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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2교시 75p ~ 131p까지 요약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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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각성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그리스
오리엔트 전제 군주들의 통치지역에서 가장 초기의 미술 양식이 생겨난 곳은 태양이 무자비하게 작렬하여 강에 연해 있는 땅에서만 식량이 생산되는 거대한 오아시스 땅이었다. 초기 양식은 수 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존속 되었다. 그러나 동방제국들과 인접한 동부 지중해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과 그리스와 소아시아반도와 온화한 기후를 가진 지역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곳은 한 사람의 통치를 받지 않았으며, 광활한 바다를 항해하며 무역과 선상 강도질로 얻은 재화를 성이나 항구에 축적해놓은 모험적인 뱃사람이나 해적왕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부유한 크레타 섬이 중심이 되었으며, 미술은 이집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크레타 섬의 역사나 종족이 정확하지 않으나 그 천 년 전에 유럽의 한 종족이 이 지역을 침범하여 정복하였고,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서만 이 장기전長期戰에서 파괴된 당대 미술의 뛰어남과 아름다움을 짐작할 뿐이다.
정복자 중에는 그리스 종족도 있었다. 이들이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때의 미술은 그 이전시대 보다 딱딱했다. 그리스종족들은 기원전 600년경에 돌로 거대한 신전과 같은 건축을 지었다. 그들은 여러 개의 작은 도시와 항구도시에 정착해 살며 경쟁과 마찰은 있어도 다른 공동체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그리스 도시 국가 중에 아티카의 아테네는 미술 사상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미술사 전체를 통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놀라운 혁명이 결실을 맺었다. 이 혁명의 시작은 기원전 6세기 무렵으로 보이며, 그 이전까지는 선조들의 신성한 규칙들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정한 옛 공식에만 따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스스로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조각가들은 특정한 인체를 표현하는 ‘자기의 방법’을 알고자 노력했다. 이집트인들이 익힌 지식을 기초로 미술 작업을 했다면 그리스인들은 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방법과 아이디어를 시도했다. 다른 작가의 혁신을 받아들이고 그들 자신의 발견에 더해 갔다. 어떤 작가는 끌을 가지고 몸체를 파는 방법 발견 했고, 다른 작가는 입상을 만들 때 두 발을 모두 땅에 고정 시키지 않는 것이 작품에 더 생동감을 준다는 것 발견 했다. 또 다른 작가는 입 모양을 약간 위로 구부리면 미소를 띄어 얼굴이 생기 있게 보인다는 것을 발견 했다. 미술가들의 실험은 실패도 있었지만 그들은 당황하거나 겁먹지 않았다.
화가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당시의 화가들은 조각가들보다 더 유명했다. 도자기에 그림을 넣기도 했다. 아테네에서는 화병에 그림 넣는 일이 주요 산업이었으며, 장인匠人들도 그 제작에 참여했다. 초기에는 이집트의 화법이 화병에 남아 있고,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두 영웅 아킬레스와 아이아스가 막사 안에서 장기를 두는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들의 몸체는 이집트 방식으로 그려져 있지 않았으며, 팔과 손도 딱딱하게 그리지 않았다. 고대의 규칙이 깨어지고 미술가들이 자신들이 본 것에 의지하자 화가들은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원근법’을 발견했다. 기원전 500년경 제작된 한 화병(81p. 도판 49, 전사의 작별)은 미술사상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을 그려 넣고 있었다. 단축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 한 점의 화병으로 인해 고대의 미술양식이 사장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집트 미술양식이 완전히 무시되고 버림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 미술가들은 인물의 윤곽을 명백하게 표현하려 했다. 전체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인체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을 많이 그리려 했다. 분명한 윤곽선과 균형 있는 구성을 선호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 형태와 단축법을 발견한 그리스미술의 대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때를 같이한다.
이 시기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이 신들에 관한 오랜 전통과 전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과 철학에 대해 인류가 처음으로 눈을 뜬 시기이며, 연극이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축제에서 발전 했다.그러나 이 시기의 미술가들은 지식 계급에 속해 있지 않았던듯 하며, 도시국가의 정사를 맡고 시장에서 끝없는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보냈던 부유한 그리스 시민은 시인이나 철학자들까지도 얕잡아 보았을 수도 있다. 미술가들은 먹고 살기 위해 손으로 일을 했으며, 주물 공장에서 노동했다. 교양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나 국사에는 참여 할 수 있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국가였기 때문이다.
