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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제1회 재해예방 글짓기공모전
입상작품집
“일 반 부”
최우수상
함께 날아 간 인형
대전외국어고등학교
교 사 장 권
"성철아, 이제 집에 가야지."
"안녕히 계세요."
어제와 다름없이 성철이는 짧은 외마디 인사로 나와의 하루를 마치고 있었다.
"그래, 성철아 길조심하고, 오늘은 꼭 밥 먹고 자렴.""네"
성철이는 가벼운 목인사를 하고는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선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니며 그를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움이 느껴졌다. 성철이는 올해 열다섯살 먹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서부터 엄마가 벌어온 푼돈으로 살아왔던 터라 그앤 다른 아이들보다 2년이란 세월을 되돌려야만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탓인지 그앤 늘 혼자였고 담임인 나와의 대화도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를 침묵 속에서 보내야 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그 아이에게 몇달 전 커다란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 있었다.
남편과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성철이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위해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허드렛일을 해 오고 있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일과는 어느새 '작은 요구르트 아줌마'란 닉네임이 생길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고, 밤늦게까지 삽겹살 집에서 고기를 뒤집는 일은 이제 그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을 넘어서 1칸짜리 그녀의 집을 온통 고기냄새로 둘러버렸다. 그래도 부모 잘못 만나서 폼나는 옷 한 벌 못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못한 성철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던 터라 자식에게만큼은 누구못지 않은 본능적 애정을 지니고 있던 그녀였다.
여느 때처럼 밤 12시가 넘어 집으로 오던 그녀는 식당일이 파할 쯤 술에 취한 한 중년 남자의 주사(酒邪)를 받느라 몇 잔 마신 술이 갑작스레 달아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늘 걸어오던 길도 어딘가 낯설음의 일색이었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몸짓도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횡단보도라고 생각한 그 길을 가로지르던 순간 주변은 갑작스런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한 놀라움의 목소리들로 가득찼다. 노오란 불빛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오직 하나 남은 아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그렇게 떠나버렸다.
그 후로 성철이는 어머니의 죽음과 바꾼 보상금으로 옆집 아주머니에게 맡겨져 생활하게 되었고 뜻하지 않은 생활의 변화는 그애를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성철이의 삶은 언제나 그렇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무채색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곤 하던 PC방도 이젠 그의 발걸음이 미치지 못했고, 엄마의 꾸지람을 들어가며 마지못해 다니던 학원도 이젠 더 이상 그에겐 의미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성철이에겐 음악시간 반주에 맞춰 힘껏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애에 대한 나의 이런 상념 때문이었는지 오늘 나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애의 모습이 더 무거워 보였고, 이 곳을 떠나서 그애가 갈 곳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좀 더 내 곁에 두지 못한 행동이 못내 후회스럽고 안타까웠다. 문득 그애가 며칠 전 나에게 선물이라고 준 인형이 떠올랐다. 가벼운 미소와 함께 열려진 서랍 안에는 노오란 병아리 인형으로 만들어진 열쇠고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인형을 들고는 한 동안 모양새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볍게 걸리는 인형의 감촉이 좋았다.
"......선..생님."
"응... 무슨 볼일 있니?"
평소 말이 없던 성철이의 작은 부름에 난 조금은 놀란 기색으로 그애에게 답했다. 혹시 성철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으로 그애의 다음 대답을 기다린 나에게 그애는,"....이거요."
"..그게 뭐니? 응. 인형이구나?"
"이거... 제가 선생님 드리려고 산 건데."
"그래? 아.. 이거 무지 고마운데? 그래 잘 쓸게."
".............."
아무런 대답없이 쑥 나가버린 그애를 보며, 그애가 날 가깝게 여기는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고 그애를 내 안에 두어야겠다는 일종의 연민과 모성애 비슷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애가 그렇게 인형을 놓고 간 이후로 그애는 다른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면 슬그머니 교실에 앉아서는 나의 행동을 살피곤 했다. 가끔씩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어색한 웃음과 긁적거리는 모습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난 그애의 그런 모습 속에 내가 잃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애의 변화에 나는 교사로서의 마음도 있었지만 그애가 혼자라는 사실과 내게서 좀더 따스함을 바라고 있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으로 늘 상냥하고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지 좀처럼 말이 없던 그 아이는 이제 제법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자기의 재주를 보여주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나에게 불쑥,"선생님이 우리 엄마같을 때가 있어요."하고는 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그애가 준 인형을 다시 그곳에 넣고는 서랍을 닫았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날씨는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따스함으로 파고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래도 내 주변은 따뜻해서 좋았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남편은 나에게 선물이라며 조그마한 전기난로와 전기방석을 내 교실에 갖다 놓았다. 아이들이 다 가고 난 오후가 되면 유난히 춥고 싸늘한 바닥, 그리고 차갑기만 한 의자에 손발을 떤다는 푸념섞인 내 넋두리가 신경쓰였는지 제법 쓸만한 것으로 골랐나 보다. 그 덕택에 난 그렇게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직원조회 시간에 교감선생님께서 전기난로나 방석을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몰라주는 교감선생님을 원망할 뿐 아무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새삼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역시 내 남편은 양반은 아닌가 보다. 빨리 나오라는 남편의 급한 소리에 난 서둘러 교실을 빠져 나갔다.
오랜만에 남편은 나에게 옛날의 추억이 생각났는지 근사한 양식요리로 저녁을 샀다. 샤워를 하고는 인터넷을 통해 내일 가르칠 자료를 찾고 있을 때 남편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 당신 학교에 불이 났다고 하네? 전화 받아봐!!"전화기를 받아든 나에게 교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최 선생, 지금 학교에 불이 났는데 최 선생 교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빨리 나오셔요. 빨리."
난 전화를 끊고는 당황하지 말라는 말을 연신 토해내는 남편을 뒤로 한 채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 근처에 다다랐을 때 이미 학교는 빨간 용트림를 거푸 내뿜으며 주변을 대낮같이 밝혀 놓고 있었다.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몇 번 흐른 후 소방관들의 재빠른 몸놀림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누군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 선생님, 성철이가 교실에 있어요. 성철이가."
"무슨 소리야."
"얼마 전부터 성철이가 집에 안 가고 교실에서 잠을 잤거든요.""선생님 자리에 전기방석과 전기난로를 켜 놓고 있으면 안 춥다고 하면서요.""뭐야? 오. 하나님."
난 마치 불꽃에 미쳐버린 사람처럼 방향없이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며"안에 사람이 있어요.. 우리 반 아이가 있어요."
라고 외치고는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난 서둘러 학교로 갔다. 최초의 발화 지점이 우리 반 이었다는 사실과 교실에서 발견된 아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에서 날 부른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생전 경찰서 한 번 가 보지 않은 나로선 앞으로의 일들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교무실에는 이미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나온 조사반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현장 확인을 위해 우리 반 교실로 갔다. 이미 새까맣게 타 버린 교실에는 그저 황량함만 맴돌았다. 조사반원들이 나에게 전해준 화재 원인은 대강 이러했다. 물론 그들의 추측이었겠지만 여느 때처럼 성철이는 나와 헤어진 후 갈 곳이 없어졌고 그래도 자기에게 따스한 공간으로 남아 있던 교실에서 내가 쓰던 전기난로와 전기방석을 덮고는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고 과열로 인해 교실은 온통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에 왔었던 한 소방관이 어린 아이 주변에 전기방석이 있었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는 말을 했을 때 난 순간 어느 곳도 또렷이 바라볼 수 없는 시야의 흔들림을 경험해야만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포근함을 주었던 그 공간... 나에게 수줍어하며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던 성철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애의 인형이 떠올랐다. 그애의 체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난 서랍을 열었다. 어렵게 열어낸 내 철제 서랍 안에는 까맣게 그을린 앙상한 형체들의 절규와 이미 진한 화학반응을 통해 사라진 검게 타 버린 고리가 쓸쓸하게 누워 있었고,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만이 자극적인 냄새와 함께 나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우수상
온몸으로 막은 태풍
경북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교감 신기완
'우르릉 꽝, 콰다당!'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에 잠을 깨니, 초저녁부터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 기승을 부려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듯이 세찬 물줄기가 땅을 친다. 창문을 깨부술 듯이 두드려 대는 비바람소리, 쉬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 비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나무들의 비명소리가 마음을 불안하게 하여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내리는 비는 처음이었다.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물을 퍼붓는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웬 비가 저리 내리지요?"
부시럭거리며 일어나 창 밖을 보고 있자 아내가 한마디 말을 건넨다.
"저렇게 많이 내리는 비는 처음인데 학교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우리 학교는 만 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대단위 주택단지내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비가 많이 내리면 형산강의 수위가 올라가 물이 미쳐 빠지지 못해 학교 앞 도로가 시내처럼 물이 흐른다. 학교 뒤편의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건물을 휘감고 도는 곳이라 물과 토사가 건물 주위에 몰려들어 침수위험이 있어 비가 많이 내리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우리 집은 아파트 2층이라 비가 많이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에 학교가 자꾸 신경이 쓰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학교에 가봐야겠는데"
"지금 이 밤중에 비를 맞고 학교에 간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학교에 물이 찰 것 같은데 가보는 게 날것 같아.""저렇게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간단 말이에요. 가로등도 켜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정전된 것 같은데 날이 밝으면 가면 안돼요""물이 더 차기 전에 가봐야지 멀지도 않은데 괜찮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당신은 더 자요"아내는 더 이야기는 안했지만 천둥번개 치는 한밤중에 집을 나서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전등과 비옷을 챙겨주면서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파트를 나서니 우산은 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비옷도 입으나마나였다. 지금은 차가 있지만 그 당시는 차가 없어 걸어서 다닐 때였다.
정전으로 가로등이 꺼진 길에는 쉴 틈 없이 번쩍이는 번개빛에 광란을 부리듯 요동치는 나무가 금방이라도 나에게 덮칠 듯 울부짖고, 머리 위에서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는 금방이라도 내 고막을 찢어 놓을 듯 하다.
학교까지 300여미터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아마 학교가 좀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아예 갈 생각을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였을 것이다.
