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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천의학 원문보기 글쓴이: 계지
장침 이용한 고침 · 쌍침 · 유침 · 투침 등 침 방법 다양│일제 이후 말살된 민족의 전통침법 명맥 이어와 척추 강직에 목에서 꼬리뼈까지 관통하는 장침하기도│축농증환자 '코침' 맞고 죽은피 쏟은 후 코 뚫려 고질병 환자에게 약방문 알려 주는 등 용약에도 달인│위암은 사군자탕에 와송 넣어 달여 먹으면 좋아 |
◈ 침술 종주국의 명맥이 끊기고 있는 현실
침구술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를 종주국으로 꼽고 있는 의술이다. 중국 최초의 의서인 <소문이법방의론(素門異法方宜論)>에 침의 원조격인 폄석이 동방에서 전해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황제내경(黃帝內經)>에도 뜸은 복방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고대에 우리 민족이 동북방에 퍼져 살고 있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민족으로부터 침구법이 유래되었음을 명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제로 우리나라 석기시대 유물에서 폄석이 나오고 있어 이를 뒷바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소중한 전통 의술 문화의 하나인 이 침구술은 일제 강점기 이후 근자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서양의학적 가치 기준 하에 비과학적이란 이름으로 철저히 폄하되고 홀대당하는 아픔을 겪어 왔다.
나아가 우리의 소중한 전통의학인 가전비방과 비술은 서양의학 일변도의 의료정책 속에 사회적으로 활용될 길이 봉쇄되고, 전통 비방과 비술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은 의료인 자격제도란 틀에 묶여 사회적으로 활동할 길이 차단되어 왔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수천 년 역사의 경험이 쌓인 우리 민족의 전통 침구법과, 그 명맥을 이어온 뛰어난 침구인들 또한 아무런 보존 대책 없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 결과 이제는 전통 침구법의 모습이나 전통 침구법을 구사하는 명의를 찾아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 서양의학의 한계 속에 세계 각국 침구술에 주목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그 동안 인류를 질병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던 서양의학이 암·고혈압·당뇨병·동맥경화·신경마비 등 오늘날 창궐하는 내분비계통의 질환에 치료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반면, 이들 질병에 대한 침구술 등 동양 의술의 효과는 속속 밝혀짐으로써 앞으로 동양 의술은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구제해줄 의술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침구술이 다시금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로서, 당시 그들이 목격한 침술에 의한 마취 수술은 세계 의학계를 눈뜨게 한 충격적인 것이었다.
화학 약물 마취제의 부작용이나 위험 부담이 없이 환자를 간단히 침술로 마취시키는 시술 과정이나, 그것도 마취 후 환자의 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 환자의 도움을 받아 가며 수술하는 광경은 서양의학적 방법에 익숙했던 그들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것은 당연히 세계보건기구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었고, 세계보건기구는 1972년 서양의 저명한 의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진을 중국으로 들여보냈다. 그리하여 5년여간의 광범위한 조사 끝에 1977년 조사단은 다음과 같은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다.
“침술은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적인 타당성이 인정되는 의료이다. 중국 10억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백 종 이상의 광범위한 질병에 적응하는 효과와 그 중 적어도 75퍼센트 이상의 효율성이 인정되는 통계가 나왔다.”
이러한 일은 이전에 “쇠꼬챙이로 쑤시고 불로 지지는 것이 무슨 의술이냐”고 코웃음치며 몰이해로 일관해 온 서양의학자의 입장으로 볼 때 커다란 태도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조사단에 참여한 서양의학자들은 침술의 과학적 효과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제껏 침술을 미신적이고 미개시대의 엉터리로 취급해 온 그들의 선입견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의 건강 사회 실현을 위해 침술을 세계 50억 인구에게 확대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였다.
◈ 세계 보건기구 효과 큰 의술로서 침구술 인정
결국 이를 토대로 세계보건기구는 1978년 9월 6일부터 12일까지 구 소련 알마타시에서 개최된 1차보건의료에 관한 국제총회에서 전통 의술의 활용이 없는 1차보건의료는 성립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아울러 경제적이면서도 약물 남용 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건강 달성의 방법이 바로 침술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런 추세 속에 서양의학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닉슨 대통령의 출신지인 캘리포니아주의 사우스베일로대학 등에서 침구학과가 신설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미국 전역에서 2백여 대학이 앞 다퉈 침구 관련 학과를 운영하는 등 동양의 침구술을 배우고 따라잡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또한 하버드대학병원 등 미국 내 굴지의 병원은 서양의학에 한계를 느낀 환자가 동양의학으로 발길을 돌리고, 그 지출만도 몇 년 사이에 미국 연간 국민 의료비의 30퍼센트 이상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자 병원 내에 침구과를 두는 등 환자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 침과 뜸을 하면 청혈·해독·식균력 강화돼
침구술은 인체 경락(經絡)학설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경락은 기혈영위(氣血營衛)가 운행되는 통로로서 피부와 피부, 피부와 장부, 장부와 장부, 근육, 골절 사이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경(經)이란 인체를 세로로 감싸고 있는 대간선(大幹線)을 말하고, 낙(絡)이란 경(經)에서 갈라져 나와 인체를 가로로 감싸고 있는 소로선(小路線)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잘못된 섭생을 하면 체내에 노폐물과 독소가 쌓이게 되고, 인체 생명 활동의 통로인 경락이 막히게 된다. 그럼으로써 기혈이 막히고 신진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피와 체액과 조직이 썩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오늘날 질병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암·고혈압·당뇨병·동맥경화·신경마비 등 내분비계통의 질환은 그런 현상의 하나이다.