이테네의 민주주의가 최고의 수준에 있을 때는 그리스 미술이 최고봉에 있던 때이기도 하다. 기원전 480년경에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파괴된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은 ‘페리클레스’에 의해 대리석으로 재건되었다. 신전의 설계는 건축가 ‘익티노스’에 위임했고, 신상의 제작과 신전의 장식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일임했다. 그러나 그 신전들은 지금 남아 있지않다.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유명한 조각 작품들이 없어진 진짜 이유는 기독교가 승리한 이유로 이교도의 신상은 어느 것이나 없애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술관 소장 조각품들은 대부분 복제품들이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의 진품들이 어떠했으리라는 짐작을 한다.
페이디아스는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였다. 그의 작품 ‘아테나 파르테노스’ 에는 품위가 보이고, 여기서 그리스 사람들에게 신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부여함을 알 수 있다. ‘아테나 여신상’, ‘제우스 상’도 그의 걸작품이다. 올림피아 신전은 기원전 470년경 쯤 짓기 시작하여 457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벽면의 헤라클레스의 전설이 조각되어 있는데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했고, 뼈와 근육의 해부학적 구조를 탐구하고, 옷자락에서도 인체의 신빙성 묘사를 이룩하도록 박차를 가했다. 옷 주름을 이용하여 인체의 중요부분의 표현방법은 지금도 형태에 관한 지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리스미술이 여러 세기에 걸쳐 찬양받은 이유는 규칙의 준수와 그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피아에 있는 신전들은 신에게 바쳐진 우승한 경기자들의 조각상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참가자들은 명문가의 자제들로서 이긴 승자는 신으로부터 무적의 마술을 받은 것으로 간주 되어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우러러 보는 대상이 되었다. 경기개최는 누구에게 승리의 영광이 돌아갔는지 알아내기 위함이며. 우승자들은 최고의 조각가에게 자신의 조각상을 의뢰했다. 그것은 신의 은총의 징표를 기념하고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화가들이 공간을 정복했다면 경기자들을 표현한 조각가들은 운동감의 표현을 정복했다. 소크라테스는 ‘감정이 육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과정을 정확하게 관찰함으로서 ‘영혼의 할동’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 말로 전달 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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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광경> 기원전700년경.기하학적 양식의 그리스 도자기높이155cm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47
아르고스의 폴리 메데스.<두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기원전615-590년경 대리석, 높이 218cm, 216cm 델포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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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두고 있는 아킬레스와 아이아스> 기원전 540년경. 엑세키아스의 서명이 있는 흑회식 도자기, 높이 61 cm, 바티칸 박물관
49
<전사의 작별>기원전 510-500년경 에우티미데스의 서명이 있는 적회식 도자기, 높이 60cm 뭰헨 고대 미술관
50
익티노스 설계<파르테논 신전> 기원전450년경. 아테네, 아크로 폴리스 도리아식 신전
51
<아테나 파르테노스>페이디아스가 기원전 447년견부터 432년 사이에 제작한 신전의 거상 <나무와 금과 상아>을 본 떠 만든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 높이104cm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52
<하늘을 이고 있는 헤라클레스>. 기원전 470-460년경. 대리석.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부분, 높이156cm,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53
<전차 경주자>. 기원전 475년경.청동. 델포이 출토. 높이180cm.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54
도판 53의 부분
55
<원반 던지는 사람>. 기원전 450년경. 미론이 만든 청동 조각을 본뜬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 높이 155cm. 로마 국립 박물관
56
<전차 경주자>. 기원전440년경.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프리즈 일부. 런던 대영 박물관
57
<기마 행렬>의 부분. 기원전 440년경.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일부. 런던 대영 박물관
58
<율리시스와 그를 알아본 늙은 유모>. 기원전 5세기. 적회식 도자기.높이 20,5cm. 키우시 국립 고고학 박물관
59
<헤게소의 묘비>. 기원전 400년경. 대리석. 높이 147cm.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그리스 조각가의 제작소>.기원전 480년경. 적회식 사발의 밑바닥에 그려져 있는 장면으로 왼쪽에는 벽에 스케치들을 붙혀 놓은 청동 주조소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머리가 없는 조각상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조각상의 머리 부분은 바닥에 놓여 있다. 직경 30.5cm. 베를린 국립 박물관. 고 미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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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세계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그리스와 그리스의 세계
자유를 향한 미술의 위대한 각성은 기원전 520년경부터 기원전 420년 사이의 백 년 동안에 일어났다. 기원전 5세기 말에 미술가들은 그들의 실력과 숙련됨을 의식하고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미술의 여러 유파들의 업적을 비교하고, 각 도시국가들의 대가들에 따라 다양한 방식과 양식 전통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유파들의 경쟁이 그리스 미술 업적을 이루었다.
