일편단심 이몽룡을 기다리던 춘향이처럼 겉으로는 이 화자도 ‘서방님’에게 고분고분 순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헌신적인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잊겠다고 주장하는 것들 - 언어 유희를 통해 - 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것이 비수를 감추고 있는 서늘한 여인의 눈초리를 연상하게 된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청유형이지만 강한 명령의 어법이 지배적인 ‘무서워 무서워요 불을 켜요 서방님’과 부조리한 일조차도 강요하는 서방님에 대한 원망이 들어 있는 ‘서방질을 하게 하는 서방님도 잊을께요’라는 시구에서, 강하게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된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별이라는 본래 텍스트의 상황이 같은 이별이기는 하지만 전쟁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처참한 이별과 대비되면서 묘하게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패러디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발함과 톡톡 튐이 상당 부분 감해지는 경향이 있을 알게 된다.
언어 유희를 통하여 의미를 재구성하는 패러디는 독자의 해석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언어 현실을 반영하는 독특한 언어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측면에서 언어적 실험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지금까지는 패러디가 시 텍스트에 구현되어 있는 방식 및 그 의의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그렇다면 패러디를 읽어내는 것이 시 쓰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4. 패러디 읽어내기와 시쓰기
분명히 문학은 이제 핵심적인 사회적 담론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이미 상실하였거나 지금 그 위치를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문학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제도로서의 문학이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탈장르’나 ‘장르확산’과 같은 현상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즉 장르와 장르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선이 붕괴되고 한 장르가 다른 장르와 서로 혼합되면서 장르 특유의 성격이나 본질을 잃어버리는 속에서 그러한 조짐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창작과 비평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고 있다. 이제 시인은 더 이상 시를 쓰는 작업 자체에만 만족할 수 없다. 시를 쓰는 행위는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에 둔 행위이며, 당대의 문화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다. 시인은 언어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비평이 점하고 있던 자리는 작가에게, 독자에게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창작은 천재만이 전유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해당되는 창조적 활동이 되었다.
진정으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비평가는 교육자의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의 동기에서 비롯된다. 그 동기는 자유롭고도 아름답게 역할을 담당하려는 단순한 욕망, 내면적으로 부글거리고 그 안에 큰 마력을 지니고 있는 관념에 외형적이고 객관적인 형체를 부여해 주는 단순한 욕망, 그리고 그 관념들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이 세계에 명료한 잡음을 만들어 내는 단순한 욕망인 것이다.
미국의 문학비평가 H.L 멩큰의 말과 같이, 비평은 일종의 창작 행위로서 그 의미를 부여받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비평과 무관한 행위인가. 창작 속에는 여러 가지 비평 활동이 기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날 그것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 패러디 기법을 통한 창작 행위이다. 패러디는 결코 기생적 공생의 양식이 아니다. 패러디의 작용 속에는 텍스트의 생산과 수용의 행위가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패러디의 사상적 위상은 오묘하다. 패러디 속에는 이중의 목소리가 녹아 있고, 이를 통해 일종의 비평적 행위를 창출한다. 그것은 작가의 비평적 행위뿐 아니라, 텍스트를 해독하는 해독자로서의 독자에게도 비평적 활동을 요구한다. 여기에 패러디 읽어내기의 교육적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근래의 메타픽션은 연기자와 관객, 작가와 공동 창조하는 독자 사이의 형식적 차이를 거의 유념하지 않는다. 그리고 패러디는 다른 텍스트들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하나의 위협, 심지어 혼란을 야기시키는 어떤 힘으로 간주되고 있다. 패러디는 문학의 규범들을 ‘비사실화하고 찬탈해’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다른 텍스트의 자질을 전용(표절 혹은 차용)하는 것은 개개의 상품으로서의 예술 작품의 공인된 위상에 오명을 남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디의 위반은 궁극적으로 패러디가 함몰시키려고 하는 바로 그 규범들에 의해 공인된다. 심지어 조롱하면서 패러디는 다시 강화되는 것이다. 형식적인 의미에서 패러디는 조롱된 관행을 패러디 속에 명기함으로써 그 관행의 지속적인 존재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패러디는 예술의 현주소뿐 아니라 예술의 출처를 밝혀줌으로써 예술의 합법성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패러디의 기능 때문에 패러디는 오히려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앞에서 예를 든 텍스트들처럼 기존에 잘 알고 있던 텍스트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패러디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에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패러디는 일종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린다 허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호부여자와 해독자 사이의 묵계에 의해 모든 예술적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정확한 기호화의 의도가 수용자에게 인식되지 않을 경우, 그들 사이의 대화행위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패러디와 아이러니의 독특한 일련의 전략의 일부이다. 환언하면, 일반적인 예술의 기호에 덧붙여, 독자들은 자신들이 읽고 있는 것이 패러디이며,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떤 타입의 패러디인가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들이 읽고 있는 작품이 단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만, 다시 말해서 패러디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읽혀진다 해도 패러디 되는 텍스트나 전통을 알아야만 한다.
패러디는 이제 독자들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효과적인 하나의 기제일 수가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풍자와 유사한 읽기 방법이 동원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패러디된 텍스트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해도, 올바른 의미의 파악을 위해서는 패러디라는 전통이 가지고 있는 규범적 성격을 독자가 인식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패러디와 글쓰기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패러디가 이중의 비평 활동이라는 측면과 맞물리게 된다. 패러디된 작품은 일단 우리가 기존에 잘 알고 있던 작품에 대한 일차적 비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그 다음에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이차적 비평을 한다. 역시 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한 편의 시 텍스트를 읽으면서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까지도 함께 흡수하게 된다. 이는 비평의 목적 중에 하나인 교육적 효과까지도 유발함을 의미한다. 즉 시 텍스트의 읽기를 통해 간접적인 비평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위치가 독자의 위치로 전이됨을 의미한다.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코드를 해독해 내지 않으면 안 되므로, 패러디를 구현하는 작가에게는 그러한 작업이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패러디된 텍스트는 창작 교육의 역할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미학에서 말하는 창작 과정은 ‘창작적 기분 → 창작 구상 → 내적 정련 → 외적 완성’의 단계를 밟게 된다. 패러디된 텍스트는 이 대부분의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문제 제기에서 제시한 바 있는 장정일의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작가는 김춘수의 <꽃>을 읽는 순간 창작적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본래 텍스트가 주는 내용과 형식적인 자질이 작가에게 독특한 감응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질들은 원래 작가가 상정한 소재인 ‘꽃과 존재’에 대비하여 ‘라디오와 사랑’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게 해 준다. ‘꽃’에서 ‘이름’이 문제가 된 것처럼 ‘라디오’에서는 ‘전파’가 문제가 된다. 라디오는 전파만 타게 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적 정련의 과정을 통해, 제2의 텍스트는 외적 완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모방이 아닌 재창조 작업이 되는 것이다.
동일한 문학과 문학, 미술과 미술, 음악과 음악의 장르라면 이러한 과정은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예술 영역이 서로 혼합되는 경우에는 그 과정이 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각각의 영역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규범이 모두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인 패러디에 대해 살펴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창작 교육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것이 기존의 교육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라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이에 대해 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2. 언어 지식 영역 지도의 필요성과 방향
이 성 영(한국교육개발원)
Ⅰ.머리말
모든 유형의 교육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학교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효과를 준거로 한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 교육 체제는 교육 일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목표들을 세분하고 그들 각각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교과를 따로 둠으로써, 분업의 정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분업을 통한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어과 교육에 관심을 갖는 우리들은 교육 일반의 목적 안에서 국어과 교육이 담당하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국어 교육의 목표와 국어 교육의 하위 영역 구분 및 그들 상호간의 관계 등에 대한 논의도 국어과 교육이 전체적인 교육의 목적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이며, 교육적 분업의 체제 안에서 국어과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 과정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군정기의 교수 요목에서부터 현행 6차까지의 국어과 교육 과정을 살펴보면, 그 범주화에 다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실제적인 교수-학습의 내용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언어 사용 기능 영역과 언어 지식 영역, 그리고 문학 영역의 세 가지로 대별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교과와는 달리 국어과에서는 언어 사용 기능과 관련된 사항, 언어 지식과 관련된 사항, 문학과 관련된 사항의 세 가지 영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인식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과 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 온 세 가지 영역 중에서 그 정체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국어과 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 온 영역은 언어 지식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국어과 교육을 크게 언어 사용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언어 교육 영역과 문학에 대한 이해와 작품의 감상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 교육 영역으로 대별하는 경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은 문법 사항이 주축을 이루는 언어 지식 영역은 국어 교육에 의미있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여기거나 혹은 독자적인 영역이 되지 못하고 언어 사용 기능 영역의 하위 영역으로서만 기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그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는 언어 지식 영역이 국어과 교육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 나아가 전반적인 교육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를 위해 주로 언어 지식 영역, 그 중에서도 특히 문법 지도와 관련된 논쟁거리들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영역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방법의 측면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Ⅱ. 언어 지식 영역 지도의 필요성
언어 지식 영역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문법, 언어의 본질, 언어와 인간, 국어의 특질, 언어(국어)의 역사, 문자, 표준어와 맞춤법, 국어에 대한 태도 등이 모두 언어 지식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 요소는 역시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편의상 Ⅱ장의 논의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문법과 관련된 사항들을 중심으로 논의하되, 논자들 서로간에 이견이 있었던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문법 지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문법의 개념과 관련하여
국어 교육에서의 문법 지도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있어 왔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봄으로써 문법 지도의 필요성 여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먼저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문법’이라는 용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사람마다 문법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문법 지도와 관련하여 차이가 나는 견해를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법 지도에 대한 이견 중의 상당수는 이러한 연유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법이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와 관련하여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 층위상의 범위이다. 좁은 의미의 문법은 형태론과 통사론의 영역만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형태론과 통사론뿐 아니라 음운론, 의미론, 용법 등도 포함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들 중 어느 것을 염두에 두고 문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법 지도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며, 나아가 문법 지도의 필요성에 대한 견해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과 교육의 한 영역인 언어 지식 영역과 관련하여 문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좁은 의미의 문법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잘 없고, 주로 넓은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에서 비롯되는 이견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법이 형태론과 통사론만을 포함하느냐 혹은 그 이상의 영역도 포함하느냐 할 때의 문법이라는 용어는 언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분야 혹은 그 결과인 언어에 대한 기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문법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의미로 한정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법이 갖는 다양한 의미에 대한 분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Kean(1981)의 것을 인용하여 논의해 보기로 한다.
① 언어의 표현 체계에 대한 기술. 다양한 문법 요소가 소통 단위로 배열되는 방법에 대한 기술.
② 선호되거나 거부되는 문법 요소에 대한 기술.
③ 화자가 의도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문장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적 지식의 추상적 실체.
이러한 세 가지 정의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문법 지도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문법에 대한 첫번째 정의는 순수한 언어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문법 지도에서는 국어 문법에 대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나아가 문법적 요소들의 기능과 문법적 규칙들을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문법에 대한 두번째 정의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으로, 문법적 체계와 규칙을 탐색하는 것보다는 언어에 대한 사회적인 규약을 익혀서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문법에 대한 세번째 정의는 언어 사용의 심리적인 과정에 초점을 둔 것으로, 암묵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문법을 활용하여 효과적인 언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이상의 여러 가지 개념 중 어떤 것을 문법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문법 지도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과 그것을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에 대한 인식 없이 논의를 할 때에 서로간에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위의 세 가지 문법에 대한 정의는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일 뿐 어느 하나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문법 지도에서는 이들 모두의 측면을 다룰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문법 지도에 관하여 논의하는 사람 중에는 문법에 대한 개념과 문법 지도의 목표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법의 개념에 대해서는 순수한 언어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문법 지도의 목표는 국어 문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나 문법적 규칙에 대한 탐색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사용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경우이다. 이 때에는 명백히 문법에 대한 관점과 문법 지도의 목표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극단적으로는 문법 지도가 목표 달성에 하등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보아 문법 지도 무용론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문법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이며, 문법 지도의 목표 역시 문법 개념과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2. ‘언어에 대하여(about language) 가르치지 말고 언어를 가르쳐라'라는 주장과 관련하여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고 언어를 가르쳐라’는 주장은 언어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지 말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언어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언어 사용 기능을 신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몇 가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이 명제가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모어 교육이 아니라 외국어(로서의 영어) 교육이라는 점이다. 곧 외국어 교육에서는 단지 해당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대상 언어(target language)의 체계와 작용 방식 등 ‘언어에 대해서’는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어 교육에서도 실제로 ‘언어에 대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외국어 교육에서는 모어 교육에서보다 명시적인 문법적 지식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언어에 대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외국어 교육에서조차 적용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에 대해서 가르치지 말라는 주장은 주로 외국어 교육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모어 교육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이러한 주장이 나왔던 시대로 되돌아가 보자. 예컨대 영어의 경우, 당시의 전통 규범 문범은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를 충실하게 기술함으로써 도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 규범 문법은 현실적인 영어와 많은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는 ‘언어(전통 규범 문법)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라’는 주장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모어 교육의 경우에 언어에 대하여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현재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모어 화자들은 암묵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모어에 대하여 이미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언어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문법 학습이 언어 사용의 기능 신장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뒤의 논의로 미루고, 여기서는 다른 두어 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기로 한다.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고 언어를 가르쳐라’라는 주장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이 주장이 지향하는 목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목표를 이렇게 설정할 때에만 이 주장이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목표가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예컨대 ‘국어의 구조와 작용에 관하여 안다’거나 혹은 ‘국어의 구조와 작용 및 그 규칙을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등이 목표라면 위의 주장은 자체로 모순이 되어 성립되지 않는다. 요컨대 문법 지도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위 주장의 타당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며, 역으로 위 주장이 목표에 우선하여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위 주장에서 ‘언어에 대하여’라는 말이 포함하는 의미이다. ‘언어에 대하여’라는 말을 ‘문법’이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고 할 때, 앞에서 이미 살펴본 대로 문법, 혹은 ‘언어에 대하여’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중에서 어떤 의미를 택하느냐에 따라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라는 주장이 타당할 수도 있고,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순수 언어학적인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타당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언어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나 혹은 언어 사용의 심리적 과정을 가능케 하는 추상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올바른 주장이 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언어에 대하여’라는 말이 만약 언어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나 언어 사용의 심리적 과정을 가능케 하는 추상적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언어에 대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국어 교육에서는 ‘언어에 대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이러한 관점을 택하는 이유는 우선 문법 지도의 목표가 언어 사용의 기능을 신장시키는 것 이외에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이며, 또 목표가 언어 사용의 기능을 신장시키는 것일 때라도, ‘언어에 대하여’라는 말의 의미가 반드시 순수한 언어학적인 기술을 의미하는 것만으로 한정될 수 없으며, 언어 사용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훌륭하게 기여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지식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토대를 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언어에 대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은 6차 교육 과정의 지향과도 통한다. 6차 교육 과정이 5차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5차가 학생들의 언어 활동과 연습을 강조하였다면, 6차는 언어 사용의 원리에 대한 지식을 함께 강조한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인지 심리학의 동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새로운 의미에서의) 가르침 없이 활동과 연습만 강조하는 언어 교육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3. 문법 지도 무용론에 대하여
문법에 대한 지도는 국어 교육에서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국어 교육의 목표를 국어 사용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으로 보고, 문법에 대한 학습은 국어 사용의 능력 신장에 하등의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보는 데에서 출발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문법 능력은 언어 사용 능력의 ‘기저’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대하여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 주는 연구들이 많이 있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다음 가정들은 모두 잘못된 가정이었다고 한다.(Goodman et al., 1987:173-174에서 재인용)
-문법 학습은 사고 훈련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문법 학습은 다른 과목에 전이될 것이다.
-전통 문법에 대한 지식은 문학 작품 해석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학교 문법을 잘 배워 두면 학습에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학교 문법에 대한 지식은 독해력에 도움을 줄 것이다.
-문법 규칙을 암송할 수 있는 능력은 작문시 문법적 문장을 생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
다.
-문법 지도는 문장 구조를 가르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학교 문법은 구두점 지도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법 규칙을 암송하면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법가들은 어떤 것이 표준 영어이고 어떤 것이 표준 영어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
할 것이다.
이들이 모두 잘못된 가정이었다는 것은 결국 문법에 대한 학습은 언어 사용의 능력 신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결론에 따르면 국어 사용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어 교육에서는 문법 지도가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의 타당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연구는 모두 30년대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문법은 전통 학교 문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의 전통 학교 문법은 현실 언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을 근간으로 한 당시의 전통 학교 문법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현재의 문법 교육에 그대로 적용시켜 문법 교육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위의 연구 결과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Newkirk(1978)은 기존의 문법 학습의 효과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실험 연구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실험 연구의 요건을 갖춘 몇몇 연구에 의하면 문법 학습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증해 주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는 변형 생성 문법을 가르쳤는데도 언어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는 점이다. 문법 능력이 언어 사용 능력의 기저이고, 또 변형 생성 문법은 모어 화자들의 언어 직관을 명시화한 것이기 때문에, 변형 생성 문법을 가르치면 언어 사용 능력이 신장되어야 할 터인데 왜 효과가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로 가능하다.
첫째, 아동들은 이미 자기의 모어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문법 지도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아동들은 5-6세 정도가 되면 모어를 거의 완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에서 문법에 대한 명시적인 지도는 시간 낭비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아동들의 문법 능력을 과대 평가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들이 5-6세 때 완습한다고 하는 문법과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성인들의 문법은 정확성과 질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아동들의 작문과 교육을 받은 성인의 작문을 비교해 보면, 문법적 정확성과 적절한 문장의 구성 능력에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동들은 자기의 작문에서 비문법적인 문장을 잘 찾아내지 못하는 반면, 교육 받은 성인들은 그것을 찾아내어 고쳐 쓸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아동들의 문법 능력과 교육 받은 성인의 문법 능력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동들에게 문법에 대해서 더 가르칠 것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문법 지도가 언어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한 이유는 아동들이 해당 언어의 문법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문법 학습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법 지도가 언어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한 이유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현재의 문법 지도의 방식과 실제적인 언어 사용 방식 사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현재의 문법 지도는 본질적으로 분석적이다. 주어진 언어 자료(대개의 경우 문장)를 쪼개 나가면서 그 기능이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반면에 언어 사용 행위는 본질적으로 통합적이다. 성분과 성분, 문장과 문장을 통합시켜 나가는 과정이 언어 사용 행위이다. 통합적인 언어 사용 행위와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분석적인 문법 지도는 언어 사용 능력의 신장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라’나 ‘문법 지도는 국어 교육에 쓸모가 없다’는 주장은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언어에 대하여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따라 그 정당성 여부가 달라진다. 이들 주장이 타당할 수 있는 경우는 예컨대 목표가 언어 사용의 기능 신장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언어학적 개념이나 순수 언어학적 체계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경우이다. 그러나 만약 목표가 언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거나 혹은 언어 규칙에 대한 탐구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면, 언어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거나 규칙을 발견하는 절차를 경험시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목표가 언어 사용의 기능 신장일 경우에도 언어 사용의 원리나 용법과 같은 언어에 대한 지식은 그에 적절한 방법으로 마땅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언어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단순한 훈련만으로 진행되는 교수-학습은 비효율을 면하기 어렵다.
문법 지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혼란이 있었던 이유는 결국 문법에 대한 개념에 오해가 있었거나 혹은 문법관과 문법 지도의 목표에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문법은 언어에 대한 순수 언어학적인 기술, 사회적인 규약, 그리고 언어 수행을 가능케 하는 내적 능력 등의 여러 가지 개념을 가진다. 이들은 문법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며, 완전한 문법 지도는 문법의 이러한 여러 측면을 모두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의 논의들 중에서는 이들 여러 가지 문법 개념 중 어느 하나만을 문법으로 보았거나 또는 그 문법의 개념에 대해서도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문법 지도의 목표를 언어 사용의 기능 신장이라는 것으로 고정시켜 놓고, 문법이란 언어 사용 기능 신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언어에 대한 순수 언어학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문법에 대해서’ 가르치지 말라고 하거나, 혹은 문법이란 모어 화자가 이미 내재화하고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특별히 명시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도 업급한 바와 같이 문법 지도의 목표와 문법관 사이에 일관성이 없거나 학생들이 내재화하고 있는 문법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법 지도의 필요성 혹은 목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법 개념을 모두 포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문법 개념과 관련하여, 문법 지도를 해야 할 필요성을 잠정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설정한다.
정리 ①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춘다.
정리 ② 규범에 맞는 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정리 ③ 문법적 능력을 길러 효과적인 국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음 장에서는 문법 지도의 목표가 왜 이렇게 다양하게 설정되어야 하는지, 이 외에 더 설정해야 하는 것은 없는지,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목표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 그 방향을 탐색해 보도록 하겠다.
Ⅲ. 언어 지식 지도의 방향
국어 교육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국어 교육의 영역 상호간의 관계를 정립하려는 노력들이 있어 왔다. 이것은 서로 성격이 다른 여러 영역들을 하나의 일관된 목표로 그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기능을 위한 기초 지식인 것으로 그 성격이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문법 지식이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언어 사용 기능에 기여하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것은 언어 지식의 교육적 의미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문법은 언어 기능 신장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가르칠 가치가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야 하며, 그것에 대한 학문적인 체계는 학생들에게 흥미있는 학습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문 중심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잠정적으로 전자의 관점을 통합론이라고 하고, 후자의 관점을 독자론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통합론과 독자론은 나름대로 주장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교육 과정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실용주의적 관점과 학문주의적 관점이 번갈아 득세하는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이란 ‘가치의 전승’(Peters)이라고 한다. 가치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승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 지식 영역 지도와 관련하여 통합론과 독자론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어느 하나의 관점을 택했을 때에는 다른 쪽에서 내세우는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통합론을 택했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도 내용이 상당히 제한되며, 그래서 중요한 가치가 전승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언어의 본질, 언어와 인간의 관계, 여러 가지 국어의 특질, 국어의 역사, 훈민 정음 및 한글의 우수성, 국어에 대한 태도, 그리고 국어 사용 능력과는 관계가 없지만 학문적 기술에 필요한 언어학적 개념과 지식 등이 다루어지지 않게 된다. 반면에 독자론을 택했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 관계있는 것들을 영역마다 별개로 가르침으로써 중복되어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고, 서로간에 간섭이나 배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곧 언어 지식 영역은 그 나름의 구조와 체계에 의해서 언어 지식을 가르치고 또 언어 기능 영역 역시 필요에 따라 언어 지식을 별도로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 중복될 수 있으며, 또 역으로 언어 지식과 언어 사용 기능을 별개의 영역으로 따로 가르치게 됨으로써 서로 관계가 없다는 배타적 인식을 줄 우려도 있고, 나아가 순수한 학문적 개념과 체계가 여과 없이 그대로 언어 사용 기능 영역의 지도 내용으로 수용됨으로써 본질을 왜곡시키는 간섭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 지식 영역 지도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 가지 극단론을 절충하는 방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잠정적으로 상호 보완론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언어 사용 기능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기능과 관련시켜 지도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그 나름의 가치를 살려 가르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상호 보완론적인 관점은 언어 사용 기능 신장에 기여하는 언어 지식만으로 한정하여 가르칠 때에는 누락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모두 포함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언어 사용 기능과는 별개로 언어 지식을 가르칠 때에 발생할 수 있는 중복 현상이나 상호 간섭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두 영역 상호간의 공통 분모를 어떻게 최대화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교육 과정에서 영역을 구분하여 기술하는 것은 가르칠 내용들을 빠뜨리지 않고 체계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영역 구분을 따로 하였다는 것이 교수-학습의 실제도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활동으로 두 영역의 내용을 모두 다룰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지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한 영역의 학습이 그것 자체로 그치지 않고 다른 영역의 학습에도 기여한다는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한 영역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영역이 채워 줌으로써 완성된 전체를 이룬다는 측면이다. 언어 기능 영역과 언어 지식 영역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도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갖는다는 의미이다. 곧 언어 기능 영역의 학습이 언어 지식 영역의 학습에 기여하고, 역으로 언어 지식 영역의 학습이 언어 기능 영역의 학습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과, 언어 기능 영역에서 다루지 못하는 것을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고,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언어 기능 영역에서 다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언어 지식에서 언어 기능으로 향하는 일방적인 화살표는 서로를 향하는 쌍방간의 화살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상호 보완론적인 관점은 서로에게 기여함으로써 학습 효과의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많이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언어 기능과 언어 지식 영역의 관계와 관련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낼 수도 있다. 곧 언어 기능의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 언어 지식 사항은 ‘국어’ 과목의 언어 영역에서 다루고, 그렇지 않은 사항은 고등학교의 독립적인 과목인 ‘문법’에서 다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고등학교 문법 과목은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 구분에 의하면 문법 과목을 배우지 않는 학생들은 언어 기능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정됨으로써 문법 과목에만 실린 사항들을 배우지 못하게 되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학습하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언어 기능에 기여하는 언어 지식 중에서 고등학교 수준에서 다룰 만한 것이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는지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언어 기능에 기여하지 않는 언어 지식도 가르칠 내용으로 선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본고의 관점과 큰 차이가 없다.