이미 도로에는 개울처럼 물이 흘러 발목까지 차 오르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계속하여 비가 쏟아지면 아이들이 학교에 올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방학중이라 학생 걱정은 안 해서 다행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숙직하는 아저씨와 교장선생님, 행정실장이 이미 와있어 학교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연세가 많아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으셨는데도 그 맡으신 책임이 무거워 그 빗속을 뚫고 학교에 나오셨다. 그런 책임감이 있으셨기에 그 자리에 오르셨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을 것이다. 행정실장이야 한창 일할 젊은 나이지만 학교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먼저 실내를 둘러보았다. 교실은 방학중이라 창문을 잘 닫아두어 괜찮은데, 복도에 있는 창문 중 환기를 위하여 열어둔 여닫이 창문으로 들어온 비가 엄청 많아 복도에 물이 고인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 곳은 문을 닫고 걸레질을 하면 되는 곳이라 별문제가 없었는데 3층 옥상과 연결된 복도에서 도랑처럼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 가보니 물바다였다.
물 속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배수구를 찾아 가보니 배수구가 나뭇잎에 막혀 물이 빠지지를 못해 옥상 문을 통해 흘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옥상의 배수구 나뭇잎을 제거하니 물이 잘 빠져 더 이상 계단으로 물이 넘쳐흐르지는 않았다. 천둥 번개 치는 비바람 속에 옥상 다섯 군데를 돌아가며 그 많은 배수구의 낙엽을 치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장선생님도 온몸을 적시며 같이 치우셨다. 배수구가 한번 치운다고 계속 잘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지나면 다시 막혀 비가 오는 동안 수시로 배수구 나뭇잎을 제거해 주어야 했다.
날이 밝아지면서 실외를 둘러보려 나오니 학교 앞 도로는 작은 강처럼 온 도로가 물에 잠겨 학교 현관 앞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마 형산강에 물이 많이 흘러 역류가 되었든지 아니면 전혀 배수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차마져 다니기 힘들 것 같았다. 운동장이나 현관 앞에 물이 고였지만 가장 걱정되는 곳이 해양과학관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워주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 학생들에게 해양에 대한 동기유발과 아울러 진취적인 기상을 길러주기 위하여 지하 100여평의 넓이에 3억여원의 돈을 들여 만든, 초등학교로는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다. 거기에는 각종 전자장비로 갖추어진 코너가 26개나 있어 침수가 되면 해양과학관 자체를 운영할 수도 없고 수리하자면 수 억 원의 돈을 다시 투자하여야 할 정도로 피해가 크다.
해양과학관 뒷문이 산 쪽에 위치하고 있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면으로 맞닥치는 곳이라 침수가 가장 우려되는 곳이다. 실장은 해양과학관으로 들어가고 나는 숙직아저씨와 학교 뒤쪽으로 돌아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흙과 범벅이 되어 해양과학관 뒷문에 몰아치고 있었다. 이미 많은 물이 흘러 들어간 것 같지만 바닥에 물이 고였을 정도이지 전자장비에 아직 피해를 준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더 걱정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모르고 산에서 내려오는 비는 더욱 세차게 흘러내려 해양과학관 계단을 통해 계속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우리 힘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 남자 교직원에게 비상연락을 하였다. 방학이라 집에 없는 분도 많이 있었지만 그 빗속을 뚫고 10여명이 모였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운동장 씨름장에 있는 모래를 포대에 담아 리어카로 해양과학관 뒤편에 둑을 만들어 물줄기를 돌렸다. 물이 고여 있어 잘 퍼지지도 않아 애를 먹었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부는 양동이와 대야를 가지고 해양과학관에 들어와 있는 물을 퍼 올렸다. 그 작업은 비가 그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가 그치자 해양과학관의 물은 양수기를 돌려 제거하고 바닥의 물을 닦아내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새벽 세시가 조금 넘어 학교에 나왔으니 아침을 거른 채 옥상을 오르내리고, 해양과학관 지하의 물을 퍼 올리기 6시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오전 10시가 넘어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하자 우리들은 한숨을 돌리며 교무실에 모여 커피 한잔을 나누었다. 정전되었던 전기도 원상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보니 수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피를 하고 산사태로 인명피해까지 있었다. 상상외로 피해가 큰 태풍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포항시내도 상당한 피해를 입어 저지대 사람들은 대피를 하고 물에 휩쓸린 자동차들이 도로 여기 저기 걸려 있는 것이 보도되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도 거른 채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힘들게 일을 했어도 얼굴은 모두 밝았다. 아마 우리 힘으로 수해를 방지했다는 그 자체가 보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년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태풍 이름이 우리나라 태풍 중 사라호 다음으로 피해를 많이 주었다던 글래디스가 아닌가 한다.
그 글래디스 태풍을 우리는 온몸으로 막아냈다. 천둥 번개 치는 비바람 속에서 온몸을 적셔가며 배수로를 치우고 모래주머니로 둑을 만들고 물을 퍼내었다. 태풍이 무서워 집안에 웅크리고 있었다면 아마 학교는 태풍에 맞아 많은 상처를 냈을 것이다.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태풍과 온몸으로 맞섰던 그 해 여름은 평생 자랑스럽게 기억될 것이다.
장려상
불씨 이야기
전주기전여자중학교
교사 김형배
불놀이는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고 불장난 할 재료도 옆에 없었다. 봄이 되니까 사람들이 꽃구경하러 밖으로 나가고 난로도 틀지 않으니까 몸이 근질근질했다. 좁은 성냥갑 안에 들어앉아 있으려니 갑갑하고 따분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아저씨가 담배와 불놀이가 들어있는 성냥을 한 호주머니에 넣고 등산을 가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바깥바람도 쐬고 꽃이랑 초록빛으로 돋아나는 새싹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수증기 없는 공기는 맑고 건조해서 가슴을 부풀게 했다.
아저씨는 한참을 산에 오르시다가 친구들이랑 담배와 성냥을 꺼내셨다. 아저씨 한 분이 봄철에는 공기가 메말라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불놀이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겨울 이후에 놀 곳이 없어서 너무 심심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파지직'성냥불을 붙이는 순간 불놀이는 온몸에 힘이 용솟음쳤다. 담배잎을 붉게 태워가며 연기를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몇몇 친구들은 연기를 타고 날아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실패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것 같더니 담배꽁초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떨어진 낙엽 위에서 친구들이 불씨를 만들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바삭바삭 지난 가을부터 마르기 시작한 낙엽은 '사르르'불씨가 번져갔다. 친구들은 금새 낙엽 한 장을 태우고 옆 낙엽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불놀이도 뒤질세라 낙엽 위에서 구르고 뛰며 놀다가 옆에 있는 키 작은 나무로 살짝 올라갔다. 불놀이와 친구들은 마른 나무 가지와 낙엽 사이로 뛰어 다니며 불씨를 옮기기 시작했다.
불놀이는 신이 났지만 토끼와 다람쥐들은 뜨거운 불길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놀라서 도망다니기 바빴다. 참새들도 깜짝 놀라 부산하게 날아올랐지만 연기가 자욱하고 너무 매워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불길에 갇힌 다람쥐 한 마리가 뜨거운 불길에 갇혀 타 죽고 말았다. 불놀이는 보통때는 얌전하다가도 한 번 불씨를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 악마가 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키 큰 나무에 올라가 놀던 불놀이는 갑자기 '휘잉'불어오는 돌풍에 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하늘에서 본 아래쪽 산은 붉은 불길과 회색빛 연기로 자욱했다. 불길이 집 근처로 내려오자 아랫마을 몇몇 사람들은 살림도구를 꺼내서 피하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바람에 날아가던 몇몇 친구들은 낙엽재를 타고 아래쪽 산으로 내려가서 불씨를 다시 피우기도 했다.
나는 어디 놀 곳이 없을까? 하며 아랫쪽을 보니까 학교 하나가 보였다. 운동장에서는 중학생들이 나와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불놀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이랑 학교 뒷마당 쓰레기 소각장으로 내려왔다. 소각장에는 아이들 노트랑 낙서해서 구긴 휴지조각, 컵라면, 과자봉지 등이 한꺼번에 뒤섞여 타고 있었다. 거기에는 먼저 온 불씨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학교 구경을 해보자고 했다. 불놀이와 친구들은 옆에 있는 낡은 스위치 전선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불어오던 바람을 타고 점프한 불씨들은 가볍게 전선안에 있는 전기불씨 친구들과 만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기불씨 친구들은 이 학교가 놀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오래된 학교라 나무로 된 곳이 많고 전기선도 많이 낡아서 불씨를 일으키기 좋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교 직원들이 게을러서 소화기는 10년이 넘게 사용하지 않아 입구가 막혀 불이 나도 불을 끄는 분말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오는 소화전 호스는 꼭지가 녹이 슬어 움직이지 않아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에는 난로에 불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학생들이 석유를 넣다가 석유가 넘치는 바람에 불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작은 불씨여서 선생님이 달려와 옷으로 덮어서 불을 끄기는 했지만 석유를 넣던 학생이 화상을 입어 손을 데었다고 한다. 3도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1주일간 입원을 하고 약을 바르고 실리콘 막으로 치료는 하고 있지만 올 여름에는 긴팔옷을 입고 지내야 흉터도 덜 남고 상처 색깔도 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었어도 교실의 화재경보기를 점검하지도 않고 소화기도 시험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겨울에는 심술궂은 불씨 친구들이 장난을 하려고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난로를 켜놓고 어학실에 간 사이에 난로 옆에 있는 아이의 책가방이며 옷이 너무 가까워 불씨가 옮겨져 까맣게 태우거나 노랗게 눌은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고, 난로 옆에 버려둔 종이에 옮겨 붙어 태우기도 했단다.
