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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용주사 원문보기 글쓴이: 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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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소나타(1)
- 여강 최재효
“여보, 여보, 정신 좀 차려 봐요.“
“형님, 형님......”
“아빠, 아빠, 으 흐흐흐흐흐흐......”
200평정도 되는 부천S병원중환자실 여기저기서 곧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형님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면서 형수와
조카들의 아타까움을 더해갔다. 창가에 위치한 형님의 침대는 별빛이 쏟아지는
전망이 좋은 곳 이었다. 한쪽 귀퉁이가 이지러진 희미한 하현달이 엷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병실의 두터운 유리창을 투과하지 못했다.
오후 들어 상태가 급속히 나빠진 형님은 전문의 판단에 따라 중환자실로 옮겨
졌고 간신히 가족들 면회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지옥과 천국이 따로 있지
않았다. 중환자실 안이 지옥이고 문밖이 바로 천국이었다. 담당 간호사는 다른
환자들에게 방해가 될 까봐 자꾸 내가 서있는 쪽 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오전에만 해도 형님은 간신히 일어나 앉아 있기도 하고 휠체어를 타고 병원
우측에 있는 성모마리아상 앞에 까지 갔었다. 그런데 저녁 8시경 휴대폰이 진동
하면서 다급한 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방님, 형님 상태가 안 좋아요.”
나는 저녁을 들다말고 병원으로 달렸다. 병실에는 이미 조카들이 달려와
형님의 병상 앞에 모여 있었다.
“작은 아빠, 아빠가 정신을 놓으신것 같고 숨도 몰아 쉬세요.”
회사 다니는 큰 조카가 눈이 퉁퉁 부어서 나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형님의 상태를
알렸고 형수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의사가 뭐라고 해요 형수님?”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 것 같대요.”
점점 더 상태가 좋지 않자 형님은 바로 통제가 심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일주일 전 나는 형님의 지난 3년간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오후에
형수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서방님, 이분들이 제천세무서에서 나오 신 분들이래요.”
“안녕하세요? 환자의 동생 됩니다.”
40대 중반과 30대 중반의 두 남자는 형님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들어가자
정색을 했다. 형수는 두 세리(稅吏)들이 가져 온 고지서를 보여 주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는 고지서를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소득세납부고지서에는 분명히
2억4천만 원이 좀 넘는 액수가 박혀 있었다. 나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돈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형님보고 내라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고. 우리는 전달할 의무가 있고. 또 최 사장님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공무원이 나와 형수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도 최 사장님을 찾기 위하여 전국의 모든 관공서에 협조 공문까지 보냈
지만 알 수 없었는데 최근 저희 관내로 전입신고가 되었더군요. 전입지 주소를
찾아 갔으나 최 사장님을 만날 수 가 없었습니다.“
거의 1년 이상을 주소지 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형님은 지난해 10월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간암 말기에 접어 들었다는 의사의 사형선고 같은 판정을 받았
으나 바로 입원하지 못했다. 동사무소에 주소가 직권으로 말소가 되어 버려 의료
보험카드를 발급발을 수가 없는 상태 였다.
할 수 없이 의료헤택을 보기 위하여 형님의 옛 친구가 살고 있던 제천으로
주소지를 옮겼었는데 전입신고가 되자마자 행정전상망에 형님이 노출되어 바로
세무서의 추적을 당한 것이었다. 형님은 간신히 그간의 사정과 세금을 체납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피를 토해가며 설명했다. 세리들이 형님의 사정을 듣고 돌아
간 뒤 형님은 나에게 지난 3년간의 겪었던 사정을 이야기 간신히 했다.
“형님, 조 영진입니다. 저녁에 시간 나시면 대포라도 한 잔 하시지요.”
평소 나를 친형 이상으로 따르면서 종종 대폿잔을 함께 나누게 된 조 영진은
내가 교도관 근무시절부터 알게 된 사이인데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다부진
체구와 선이 굵어 보이는 그는 약간의 보스 기질을 지니고 있는데 시장에서 포목
점을 하고 있었다.