언어 지식 영역과 언어 기능 영역을 상호 보완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영역 상호간의 공통 분모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공통 분모를 최대화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언어 사용의 관점에서 언어 지식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언어 지식 자체의 완전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언어 지식이 언어 기능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의 일단을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a. 어제 거기서 만나.
b.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a의 경우를 보자 ‘거기’는 이른바 지시대명사 혹은 지칭사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일정한 장소를 대신하는 말이거나 혹은 화자가 화자 자신과 청자가 함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어떤 장소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언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의 설명은 기존의 ‘언어 지식’ 영역에 드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a의 표현이 화자와 청자 이외에 옆에 있는 제3자로 하여금 화자가 청자와 만나고 싶어하는 장소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사용된 경우라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된 a의 표현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화자는 자기가 의도하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거기’라는 언어 형식이 갖는 기능적 특성을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거기’라는 언어 형식의 ‘사용’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 지식을 바라봄으로써 언어 지식 자체의 완전성을 높이고, 동시에 언어 지식이 언어 기능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b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는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언어 형식이며, ‘-ㅂ니다’는 청자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언어 형식이다. 그리고 이들 언어 형식은 높임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친소(親疏)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언어 지식’ 영역에 드는 내용이다. 그런데 애인 관계로 서로 반말하던 관계인 화자와 청자 사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화자가 ‘남남의 관계’로 돌아가겠다는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b가 사용된 것으로 가정해 보자. 이 경우도 화자가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나 ‘-ㅂ니다’가 갖는 친소의 기능을 ‘이용’하였다는 점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곧 이러한 용법의 측면을 언어 지식에 부가함으로써 언어 지식 영역과 언어 기능 영역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어 지식 영역과 언어 기능 영역이 서로의 공통 분모를 최대화하기 위하여 ‘사용’ 혹은 ‘용법’의 측면이 언어 지식에 부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존의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는 모든 요소들을 이러한 관점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룰 만한 내용들 중에는 그 자체로서, 혹은 사용 혹은 용법의 측면에서 재검토해 봄으로써 언어 기능 역역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어야 하는 내용 중에는 그 자체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가치는 있지만 언어 기능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언어 혹은 국어가 지니는 문화적 가치의 측면이다. 언어의 본질 및 인간과의 관계, 국어의 특질, 국어의 옛 모습, 그리고 세계의 언어와 한글의 우수성 등과 관련되는 것들이 그 문화적인 가치로서 국어과에서나 혹은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것들이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언어 기능 영역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인류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언어 지식 영역을 지도할 필요성을 하나 더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리 ④ 언어와 국어의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게 한다.
지금까지는 가르쳐야 할 내용의 측면에서 언어 지식 영역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제 언어 지식 영역의 내용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관련되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언어 지식 지도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언어 지식, 특히 문법 지도의 주류를 이루어 온 것은 이른바 전통적인 교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교수법은 특정의 배경 이론 혹은 학문 경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며 관습적으로 전해 내려 온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수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교사는 언어적 개념이나 규칙, 체계에 대한 지식을 전해 주기만 하고, 학생은 받아 들이기만 한다. 그 방법은 해설식 강의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전해 받은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고, 그것을 주어진 문장의 구조 분석에 적용시켜 본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입 받은 지식을 ‘연역적’으로 적용시키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입 받은 지식은 유의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망각되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연역적인 문법 학습을 감당할 만큼 지적 능력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또 학생들이 주입 받은 언어 지식은 많은 경우 실제적인 언어의 모습에 잘 적용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문법이 어렵고 재미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언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거나 혹은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학생들 자신의 언어는 학습의 자료가 될 수 없다. 이러한 학습에서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없고, 흥미도 유발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문법 지도 방법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문제점으로 하여, 우리는 그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방향에 대한 단서를 어린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개체를 전체 속의 한 부분으로 파악하는 gestalt 심리학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언어를 배운다는 이론이 등장하였다. 사회적인 개체로서의 한 어린이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세상의 모습을 해석하거나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개인의 심리적 창의성과 사회적 규범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어린이들은 자기 나름의 문법을 창조하여 그것을 통해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사회와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그러면 사회는 그 어린이의 언어 혹은 문법이 잘못된 경우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제재를 가하게 된다. 이것을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설명한다. 어린이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계속 자기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가고(원심력), 사회는 특정의 규칙 속으로 어린이들을 끌어들이는(구심력) 상호 역동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는 아동의 창조적인 규칙화 능력도 필요하며 동시에 사회의 규범화된 규칙의 제재도 필요하게 된다. 규칙을 만들고, 제재를 받고, 다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문법을 내재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결국 언어를 생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이며, 동시에 자기 나름의 문법을 구성해 감으로써 언어에 대하여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의 언어 습득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린이들은 언어 기능과 언어 지식을 별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배운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은 언어 사용 행위를 통해 언어에 대하여 배우고, 또 자기 나름의 언어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언어 사용 행위를 수행한다. 곧 어린이들은 언어 기능과 언어 지식을 ‘상호 보완적’으로 습득한다. 언어 습득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서, 우리는 언어 교수도 상호 보완적인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적인 언어 습득과 의도적인 언어 교수는 차이가 있다. 습득을 통해 배우는 것은 언어에 대한 암묵적인 지식이지만, 공식적인 교과인 국어과에서 언어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명시적인 언어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시적인 언어 지식을 어떻게 언어 기능과 상호 보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언어 지식을 지도하는 바람직한 방법을 구안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두 가지 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교수 방법이 가지고 있는 약점, 곧 연역적이고 주입적이어서 학생들이 어려워하고 재미 없어 한다는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며, 둘째는 명시적인 언어 지식을 어떻게 언어 기능과 상호 보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발견 학습 혹은 탐구 학습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발견 학습 또는 탐구 학습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자료로 삼아 귀납적으로 규칙을 찾아내게 된다. 이렇게 도출된 규칙은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며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이 규칙은 스스로 찾아낸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 자신에게 유의미하며, 학생들 자신의 언어를 자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흥미있는 학습이 될 수 있고, 또 정답 여부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문법이 어렵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탐구 학습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전통적인 교수법이 지닌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 지식에 대한 탐구 학습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언어 기능 영역에 기여함으로써 상호 보완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먼저 탐구 자료의 수집 과정이 언어 기능에 기여할 수 있다. 규칙 탐구를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 자신의 언어를 수집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특정의 상황에서 자기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특정 상황에서 특정의 언어 형식이 적절한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곧 특정의 언어 형식이 어떤 용법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역으로 특정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언어 형식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익히는 과정이 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언어 사용의 기능을 학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규칙 탐구의 과정 자체가 언어 기능 신장에 기여할 수 있다. 지금의 언어 기능 영역 지도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실제적(authentic)이고 총체적(holistic)인 언어 사용 행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언어 기능 지도는 하위 기능들을 분절적으로 지도함으로써 총체적인 언어 사용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며, 또 인위적인 가정 상황에서 언어 사용 행위를 연습하게 함으로써 실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언어 기능 신장을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실제적이고 총체적인 언어 사용 행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바로 언어 지식에 대한 탐구 학습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언어에 대한 규칙 탐구라는 실제적인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규칙을 도출하기 위해 토의나 토론과 같은 언어 사용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규칙 도출의 과정을 한 편의 글로 쓰는 작문 행위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적인 언어 사용의 상황이며, 동시에 분절적인 기능이 아닌 총체적인 언어 기능을 활용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곧 언어 사용 행위를 통해 언어 지식을 배우며, 동시에 언어 지식을 공부하면서 언어 사용 기능을 배우는 상호 보완적인 학습 상황이다. 이러한 방법은 언어 기능 영역과 언어 지식 영역을 동시에 다루게 됨으로써 교수-학습의 효율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탐구 학습의 원리를 도입하여 언어 지식 영역을 지도함으로써, 또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탐구 능력, 곧 사고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교과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교육의 일반 목적을 꼽는다면 첫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사고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교과는 나름대로 사고 능력의 신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 내용과 방법이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언어 지식 영역 지도의 필요성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정리 ⑤ 발견 혹은 탐구 절차를 경험시킴으로서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다.
Ⅳ. 맺음말
국어 교육에 대한 언어 지식 영역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이러한 시각은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라’는 말과 ‘문법 지도는 언어 기능 신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말로 대표된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문법관과 언어 지식 영역의 목표 사이의 불일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법은 순수 언어학적인 기술로서, 사회적인 규범으로서, 그리고 언어 수행을 가능케 하는 내적 능력으로서 등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이들 중 어떤 문법관을 취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목표도 달라진다. 문법 지도가 국어 교육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은 문법의 개념에 대해서는 순수 언어학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목표는 언어 사용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으로 봄으로써, 문법관과 문법 지도의 목표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문법에 대한 개념을 언어 수행을 가능케 하는 내적 능력으로 보고, 목표를 언어 사용의 기능 신장이라고 봄으로써 일관성을 갖춘 경우라도, 학생들의 문법 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교육 받은 성인의 문법 능력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어 지식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은 국어 교육에서 필요한 일이다. 언어 기능의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 언어 지식이 많기 때문이며, 또 언어 기능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더라도 학생들에게 전수되어야 하는 언어(국어)와 관련된 가치 있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 지식 영역은 언어 기능 영역과 내용 및 방법 모두에서 상호 보완적으로 국어 교육에 기능해야 한다. 내용의 측면에서 이러한 상호 보완성을 높이는 방법은 언어 지식 영역의 항목들 각각에 ‘사용’ 혹은 ‘용법’의 측면을 부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언어 지식 자체도 보다 완전해지며, 동시에 언어 기능의 신장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의 측면에서 상호 보완성을 높이는 방법은 발견 학습 혹은 탐구 학습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탐구할 언어 자료를 찾는 과정은 특정의 언어 형식이 어떤 기능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특정의 의미 기능이 어떤 형식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지를 인식하게 한다. 또 언어 규칙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토론이나 토의를 한다든지 혹은 한 편의 글을 쓰게 함으로써, 그 결과 언어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뿐 아니라 실제적이고 총체적인 언어 사용을 훈련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국어 교육에서 언어 지식 영역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언어 지식 영역을 지도함으로써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게 할 수 있고, 규범에 맞는 국어를 사용하게 할 수 있으며, 효과적인 국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고, 언어와 국어의 문화적 가치를 인식시킬 수 있으며, 탐구 능력이나 합리적인 판단력 등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성을 제한된 시간 내에 무리 없이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언어 지식 영역과 언어 기능 영역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 내용과 방법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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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어 지식 내용의 조직 방식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
심영택(한국교육개발원)
1. 언어 지식 내용의 조직 방식에 대한 비교틀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틀을 가지고 외국의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비교·분석하고자 한다. 1)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 2)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 3) 타영역과의 관계가 그것이다.
1)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이란 틀을 살펴보자. 학습할 교육 내용을 연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 중 ‘반복’과 ‘연결’이란 두 축을 중심으로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을 논하고자 한다. ‘반복’은 가르쳐야 할 언어 지식 내용을 되풀이 하여 제시하는 것으로 이미 배웠던 내용에 조금 더 심화한 내용을 덧붙이면서 학습할 내용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이와같은 방식은 언어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년에서부터 끝나는 학년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색이다. 그리고 ‘반복’과 같은 연계 방식에서 학습할 내용이 ‘연결’에서 학습할 내용과 같다고 가정하면 상대적으로 각 학년별, 학교급별로 다루게 되는 내용의 수는 많아지게 된다.
한편 ‘연결’은 교육 과정에서 내용 중복은 피하고, ‘정선 집약’된 학습 내용을 학년과 학교 단계에 맞게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역사 교육 과정과 같이 학년별로 배우게 되는 내용을 순차적으로 배열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학년에서 ‘연결’과 같은 연계 방식으로 학습할 내용의 수는 ‘반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학습할 내용을 ‘반복’과 같은 연계 방식으로 하는 형태를 ‘반복형’으로, ‘연결’과 같은 연계 방식으로 하는 형태를 ‘연결형’으로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학습할 언어 지식 내용을 매학년마다 제시하는 ‘학년간’ 방식과 몇 개 학년을 묶는 ‘학년군(群)’ 방식이 있다. 국민학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매학년을 구분하고 각 학년마다 교육 내용을 구성하는 방식이며, 후자는 2~3개 학년을 묶은 다음, 묶은 학년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식이 생겨난다. 즉 ‘학년간 반복형’, ‘학년간 연결형’, ‘학년군 반복형’, ‘학년군 연결형’이 생겨난다.
2) ‘언어 지식 내용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란 틀을 살펴보자. 학교에서 배워야 할 언어 지식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언어의 본질, 인간과 언어, 국어의 특질 등을 다루는 ‘국어의 본질’ 분야, 국어의 계통, 음운 변화, 문법 변화, 의미 변화 등을 다루는 ‘국어의 역사’ 분야, 그리고 문자, 음운, 단어, 문장, 의미, 담화와 사용 등을 다루는 ‘국어의 구조’ 분야, 마지막으로 올바른 국어의 사용, 표준어와 맞춤법, 국어 순화 등을 다루는 ‘국어의 사용’ 분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 지식 내용을 조직함에 있어서 위의 네 가지 분야를 비슷한 비중으로 모두 다룰 수도 있으며, 네 가지 중 어느 한 분야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상세히 다루고, 다른 내용들은 통합해서 간단히 다룰 수도 있다. 전자는 ‘비중의 균등화’로 모든 내용을 고루 학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이로 인해서 어느 부분도 상세히 다룰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후자는 내용별 ‘비중의 차등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가지 내용에 대해서만이라도 폭넓고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폭넓은 언어 지식을 학습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3) ‘다른 영역과의 관계’란 틀이다. 여기서 국어과 교육에서 다른 영역이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문학 영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른 영역과의 관계’란 언어 지식 영역이 이들 다른 영역과 어떤 관계를 지니면서 그 내용을 조직하는가이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언어 지식 영역을 포함한 모든 영역의 내용을 그 주제와 통합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며, 언어 지식 내용을 말하기·듣기, 쓰기, 읽기와 같은 기능과 통합해서 가르칠 수도 있다. 전자는 ‘주제 중심의 통합 형태’이나 후자는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이다. 본고에서는 이 두가지를 묶어서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라고 부르기로 한다. 한편 언어 지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와 같은 기능과는 별도로 그 내용을 가르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라고 부르기로 한다.
통합 형태는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관심이나 가능한 자료 등에 따라서 융통성 있고 다양한 교육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통합적인 학습이 학생들의 실생활과 관련이 있는 의미있는 학습을 할 기회를 갖게 한다거나 다른 영역과 관련된 학습을 동시에 함으로써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분리 형태는 언어 지식 그 자체가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 지식의 구조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배운 것을 기억하기가 용이하며, 발견하고 탐구하는 사고 과정을 다른 학문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 국민학교와 중학교 언어 지식 내용 비교
가. 국민학교
1) 미국편
미국 국민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미국의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미국의 교육 과정은 모든 교과 영역의 목적들이 교과 간의 공통성을 잘 드러내도록 ‘목적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교과 영역은 목적(일반 목적 goals), 목표(내용 목표 objectives) 그리고 여타 자료(descriptive materials)로 진술되어 있다. 그리고 교육 과정은 다시 크게 목적, 목표, 학습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학년과 고학년 모두 동일한 목적과 목표를 지닌다. 단지 학습 활동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언어 사용 영역의 일반 목적은 다음과 같이 9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1)개인별로 각기 다른 의사 전달의 효과에 대한 감각을 발달하게 한다. (2)의사 전달 기능에서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감각을 발달하게 한다. (3)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시각 및 청각 기능을 발달하게 한다. (4)메시지를 언어 및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서 전달하기 위하여 행동 및 말하기 기능을 발달시킨다. (5)독해력을 발달하게 한다. (6)독서를 학습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한다. (7)실제적이며 창의적이고 미적인 목적을 위하여 명료하고 정확하게 쓰도록 한다. (8)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언어의 기능을 이해하게 한다. (9)다양한 문학 형식 및 매체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경험을 넓히게 한다.
그러면 이들 언어 사용 영역의 목적의 하위 영역에 해당하는 내용 영역에 나타난 언어 지식과 관련된 목표(objectives)를 살펴보자.
언어 사용 영역의 일반 목적(5)는 ‘독해력을 발달하게 한다.’인데, 그 하위 목표를 다시 8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 중 언어 지식과 관련된 것은 (5.2)와 (5.3)이다. (5.2)의 내용은 ‘어휘 증진을 통하여 낱말과 그 뜻을 알아보게 한다.’인데 학습 활동은 ‘많이 쓰이는 유사어, 상대어, 동음이어를 알아 보고 이해한다.’이다. 그리고 (5.3)의 내용은 ‘낱말 찾기 기능을 발달시킨다.’인데, 학습 활동은 ‘기초 어휘를 알아보고 형성하기 위해서 구조 분석을 활용한다.’이다. 이 두 학습 활동은 모두 ‘국어의 구조’ 분야 중 ‘단어’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그리고 언어 사용 영역의 일반 목적 (8)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언어의 기능을 이해하게 한다.’인데, 그 하위 목표를 7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 중 언어 지식과 관련된 것은 (8.1)이다. (8.1)의 내용은 ‘단순한 단어 조직에서부터 좀더 복잡한 단어 조직을 구성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인데, 학습 활동은 저학년(1~3학년)에서는 ‘적절한 어순을 활용해서 간단한 문장을 쓴다.’이고, 고학년(4~6)에서는 ‘몇개의 문장을 한 문장으로 연결한다.’이다.
미국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반복형’이다. 왜냐하면 1~3학년을 저학년으로 4~6학년을 고학년으로 나누었기에 ‘학년간’이라기보다는 ‘학년군’ 구성이다. 그리고 언어 사용 영역에서 동일한 목적, 예를 들면 언어 사용 영역의 일반 목적 (5)와 (8)을 설정하고 저학년과 고학년에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각 학년군 단위에 맞게 학습할 언어 지식 내용을 반복하고 심화 확대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국어의 구조’ 이다. 즉 ‘어휘’와 ‘문장 구조’를 다루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언어 지식 내용을 구성하였다.
한편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일반 목적과 내용 목표를 중심으로 언어 지식 내용을 통합하여 제시하였기에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로 볼 수 있다. 즉 여기서는 목적군은 ‘주제’에 해당하며 일반 목적과 내용 목표는 ‘기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 영국편
영국 국민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영국의 교육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영역은 ‘범위, 핵심 기능, 표준 영어와 언어 지식 학습’이라는 하위 항목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국어 교육 과정은 크게 ‘학습 프로그램’(programmes of study)과 ‘도달 목표’(attainment targets)로 나누었다. 그리고 학습 프로그램은 다시 모든 과목에 걸쳐서 필요한 공통 요구 사항(common requirements), 관문1-4까지의 영어 일반 요구 사항’(general requirements for english : key stages 1-4), 관문1의 학습 프로그램, 관문2의 학습 프로그램, 관문3-4의 학습 프로그램으로 다시 나누었다. 그리고 관문1, 관문2, 관문3-4의 학습 프로그램에는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영역이 있다. 이들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영역은 각각 범위(range), 핵심 기능(key skills), 표준 영어와 언어 지식 학습(standard english and language study)을 포함하고 있다.
영국의 교육 과정 중 언어 지식에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항목에 나타난다. 먼저 관문 1-4까지의 영어 일반 요구 사항에 나타나는데, 말하기·듣기와 관련하여 표준 영어 어휘와 문법을 사용할 것, 그리고 작문과 관련하여, 어휘 확장과 문체, 그리고 문법적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조직하는 것 등이다. 또 표준 영어의 이해와 사용을 위해, 어휘, 문법 규칙과 관례 등으로 표준 영어 구별하기, 대명사, 부사, 그리고 형용사의 사용하는 방법 알기, 부정문과 의문문 동사 시제 만드는 법 알기 등과 같은 언어 지식적 특징이 들어 있다.
관문1에서 관문4에 이르기까지 언어 지식에 관련된 내용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하위 부분인 ‘표준 영어와 언어 지식 학습’에서 다루고 있다. 관문1의 말하기·듣기에서는 낱말의 의미, 유의어와 반의어 등을 다루고 있으며, 읽기에서는 읽기에서 학습한 언어에 대한 지식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표준 영어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쓰기에서 표준 문어(文語) 영어의 어휘, 문법, 구조를 소개하는데, 주어와 술어의 일치, 과거와 현재 시제에서 ‘to be’ 동사의 사용, 문장 이해를 위해 기존의 언어학적 지식을 적용하기,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 있어서 낱말 선택과 어순의 기여, 문장 연결하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관문2에서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관문1과 대동 소이하며, ‘표준 영어와 언어 지식 학습’에서 다루고 있는데, 두드러진 것은 다음과 같다. 쓰기에서 절과 문단을 포함하며, 복문의 문법 이해,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전치사, 접속사, 동사 시제의 표준 문어 형태 등을 다루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관문3과 관문4를 함께 제시하였는데,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관문1, 2와 대동 소이하며, 역시 ‘표준 영어와 언어 지식 학습’에서 다루고 있다. 그 중 두드러진 것은 다음과 같다.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용법과 낱말, 의미, 다른 언어에서 차용한 낱말, 언어 사용에 대한 태도, 문어와 구어의 차이, 표준 영어와 방언 이형태의 어휘와 문법 등이다.
영국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미국의 국민학교와 마찬가지로 ‘학년군 반복형’이다. 왜냐하면 1-2학년을 관문1, 3-6학년을 관문2, 7-9학년을 관문3, 10-11학년을 관문4에 각각 배당하였기에 ‘학년간’ 구성이라기보다는 ‘학년군’ 구성이다. 그리고 관문1에서 관문4에 이르기까지 제시된 언어 지식 내용은 부분적인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대명사, 부사, 형용사와 같은 단어의 특성과 부정문과 의문문, 시제, 주어와 술어의 일치, 어순, 문장 연결 관계와 같은 문장의 특성, 유의어와 반의어와 같은 의미의 특성을 다루는 ‘국어의 구조’ 분야가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용법과 낱말의 변화, 의미의 변화, 차용을 다루고 있기에 ‘국어의 역사’ 분야도 있으며, 표준 영어와 방언, 언어 사용에 대한 태도를 다루고 있기에 ‘국어의 사용’ 분야도 있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하위 항목인 ‘표준 영어와 언어 연구’에서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표준 영어와 언어 지식 학습’이라는 항목은 이들 각 기능 영역이 다루고 있는 항목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고, 언어 지식과 관련된 이 항목을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는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를 유지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3) 캐나다편
캐나다 국민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캐나다의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캐나다의 국어 교육 과정은 교과의 성격(지도의 원리), 교과 일반 목표(1~12학년), 교과 세부 목표, 학년별 내용(contents, skills)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학년별 내용은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중심으로 1학년에서 5학년까지 다시 세분하였다.
캐나다 언어 교과의 일반 목표(1~12학년)는 다음과 같다.
(1) 언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의식과 관심을 발달하게 한다.
(2) 언어의 광범위한 활용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발달하게 한다.
(3) 여러 다양한 목적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유연성을 발달하게 한다.
그리고 언어 교과의 세부 목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소리나 인쇄된 말의 산출과 수용
(2) 화법(speech)에서의 언어의 흐름과 인쇄된 지면 및 어휘의 배치 사이의 관계
(3)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언어의 활용
(4) 어휘의 의미의 다양성이나 섬세함과 의사 전달의 전체적인 의미 사이의 관계
(5) 의사 전달 기호로서의 어휘의 순서와 형태
(6) 아이디어가 조직되고 제시되는 방식과 의사 전달의 전체적인 의미 사이의 관계
(7) 비언어적 의사 전달을 통한 의미의 확충
(8) 청중,목적, 상황, 문화, 사회에 따른 언어의 변화
(9) 문화를 기록 반영하고 영향을 주는 역동적인 체제로서의 언어
(10) 청중의 반응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서의 즉각적인 언어 변화
(11) 환경이나 타인의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키며 발견한 것 등을 평가하기 위한 언어의 활용
(12) 자신 및 타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데 있어서의 언어의 역할
(13) 상상을 자극하고 이해를 깊게 하며 정서를 야기하고 기쁨을 주기 위한 언어의 활용
(14) 다른 예술 표현 형태와 언어와의 관계
위와 같은 목표들은 모든 학교급별 수준에 적용 가능하지만 그 강조점이 학교 수준이나 학년 수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보기 등의 기능의 육성을 통하여 그리고 관련있는 다른 언어 능력을 통하여 언어 프로그램은 학생들로 하여금 언어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게 하고 생활에서의 언어의 가치를 의식하며 잘 활용하게끔 도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언어의 여러 성격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응용을 증진하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학년별로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1, 3, 5학년의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와 관련지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학년 읽기에서 ‘어휘를 알아보기 위하여 구조 분석을 활용한다.’가 있다. 말하기에서 ‘여러 다른 언어 목적을 인식한다, 어휘상의 성장(넓이, 깊이)을 제시한다, 어휘 구조상의 성장을 제시한다, 다양한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능을 활용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알맞은 언어 구조를 사용한다’ 등이 있다. 쓰기에서 ‘언어의 양의 증진을 통하여 쓰여진 언어에 대한 성장을 제시한다, 명사와 동사를 사용한다’가 있다.