불놀이와 친구들은 전선을 타고 학교 곳곳을 돌아보았다. 처음 며칠은 수업도 보고 아이들 노는 모습도 보며 재미있었지만 차츰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놀기 좋은 장소를 찾아냈다. 과학실과 간이 칸막이로 만든 컴퓨터실에 40여대의 컴퓨터가 켜 있었고 인터넷으로 세계 곳곳으로 돌아다니는 전기불씨들이 세상 이야기도 전해주고 아이들 게임 공간에서 신나게 놀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돌아간 뒤 어둠이 내릴 무렵 불놀이는 한 대의 컴퓨터가 모니터만 끄고 컴퓨터가 켜져 깜박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불놀이는 컴퓨터에서 놀고 싶어서 열심히 컴퓨터 모니터 스위치를 눌러댔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불씨 친구들이랑 전기불씨 친구들을 모조리 불러와서 모니터 스위치를 누르려고 등에 등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래 낡은 콘센트에 몰려있던 불씨들이 너무 힘을 주다가 불길을 일으키고 말았다. '파시 파시 치직'전기 불똥은 전선에 불을 일으키고 옆에 있던 복사기 종이에 옮겨 붙고 말았다. 순식간에 모니터와 책상에 불이 옮겨 붙고 불씨들은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는 과학실로 옮겨 붙으면 알코올이며 시험용 용액들이 많아서 학교 전체로 불이 옮겨 붙기는 시간 문제였다. 그때 마침 농구부 훈련을 마치고 강당에서 돌아오던 농구부 코치선생님이 불길을 발견하고 핸드폰으로 소방서에 연락을 했다. 과학실로 옮겨 붙을 것을 걱정한 코치선생님은 돌로 창문을 깨고 과학실로 들어가 벽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하셨다. 입을 수건으로 막으며 연기를 피해가며 일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학교 근처에 있던 소방서에서 소방차가 금새 달려와서 망정이지 농구코치선생님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큰일 날 뻔 하였다.
그 후로 소화기들을 새로 들여놓고 전선도 새것으로 교체해서 불놀이는 심심하게 봄을 보내고 초여름이 되었다. 체육시간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때 이른 선풍기를 틀기 시작했다. 뱅글뱅글 돌아가며 아이들의 땀을 식혀주던 선풍기 스위치를 끌 생각도 하지 않고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돌아갔다. 뱅그르르 뱅그르르 쉬지 않고 돌던 선풍기 모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불놀이와 불씨 친구들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몸을 부딪히며 열과 불씨를 튀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풍기 모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금새 불씨는 선풍기 덮개에 옮겨 붙고 천정에 옮겨 붙었다. 불똥은 학생들 책상으로 떨어지고 커텐으로 옮겨 붙고 온 교실이 불길과 연기로 자욱해졌다. 화재감지기와 살수기가 천정에 있었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불길이 옆에 있는 행정실과 교장실로 옮겨 붙고 나서야 소방차가 출동했다. 하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과 함께 불씨들은 더 맹렬하게 타올랐다. 교실 8개를 태우고야 불길은 잡혔다. 물을 흠뻑 뒤집어쓴 불놀이와 불씨들은 지쳐서 가뿐 숨을 내쉬었지만 다음에 또 불씨를 피우며 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학교를 새로 짓고 화재경보기도 새로 설치했다. 문도 방화문으로 달고 벽도 방화벽으로 설치했다. 소화기 사용법도 한 달에 한 번씩 선생님과 학생들이 연습했다. 불놀이는 심심해졌지만 오늘도 장난기 어린 눈으로 불장난 할 곳을 찾아 학교 안을 두리번거리며 다니고 있다.
장려상
준비하는 사람,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제주도교육청 시설과
김양윤
'해태'는 중국 요임금때 태어났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로 "불을 막아주고 이긴다"라는 방화신수의 상징을 갖고 있다. 경복궁 광화문앞에 해태상을 세운것도 잇따른 궁궐화재의 원인으로 세워졌다고 하며, 학교교정에 자리잡고 있는 해태상들도 이러한 의미에서 화재와 재마를 방지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화재로 인한 그 피해와 사례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나 이 모두가 막을 수 있는 재앙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음에 화재에 대한 보편적인 예방을 살펴본다.
'화재' 말 그대로 불의 재앙이며, 불로 인한 재난이다. 여기에서는 광범위한 화재의 유형들 중에서 학교시설과 관련하여 화재에 따른 그 예방과 경계 등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한다.
오늘날 학교시설 또한 인구의 도시집중과 건축물들의 고층화 및 심층화, 유류ㆍ가스ㆍ전기 등 에너지 사용량의 증가로 화재의 발생요소는 점점 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화재는 다른 천연적이며 초자연적인 재앙과 달리 완벽예방을 구현할 수 있으며, 생각하고 교육하기에 따라 원초적으로 그 재난을 막을 수 있고 예방할 수 있기에 여기서 화재예방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교육ㆍ홍보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불행을 막을 수 있으므로 스스로 실천하는 자세와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여 따라하게 하는 모범이 필요하며 이는 한사람, 한사람의 안전의식이 우리모두에 대한 안전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시내권의 학교건물은 이미 고층화, 획일화되어 있으며 다창형인 상태이므로 화재발생시 화열에 의하여 유리가 파손되고, 연소시에 공기 유입이 빨라지며 단시간내에 최성기에 도달하여 그 피해와 손실은 다른 유형의 화재피해보다 클 수밖에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연기 충만량이 많고 계단 등이 연기 통로가 되기 때문에 질식으로 인한 인명피해의 위험성도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학교 재해 중 화재 또한 원인이 없는 결과가 존재할 수 없음에 본문에서는 화재의 원인이 될만한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극히 보편적인 예비책을 소개하여 교직원 및 학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Ⅰ. 전기 화재예방 요령으로써
1. 가전제품은 반드시 "KS" 또는 "전"자 표시가 있는 것을 사용하며
2. 전기기구는 사용전에 사용설명서 및 취급요령을 숙지하며
3. 하나의 선에서 여러 선을 끌어 쓰거나 한 개의 콘센트나 소켓에서 여러 개의 전기기구를 꽂아 사용하지 않으며
4.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을때는 스위치를 끄고 플러그를 뽑아둔다.
5. 용량에 맞는 규격휴즈를 사용하고 철선 등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며
6. 텔레비전 위에는 물이든 주전자, 물컵, 화분, 꽃병 또는 금속핀 등 을 올려놓지 않도록 하고 수시로 먼지를 제거한다.
Ⅱ. 가스 화재예방 요령으로써
1. 가스용기는 통풍이 잘되고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 두며
2.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가스가 새는지 확인 후 점화하며
3. 주배관은 금속관으로 설치하고 연소기구에 연결하는 비닐호스는 연 소기로부터 3m 이내로 짧게 한다.
4. 연소기에 가까운 배관에는 반드시 중간밸브 또는 콕크를 설치한다.
5. 가스 사용기구 부근에는 가스의 누설을 알려주는 가스누설 경보기를 설치하거나 가스배관에 가스누설 자동차단기를 설치하여야 한다.
6. 비눗물이나 점검액으로 배관, 호스 등의 연결 부분을 수시로 점검하 여 누설여부를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Ⅲ. 석유난로(유류) 화재예방 요령으로써
1. 석유난로 등은 불씨를 완전히 끈 후 기름을 넣도록 하며
2. 단시간이라 할지라도 난로 등을 켜놓은 채 자리를 비우는 일이 없도록 하며
3. 난로 주위에는 항시 소화기나 모래 등을 준비하며 유류화재시에는 반드시 모래로 소화하도록 한다.
4. 특히 석유난로 등 열기구 부근에는 커튼, 화학제품 등 불에 타기 쉬 운 물건을 두지 말고 더더욱 인화성 물질을 취급하여서는 안된다.
Ⅳ. 기타 화재예방 요령으로써
1.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장소에서의 흡연은 불씨를 안고 화약고에 들 어 가는 자살행위임을 인식하여야 하며 담배를 피운 후에는 반드시 재떨이에 꺼서 버리도록 해야 한다.
2. 학교 교수ㆍ학습 활동 중이나 또는 방학기간동안 실시되는 과학탐 구 및 실험실습 등에서 화학반응 등에 의한 화재의 요소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 및 사용후 정리정돈에 유의해야 한다.
3. 특히 외출시 또는 자리이석시 모든 화기의 안전을 점검하고 학생들에게 불조심에 대한 주의를 교육하고
4. 불장난하기 쉬운 도구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비치하며 정기적인 점검과 예방교육에 힘써야 한다.
이상과 같이 보편적이면서도 누누이 강조되어온 화재예방책을 소개하였는데 알고 있으면서도 방심하고 무관심한 상황들속에서 화재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유비무환이라 했던가. 준비하는 자에게는 우환이 있을 수 없으며 그 준비란 관심과 반복되는 생활습관 속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일련의 사태들을 뒤돌아 볼 때 우리의 무관심과 방심속에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 등을 생각해 보면 결론은 인재에서 비롯된 참사였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할 것이다.
어른들의 무책임과 물질만능이 불러온 씨랜드 화재참사에 의한 숭고한 어린이들의 목숨을 담보로한 재앙앞에 허탈감이 그러하였으며, 소방관들의 의로운 죽음앞에서 순간의 방심과 실수의 대가로 지불하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를 남겨놓은 홍제동 화재참사 역시 그렇다.
또한 국가를 상대로 3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소장에서, 화재예방과 불법건축물 단속 등의 의무를 소홀히 한 점 또한 대형화재 참사의 큰 책임으로 볼 수 밖에 없다라는 취지를 내세워, 이를 관리ㆍ감독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예방과 지도의 책임을 다하라는 여종업원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군산윤락가 화재 등 다시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들 속에 모두들 한결같이 인재에 의한 징벌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학교는 각종재해 특히 화재로 인한 피해에 있어 결코 안전한 장소가 아니며 자유로운 곳도 아니다. 피해 발생시 더 큰 재난과 인명이 담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방이 최선책이며 지속적인 교육과 재해예방의 습관화를 통한 안전활동만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준비하는 사람은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그저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외출시 전기용품 코드빼기, 가스중간밸브 잠금 확인, 쓰레기통 확인, 소화기ㆍ소화전ㆍ비상구의 위치와 상태 확인 점검하는 일 등을 습관화 하는 것이 평범하면서도 재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다.
가 작
작은 관심과 실천으로
온양천도초등학교
교사 지화연
"선생님, 전화 받으세유"
새벽녘 주인집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채 떠지지 않은 눈보다 더 빠르게 전화를 받고 보니 빨리 학교로 나오라는 낯익은 교무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초임 발령 첫해, 이유를 물을 사이도 없이 전화는 끊어졌고 30분 정도 되는 학교를 숨가쁘게 달려가 보니 운동장 주변에는 학부모들이 모여 술렁대고 있었고 까맣게 변한 학교는 채 타지 않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다.
"아유! 어떻게 해유 선생님!"
얼굴 가득 근심을 담고 묻는 학부형을 뒤로 한 채 까맣게 변한 현관을 거쳐 교무실로 들어가니 어느 한 구석 가릴 것도 없이 새까만 그을음이 뒤덮혀 있었고, 깨진 유리 조각, 타다만 책상.......