“고맙네, 저녁 7시에 거기서 보자고, 그럼.”
늘 가던 대폿집에 도착하자 조 영진을 비롯한 조 영진의 친구 두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하이고, 최 선생님, 어서 오세요. 저희 집과는 인연을 끊은 줄 알았어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한번도 안 오세요? 밖엔 아직도 눈이 내리나 봅니다.
자 수건으로 얼굴 좀 닦으세요.“
40초반의 얼굴이 반반한 주점 주인아주머니가 수건을 건네며 반갑게 맞아 주
었다. 19공탄 연탄이 벌겋게 화력을 자랑하고 석쇠에서 삼겹살이 노릿노릿 익어
가고 있었다. 조 영진은 얼굴이 불콰한 것으로 보아 이미 꽤 마신 듯 했다.
“형님, 이 녀석은 군대 동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 동철 이라고 합니다. 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이쪽은 제 불알친구입니다.”
“인사 올립니다. 윤 병수라고 합니다.”
조 영진은 호쾌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를 큰 형으로 모시겠다며 오버 액션까지
취해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반갑습니다. 월급쟁이에게 이렇게 훌륭한 동생들을 두게 되어 감개무량합
니다.”
내가 주전자를 들어 동생들에게 텁텁한 막걸리를 한 잔씩 돌리자 황송해하는
눈치였다. 조 영진을 알게 된 것은 작년 봄 사회친구의 소개로부터 시작 된다.
식당을 하는 정 사장이 평소 내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하자 그중 조 영진이
한번 뵙고 싶다고 하면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평소 정 사장한테서 형님에 대하여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뵈니
정말로 인품이 있고 참으로 인자해 보이십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 사장의 소개로 나는 그날 저녁 조 영진과 의형제가 되었다.
“형님, 공무원생활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20년 좀 넘었지.”
“그럼, 더 늦기 전에 다른 거 해보시죠.”
“다른 거?”
“형님 연세가 마흔여덟이면 더 늦기 전에 평소 꿈꾸었던 사업이 있으시면 해보
시는 것도 괜찮지요.“
“사업은 무슨 사업, 이대로 정년까지 가야지.”
조 영진은 그날 자신도 회사를 다니다가 10년 전 그만 두고 시장에서 포목점을
열었는데 생각 보다 괜찮다면서 적성에 안 맞는 직장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편이 좋다며 열을 올렸다.
“나도 15년 전에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식당하길 잘 했지 만약 안 그랬다면
먼저 IMF 때 감원 대상이 되었을 거야. 아무튼 때가 왔다고 판단되면 판단을
신속하게 해야 돼 이 친구 말도 일리는 있어.“
곁에 앉아 있던 정 사장이 조 영진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요즘 같은 때는 그저 국으로 월급이나 타 먹는 게 제일이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직업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하긴 내가 이 직업이 좋아서 다니는 것은 아니지. 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거지.‘
“자, 영진이 동생 술 좀 채워 봐.”
내가 잔을 내밀자 조 영진이 얼른 술잔에 막걸리를 채웠다.
“형님, 이제는 옆에 여우같은 년들 앉혀 놓고 호박색깔 양주를 드시면서 세상을
음미할 때도 되신 것 같은데......“
조 영진이 싱긋 웃으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어이쿠, 이 사람아 공무원이 무슨 수로 여시들을 곁에 앉히고 양주를 마시나?
내가 비리를 저질러 공금을 수억 원이라도 빼내 쓴다면 몰라도......“
“하하 하하하.......”
조 영진이 특유의 오버액션을 취해가며 호탕하게 웃었다.