침구술이 내분비계통의 질병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는 바로 경락을 자극함으로써 경락의 막힌 통로를 뚫어 기혈을 소통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영위(營衛)를 순조롭게 하기 때문이다.
각종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뜸의 경우만 보더라도 “뜸을 뜬 후 2시간부터 백혈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48시간 계속된다. 때로는 2배 정도 현저하게 증가하고, 식균작용(食菌作用)도 배가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적혈구와 혈소판도 증가하는데, 적혈구는 뜸을 뜬 후 6주일 후에 증가하기 시작하여 약 반 년간 계속된다. 증가율은 약 20퍼센트이다.
또 혈당량·칼슘·칼륨 등을 증가시켜 주며, 위장관의 윤동운동과 소화액 분비를 항진시키며, 내분비계통을 강화시켜 준다. 그리고 인체의 에너지원인 포도당, 병독에 대한 해독작용을 하는 히스타민, 체내 유독물질을 파괴하는 한편 혈액을 윤택케 하는 이종단백체,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장기조직의 치유 능력을 왕성케 하는 소량의 히스코신 등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침구술이 경락을 자극하여 기혈순환을 원활히 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함으로써 영위를 순조롭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
따라서 오늘날 질병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내분비계통의 순환장애질환의 치료에는 응급 처치술로 침구술이 반드시 필요하고, 나아가 침구술을 적절히 사용하여 막힌 경락을 뚫고 기혈과 영위를 고르게 한다면 목적한 바의 대증 치료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이런 연후에 올바른 섭생을 통해 더 이상의 노폐물과 독소가 체내에 쌓이지 않도록 근원적인 교정 방법을 병행한다면 질병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세계보건기구 심장병·고혈압 등에 침구술 효과 공인
이미 세계보건기구는 1979년 가을에 49개 병에 침구술이 효과적이라고 공인하였고, 1984년에는 심장병·고혈압·비만·색맹·귀머거리 등에도 효과적이라고 5종의 질병을 추가하였다.
아무튼 침구술은 그 작용 기전으로 보아 내과호흡기계통·순환기계통·소화기계통·비뇨생식기계통·신경계통·운동계통·산부인과·소아과·안과·이비인후과 등 내분비계통의 거의 모든 질환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응급 처치 의술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슈미뜨 박사 등 여러 서양의학자가 외과 수술 이외는 침구술로 무슨 병이든 전부 치료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이라든지, 오늘날 서양의학이 침구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 침구 종주국임에도 침술 보존 발전 외면
그런데 침구술 종주국인 우리나라는 그간 서양의학 위주의 보건정책 하에 우리 민족의 전래하는 침구 의술 문화를 보존 발전시키기는커녕 철저히 외면하고 사장시켜 왔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1970년대 이래 서양의학계가 새롭게 침구술의 가치에 주목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서양의학 위주의 의료정책만으로 일관하여 온 게 우리의 실정이다.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는 베고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땅의 의료 현실은 우리의 소중한 ‘의술 종자’를 보존하지 않고 말살시켰으니 이제는 전통 침구법의 모습이나 전통 침구법을 구사하는 명의는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 시련 속에서도 전통 신침 명맥 이어와
그러나 서양의학적 가치 기준과 그들의 이익적 판단에 따라 갖은 명목으로 전통 의술을 평가절하하고 그 맥을 끊으려 해도 그 어디엔가는 전통의 맥을 소중히 이어 오고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정영기(鄭永基 취재 당시 79세) 옹은 지난날의 시련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전통 침술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재야의 명의이다. 또한 자신이 터득한 약리(藥理)를 이용하여 수많은 난치병 환자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 주고 있는 용약(用藥)의 달인(達人)이기도 하다.
먼저 정 옹이 구사하는 침술을 보면 예전의 의서나 구전하는 이야기로만 듣던 ‘신침법(神鍼法)’으로, 일단 침의 길이부터가 요즘의 침술과는 다르다는 게 눈길을 끈다. 요즘의 침술은 대개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길이도 1치(약 3.03센티미터) 정도의 침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정 옹은 보통 3치 정도의 대침(大針)과 5치 이상의 장침(長針)을 사용한다.