언제들 오셨는지 선생님들은 모두 어찌 할 줄 몰라하며 사태 수습에 여념이 없었다. 그 날 영문을 모르고 등교한 아이들과 어떻게 무엇을 가르치며 하교를 시켰는지.......
나중에 알려진 화재의 원인은 방송실 주변의 전기 과열로 판명되었다. 한 개의 콘센트에 여러 개의 전원을 꽂아 놓았던 것이 주원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당시만 해도 학교 아저씨와 선생님들이 숙직을 하던 터였다. 다행히 숙직하시던 선생님이 불길에 뛰어 들어 생활 기록부가 든 서고를 옮겨 놓으셨고 조금 그을은 생활기록부를 정리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행한 책임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었다.
16 년이 지난 회색빛 기억이지만 작은 부주의로 인해 생긴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가슴 깊이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만일 수업이 한창 진행 중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이론처럼 동요되지 않고 그렇게 차분하게 대피할 수 있었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들이 하교한 한밤중에 일어났기에 인명 피해 없이 수습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 날 이후 나에게는 아주 작은 습관이 생겼다.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동그라미를 쳤던 학교 안전 기록부에 세세한 내용을 기록함은 물론 다시 한번 살펴보고 위험 요소는 미리 살펴보는 작은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요즘 교실은 정보기기가 많아 콘센트 주변을 보면 여러 개의 전원들이 서로 얽혀있다. 그래서 퇴근 전에 교실을 한번 둘러보고 전원 코드를 빼 놓는 작은 습관 또한 그 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
문만 열면 교실 가득 빼곡한 아이들.
그들에게 화재뿐만 아니라 수해나 풍해, 설해 등이 TV속의 뉴스에서나 접하는 재해가 아니며 간단한 행동 요령과 대피 요령만으로도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음을 수시로 알려주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훈련을 한다면 위험한 순간에서도 그 위험은 배로 감소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재해는 예고 없이 오는 것이고 작은 관심과 실천만큼 좋은 예방이 어디 있을까?가정이든 학교든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예외 없이 사용되는 전기. 그로 인해 연일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크고 작은 화재 사건들.
누전에 의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누전 차단기를 설치하고 전기제품은 KS표시가 있는 규격품을 사용하며 문어발식 배선을 하지 말고, 정격 용량의 휴즈를 사용하며 전선이나 전기구의 절연물이 벗겨져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한 개의 콘센트에 여러 개의 전열 기구 사용을 금하는 등의 작은 실천이야말로 두 얼굴을 가진 전기로부터 그 고마움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교실을 두리번거려 본다.
진열대 위에 떨어진 작은 압정, 삐뚤게 걸려진 액자, 노출된 전선, 책상 옆의 튀어나온 나사못, 우두커니 놓여있는 소화기, 보일 듯 말 듯 떨어져 있는 유리 조각.......
'큰일 날 뻔했네.......'
혼자 되뇌이며 이것저것 살펴도 보고 만져도 본다.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슴 가득 떠올리며.......
가작
방심은 금물이다
광주광역시 운암중학교
교감 김옥중
화재 발생의 소지를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사소한 부주의로 재산상의 피해는 물론이요, 귀중한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
시내 S 초등학교 체조 선수 합숙소 화재 발생시 교육청 책임자로서 화재 보고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처참한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당시 시교육청 국장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린 선수가 누전으로 인한 화재 속에서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숨지자 땅을 치며 통곡하는 학부모의 모습하며, 재산상의 막대한 피해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국장님의 말을 듣고 내가 학교 관리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화재 예방부터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1999년 9월 1일자로 운암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하자 제일 먼저 화재 예방에 관심을 갖고 학교 시설의 곳곳을 방과 후면 차분히 살펴 보았다. 일일이 메모를 해 가며 소등을 하는 스위치 하나까지도 세심히 살펴보았다.
학교 건물이 18년이나 되어 부실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한 예로 교실 형광등 정전기를 한 번도 교체한 적이 없는 데다 너무 낡아 '윙윙' 소리가 나는가 하고 전원 콘센트가 망가져 누전의 위험을 안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 동안 메모한 것들을 토대로 행정실장님이나 교장 선생님과도 화재 예방 조치에 대해 상의해 보았다. 그 분들도 나의 생각과 마찬가지였지만 화재 예방을 위한 시설을 보수하거나 교체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뒤따라야만 했다. 하다못해 교육부 지정 에너지 절약 시범학교로 지정 받아 배정 받는 예산으로 교실마다의 정전기나 형광등이라도 시급히 교체하고자 했지만 시범학교 지정을 받지 못했다. 못내 실망이 컸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 했던가.
2000 년 9월 28일부터 2000년 11월 11일까지 34,860,100원을 광주광역시 동부교육청으로부터 지원 받아 ESCO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화재 예방과 안전을 위해 44실에 거쳐 전자식 안전기 교체, 형광등 소켓 교체, 형광등 기구(36WX2등용)추가 설치, 기존 등기구 회로 분리 및 스위치 설치, 삼파장 형광램프 교체, 로맨스전 노출 배선 및 전등을 설치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교사 동·서편의 화장실 전기 시설도 매우 낡아 전기 보수 공사를 2000년 11월부터 2001년 1월 27일까지 2,870,000원을 동부교육청으로부터 지원 받아 시공하였다.
따라서 화재 발생시 사용해야 할 교내 옥상 소화전 기존 펌프집이 FRP 재질로 되어 있어 겨울철만 되면 보온이 되지 않아 동파가 잦아 관리에 어려움이 많으므로 샌드위치 판넬(100T)을 사용하여 2000년 12월 3,000,000원을 들여 펌프집 공사를 완벽하게 시공하였다.
2002 년 1월에는 교내 곳곳에 비치된 소화전 37개를 재충약하여 만약의 화재에 대비하였으며, 전기 안전 관리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전기 설비 점검을 1개월마다 전기 설비 점검 기록표에 의하여 전기안전관리자가 학교를 직접 방문 실시하여 화재 예방에 최선을 다 하였다.
또한 방과 후 5시 30분이 되면 경비원으로 하여금 각 실마다의 전원 차단 여부를 확인하고 당직실과 외등을 제외하고는 층별 분전배전판을 완전 차단토록 하였다. 각 교실마다 갖춰져 있는 컴퓨터, TV, OHP, 선풍기 등 전기 기기의 전원이 켜져 있을 경우 과열로 인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방심하지 않고 화재에 대비해 온 결과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소한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로 미루어 볼 때 화재란 사전에 예방 조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가작
안전불감증
금부초등학교
교사 양미경
"선생님 큰일 났어요"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우리 반 아이가 들어왔다. 학교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곧이어 모든 선생님들께서 교무실에 모였다. 교장 선생님 손에는 다 타고남은 시커먼 무언가가 들려져 있었다. 누군가 학교 계단의 만들기 관찰대 위에 놓여진 작품에 불을 지른 것이다. '분명 우리학교 학생이 불을 질렀을텐데….'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분별없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문득 '99년도에 발생한 경기도 화성'씨랜드'수련원 화재 사건이 떠올랐다. 23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그 사건의 원인이 전기누전 때문이냐 모기향 때문이냐 논란이 많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큰 피해가 생긴 원인이 안전에 대한 불감증 때문이라고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통나무집처럼 외관을 장식한 이 건물은 콘테이너 박스로 지어져 있었다. 벽과 천장은 스티로폼 위에 합판을 댔으며 384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통로가 양쪽밖에 없었다. 화재가 발생한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객실의 천장에는 전기선이 드러나 있었음에도 관리자는 소화기나 전기 시설을 한번도 점검한 적이 없다고 털어 놓았다.
화재의 위험에 대해 한번만이라도 생각을 했다면, 그리고 안전 점검을 한번이라도 받았다면 그러한 건물에서 아이들이 수련회를 갖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이 화재로 소중한 아이들을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화재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 학교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매년 새로운 학교가 새워지기는 하지만 교실이 부족해 콘테이너 박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오래된 학교의 경우 화재가 났을 때 그 피해가 커질 위험이 있다.
문득 '만약 우리 학교에 화재가 일어난다면,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적절하게 대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화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기억되는 바가 없을뿐더러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적도 없었다. 만약의 일이 내 앞의 현실이 된다면 또 하나의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눈앞의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면 화재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아마도 예방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으로 화재에 대해 방관하고 있기에는 생명이 달린,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우리 주위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 보자.
첫째, 아이들에게 화재가 일어났을 경우 행동 요령과 대피 방법 등을 교육시켜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씨랜드 사건을 다시 소개하며 순간의 불씨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시꺼먼 종이로 만들어 놓은 듯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수련원,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에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얼굴에 아이들도 숙연해졌다. 그리고 학교재해복구공제회 홈페이지를 통해 화재가 일어났을 경우 행동요령과 대피 방법 등을 설명하였다. 설명이 끝난 후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 보는 시간에서 "불이 났을 때 대피하는 방법을 몰랐는데 이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아이의 말에 미리 교육시키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였지만 앞으로 아이들의 안전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둘째, 우리 모두 안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 한번"이라는 말처럼 우리 주위에 혹시 화재의 위험이 있는 물건은 없는지, 불씨가 남아있지 않은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99년도의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은 종업원들이 시너와 석유로 불장난중에 담뱃불을 붙이다 인화되어 일어났다는 것만 보아도 보통 우리 자신들이 화재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셋째, 화재에 대비해 소화기를 배치하고 안전 점검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매월 4일은 안전 점검의 날이다. 이날 만큼은 우리 주위에 화재의 위험은 없는지 점검하고 주변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화성 씨랜드 수련원에서 소화기나 전기 시설을 한번도 점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화재의 위험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나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지켜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 2의 씨랜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작
아무리 귀찮고 번거롭다고 해도
서귀포여자중학교
교사 김병성
"선생님, 걱정마세요. 저희들이 어린애예요? 다 알아서 할 수 있어요!"학생들과 학교 뒤뜰 야영을 할 때마다 주의사항을 일러주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특히 가사실에서 취사를 하기 전 가스 사용 요령을 이야기할 때면 아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는 투로 샐쭉해져 나를 쳐다본다.
"선생님, 이래봬도 집에선 제가 다해요!"
