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왜 우리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주셨을까, 처음에는 원망스러운 생각도 들었어요. 이제는 깨달았어요. 장애아들을 위해서 보람 있는 일을 해보라는 뜻인 거죠. 가수 활동을 했던 것도 지금의 복지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 같아요. 가는 곳마다 저를 알아보고 도와주려고 해서 이 일을 하기가 다른 사람보다 쉬운 편이거든요."
지난해 9월 TV 방송을 통해 발달장애 2급인 아들 이승훈(15)군을 키우는 사연을 공개한 가수 이상우(45)씨를 21일 청담동에서 만났다. 최근 자전 소설인 '사랑으로'를 펴낸 이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연기획사 '원업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이씨가 설립을 추진 중인 장애인 복지센터가 시범적으로 들어설 곳이기도 하다.
가수 이상우씨가 아들 승훈군과 아내 이인자씨를 안고 자신의 청담동 사무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승훈군의 미소가 티없이 밝다. / 조인원 기자
숨기고 싶었을 사연을 공개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씨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말이 좀 늦는구나, 싶었는데 승훈이가 3살이 돼서야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처음 3,4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힘들지 않아요. 몸이야 지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게 됐으니까요."
이씨는 아들의 발달장애 사실을 알고 석 달간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가족을 다독거리는 아내 이인자(42 )씨의 격려로 다시 기운을 얻었다.
"승훈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헤쳐나가는 아내를 보고 놀랐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나을 것이라고 믿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 아내도 한 달 정도 절망에 빠져 있었어요. 하지만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라 곧 희망을 찾더군요."
승훈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이씨는 "방송이 나간 후 승훈이가 학교에서 스타가 됐다"고 했다. 후배 여학생이 몰래 승훈이의 주머니에 '오빠 좋아해요'라는 편지를 넣어준 적도 있다. 7살 때 시작한 수영도 꾸준히 배운다. 지구력이 뛰어나고 체력이 좋아서 비장애인들과 겨루는 수영대회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저희 부부는 승훈이를 통해서 새 세상을 봐요.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에도 감사하는 걸 배웠으니까요. 승훈이가 어쩌다 단어 하나만 제대로 발음해도 행복했어요. 가장 감동했던 순간이 승훈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예요. 다른 부모 같으면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화가 났겠죠. 하지만 어느 날 양치질 안 하고서 '했다'고 말하는 승훈이를 보고 눈물이 나올 만큼 감격했어요. 이제 내 아들이 거짓말을 할 줄 아는구나, 이제 이만큼 나아졌구나, 싶어서요."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슬픈 그림 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씨는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등 히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수 이상우'로 인기를 끌던 때와 '승훈이 아빠 이상우'로 알려진 현재 모습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 물었다.
"지금이 훨씬 나아요. 가수 활동하던 무렵에는 철딱서니가 없었어요. 승훈이 덕분에 제가 다시 태어난 거죠. 남을 위해서 사는 게 얼마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해준 게 제 아들이에요. 가장 달라진 건 부부관계입니다. 다른 부부는 '왜 저 사람이 이걸 안 해주지?' 하면서 싸우는데, 저희 부부는 '저 사람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 싸울 수가 없어요."
승훈이에게는 동생 동훈이(4)가 있다. 동훈이는 장애가 없다.
"동훈이를 낳기 전에 많이 고민했어요. 발달장애가 있을 확률이 15%라고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아내와 제가 떠난 후에 승훈이를 혼자 맡아야 하는 짐을 남겨주기도 싫었어요. 하지만 아내가 '또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키울 자신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늦둥이를 낳았죠."
이씨는 승훈이가 잘 살아갈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달장애를 다룬 해외 원서를 구해 읽고, 장애인 복지 관련 논문도 공부했다.
그가 만들 이상우 문화복지재단(가칭)은 연내에 재가(在家) 장애인을 도와줄 지원센터를 차릴 계획이다. 집에서만 지내는 장애인들이 일을 배우면서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향후에 소규모의 지원센터를 여러 곳 건립할 예정이다. 복지센터 운영에는 재단이 벌이는 공연 수익이 들어간다. 재원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돼 영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현실적 사례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중장기적으로는 1만6530~6만6120㎡(약 5000~2만 평) 규모의 어린이 생태공원도 추진 중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자연을 체험하는 현장학습 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 부지를 도(道)나 시(市)에서 제공하면 재단이 정부의 지원을 보태 유료로 운영하고, 그 수익으로 유급 자원봉사자들을 고용해 장애아들을 돌보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상우가 기획해 2월에 시작된 '컬처엠콘서트'도 오는 12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 콘서트에 지난달 빅마마와 심수봉이 무대에 올랐고 앞으로는 조수미, 윤도현밴드, 유키 구라모토 등이 등장한다. 이씨는 10회 공연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홍보비를 줄여 티켓 값도 낮췄다. 수익금은 장애인 지원센터 건립에 들어간다.
이씨는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아이를 숨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들의 시선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말들을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해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불쌍한 거죠. 어떻게 발달장애아들을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 그렇게라도 조금씩 세상의 인식이 바뀌어야 아이들이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