기원전 4세기 최대의 미술가 프락시텔레스는 작품 속에 매력과 감미로움을 함께 담아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특성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스의 조각상들처럼 균형 잡히고 잘생기고 아름답고 살아 있는 듯한 육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인체를 미화 시키고 자연을 이상화 했다. 프락시텔레스 시대에 와서 그들의 수법은 가장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되엇다. 기원전 4세기 말에 아름다움을 파괴 하지 않고 얼굴의 표정을 살리는 방법을 발견했다. 인간의 가장 완벽한 유형들을 재현 한 것으로 후세 사람들이 칭찬하는 고전시대의 걸작들 대부분은 기원전 4세기 중엽인 이 시기에 만들어진 복제품이거나 변형물이다. 신체를 독창적으로 잘 표현했고, 신체 주요부분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방법을 취했고, 대리석 표면이 생명력을 갖고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철저하게 다듬어서 마치 살아있게 보이도록 했다.
프락시텔레스 다음세대인 기원전 4세기 말에 개개인의 영혼의 활동을 포착하는 방법과 지금 사용하는 의미의 초상을 만드는 것을 터득 했다. 알렉산더 대왕시대에 새로운 초상화법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대왕은 왕실 조각가 라시포스가 자신의 초상 조각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유명한 이 조각가의 놀라운 사실적 표현은 동시대인을 놀라게 했다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건설은 그리스 미술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스 미술은 이 제국이 건설됨에 따라 몇 개의 작은 도시국가를 벗어나 세계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의 조형 언어로 발전했다. 이 시기를 ‘헬레니즘 미술’로 부른다. 그리스 미술은 헬레니즘 시대에 변화를 겪게 된다.
헬레니즘시대에 와서는 미술이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주술적, 종교적 연관성을 상실 했던 것 같다. 미술가들은 그들의 기술 자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모든 움직임, 표정, 긴장 등을 담고 있는 그러한 극적인 싸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냐 하는 문제는 한 미술가의 솜씨를 시험하는 가장 적합한 과제였다. 부자들이 미술품을 수집하고 복제하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 저술가들은 미술가들의 생애를 글로 썼고, 기이한 행동의 일화를 수집하여 관광객 안내 책자로 만들었다. 화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종교적인 목적에 봉사하는데 보다 그들의 기술에 관한 특수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거장들은 일상생활 속의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이발소, 연극의 한 장면도 그렸다.
폼페이는 기원 후 79년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 밑에 매몰 됐다. 발굴되었을 때 이 도시는 거의 모든 집과 별장에 벽이나 원주 전망대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작고 중요하지 않은 이 도시에 그런 좋은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다는데 놀라워했다. 회화에 포함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폼페이의 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물화, 동물의 그림, 풍경화 등이다.
고대 오리엔트미술에서는 풍경이 인간 생활이나 군사적인 원정의 배경 장면으로 필요치 않았다. 페이디아스나 프락시텔레스 시대의 그리스 미술에서는 인간이 미술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테오크리토스 같은 시인들이 목동들의 소박한 삶의 매력을 발견했던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 미술가들은 도시 거주자들을 위해서 전원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 했다. 그리스인들은 초기오리엔트 미술의 엄격한 제약을 철저하게 타파하고 관찰을 통해 종래의 전통적인 이미지에다 점점 더 많은 특성들을 첨가하는 발전의 항해를 계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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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식 신전 : 에렉티움>. 기원전 420-405년경. 아테네 아크로 폴리스 박물관
61
<승리의 여신>. 기원전 408년. 아테네 빅토리 신전 주위의 난간 부분. 대리석 높이 106cm. 아테네 아크로 폴리스 박물관
62
프락시텔레스<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기원전 340년경. 대리석. 높이 213cm.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63
도판 62의 부분
64
<아폴론 벨베데레>. 기원전 350년경으로 추정. 그리스 조각상을 본뜬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 높이 224cm 바티칸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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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의 비너스>. 기원전 200년경. 대리석. 높이 202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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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두상>. 기원전 325-300년경. 리시포스의 알렉산더 초상을 본뜬 대리석 모조품.높이 41cm.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67
<코린트식 주두>. 기원전 300년경. 에피다우로스 고고학 박물관
68
<신들과 거인과의 싸움>. 기원전 164-156년경.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 대리석. 베를린 국립 미술관. 페르가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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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스의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및 폴리도로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기원전 174- 50년경. 대리석 군상. 높이 242cm. 바티칸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
70
<꽃을 꺾고 있는 처녀>.1세기. 스타비아이에서 발굴된 벽화의 부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71
<목신의 머리>. 기원전 2세기. 헤르쿨라네움의 벽화 부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72
<풍경>. 1세기. 벽화. 로마 알바니 별장
<작업 하고 있는 그리스 조각가>. 기원전 1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보석.1.3*1.2cm.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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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복자들
기원후1세기부터 4세기까지: 로마, 불교, 유태교및 기독교 미술
로마인들의 뛰어난 업적은 토목공학일 것이다. 도로나 수로, 공중목욕탕 등 건축물들의 거대한 기둥들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으로 알려진 거대한 콜롯세움 일것이다. 이 건물은 1층은 도리아 식(간소한 장중미가 특징, 남성적이다. 아폴로, 파르테논, 헤라 신전 등이 대표적임 )이고, 2층은 이오니아 식(오리엔트 세계의 영향을 받아서 여성적이고 경쾌함, 우아함이 특징이다.)이며,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알렉산더 제국 건설과 함께 등장한 헬레니즘 미술의 후기 그리스건축 미술양식. 헬레니즘 미술에서 나타난 화려한 장식적 특징을 코린트 양식이라 함)이다. 로마 건축물의 특징은 ‘아치’의 사용이며, 가장 경이적인 건물은 ‘판테온’이라 불리는 ‘만신전’ 이다. 아직 예배의 장소로 남아 있는 고전 시대의 유일한 신전이다.