3학년 듣기에서 ‘자음, 모음, 이중 자음, 혼성음을 알아본다’가 있다. 읽기에서 ‘어휘를 알아보기 위하여 음운을 분석한다(모음 변화, 포노그람 등), 어휘를 알아보기 위하여 구조를 분석한다(어휘 구조, 접두사, 접미사 등)’가 있다. 말하기에서 ‘좀더 복잡한 언어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구어 언어상의 성장(넓이, 깊이)을 제시한다, 언어적 및 비언어적 의사전달 기능을 보다 잘 구사한다, 여러 다양한 사태에서 적절한 언어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형식적 언어와 비형식적 언어의 차이에 대한 지각을 제시한다’ 등이 있다. 쓰기에서 ‘좀더 복잡한 언어 구조를 활용함으로써 쓰기 언어상의 성장(넓이와 깊이)을 제시한다. 구조 분석 및 음운 분석의 지식을 글짓기 작품에 응용한다’ 등이 있다.
5학년 듣기에서 ‘화자의 효과적인 어휘, 구, 형상적 언어 사용을 상기한다, 문장론적, 구문론적 단서 등의 문맥 분석법을 계속 활용한다, 강도, 고저, 질, 지속, 순서의 식별 및 음운의 구조 분석을 통하여 소리의 같은 점, 다른 점을 식별한다’ 등이 있다. 읽기에서 ‘필자, 독자, 청중의 역할을 이해하고 필자의 문장 양식 및 구조에 대한 이해를 제시한다, 문맥 분석을 계속해서 응용한다(문장론적 단서, 구문론적 단서), 어원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킨다, 새로운 낱말을 알기 위하여 고립적으로 또는 문맥적으로 그 음과 구조를 분석한다’ 등이 있다.
5학년 말하기에서 ‘점더 정확한 어휘, 효과적인 형상적 언어 등을 사용하여, 구어 어휘상의 계속적인 성장을 제시한다, 여러 문장 유형을 산출하고, 확충하고, 조화시키며, 명사, 동사를 수식하기 위한 어휘, 구, 절 등을 사용하며, 품사의 여러 형태와 기능을 이해하고 사용함으로써 구어 언어상의 계속적인 성장을 제시한다, 형식적 언어, 비형식적 언어 등을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함으로써 두 언어의 차이에 대한 지식을 제시한다’ 등이 있다.
5학년 쓰기에서 ‘여러 유형의 문장, 명사, 동사를 수식하는 어휘, 구, 절 등의 사용, 변화 강조를 위한 좀더 정확한 어휘와 구의 사용 변화 강조를 위한 다양한 종류 및 다양한 길이의 문장 사용, 품사(명사, 형용사, 부사)의 여러 형식과 기능을 이해하고 사용하며, 주부, 술부의 개념의 이해와 적용 등을 통하여 점더 복잡한 언어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문어(文語) 어휘상의 계속적인 성장을 제시한다’가 있다.
캐나다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간 반복형’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과 영국과는 달리 매학년마다 언어 지식 내용을 제시하였기에 ‘학년군’ 구성이 아니라 ‘학년간’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1학년에서 배우는 ‘구조 분석, 언어 목적 인식, 어휘상의 성장, 다양한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능의 활용, 상황에 맞는 언어 구조 사용’과 같은 언어 지식 내용이 3학년과 5학년에 걸쳐 ‘반복’된다. 비록 1학년에서 배운 언어 지식 내용이 3학년, 5학년으로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 내용이 조금씩 심화되는 형태를 보여주나 ‘반복형’이 ‘연결형’보다 우세하게 드러나기에 본질적으로는 ‘반복형’으로 보인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언어 목적 인식, 언어 및 비 언어적 의사소통의 기능을 다룬 ‘국어의 본질’ 분야가 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 이중 자음, 혼성음에 대한 이해, 음운 분석, (음운), 품사의 여러 형태와 기능, 접두사, 접미사(단어), 상황에 알맞은 언어 구조 사용, 명사와 동사, 구, 절, 문장론적, 구문론적 단서 등의 문맥 분석법, 문장 유형 산출, 주부와 술부의 개념 이해와 적용(문장), 필자의 문장 양식 및 구조에 대한 이해(담화 구조 이해)를 다룬 ‘국어의 구조’ 분야도 있으며, 필자, 독자, 청중의 역할 이해(올바른 국어의 사용)와 같은 ‘국어의 사용’ 분야도 있다.
한편 언어 교과의 세부 목표에서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언어의 메타적 특성, 언어의 기호적 성격, 언어와 사회, 언어와 문화, 언어와 사고, 언어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어 ‘국어의 본질’ 분야가 강조됨을 알 수 있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에서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능 영역에서 나타나는 언어 지식 내용은 미국과 영국과는 달리 기능 영역에서 다루어지지만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캐나다의 언어 프로그램이 학생들로 하여금 ‘언어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게 하고, 생활에서의 언어의 가치를 의식하며 잘 활용하게끔 도와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4) 스웨덴편
스웨덴 국민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스웨덴의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스웨덴의 국어 교육 과정의 특징은 목표와 주요 지도 내용으로 크게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문법’ 영역에서 각각 다루어야 할 주요 지도 내용은 ‘전학년(1~6학년)에 걸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먼저 제시하고, 저학년(1~3학년)에서 배워야 할 내용과 중학년(4~6학년)에서 배워야 할 내용으로 다시 세분하였다.
스웨덴의 국어 교육 과정의 또 다른 특징은 다음에서 알 수 있듯이 지식과 기능을 상호 작용하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
의사전달 능력이 중심적인 위치를 부과하지만, 그것들을 여러 수업과의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고 동기화하지 못한 독립적인 지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 능력은 지식에 의존한다. 학생들은 개념을 배우고, 질문하는 동안에 어휘의 활용을 학습하는 것이다. ···기능에 대한 강조는 고립적인 방법이나 형식적인 연습 등의 일반적인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식과 기능을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은 언어 지식 학습의 목표에도 잘 나타난다. 언어 지식 학습의 목표는 ‘학생들의 언어 구사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인데, 이는 Goodman(1987: 171-6)의 ‘문법을 배우면 단지 그 문법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수련에도 도움을 준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김광해, 1992: 88에서 재인용)
먼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주요 지도 내용에 나타난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저학년(1~3학년) 말하기·듣기에서 학생들은 회화를 하나의 과정 수행 절차로서 활용하는 능력을 개발하고 이야기를 활용하는 데 익숙하게 하는 것을 주요 지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가운데 언어 및 그 활용한 관련한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저학년 읽기에서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낱말이나 그 의미를 다루는 말놀이, 말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대화 등을 통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서 관찰하고 반영하도록 한다.’
저학년 쓰기에서 단음절 어휘에서의 자음이나 음운의 법칙에 특별히 주의하도록 한다. 그리고 중학년(4~6학년) 쓰기에서 (1)음운 규칙:잘못 발음하기 쉬운 어휘, 합성어, 발음하기 어려운 어휘 등, (2)단자음 및 복자음, (3)음가 등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다음은 문법 영역에서 가르쳐야 할 언어 지식 내용이다. 저학년 문법에서 (1)입장이나 말의 흐름에 따라 말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고 토의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2)구어, 문어 쓰기와 말하기의 여러 방식을 비교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3)어휘나 읽기의 흐름에 따라 대화에 있어서 어휘, 문자, 음가, 모음, 자음, 유사어, 어원, 마침, 어순, 문장, 구, 월점 같은 개념 활용을 학습하게 한다.
중학년 문법에서 품사, 특히 아주 많이 쓰는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의 학습을 포함한다.
스웨덴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연결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처럼 1~3학년을 저학년으로 4~6학년을 고학년으로 나누고, 저학년과 고학년에 적합한 언어 지식 내용을 제시하였기에 ‘학년간’이라기보다는 ‘학년군’ 구성이며, 학년군마다 같은 내용을 배우는 것도 아니며, 학습할 언어 지식 내용들을 평면에 순차적으로 나열하였기에 ‘연결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국어의 구조’이다. 즉 어휘, 문자, 음가, 모음, 자음 등의 음운과 유사어, 어원 등의 어휘, 마침, 어순, 문장, 구, 월점 등의 문장과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의 품사를 다루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언어 지식 내용을 구성하였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와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의 절충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에서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가 나타나며 동시에 문법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기능 영역과는 별도로 교육 내용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5) 일본편
일본 국민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일본의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일본의 국어 교육 과정은 ‘목표’(전문에 해당함)와 ‘학년별 목표 및 내용’으로 크게 나누었다. 그리고 1학년에서 6학년까지 ‘학년별 목표와 내용’으로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학년별로 배워야 할 내용은 다시 ‘언어 사항’, ‘표현’, ‘이해’에서 각각 다루고 있다.
일본의 국어 교육 과정의 목표는 ‘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며 국어에 대한 관심을 깊이하고 언어의 이해력을 기르며 국어를 존중하는 태도를 기른다.’이다. 이 목표에는 기능적인 측면(즉 언어를 통한 표현과 이해)과 지식적인 측면(즉 언어에 대한 이해력), 태도적인 측면(즉 언어를 존중하는 것)이 모두 나타난다. 그리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1학년에서 가르쳐야 할 언어 지식 내용을 보면 ‘언어 사항’에서 추출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 へ, ち, は를 글 중에서 바르게 쓸 수 있도록 할 것’, ‘글 중의 주어와 술어의 조응에 주의하여 읽고 쓸 것’, ‘경어체 문장에 친숙케 할 것’, ‘높임말과 예삿말에 주의해서 말하게 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언어 지식 내용들은 6학년까지 계속 반복해서 나온다.
한편 지도 계획의 작성과 내용의 취급이란 항목에서 언어 지식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언어 사항이 제시하는 발음, 문자 및 문법적 사항과 표현 및 이해 능력의 기초가 되는 사항 중 되풀이 하여 학습시키는 일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특히 그것만을 들어 학습시키도록 배려한다.’
일본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학년간 연계 방식은 ‘학년간 반복형’이다. 왜냐하면 캐나다나 우리 나라처럼 매학년에 적합한 언어 지식 내용을 제시하였기에 ‘학년간’ 구성이며, 1학년에서 6학년까지 가르칠 내용은 ‘조사, 주어와 술어의 일치, 경어체’를 증심으로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연결형’이 나타나기는 하나 이는 단지 언어 지식 내용을 취급하는 항목에서 다루고 있기에 ‘반복형’과 대등한 위치를 점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국어의 구조’이다. 즉 주로 조사나 주어와 술어, 경어체 등을 중심으로 언어 지식 내용을 구성하였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형식적으로는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를 취하나 실질적으로는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로 보인다. 즉 ‘표현’과 ‘이해’와 대등하게 ‘언어 사항’이 독립되어 제시되어 있는 점에서 이들 기능 영역과는 형식적으로 분리된 형태를 취하며,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학년 ‘언어 사항’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와 같은 기능 영역과 관련된 내용이며, 한자어 학습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나. 중학교
1) 미국편
미국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국어과 교육 과정의 체제와 목표, 내용을 뉴욕 주와 노스캐롤라아니 주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뉴욕 주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뉴욕 주의 경우, 각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언어, 작문, 문학-의 학습 지도 목표와 각 영역의 지도상의 유의점 및 강조점을 포괄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국어과 교육의 목적을 수용(읽기, 듣기)과 표현(쓰기, 말하기) 과정에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고, 문학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뉴욕 주에 나타난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기능 영역에도 나타나는 데 구체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듣기 영역은 ‘이해, 참가, 식별’로 하위 영역을 구분하였는데,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이해’에서 다루고 있다. ‘이해’에서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언어 지식 내용은 ‘단어와 단어, 구와 구, 절과 절 사이의 관계 및 부정어나 형용어 파악’ 등이다.
그리고 말하기 영역은 ‘참가, 수행, 내용’으로 하위 영역을 구분하였는데,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수행’에서 다루고 있다. ‘수행’에서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언어 지식 내용은 ‘올바른 조음과 발음 이해, 사용’ 등이다.
읽기 영역은 ‘어휘 발달’, ‘이해 기능’, ‘비판적 읽기’, ‘학습 기능’, ‘자료 이용 기능’, ‘독서 속도’, ‘음독’으로 하위 영역을 구분하였는데,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어휘 발달’에서 다루고 있다. ‘어휘 발달’을 다시 ‘단어 파악 기능’과 ‘어휘 습득 기능’으로 나누었는데, 전자에서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언어 지식 내용은 ‘부사, 형용사, 명사형 어미, 접미사 첨가에 따른 성의 변화, 외래어의 어미 변화, 파생 형태의 구성 요소, 합성어의 구조 분석’을 통해 단어를 해독하게 한다. 후자에서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언어 지식 내용은 ‘문맥, 어근과 접사의 분리, 단어의 내포와 외연 이해, 정확한 전문 용어를 일상 어휘와 함께 사용, 유의어, 반의어 사용, 사전 사용’ 등이다.
쓰기 영역은 ‘문장, 글의 조직 및 전개’로 하위 영역을 구분하였는데,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문장’에서 다루고 있다. ‘문장’에서 다루고 있는 언어 지식의 내용은 ‘어순과 의미의 명확성 및 의미 강조와의 관계 이해’, ‘기본 문형 확장(단어, 구, 절 첨가), 문장의 합성 과정 이해(접속사의 정확한 사용, 합성할 때 문장의 구조 평형 유지), 종속 과정 이해, 사용(단어 사용;구, 절, 기본 뭉형 종속; 합성과 종속 구별), 의미의 명확성과 강조를 위해 대체 사용(문장 내의 한 요소를 절로 대체), 능동, 피동 이해 사용, 문체 개발(복잡한 문장 만들기, 문장 결합에서 취사 선택) 등이다.
문학 영역은 ‘인물, 구성, 배경, 시점, 주제, 어휘 선태, 운율, 분위기’ 등으로 하위 영역을 구분하였는데,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어휘 선택’에서 다루고 있다. 언어 지식의 내용은 ‘단어의 지시적 의미(외연)와 함축적 의미(내포)를 구별함으로써 단어의 선택 및 생각을 전달하고 특정 효과를 얻기 위해 그것을 배열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한편 언어 지식 영역은 ‘문법’과 ‘용법’으로 하위 영역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전자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어순, 합성에 의한 문형 확대, 형용사 구실을 하는 전치사구의 문장에서의 위치, 통사 요소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는 의미의 명확성, 문장에서의 위치와 형태로 표현되는 통사 요소, 대명사의 특성 및 기능, 시제 선택 표지로서의 시간의 부사적 표현, 전치사 기능, 접속어, 보어의 기능’ 등이다.
한편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체제, 목표 및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체제의 경우 ‘Communication’, ‘English’(언어), ‘Reading’이 각각 독립된 부분으로 취급되며, 각각 ‘프로그램의 목적’, 각 학교급별로 ‘주요 강조점’, ‘프로그램의 특징’(feature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로그램의 특징은 ‘지식/내용’‘ 학습 목표(태도, 개념, 기능)’로 되어 있다. 그리고 언어 지식과 관련된 English(언어) 프로그램의 목표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개발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증진시키며, 의사소통을 위한 실질적 내용을 제공하는 개념·태도를 발달시키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발달시키는 것을 근본적인 목표로 한다. 의사소통 기능의 발달이라는 포괄적인 목적아래 상호 관련된 문학, 언어, 표현을 국어과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 요소로 본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나타난 언어 지식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자, 어휘, 문법, 용법, 방언, 사전 및 참고 자료, 의미론, 언어사, 비언어적 언어, 어원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뉴욕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연결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매학년마다 학습할 내용을 제시한 것도 아니며, 또한 매 학년마다 같은 내용을 배우는 것도 아니며, 학습할 언어 지식 내용들을 평면에 순차적으로 나열한 ‘연결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분야는 다음과 같다. 뉴욕 주의 경우, 명사, 부사, 접미사, 파생 형태, 합성어의 구조 분석을 다루는 단어 부분과 어순, 기본 문형 확장, 능동, 피동을 다루는 문장 부분, 단어의 외포와 내연을 다루는 의미 부분을 포함하는 ‘국어의 구조’ 분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경우, ‘국어의 구조’ 분야 이외에 언어사, 어원 등을 다루는 ‘국어의 역사’ 분야가 있다. 그리고 철자, 방언, 사전 및 참고 자료 등을 다루는 ‘국어의 사용’ 분야도 있으며, 비언어적 의사소통 등을 다루는 ‘국어의 본질’ 분야가 있어 뉴욕 주와는 다른 특색을 보이고 있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뉴욕 주의 경우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와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의 절충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에서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가 나타나며 동시에 언어 지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기능 영역과는 별도로 교육 내용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경우,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을 다른 기능 영역과 통합된 형태가 아니라 ‘국어의 본질, 역사, 구조, 사용’만을 그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2) 캐나다편
캐나다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캐나다 교육 과정에 나타난 국어과 교육의 성격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기초 요소와 문학과 언어의 6개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모든 활동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국어과 교육의 일반 목표와 교과 세부 목표는 국민학교 교육 과정을 참고하면 된다. 언어 지식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통합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읽기 기능을 발달시킨다’는 목표 아래 ‘어근, 접두사, 접미사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어휘를 확충하는 내용’이 들어 있으며, ‘쓰기 기능을 발달시킨다’는 목표 아래 ‘문법 체계의 기본 학습, 언어 용법, 통사, 철자, 구두점, 대문자 쓰기에 있어서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쓴 글을 손질하기’가 들어 있다.
캐나다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연결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학년을 8~10학년과 11~12학년으로 나누어 학습 결과를 제시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앞뒤의 학습 결과를 참조하여 구체적인 교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볼 때, ‘학년간’이라기보다는 ‘학년군’ 구성이며. 매 학년마다 같은 내용을 배우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르칠 내용이 학년이 올라감에 ‘반복’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국어의 구조’ 이다.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언어 지식 내용이 구체적으로 폭넓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근, 접두사, 접미사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어휘를 확충하는 내용을 볼 때, ‘국어의 구조’ 분야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 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에서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3) 스웨덴편
스웨덴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국어과 교육 과정의 체제 및 목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체제는 ‘목표’(goal)와 ‘주요 교수 요목’(main teaching items)으로 되어 있으며, ‘목표’에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기초 언어 사용 영역과 문법 및 문학, 북유럽의 언어에 대해 10가지로 나누어 고루 언급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언어(언어 지식)와 관련된 목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1)훌륭한 언어의 특성을 배워 자신의 언어를 개선한다. 2)목적이나 상황, 사회적 맥락에 따라 언어가 다양하게 쓰이는 방법에 대해 알고, 언어로써 자신의 상황과 사회 발달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안다. 3)문법 교육을 통해 언어 사용에 자신감을 가진다.
이는 Goodman(1987: 171-6)의 ‘문법 공부 그 자체가 쓸모있는 도구가 되며, 문법 규칙의 학습은 문장을 작성할 때, 문장 문법성을 향상시켜 준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김광해, 1992: 88에서 재인용), 언어 지식 교육은 언어 사용에 있어 기초가 됨을 의미한다.
언어 지식과 관련된 내용은 기능 영역에도 나타나는 데 구체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말하기·듣기 영역에서 언어 지식과 관련된 지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상황 속에 들어가 의도를 파악하고, 상황(문맥)에 따라 다른 언어와 행동 취하기, 말하는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규칙 알기 등이다.
쓰기 영역에서 ‘언어 지식’과 관련된 지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쓰기 상황, 즉 목적이나 의도하는 독자에 따라 내용과 언어 형식을 조정이다.
문법 영역에서는 품사와 절과 문장 등 언어 구조 학습, 상황과 목적에 따라 언어 사용을 관찰, 토론할 수 있는 능력 발달, 언어 용법·변형에 대해 탐구, 언어 용법 및 변형에 있어서의 차이의 원인을 확인, 다른 그룹에 퍼져 있는 언어 용법, 구어, 문어, 방언, 공식어(official language) 학습, 아동의 언어 발달에 관해 학습, 언어가 끝임없이 변화하는 이유 및 방법에 대한 학습 등이다.
스웨덴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학년간 연계 방식은 ‘학년군 반복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국민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과 비교해 볼 때, 그 내용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내용에 대한 학습 내용은 국민학교와 연계성을 지녀 저학년(1-3학년), 중학년(4-6학년), 고학년(7-9)의 3단계에 공통되는 요소와 각 단계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사항이 있으면 이를 구별하여 제시하였기에 ‘반복형’의 특징이 나타나며 또한 ‘학년간’이라기보다는 ‘학년군’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국어의 구조’이다.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언어 지식 내용이 구체적으로 폭넓게 나타나지는 않으나 어근, 접두사, 접미사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어휘를 확충하는 내용을 볼 때, ‘국어의 구조’ 분야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와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의 절충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에서 언어 지식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가 나타나며 동시에 언어 지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기능 영역과는 별도로 교육 내용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4) 일본편
일본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국어과 교육 과정의 체제 및 목표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체제는 국민학교와 마찬가지로 ‘교과 목표’, 및 ‘학년별 목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표현’과 ‘이해’로 대별하고, 언어 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교과 목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높임과 동시에, 국어에 대한 지식을 심화하고, 언어 감각을 풍부히 하며, 국어를 존중하는 태도를 육성한다. 이 목표에는 기능적인 측면(즉 언어를 통한 표현과 이해)과 지식적인 측면(즉 언어에 대한 이해력), 태도적인 측면(즉 언어를 존중하는 것)이 모두 나타난다. 그리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년별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학년별 목표는 다음과 같다. 1학년은 국어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시켜, 표현과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며, 2학년은 국어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해서 표현과 이해에 도움이 되게하고 국어의 특질을 깨닫게 하며, 3학년은 국어에 관한 지식을 정리하여 표현과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고, 국어의 특질을 이해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언어 지식과 관련된 주요 지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글의 의미 단락, 연결 방법, 글의 짜임, 단락의 역할, 단락과 단락의 접속 관계, 문장과 문장의 접속 관계 ②문장의 짜임, 문장 성분의 순서와 호응, 문말 표현 ③어구의 짜임, 단어의 종류, 활용을 지시하는 어사(語司), 조사, 조동사, 접속사 및 이것들과 같은 기능을 하는 어구 ④사전적 의미, 문맥적 의미, 관용구의 의미, 유의어 ⑤어휘 확장 ⑥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공통어와 방언, 음성과 문자 표기 방식, 경어법 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간 반복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언어 지식 내용이 매학년간 따로 제시되었기에 ‘학년간’ 구성이며, 표현과 이해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제시된 언어 사항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은 1, 2, 3학년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국어의 구조’이다. 즉 품사와 조어를 다루는 ‘단어’ 부분과, 문장과 문장 성분, 문장의 확대, 문법 기능 등을 다루는 ‘문장’ 부분, 의미의 종류, 의미간의 관계, 의미 변화, 사전적 의미와 문맥적 의미를 다루는 ‘의미’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언어 지식 내용을 구성하였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국민학교와는 달리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언어 지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기능 영역과는 별도로 교육 내용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5) 프랑스편
프랑스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프랑스 국어과 교육 과정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의 언어를 이용하여 구두나 문자로 자유롭고 확실하게 의사를 교환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증가시키며 세련되게 한다. 둘째, 실천적 조직 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관찰, 주의집중, 암송·암기 기능을 개발하며, 올바른 판단 수행에 도움을 줄 방법과 절차를 알게 하고, 의사 결정 능력을 증가시키며, 창의력을 높인다. 셋째, 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를 접하여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언어 지식과 관련된 목표는 첫째 목표로 ‘의사 교환 및 표현 능력 계발’을 먼저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중심으로 가르쳐야 할 언어 지식과 관련된 일반적인 내용은 의사 교환 및 표현 능력 계발은 보다 쉽고 정확한 언어 구사를 그 기본으로 하는 데 ‘문법적 능력의 강화’, ‘어휘력의 증강’, 그리고 ‘상용 철자법의 숙달’을 필요로 한다.