첫날 조 영진과 헤어진 후로 그는 나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문안
인사를 하였고 나는 참으로 괜찮은 동생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달 진급
심사에서 물을 먹은 뒤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늦게 시작한 교도관생활에 회의
마저 들었다. 또래의 친구 서너 명은 대기업 중견 간부나 정부기관에서 관리자
로서 큰 소리를 치며 어깨를 피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점점 더 사회생활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15년 전 우연히 주식에 손을 댔다가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집을 팔아 반쯤 갚았다.
어린 4남매를 데리고 전셋집을 전전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봉급쟁이
신세로서 만족하며 안분지족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한 때의 욕심이 10년 이상의
긴 세월은 암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올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7남매의
장남으로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하루 빨리 자수성가하여 떵떵거리며 사는
큰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한 바람은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고 지금은 지옥 같았던 지난 15년 세월이
아득한 꿈 이야기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이 땅에서 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많은 장남들이 뼈저리게 느끼면서
침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위로 두 누이들 아래로 올망졸망한
동생들 또 아직 온상에서 한참 자양분을 섭취해야 할 4남매 내 얼굴만 바라보며
하 세월 살아가는 아내, 고향에서 어렵게 살아가시는 노부모의 애처로운 모습,
어느 한 가지도 나를 편하게 해 주지 못했다. 내가 내 욕심만 차리는 망난이같은
자식으로 살아간다고 하여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손가락질을
받을 뿐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진퇴양난에서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조 영진의 말대로 나는 몇 년 전부터 또 다른 나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보고
싶었다. 나는 조 영진에게 내 속내를 들켜 버린 것 같아 처음에 그가 나에게
새로운 인생 운운 할 때 속이 뜨끔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이 하필 이 때에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또 다른 인연의 고리이며 내가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 활력소가 되어 주기 위한 신의 전령사처럼 보이기조차 했다. 그런 나의
심정을 조 영진은 마치 마법사처럼 기가 막히게 훤히 들여다보고 있은 듯 했다.
아래로 있는 남동생 둘 모두 국가를 위하여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 직장과
가정에 얽매여 형제간 우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년에 설날이나 추석 또는
부모님 생신 때나 서로의 얼굴을 보는 처지로서 나 또한 맏형으로 크게 할말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주식에 손을 대고 크게 손실을 입은 후 늙으신 부모님
가슴에 큰 짐을 지어 준 것은 나로서도 크게 후회 하는 일이지만 늦게라도
그 짐을 벗어 드리고 싶었다. 내가 앞으로의 내 진로를 놓고 고심하고 있을 때
조 영진은 용케도 알고 나에게 자주 전화를 하면서 접촉을 갖고자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 영진이 구원의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고 천군만마를 가진
든든한 후원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접니다. 오늘 비도 오고하는데 저녁에 약주나 한 잔 하시지요?”
“그럴까?”
진대포집에는 조 영진과 박 동철 윤 병수가 앉아 있었다. 내가 대폿집으로 들어
서자 셋을 일어나 정색을 하며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형님, 그동안 무탈 하셨지요?” 박 동철 점잔을 빼며 예를 갖추었고 윤 병수도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생들, 그동안 잘 있었어? 오늘 비도 내리고 하는데 술 맛이 좀 날 것 같은데
오늘은 실컷 마셔 보자고.“
주점 주인아주머니는 내 앞에 풋고추와 된장을 가져다 놓으며 눈웃음을 쳤다.
“형님, 형님 고향이 경기도 여주라고 들었는데 맞죠?”
박 동철이 하얀 눈자위를 굴려가며 눈을 껌뻑 거렸다.
“아니, 언제 내 뒷조사를 다 해보았는감? 어이쿠, 이제 보니 무서운 사람들이
구먼, 응?”
“에이, 형님, 뒷조사는 어떻게 감히......”
조 영진이 눈을 살짝 내리 깔면서 술잔을 들었다.
