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보란?
중보는 기도가 아니다. 중보는 양자 사이에 서서 (intercession) 중재하는 것(mediation)이다. 마치 중보는 변호사가 소송의뢰인을 위해 중재하는 것과 같고, 대리인들이 계약시에 쌍방을 대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보는 대표가 된다는 것이며, 대표한다는 것은 다시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아담은 땅에서 하나님의 대표였고, 하나님의 중보자였다. 아담이 범죄하여 그 자리를 잠시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였다.
예수님은 오셔서 지상에 하나님의 대표, 중보자가 되셨다. 또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중보자가 필요한 인간의 대표, 중보자도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하나님이자 사람인 예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표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겐 인간을 대표하였다. 예수님은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그리고 한 손으로는 인간을 잡으시고 하늘과 땅 사이에 서 계신다.
2. 중보자이신 예수님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표, 중보자로 활동하고 계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중보할 것이다. “아버지여, 사랑하는 자녀가 아버지와 얘기하러 여기에 왔습니다. 그는 나의 이름으로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그 사이를 중보하였고 아버지께서 나아가는 길을 그에게 마련해준 것을 아버지께서 기억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구하고 싶은 것이 그에게 몇 가지 있나이다.”라고 말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실 것이다. “물론이지... 기억하고 말고. 네가 그를 우리 백성중의 하나로 만들었지. 그가 너로 인하여 왔기 때문에 그는 여기서 항상 환영받는단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할 뿐 아니라 사탄 앞에서도 중보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유일한 권세를 가지신 분일뿐 아니라 사탄이 우리를 훼방하려 할 때 그에게 “간섭하지마!”라고 소리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고 그의 의도를 훼파할 권세가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3. 예수님을 대신할 사람들
우리의 중보는 항상 예수님의 중보 사역의 연장이다. 성경은 말한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을 나타낼 중보자로 보내신 것처럼 동일한 자리에 우리를 하나님을 다시 나타낼 중보자의 자리에 세우신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중보의 기도가 항상 예수님의 중보 사역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4. 하나님 주식회사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중보자는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생산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제자들은 배달부이다. 하나님은 이미 다 생산해 놓았다. 화목은 이미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치유와 회복과 승리도 다 이루어졌다. 구원도 다 이루어졌다. 중보도 완전히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들이 풀려나오고 적용이 되도록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중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 할 예수님의 중보사역의 연장이다. 동시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노력과 사람들 사이에 서서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선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중보자로의 부름은 하나님을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풀어 놓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풀어놓는 것이다. 하나님께 필요한 인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에게 필요한 인간은 우리들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대표한 것처럼 이 땅에서 예수님을 대표하여 예수님의 일을 풀어 놓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당신의 권위로 옷 입혀서 세상에 보내신다. 우리의 권위는 보냄을 받은 자가 될 때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그 자격으로 일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말하면 실제로는 우리가 일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일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만일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계시다면 하실 일을 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의 음성이고, 그분의 심장이고, 그분의 손발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손을 얹을 때 그 손은 그리스도와 연결된 손이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풀어 놓는 그리스도의 손이 되는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더 이상 신학과 종교에 숨어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 삶의 현장에 역사하는 예수님이 되는 것이다.
5. 천국의 패턴
예수님은 승리자이고 우리는 집행자이다. 예수님은 속량자이고 우리는 풀어내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우리는 몸이다. 이것이 천국의 패턴이다. 우리의 중보의 기도가 그리스도께서 끝마치신 중보의 일을 풀어 놓는 것이다. 예수님의 일이 우리의 기도에 능력을 부여하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그분의 일이 풀어진다. 우리의 중보는 그의 일을 확장시키고 그의 일은 우리의 중보에 권한을 준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님 앞에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갈보리의 승리를 전심으로 믿으며 그것이 완전하고 최종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방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해방자를 믿는 것이며 치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치료자를 믿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십자가를 허비하는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를 고통당하게 내버려두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라고 침묵해버리고, 한 번 더 “추수할 일꾼들아... 추수할 일꾼들이 어디있느냐?”라고 탄식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한 번 더 듣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묶여있는 사람들을 풀어주자.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말해주자. 나타내자. 중재하자. 중보하자!
6. 기도의 실제
하나님 아버지, 나의 세계는 내가 경험하고, 읽은 것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그 일을 다 이루셨고 지금은 단지 내가 그것을 기도로 돌파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부풀게 합니다. 나는 그와 같은 목적과 권위를 가지고 행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것은 내가 놀라운 일들을 하여 점수를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보고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나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상처받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님을 나타낼 때 나를 인도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