"그래, 그러면 한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보자!"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요리를 시작할 때 같이 있어 보면 위험천만한 일들이 많다. 기름이 튀는 안전사고는 물론이고, 대형화재사고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어떤 땐 중간 밸브를 열어놓은 상태에서 점화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몇 번 켜보다가 안 켜지면 그대로 자리를 뜨는 경우도 있고, 국물이 넘쳐 흘러 가스가 샌 적도 있었다. 가스를 사용할 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충분히 시키는 것이나, 사용 후에 가스레인지 콕과 중간밸브를 반드시 잠그는 지극히 기본적인 가스사용 요령도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다.
한번은 만들어진 음식을 아이들과 같이 먹고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음식을 먹다말고 냄새나는 쪽으로 가보니 가스레인지 밸브가 완전히 잠겨있지 않았다. 다른 한쪽에선 숭늉을 만든다고 가스레인지를 다시 점화하려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먼저 환기를 시키도록 해서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만약 그때 무심코 가스레인지를 점화했다면….'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 때 내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아이들은 진작부터 가스 냄새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으레 가스 기구를 사용하다보면 가스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학교 야영을 할 때마다 항상 불조심을 강조하며,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고 부주의로 인한 가스화재 사례를 들려줘도 학생들은 그런 재해를 자신과는 무관하게 받아들인다. '설마, 지금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칠까?'하는 게 아이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런 재해에 대한 무관심과 안전의식 부재는 교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겨울 내내 난로를 사용하면서, 완전히 소화를 하고 기름을 넣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행여 내가 소화를 시키고 기름을 넣을라 치면, 짜증을 내거나, 괜한 노파심으로 여긴다.
"아휴, 걱정도 팔자야!"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요,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요?"불이 붙은 상태에서 난로를 옮기거나 기름을 넣다가 화재가 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뉴스를 들어도 그런 일을 위험하다고 여기는 교사는 드물다. 어떤 땐 숫제 자신이 책임진다면서 불이 붙은 난로에 기름을 넣기도 한다. '봐라, 아무렇지도 않지 않은가?'하고 당당하다.
심지어 발로 툭툭 밀며 켜져 있는 난로를 옮기거나, 수업으로 아무도 없는 때에도 교무실엔 난로가 켜져 있는 경우도 있다.
'석유난로 이동시와 급유시에 불을 완전히 끄고, 기름이 넘치지 않게 주의합시다. 외출시에는 난로를 꼭 꺼야 합니다.'하는 주의사항들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단지 냄새가 난다, 다시 켜기 귀찮다는 단순한 이유들로 엄청난 재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안전 규칙들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를 가만히 둘러보면 전기 화재의 위험도 무시 못한다. 전산실이나 교무실 어디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어발 배선에, 바닥엔 의자바퀴에 닳은 전선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완전히 꼽지 않아 흔들리는 모습이나, 선을 잡아당겨 플러그를 뽑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주 꼽거나 뽑는 게 귀찮다고 아예 콘센트에 플러그를 고정시켜 버린 경우도 있다. 플러그 뽑는 것은 둘째치고 다음날 켜기 귀찮아서 모니터나 컴퓨터를 켜두고 가는 경우도 있다. 휴일 일이 있어 출근해 보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화장실 환풍기부터, 교무실과 교실마다 켜져 있는 모니터, 켜져 있는 전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구(舊)교사(校舍)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좀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있다가 선풍기를 켜 놓고 가버렸다. 선풍기는 밤새 돌다가 타기 시작했고, 녹아 내려 주변을 태웠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일찍 발견이 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위기는 면했지만, 큰 화재가 될 뻔한 일이었다. 퇴임을 며칠 앞둔 교장 선생님도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하더니…….'하며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매케한 연기로 자욱한 그 날 아침, 학교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교실 바닥이 시멘트가 아니라 수지나 나무로 된 바닥이었다면, 주변에 인화물질들이 많았다면, 다음날이 공휴일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며칠이 지나도록 매케한 냄새는 가시지 않았지만 그 날 이후, 노후하고 금방 헐 건물이라 무시됐던 안전에 대한 강조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 건물로 옮기고 관리자와 교사들이 바뀌면서 다시 안전에 무관심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 성수대교 참사, 대구 지하철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인천 시내 호프집 화재 등의 각종 재해는 이런 무관심과 안전의식 부재에 그 원인이 있었다.
문득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로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선수가 '안전한 곳'을 찾아 우리나라를 떠난다며 한 말이 생각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어요? 아니, 말을 하면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잖아요?"전 국가적인 안전불감증이 빚은 사고를 많이 봐왔고, 그때마다 재해예방을 강조하는데도 고쳐지지 않음은 왜 일까? 그것은 그러한 재해를 남의 일로만 여기고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안전수칙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에 있을 재해위험에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다.
군(軍)에서는 여러 가지 교육훈련을 할 때 가장 먼저 위험예지 교육을 실시한다. 즉, 교육 중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 상황을 미리 병사들로 하여금 예측하여 그것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미리 대비하게 하여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그 사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법을 먼저 숙지하도록 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지휘관이 조언을 해준다. 이런 위험예지 교육은 만일에 있을 사고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위기 대처능력을 키워주었다. 실제로 가을철 소이탄 사격 훈련시 마른 풀에 불이 붙는 화재사고를 예지하여 미리 물과 방화도구를 준비했는데 실제 불이 났지만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불을 끈 경우도 있었다. 학교현장에서도 모든 교육에 있어 먼저 이런 위험예지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고사례라 하여 교훈을 삼을 만한 사고는 원인과 개요, 예방법 등을 전달하여 그 원인에 주의를 다시 한번 기울이게 하는데, 이런 것도 학교현장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즉, 각종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해에 대해 관리자들에게 알려주고 관리자들은 교직원 회의 등을 통해 전 교사에게 알려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학교는 적어도 학생들에게 안전지대여야 한다. 학교 내에서만큼은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가정과 더불어 교사나 학생들에게 있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동생활의 장(場)이다. 학생들의 일상생활 중 3분의 1 이상은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교가 학생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과연 재해의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을까? 흔히 학교는 재해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의외로 꽤 많은 재해가 학교시설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가 어느 정도 윤택해지면서 학교에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많은 전자 제품과 전기 시설, 가스 시설 등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예기하지 못했던 각종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학교에서도 재해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데도 각종 재해에 대해선 무방비인 경우가 많다. 재해는 누구도 예측이나 장담을 못한다. 학교도 재해의 예외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 각자가 관심을 갖고 재해를 예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재해 없는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곳부터 시작하여 눈을 뜨고 학교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한다. 가사실, 급식실처럼 특별히 관심이 요구되는 곳은 여러 번 점검을 하고, 가스통 관리도 안전하게 되어 있는지 눈 여겨 볼만하다. 쉬는 시간에, 퇴근하면서 학교 한번 돌아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재해예방 시스템도 필요하다. 각종 재해라는 것이 사실 우리 모두 안전 의식을 갖고 대비하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일본의 재해예방 시스템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재해방지 대책을 만드는 것과 함께 재해에 대한 주기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위기대처훈련을 통해 화재시 행동요령이나 대피요령을 주기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학교 곳곳에 적절하게 소화기가 배치되어 있지만 사용법을 아는 학생은 드물다. 초동 진화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고를 막지 못해 큰 재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불이 났을 경우에 소화기 사용요령을 알지 못한다면 침착하게 불을 끌 생각은 하지 못하고 허둥거리게 될 것이고 이는 큰 재해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재해예방의식을 일상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체험 활동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화재의 경우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은 인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상 안전 수칙과 주의 사항을 지킬 수 있도록 글짓기, 그리기 행사에서부터 소방서 견학이나 화재 체험 그리고 주기적인 대피 훈련까지 실시할 필요가 있다.
재해는 의식의 전환만으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재해는 확인하지 않는데서 발생한다. 현대의 기계문명은 대단히 편리하다. 그러나 그만큼 점검을 게을리 하고 무관심하게 되면 상상하기 어려운 사고가 일어난다.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적당히 해도, 좀 과다하게 사용한다고 하는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재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구보다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의 교사, 학생들부터 이런 안전불감증, 안전의식의 부재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가작
재해예방 실천 사례 및 제안
권선고등학교
교감 박흥모
재해라는 말은 우리의 귀에 너무 익숙해 져 있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 순간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 재해입니다. 조금의 주의를 기울인다면 예방할 수 있는 것을 영원한 후회와 비참한 현실로 직면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면 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 시 주워 담을 수 가 없는 법입니다.
내가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실제 재해를 보고 또 한번은 재해를 직접 막아 본 경험에 비추어서 "조금의 관심으로 재해를 막는다" "사소한 부주의로 돌이킬 수 없는 재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학교의 체육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신축하여 3년 정도 지난 새 건물이었습니다. 원인은 전기 누전이라고 잠정 확정했지만 분명 관계자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수십 여 억을 한줌의 재로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재건축을 하는데 그날은 개인 용무가 있어 학교에 늦게 남아 있었습니다. 마루바닥에서 불빛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체육관 유리창에 건너편 교실의 불빛이 비추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분명 유리창 작업을 하지 않았던 상황이라 이상하게 여기고 학생들 몇 명과 가보았더니 불이 붙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과 각 교실에 있는 소화기를 총동원하여 불을 껐습니다. 무심코 지나 쳤다면 또 불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 한번은 시골이라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는데 어느 겨울날 내년도 책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박스와 쓰레기를 그냥 마구 소각 해 버렸습니다. 조금씩 넣어서 태웠으면 좋으련만 학생들이 갔다놓은 대로 불을 집혔던 것입니다. 소각 장 바로 옆에는 갈대들이 말라 있고 불꽃이 닿을락 말락 하는데 가슴이 조마조마 하여 그냥 퇴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서 1시간 여 정도 옆에서 지켜보며 주위의 갈대를 치우고 삽으로 흙을 던지기도 하며 겨우 수습을 하고 나니 양복과 신발은 물론이고 얼굴도 검정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 때 너무나 놀라 화가 나기도 하였지요. "나만 이렇게 고생하여야 하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재해를 예방하는 첫째는 우리들의 "설마병"을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설마 그럴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말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재해는 없어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혹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방지·예방 정신을 싹틔워서 재해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주인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봅니다. 이 정신은 재해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는 반드시 필요하며 절실히 요구되는 정신입니다.