“맞네, 내 고향은 물 좋고, 인심 좋고, 쌀 좋고, 미인 많고, 고구마 팍신팍신하게
맛 좋은 여주가 맞다네. 그 뿐 아니라, 내가 태어난 곳이 명성황후가 태어난 동네
라네. 요즘은 잘 단장되어 국민 관광지가 되었지.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
으로 자네들 지갑 속에 계시는 세종대왕님의 영릉(英陵)과 조선 17대 임금이며
청나라 북벌(北伐)을 준비했다가 실천에 옮기기 전에 승하하신 효종대왕의 영릉
(永陵)이 있고 유명한 남한강변에 그 유명한 신륵사가 있지. 최근에는 신륵사 입구
에 상설 여주도자기전시장이 세워져 있지. 또 뭐가 있더라? 아 맞아. 신륵사에서
원주방향으로 차로 10분 거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박물관이 있어. 목아(木芽)
박찬수 선생이 건립했는데 목각과 철, 석재를 이용한 불상과 목각인형등 수천
점의 작품들이 일년 내내 전시되어 있지.“
“히야, 형님, 공무(公務)에만 열심이신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향토사학자시네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윤 병수가 입에 침을 튀겼다.
“언제 형님네 고향을 한번 다녀오고 싶네요. 그렇게 살기 좋은 고장이라면
땅값도 만만치 않겠는데요?“
조 영진이 느닷없이 땅값을 들고 나왔다.
“에이, 이사람. 여주의 요지는 이미 외지인들이 알을 박아놨지. 아마 찾아보면
혹시 모르지 괜찮은 땅이 좀 있을지......“
“형님네도 여주에서 대대로 살아 오셨으면 땅이 꽤 많겠습니다?”
“수만평 되지.”
술이 어량해진 나는 고향이야기가 나오자 과대포장을 하여 이야기 했다. 그때
세 사람은 눈망울이 또랑또랑하여 내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는 눈치였다.
“그럼, 형님. 퇴직 후에 고향에 내려가 농사지으실 생각이신가요?”
“에이, 내가 평생 펜대만 잡던 몸이 어떻게 농사일을 하나? 농사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녀. 만만히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지.“
세 사람은 나의 이야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가며 경청했다.
“형님, 그러지 마시고 땅 장사나 해보시지요?”
“땅 장사?”
“여주의 좋은 땅을 찾아내어 눈 먼 작자들에게 팔던지 아니면 개발 된다고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허풍을 떨면 몇몇은 넘어 갈 텐데요?“
박 동철이 잔을 비우고 나서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예끼, 이 사람아. 나보고 사기꾼이 되라는 말인가?”
‘하긴, 요즘 세상에 사기꾼이 못되면 내가 사기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지.’
갑자기 박 동철의 말에 나는 현기증이 일어 날 것 같았다. 최근 들어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던 나는 방금 박 동철이 한 이야기처럼 땅 장사를 하는 구상도 몇 번
해 보았기 때문이다.
“자자, 그런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오늘은 내가 쏘는 거니 많이들 드시게.”
창밖에는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었고, 텁텁한 막걸리를 곁들여 갓김치에 싸서
먹는 삼겹살 또한 일품이었다.
“미안하네, 이번에 같이 진급이 됐어야 하는데.......”
나와 동기생으로 늘 나와 단짝처럼 생활하던 김 부장이 오후에 나를 찾아왔다.
소장에게 진급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고 하면서 내 앞에서 애써 기쁨을
감추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역시 사람은 진급을 하고 봐야 돼......”
나는 진심으로 동료이며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김 부장의 승진을 축하해 주었다.
거울 속에 패배자의 얼굴이 우울하게 비치고 있었다. 나는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반가(半暇)를 내고 월미도를 찾았다. 바닷바람이 케케묵은 번뇌를
훑고 지나갔다. 차만 타면 2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혼자서 바다를 찾은 것은 처음
같았다. 20년 넘게 제2의 고향인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 왔지만 늘 나는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간의 객지생활이 영상처럼 스쳤다.
갑자기 내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건너에 있는 횟집을 들어갔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하고 안주 적당한 것으로 주세요.”