침을 찌르는 깊이도 보통 1치가 넘고, 엉덩이의 환도 혈에 침을 할 때는 10치 정도의 장침을 찔러 넣는다. 등뼈 24마디가 모두 막힌 사람에게는 뒷목의 대추 혈에서 꼬리뼈 부분의 장강 혈까지 관통하는 20치 정도의 장침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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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침·유침·쌍침·투침 등 독특한 시술방법
침을 찌르는 방법 또한 고침(孤鍼)·유침(流鍼)·쌍침(雙鍼)·투침(透鍼) 등 독특하다. 고침은 침을 곧게 세워 찌르는 방법이고, 유침은 침을 눕혀 찌르는 방법이다. 쌍침은 같은 혈에 침을 2~3개 동시에 꽂아 놓는 침술 방법이고, 투침은 장침을 가지고 한 혈 자리에서 다른 혈 자리까지 관통하여 찌르는 침술 방법이다.
고침과 유침은 혈 자리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선택하여 사용하고, 쌍침은 경혈에 막힌 정도가 심하고 마비가 심한 경우 빨리 풀 목적으로 사용한다. 투침 역시 경혈에 막힌 정도가 심하고 마비가 심할 경우 사용하는데, 침을 하는 혈 자리는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투침하는 혈 자리는 내관에서 외관, 풍지에서 풍지, 곡지에서 소해, 합곡에서 후계, 양릉천에서 승산, 양릉천에서 음릉천, 행간에서 용천, 삼음교에서 양교, 대추에서 장강 등이다.
이런 정 옹의 침술은 예전부터 침술에 아주 능한 의원이 아니고는 사용하기를 꺼려 했던 것으로 지금은 거의 실체를 찾아볼 수 없는 침 시술법이다. 특히 10센티미터에서 20센티미터에 이르는 대침을 몸속 깊숙이 찔러 넣는 것이나, 30센티미터에 이르는 장침으로 몸을 관통하여 찌르는 것은 신침(神鍼)이 아니고는 하기 힘든 침술이라 할 수 있다.
◈ 침술 본래의 목적 달성하려면 장침 써야
정 옹은 장침을 쓰는 이유에 대해 침술이란 그 본질이 자극요법이므로 침을 깊이 찔러 강자극을 해야 할 혈자리에는 깊이 찔러야 효과가 나는 법이라고 한다. 머리와 흉부 부위의 혈에는 2푼(약 5미리미터) 이상 넘으면 안 되나, 그 밖의 혈에는 2치(약 6센티미터)에서 3치(약 9센티미터)까지는 찔러야 막힌 경혈을 제대로 뚫을 수 있다고 한다. 또 그래야 침술이란 의술의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정 옹의 설명은 인체 경락(經絡)과 영위론(營衛論)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데 앞서 설명했듯이 경락은 기혈영위(氣血營衛)가 운행되는 통로로서 피부와 피부, 피부와 장부, 장부와 장부, 근육, 골절 사이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그릇된 섭생과 생활을 하면 영위(營衛)가 고르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쌓인 독소가 인체를 감싸고 있는 경락(經絡)에 침범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기혈(氣血) 흐름이 막혀 병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체 내의 막힌 경락을 찾아 온전히 뚫어 주려면 장침을 사용하여 깊이 찔러 강자극을 해야 하고, 그래야 침술을 사용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 큰병엔 장침 통한 강자극을 해야 치료효과 나타나
한편 정 옹은 요즘 주로 쓰는 표피에만 살짝 찌르는 침술은 근래에 생겼지 우리 민족은 원래 장침을 썼다고 한다. 역사를 길게 보면 우리 민족은 침술 종주국으로서 오랜 역사 동안 침술의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켜 장침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였고, 중국에서도 일부 장침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장침을 사용하는 예는 없었고, 표피만 살짝 찌르는 호침(毫針)을 사용했다고 한다.
정 옹은 이런 표피에만 살짝 찌르는 침은 사고는 없지만 큰병은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장침은 큰병을 잡을 수 있지만 잘못 침술을 하면 위험성이 있다고 한다. 침을 놓는 인체의 혈 자리만 해도 잘못 장침을 하면 위험한 곳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신도(神道) 혈은 잘못 놓으면 등을 펼 수 없게 되고, 소요 혈은 침을 오래 꽂아 놓으면 얼굴이 퉁퉁 붓게 되고, 위중(委中) 혈은 잘못 놓으면 앉은뱅이도 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장침을 시술하려면 침술을 제대로 터득하고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해야지 모르고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한다.
◈ 전통 신침법 구사하려면 정신 수양 뒷받침돼야
그리고 정 옹은 침술을 제대로 터득하고 경지에 이르려면 무엇보다 마음과 정신의 수양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남들은 그저 침을 푹푹 꽂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간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힘들다고 한다.
특히 등뼈 24개가 다 막혀 등이 굽거나 허리를 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뒷목에서 꼬리뼈에 이르기까지 척추를 훑어 관통하는 60센티미터 정도의 장침을 꽂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오로지 정신력이라고 한다.
이런 정 옹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놀랍고도 높은 경지의 침술을 구사하였고, 그것은 바로 말 그대로 신침(神鍼)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한편으론 재야에 묻혀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 민족의 뛰어난 전통 침술을 그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필자는 향토명의를 발굴 취재하면서 지금부터 12년 전에도 서울 효창동에 신침으로 소문난 조무신(趙武臣) 옹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적이 있다. 조 옹은 일제 강점기에 광복군으로 종군하며 환자들을 장침(長針)과 주변의 풀로 간단히 고쳐 주었던 명의로서, 광복 후에도 자신의 의술을 이용하여 많은 어려운 환자를 구료해 오고 있었다.