"내 것이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한 번 더 살피고 아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내 아이, 내 조카라는 생각으로 지도하며 그들이 생활하는 주위환경을 살핀다면 위험들을 예방하고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찾고 관심을 갖고 생활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위험이 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 시간에 창문을 닦을 때는 담임이 항시 옆에서 지도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밖에 창문은 교사가 조심스레 빼서 교실 안에서 닦게 하고 담임이 직접 끼운다든지 하면 각종 위험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창문이 아래로 떨어져 학생이 심하게 다친 적도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실수로 창문을 손으로 깨트려 손을 많이 다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냥 깨어졌으면 많이 다치지 않았을 것을 손이 들어가서 쭈빗쭈빗 하게 깨진 유리창에서 무의식중으로 손을 빼다가 더 많이 다쳤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학교 창문도 자동차 유리처럼 안전유리로 바꾸든지 창문에 투명 비닐을 발라놓으면 그렇게 요란하게 깨어진다든지 심하게 다친다든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는 우리 학교 내에서도 안전 불감증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몇 일 전 우리 반 학생이 평행봉을 하다가 잘못 떨어져 팔을 다쳤는데, 평행봉 다리에 고무 보호막을 씌운다든지, 철봉 밑에다 고무 보호막을 깐다든지 하면 더욱 안전하게 우리학생들이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책상도 모서리 부분을 고무로 테두리를 둘러서 만들어 준다면 학생들이 머리를 찧는다든지 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재해는 항상 우리 주위를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재해라는 놈은 우리가 무심코 "괜찮을 것이다, 괜찮겠지…"하는 방심 요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라는 좋지 못한 결과를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이 정신력에 있다고 봅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교직원은 교직원대로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살피면서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직접 재해를 당해 본 나로서는 재해라는 말만 들어도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잠시의 방심으로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해 예방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나 같은 후회를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기로 했던 것입니다.
"경험 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고 했지만 정말로 이런 경험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학생들이여, 그리고 교사들이여! 우리들은 따지고 보면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항상 주위의 불안전을 안전하게 만들어 나 자신을 보호합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두 가지 생각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큰 아이는 짚신 장사를 하고 작은 아니는 나막신 장사를 하는 아이를 둔 할머니가 비오는 날이면 큰 아이 짚신 장사 안되겠다고 걱정하며 울고, 햇볕이 나면 작은 아이 나막신 장사 안되겠다고 걱정하며 울었다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플러스 생각으로 비가 오면 작은아들 나막신 장사가 잘되겠네 하고, 햇볕이 나면 큰아들 짚신 장사 잘되겠지 하며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재해 예방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즉, 재해예방하자고 하면 우리는 열악한 환경이라 예산이 많이 들어가야 하느니 등등 변명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렇게 재해 방지가 어렵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환경을 개선 창조하는 원동력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관심과 주의 속에서 재해는 예방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댐도 처음에는 조그만 쥐구멍이 원인이 되어 무너져 내리듯이 이 재해도 하찮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온 힘을 기울여 예방에 힘써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강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재해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모를 것입니다. 잘 기억합시다. 후회는 항상 뒤에 온다는 것을… 우리 다함께 재해 예방으로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 글을 끝맺습니다.
입 선
우리 모두 힘을 모아
계림고등학교
교사 최경림
아침부터 간간이 내리던 빗줄기가 이제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갈 무렵 후덥지근하던 무더위 이후인지라 빗줄기는 더위를 식혀줄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는 듯, 내심 마음마저 시원하다.
그런데 그칠 것만 같던 빗줄기는 차츰 그런 기색은 간 곳 없이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고 세차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며칠 전 뉴스에 조만간 태풍이 올라 올거라던 예보가 문득 떠오르며 불현 듯 이 비가 예사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늘 상 겪어오는 태풍이기에 아마 이 태풍도 그저 아무런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 주겠거니 희망하면서도 별반 걱정은 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우리나라는 년 중 8월 말경에서 9월 내지 10월까지 서 너 개의 태풍이 지나가면서 가끔씩 피해를 주기는 했으나, 사실 60년대 초의 사라호태풍 이후로는 그다지 큰 피해를 준 태풍은 없는 것으로 기억이 된다.
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비가 웬걸 하루 밤을 넘어서도 그칠 줄 모르더니 마치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듯이 엄청난 양의 빗물을 내리 쏟아 붓고 있는게 아닌가! 직감적으로 이번 비는 예사롭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나마 바람이 적은 것에 우선 위안을 갖기로 했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제12호 태풍 글래디스('91년 8월)는 남부지방에 특히 많은 피해를 줄 것 같다는 기상 캐스터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뒤로하면서 우산을 들고 앞 개천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벌서 칠평천을 흐르는 물의 양은 짙은 황토색을 토해내면서 용트림치는 모습으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고 이미 위험 수위를 넘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경북 지방의 조그만 읍내인 안강이라는 곳으로 드넓은 안강 들이 물로 넘쳐나고, 읍내 저지대에는 이미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파트 4층에 사는 덕분에 약간의 걱정은 들 수 있었지만 재해란 순간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혹여 딱실못의 재방이 터지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워 소방 본부로 전화해보니 아직은 염려 없다는 답변을 듣고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인근 경주지역은 보문 댐의 만수로 인해 일부지역 주민들은 이미 대피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학교에서 다급한 목소리를 토해내는 김선생님의 전화를 접하고 비상 연락망을 통해 같은 지역에 사는 정선생님께 연락을 취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향하였다. 방학중이라 다행히 학생들의 피해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도 물이 넘쳐나면서 시뻘건 황토물이 운동장을 휘저으며 급류를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에 몸을 움츠린다. 화재끝에는 재라도 남지만 홍수 뒤에는 그나마 건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생각을 일순간 해보면서 교무실로 급히 들어섰다.
교무실 안은 들어찬 많은 물로 인해서 온갖 서류들이 젖은 모습으로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캐비넷을 온통 열어 제치고 정신없이 서류들을 책상위로 옮기고 있는 김선생님의 모습이 그야말로 혼비백산한 모습이랄까! 이미 몇 분의 선생님들이 먼저 오셔서 정리에 힘쓰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을 밖으로 퍼내고, 서류를 분류하고, 책상을 옮기시고 각자의 역할을 미리 정하신 듯 모두 열심이었다.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김선생님과 함께 서류 분류작업을 도왔다. 많은 양의 서류들이 물에 젖어버렸기에 우선 젖은 것을 골라 따로 모아두고 다음 기회에 건조시키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는 생활기록부는 겨우 몇 권만이 물에 젖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서무실에는 물이 조금 덜 차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우리들은 다시 운동장으로 나갔다. 이렇게 많이 내리는 홍수에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까만 그래도 물이 더 이상 교무실과 교실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삽을 들고 배수로를 파는 작업에 들어갔다.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아무래도 피해는 적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에서였다 모든 선생님이 힘을 합쳐 빗속에서 흠뻑 젖어가며 열심히 재해 극복에 애쓰던 중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오셔서 격려 해주시고 우리는 또 다시 열심히 힘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듯 한바탕 커다란 홍역을 치르게 했던 글래디스 태풍은 사라호 태풍이래 최대의 피해를 우리 지방에 주었고, 그 이후의 소식으로 전국적으로 인명 피해가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이 90여 명이나 되었으며 2백억여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 지방에 많은 타격을 주어 27명이 사망, 실종되고, 2,152세대 8천여 명의 이재민을 냈다고 한다. 이 지방에 피해가 컷 던 것은 형산강이 범람한 탓이라고 하는데 아마 애초부터 형산강의 지형 형태상 재난은 이미 예견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천재가 아닌 인재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상흔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마치 전쟁을 치른후의 모습이 이렇듯 할까! 골목 골목마다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가 황토물로 뒤집어쓴 채 널려져 나와 있었고, 그것을 씻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나 처연하고 안타깝기만 하였다. 개울가에는 빨래를 하느라 모든 읍내 사람들이 다 나와서 정신없이 일을 하는 모습은 전쟁후의 재해 복구를 하는 듯한 풍경 그 자체였다. 다행이 아파트에 사는 탓으로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자신이 남들 보기에 미안할 따름이었다.
학교로 다시 달려갔다. 물에 젖은 많은 서류들은 잉크가 번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물론 원상 복구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긴 하였지만...
학생들은 교실 바닥을 쓸고, 벽과 유리창을 닦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혼신의 힘을 합쳐 복구에 힘쓴 결과 다시금 힘찬 햇살을 받으며 밝은 모습으로 등교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이제 그 날을 다시금 되새겨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 우리 인간은 얼마만큼 미미한 대항을 할 뿐이지만 그래도 미리 예견하고 예방에 힘쓴다면 자연도 그만큼 보답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나름으로의 소원을 빌어보며 또다시 그날의 악몽을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재해 예방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다짐해 본다.
입선
이제는 산교육의 스승이 되어
대구교대안동부설초등학교
교사 이경순
"어머니, 불조심하세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느닷없이 부엌으로 가더니 가스레인지 벨브를 잠그면서 말했습니다.
'개학 첫날부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평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아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 선생님 얼굴 보셨지요."
"그래, 선생님의 얼굴에 상처가 있는걸 보긴 했지만, 무슨 이유라도 있었니?""이유가 있고 말고요. 저희들도 선생님 얼굴을 보고 이상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무척 훌륭해 보여요. 그래서 이제는 선생님이 더욱 좋아졌어요. 불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몸소 깨닫게 해 주었거든요."아들은 무슨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는 듯이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 반에 있는 어떤 아니가 선생님 얼굴이 왜 그러냐고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안 그래도 내가 그 이야기를 해줄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되었구나. 하시면서 무려 세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여러분, 내가 이런 얼굴로 여러분 앞에 서서 공부를 가르치게 되어 무척 미안하게 생각해요. 처음엔 사표를 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모님들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이 자리에 서게 된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이렇게 된 사연을 듣고 선생님이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불이 우리 생활에 유용하기도하지만, 얼마나 무서운지 꼭 알고 실천해 주는 거예요. 그것만이 선생님이 여러분께 바라는 전부예요."하시면서 선생님께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꼭 1년 전, 토요일 어느날 이었습니다.
평상시에도 부지런하기 짝이 없던 선생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퇴근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댁은 산밑에 있었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에서 겨울동안 떨어졌던 낙엽들이 골목마다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낙엽들은 바람에 흩날리면서 집안으로 날아 들어오기도 하고, 차가 지나가면 차의 앞을 가로 막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낙엽을 언젠가는 쓸어 치워야지 하는 생각을 하시다가 마침 토요일 오후 퇴근하시면서 골목에 있는 낙엽들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답니다.