“네에……”
소주가 쓴맛이 있어 늘 막걸리를 마셨지만 횟집에 와서 막걸리를 찾는 다는
것이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이대로 직장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아니지, 평생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대로 내려간다면 혼자 계신 노모는 반길지 모르지만 네 아이들과
아내를 어떻게 설득 한단 말인가? 네 아이들은 한창 배울 시기이니 시골로 내려
간다면 대학진학이나 나중에 취업 문제도 문제가 될 것 같고 어쩐다? 그럼, 직장을
그만 두고 명예퇴직 신청을 내고 퇴직금으로 장사를 해봐? 그런데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농사 보다는 장사가 낫지. 그래 그럼 전에 내가
생각 했던 쌀장사를 해봐?‘
“처음 오신 분 같은데? 서비스 잘 해드릴 테니 자주 오세요.”
40중반 아주머니가 우럭 회를 내 앞에 내려놓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래, 여주 쌀이 전국에서 최고로 쳐 주니까 차떼기로 실어 와서 한번 일을
벌려봐?‘
내가 혼자 소주잔을 비우면서 중얼거리자 옆에서 술을 마시던 중년 여인들이
뻔히 쳐다보면서 안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큰일을 당해서 낙심천만
하게 보였던 것 같다.
‘염병, 대낮에 혼자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럽군.’
나는 조 영진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세, 뭐하고 있나? 난 머리가 아프고 심신이 시원치 않아 혼자서 월미도에
왔다네. 자네 생각이 나서 말이야. 시간 되면 이리로 오지.“
나는 횟집의 위치와 상호만 알려주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조 영진은
20분도 안 돼 내 앞에 나타났다.
“아니, 형님, 미리 연락을 주시면 모시러 갈 텐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대낮부터 약주를 하시니 좀 이상합니다?“
“무슨 일 없어. 그냥 술이 마시고 싶어 왔네. 그런데 술은 혼자마시면 청승을
떤다고 할 까봐 남의 시선이 영 부담스럽구먼.“
조 영진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자세히 보니 조 영진도 이미 전주(前酒)가 있는
것 같았다.
“자네도 한잔 하고 있었던 모양일세?”
“아, 네. 오랜만에 여자동창생들이 찾아와서 한잔 지리고 있었어요. 형님.”
“내가 눈치도 없이 괜히 전화를 했나보네?”
“아닙니다. 계집애들하고 마셔봐야. 요상시런 이야기나 하려고하지 뭐, 건전한
대화가 돼야지요?“
조 영진은 담배를 빼 물며 연기를 천정으로 뿜어냈다.
“나도 한 개비 주게.”
“아니, 형님 담배 안 피시잖아요?”
“오늘은 왠지 담배가 고소할 것 같네.”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 그리고 직장의 금연 분위기에 항복해 담배를 끊은 지
몇 년 되었지만 담배연기가 한 모금 폐부깊이 들어가자 기분이 붕 뜬 것 같았다.
“자네 말이야. 전에 나한테 제2의 인생을 가꿔보라고 했지?”
“아, 네네. 형님에게 그런 말씀드린 적 있지요.”
“자네가 보기에 내가 만약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한 다면 어떤 분야가 내
적성에 맞을 것 같나?“
조 영진이 나에게 잔을 건네면서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해보였다.
“제가 보기에 형님은 건설 건축이나 뭔가 크게 벌려놓는 사업 말고 조촐하면서
내실 있는 직종이 어울릴 것 같은데요?“
“이 사람아, 어렵게 말하지 말고 쉽게 해봐. 술집이면 술집, 식당이면 식당
뭐 이렇게 구체적으로......“
“형님, 그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은 어떻세요?”
“아,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편의점 말인가?”
“슈퍼마켓도 괜찮을 것 같고요.”