다음은 첫째 목표와 관련된 ‘문법적 능력의 강화, 어휘력의 증강, 상용 철자법의 숙달’의 하위 내용이다. ①‘문법적 능력 강화’의 하위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ㄱ)일반적인 개념 확인-의사 교환의 상황, 이해의 용이성, 문법성, 수용성(acceptability), 언어 사용역(register):실제 사용/문체(문장으로서의 미를 고려한 어문)이용, 구슬(음성 언어, 즉 구두로 이루어지는 모든 언어 활동)과 기술(문자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ㄴ)화(話)와 문(文), ㄷ)동사군, ㄹ)명사군, ㅁ)문의 기능, ㅂ)시적 표현, 암시적 의의
②‘어휘력 증강’의 하위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ㄱ)문법어-여러 가지 의미를 띠거나 여러 가지 구조에 쓰이는 전치사와 전치사구, 시간적·논리적 관계를 나타내는 도구로서의 접속사, 접속사구, 부사, 부사구, ㄴ)의미어, ㄷ)단어의 생성과 일생, ㄹ)어휘와 문체
③‘상용 철자법 숙달’의 하위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ㄱ)어휘적 절차, ㄴ)문법적 절차, ㄷ)철자 부호와 구두점
그리고 목표와 내용과 관련된 지침(학습 지도 및 평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내용’에 언급된 사항을 ‘목표’를 지배하는 원칙의 취지에 알맞게 시행하는데 필요한 제안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문법적 능력의 강화에서 ‘내용’에 제시된 항목들을 다음 네 단계를 포함하는 진행 절차를 융통성 있게 운영하면서 다룬다. 첫째, 학생들의 자발적인 실천을 이용하는 언어 활동을 조직한다. 둘째,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합리적으로 관찰한다. 셋째, 위의 두 단계에서 찾아 낸 사실을 발판으로 언어를 다루는 체계적인 연습 문제-이동, 대체, 생략, 확장, 변형 등을 다룬다. 넷째, 합리적인 응용을 모색한다.
이와같은 지침은 교수-학습의 원리를 교사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으로, 결과 중심이 아니라 관찰 중심, 방관적인 학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참여를 통한 연습 활동, 이론적인 수업이 아니라 적용 심화하는 교수-학습을 권장하고 있다.
한편 어휘력 증강은 실제 언어 구사에 의해서, 실제 언어 구사를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휘에 대한 능동적 지식(단어를 이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사용 어휘와 이해 어휘 사이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어휘력 증강에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과 지도법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빈도표와 습득 단계표를 이용해서 어휘 수준을 명확히 파악하여 체계적인 지도 계획을 세운다. 구두로 이루어지는 의사교환에서 어휘를 확인, 교정해 주고, 기술된 의사교환에서는 어휘의 적절성과 표현의 다양성을 지도한다.
또 습득한 어휘가 체계적인 것이 되도록 연습 문제나 작문, 논술 등과 관련지어 지도하는 기회를 갖는다. 문법어와 의미어를 학습시키고 일반화와 추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특정 어휘 요소를 알게 한다.
어휘적 의미와 문맥적 의미를 알게 하고, 단어의 은유적 용법과 시사적 기능을 알게 한다. 항상 문맥과의 관련하에 어휘를 학습시키면서 단어의 구성에 유의하도록 한다. 같은 어근을 가진 것, 동일한 접미사를 가진 것들로 분류하게 한다. 어휘의 영역(어간이 같은 단어들의 목록), 의미의 영역(한 단어의 여러 가지 다른 의미와 용법의 목록), 동음 이의어, 유의어, 반의어 등을 공부하게 한다.
일련의 단어 중에서 관계 없는 것 찾아내기, 의미의 강한 정도에 따라 분류하기, 문맥에 따라 단어 골라넣기, 주어진 정의에 따라 단어 맞추기, 알맞은 의미 고르기, 어휘적 모순을 이용한 작문 등은 어휘력 증강에 도움을 주는 활동이다. 이와 같은 활동은 사전을 이용할 기회를 증가시키는데, 여기에는 동의어 사전, 유의어 사전, 어휘 사전 등도 포함한다.
프랑스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반복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4년간의 중학교 교육 기간을 2개 학년씩 관찰 싸이클(1·2학년)과 진로 싸이클(3·4학년)로 나누고 언어 지식 내용을 제시하였기에 ‘학년군’ 구성이며, 언어 지식적 능력을 강화하는 내용과 어휘력을 증강하는 내용을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모두 나타난다. 즉 의사 교환의 상황, 이해의 용이성, 문법성, 수용성을 다루는 ‘국어의 본질’ 분야와 단어의 생성과 일생을 다루는 ‘국어의 역사’ 분야가 있다. 그리고 동사군, 명사군, 문의 기능, 문법어, 의미어를 다루는 ‘국어의 구조’ 분야가 있으며, 어휘와 문체, 어휘적 절차, 문법적 절차, 철자 부호와 구두점을 다루는 ‘국어의 사용’ 분야가 있음이 특징이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언어 지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기능 영역과는 별도로 교육 내용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어를 순화, 보존하기 위해서 가능한 외국어를 배제’하려는 내셜널리즘이 강한 국어과 교육의 성격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6) 서독편
서독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교육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서독 국어과 교육 과정의 체제 및 목표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국어과의 목표는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함양에 있다. 그리고 말하는 자/글 쓰는 자의 의도와, 그 의도가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언어를 통해 존재함을 알게 한다.
그리고 언어 지식과 관련된 주요 지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내용은 크게 생산(구술적 생산/기술적 생산), 수용과 분석, 언어 능력과 언어 통찰, 바르게 쓰기와 기호 사용, 작업 기술로 나뉘어 있다. 그 중 ‘언어 능력과 언어 통찰’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여러 사례들의 신호 제도의 구조와 기능을 배운다. - 기호를 신호 제도상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신호의 형태와 의미를 파악한다. 신호는 약속의 결과임을 이해한다. 그림, 신호 깃발 등을 이용한 신호 제도를 이해한다. 신호를 응용한다.
② 언어의 기능을 신호 제도로 이해한다. - 문장과 문장 요소들의 관계를 파악한다. 단어, 단어의 의미론적 기능, 단어들의 관계를 파악한다. 언어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상황에 의해 좌우됨을 인식한다.
③ 문장의 구성 및 문장의 각 부분의 기능을 이해한다. - 주어와 주어의 위치(명사, 대명사), 보족어와 보족어의 위치(동사), 부사와 부사의 위치(부사, 전치사구), 문장의 확장(보족어 사용), 문장 고쳐 쓰기, 콤마 등 문장 부호의 형태와 접속법
④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한다.-사물의 특성과 단어의 의미, 반대 의미, 은유(비유)의 의미 경계, 문장과 의미(단어의 연속과 어조, 문장의 종류-의문문, 서술문, 명령문에 따라 바뀜)
서독의 언어 지식 내용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교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연결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학교 국어 교육 과정의 경우 3개 학년을 묶어서 그 내용을 가르치는 ‘학년군’ 구성이며, 언어의 기능과 언어 지식적 능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연결’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즉, 기호로서의 언어, 기호와 약속 등을 다루는 ‘국어의 본질’ 분야가 있으며, 단어, 단어의 의미론적 기능, 문장 요소들의 관계, 문장 구성 및 성분, 의미 등을 다루는 ‘국어의 구조’ 분야가 있다.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 나타난 특징은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로 보인다. 비록 국어과의 성격이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함양이며, ··· 국어과의 교육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언어 기능 중심이며, 학습 활동이 통합적이다.’라고 하였지만 문법과 관련된 내용은 생산, 수용과 분석의 내용과는 별도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논의의 정리 및 시사점
*뉴욕 주의 경우만 제시하였다. 캐롤라이나 주의 경우는 국어의 본질, 역사, 구조, 사용의 분야가 모두 있으며,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절충 형태란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와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를 절충한 형태를 의미한다.
***국민학교의 프랑스와 서독, 영국의 중학교 교육 과정은 자료를 구하지 못하여 분석하지 못하였음.
국민학교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알 수 있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에서 ‘학년간’과 ‘학년군’의 방식이 2:3 정도로 ‘학년군’을 선호하는 나라가 비율상으로 조금 많이 나타난다. ‘반복형’과 ‘연결형’의 방식을 비교해 보면 ‘반복형’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국민학교의 경우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 반복형’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언어 지식 내용에서 다루어야 할 분야는 영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국어의 구조’ 분야만이 나타난다. 이는 국민학교 국어과 교육 과정을 구성함에 있어서 ‘국어의 본질, 역사, 구조, 사용’ 등 모든 분야를 똑같은 비중으로 가르치기보다는 ‘문법에 대한 구조적인 지식’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어 가르치는 것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법에 대한 구조적인 지식’ 분야에 나타난 언어 지식 내용을 살펴보면 이 분야에서도 그 비중이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캐나다의 경우는 ‘국어의 구조’ 분야의 언어 지식 내용을 골고루 다루고 있음에 비하여 일본의 경우는 ‘국어의 구조’ 분야의 언어 지식 내용 중 ‘조사, 경어법’ 등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다른 영역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언어 지식 영역을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영역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 내용을 구성하는 ‘주제 및 기능 중심의 통합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국민학교 언어 지식 내용은 다른 영역과 통합된 형태로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는 언어 지식 내용의 불필요성을 시사하기보다는 다른 영역을 가르침에 있어서 언어 지식 영역이 그만큼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중학교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알 수 있다. 먼저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에서 ‘학년간’과 ‘학년군’의 방식을 비교해 보면 ‘학년간’을 채택한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학년군’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반복형’과 ‘연결형’의 방식을 비교해 보면 3:3 정도의 비율로 나타난다. 따라서 중학교의 경우,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은 ‘학년군’을 취하면서, ‘반복형’이나 ‘연결형’ 어느 것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언어 지식 내용의 연계 방식을 국민학교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국민학교보다 중학교에서 ‘연결형’이 두드러진다. 이는 학습할 언어 지식 내용의 양이 동일하다면 점차 폭넓은 분야로 펼쳐나가야 함을 보여 준다.
언어 지식 내용에서 다루어야 할 분야를 살펴보면 국민학교와 마찬가지로 ‘국어의 구조’ 분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국어의 본질, 역사, 구조, 사용’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함을 보여준다. 이는 문법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구조 뿐만 아니라, 언어의 본질, 언어와 인간, 국어의 특질, 국어의 계통, 변화를 포함한 국어의 역사, 언어에 대한 태도 등을 이 단계에서 가르쳐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어 지식 영역과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영역의 관계를 살펴보면 국민학교와는 달리 점차 언어 지식 중심의 분리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국민학교 단계에서는 언어 지식을 통합적인 형태로 가르치는 것이 좋으나 중학교 단계에서는 언어 현상에 내재된 현상을 분석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을 포함한 지식 중심의 형태로 가르치는 것이 좋음을 보여 준다.
참고 문헌
곽병선, 이근님 편저(1990), 중학교 교과 교육 과정 국제 비교 중 손영애(1990)를 참고, 한국교육개발원.
김춘일, 김종숙(1982), 최신 외국 국민학교 교육 과정, 한국교육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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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어학적 관점에서 본 「언어 지식」 영역 지도의 내용
권 재 일
차 례
1. 머리말
2. 국어학적 관점의 필요성
3. 국어학 영역별 지도 요소
4. 학교급별 지도 요소
5. 영역별, 학교급별 지도 요소 표
6. 맺음말
1. 머리말
이 발표는 각급학교 「국어과」 교육의 「언어 지식」 영역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관한 논의의 한 부분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국어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언어 사용 기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이 발표는 첫번째 관점인 국어학적 관점에서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검토해 보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과정에서는 국어과 교육의 영역을 (1) 언어 사용 기능 영역, (2) 언어 영역, (3) 문학 영역 등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언어 영역과 관련한 교육 목표는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의 경우)
전문 : 국어 생활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하며, 언어와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문학의 이해와 문학 작품의 감상 능력을 기르며,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언어 사용 기능 영역 : (생략)
언어 영역 : 언어와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익히고, 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하게 한다.
문학 영역 : (생략)
(중학교의 경우)
전문 : 국어 생활을 바르게 하고, 국어와 민족의 언어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게 한다.
언어 사용 기능 영역 : (생략)
언어 영역 : 국어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익히고, 국어를 바르게 사용하게 한다.
문학 영역 : (생략)
(초등학교의 경우)
전문 : 국어 생활을 바르게 하고, 국어의 소중히 여기게 한다.
언어 사용 기능 영역 : (생략)
언어 영역 : 국어에 관한 초보적 지식을 익히고, 국어를 바르게 사용하게 한다.
문학 영역 : (생략)
현행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육 영역과 목표를 참조하면, 국어과 교육에서 언어와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게 하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어에 대한 언어학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어에 대한 언어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도 내용을 이 발표에서는 국어학적 관점에서 본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이라 하기로 하겠다. 따라서 이 발표는 언어 지식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국어학적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2. 국어학적 관점의 필요성
언어 지식에 관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국어 교육 또는 국어과 교육은 보는 관점에 따라 위상과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첫째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즉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기반 지식인 경우에 한정하여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설정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언어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 요소들을 의사소통 기능의 구체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조건으로 보는 관점이다. 둘째는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국어학적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물론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언어 지식에 대한 교육이 전적으로 여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지 아니하고, 언어 지식 교육의 독자성을 유지하자는 관점이다.
언어 지식의 지도가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고 근거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육 목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각급학교의 국어과 교육에서 언어와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국어과 교육에서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히 그러한 수단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언어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생각 그 자체를, 언어 조직에 맞도록 조정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생각을 언어로 나타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어 구조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래서 한 국가나 민족은 이러한 공통된 언어 구조에 이끌려 공통된 정신,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공통된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언어는 이를 사용하는 국가 또는 민족, 그리고 그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국 우리말은 한국 사람다운 정신을 기르면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실을 맡아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말을 통하여 우리 문화를 형성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과 국가를 지탱해 왔다. 그러한 원동력이 된 국어, 그 자체를 지식 체계로서 이해하고, 또한 국어를 소중히 여기고 더욱 발전시켜 민족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중요한 과제라고 믿는다.
우리가 학교 교육에서 국사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듯이,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은 단순히 국어학자의 몫만이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몫일 것이다. 언어 사용 능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학교 교육에서 배재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국사에 대한 지식이 삶을 살아 가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학교 교육에서 배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학교 교육에서 사회나 자연 현상을 교육하는 것이 반드시 이들이 실제 생활에 활용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물은 분해하면 수소 두 분자와 산소 한 분자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물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렇다고 이를 과학 교육에서 이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소중하게 쓰고 있는 우리말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학교 교육에서 당연하면서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주로 언어 사용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 설정한다 하더라도, 언어 지식 지도의 독자성은 확보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어의 말소리는 음소와 운소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불필요하다 하더라도, 국어 구조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필요한 사실이다. 한 예를 더 들어, 국어학사적인 이해 역시 언어 사용 능력 향상에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선조들이 우리말을 발전시켜온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 언어 사용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그리고 한글의 과학성과 그 문화적 가치, 주시경 선생의 본받을 만한 국어에 대한 태도 등을 국어과 교육에서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는 할 수 없다. 비록 언어 사용 능력의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국어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여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형성에 이바지하는 데에 필요한 교육이다.
따라서 언어 지식에 대한 지도는 독자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어 지식의 지도가 독자성을 가진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근본적으로 지도 내용을 국어학적 관점에서 찾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어학적 관점에서 찾아 제시하는 지도 내용은 언어 사용 능력의 향상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상당 부분은 언어 사용 능력의 향상과 관련을 맺는다. 또한 그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 결과 당연히 언어 지식에 대한 교수 방법은 언어 사용 기능의 지도와 통합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또는 독자적으로 이루질 수도 있을 것이다.
3. 국어학 영역별 지도 요소
국어학적 관점에서 언어 지식의 지도 요소를 선정한다는 것은 국어학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여 지도 내용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한 지도 영역은 다음과 같이 설정할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어떤 영역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는 지도의 구체적인 목적과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1. 언어의 이해
2. 국어의 역사와 문자
3. 현대 국어의 구조 (음운, 단어, 문장, 담화)
4. 국어의 올바른 사용
(1) 언어의 이해
국어의 기본 성격을 이해하기 앞서 언어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류 사회에서 언어가 의사소통의 기능을 담당하며, 그로 인하여 인류 사회의 문화가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여, 언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교육은 언어를 이해하는 데에 기본적이다. 그리고 언어의 본질과 기능을 이해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를 바탕으로 언어와 문화, 언어와 사회, 언어와 생각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세계에 어떠한 언어들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국어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언어가 인류 사회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면, 우리 국어는 우리 민족과 국가를 이끌어 오고, 우리 문화를 형성해 온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어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국어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위해서 국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역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말과 글을 발전시키는 일에 크게 공헌해 온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이해함으로서 국어에 대한 가치를 분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어가 가지는 특질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즉, 음운, 어휘, 문법 특질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2) 국어의 역사와 문자
국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국어의 공시적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과 오늘의 국어가 있기까지 역사적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할 때, 이 두 과제를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에서 국어의 역사에 대한 내용도 지도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어의 역사에 대한 지도는 국어의 계통과 형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타당한 기준에 따라 국어사의 시대 구분이 설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음운, 어휘, 문법 등의 변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문자에 대한 이해 역시 필요하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여 그 가치를 알고,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3) 현대 국어의 구조
국어를 국어학적 관점에서 지도한다고 했을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은 현대 국어에 대한 공시적 구조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국어의 성격을 이해하게 하는 일이다. 음운, 단어, 문장, 담화가 그 대상이다.
음운에서는 자음 체계와 모음 체계, 그리고 운소 체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음운 변동 현상, 음절 구조에 대한 이해를 지도 요소로 삼는다.
단어에 대해서는 품사와 각 품사의 특질, 단어 형성, 단어 의미 등을 지도 요소로 삼는다. 특히 국어는 조사나 활용 어미에 의해 문법 기능이 실현되는 형태론 중심의 언어라는 점을 중시하여, 체언과 조사, 용언과 활용 어미에 대한 이해가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어의 의미 관계나 국어 사전에 대해서도 지도해야 할 것이다.
문장에 대해서는 문장 성분, 그 문장 성분이 문장 안에서 놓이는 어순과 어순의 제약, 겹문장 구성인 내포와 접속, 문장에 나타나는 여러 문법 기능 등이 주요 지도 요소이다. 아울러 문장의 의미 관계에 대해서도 지도해야 할 것이다.
문장을 넘어서는 언어 단위인 담화에 대한 지도도 필요하다. 화자, 청자, 시간, 장소 등의 요소가 담화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발화에 따른 표현과 이해의 여러 측면들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4) 국어의 올바른 사용
국어 규범의 필요성, 구체적인 맞춤법의 원리와 실제,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 표준 발음 등도 지도 요소가 된다. 발음, 어휘, 문장, 담화를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지도하고, 국어 순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지도도 필요하다.
4. 학교급별 지도 요소
이상에서 제시한 지도 요소들을 토대로, 각급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지도 요소를 학교급 수준에 따라 타당성 있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지도 요소를 학교급별, 또는 더 세분해서 학년(군)별로 연결성을 가지되, 필요한 경우 심화 지도를 바탕으로 한 반복 지도가 가능하도록 설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도 요소 ‘모음’의 경우, 학교급별(또는 학년군별)로 우선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지도 내용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모음의 글자 지도
초등학교 중학년
단모음의 정확한 소리값 지도(이웃하는 단모음과 대비하여)
초등학교 고학년
중모음의 정확한 소리값 지도(이웃하는 단모음·중모음과 대비하여)
중학교
단모음 체계의 기초적인 이해
중모음 체계의 기초적인 이해
고등학교
단모음 체계의 이해
중모음 체계의 이해
모음 변천사
이와 같이 초등학교에서는 개별적인 사실의 초보적인 이해를, 중학교에서는 전체 구조 안에서 기초적인 이해를, 고등학교에서는 해당 지도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학교급별로 반복 지도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지도의 연결성을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결국 학교급별 지도 요소를 내용 설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1) 초등학교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이해한다.
올바른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한다.
(2) 중학교
올바른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한다.
기초적인 국어에 대한 지식을 이해한다.
(3) 고등학교
체계적인 국어에 대한 지식을 이해한다.
국어의 발전과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이렇게 설정한 지도 요소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도 방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1) 언어 사용 능력 영역에 통합하여 지도하는 유형
(2) 독자적인 단원을 통하여 지도하는 유형
(3) 독자적인 교과서를 통하여 지도하는 유형
초등학교의 경우는 제1유형이 중심 방법이 될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모음’의 경우, 모음의 정확한 소릿값을 바르게 읽기와 바르게 말하기 지도를 통해 이해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 사용 능력 영역에 통합해서 지도하는 유형이 될 것이다. 물론 ‘읽기’, ‘말하기·듣기’, ‘쓰기’ 등 각 교과서의 독자적인 단원을 설정하여 읽을 거리나 말할 거리를 통해 지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어 사전을 이해하고 실제 사전을 찾는 방법을 익히는 지도를 ‘읽기’ 교과서의 한 단원을 설정하여, 읽을 거리를 통해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의 경우에는 제1유형과 제2유형이 함께 중심 방법이 될 것이다. 역시 위에서 예를 들었던 ‘모음’의 경우, 언어 사용 능력의 단원에서 지도할 수도 있고, 독자적인 단원을 설정해서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 즉, ‘우리말의 말소리’라는 단원을 설정해서 모음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제1유형, 제2유형, 제3유형 모두가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필수 교과목인 ‘국어’를 통해서 제2유형의 체계적인 지도가 가능할 것이며, 선택 교과목인 ‘문법’을 통해서 제3유형의 체계적인 지도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었던 ‘모음’의 경우, ‘국어’ 교과서에 독자적인 단원을 설정해서 지도할 수 있으며, ‘문법’이라는 독자적인 교과서에서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실제 지도 내용 한 예를 제시해 보기로 한다. 문장 성분의 ‘관형어’와 ‘부사어’에 대한 지도 내용이다.
1. 초등학교의 경우 : ‘말하기’나 ‘쓰기’와 같은 표현 활동을 통하여 다음 내용을 지도하도록 한다. 「우리 말에는 꾸미는 말을 앞에 놓음으로 뜻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저학년에는 단어 수준의 수식어를, 중학년에는 구 수준의 수식어를, 고학년에는 절 수준의 수식어를 넣어 문장을 확장하게 하여, 표현(말하기, 쓰기)을 다양하게 하는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면서, 아울러 ‘우리 말에는 꾸미는 말을 앞에 놓음으로 뜻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라는 국어 지식을 지도한다.
2. 중학교의 경우 : 독립된 단원 ‘문장 성분’을 설정하여 다음 내용을 지도하도록 한다. 「(1) 문장 성분 가운데는 다른 성분을 꾸며 주는 성분이 있다. (2) 체언을 주로 꾸며 주는 것을 관형어라 하고, 용언을 주로 꾸며 주는 것을 부사어라 한다. (3) 우리말에서는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 앞에 놓이는 특성이 있다.」
3. 고등학교의 경우 : ‘국어’ 교과서든 ‘문법’ 교과서든 ‘문장 성분’이라는 단원을 통하여 중학교급에서 지도한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심화된 내용을 지도하도록 한다. 「(1) 관형어와 부사어를 구성하는 성분의 재료 (2) 관형어의 유형 (3) 부사어의 유형 (4) 관형어와 부사어의 통사적 차이점」 등을 실제 국어 자료를 분석해 가면서 지도하는 것이다.
5. 영역별, 학교급별 지도 요소 표
1. 언어의 이해
2. 국어의 역사와 문자
3. 현대 국어의 구조
4. 국어의 올바른 사용
6. 맺음말
이 발표는 각급학교 「국어과」 교육의 「언어 지식」 영역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관한 논의의 한 부분으로, 국어학적 관점에서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언어 지식 영역의 교육은 언어 사용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여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이 선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발표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각급학교의 국어과 교육에서 언어와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국어과 교육에서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어 지식의 지도 영역은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어학적 관점에서 언어 지식의 지도 요소를 선정한다는 것은 국어학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여 지도 내용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도 영역은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1. 언어의 이해
2. 국어의 역사와 문자
3. 현대 국어의 구조 (음운, 단어, 문장, 담화)
4. 국어의 올바른 사용
이러한 지도 요소들을 토대로 각급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첫째, 지도 요소를 학교급 수준에 따라 타당성 있게 설정해야 하며, 둘째, 지도 요소를 학교급별, 학년(군)별로 연결성을 가지되, 필요한 경우 반복 지도가 가능하도록 설정해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학교급별 지도 요소를 설정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였다.
(1) 초등학교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이해한다.
올바른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한다.
(2) 중학교
올바른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한다.
기초적인 국어에 대한 지식을 이해한다.
(3) 고등학교
체계적인 국어에 대한 지식을 이해한다.
국어의 발전과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한다.