따라서 흔하지 않은 전통 신침법(神鍼法)을 기록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찾아갔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 옹은 전년도에 타계하였고, 그의 의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민족 전통의 신침법을 정 옹을 통해 확인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민족의학의 전통을 위해 천만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 중풍환자 한 번 침 맞고 팔 올리기 수월해져
아무튼 신침에 대한 개념은 그렇다 치고 질병에 따라 어떤 혈 자리에 침을 하고, 또 어떤 치료를 하는지 궁금하여 그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침을 놓는 모습을 옆에 앉아서 살펴보았다.
먼저 중풍에 걸려 말이 어눌하고 양팔을 들어 올리기 힘들어 하는 63세의 남자에게 정 옹은 머리의 백회와 신회, 이마의 신정, 양쪽 눈동자 옆의 동자요 혈에 약 3밀리미터 깊이로 침을 꽂았다.
그리고 코밑의 인중, 턱밑의 염천, 기관지의 천돌, 양쪽 어깨의 견우, 명치 부근의 거궐, 거궐 양쪽 옆의 불용 혈에 약 3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꽂았다. 그런 후 복부의 중완과 하완, 하완 양쪽 옆의 상곡 혈에는 5센티미터 깊이로 장침을 꽂았고, 배꼽 밑의 석문과 관원과 중극 혈에는 10센티미터 깊이로 장침을 꽂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쪽 손바닥의 어제와 소부, 양쪽 손목의 대릉 혈에는 2~3센티미터 깊이로 대침을 꽂았다. 이 중풍에 걸린 남자는 정 옹에게 전날 와서 하루 침을 맞은 후 말하기도 한결 나아지고 양팔도 들어 올리기도 수월해졌다고 한다.
◈ 구안와사증 침술 치료방법
중풍 환자에게 침을 다 꽂은 정 옹은 이번엔 오른쪽으로 눈과 입이 돌아간 와사증에 걸린 40대 여자에게 입가의 지창 혈에 3개의 침을 꽂는 쌍침을 하였다. 먼저 지창 혈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10센티미터 깊이로 장침을 2개 찔러 넣은 후, 그 위에 약 5밀리미터 깊이로 대침을 꽂았다.
그리고 왼쪽 볼의 협거 혈에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6센티미터의 깊이로 침을 찌르고, 역시 왼쪽 볼의 거요 혈에 5밀리미터 깊이로 침을 찔렀다. 그리고 코밑의 인중 혈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5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찌르고, 코 부근의 왼쪽 영향 혈에 3밀리미터의 깊이로 침을 찔렀다.
그러고 나서 왼쪽 눈동자의 동자요와 머리의 백회 혈에는 3밀리미터의 깊이로 침을 찔렀다. 또 이마의 액중 혈에는 위에서 밑으로 비스듬히 6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찌르고, 오른쪽 귀밑의 예풍 혈에는 약 5밀리미터 깊이로 침을 찔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쪽 손등의 합곡 혈에 1.5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찔렀다.
◈ 축농증 환자 ‘코침’ 맞고 코 뚫려
이어 정 옹은 평생을 심한 축농증으로 고생한다는 미국에서 온 56세 여자에게는 코 주위의 인중 혈과 양쪽 영향 혈에 약 2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비스듬히 꽂았다. 그녀는 침을 맞은 지 약 30분이 지나 침을 뺐는데, 코에서 피가 소주잔으로 1잔은 될 정도로 줄줄 흘러내렸다. 흘러나오는 피에 대해 정 옹은 코와 이마 주위에 정체되어 있던 죽은 피라고 한다.
피가 다 흘러나오자 그녀는 코가 뚫린 기분이라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정 옹은 신이환이란 조그만 알약을 콧속에 깊이 넣어 준다. 그리고 앞으로 침은 더 이상 맞을 필요는 없고, 이틀 정도 약을 집어넣으면 완전히 나을 것이라고 일러 준다.
이런 정 옹의 말이 끝나자 미국에서 온 여자를 소개하여 데리고 온 김 아무개(취재 당시 42세 여자) 씨는 그의 13세 된 아들도 어릴 적부터 축농증이 심하였는데, 정 옹에게 침을 1번 맞고 신이환을 3번 코에 넣은 후 축농증이 나았다고 경험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심한 허리통도 정 옹의 침을 맞고 나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이 본 주위 사람의 치유 사례를 보건대 아마 우리나라에서 정 옹만큼 의술이 뛰어난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한다.
◈ 좌골신경통·무릎관절통·비만증에 대한 침술법
이밖에 정 옹은 허리에서부터 뒷다리까지 당기고 아파서 온 60대 여자에게는 하반신에 있는 양관·상요·소장유·종려유·장강·환도·위중·승산·풍시·합양·곤륜 등의 혈에 침을 하였다. 특히 엉덩이의 환도 혈에는 20센티가 넘는 장침을 꽂은 후 마치 막힌 통로를 뚫듯이 빠른 손놀림으로 몇 번 반쯤 빼었다가 다시 넣다 하는 식으로 강한 침술을 하였다.