조 영진의 입에서는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미곡상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의 입에서 쌀이라는 말만 나왔어요. 나는 바로 미곡상을 차리려고 당장
내일부터 준비에 착수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쌀장사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눈치를 살피던 조 영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울긋불긋한 아이들 과자류나 부식 종류를 파는 것이 성에 안 찰지
모르지만 구멍가게 하는 제 친구 이야기 들어 보면 장소만 잘 잡으면 그것도
꽤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던데요.“
“글쎄......”
“그럼, 형님. 형님 고향이 쌀로 유명한 여주니까 여주에서 쌀을 직접 사다가
도매로 넘기는 장사를 해보시면 어떻세요?“
조 영진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일부러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내가 이미 다 계획하고 있던 일을 마치 자신이 권해서
쌀장사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글쎄, 나도 그런 방향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긴 하는데 ......”
“그럼 형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만약 형님이 마음을 굳히셨다면 쌀장사
를 해보세요. 가만히 보니 그 아이템이 좋은 듯하네요.“
“하여튼 며칠 더 두고 생각해 봐야 겠어. 자 한잔 하자고?”
“형님, 제가 형님보다 인생을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어떤 아이디어가 떠 올랐
을 때 즉시 행동에 옮기지 못해서 그 동안 손해 본 적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제가 그동안 생각으로만 그쳤던 일이 만약 추진했다면
거의 다 성공했다고 장담합니다. 나중에 보면 이상하게 포기한 경우는 잘
풀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반대로 되더군요. 그리고 두고두고 저의 우둔함과
우유부단한 성격을 탓했습니다. 제가 보시기에 지금이 형님이 새로운 인생을
그리기에 최적기라고 판단이 듭니다. 만약 형님께서 미곡상에 뛰어 든다면
제도 돕겠습니다.“
“자네가?”
“네, 형님께서 저를 친동생 이상으로 잘 대해 주시니 저도 형님을 저와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게 되면 저희를 모르는
체 하지 마시고 한번 기용해 보세요.“
“저희라?”
“아, 형님 있잖아요. 먼저 형님에게 인사 올린 제 친구들…….”
“아, 동철이하고 병수?”
“네네, 형님, 그 애들이 말이 없고 과묵한 성격이지만 무엇이든지 한번 일을
맡기면 끝까지 해 내는 악바리 같은 애들이에요. 그 애들이 요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데......“
“그래?”
조 영진은 지나칠 정도로 나에게 박 동철과 윤 병수에 대하여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면서 나에게 은근히 천거를 하였다.
“형님, 이 애들 한번 불러 볼까요?”
“아냐, 천천히 생각해 보고......”
“아이고, 형님도 뭘 그리 망설이세요. 내가 모른 척 하고 전화해서 오라고
할 테니 형님은 그 놈들 술 먹여 놓고 요모조모 뜯어보세요.“
조 영진은 나의 승낙이 떨어지기도 전에 박 동철과 윤 병수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달려오라고 하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예 공개적으로 터놓고 이야기 해보자. 그게 좋겠
어, 나 혼자 고민하고 정보를 수집해 보는 것 보다 동생들과 의논하고 생각해
보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지.‘
“형님, 제가 한 잔 올릴게요.”
조 영진이 기분이 좋은 듯 싱글벙글 하였다.
“자네 오늘 좋은 일 있나?”
“아니, 형님께서 제2의 인생에 대하여 결정하는 자리에 저 같이 무식한 놈을
불러 주시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렇습니다.“
“그래? 하하하 하하하........”
10분도 안 되서 박 동철과 윤 병수가 번개처럼 나타났다.
“아이고, 형님. 고맙습니다요. 저희들 같은 하찮은 것들을 불러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요?“
박 동철은 호들갑을 떨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술잔을 건넸다.
“잘 하셨어요. 월급쟁이 평생하면 뭐합니까? 정년퇴직하면 겨우 손바닥만 한
아파트 한 채 남는 걸요. 제도 IMF 때 직장을 그만 두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크게 후회는 하지 않아요. 아니면 지금도 윗대가리 눈치나 보면서 밤이면 쓰디
쓴 소주로 위장을 적시고 있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말이 별로 없는 윤 병수가 나서더니 어울리지 않게 아부성 발언을
하면서 내 눈을 맞추려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 술이나 듬세.”