이러한 지도 요소를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언어 사용 능력 영역에 통합하여 지도하는 방법이 중심 방법이다. 물론 각 교과서의 독자적인 단원을 설정하여 읽을 거리나 말할 거리를 통해 지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학교의 경우에는 언어 사용 능력 영역에 통합하여 지도하는 방법과 독자적인 단원을 통하여 지도하는 방법이 함께 중심 방법이 될 것이고,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언어 사용 능력 영역에 통합하여 지도하는 방법, 독자적인 단원을 통하여 지도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교과서를 통하여 지도하는 방법이 모두 적용될 것이다.
국어과 교육의 언어 지식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 발표에서는 국어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과 밀접하게 관련을 깊게 맺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에 종속되지 않으며,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본다. 국어과 교육에서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은 이러한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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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언어 능력 신장의 관점에서 본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
최 영 환
1. 서론
언어 지식 영역에서 가르칠 내용을 추출하는 일은 언어 지식 영역이 국어 교육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어 교육을 보는 관점에 따라 언어 지식 영역의 위상과 그 지도 내용은 크게 달라진다.
언어 지식 영역에 대한 논의에서는 언어 지식이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된다. 언어 지식이 독자적인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국어 교육 속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면, 그 나름대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국어 교육에서 논의되는 한 국어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인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언어 지식이 표현과 이해의 언어 활동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언어 지식의 지도는 단순히 지식 교육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국어 교육의 역사에서 언어 지식이 표현·이해의 언어 사용과 대등한 위치를 점유하고 문학과 함께 국어 교육을 삼분하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생각의 산물이다.
그러나 언어 지식은 표현과 이해의 언어 활동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흔히 언어 교육에서는 언어에 대하여 가르치지 말고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언어 지식의 지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언어 지식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형태로든 언어 지식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언어를 교정하기도 하고, 창조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교정적 언어 교육과 생산적 언어 교육은 언어 교육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축으로 이들 모두는 언어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기반 지식으로서 언어 지식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을 언어 사용 능력과 관련시켜 선정하고 배열하는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2. 언어 사용 능력과 언어 지식
(1) 언어 사용 능력의 개념과 구성 요소
국어교육은 언어를 매개로 하여 표현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은 국어과를 다른 교과와 구별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것으로, 우리 나라 교육과정이나 외국의 자국어 교육과정에도 궁극적인 목표로 반영되어 있다. 이것을 언어 사용 능력이라고 한다. 언어 사용 능력은 흔히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ve competence)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적절하게 언어를 사용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Hymes(1972)는 의사소통 능력을 ‘언제 말하고 언제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를 아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이 개념은 문법적, 음운적 양상뿐 아니라 발화의 사회적, 개인 상호적, 문화적 차원을 인식하고, 이들 차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복잡성을 포함하여 의사소통 능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법적 능력 : 언어 기호에 대한 통달
사회언어학적 능력 : 의미와 형식의 면에서 발화의 적절성에 대한 통달
담화 능력 : 통일된 구어/문어 텍스트 생산을 위한 문법 구조 결합 방식에 대한 통달
전략적 능력 : 의사소통 장애를 해소하거나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적, 비 언어적 전략에 대한 통달
제 6 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도 언어 사용 기능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면서 동시에 기능의 개념도 확대 해석하고 있다.
“기능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지식의 항목을 이용하여 능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지적, 물리적 행동이나 개념, 사물, 사람에 대한 반응을 뜻한다. 모든 기능은 네 가지 하위 활동, 즉 지각, 회상, 계획, 수행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들 과정에는 다시 하위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결국, 5차나 6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의 언어 사용 기능은 고등 수준의 사고 기능은 물론, 문제 해결적이며 가치 판단적 사고 특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 사용 기능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가 상호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의사소통 능력을 이루고, 이때의 기능이라는 개념이 확대 해석되면 언어 사용 기능을 국어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로 규정할 때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제거하게 된다.
우선 국어교육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단순한 기능을 가르치는 기능 교과라는 비판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국어 교육의 본질적 목표로 삼는 언어 사용 능력이 단순한 것이라면, 국어교육의 가치를 지나치게 축소하고 왜곡하게 된다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 사용을 가능하게 한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는 현상만을 파악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위에 제시된 여러 가지 하위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단순히 음성이나 문자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구성하고, 다른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재구성하는 복합적인 사고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국어교육은 언어로 표현된 지식이나 내용을 가르치는 교과에서 벗어나 내용을 처리하는 정신 과정을 다루는 교과가 되며, 이것은 다시 사고력 교육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언어 사용 능력이란 현상으로서의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토대로 하여, 언어 형식과 의미의 적절성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담화 양식을 이해하며,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능력을 포괄하는 것이다.
언어 사용 능력의 개념이 분명하게 되면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 문제는 이른바 기능 영역과 지식 영역의 관계에서 생기는 혼란이다. 언어 사용 기능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네 영역으로 한정하여 이들을 기능 영역이라고 하고, 기반이 되는 지식으로 언어와 문학을 설정하면서도, 실제 영역 구분에서는 서로 대등하게 생각하는 혼란이 있다. 이는 앞의 네 영역에는 언어나 문학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영역 분할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기반이 되는 언어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기능 영역이라고 하는 네 영역은 반드시 언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언어 지식은 중요한 기반이 되는데, 오히려 언어 기능과 대등한 영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언어 지식 영역의 중요성이 약화된다.
손영애(1986:86)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중시하여 국어 교육에서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기능(표현·이해의 정신 과정)과 대등한 위치에서 제시될 성질이 아니며, 교육과정의 목표 제시나 내용 영역 설정에서 동열에 놓일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능력의 각 활동 영역에서 기초적인 지식 요소로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 5 차, 제 6 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이들 6 개 영역이 상호 위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대등하게 설정되어 오히려 언어와 문학 영역의 중요성이 축소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언어 사용 능력에는 언어 지식이 필수적인데, 언어 지식 영역을 다른 기능과 대등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기능과 지식이라는 대립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상호 관계와 마찬가지로 언어 지식 영역도 이와 유사한 관계에 서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기반 지식이라고 하면 부수적인 것이나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반 지식으로서의 언어 지식 영역은 언어 사용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것으로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가르치고, 그에 더하여 언어 지식 영역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벗어나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반드시 언어 지식 영역을 학습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2) 언어 지식의 중요성
언어 지식을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언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고, 언어 사용 능력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언어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국어교육에서 논의되는 한 언어 사용 능력이라는 본질적 목표에서 벗어나서 논의될 수 없다.
물론 언어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곧바로 언어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지만, 표현과 이해의 활동에서 언어에 대한 지식은 매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언어 지식에 대한 현대적 접근이 갖고 있는 특성은 언어 지식 그 자체를 독자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다른 기능(skills)의 구성 요소로 파악하여, 언어 지식의 구체적인 항목들은 의사 소통의 과제와 기능의 구체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조건이라고 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사 소통 능력은 문법적 능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언어 지식을 학습하는 것은 다른 기능(skills)을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언어 지식은 독자적인 것으로 언어교육에서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능을 위한 구성 요소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에 대하여 S. P. Corder(1973:331)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목표 언어에 대한 교육적인 記述은 학습자가 무엇을 학습하든지 그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야지 그가 학습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교육적인 기술은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학습의 대상이 아니다.”
언어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견해는 尹希苑(1988:15)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學校에서의 文法敎育에 있어도 規範이나 국어 분석 결과로서의 규칙을 가르치기보다는 국어분석의 課程과 분석 결과로 나온 규칙의 구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國語의 분석보다는 國語의 분석적 이해가 중요한 것이다. ‘文法’은, 결과적 規範이건 생성적 規範이건, 國語의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國語의 言語的 체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國語의 이해를 도와, 보다 효과적인 國語生活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바탕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 지식이 언어 사용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매우 회의적이라는 보고가 있다. 언어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어떤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연구한 결과 학생의 정신 능력 향상, 다른 과목에의 전이, 문학 해석 능력의 발달에 효과가 없었으며, 심지어 읽기나 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문법을 완전히 배운 다음 글쓰기를 하지 않고, 배우는 동안에도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학교에서의 언어 지식 지도가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가 언어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언어지식을 배우는 동안에도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 언어 지식의 필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언어 지식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학생이 어느 단계에 있든지 어떤 형태로든 언어 지식을 갖고 있어야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내용이 적절한 것인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Halliday는 이점에 대하여 가르치는 언어 지식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원인은 지도 내용이 언어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나 언어 사용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 기술된 언어 지식의 범주가 명확하지 못하고,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며, 구성 방식 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적절한 언어 직관을 제공하거나 언어 사용 능력에 적용할 수 있는 해석이나 진술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언어 지식은 언어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체계적인 기술이나 언어 사용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었다. 이러한 견해에 입각한 언어 지식 지도는 자연히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가치를 판단하고 제한하는 역할을 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언어 지식의 지도는 지도 목표를 인지적 지식(cognitive knowledge)으로만 설정하지 않는다. 언어 지식의 지도는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언어에 대한 인지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실제로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지식을 언어 수행적 지식(performative knowledge)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수행적 지식은 반드시 인지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언어 지식의 지도는 모어 화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인지적인 지식을 수정 보완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언어 수행적 지식을 발달시키고, 그 결과 국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 지식 지도의 최종 목표가 된다.
3. 언어 지식 영역 설정의 기본 틀
언어 지식 영역은 국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므로,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을 선정할 때에도 동일한 측면에서 구체적인 선정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 지식을 단순히 문법에만 제한할 경우 언어 사용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를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 언어 지식은 실제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양상으로 작용한다. 즉 언어 사용자의 인지적 지식으로 내재하면서 자동화되어 작용하는 것이 있고, 언어 사용의 필요와 중요성을 인식시켜 언어 사용을 촉진시키고 동기를 유발하는 차원에서 작용하는 지식이 있다. 전자는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이고, 후자는 언어의 본질이나 사용과 관련된 지식이다. 이 두 가지 지식은 서로 작용하는 양상이 다르며, 서로 이질적인 것이어서 함께 논의하기 어렵다. 따라서 각각의 지식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 언어의 구조에 대한 지식
앞에서 언어 지식은 인지적 지식에서 언어수행적 지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자를 흔히 단언적 지식(declarative knowledge), 후자를 과정적 지식(Process knowledge)이라고도 한다. 단언적 지식은 어떤 대상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기술하는 것으로, 고정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며, 그 기본 단위는 비교적 빨리 습득되고, 수정도 용이한 반면, 과정적 지식은 무엇인가를 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으로 역동적이며, 습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기본 단위들을 수정하기가 어렵다.
과정적 언어 지식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우리가 갖게 되는 지식으로, 실제 표현될 때에는 결과물의 형태로 제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언적 지식으로 제시된 것과 과정적 지식으로 제시된 것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정적 언어 지식은 정신적, 언어적 행동을 산출하는 것으로 각각의 독자적인 목표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언어 지식은 각기 독자적인 언어 사용 기능에 기여하면서 상호 관련을 맺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전체적인 언어 지식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된다. 따라서 언어를 사용할 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며, 결정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언어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과정적 언어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과정적 지식은 학습하는 단계에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이지만, 일단 학습하고 나면 자동화되어 실제 언어 사용 과정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게 된다. 언어 지식의 지도는 언어 수행적 지식, 즉 과정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하는데, 과정적 지식을 배우는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일단 언어 수행적 지식을 배우는 첫 단계인 인지 단계에서는 학생의 연습을 안내하고 집중적으로 연습하게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교육에서는 이 단계의 중요성이 커진다. 다음 단계에서는 각각의 인지적 단계에서 얻은 결과들이 더 큰 단위로 통합되고, 마지막으로 이들을 자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학습자는 빠른 시간에 정확하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식적인 접근을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그 과정을 기술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하게 된다. 언어 지식을 지도하여 기본적인 언어 사용 기능을 신장시키고자 할 때, 언어 지식이 자동화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멈추어 서서 언어 지식을 회상하고 적용하지 않고 곧바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를 사용할 때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곧바로 자동화를 멈추고,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 방법을 결정하여 적용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지도해야 한다.
언어 지식 지도의 핵심은 자동화된 능력이 다른 여러 상황에 전이되어 사용되거나 응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어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전이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언적 지식을 학습한 사람이 실제 언어 사용 국면에서 단언적 지식을 활용해야 할 경우에도 관련 지식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은 문제 해결 맥락에서 지도해야 한다. 이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전이시키고자 하는 언어 지식이 실제 언어 사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 전이는 목표하는 기능과 그 원천이 되는 기능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과정적 지식이 중첩되는 정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목표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한 것을 여러 가지 언어 사용 상황에서 전이시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실제 언어 사용을 토대로 한 언어에 대한 단언적 지식과 과정적 지식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2) 언어의 본질 및 사용에 대한 지식
현재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지도 내용이 선정되어 있으나, 선정 이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국어 교과를 기능 교과라고 하거나 방법 교과라고 할 경우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을 방법이 아닌 내용으로 가르칠 논리적 근거가 없다. 이들 내용은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이 아니며,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지만, 중요하다는 것에는 별 이의가 없다. 사실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은 언어 사용 능력의 신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언어 지식 영역에서 이들 지도 내용의 위상은 언어 사용 능력에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야 한다.
최근 각 영역별 지도에서 초인지(metacognition)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기억이나 문제 해결, 의사소통과 관련하여 초인지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어 사용과 관련된 초인지에 대한 연구는 Luria(1961), Vygotsky(1962), Piaget(1974)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인지의 개념은 인지에 대한 인지(cognition about cognition)라는 것에서 출발해서 개인의 인지 과정과 관련된 자신의 지식과 그 결과를 지칭하다가, 인지적인 목적과 자료를 관련시켜서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자기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Flavell(1981)은 인간의 인지 점검 모델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지적 목표, 인지적 행동, 초인지적 지식, 초인지적 경험을 제시하고, 초인지 지식은 관련된 인간과 과제 및 전략으로 세분되고, 초인지 경험은 아이디어와 사고, 느낌 등으로 세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초인지를 감정과 동기 등에도 적용하고 있다. 결국 초인지란 학습자가 자신의 인지적 상황에 유의하면서 이것에 대해 통제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은 학습자가 자신의 근본적 인지 상태를 알고, 자신이 참여한 학습 상황을 파악하며, 자신의 인지 상황과 학습 상황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을 말한다. 초인지 활동은 인지 자료에 대한 개인의 지식, 과제에 대한 지식, 자신의 학습 책략, 자신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이러한 초인지 학습은 각 영역에서의 학습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언어 사용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면 언어 사용과 관련된 초인지를 통해 언어 사용의 중요성과 사용 방법을 익힐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어의 본질에 대한 이해, 국어의 사용에 대한 이해는 언어 학습 동기를 유발하여 학습을 촉진시키고,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은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과는 달리 단언적 지식으로서 완성된다는 점이다.
4.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
(1) 지도 내용 선정 방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지도할 때 반드시 언어 영역의 지도 내용이 포함된다. 자음과 모음의 구별, 단어 인지, 구와 문장, 의미 등은 위의 네 영역에서 기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인지, 다른 영역의 지도 내용인지 분명하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문장의 연결을 가르치는 것은 읽기나 쓰기라고 할 수도 있고, 언어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장 연결 그 자체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을 다루는 것이라면 언어 지식으로 볼 수 있고, 글을 읽거나 쓸 때 연결된 문장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읽기, 쓰기에서 다룰 수도 있다. 이들 영역 구분이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데, 그 현상을 교육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학교 교육과정에서 문장 부호와 관련된 지도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혼란이 확인된다.
1-읽-(4) 글에는 글자 이외에 문장 부호가 있음을 알고, 글을 알맞게 끊어 읽는다.
1-쓰-(4) 마침표의 쓰임을 알고, 바르게 사용한다.
2-읽-(3) 문장 부호의 기능을 알고, 문장 부호에 맞게 쉼과 억양을 달리하여 읽는다.
2-쓰-(3) 문장 부호의 종류와 쓰임을 알고, 바르게 사용한다.
3-언-(4) 문장에는 풀이하는 문장, 묻는 문장, 감탄을 나타내는 문장이 있음을 알고, 이 를 표시하는 문장 부호도 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내용에 대한 해설은 1-읽-(4)에서는 마침표와 쉼표, 1-쓰-(4)에서는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2-읽-(3)에서는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2-쓰-(3)에서는 마침표, 쉼표, 따옴표, 3-언-(4)에서는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를 다루도록 하여 혼란을 보이고 있다. 동일한 지도 내용이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읽기, 쓰기, 언어의 3 개 영역에 걸쳐 다루어지고 있으면서, 그 관련성이나 위계가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읽기나 쓰기에서 이들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여 지도 내용으로 선정하면서, 언어 영역에서도 그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지도 내용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앞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의사소통 능력은 문법적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들 상호 관련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혼란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언-(6) 동음 이의, 유의, 반의, 상하의 관계가 성립하는 단어들을 말하여 보고, 같은 관 계가 성립하는 단어들을 찾는다.
2-읽-(2) 주어진 단어들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여 보고, 단어 사이의 의미 관계를 파악한다.
1-쓰-(7)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에 관련되는 내용을 자세하게 말하여 보고, 그 내용이 정 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호응 관계에 유의하며 글을 쓴다.
2-말-(7) 겪은 일이나 읽은 글의 내용을 주술, 시제 등이 호응되게 말한다.
1-읽-(3) 글에서 각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말하여 보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관계를 파악한다.
3-언-(5) 글의 각 문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말하여 보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관계가 적절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 고쳐 쓴다.
단어의 관계와 의미를 지도하기 위한 내용은 2 개 학년에서 2개 영역에 걸쳐 제시되고 있다. 2-읽-(2)의 해설에는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단어들 사이의 의미 관계는 유의 관계, 반의 관계, 상하의 관계 등이다”라고 하여 1-언-(6)과 같은 내용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이것은 단어의 관계를 학습하는 시기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였을 뿐 아니라, 그 영역도 달리함으로써 중복되는 문제를 낳는다. 호응에 관한 내용은 1학년 쓰기와 2학년 말하기 영역에서 다루어지면서 그 관련이 분명하지 않으며, 학년을 달리 배열한 근거도 알 수가 없다. 이것 역시 언어 지식 영역의 기초 지식으로서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문장과 문장의 연결관계는 1학년과 3 학년에 제시되어 있어, 학년을 뛰어넘는 문제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각각 독립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그 기반이 되는 언어 지식의 공통 내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Carroll(1968)이 제시한 언어 능력 목록은 이 문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언어의 음운론/정서법, 형태론, 통사론, 어휘론과 언어의 기능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교차하는 표로 보여주면서 언어 능력과 언어 수행 능력을 상세화하였다. 그는 언어 능력의 목록을 통해 언어 능력을 상세화하여 보여주면서, 동시에 언어 사용 기능과의 관련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표 1> Carroll의 언어 능력 목록
<표 2> Carroll의 (기저 능력에 기초한) 언어 수행 능력 목록
사실 위에 제시한 국민학교, 중학교 교육과정의 지도 내용 중 학년간, 영역간에 나타나는 혼란은 오히려 언어 지식이 언어 사용 능력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언어 지식의 내용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각각의 영역 고유의 것인지 언어 지식 영역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밀접한 관련되어 있다는 반증이 된다. 실제로 제 6 차 국어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 중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각 영역의 내용 구조화(안)에 의하면, 음성과 어휘, 문장, 담화, 언어 예절, 언어 사용 맥락, 비언어적 표현, 자음과 모음의 구별 및 음운 변화, 해독, 문장 구조 등 여러 가지 언어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은 언어 사용 능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
언어 지식 영역이 다른 영역의 기초가 된다고 해도, 각 영역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이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설정하고자 한다면, 중첩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역을 설정하지 않고, 지도 내용을 처음부터 다른 영역에 포함시켜 기술하여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초등에서는 언어 지식 영역을 다른 영역에서 다루도록 하였고, 중등에서는 이들을 구별하여 독립적으로 다루게 하였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택하든지 언어 지식 영역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 포함시켜 지도할 경우에도 이들 영역에서 각각 언어 지식을 다루기보다는 언어 지식 영역을 독자적으로 설정하여 언어 사용과 관련된 항목을 추출하고, 각 항목이 다른 영역의 어떤 측면과 관련이 있는지 고려하여 배열하는 방식을 취하여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고, 언어 지식 영역의 학습과 전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언어 지식 영역을 독립적으로 설정하는 것과 언어 지식의 내용을 선정하는 것을 분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언어 지식 영역을 독립적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그 지도 내용까지 언어 지식의 측면에서 독립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역 설정은 언어 지식 영역이 언어 사용 능력의 기반이 된다는 중요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지도 내용의 선정 역시 언어 사용 능력과 관련하여 선정하여야 한다. 언어 지식 영역이 독자적으로 지도 내용을 선정할 경우 선정된 내용이 언어 사용 능력과 무관할 수 있으며, 그 선정 근거 역시 분명하게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도 내용의 선정은 언어의 구조에 대한 지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초인지적 지식으로서의 지도 내용은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과는 달리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와 밀접한 관련을 보이지 않으므로, 이들 영역에서는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도 내용의 선정 근거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의 내용은 언어 사용 영역 이외의 연구 결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은 언어 사용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초인지적 지식으로서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이해는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고, 학습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언어 내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연구 결과로 얻어지는 단언적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의 지도 내용은 언어학 그 자체의 연구 결과보다는 심리언어학, 사회언어학과 같은 학문의 도움을 받게 된다.