또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무릎과 다리가 아파서 왔다는 69세의 남자에게는 아프다는 다리의 슬안·독비·학정·음시·족삼리·음릉천·풍시·외구·부양·곤륜·행간 등의 혈에 침을 하였다.
또 복부가 남산만 하고 몸 전체가 심하게 비만한 관계로 체중을 이기지 못하여 다리가 아파 못살겠다는 50대 여자에게는 복부의 중완·하완·수분·기해·석문·관원·중극·수도 혈에 10~20센티미터의 장침을 꽂은 후, 양쪽 다리의 풍시·음시·하복개·양독·음독·족삼리·행간 혈에 3센티미터 정도의 깊이로 침을 꽂았다.
이렇게 하면 복부와 다리의 막힌 경락이 뚫려 기혈이 소통됨으로써 복부 비만과 하지통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 침 맞은 후 환자들 평온한 표정
침을 맞을 때 사람들은 대침과 장침으로 깊이 찌르는 게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눈물을 쏙 쏟을 만큼 자지러졌다. 그럴 때면 정 옹은 “그렇게 무서워할 것 같으면 병 고칠 생각도 말고 앞으로 오지도 말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턱턱 침을 꽂았다. 이런 태연한 정 옹의 손놀림은 침술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였고, 침술에 대한 높은 경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침술 명의를 많이 만났음에도 장침을 하는 걸 보지 못했던 필자로선 저러다 잘못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특히 20센티가 넘는 장침이 몸속 깊이 들어갈 때나, 장침이 신체를 관통하여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꽂혀 나올 때엔 겁이 덜컥 났다.
그러나 그런 기우는 잠시일 뿐, 사람들은 침을 꽂은 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더러는 코를 골며 잠을 자는 등 평온하였다. 그렇게 침을 꽂은 채로 대개 1시간 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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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 맞은 후 몸에 물을 묻히지 않아야
이렇게 침을 놓는 게 다 끝나자 정 옹은 주의 사항으로 침을 맞은 후 12시간 이내에는 물을 몸에 묻히면 안 된다고 일러 주었다. 침은 금(金)의 성질이기 때문에 금생수(金生水)의 원리에 따라 물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침과는 달리 장침이나 대침을 맞은 후에는 몸속 깊숙이 금(金) 성분을 강하게 띠기 때문에 물을 대면 물의 기운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예전의 어른들은 침을 맞은 후에는 조그만 도랑도 건너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취재 당시 침을 맞으러 온 사람들 중에는 이런 주의 사항을 잊고 침을 맞고 가서 세수하는 등 물을 댄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몸살을 앓거나 몸이 붓는 등의 심한 고생을 하였다고 말한다.
◈ 환자의 증상에 따라 침술하는 방법
정 옹이 환자들에게 침을 하는 혈 자리를 보니 전체적으로 어떤 환자에게는 아픈 곳에 침을 놓기도 하고, 어떤 환자에게는 아픈 쪽의 반대편에 침을 놓는 좌통우침(左痛右鍼) 또는 우통좌침(右痛左鍼)의 방법으로 침을 놓기도 하였다. 또 어떤 환자에게는 몸 좌우에 침을 놓았다.
이에 대해 정 옹은 돌발적 사고로 인해 다쳐서 온 사람이나 신경통이 생긴 지 오래 지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당처에 침을 놓는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피가 굳어지지 않았으니 아픈 곳에 침을 놓아 막힌 기혈을 풀어 주면 간단하면서도 빨리 병이 해결된다고 한다.
아픈 쪽의 반대편에 침을 놓을 때는 만성적 요인으로 인해 병을 얻어 온 사람으로, 그런 사람에게는 전신의 기혈을 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발적 사고로 인해 생긴 병도 오랜 시일이 지나면 다친 부위가 이미 굳어졌기 때문에 아픈 쪽의 반대편에 침을 놓아 기혈을 돌려준다고 한다.
또 몸 좌우에 침을 놓는 경우는 몸 전체의 경락이 막힌 경우로, 이럴 때는 몸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막힌 경락 모두에 침을 놓아 신속히 뚫어 주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 급성 심장마비와 급성 맹장염에 대한 구급비방
이런 정 옹의 설명을 들으며 질병별로 치료 효과가 큰 침술 경험방이 있을 것 같아 들려 달라고 하자 같은 질병이라도 병의 원인에 따라 침을 놓는 혈 자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질병에 따라 어떤 혈에 일정하게 침을 놓는다는 식의 침술 경험방은 없다고 한다.