“축하드립니다. 형님.”
“개업을 축하드립니다. 형님, 아니 사장님.”
“아니, 아 사람들이 김칫국부터 마시네 그려. 하하 하하하......”
“형님, 저는 부사장 자리 주실 거죠?”
조 영진이 내 잔에 술을 따르면서 눈웃음을 쳤다.
“그럼 저희 둘은 운전기사나 짐꾼자리 정도는 돌아오는 겁니까, 형님?”
“어, 그러지 뭐. 그래그래. 모르는 사람들 보다 아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낫겠지.“
“형님, 만약에 자금사정이 좋지 않을 경우 저희는 무임봉사도 각오 하고 있습
니다.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조 영진이 무임봉사까지 각오하고 있다는 말이 믿음직스럽게 들렀다.
“자, 그럼. 우리 형님의 창업과 앞으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건배를 제의
하겠습니다. 그동안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이제 제2의 인생을 개척
하시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 하시는 우리 형님과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건배!“
“건배!”
조 영진이 일어나 거창하게 건배사를 하였다. 술자리는 밤 12시가 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술이 센 조 영진은 나에게 집중 공세를 하였고 나는 거의 인사
불성이 되도록 술에 취하였다.
나는 사직서를 내기 전에 내가 대표이사로 조 영진과 박 동철 윤 병수를 각각
이사로 등록하여 법원에 법인설립 등기를 마쳤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금을 우선 투입해서 시장에 10평 남짓 사무실을 얻어 놓고 간판을 내 걸었다.
조 영진과 박 동철 윤 병수도 약간의 자금을 투자하였다.
(주)서해물산. 상호는 그럴 듯했으나 쌀과 잡곡을 지방에서 도매로 사다 소매로
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나는 아내나 주변 친인척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우선 시험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싶었다. 한 달 후 나는 25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 인생을 출발하였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 영진은 사업수완이 좋았다. 나와
윤 병수는 주로 사무실에 있으면서 인천지역 판매망 넓히는 일에 몰두하였고
조 영진과 박 동철은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을 다니며 현지에서 쌀 사오는 일을
맡았다.
퇴직금이 나왔다 2억원은 사업하는데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초창기 사업운영
자금을 대는데 충분했다. 창업한지 3개월 정도 흘렀다. 현지에서 물건을 차떼기
로 사서 실어 오는데 거금이 필요했다. 쌀은 금방환금이 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
하지 않았다. 조 영진은 소규모로 할 게 아니라 자금은 더 투입해서 좀 더 큰
수익을 보자며 각자 1억원을 더 갹출하자고 하였다. 쌀은 사오는 즉시 팔려
나가기 때문에 환전에 문제가 없었고 그 동안 열심히 뛴 결과 단골손님들도 많이
늘어났다. 나는 아내 몰래 작년에 구입한 현재 살고 있는 50평형 아파트를 담보
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다.
“형님, 처음 우려했던 것 보다 어렵지는 않죠?”
“모두가 자네와 두 아우들이 일심동체로 움직여 준 결과지 뭐. 자 수고 했어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도록 취해 보자고.“
“좋습지요.”
룸살롱의 나비 같은 아가씨들이 들어오고 밴드가 들어왔다.
“야, 이년들 너희 오늘 밤 우리 최 사장님, VIP로 특별히 신경 써서 모셔야한다.
알았냐?“
“걱정 마세요. 팁만 두둑이 주시면 귀신하고도 연애할 준비가 된 년들이라고요.
호호호호호호......“
도시의 밤은 질척거리며 시간이 정지된 듯 했다.
-계속 -
첫댓글 _()_ 어질이님,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_()_ 무공해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