(2) 지도 내용의 선정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은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 직접 추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언어 그 자체에 대한 어떤 연구 결과라도 언어 사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어 교육에서 언어 지식 영역의 위상을 생각할 때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각 영역에서 언어 지식을 얼마나,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추출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지도 내용에서 언어 지식의 내용을 추출하는 일은 제 6 차 국어과 교육과정의 구조화(안)에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이 안이 완벽한 합의나 결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언어 지식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 포함되는 양상과 내용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말하기 영역에서는 표현 및 전달의 지도 내용으로 언어적 표현을 선정하고 음성, 어휘, 문장, 담화의 내용을 하위 항목으로 설정하고, 말하기의 태도에서 언어 예절로 국어순화와 경어법, 상황에 적합한 언어 사용 등을 제시하였다. 듣기 영역에서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관계, 청각적 식별로서 음운과 음상, 단어, 문장 및 담화를 설정하고 있고, 읽기 영역에서는 표기 해독, 단어 이해, 단어 및 지시어, 문장 이해와 연결 등을, 쓰기 영역에서는 문장부호와 문자를 비롯하여 문장 구조, 단어, 표현 기법, 표기법 등을 설정하였다. 이들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언어 지식 영역의 내용 중 언어 구조에 대한 내용이 기본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점은 이미 Carroll의 언어 능력 목록과 언어 수행 능력 목록에도 나타나 있으므로 매우 보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영역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내용에 한정되어 있다. 주로 음운과 문자, 어휘, 문장 및 담화의 수준이 포함되는데, 그 포함되는 양상은 동일하지 않다. 또한 이들 각 영역에서 가르쳐야 할 지도 내용에 대한 학자들 사이의 명확한 합의도 부족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영역에서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을 추출하는 것은 일관성을 갖기 어렵다. 다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요소들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 일정한 체계를 갖고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을 선정하는 것은 언어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각 영역별 지도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종합하여, 재배열하면 기존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과 유사하다.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그 관련 양상도 복잡하기 때문에 일관된 체계를 잡기 어렵다. 따라서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은 언어학적 체계를 갖고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은 크게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과 언어의 본질 및 사용에 대한 지식으로 나누어 선정하고, 배열하여야 한다. 이들 각각은 그 선정 근거와 체계가 다를 뿐 아니라, 지도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언어의 구조에 대한 지식은 음운과 문자, 단어, 문장, 담화로 나누어 선정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음운과 문자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 언어 사용의 필수 조건이다. 음성과 음운의 식별 및 조음 능력에서부터 음운 체계의 이해와 음운 변동, 음상과 억양 등이 이 항목의 하위 내용으로 설정될 수 있는데, 이것은 언어 사용을 배우는 초기 단계에 학습되는 것이면서 지속적으로 언어 사용에 관계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와 함께 문자에 대한 이해와 글자의 모양과 명칭을 비롯한 표기 체계의 학습은 문자 언어 사용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다음으로 단어는 의미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언어 사용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는 것으로 단어의 개념과 구조에 대한 내용을 기본으로 한다. 단어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뜻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지식을 포괄한다. 특히 단어는 언어 사용 능력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단어의 수뿐만 아니라 새로운 단어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정 근거는 문장과 의미 및 담화에까지 그대로 적용되어 언어 사용 능력의 기본 요소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은 언어학의 기본 체계에 따라 선정하고 세부 항목을 설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은 언어 사용의 동기 유발 및 학습 촉진과 관련될 수 있는 것으로 선정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은 언어의 보편적 특성과 관련된 본질과 실제 언어 사용과 관련된 사용으로 나누어야 한다. 언어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언어 사용에 밀접하게 관련되지는 않으나, 언어 기호의 특성과 기능에 대하여 알게 되면 언어를 학습하고 사용하도록 하는 데 유용한 초인지적 지식이 되기 때문에 설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과 언어의 관계를 중심으로 언어와 문화, 언어와 사회, 언어와 인간의 사고 등을 가르치는 것 역시 언어 사용의 동기 유발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언어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더하여 국어를 사용할 때 관련되는 여러 가지 상황과 국면을 고려한 지도 내용도 매우 중요하다. 국어의 표준어와 맞춤법을 비롯하여, 고유어와 외래어, 바른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와 같이 국어 정책과 관련된 내용은 실제 언어 사용에서 언어의 본질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선정 근거에 따라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을 선정할 때 어느 정도로 상세화하여 제시할 것인가 먼저 결정해야 한다. 제시되는 내용의 비중이 대등하도록 하지 않으면 어느 부분은 상세화되고, 어느 부분은 그렇지 못하여 혼란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세화의 정도는 언어학의 체계에 따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언어 지식 영역을 체계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
(1) 음운과 문자 음성과 음운
국어 음운의 체계
음절
음운의 변동
(2) 단어 단어의 개념
단어의 분류와 특성
단어의 구조
단어의 의미와 의미 관계
단어 의미의 변화
(3) 문장 문장의 개념
문장의 구성
문장의 종류
어순
문장의 확대
문장 종결
격
대우 표현
시간 표현
사동 표현
피동 표현
부정 표현
비교 표현
(4) 담화 담화의 요소
지시와 대용
전제와 함축
담화의 의미 관계
2. 언어의 본질 및 사용에 대한 지식
(1) 언어의 본질 언어의 체계
언어 기호의 특성
언어의 기능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비언어적 의사소통
(2) 언어와 인간
언어와 사고
언어와 사회
언어와 문화
언어 습득과 발달
(3) 국어의 사용 표준어와 맞춤법
언어 정책
국어의 특질
국어의 역사
(3) 지도 내용의 배열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 배열은 학습자의 연령, 학습 경험, 인지 양식, 환경, 학습된 문법 규칙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와의 관련도 고려하여야 한다. 즉 언어 사용 능력을 목표로 하는 국어 교육에서 언어 지식의 내용은 그것이 언어 사용 능력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 구체화되어야 한다. 초등과 중등에서는 언어 사용 능력을 핵으로 하여 언어 지식이 언어 사용에 직접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역의 지도 내용이 학교급별로, 학년별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언어 지식은 이들 영역과 관련하여 설정되고 배열되어야 하는데, 이들 영역이 가변적이기 때문에 배열의 일반 원리를 추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학교급 내에서의 문제일 뿐 학교급 간의 문제는 아니다. 학교급별로 어떤 지도 내용을 가르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전문성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언어 지식의 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내용이 단순히 난도에 의해 결정되어 학교급별로 배열되는 양상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언어 지식 중 초등에서 가르칠 것과 중등에서 가르칠 것을 결정할 때, 지도 내용이 쉽고 어려운 정도를 기준으로 결정한다면 언어 지식과 언어 사용 능력의 관계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능력의 구성 요소로 그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가르치는 것인데, 언어 지식의 학교급별 배열 기준이 언어 사용 능력과 무관한 기준에 의해 마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초등에서 가르칠 언어 사용 능력과 중등에서 가르칠 언어 사용 능력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며, 그에 필요한 언어 지식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 6 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언어 영역의 지도 내용이 학교급별로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비교해 보면 학교급별로 가르치는 언어 지식의 요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데, 이는 언어 지식의 개념에 대한 혼란에 기인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 지식(문법)의 개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어 지식(문법)을 전문 용어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언어 지식을 가르친다는 것이 반드시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를 습득하는 상황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식교육에서도 언어에 대한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다. 언어 학습자는 발음 교정에서부터 단어의 이해, 문장의 구성, 담화 상황의 적절성 판단에 이르기까지 언어 사용의 전 국면에서 언어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언어 지식을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든 일상 언어로 설명하든 관계없이 이미 언어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활동에서 언어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게 된다.
예를 들면 국어의 음운 변동 현상을 설명할 때 구개음화나 자음동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과 일상적인 언어로 표기와 발음의 차이를 설명할 경우 전자는 언어 지식(문법) 지도이고 후자는 언어 지식(문법) 지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미 음운변동 현상에 대해 설명할 때 언어 지식을 가르치게 된다. 즉 언어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내용이 중요하며, 사용하는 용어의 전문성은 부차적인 것이다.
따라서 위에 제시한 언어 지식의 내용 중 언어 사용 능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언어의 구조에 대한 지식은 초등에서부터 빠짐없이 지도하여야 한다. 초등 단계에서부터 언어 사용의 모든 국면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언어 지식은 중요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급에 따라 배열되는 차이는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내용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방식과 전문성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초등에서는 언어 사용 능력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 지식을 가르치고,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언어 지식이 좀더 이론적이고 특수한 언어 사용 능력에까지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적 배열은 고등학교 문법 과목의 처리에서도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언어 지식 영역을 언어 사용 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여 가르치고자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과목으로 설정되어 있는 ‘문법’의 역할이다. 언어 지식 영역의 모든 지도 내용을 언어 사용 능력에 포함시켜 논의하면, ‘문법’의 내용은 그와 밀접한 관련이 없기 때문에 처리가 곤란하다.
고등학교의 ‘문법’은 국어 과목에서의 언어 지식 영역과 같은 계열에 서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문법’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언어 지식 영역과 다르지 않지만, 그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적용되는 언어 사용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입장은 교육과정에 제시된 고등학교 ‘문법’의 성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등 학교 문법 과목은 학생들에게 국어학 및 일반 언어학 연구에서 이루어진 주요 성과들과 체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어와 언어, 나아가서는 인간 자체에 관한 이해 및 탐구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과목이라는 데서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성격 규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법’은 언어 지식을 다루는 것으로 그 내용이 국어의 언어 지식 영역과 같다. 즉 언어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하여 언어 사용 기능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므로 국어 교육에서 언어 지식 영역의 독자적 가치를 주장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
‘문법’ 과목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언어 사용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라, 특수한 언어 사용 능력이어야 한다. 과정적 지식이 결과물로 제시되더라도 그것은 모든 영역에서 대등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영역에서 산출된 것은 다른 영역에 쉽게 전이되어 잘 응용될 수 있지만, ‘문법’ 과목에서 설정하는 지식은 특수 영역에 초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영역에 적용되는 것도 포함하게 된다. 예를 들면, 고어에 대한 지식은 일반적인 언어 사용 국면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고어로 기록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국어 교육이 언어 사용 능력의 신장을 본질적인 목표로 한다고 할 때 일차적으로 현대어를 대상으로 하지만, 이차적으로는 그 범위를 확장하여 역사적 기록까지 포괄하여야 한다. 영어에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것이 중요하듯이 국어에서도 과거의 문학이나 기타 기록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초등에서는 기대할 수 없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을 ‘문법’ 과목에 배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언어의 본질 및 사용에 대한 지도 내용을 학교급별로 배열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위의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과 다를 바 없다. 언어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초인지적 지식으로서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여기서 가르칠 내용은 학교급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초인지적 지식을 제공하였을 때 일반적인 언어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초등 단계에서 가르치게 되고, 좀더 특수한 언어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중학교나 고등 학교에서 가르치게 된다. 예를 들면, 언어 정책이나 고어 등에 대한 지식은 초등에서는 가르칠 필요가 없지만, 언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것은 전문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초등에서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결국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은 초등에서 모두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초등 단계에서 학습하는 언어 사용 능력이 언어 사용의 어느 한 측면에 편중되거나 언어 사용의 일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면, 언어 사용의 기초가 되는 모든 내용을 학습해야 한다. 음운, 단어, 문장, 담화의 모든 수준이 이미 인간의 언어 사용이라는 면에서 배제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초등에서는 이들 모두를 다루도록 한다. 다만, 이론적, 전문적인 설명을 부가하지 않고, 실제 언어 사용과 관련되도록 지도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초등 단계가 6년이나 되고, 이 단계에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학습하여 기본적인 언어 사용 능력을 기르게 된다는 것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또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그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는다. 초·중·고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언어 사용 능력이 그 기본 요소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초등에서는 단어만 학습하고, 중등에서는 문장, 고등에서는 담화를 포함시킨다는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급별 구분은 내용 요소의 차이가 아니라, 그 깊이의 차이일 뿐이다. 이것은 나선형으로 반복 심화된다는 교육의 원리와도 일치된다. 이렇게 되면 남는 문제는 각 학년별로 내용을 배열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 지식 자체의 체계를 토대로 하면서, 다른 영역과 관련시키는 방식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5. 결론
국어 교육은 국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을 본질적인 목표로 한다. 국어 교육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은 이 목표를 지향하여야 하며, 각각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 언어 지식 영역도 국어 교육에서 논의되는 한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언어 지식은 언어 사용 능력을 구성하는 요소로 그 중요성이 있다. 언어 지식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필수적인 것으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영역과 관계없이 필요한 것이다. 언어 지식이 언어 그 자체를 연구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한다고 할 때 당연히 언어 지식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때 언어 지식의 개념을 지나치게 축소하여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언어 학습자는 어떤 형태로든 언어 지식을 학습하게 되기 때문이다. 용어의 사용 여부는 언어 지식을 다루는가와 무관하다. 언어 사용 능력의 기반이 되는 언어 지식은 전문 용어로 표현된 것이나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된 것이나 관계없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언어 사용 능력의 기초가 되는 언어 지식은 언어의 구조에 대한 지식과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으로 나누어진다. 언어 구조에 대한 지식은 일단 그 지식을 학습하게 되면 언어 사용에 전이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는 과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언어 지식 교육이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은 과정적 지식으로서 제시되지 않고, 단언적 지식으로 제시되어 그 자체가 학습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언어의 본질과 사용에 대한 지식은 언어 사용의 인지적 과정을 조망하고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의 일부로, 동기 유발이나 학습 촉진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언어 사용 기능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은 크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초인지가 언어 사용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언어 지식 영역의 지도 내용 선정은 언어 사용 능력과 관련된 것들을 몇 가지로 유목화하여 제시하게 되는데, 이는 상세화하는 것이 언어 지식 영역의 체계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며, 학교급별 배열에서의 기준도 설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언어 지식의 지도 내용은 그 내용 중 초등에 배열할 것과 중등에 배열할 것을 구별할 수 없다. 모든 내용이 학교급과 관계없이 언어 사용을 다루는 국어 교육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초등에서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론적인 설명이 없이 다루어지고, 중등에서는 이론적인 설명과 전문 용어의 사용이 필요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고등학교의 ‘문법’ 과목에서 다루는 언어 지식은 중등에서 다루는 것보다 더 전문적이고 이론적인 것으로, 그 목적이 일반적인 언어 사용에 머무르지 않고 특수한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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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어 지식(문법) 영역의 교수 학습 방법
김광해
I. 서론
1. 연구의 목표
우리는 이 논문을 통해서 현장에서 언어 지식(문법)을 다룰 때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문제, 즉 언어 지식(문법) 영역의 교수 학습 방법에 관련된 제안을 구체화하고자 한다. 그 제안의 핵심은 그 교수 학습 방법으로 탐구 학습의 방법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탐구 학습이란 일찍이 듀이나 브루너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지지되어 온 교수 방법의 하나로 이미 널리 알려진 교수 학습 방법이다. 그 동안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국어 과목에서는 다소 낯선 술어라는 면이 있겠지만, 과학 과목은 물론, 심지어는 일부 사회과 과목에서도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국어과에 내부에서도 이러한 방법에 대한 제안이나 관심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이대규, 1994, 박영목, 1995 참조). 반면에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술어는 매우 익숙한 말이다. 학생들은 이미 초등 단계에서부터 이 방법을 사용한 학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언어 지식(문법)의 교수 학습 전략으로서 탐구 학습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전제로 삼아서만 성립한다. 이러한 전제가 필요한 것은 국어 교육에서 언어 지식(문법)을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용주, 1995 ; 52, 78, 200, 이성영, 1995 ; 4-12, 이은희, 1994 참조). 이같은 논의의 출발점은 결국 이 영역에서 교수, 학습되는 내용들이 ‘국어 사용 기능의 신장’이라는 국어 교육의 일반 목표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하는 데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재론하지 않겠거니와, 일단 이러한 전제는 이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서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
1. 언어 지식(문법) 영역은 국어 교육의 중요한 하위 영역의 하나이다.
2. 지식의 발견 과정을 중심으로 교수 학습하는 것이 이 영역의 중요한 목표이다.
3. 2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접근 방법 중 탐구 수업은 유익하고 효율적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언어 지식(문법)의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 탐구 학습의 개념을 도입, 그 실제적인 수업 전략까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언어 지식 관련 제재들이 적절한 선에서 탐구 주제로 변용시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방법의 도입은 부수적으로 언어 지식 영역의 교육적 가치 문제를 둘러싼 그간의 의문들의 일부를 해소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탐구 학습과 언어 지식(문법)
언어 및 국어 현상에 대하여 탐구한다는 일은 왜 필요한가? 탐구 학습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식 자체를 교수․학습하는 것보다는 지식을 발견하는 과정을 학생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언어 지식(문법)의 교수․학습을 위하여 탐구 학습의 방법을 도입하고자 함에 있어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 현상은 다른 자연 과학 등과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탐구 대상의 하나가 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과학이나 사회 현상 같은 데에 흥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 현상에도 흥미를 보일 수 있다. 언어 지식(문법) 교육 현장은 이러한 욕구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교수 학습의 방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 모두를 나중에 언어학자나 국어학자로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탐구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학생들을 나중에 수학자나 물리학자, 생물학자로 만들기 위해서 수학이나 물리, 생물 등을 가르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방향은 결국 사고 능력의 훈련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주입식, 설명식 방법으로는 사고 능력을 적절하게 육성시키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이 방법의 도입은 학생들에게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사고하는 방법에 대하여 체계적인 훈련을 시킴으로써 사고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할 수가 있다.
둘째, 언어, 국어의 이해 부분에 탐구 방법이 잘 적용된다. 문학 영역에 대해서도 가능할 것으로는 생각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없고, 기능 영역들에서는 성격의 특성상 이 방법과 다른 전략들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언어 지식(문법) 영역은 그 탐구의 대상이 언어 및 국어 현상이기 때문에 이 전략으로 접근하는 일이 비교적 쉽게 가능하다. 언어 현상은 우리의 주변에 매우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자료를 구하는 일도 다른 과목들에 비해서 오히려 손쉽다. 실제로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문법 지식들은 언젠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몰두했던 분들이 탐구해 낸 결과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셋째, 언어 현상에 대한 탐구 과정은 우리말의 문법 현상에 대해 몸소 관심을 가져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경험을 통해서 우리말을 이해하는 경험은 궁극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말에 대한 태도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시켜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정확한 문장, 논리적인 문장, 규범에 맞는 문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왜 중요한 지, 그러한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해 줄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직접 관심을 가져 본 경험이 그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강화시켜 줄 수 있다는 생각은 교육학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 탐구 방법은 가장 적절하다.
3. 연구사
교수 학습 방법 문제를 중심으로 언어 영역의 교육 문제에 접근한 논의는 찾기가 드물다. 탐구 학습 방법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 문제에 접근을 시도한 논의가 김광해(1992)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이 논문에서는 교수 학습 방법에 관한 구체적 모델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 논문은 여기에서 제안된 내용의 구체적 상세화 작업이 된다.
교수-학습 모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소 상세화된 논의는 박영목 외(1995;248)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수업 모형이 일부 제시되고 있다. 그 핵심 부분을 인용해 두면 다음과 같다.
언어 영역의 교수-학습 모형
① 모형의 원리
ㅇ언어 학습 목표를 인식하도록 한다.
ㅇ언어 영역은 개념의 습득 과정임을 반영한다.
ㅇ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ㅇ언어 기능의 신장과 언어 사용 능력을 스스로 계발할 수 있도록 한다.
ㅇ학생의 언어 생활, 언어 활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도록 한다.
ㅇ개념 습득 과정에서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강조한다.
ㅇ단원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학습 방법을 선정한다.
ㅇ교사는 학습자가 언어 주체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ㅇ언어 지식의 결과보다 국어 자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ㅇ개념 학습시 기본 사례를 예시하고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도와준다.
②수업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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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의 확인 (지식의 제공) (사실의 분석) (가치관 및 (결과의 확인)
및 방향 설정) 태도의 변화)
문법 수업의 설계에 관한 구체적 모델을 보인 논문으로는 이대규(1994)가 있다. 여기서는 탐구 학습(발견 학습)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것이 주목된다 (이대규, 1994 ; 431). 이러한 견해는 학생 중심의 탐구 수업도 좋지만 수업의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할 때 설명식 수업의 불가피성을 설파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천착한다.
언어 지식 영역의 교수 학습 방법에 초점을 맞춘 논문으로는 이은희(1995)가 있다. 이 논문은 Stern(1992)의 제안에 의거하여 언어 지식 영역의 교수 학습 전략을 교수 전략 측면과 사회적 전략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교수 전략으로서 취할 수 있는 핵심은 정교화와 조직화를, 사회적 전략으로서는 직접 교수법의 기본 골격이 간단히 제시되었다. 논문의 말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원론적인 방향 제시이지만 교수 방법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 시대의 공통적인 고민의 일단을 보였다.
이 방법은 비단 언어 지식(문법) 교육 쪽에서뿐만 아니라, 문학 교육 영역에서도 도입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가능성이 김상욱(1994)에서 제시된 바 있다. 한편, 과학, 수학, 사회 분야에서는 방대한 양에 달하는 탐구 학습 방법 관계 이론 연구, 현장에서의 실천 연구들이 제출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국어, 특히 언어 지식(문법) 영역에서 이 교수 학습 방법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이제야 제기된 것은 매우 때늦은 감이 있다.
II. 문제점 인식
1. 언어 지식(문법) 교육의 회고와 반성
가. 학교 문법 교육의 흐름
학교 문법의 교육은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문법 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형식적이었다. 이러한 문법 교육을 벗어나서 그래도 본격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해방 이후부터이다(고영근, 남기심(1993 ; 428-9). 1949년 7월 문법 용어가 확정되고 다섯 종의 교과서가 나온 제 1 차 검인정 시대와 1956-1967에 이르는 제 2 차 검인정 시대, 1966-1978에 이르는 제 1 차 통일 문법 검인정 시대, 1979-1984에 이르는 제 2 차 검인정 시대를 거쳐, 1985년에 제 4 차 교육과정의 시행과 함께 1 종 국정 교과서에 의한 통일 문법 시대를 맞아 제 5 차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시행되고 있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학교 문법 교육의 흐름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까지의 학교 문법은 ‘문법’을 가르치는 것이 위주가 되어 왔으며 당연히 통사론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특별한 교수 방법과 연결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문법 지식을 거의 설명식, 주입식 방법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문법을 우리가 학교에서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 즉 교육적 적용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반성과 연구가 없이 수행된 데 커다란 이유가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학교 현장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과목 중의 하나가 문법이라는 자조(自嘲)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의 문법 교육의 실태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은 토로를 통해서 적절히 파악된다 (고영근, 남기심(1993 ; 426).
문법 교육이 담당하고 있는 부분은 국민들의 논리적인 사고 방식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엽말단적인 하나 하나의 규칙을 암기시키거나, 술어의 해설에 지나지 않은 교육은 문법 교육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사고 방식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문법 교육은 그 체계를 이해시키는 데 있다. 하부 체계 사이의 상관성과 상부 체계와의 관련성을 이해시켜 통일체로서의 문법 체계를 이해시키는 데 문법 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중략> 한국인의 사고 방식과 논리 구조, 명석하고 정확한 표현과 이해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문법 교육의 목표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문법 교육의 방법이 종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 학교 문법 교육의 현황
제 6 차 교육 과정과 함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고등학교의 경우 교과 명칭은 아직 ‘문법’으로 남아 있지만, 그 내용 체계는 대폭 확대되어 과거와 같은 통사론 위주의 ‘문법’ 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언어 및 국어 지식에 관련되는 내용들을 거의 망라하여 다루도록 내용이 확대된 것이다. 이를 위한 ‘문법’ 교과서는 이러한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다. 따라서 그 실질적인 내용은 국어학과 언어학의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점으로 말미암아 「문법」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 것 자체가 명실이 상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을 정도이다.
제 6 차 교육 과정의 이러한 변화는 그간의 학교 문법 교육 상황에 대한 반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국어 과목의 언어 영역에서 전개해야 할 교수․학습의 내용과 방법에 대하여 좀더 정밀하고 구체적으로 연구할 것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논문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언어 지식(문법) 영역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다. 언어 지식의 특성과 문법 교육
언어 지식(문법) 영역을 학교 교육과 연관시켜 생각할 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서 다루어야 하는 지식 체계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이 지식들은 자연 과학의 지식과 크게 상이한 점이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 분야의 연구 대상은 인간의 소산물인 언어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화나 역사, 심리 같은 모든 인간의 소산물이 바로 인문학의 대상인데, 이는 자연 과학의 대상과는 달리 독특한 성질을 가진다. 그 독특한 성질이란 바로 자의성(恣意性)으로 대표되는 비법칙성이다.
언어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이 분야의 경우 그 연구 방법이 다른 인문 과학의 연구 방법보다는 다소 자연 과학적인 모습에 가깝게 보이는 면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은 역시 자연 과학에서처럼 실험에 의해 증명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전거나 권위 있는 연구자의 해석에 더 크게 의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이 인문학의 중요한 특성이다.
현재의 학교 문법 교과서에 나열되어 있는 지식들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지식의 대부분은 근본적으로 그 분야에 오래 세월을 종사해 온 권위 있는 학자들에 의해서 가장 합리적으로 해석된 것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 중의 일부는 대립되는 학설 중의 하나가 편찬자에 의해 선택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다’나 ‘보어’ 문제를 둘러싼 논의라든가, 통일 문법이 나오기 이전, 곧 1984년 이전에 존재했던 심각한 학설간 대립이라든가, 통일 문법 시대에 들어간 이후에도 수없이 제기된 이의들(현행 학교 문법의 내용을 검토한 관련 논문들 참조)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문법 연구의 결과는 하나밖에 없는 결론이라기보다는 ‘설명’ 또는 ‘해석’ 의 성격이 강하다. 가장 성공한 문법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설명적 타당성이 높다는 정도로밖에는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문법적 설명 혹은 해석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인가? 어떤 것을 택해서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서 문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더 생겨날 수 있는 수많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교과서인가? 교사들인가? 전문가인가? 전문가들이 서로 견해가 다를 경우에는 또 누구에게서 찾는가?
이 점에서 ‘규범 문법’과 ‘학교 문법 (또는 교육 문법)’의 개념도 정확하게 구별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규범 문법은 예컨대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할 때 제공할 수 있는 한국어에 관한 하나의 간결한 골격으로서 중요한 효용성이 있다. 그러나 자국인을 위한 언어 지식(문법) 교육의 현장에서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이미 우리말에 충분히 숙달된 학생들에게, 그들이 아무리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라고는 하더라도 문법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문법 지식만을 금과옥조 삼아 암기하도록 하는 일은 자국어 교육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교과서에 쓰여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그것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태도는 문법 신성관에 바탕을 두었던 중세적 언어관에 불과하다. 이러한 교육은 자연히 주입식 교육으로 나타나게 되고, 따라서 논리성과 합리성 면에서 취약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가 국어 교육의 현장에서 학습 내용에 대한 흥미 상실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2. 새로운 교수 학습 방법 - 탐구 학습
이같은 언어 지식(문법)의 성격 자체를 고려하건대, 적어도 자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언어 지식(문법) 교육에서는 그 교육의 내용과 교수 학습 방법 문제들을 총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제안하고자 하는 방법의 핵심은 지식 그 자체보다는 가장 합리적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경험시킬 수 있도록 구안된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 즉 탐구 학습에 의한 접근법이다. 탐구 학습은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을 발견하는 경험을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까지 제안되고 검토된 교육학 연구의 성과에 의하면 이 학습 방법을 통해서 지식 발견의 절차를 의식적, 체계적으로 경험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쉽게 전이되도록 할 수 있다. 그간 국어과 교수․학습에서는 물론 언어 지식(문법) 영역에서도 탐구 학습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해 왔다. 그러나 적어도 언어 지식(문법) 영역에서는 현장 수업의 전략으로서 탐구 수업을 탐구의 특성과 연결시키고 수업 목표로서 제시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그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언어를 제재로 탐구하는 학습이 다른 종류의 학습과 전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과정이 아니기도 하다. Currie(1973;83)에 의하면 오히려 모든 학습이 어떤 방식으로든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언어 학습에서 경험한 내용과 그 경험을 위해서 채택했던 전략이 다른 학습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언어 지식(문법) 교육에서는 이같은 교수 학습 방법의 개선 문제에 생각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문법을 주로 설명식, 주입식 수업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 본대로 적어도 문법 관련 지식은 이러한 방법으로는 효과적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들 중에서 탐구 방법에 의한 수업은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방법, 즉 가장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힘을 가진 방법이다.