다만 급성 맹장염에는 내관·족삼리·행간·지오회 혈에 3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하고, 삼음교 혈에 10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하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독음 혈에 침을 놓으라고 한다. 또 심장마비에는 신문과 명문 혈에 침을 하고, 기문(期門) 혈과 족소음신경의 통곡 혈에 5밀리미터 깊이로 침을 하면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 혈색과 외관에 따른 질병 판단 방법
그러면서 정 옹은 침술이란 인체의 막힌 경락을 뚫어 주는 의술이므로 먼저 인체를 감싸고 있는 14경맥(經脈)의 흐름을 아는 게 필요하고, 다음으로 환자가 오면 진단을 통해 어떤 경맥이 막혀 병이 생겼는지를 판단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막힌 경맥을 뚫어 줄 수 있게 혈 자리를 잡으면 된다고 한다. 이 중에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경맥이 막혀 병이 생겼는지를 판단하는 안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정 옹은 어떤 경맥이 막혀 병이 생겼는지 판단하는 법으로 먼저 환자의 외관과 혈색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묻기도 하고 맥을 짚어 보기도 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이 모든 걸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강 설명하면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보건대
간경맥이 막힌 사람은 눈의 시력이 약화되거나 혈색이 푸르다고 한다.
위경맥이 막힌 사람은 몸이 마르고 혈색에 핏기가 없다고 한다.
또 심경맥이 막힌 사람은 한쪽 팔을 못 쓰거나 가슴에 열이 차 있고 혈색이 불그죽죽하다고 한다.
그리고 비장경맥이 막힌 사람은 젊은이도 이가 빠지고 혈색이 누렇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신장경맥이 막힌 사람은 하체가 불편하고 혈색이 검다고 한다.
◈ 침술과 바른 섭생 겸하면 만병 근치 가능
그렇다면 침술은 어느 정도까지 질병 치료에 효력을 발휘할까. 오랫동안 신침을 한 사람으로서 침술에 능하게 되면 침술의 힘으로 질병 퇴치가 가능한지 묻자 정 옹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물론 침술은 막힌 경락을 뚫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뛰어나므로 모든 질병 치료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근본은 응급 처치의 의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급체를 하거나 관절을 삐거나 하는 등의 돌발적인 사고로 인해 생긴 급성병은 막힌 경맥을 뚫어 주는 응급 처치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에 침술의 힘만 가지고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성병의 경우는 침술의 힘만 가지고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만성적인 요인으로 생긴 병 치료에 침술이 작용하는 힘은 본래 기능 그대로 막힌 경맥을 뚫어 주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는 역할이며, 근본적으로 병을 해결하는 힘은 영위(營衛)를 고르게 하는 올바른 음식과 몸을 보할 수 있는 한약이라고 한다.
즉 모든 생명체는 섭생을 통해 영양 활동도 하고 자신의 생명을 지켜나가므로 올바른 음식과 몸을 보할 수 있는 약을 섭취해야 잘못된 영위가 바로잡아질 수도 있고, 잘못된 영위가 바로잡아져야 다시는 독소가 경맥을 막는 일도 없어져 비로소 병이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침술의 힘을 빌려 1차적으로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어도 잘못된 영위가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지지 않아 만성병은 해결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만성병에 막힌 경맥을 뚫어 주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 줄 정도의 힘도 전통의 신침이어야 가능하지 작은 침으로는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 옹은 침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여 침술의 1차적인 응급 처치 힘과, 음식과 한약의 근본 치유 힘을 조화시킨다면 어떤 만성병도 능히 분명하고도 빠르게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은 암·당뇨·고혈압·심장병·간장병·비만·중풍마비 등 만성적인 요인으로 생기는 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들 병을 해결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들 병을 응급 처치하고 근본 치유하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서양의학적 시술은 인체 망치는 무모한 짓 될 수도
더구나 이들 병들을 서양의학적 방법으로 절제 수술이나 방사선이나 화학약으로 치료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기혈순환도 망치고 생명력도 저하시키는 무모한 짓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보건대 서양의학적 치료를 하지 않고 온 사람은 암 환자라도 나은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반면 수술을 하거나 화학약을 많이 복용한 사람은 나아도 오랜 기간이 걸리며, 방사선 치료를 받은 사람은 거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 침술 후에 인체 보할 수 있도록 약방문 일러줘
한편 정 옹은 의서에 보사법(補瀉法) 운운하며 침술로 인체를 보(補)하거나 사(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침술의 근본 기능을 모르고 하는 잘못된 말이라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침을 놓든지 간에 침술로는 절대 인체를 보하거나 사할 수 없다고 한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사람이 음식이나 약을 먹지 않고 침만으로도 생명 유지가 가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고, 본분을 벗어난 말을 하는 것은 침술의 본래 가치조차도 잃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런 의론을 바탕으로 정 옹은 침을 놓은 후에 환자에 따라서는 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방문(藥方文)을 일러 주기도 하고, 북어국과 수박 등을 먹으라고 일러 주기도 한다.