이시기에 실물을 꼭 닮은 초상이 나타났는데 실제 인물을 닮은 흉상이 영혼을 보존 시켜 준다고 믿었다. 로마가 제국이 되었을 때는 황제의 흉상은 종교적인 경외감을 가지고 우러러보았다. 초상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조금도 미화 시키지 않았다.
인도의 미술가들은 로마식 방법을 채택하여 영웅을 영광되게 그려 미술 속에 남겼다. 인도는 헬레니즘이 들어오기 전부터 조각 미술이 번성했고, 불교미술의 전형이 된 불상이 부조로 처음 만들어진 것은 ‘간다라’라고 하는 지방에서였다. 로마의 미술은 인도 사람들에게 불타의 형상을 창조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유태교는 신자를 교화 시킬 목적으로 종교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기독교가 동방에서 전파되고 미술을 종교적인 목적에서 묘사하게 되었을 때 이와 유사한 사고방식들이 미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 했다. 기독교 미술가들이 그들의 구세주와 사도들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들을 도와 준 것은 역시 그리스 미술의 전통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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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 콜로세움>.80년경.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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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스 황제의 개선문>. 14-37년경. 남부 프랑스 오랑주
75
<로마의 판테온 내부>. 130년경. 18세기 화가. G. P. 판니니의 그림.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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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시아누스 황제>. 70년경. 대리석. 실물보다 큰 흉상. 높이 136cm.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77
<트라아누스 황제 기념비>.14년경. 로마
78
도판 77의 세부 : 맨위는 도시의 함락을 보여주며 중앙은 다키아 군과의 전투를 보여주고, 맨 아래는 요새 밖에 있는 곡초를 베는 병사들을 보여준다.
79
<한 남자의 초상>. 100년경. 이집트 하와라에서 출토된 미이라의 관에서 나옴, 밀랍 바탕 위에 채색. 33*17.2cm. 런던 대영 박물관
80
<출가하는 고타마(석가모니)>.2세기경. 파키스탄 (고대의 간다라)로리얀 탕가이에서 출토.48*54cm 캘커타 인도 박물관
81
<석가모니 두상>. 4-5세기경. 아프가니스탄(고대의 간다라) 하다에서 출토.석고상에 옅은 채색.높이 29cm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82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모세>. 245-56년경. 시리아의 고대도시 두라에우로포스(메소포타미아)의 유태교 회당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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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르를 거느린 그리스도>.389년경.대리석 부조. 유니우스 밧수스의 석관의 일부. 로마 성 베드로 성당 납골소
84
<타오르는 불길 속의 세사람>. 3세기 프리스킬라 지하 묘굴의 벽화. 로마
85
<아프로디시아스의 한 관리의 초상 조각>. 400년경. 대리석. 높이 176cm.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물감통과 이젤을 옆에 두고 앉아 '장례용 초상화'를 그리는 제작소의 화가>. 100년경. 크리미아에서 출토된 석관에 그려진 그림
첫댓글 와우~ 편집장님 !
서양미술사 책에서 요약해 글 올리시느라 많이 바쁘셨군요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저는 어려워 요약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감사드려요
멋져요~~편집장님~♡ ^-^♡ 저도 어려워서 요약하기 힘들었는데....진짜 애 많이 쓰셨어요...멋지십니다~~♡
고마와요!
고마와요!
우리가 한번 더 교재를
익히자는 뜻도 들어 있고,
이리 귀한 그림들 다시 보아도
귀하다는 생각이 자꾸드니
모두 한번 더 익혀요.~~ ~~
교재의 그림들 모두 요약에 넣었답니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