문법 과목은 현재 여러 가지 여건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 매우 답답한 상황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 지식(문법) 관련 단원을 현장에서 매우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는 교사들이 많다. 그들은 조금만 구상을 잘 하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교사들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탐구 학습의 방법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재미가 없다고 생각되기만 했던 언어 지식 영역의 내용도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며 또한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교수 학습 방법의 개선이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효과의 하나다.
III. 탐구 학습의 이해
1. 탐구 학습의 개념
가. 탐구 학습이란 무엇인가
탐구 학습이란 학습의 한 방법으로서, 경험 과정을 통하여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학습 전략이다. 바꿔 말해 이는 어떤 의문이나 문제에 대한 해결이나 해답을 찾아내기 위하여 체계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배양해 주기 위한 학습 방법이다. 또한 탐구는 ‘일정한 목적 아래 체계적인 사고 방법’을 훈련하는 학습 방법이다. 탐구의 목표는 주어진 정보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새로운 직관을 얻는 것이고 문제를 푸는 것이며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탐구 학습은 교사나 연구자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나 질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어떤 경우에는 탐구가 문헌 연구와 같은 뜻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탐구 학습에는 이러한 생각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탐구 학습은 듀이의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inking)를 근간으로 하여 개발된 개념이다. 듀이에 의하면 탐구란 ‘어떤 신념, 혹은 상정되어 있는 어떤 지식 형태를, 이 신념 혹은 지식 형태를 뒷받침하고 있는 여러 근거에 비추어 적극적이며 끈기 있고 세심하게 고찰하는 것. 또는 이 신념 혹은 지식 형태가 지향하는 여러 결론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이다.
탐구 과정이란 우리가 그 동안 인류가 지식을 발견해 온 과정 그 자체이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 곧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탐구의 대상이 된다. 이를 잘 관찰하여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그 현상을 이해하며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탐구의 과정이다. 탐구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탐구의 결과는 실생활에 응용되어 생산적인 성과로 연결되기도 한다.
나. 탐구 학습의 필요성
탐구 학습은 왜 필요한가? 바꿔 말해서 탐구 방법을 통하여 지식을 얻는 것이 왜 유익한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그 첫번째 이유는 , 지식 자체가 안고 있는 성격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또한 그 지식 자체도 불완전하며, 또한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지식 자체의 학습보다는 학습자가 스스로 지식을 발견해 낼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이유로 과학이나 사회 과목 등에서는 일찍이 탐구 학습이 중요한 교수․학습 방법으로 도입되어 있다. 10년을 주기로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수한 양의 지식들을 일일이 가르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 대신 우리는 학생들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이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를 극복해 나가는 한편 이미 알려진 것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2세들이 자신의 것에 대해 배우고 자신들을 탐구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국어 분야에서는 이 점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새로운 학습 방법의 도입을 통해서 언어 영역의 교수 학습에서도 이러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두번째 이유는 탐구 경험을 통해서 학습된 지식이 더 강력하게 내면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탐구의 경험은 관심 분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바람직한 태도를 형성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학습자가 장래에 평생 종사할 분야를 결정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생각은 그 어떤 것이라도 배워지지 않는다(Currie, 1973 ; 78에서 재인용)’ 는 라이프니츠의 관점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탐구 경험은 또한 현상을 보는 수단인 ‘안목’을 길러 준다는 효과가 있다.
탐구 학습 방법의 결론은 명확하다. 탐구 학습의 프로그램은 국어 및 언어에 관한 지식에 관해서 어떤 사람이 생각하거나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터득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합리적인 탐구 과정을 통해서 혼자 힘으로 배우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곧 탐구 학습이다.
2. 탐구 학습의 기본 구성 요소
탐구는 학습의 한 방법이다. 다른 학습 방법과 마찬가지로 탐구도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다.
가. 지식
탐구 학습의 첫 번째 중요한 요소는 지식 그 자체이다. 교수 학습의 대상으로서 지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탐구 학습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탐구 학습에서는 그 시간에 다루는 지식의 성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잠정적일 수 있으며 장차 연구 성과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전술한 바 있거니와 언어 지식(문법)같은 경우, 우리가 현재 현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문법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완벽한 것도 아니고 최종적인 것도 아니다. 매우 단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교과서 편찬자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이 지식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잠정적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지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해석을 통해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지식 자체가 유동적이다. 언어 현상에 관한 완벽한 지식은 현재로서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전문가, 학자들이 탐구해 낸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 정보들에 대해서 보증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식은 개인의 편견, 추론의 오류, 잘못된 가정 등에 의해서 크게 지배될 수 있다.
지식은 또한 선택된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자료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인데, 이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며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일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학습 자료로 구성된 지식 체계란 특별한 목적 아래 수집된 정보이기 때문에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다른 정보들을 경시하거나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교수, 학습의 과정은 선택적이며 모든 정보를 포괄할 수가 없다.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물이 진실로 존재하는 양상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것에 대하여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즉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인식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추정일 뿐이다. 이것은 똑같은 자료를 탐구하였을 때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정당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무경험자나 미숙한 학생보다는 실체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는 학습에 이용되기 위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교사가 탐구 학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다양한 정보에 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결국 교사가 탐구의 주제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탐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나 왜곡, 부정확을 예방하기 위하여 자료를 취급하는 방법, 출처의 신뢰도 및 확실성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실제 국어 및 언어에 관한 1차 자료나 2차 자료, 논문, 도서관 등의 이용 방법 등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이러한 출처를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은 탐구 학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나. 태도
탐구 학습에서는 과정을 중요시하므로 학습에 임하는 태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된다. 탐구 학습을 위해서 필요한 태도 또는 탐구 학습을 통해서 기르고자 하는 태도로는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는 태도,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증거를 존중하며 객관성 있는 태도, 확실한 판단을 연기할 줄 알고, 모호성을 용인할 줄 아는 태도 등을 들 수 있다.
1) 의문 : 탐구의 근본 원리는 의문을 중시하는 정신이다. 이는 모든 현상의 원인이나 결과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는 태도를 말한다. 의문하는 정신이란 아직 폭넓게 인정되지 않은 결론을 궁극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진리에 대한 탐구가 계속되는 동안 정확한 판단을 계속 연기해 가면서 의구심을 가지는 태도를 말한다. 의문 정신은 탐구의 시작을 위해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탐구 과정을 계속 자극하고 지속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2) 호기심 : 의문은 호기심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 발동해야만 탐구가 실천에 옮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란 ‘알기를 원하는 마음’ 이다. 호기심은 상상력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바로 거기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호기심이나 상상력이 없이 탐구 정신이 발생할 수는 없다.
3) 이성적 사고 : 어떤 사고 과정의 경우에나 마찬가지지만 탐구 학습에서도 이성적인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지식을 발견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권위, 감정, 편견, 미신 등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과정에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합리적, 이성적 사고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 아무리 새로운 착상을 배경으로 한 발견이나 지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서 획득된 것이 아니라면 전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4) 증거 존중 : 진리를 검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탐구 학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항상 확실한 증거를 통해서 검증해 나가는 자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확실한 증거야말로 가설이나 자료의 정확성, 그에 대한 해석 및 결론의 타당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요소이다.
5) 객관성 : 전문가이거나 학생이거나 탐구 과정에서는 모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준거들로 말미암아 현상을 서로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뿐 아니라 문제들에 대해서 두 가지 이상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해석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탐구는 가능한 한 편견이 없이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공정하게 밝혀 내는 객관적 태도로 수행되어야만 한다. 객관적인 태도란 개인적인 기대 사항이나 희망 사항을 떨쳐 버리고 신중하게 증거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태도를 말한다.
6) 판단의 연기 : 이는 객관성을 존중하는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태도이다. 판단을 연기하는 태도란 의문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의문을 증명해 내기까지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충분한 자료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결론으로 비약하는 것을 삼가는 신중한 태도가 탐구 학습에서는 중요하다.
7) 모호성에 대한 용인 : 모호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특성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확실한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탐구의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모호성을 용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불확실성과 모호성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탐구란 바로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자연스런 욕구를 토대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구의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모호성이 존재하여야 하지만,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되면 문제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성장 단계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에는 주제의 확실성과 모호성의 정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다. 과정
(1) 탐구 과정의 의의
탐구 학습에서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탐구 학습의 과정은 전술한 지식, 태도 등을 통해 발생되지만, 실제적인 탐구의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강화되어 간다는 특성을 가진다. 탐구 학습이 기존의 강의식, 설명식, 주입식 방법의 수업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 바로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탐구의 과정은 지적인 작용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작용은 아니다. 탐구 과정은 수많은 관련 행위들로 구성되는데 이 일련의 행위들에는 특별한 인지 작용들이 포함된다. 그 인지 작용의 과정은 탐구할 질문이나 문제에 대해 정의하는 과정, 잠정적인 해답이나 대안으로서의 해결을 가정해 보는 과정, 즉 가설을 세우는 과정, 그 다음에는 적절한 자료를 통하여 그 가설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과정, 그리고 검증된 가설의 타당성에 비추어 결론을 내리는 과정 등으로 구성된다. 탐구의 과정은 연속적이다. 이는 일회적인 활동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활동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탐구 학습의 결론은 언제나 재검토와 재검증이 가능하며, 반론에 대하여 열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탐구 학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 하나는 문제점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내는 과정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통찰력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아가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여 해결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다. 이 능력이 이른바 ‘고기 잡는 방법의 훈련’에 해당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실제 자료의 처리 과정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컨대 언어 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잘못들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바르게 교정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언어 문제에 관한 바람직한 태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몸소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는 중요하다. 언어 문제에 대하여 직접 관심을 기울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언어에 대한 태도 자체에 차이가 날 것이다. 국어에 대한 탐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국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며, 국어 및 언어 현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국어 문제에 관하여 바람직한 태도를 형성해 갈 것이다.
(2) 탐구 학습의 단계
탐구 학습의 단계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하고 있다. 국어의 교수․학습 방법으로서 탐구 과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여기서는 이 분야와 그래도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Barry K. Beyer(한면희 외 역, 1988)의 사회과 탐구 학습 이론에 제시된 탐구 학습의 과정을 소개한다. 이 역시 과학 등의 다른 과목에서 제시하고 있는 탐구 학습의 단계와 본질적인 차이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가) 탐구 목표(문제)의 정의
탐구는 어떤 것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이 ‘어떤 것’이란 질문에 대한 해답일 수도 있고, 문제의 해결일 수도 있으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불완전한 결론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일 수도 있다. 탐구 과정의 제 1 차적인 단계는 목표를 처리하기 쉬운 의미로 정의하고 한계를 설정하여 명확히 하는 일이다. 무엇을 탐구하려는 것인지 정확한 개념을 가지지 못하면 성공적인 탐구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가설의 설정
가설은 의문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이나 대안이 될 만한 해결책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목표 설정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되는데 통상 목표가 명확히 된 상태라면 가설도 이미 어느 정도는 설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설을 세우거나 결론을 추정하는 일은 탐구자의 기존 지식과 많은 연관 관계를 가진다. 또한 이는 앞으로 계속적으로 이어질 탐구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 가설의 검증
일단 가설이 형성되면 적절한 정보나 증거들이 가설을 얼마나 잘 뒷받침해 주는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검증되어야 한다. 목표에 따라 이 과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 자료의 수집, 자료 평가, 자료의 분석 등을 위한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라) 결론 도출
결론은 가설을 검증하여 내린 결정 사항이다. 이 단계에서 탐구자는 증거를 중심으로 가설의 타당성을 살피게 된다. 만약 증거가 처음의 가설을 뒷받침한다면 그것의 재진술이 곧바로 결론이 된다. 그러나 가설이 부분적으로만 옳다고 판단되었다면 이 때의 결론이란 가설을 수정하여 새로운 상황에 통합시키는 일을 의미하게 된다. 한편, 증거가 가설과 상치된다면 이는 자신이 세운 가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추가된 증거들에 비추어 다시 검증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결론을 내리는 일은 탐구 학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마) 결론의 적용 및 일반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탐구하여 얻어낸 결론이 새로운 상황의 자료에도 적용되며 설명이 가능한 것인지 여부는 중요하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탐구 과정이 성공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새로운 자료에 적용시켜 본 결과 결론이 수정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과정은 새로운 문제로 돌아가서 1~4의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완성된 개념이란 통상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적용의 과정을 통해서 결론이 일반화될 수 있다면 그 탐구 학습의 목표는 달성된 것이다.
이상에서 기술된 탐구의 과정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제의 정의 - 문제, 의문 사항의 인식, 문제에 의미 부여, 문제의 처리 방법 모색
2. 가설 설정 - 유용한 자료 조사, 추리, 관계 파악, 가설 세우기
3. 잠정적 결론 검증 - 증거 수집, 증거 정리, 증거 분석
4. 결론 진술 -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계 검토, 결론 추출
5. 결론의 적용 및 일반화 - 새로운 자료에 결론 적용, 결과의 일반화 시도
(3) 탐구 학습의 기법
언어 지식(문법) 영역의 탐구 수업에는 다양한 수업 기술이 동원될 수 있다. 구두 보고, 문어, 구어 조사 연구, 모의 활동, 토론 등 모든 것이 탐구를 위한 자료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심지어는 강의나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조차도 탐구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가) 강의와 질문 기법
학습자가 아직 탐구 과정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지 못한 단계에서 교사는 부분적으로는 강의 방법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질문 방법을 동원하여야 한다.
탐구를 위한 질문은 일방적 수업과 달라야 한다. 질문은 가설을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준비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나?’, ‘이 자료는 무엇을 알 수 있게 해 주는가?’, ‘이 자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발견된 공통점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등으로 문제를 인지하는 데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지적인 탐구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학습자를 인도함으로써 학습이 용이하게 되도록 한다.
질문을 통해서 탐구 과정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사는 탐구 제재에 대해서 상당한 수준의 식견을 갖추고 있을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교사들에게 이러한 수준을 기대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탐구 의욕을 자극할 수 있는 의문들을 제재별로 수합, 학생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적절하게 정리하여 제공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장차 언어 지식(문법) 교육의 연구에서 중요한 실질적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지적 호기심과 질문 유발 방법
탐구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학습자 스스로가 강한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교사는 자신이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해답을 내 보이지 않으면서 학생들 스스로 결론을 유도해 내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학습자 스스로 문제를 생각하고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하는 일이 포함된다. 어떤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의문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의문을 떠올리는 일 자체가 가지는 생산적 가치에 대해서 상기시키는 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상황에 따라
‘이제까지 진행해 온 과정을 종합하여 볼 때, 의미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이제까지의 논의를 어떻게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
‘이 자료들을 관찰한 결과 발견한 공통점들의 핵심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통해서 학습자가 탐구에 참여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유도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탐구 학습에서 사용되는 접근법에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은 ‘학습자의 다양한 능력, 경험의 배경, 이용 가능한 자료’ 등을 고려하여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탐구 학습에서 교사가 취할 역할과 태도는 대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정세구, 1987, 40-2)
1. 많은 자료를 준비한다.
2. 최종적이거나 절대적인 답변을 주지 않는다.
3. 학생과 함께 탐구함으로써 흥미를 강화한다.
4. 학생들의 질문 방향 교정에 힘쓴다.
5. 적절한 단계에 보상을 제공한다.
6. 공평함을 유지한다.
이 때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지, 그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실험 연구들을 참조할 때 어느 정도의 적절한 정보와 방향을 미리 제공하여 주는 것이 발견 학습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 탐구 수업의 실제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쉬운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신비스럽거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며, 영감에 의한 수업이거나 몽상적 수업 방식도 아니다. 전술한 언어 지식(문법)의 특성을 고려할 때 탐구 수업은 차라리 정확한 교수 방법이다. 또한 이 방법의 장점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생산적이고 흥미가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이 방법이 교사의 성의에 따라서 효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나, 그것은 어떤 교수법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IV. 언어 지식(문법)과 탐구 학습의 실제
1. 탐구 학습 전개를 위한 전제
언어 문제를 탐구 방법으로 다루는 일이 실제로 유익하고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실제 작업에 부딪치면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준비할 일이 산적해 있다. 이 분야에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선 이 방법의 도입은 현장의 교사들의 업무량 증가와 실제 수업 시의 중압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제재 자체의 선정을 교사들에게 맡겨 두는 방법도 역시 중압감을 줄 수 있다. 언어 지식(문법) 영역의 제재는 그 성격상 아무리 작아 보이는 주제라고 하더라도 논문 한 편이나 여러 편, 심지어는 석박사 학위 논문이 나올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것을 적절히 현장화 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소모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 수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앞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1) 탐구 학습의 모델 설계
학생은 물론 교사들마저도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탐구 학습 모델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모델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성장 단계를 고려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탐구의 제재에 따라서 그 임무를 수행해 낼 수 있는 성장 단계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2) 자료 준비
현장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언어 탐구 자료와 의문들을 다양하게 수집 제공해야 한다. 이 의문들은 원천적으로 국어학자나 언어학자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과 다름이 없다. 이 중에는 이미 해결이 된 문제도 있고, 해결이 안 된 문제도 있으며,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이 등장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탐구 학습 방법은 이러한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열어 놓고 있다.
(3) 탐구 주제의 체계화
탐구 주제는 국어학, 언어학 등 일반 학문 체계와 연결될 수 있으되, 국어 교육의 전체 목표, 학생들의 성장 단계, 현장의 현실 등을 섬세히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주제는 가급적이면 해당 주제에 대해 이미 명확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계에서조차 아직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예들을 탐구의 주제로 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서로 대립되는 해석이 두 가지 이상으로 나올 수 있는 경우는 오히려 좋은 탐구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이다, 보어 문제’ 등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다. 이점이 바로 현재의 문법 수업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2. 탐구 학습의 실제 모델
<부록 1. 참조>
V. 정리
1. 탐구 학습의 문제점
지금까지 언어 지식(문법) 영역의 교수 학습에 탐구 학습 방법을 도입하자는 주장과 함께 그 전개 가능성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아무리 훌륭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어교육 분야에서는 다소 생소한 교수 학습 방법인 이 탐구 방법의 문제점들도 함께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탐구 수업의 실천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탐구 수업은 같은 주제를 전통적인 방식, 즉 설명식, 주입식, 암기식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 즉 입시 대책 같은 것 때문에 정신이 없는 실정인데 언제 일일이 이러한 탐구 학습의 방법으로 수업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현재 교육 과정의 언어 지식(문법) 영역에서 요구하는 상당량의 학습 내용을 모두 탐구 방식으로 다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한 실제로 탐구 방법으로 다루기 어려운 제재도 있다.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고등학교의 ‘문법’의 경우를 상정하고 다음과 같은 제안이 가능하다. 이 과목에서 다루어야 하는 총 64 시간의 문법 수업 중에서 4분의 1 인 16 시간 정도의 제한된 선에서 해당 수업을 탐구 방식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탐구 주제들을 용의주도하게 선정하고 교재화하는 데 특별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초중고 국어 과목에서도 이 비율에 준하여 탐구 방법을 도입한 단원을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탐구 주제들은 선정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두번째로는, 잘못된 가설을 세우는 학생에 대한 대처 방법이 어렵다든가, 학생의 지적 수준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점, 대부분의 학생들은 탐구를 수행할 만큼 많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탐구 수업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속임수가 아닌가 하는 비판까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탐구 수업을 너무 신비한 것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또한 대안도 없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주입식 방법을 고수하는 수박에 없다. 또한 다른 많은 영역에서 탐구 방법이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지도 못한다.
언어 지식 영역의 교육적 전개를 위하여 탐구 방법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그래도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교수 학습 방법의 도입이 유용하다고는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국어 교육의 소관 사항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국어학 관련 지식을 다루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국어학 교육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역시 다른 과목의 예를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수학, 과학 등에서 가르치는 그 수많은 난해한 지식들이 과연 수학자나 과학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국어 탐구 또한 국어학자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말인 국어를 직접 관찰하면서 이해하는 이러한 경험 과정이 국어 시간에 다루어질 일이 아니라면 어느 시간에 다루어야 한다는 말인가?
2. 탐구 방법의 도입과 국어 교육학의 지평
국어 과목의 교수 학습 방법으로서 일부지만 탐구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또다른 하나의 의의를 지닌다. 그간 국어 교육학, 그 중에서도 언어 지식 부분을 다루는 영역, 즉 국어학 관련 국어 교육학의 실천적 전개에서는 하나의 딜레마가 있었다. 국어교육과에서 국어학을 배경으로 하는 논문의 경우 국어학적으로 중요한 발견을 하여 그 자체가 훌륭하게 논문으로 성립될 수 있더라도 그것이 국어국문학과의 논문과 구별되는 점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항상 봉착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탐구 학습 방법의 도입은 새롭고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주제를 연구하든지 그 주제를 탐구 방법으로 현장화 하기 위한 방안을 적절히 제시하면 훌륭한 국어교육학적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학계에서 공인을 받은 주제, 그리고 교육적으로 필요한 주제들을 적절히 선정하여 탐구 방법으로 현장화 하는 모델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서 필요한 일은 교육적 필요가 높은 주제를 선정하는 일, 이를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의문들로 정리하는 일, 이에 관한 효과적인 탐구 학습 방법을 개발 적용하는 일 등의 현장화 작업이 될 것이다. 현장화를 위한 탐구 학습의 개발 및 적용 방향은 다양하고 거의 무한하다. 이로써 최소한 국어학 관련 국어교육학의 지평은 널지막하게 열린다.
우리는 일단 어학 관련 분야 중심으로 탐구 학습 방법의 도입을 주장해 보았거니와, 이 방법의 도입은 문학이나 교과교육학 관련 영역으로도 확대 적용될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다(김상욱, 1994 참조). 영역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지 모르나, 교과 교육의 어떤 국면이든지 결국은 배경 학문과 연결되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볼 때 이 방법의 적용은 국어 교육학에서 이웃하고 있는 다른 영역들의 지평까지도 함께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3. 기능 영역과 언어 지식 영역의 관계
국어학 관련 성과들을 탐구 학습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는 영역 상의 혼란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문법론에서 화용론, 담화 이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그것이다. 여기가 상호 구분이 어려운 경계 부분이다. 이 부분을 경계선으로 해서 언어학이 미시 언어학과 거시 언어학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에 관하여 언어 지식(문법) 영역에서는 미시적인 지식만을 다룸으로써 경계를 서로 분명히 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그 대신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등 기능 신장을 목표로 하는 영역에서는 거시적 국면들을 고찰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최근에 발전되고 있는 텍스트 언어학, 담화 이론 등의 성과를 잘 소화시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실제로 이 기능 영역들이다.
이 분야들도 당연히 언어학 내지 국어학의 관련 사항이기는 하지만 국어교육학적 전개 문제로 넘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간의 부질없는 논란은 이를 혼동함으로써 야기된 문제들이다. 앞으로는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을 잘 구별하여 분업과 협업을 해 나아가야 한다. 현재처럼 국어교육의 하위 영역이 기능 영역, 문학 영역, 언어 영역으로 정립되어 있는 상황에서라면 언어 지식(문법) 영역에서 텍스트 차원의 문제까지 다룰 일은 아닌 것은 당연하다. 또한 발상법, 표현 시의 응집성, 유창성 문제, 텍스트 차원의 이해 문제 같은 것은 당연히 기능 영역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이다. 언어 지식(문법) 영역 쪽에서 거기까지 손을 대게 되면 기능 영역들에서 할 일이 없어지게 될 뿐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 말고도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국어 교육의 하위 영역들 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립하는 일은 국어 교육의 학문적 위상을 확고하게 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간 국어 교육의 학문적 위상이나 내용과 관련하여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은 바로 이같은 관계 정립 작업을 명확히 하지 않았던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이같은 관계 정립은 기능 영역, 문학 영역, 언어 영역이 서로 존중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간의 일부 논의들에서는 다른 영역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언어 지식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에 스스로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야가 좁아졌다거나 범위가 축소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미시적인 세계의 내부 역시 거시적인 세계만큼이나 무한하며 두 세계는 똑같이 깊고 넓다. 다른 영역에서도 스스로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고 그 내부를 충실하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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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탐구 학습의 실제 -형태 1
목표 :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탐구 방법에 의해 이해한다.
1.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이해.
2.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언어에 대한 이해.
3. 언어의 변화에 대한 이해.
4. 응용 목표 - 우리 나라의 분단 상황에 따른 언어 문제 이해.
관련 지식 : 언어의 자의성, 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변화
대상 : 고등학교 1, 2 학년생
탐구 과정 (4 단계)
<제공할 탐구 자료>
26일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 시의 국제습지센터 휴게실. 동북아 북태평양 환경포럼에 참석한 각국 학자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남북한 학자들이 어울렸다.