북어국과 수박을 권하는 이유는, 북어는 해독력이 강하여 기를 돋우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며, 수박은 이뇨력이 강하여 침으로 풀어진 독소를 배설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도 침술하는 이들은 전통적으로 침을 맞은 사람에게 북어를 끓여 먹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 오늘날엔 약재의 질 떨어져 약재의 양 늘려 처방해야
한편 그가 일러 주는 약방문은 <동의보감> 등 의서와 그의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대개는 의서에 나온 본 처방보다 약재의 양이 5배 이상 많다고 한다. 약재의 양을 많이 하는 것은 오늘날 약재의 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의보감> 등 옛날에 의서를 쓸 때는 약재를 자연에서 채취하고 그것도 오래 묵은 것이라 약성이 높아 소량으로도 목적한 바의 치료 효과를 충분히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약재는 대부분 재배산 내지는 수입산이고, 그것도 1년 정도 묵은 것이라 약효가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이것을 무시하고 오늘날에도 옛날 의서에 나온 대로 약을 쓴다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도 20여 년 전까지는 옛날 의서의 처방대로 하여 성과를 냈으나, 그 후에는 많은 실험을 통해 약재의 양을 5배까지 늘려야 예전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 경험 약 처방 모아 <약방문집> 엮기도
현재 그는 효과가 큰 약방문을 모아 의서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의 집에는 침을 맞으러 오는 사람 이외도 그에게 약방문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정 옹이 일러 준 약을 먹고 여러 병을 나았다며, 정 옹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 정 옹이 일러 주는 약방문을 몇 가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위암 환자는 사군자탕이나 향사양위탕에 와송과 백골초와 영지버섯을 넣어 달여 먹으라고 한다.
간암 환자는 대시호탕에 역시 와송과 백골초와 영지버섯을 넣어 달여 먹으라고 한다.
또 손발이 뜨거워 겨울철에도 자다가 깨 찬물에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여인에게는 피에 가습(加濕)이 되어 심장에 열이 차기 때문이니 소요산을 달여 먹으라고 일러 준다.
그리고 자궁 절제 수술 후 생리가 불순하고 기력이 쇠약해져 자주 쓰러진다는 여인에게는 심장의 열을 가라앉히고 심장에 피를 돌려야 하니 귀비온담탕에 녹용을 가미하여 달여 먹으라고 한다.
또한 길에서 만난 식당 주인이 해수 천식 처방을 묻자 길경탕에다 폐가 나빠졌으면 녹용을 가미하라고 일러 준다.
◈ 동네 사람들에게 소중한 의원
그렇다면 정 옹의 침술과 약방문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일단 취재 기간 중에 만난 정 옹이 사는 동네 사람들의 평은 “관절신경통이나 중풍마비 등 다른 데서 잘 고치지 못하는 병을 잘 고친다”, “정 옹 같은 명의가 동네에 산다는 게 든든하다”, “뛰어난 의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하는데 걱정이다”, “정 옹이 이사 가려 해도 떠나지 못하게 동네 사람들이 막는다” 등이다.
이러한 동네 사람들의 말은 정 옹이 내세울 만한 ‘간판’이나 세련된 의료 시설도 없이 가정에서 투박한 의술을 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역설적인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더구나 정 옹이 사는 곳이 서울이고, 인근에 병원과 의원 등 많은 의료 시설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거나 목격한 치료 효과 중 몇 가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인근에 사는 정 아무개(취재 당시 40세 여자) 씨.
그러면서 한번 달팽이관이 파괴되면 영원히 복원이 안 되므로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낙담하여 지내던 차에 인근의 사람이 정 옹을 귀띔해 주었다. 정 옹은 진맥하더니 3~4차례 침을 맞으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머리와 안면에 침을 하였다.
침을 맞고 첫날과 이튿날은 피가 나오지 않았는데, 3일째 되는 날은 귀와 눈과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 옹은 흘러내리는 피를 다 닦아 내려면 화장지가 통째로 있어야 한다며 가져오라고 했다. 피는 정 옹 말대로 화장지를 통째로 적실 만큼 쏟아졌다. 그리곤 그의 남편은 그 자리에서 “머리가 개운해졌다”며 일어섰다고 한다.
◈ 정 옹의 옆집에 사는 최선희(취재 당시 50세 여자) 씨.
그 남자는 30년간 관절염을 앓았는데, 그의 아들이 양의사인 관계로 그간 수없이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모색도 하고 미국에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가 불가능하니 다리를 자르자는 소리만 들었다고 한다. 정 옹은 그의 다리에 장침을 수십 개 꽂았는데, 첫날부터 다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며 바닥에 흥건하게 고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매번 침 맞을 때마다 다리의 부기가 종아리에서부터 차츰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낫는 재미로 매일 와서 침을 맞고 결국 4달 만에 완전히 나아서 갔다고 한다. 4달 동안 쏟아낸 피만 해도 아마 항아리로 하나는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 정 옹의 동네에 사는 김판옥 (취재 당시 69세 남자) 씨.
그는 5년 전에 뒷목이 무겁고 머리가 아파 정 옹에게 침을 맞았다고 한다. 정 옹은 그에게 중풍 초기 증상이라면서 뒷머리의 풍지 혈에 장침을 가로로 꽂아 관통시키는 투침을 하였다. 그리고 정 옹이 꽂혀진 침을 잡고 좌우로 계속 왔다 갔다 움직이자 머릿속이 전기 오는 것처럼 찌릿찌릿 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침을 맞고 뒷목이 무겁고 머리가 아픈 게 말끔히 가셨다고 한다. 그 후에도 그는 1년에 한 차례씩 2 간에 걸쳐 같은 증상이 나타났는데, 같은 방식의 침을 맞고는 이제는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
◈ 병 나은 사람 은혜 잊지 않고 찾아와
이런 인근 사람들의 이야기 외에도 취재 기간 중에 정 옹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나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그간 정 옹이 쌓아 온 의술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례로 신경통 때문에 온 50대 남자는 시장에서 허리통을 나은 할머니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다고 하고, 중풍에 걸린 50대 여인은 식당에서 우연히 중풍을 나은 사람이 소개해 주어서 찾아왔다고 한다.