그 날따라 바람이 잠잠해서 그 낙엽들을 깨끗하게 태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낙엽을 태웠습니다. 순간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더니 타던 낙엽의 불똥이 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산불이 나게 되었답니다.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내 몸이 불에 타 죽어도 산불이 일어나서는 안 돼. 선생님은 앞뒤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들고 있던 빗자루로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저 일을 어쩌나 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면서 구경만 할 뿐 물한동이 갖다주지 않더랍니다.
잠시 후 이웃 사람들의 신고로 소방차가 도착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의식을 찾았을 때는 이미 온 몸에 화상을 입은 뒤였습니다.
두 달동안 햇빛도 못 보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상처에 가아제를 붙였다가 잡아 떼면 빨간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그래도 누렇게 끼인 기름같은 것을 빡빡 문질러 피가 나올 때까지 드레싱하는 것이 가장 아팠다고 하셨습니다. 매일 같이 하는 화상치료는 악몽같은 나날이었다고 합니다.
상처가 아물 때 쯤에는 마지막에 엉덩이 살을 빚어서 얼굴, 목, 손, 다리에 이식 수술을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화상을 치료하면서 아팠던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의 상처는 이식 수술한 상처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팔다리까지 걷으시고 지금은 아문 상처를 보여 주셨습니다. 무섭고 징그럽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얼굴의 상처는 그래도 가장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름이 되어도 짧은 팔을 입을 수 없습니다. 목과 팔이 긴 옷을 입어야 합니다. 불이 그렇게 무서운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방심할 때 생각지도 않는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아이들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동안 선생님 얼굴에 대하여 친구들과 이러쿵 저러쿵 얘기한 일이 무척 후회스럽다고 했습니다. 정말 정말 무서운 불! 그 불이 선생님 얼굴을 그렇게 만들었다면서 선생님은 자나 깨나 불조심을 해야 한다고 말만 계속했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산교육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선생님과 함께 근무했던 나는 선생님의 아픈 상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보다는 훨씬 더 많이 자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들이 직접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코끝이 시큰둥했습니다. 그 때는 정말이지 선생님께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셨고, 그 때 이후로는 사람 만나는 것조차도 꺼리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칭찬을 들을 만한 동네 골목 청소를 하시다가 일어난 일인데도 오히려 부끄러워만 하시는 선생님을 대하기가 무척 민망했었습니다. 항상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의 아픈 기억들을 잊고 아이들 앞에서 서서 떳떳하게 불조심 교육을 하셨다니......
언제나 말이 없으시고 몸소 실천하시는 선생님의 올바른 삶이 아이들에게는 그대로 산교육의 장이 된 것 같아 가슴 뿌듯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런 얼굴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까? 학부형들이 싫어하지는 않을까?'하시면서 두려워하시던 모습이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는 마음이 푹 놓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시려던 선생님의 모습이 이젠 아이들 앞에 당당하게 서 계시는 산교육의 스승이 되셨습니다.
선생님, 용기 내세요.
입선
관리자의 유비무환 정신
정읍남초등학교
교감 송태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죤 듀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학교에서 재해에 의한 학생들의 피해를 막는데는 무엇보다도 관리자가 학생 안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학교 관리를 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학교 재해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화재에 의한 재해 예방에 관하여 일선 학교 실정을 중심으로 관리자 입장에서 실천 방안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화재예방 특별 교육 과정 수립 운영.
교육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름답고 멋진 건축물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벽돌 한 장을 선택할 때도 크기, 재질, 무게, 색상까지 표시된 상세한 설계도면에 의해서 건물이 지어지는 것처럼 학교 교육은, 가정이나 사회 교육 보다는 훨씬 더 계획적이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는 교과, 재량활동, 특별활동 등 여러 가지 영역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학생의 안전과 관련된 영역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에 화재 사고로 인해서 화상을 입는다든지 생명을 잃게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본인은 말할것도 없지만 부모, 담임 등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아픈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의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먼저 재해예방 특별 교육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급담임을 하면서 경험했던 화재 사고를 한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조개탄을 가지고 난로를 피우던 시절이었는데 난로주변에서 장난치던 학생들에 의해서 난로의 상단 부분이 분리되어 넘어지면서 불이 붙어 새빨간 조개탄이 마루 바닥에 흩어져 불이 붙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교실은 학생들의 함성과 연기, 그리고 열기로 온통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정말 순간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으나 침착하게 학생들을 대피시킴과 동시에 재빨리 소화기를 가져와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여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사고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한다.
그 상황에서 만약 소화기를 바르게 사용할 수 없었다든지 소화기에 충약이 되어 있지 않았든지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화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평소 직원 연수시간에 소화기 사용법을 익혀 두었던 교육에 의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학교 생활에서 화재예방 교육은 참으로 중요하다.
화재 경보시스템 작동법, 인화물질 사용시 주의할점, 등산할 때 산불예방을 위하여 지켜야 할 일, 어린아이들의 119 허위신고에 의한 피해 현황, 소화기 사용법, 전기 콘센트 바른 사용법 등 화재예방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교육시간을 확보하여 재해 예방교육이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이루어 질 때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둘째, 체험 중심의 화재 예방교육 실천
학자들의 연구 논문 자료에 의하면, 기억의 지속력 정도는 책을 읽고 기억하는 것보다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서 얻게 되는 지식이 훨씬 더 오래 기억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 보다 나이가 어릴 때일수록 더 깊게 각인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초등학교나 유치원 교육에서 화재예방에 대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면 화재로 인한 재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화기 사용법을 지도할 때 담담교사가 지도할 수도 있겠으나 소방서에 협조를 의뢰해서 소방관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도록 하고, 운동장을 이용한 가상 화재 장소에 소화기를 이용한 화재 진압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교육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디오를 통한 화재장면과 진압장면 등을 보여 줌으로써 화재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하여 간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어린이회의 시간에 화재와 관련된 주제 토론을 시켜 자기 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 직·간접체험 활동에 의한 교육 즉 '백문이 불여일견'을 실증할 수 있는 화재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의 안전을 위한 각종 재해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는데, 특히 화재에 의한 재해는 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일상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서도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관리자의 재해예방을 위한 의지가 어떠한가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학교장을 비롯한 관리자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지고 학교에서의 화재로 인한 재해등의 예방에 관한 특별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체험 중심의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학교를 경영할 때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해로부터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입선
유비무환은 재해예방을 위한 디딤돌
행정초등학교
교사 김재원
『학교시설, 재해예방은 우리 모두가 조금씩』이라는 학교재해복구공제회의 책자를 보면서 재해예방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힘써 일궈놓은 재산과 교육시설을 보호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꼭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던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될 것이 없다는『유비무환』이라는 단어와 함께 아찔했던 옛날 기억이 머릿속에 다시금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내가 광천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어느 겨울철의 일이다. 지금은 각 학교마다 이동식 석유난로나 온풍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때는 조그만 갈탄이나 왕겨를 다져 나무처럼 만든 연료로 교실에 난로를 피웠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나는 출장을 갈 일이 있어서 수업만 마치고 청소당번 어린이에게 난로 청소를 잘 할 것을 부탁하고 서둘러 출장을 가게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옆 반 선생님에게 부탁할 걸 그랬나?"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교실 인터폰이 덜 보급된 때라서 미처 연락을 하지 못하고 출장업무를 마쳤다.
학교사택에 살고 있던 나는 집에 돌아와서 왠지 모르게 미심쩍은 마음에 우리 반 교실에 가보았는데 어두컴컴한 교실에 들어선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교실 구석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에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뛰어가 보니 아뿔싸! 청소당번 어린이가 난로 청소한 쓰레기를 소각장 옆의 탄재 버리는 곳에 버리지 않고 교실쓰레기통에 넣어놓고 간 것이었다. 제 딴에는 재에 물을 부어 충분히 껐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중에 불씨가 남아있어서 쓰레기 통 안의 휴지에 옮겨 붙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급히 난로 옆에 있던 양동이의 물로 불씨를 끄고 나서 뜨거운 열로 인해 반쯤 눌어버린 형편없는 쓰레기통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아찔한 마음에 가슴이 뜨끔해 지고 불씨를 가볍게 여기고 지도를 소홀히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 학교에서는 내가 가기 2년 전에 커피포트 콘센트를 뽑는 간단한 안전수칙을 소홀히 한 교사의 부주의로 전열기가 과열되어서 큰 불이 났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학적서류가 다 타고 3층 건물의 절반이상이 불에 타서 관리자와 해당교사가 문책을 당하고 정상수업에 많은 지장을 초래했음은 물론이고 학적서류를 다시 만드느라 무척 고생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난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여러 가지 잘못한 점이 떠올랐다.
우선 내가 잘못한 것은 청소 당번 어린이에게 화재의 위험성을 철저히 말해주지 않은 점과 옆 반 담당교사에게 청소점검을 부탁하지 않은 일이었고, 난로 점검표에 서명이 없는 걸로 보아 그 날 따라 일직교사가 난로소화 점검을 위해 교실 순회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렇게 안전수칙을 무시한 사소한 부주의의 결과로 예고없이 찾아온 화재는 고귀한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학교와 건물이 남김없이 송두리째 불태우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수해나 풍해, 설해같은 그 어떤 재해보다도 더 피해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재해보다도 무서운 화재로부터 이러한 학생 및 교직원의 안전을 지키고 교육시설을 보호하여 쾌적한 교육환경을 늘 유지하기 위해서 화재의 원인과 예방요령을 알고 다음과 같은 점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재, 학생들에게 평소 화재의 원인과 화재 발생시의 피해나 대응요령 소화기 사용법, 전기, 가스, 유류화재 같은 상황에 따른 대처요령 등을 철저히 지도하여 불조심을 생활화 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어른인 교직원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학생들이 라이터나 성냥 같은 인화물질을 가지고 다니지 않도록 지도하고, 아울러 119 허위신고나 불장난, 폭죽, 불꽃놀이를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교직원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흡연을 하고 담뱃불 확인을 잘하여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고, 커피포트나 전기난로, 전기방석 같은 전열기구 사용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로 모든 전열기구는 반드시 KS같은 규격품을 사용하며, 흔히 사용하는 전기의 경우는 전기배선 상태를 살펴 낡거나 꼬이지 않도록 주의하고 한 개의 플러그에 여러 개의 콘센트를 꽂지 말아야 하겠다.