◁ 남한 조류학자 = 북한의 슴새 집단 서식지는 어딥니까?
◁ 북한 조류학자 = 슴새가 뭡네까?
◁ 남 = 카르테이테스 레우코메라스 말입니다.
◁ 북 = 아, 꽉새 말이군요. 서해안 여러 곳에 살고 있습니다.
◁ 남 = 검은머리물떼새는 어떻습니까?
◁ 북 = 무슨 새요?
◁ 남 = 해마토푸스 오스트라레구스 말입니다. 큰 병아리 만하고 갯벌에서 사는 물떼새 말입니다. 남한에는 1백 50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데......
◁ 북 = 긴부리까치도요를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북조선에서도 서해안의 섬에 1백 마리 이상 살고 겨울에는 북쪽에서 날아와 그 수가 좀더 늡니다.
남북한 조류학자 사이의 대화는 이처럼 번번이 새의 이름 때문에 끊겨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같은 새를 수십년간 연구해 온 같은 한반도의 학자들조차 서로 이름이 달라 대화가 어려운 것이었다.
남북한 조류 목록을 비교해 보면 4백 19종의 새이름 중 같게 부르는 것은 25%인 1백 13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3백 6종 중 1백여종은 ‘솔개(남)-소리개(북)’처럼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러나 ‘원앙사촌(남)-댕기진경이(북)’ 식으로 전혀 같은 새를 떠올리기 어려운 이름도 2백 여종이 넘었다.
포유류 이름도 마찬가지. ‘하늘다람쥐(남)-날다라미(북), 집쥐(남)-시궁쥐(북), 고라니(남)-복작노루(북)’ 식이다. 일제 때에는 조선어학회가 국어 사전을 편찬하면서 동물 명칭을 통일했기에 이같은 현상이 없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 후 각자 구미에 맞게 이름을 고치다 보니 이렇게 서글픈 일이 벌어진 것.
일본의 북쪽 끝인 구시로에서 분단 후 처음으로 만난 남북한 조류 및 환경확자들은 서로 달리 부르는 동식물 이름을 통일하기로 일단 합의했다. 학자들만의 합의이기에 성사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비록 더디더라도 이런 노력이 분단을 넘어서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시로=李圭錫> (동아일보 1995. 9.27.)
ㅇ이 수업을 위한 참고 자료 - 탐구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의문들 <언어 일반>
1. 자의성
ㅇ소리와 의미의 관계가 자의적이라 하더라도, ‘아버지’ 와 'papa'에서의 ‘ㅂ’, 어머니와 ‘mama’에서 ‘ㅁ’처럼 많은 언어들이 대개 비슷하다. 이는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혹시 언어의 자의성에 위배되는 증거는 아닌가?
ㅇ한자 중에서 상형 문자의 경우 그 형식과 내용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人’의 경우 형식-즉. 글자 자체가 그 뜻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닌가?
ㅇ언어의 특성 중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창조성과 사람이 임의로 말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회성은 상반된 것이 아닐까?
ㅇ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할 때 소리를 흉내내어 만들었음에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어서 의성어도 자의적이라고 했다. 의성어들이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서로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데 자의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2. 습득
ㅇ I.Q 가 80인 사람과 150인 사람을 비교해 보아도 기본적인 언어 구사는 모두 잘한다. 이와 같이 쓰는 단어의 수준, 말하는 분위기 등은 달라도 기본적인 언어 구사 능력이 IQ와 크게 상관관계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ㅇ사람이 태어나서 그 주위에서 저절로 배우게 되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언어가 자연 언어이다. 그런데 만일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주위에서 인공 언어인 에스페란토어만을 쓴다면 그 아이에게 에스페란토어는 자연 언어로 작용할 수 있을까?
ㅇ인간은 세계 모든 언어를 모두 지배하는 어떤 보편적인 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2외국어를 완전히 습득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ㅇ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는 능력은 성장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사고
ㅇ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의 사고는 같을까 ? 다를까?
ㅇ언어가 없어도 사고할 수 있을까? 없을까?
4. 수화
ㅇ수화는 언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성질을 지니고 있고 매체만 다를 뿐 음성 언어와 비슷하다. 수화는 언어인가, 제스처인가?
5. 변화
ㅇ언어는 왜 나라마다 또는 지방마다 다른가? 그 이유가 지역차라면, 거리상으로는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평안도 지방과 만주 지방에서는 어째서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ㅇ‘인간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라는 기본 명제에 대해 ‘컴퓨터’등의 新造語나 人工言語, 유행어들이 만들어져서 보급, 확산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ㅇ언어는 단절된 상태에서 서로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통신 매체의 발달로 사투리가 점점 사라져 표준어로 통합되어 가는 경항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6. 동물의 언어
ㅇ동물이 언어를 배우지 못하는 것은 언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ㅇ언어는 인간만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배웠다.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 없듯이 인간도 동물의 언어를 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동물의 언어는 단순한 것이며, 인간의 언어보다 열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편견이 아닐까?
7. 기타
ㅇ국어는 각 나라 고유의 언어라는 뜻이다. 고유한 언어를 갖지 않은 나라는 국어가 없는가?
ㅇ외국어를 맨 처음에 어떻게 한국어로 옮겼을까?
탐구 학습의 실제 - 형태 2
목표 : 1. 국어 현상을 탐구 방법을 사용하여 이해한다.
2. 문장 만들기에는 언어의 규칙성이 단어 만들기에는 언어의 비규칙성이 적용됨을 이해한다.
관련 지식 : 언어의 규칙성과 비규칙성, 문장 만들기와 단어 만들기, 어미와 접사, 문장과 단어
대상 : 고등학교 2, 3 학년생
탐구 과정 (5 단계)
과정 1. 문제의 정의
과정 2. 가설 설정
과정 3. 잠정적 결론(가설) 검증
과정 4. 결론 진술
과정 5. 결론의 적용 및 일반화
<부록 2> 탐구 학습의 몇 가지 모델
< Fenton의 역사 탐구 학습과정 모델 >
a. 자료로부터 하나의 문제를 찾아낸다.
b. 가설 설정한다.
.분석적 질문을 한다.
.가설을 진술한다.
.가설의 잠정적 성격에 유의케 한다.
c. 가설의 논리적 의미를 인식한다.
d. 자료를 수집한다.
.필요한 자료 결정한다.
.가설에 대한 관련을 토대로 자료를 선택한다.
e. 자료의 분석, 평가, 해석을 행한다.
.원자료로부터 적절한 데이타를 선택한다.
.원자료의 眞僞를 검토한다.
.원자료를 평가한다.
(원자료 작성자의 사고 검토 및 사실진술의 정확성 검토)
f. 자료에 비추어 가설을 평가한다.
.필요하다면 가설의 일부를 수정한다.
.일반화를 진술한다.
ㅇ탐구 활동 중심의 교수-학습 체제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ꠏꠏ 기초학력 진단
1. ꠐ 診斷學習 ꠉꠏꠏꠋ 기초학력 미달아의 처방
ꠌꠏꠇ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ꠐ 과제물 및 자료준비 점검
ꠐ ꠌꠏꠏ 학습계획 수립
꠆ꠏꠍ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ꠏꠏ 학습문제 설정
2. ꠐ 學習問題 ꠉꠏꠏꠋ 학습문제 인식
ꠌꠏꠇ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ꠌꠏꠏ 학습 목표
ꠐ ꠆ꠏꠏ 탐구활동 계획
꠆ꠏꠍ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ꠐ 예상 수립
3. ꠐ 探究生活 ꠉꠏꠏꠋ 실험 실습 활동
ꠌꠏꠇꠏꠏꠇꠏꠏꠇꠏꠏꠎ ꠐ 토의 기록 활동
ꠐ ꠐ ꠐ ꠌꠏꠏ Open-end 시험
ꠐ ꠐ ꠐ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ꠏꠏ 교사의 발문
ꠐ ꠐ ꠌꠏꠏꠏꠏꠏ 4. ꠐ 言語 相互作用 ꠉꠏꠏꠋ 아동의 발표 활동
ꠐ ꠐ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ꠌꠏꠏ 학급 전체의 토의 활동
ꠐ ꠐ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ꠏꠏ Soft Ware의 투입
ꠐ ꠌꠏꠏꠏꠏꠏꠏꠏꠏ 5. ꠐ 敎授-學習資料 ꠉꠏꠏꠋ Hard Ware의 투입
ꠐ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ꠌꠏꠏ Feed Back
꠆ꠏꠍ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ꠏꠏ 검증 방법
6. ꠐ 形成評價 ꠉꠏꠏꠋ 결과 처리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ꠌꠏꠏ 결론 형성
언어 지식 영역의 체계화 연구 발표 대회 종합 토론 기록
김광해: 발표와 관련해서 종합해 보겠습니다. 우선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부터 말씀드릴까요. 언어 영역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합니다. 초,중,고 교과서의 내용 체계 배열을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어서도 정도 차를 두어 나선형으로 배열하자는 의견으로 일치하고 있고, 방법 면에 있어서는 저 혼자만 했지만 탐구 방법을 채택하자는 것이 나왔습니다. 의견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언어 영역뿐만 아니라 국어교육 전반에서 의견을 조정해야 할 부분인데, 언어영역이 가르치는 데 독자적인 가치가 있는 영역이냐 아니면 언어 교육 신장을 위한 보조 교육으로서 가치가 있는 영역이냐는 문제에서는 미묘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성영 : 저는 발표문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 문제점을 3가지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쭉 나왔던 문제이지만 영역 구분의 문제입니다. 저는 발표문에서 기존의 5차나 6차의 세 영역을 인정하자고 하였고 토론을 하신 노명완 선생님께서는 하나로 합치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 토론을 진행해 오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문제가 되었던 부분입니다. 왜 우리가 가능하면 영역 통합을 인정하지 않고 세 영역으로 인정하겠습니까? 각 교과마다 독자적인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 중심으로 끌려가기만 한다면 교과 사이에 빈 공간이 많이 생기지 않겠느냐, 물론 그런 필요성이 충분히 있지만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또 일관된 축으로 다 설명해 가려는 그런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을 때 비는 부분이 많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 염려가 있었고요, 하나로 할 수 있다면 일관된 축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이런 문제에 부딪쳤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언어 사용 기능을 중심으로 했을 때 모든 내용을 짜고 그랬을 때 빠지는 부분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문학 영역에 대해서 생각하면 문학 영역의 목표를 크게 내세울 수 있다면 감상 영역과 그 이외의 가치 문제를 분명히 들어가야 하는데 언어 영역도 마찬가치로 기능뿐만이 아니라 그것과 다른 가치 문제도 있지 않느냐 해서 그 세 영역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두번째 문제입니다. 언어 지식 영역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 많이 있는데 왜 문법 영역이 중요한가 하면 가장 많이 가르치는 부분이 문법이고 언어 기능 영역의 관계에서 보더라도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문법이고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세번째 문제로 왜 텍스트를 다루지 않고 문장으로 한정을 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세 영역을 인정한다면 담화, 텍스트 쪽의 연구 결과들은 어디서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세 영역을 인정한다면 언어 영역에서보다는 기능 영역으로 넘기려고 합니다.
고영근: 아침부터 발표문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도 국어교육이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바로 섰구나 해서 뿌듯합니다. 1980년대 초에 통일 문법을 저술할 때 국어교육에 대한 참고문헌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우리 문법 교육도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지금까지의 언어 구조 중심의 문법 교과서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문법 교과서가 기능을 전혀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연습 문제 같은데서 실생활에 사용될 수 있는 문제가 많이 나왔었습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문제입니다. 언어 기능을 중시하는 요즈음 심의되고 있는 문법 교과서는 언어 구조적인 측면이 너무 결여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조가 결여되어 있으면 기능적인 측면을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까 권재일 교수가 국어학적 관점이라고 했는데 어학적 관점이라는 말이 더 나을 듯합니다. 국어학적 관점이라는 말은 너무 전문적인 느낌을 줍니다. 어학적 관점이라는 말이 통속적인 느낌을 주어 더 낫습니다. 문법 교육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급 정교사들이 하는 말이 학생들이 도대체 문법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수학능력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토론을 보니까 언어구조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기능면을 신장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앞으로 교육부에 진정서를 내서라도 시험을 추진하도록 합시다. 재작년에 박갑수 선생님과 북경에서 남북한 어학자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북한은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문법 교육을 쭉 시킨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요즈음의 자료를 보지는 못했지만 해방 후의 1948년 교재를 보니까 국민학교 1학년부터 글자부터 시작해서 문법 교육을 시킵니다. 물론 언어에 대한 태도가 우리와 다릅니다. 그 사람들은 언어가 인간과 사회, 자연을 개조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혁명과 건설에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고요. 김동찬씨가 쓴 논문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언어는 규범이다.’ 규범이라는 말은 부단히 다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태도를 반드시 본받을 필요가 없지만 참고를 하면 여러 가지로 국어교육에 기여하는 바가 많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노명완 교수가 말씀한 토론문의 30페이지를 보면 ‘언어학이 텍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언어 영역에서도 문장보다는 텍스트를 중시하자, 이 방면에 연구가 부족하지만 지금은 방향을 잡을 시기이며, 언어 영역과 언어 기능 영역, 문학 영역까지 하나로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영역 구분을 시도하자’는 말이 나왔는데 상당히 중요한 말을 제안하셨습니다. 나는 4,5년전부터 텍스트 언어학회를 발족하여 텍스트 언어학회지 2집까지 냈는데요. 독일에서는 1970년대부터 텍스트 언어학 연구의 붐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해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어교육과 외국어로서의 독일어교육에 많은 활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쨌든 간에 앞으로 텍스트 언어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언어교육 특히 문법 교육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명완 교수가 텍스트를 도입하면 언어 지식, 언어 기능, 문학 모두 통합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사실 언어기능 측면이 텍스트 분석과 연관됩니다. 기능 측면에 텍스트 분석의 결과를 잘 연결시키면 언어지식과 문학 영역을 통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나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텍스트 이론이라는 책을 쓰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못 쓰고 있습니다. 그 때 논제 구상에서 텍스트 분석과 그 이론은 언어와 문학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언어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할 수 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의 과제이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오래 전에 제안을 했던 얘기입니다. 1966년까지는 중학교의 독자적인 문법 교과서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7년 이후 고등학교에만 남고 없어졌는데 중학교에서도 문법 교과서가 따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갑수: 아까 다 말할 말은 다 했기 때문에 별로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제 생각은 아까 말한 합의점에 거의 동의함은 변함이 없습니다. 또 언어의 기능 교육이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심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최영환 선생 같은 분은 구체적으로 언어지식 영역을 따로 독립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언어 생활을 할 수 있게 언어 지식 영역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평가가 뒤따라야 제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각급 학교에서 평가가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수학능력시험이라든가 대학 본고사에 반영이 되어야 그 교육이 정상 궤도에 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반 언어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인들도 발음같은 것도 엉망인데 어느 정도냐 하면 어떻게 말을 해야 올바른지 모를 정도입니다. 이런 것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평가에 반영이 된다면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재미가 없더라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또하나, 언어의 기능 교육에서 다루지 못할 언어 지식 체계는 단계별로 고등학교쪽에서 체계적으로 말을 바꾸면 나선형으로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래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고영근: 보충을 하나 더 하죠. 아까 내가 말한 독자적인 중학교 문법 교과서는 통사론 중심이었으면 한다. 그 이전의 문법 교과서와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능적인 측면을 도입할 수도 있겠죠.
김대행: 2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오늘의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언어지식’이라는 말과 ‘문법’이라는 말, 이 두 가지 용어가 계속 혼용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고등학교 문법교과서의 명칭을 ‘문법’이라고 계속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인지? 지금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언어영역’으로 분류가 되어 있는데 그게 정당한 것일까요? 언어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타당하다고 사회자께서 전제를 하셨는데 내가 보기엔 입장 차이가 큽니다. 언어 영역이 가치가 있으므로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과 언어 사용 능력-저는 사용이라는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바꾸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대체적으로 쓰고 계시니까 그냥 쓰겠습니다 -기반으로서 가르쳐야 한다고 보는 관점,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필요하다는 것에는 합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이 두 견해는 정말 다른 내용입니다.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 보셨습니까? 무슨 얘기인가 하면 중고등학생의 가방이 무거운 이유는 대학전공자들의 영역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고상하게 말하면 소비자 논리로 교육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는지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광해: 질문하신 2가지 문제가 언어 문제에 대한 현 상황, 자기 자신의 정확한 이름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법’이라고 하기도 했다가 ‘언어지식’이라고 하기도 했다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언어 지식 영역에 관련된 문제의 복잡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다른 말을 만들어 내야겠다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언어’,‘우리말’등의 말을 만들었다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금방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문법’에서 확대가 되는 좋은 이름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그 동안의 고민의 초점이고 우리가 연구 진행해 왔던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연구를 진행한 것이 크게 3가지일 것입니다. ‘왜’,‘무엇을 배우고’,‘어떻게 교수 학습할 것인가’가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다루는 부분에 가서는 완전한 의견 일치가 안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온 결과물을 보면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하고서는 -구체적으로 상세화되지 못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든지간에 결국에 가서는 내용 추출에서는 비슷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단지 기능 쪽에서는 접근하다 보니 누락되는 부분들, 기능 신장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들 이런 부분이 남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어서 두 개의 관점을 우리는 다 보았고 이런 부분이 어떻게 실제에 반영될 수 있는지 좀더 고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영근: 김선생님의 첫번째 답변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겠습니다. 4차 문법교과서는 국어학의 모든 분야를 다 포괄하므로 그런 의미로 ‘국어교본’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 문법 교과서는 품사론, 문장론, 형태론, 통사론 같은 것을 다룬 좁은 의미의 전통적인 문법이 아니라 어휘부, 문자, 구두점, 맞춤법까지 다 포괄하므로 ‘문법’이라는 말이 듣기도 좋고 가장 무난합니다. 그러나 교과과정 해설에서는 ‘언어영역’이라는 말을 해도 좋습니다. 외국에서도 그냥 ‘문법’이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우한용: 언어 지식영역을 체계화한다는 것은 내용요소들을 새롭게 위계질서를 마련해야한다는 그런 의미가 될 것입니다. 전체 구성에서 보면 권재일과 최영환 두 분의 발표가 내용과 관련이 있을텐데 두 분은 약간 관점을 달리해서 내용 추출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 추출에 머물러 있고 체계화가 별로 된 것 같지 않습니다. 체계화란 어떤 것에 염두를 두고 있는 것인지 답변해 주신다면 전체를 엮어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상익: 제가 질문겸 답변겸 소감겸 한 마디 하겠습니다. 큰 제목이 ‘언어 지식 영역의 체계화’이기 때문에 청중들의 관심은 권재일, 최영환 교수의 발표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의 발표문도 관련이 있지만 왜 가르쳐야 하느냐,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는 일단은 두번째 문제입니다. 우한용 교수와는 달리 나는 권 교수의 발표문에 완전히 이론을 제시했고 그 이론에 따른 체계화까지 보여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또 그 방법까지 제시되어 있습니다. 박영목 교수가 다섯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이론에 따른 근거를 안했는데 제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만 해결되면 체계화에 대한 오늘의 논의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권재일: 국어교육에 대해 잘 모르니 깊이 있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체계화를 한 이론적 근거에 대해 아직까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박영목 교수도 다섯 가지 문제를 설정했는데 문제점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박영목 교수께 체계화를 마무리하게 맡기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박영목:답을 듣기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세미나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는지 상기하게 됩니다. 얼마되지 않은 시간 내에 다만 국어교육 연구에서의 문제가 뭔지 오늘 여러 가지로 논의가 되었으니, 정교하게 연구를 추진하자는 생각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노명완: 상당히 원론적으로는 합의가 되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원론적으로는 동의가 되었다는 생각이 싹 가셔버릴 정도로 상당히 의견이 분분하고 이론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도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제가 제기한 질문, 문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 거시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측면, 그것도 아직 해결이 안 되었고요. 권재일 선생이 내용을 뽑아 놓은 것은 그것이 일관적 관점에서 해결될 수 있는지가 상당히 의심이 갑니다.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이 다 섞여 있거든요. 또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도 아직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 탐구학습의 방법이 나왔지만 그 외에 다른 방법도 많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법지식을 개념적 지식이라고 했을 때 브루너가 얘기한 탐구방법도 있지만 귀납적인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탐구는 가설을 먼저 세우고 검증하는 연역적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연구할 때는 귀납을 더 많이 쓰지 않습니까? 따라서 개념을 가르칠 때는 귀납적인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이 모임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보다는 문제 제기가 상당히 풍성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았으면 합니다.
김광해: 문제제기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건져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남은 문제점은 개선해야 한다는 선언 말고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데에 실질적인 노력을 투입해야 하겠습니다.
박갑수 : 윤희원 선생께서 오늘 발표를 보시고 어떤 소감을 가지셨는지 한 번 말씀해 주시지요.
윤희원: 어느 측면을 보고 얘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교육에 대한 문제를 따질 때는 어렵습니다. 교육의 목표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교과서를 만들 때도 국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부터 나오면 어렵습니다. 연구를 하는 시점에서 교육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전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제한점을 두고 하면 결실을 볼 수 있는 논의였다고 봅니다. 실제로 어떤 부분은 교육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의 폭이 있습니다. 권 선생님이 제시한 것들이 교육을 위한 이론의 한 체계가 국어학 내적인 체계와는 맞지 않을 수 있고, 가르치기 위한 담화의 구조를 밝히는 것과 국어의 본질적인 구조를 밝히기 위한 담화는 그 접근 방법과 결론을 달리합니다. 교육이라는 현실이 연구에 주는 한계와 연구이기 때문에 원론에 첨착해야 하고 이론적인 체계를 세워야 하는 측면, 그리고 즉각적인 현실이나 현상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연구에 제한을 준다고 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저는 일치해 버릴까 봐 겁이 납니다. 한편에서는 현실에 반영되고 한편에서는 원론을 곱씹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열심히 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광해: 학술발표회에 여러 번 참석해 봤지만 오늘처럼 열심히 진지하게 토론하시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던 것같습니다. 이상으로 종합 토론을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995. 2. - 제6차 교육과정 교과서 개발 추진 (고등 국어(하),
고등 문법, 교사용 지도서)
1995. 3. 31. 외국에서의 자국어 교육(3)-중국
연사 : 金秉延 (중국 상해국제무역대학교수)
1995. 5. 11. 외국에서의 자국어 교육(4)-프랑스
연사 : Yves Cadiou(프랑스 대사관 언어교육담당관)
1995. 6. 1. - 언어 지식 영역의 체계화 연구
1995. 6. 1. - 9. 30 논술 기초 연구
1995. 7. - 청소년 독서체계 연구 시범집필 추진
1995. 8. 18. 제1회 전국 중 고등학생 논술경시대회
1995. 9. 11. 연구소 이전
1995. 9. 30 논술경시대회 입상자 시상식 및 연구
1995. 10. 12. 외국에서의 자국어 교육(5)- 몽고
연사 : 신현덕 (세계일보 생활부 부장)
1995. 10. 19. 언어 지식 영역의 체계화 연구 학술 발표 대회
결과 보고대회
<번역총서(도서출판 하우)>
1. L'enseignement De La Litterature(문학의 교육)
T.Todorov/윤희원 역(근간)
2. Fundamental Concepts of Language Teaching(언어교수 의 기본개념)H.H.Stern/심영택,위호정,김봉순공역(정가15,000원)
3. Texual Power : Literary Theory and Teaching of English(텍스트의 위력) R. Scholes/김상욱 역(근간)
4. Literaturunterricht(문학교육) G.Wilkending/한기상 역
(기획 중)
5. Deutsch als Frendsprache:Einführung in das Studium( 외국어로서의 독일어 입문) T.Ickler/이광숙 역(근간)
6. Enseigner á communique en langue étrangere
(외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가르친다) S.Moirand/심봉섭 역
(기획 중)
7. Nouvelle introduction á la didactique du français
langue étrangere(외국어로서의 불어교수법으로의 새로운 입문) H.Boyer, M.Butzbach & M.Pendanx/장한업 역(근간)
<독서 총서>
1. 문학 분야 : 그리스 로마신화 (어린이용, 청소년용, 일반용 3권 시범 집필 중)
2. 교양 분야 : 삼국유사 (어린이용, 청소년용, 일반용 3권 시범 집 필 중)
<자료 총서>
제1차 교육과정-제5차 교육과정의 국어과 교과서 (자료 수집 중)
<교수-학습 총서>
기획중
논문집 편집위원
金恩典 李相翊 金大幸 王翰碩 尹希苑
국어교육연구 <제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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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일 : 1995년 11월 일
발행일 : 1995년 11월 일
발행인 : 국어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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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육연구 <제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