또 청주의 양방병원장은 간경화 처방을 묻는 전화를 하기도 하였다. 청주의 양방병원장은 양의학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정 옹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그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치료받고 가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 대해 정 옹의 부인 유순이(취재 당시 67세) 씨는 비록 겉으로는 내세울 것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본 것을 인정하고, 은혜를 잊지 않을 때면 보람이 크다고 한다.
일전에도 간암에 걸렸다가 나은 전북 고창에 사는 고등학교 교사가 부인과 함께 인사하러 오기도 하고, 10년 넘게 고생한 다리 관절통을 나은 국회의원 부인은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매번 안부 전화를 해 온다고 한다. 또 중풍을 나은 일본인 무역회사 사장은 몇 년 전에 초대장과 왕복 비행기표를 보내와 10일간 일본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 13세 때부터 조부 옆에서 직접 몸에 침 찌르며 배워
정 옹이 침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3세 때이다. 그의 고향은 충북 옥천으로 그의 조부가 그 고장의 명의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조부 옆에서 자신의 몸에 매일 직접 침을 찔러 가면서 침술을 익혔다.
장침을 직접 자신의 몸에 찌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의술에 타고난 심성이 있었음인지 침을 배운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하루에 혈 자리 1~2개에 침을 꽂는 식으로 1년에 걸쳐 인체의 경락과 혈 자리을 모두 익혔다. 그리고 3년에 걸쳐 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치료하는 법을 터득하였다. 그리고는 18세 때부터 찾아온 환자에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
약방문도 그의 조부로부터 배웠다. 또한 <동의보감>과 집안에 내려오는 의서를 통해서도 약방문을 익혔다. 그렇게 약방문을 두루 섭렵하면서 어떤 처방이 치료 효과가 뛰어난지 알게 되었고, 처방의 묘리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30세 무렵에는 의술의 도를 깨닫기 위해 3년간 계룡산에 들어가 생쌀과 솔잎과 소금으로 생식을 하며 정신 수양을 하였다.
◈ 눈과 머리로 침술 익혀서는 침술 경지 깨달을 수 없어
정 옹은 자신에게 신침을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배웠던 방식 그대로 직접 자기 몸에 장침을 찔러 가며 익히라고 일러 준다. 그만한 고행(苦行) 없이 신침을 눈과 머리로 익혀서는 그 깊이를 절대 깨달을 수도 없고, 침술의 경지를 깨닫지 못하고 함부로 신침을 놓았다가는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직접 침을 찔러 가면서 침술을 배우면 침을 놓아야 할 혈 자리의 위치나, 혈 자리에 따라 침을 찔렀을 때의 감각이 평생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어느 순간 침술의 경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깊이 있는 침을 배우기보다는 간단히 침을 배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인지 처음에 의욕적으로 배우겠다고 나선 사람도 모두 중도에 포기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제 신침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예전에 교우했던 전통 침술을 했던 사람들 중 당시 자신이 가장 나이가 어려 생존해 있을 뿐, 모두 타계하여 자신의 세대에서도 신침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 전통 침구술에 대한 보존 대책 마련 절실
한편 정 옹은 그간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많은 설움과 어려움을 당해 왔다고 한다. 일제 때 임시정부의 주치의로서 광복군으로 종군하며 다친 병사들을 치료를 했던 조무신 옹도 광복 이후 많은 사람을 장침으로 고쳐 주었으나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생전에 많은 고난을 당했다고 한다.
정 옹은 가치 있는 전통 의술의 맥이 끊어지고, 능력 있는 전통의술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건 일제를 거쳐 광복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서양의학 일변도로 의료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근세에 이르러 국가의 의료제도를 갑자기 서양의학 중심으로 바꾸는 바람에 전통의학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의 변화에 실망하여 미처 적응하지 못한 전통 의술인들이 능력이 있음에도 졸지에 무면허 의료 행위자로 평가절하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예전에 교우했던 많은 전통 침술 명인들의 경우만 해도 많은 어려움을 당하며 결국 세상과 등진 채 아무런 명맥도 남기지 않고 하나둘씩 쓸쓸히 타계해 갔다고 한다. 정 옹은 우리 민족이 침술 종주국인데도 전통 침법조차 보존 발전시키지 못하는 척박한 제도 속에 이제 신침의 명맥은 자신이 죽으면 끊어질 것이라는 안타까움으로 말을 맺는다.
1.이 글은 저희 연구소 김석봉 소장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향토명의를 소개하고자 쓴 글입니다. 따라서 찾아가 치료받는 것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따르며, 치료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병력 차이로 인한 효과 또는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