그리고 석유나 알코올 같은 화공약품은 더욱 신경을 써서 사용하고 뒷처리를 잘하여야 하며, 특히 급식실 같은 곳에서 사용이 많이 되고 있는 가스의 경우는 폭발성이 커 피해가 매우 크므로 환기를 자주 시키고 수시 점검을 자주하여 가스가 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낡은 가스관은 즉시 교체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콕크와 밸브를 꼭 잠그도록 한다.
세 번째는 평소에 재해예방에 관심을 갖고 취약한 곳을 늘 살펴보며, 화재가 났을 때는 침착한 행동으로 비상벨을 눌러서 화재사실을 신속히 알리고 상황판단을 잘 하여 물이나 소화기, 소화전 같은 것으로 초기진압을 잘하여야 한다.
작년에 천안소방서로 소방교육을 갔을 때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중인 한낮에 화재가 났는데 교감선생님의 빠른 판단과 침착한 행동으로 안전하게 어린이들을 대피시켜 큰 사고를 막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재해에 당황하지 않고 안전조치를 취한 후 안전한 곳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것, 정기적인 민방위 훈련이나 방재교육을 실시하여 비상구나 옥상 같은 건물 밖으로의 대피요령을 평소에 잘 알고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로써 바로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화재예방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방재대책의 디딤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은 부주의로 생긴 이 일로 해서 나는 화재로 부터의 재해예방은 누가 보든 안보든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쾌적한 교육환경은 결코 지키기 힘들고 만들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학생과 교직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 즉 재해예방에 늘 신경써서 재해방지시설이 잘 정비되어 즐겁고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곳, 나아가 재해방지 체계가 잘 확립된 곳이다. 또한 우리는 학교시설에 관심을 가지고 늘 돌아보아 재해를 미리미리 방지하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너무나도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재해예방을 아는데 그치지 말고 마음놓고 생활하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묘안이 나오도록 재해예방과 시설보호의 지혜를 모아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교육발전을 위한 디딤돌이요, 학생과 교직원의 고귀한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는 자부심에 부합되게 우리들에게 피부로 다가서는 방재활동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나보다는 우리'라는 의식을 가지고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학교 재해 근절을 위한 계도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화재는 물론이고 풍수해, 설해와 같은 재해예방 규칙 미준수로 인한 안전 불감증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화재 발생 예고 없고 재해대책 내일 없다』
나는 이 표어를 보면서 재해 예방이야 말로 학교현장에서 다함께 수놓는 안전의 디딤돌로써 그 필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며, 불씨야말로 잘 쓰면 고마운 불이지만, 잘못 쓰면 무서운 불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학생과 교직원 모두 화마(火魔)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자세로 우리 모두 부주의와 소홀이라는 보이지 않는 내면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방재활동이 자연스레 외면으로부터 표출되어 재해예방이 정착화, 행동화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소홀히 하기 쉬운 재해방지를 위해 예방과 보호는 늘 함께 공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따라 8년 전 그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며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이 될 것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더욱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모두가 든든한 교육의 일꾼으로 거듭나는 그 날까지 늘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토닥이며 미리미리 스스로 실천하는 재해예방활동이야말로 나와 어린 학생, 다른 교직원의 고귀한 생명과 안전도 지키고 나아가 소중한 교육 시설을 보호하는 지름길이요, 재해예방을 위한 큰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입선
하찮은 방심이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사 최일순
"에이, 이 놈의 학교 불이래도 났으면 시원하겠어."
퇴근 무렵 40대 초반의 김선생이 까맣게 몰타르 칠한 목조 건물의 외벽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외벽은 세월과 비바람에 썩어 가고 있었고, 판자와 벽이 맞물리지 않고 떠있어 벌건 황토 흙이 드러나곤 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시골 해안 학교의 건물이었다. 그렇다고 쉽사리 환경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면 아이들이 양지바른 교실 벽에 나란히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다 열 받은 몰타르가 녹아내려 손바닥에, 등에 까맣게 묻어나곤 했다. 더러는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말이 씨가 되었음일까?'
일년 뒤 정말로 그 학교의 본동 교사는 깡그리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학교였지만,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간직할 그 어떤 물건 하나 남기지 못한 채...
낡은 건물 하나 불탄 게 아니었다. 지역 사회의 문화센터가 불탔고, 추억이 불탔으며 키우던 꿈들이 불탔다. 피곤할 때면 늘 창밖에 눈을 주며 눈맞춤 하던, 내 사랑하는 단풍나무가 불탔듯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정들었던 많은 것들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인근 마을에서 이 학교와 연루되지 않은 사라들이 어디 있으랴. 자신이, 자녀가, 손자가 우리 학교의 학생이었거나 현재 다니고 있다.
책가방 메고 와 잿더미로 변한 학교를 보고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울부짖었다. 우리 교실이 어디 갔느냐고, 금붕어가 어디 갔느냐고. 그 허망해 하던 아이들의 눈빛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정든 둥지를 잃고 의지 없어 파닥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건 엄청난 고통이었다. 놀라 달려온 학부형들 앞에서도 우리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었다.
엄동설한에 당장 배울 교실이 없어 산언덕에 포장을 치고 수업을 해야 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싸늘한 북풍은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공부는 차치하고 전신이 후들후들 떨려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
펄럭대던 포장이 찢기는가 하면, 아침이면 천막 교실마저 쓰러져 폐허가 된 임시 교사를 바라보자면 학생도 교사도 함께 울곤 했다. 유난히 바람이 심해 유리창문이 세트로 날아가던 곳이었다. 때 아니게 많은 겨울비가 내려 교실 바닥으로 흙탕물이 넘쳐난 날은 모두를 허둥거리게 했다. 6.25 때의 천막 교실이 이랬을까 싶었다.
그 와중에도 60년 보관이라던 학적 서류 한 장 남아 난 게 없었으니,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 교사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과 아픔 또한 적지 않았다. 밤 8시 9시를 넘기는 건 다반사였으니까.
게다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치르는 담임교사나 일·숙직교사, 교장, 교감선생님을 지켜보는건 가슴이 조여드는 통증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조사 나오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신문에 방송에 터지는 사건 내막은 무너진 가슴을 다시 한 번 무너트렸다.
이로 인해 승진에 치명타를 입은 교감 선생님, 감봉 처분을 받은 사건 연루 교사들. 그들은 또한 원치 않는 인사이동을 당해야 했다. 공익의 불행임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상처를 입힌 화재였다.
이 사건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만큼 하찮은 방심에서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만 지켰어도 비켜갈 수 있던 사고였다.
70 년대 후반 시골 인심은 참으로 좋았다. 농사가 끝난 가을철이면 이집 저 집에서 잔치를 벌였다. 추수 감사제에서부터 혼인집, 회갑집, 돌잔치, 시제 차례 등. 그 때마다 학교의 선생님들을 초대하곤 했다. 퇴근후 걸어서 혹은 하루에 세 번 다니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순례하는 재미는 참으로 좋았다. 으스름 달밤에, 바람 부는 초겨울에, 함박눈 내리는 겨울밤에 선배 교사들과 밤길을 걸어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 부르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끼리끼리 걸으며 교육의 애로점을, 객지생활의 애환을 토로하기도 했다.
얼큰히 취해 마음이 들뜬 데다 부드러운 밤공기는 사람과 사람과의 간격을 완전히 허물었다. 그런 분위기가 나는 참으로 좋았다.
총각과 처녀한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숙직을 시키고 일직을 시키는건 시집 장가가지 말라는 말이냐며 젊은 교사는 교감 선생님한테 투정을 부렸고, 교감 선생님은 애교 섞인 그들의 투정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다독여주곤 했다.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했던 토요일 오후의 초대가 엄청난 불행을 몰고 올 줄 어찌 상상이나 했었을까.
청소부 아저씨는 물론 숙직 교사까지 동행했다. 전화도 없었고, 상부의 감독이 심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지리멸렬 할만큼 변화 없는 나날들이었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라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화재는 교무실 바로 옆인 6학년 교실에서 발생했다. 난로 청소 당번이 끝마무리를 하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야, 남자들이 난로 재 파냈으니까 너희들이 재를 버려!""싫어, 선생님이 니덜 보고 청소하랬잖아."
재를 파낸 부삽으로 교실 바닥을 툭툭 치던 한 녀석의 말에 자기 주장이 강한 은숙이가 쏘아 부치며 교실을 났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한참이나 걸어가 실습지 근처에 재를 갖다버리는 것이 귀찮은 녀석은 난로재를 교실 뒤의 파란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었고, 문 잠갔느냐고 물은 담임선생님한테 아이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위여 가던 불씨가 쓰레기통 속의 휴지를 만나 서서히 기운을 얻었고, 아무도 없는 틈에 그 세력을 확장해 갔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교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본동 교사가 완전히 화염에 휩싸여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무섭게 치솟는 불길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모두가 망연자실 넋을 잃었다.
하찮은 방심이 부른 피해치고는 너무도 상처가 깊고 오래 갔다. 이 사건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돈독했던 정마저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에 연루된 담임이나 숙직 교사는 이곳에 초임 발령을 받은 사회 초년생 교사들이었다. 그들을 다독이고 사랑했던 윗분들도 일단 일이 발생하니, 자신들의 짐을 벗고자 안달하셨다.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사회생활의 비정함과 쓰디쓴 비애를 맛보게 한 사건이었다.
학교 건물이라는 게 한 두 달에 지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숱한 사람이 치루었던 눈물과 아픔을 어찌 다 필설로 말 할 수 있으랴.
새 건물이 지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무심코 내뱉었던 어느 선생님의 말대로 학교는 말끔히 지어졌다.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른 채.
지금도 안타까운 건 대부분의 사고들이 지켜야 할 단순한 규칙조차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발생한 예산의 산불 사고만 해도 그렇다. 무속인이 산소에서 부적을 태우다 날아간 불씨가 원인이었다 한다.
그 피해액만도 115억이라 한다. 오랜 세월 잘 가꾼 산림은 말 할 것도 없고, 여러 마을이 불탔고, 가축이 불탔으며, 농사 지을 볍씨마저 깡그리 불탔다. 무고한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모습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불타 죽은 천여마리의 돼지를 쓰레기차에 태울 때 눈물을 훔치던 선량한 농부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지킬 건 나부터 지켜 가는 사회가 나의 행복을 보장하고, 타인의 행복도 보장하는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