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러들의 수다>를 보고-죽일 사람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 번호:162 글쓴이:최종우 조회:102 날짜:2001/10/24 01:59 ..
.. '킬러'라는 단어에 일종의 비장함을 예감할 이가 있을 지 모르지만, 이
뒤에 붙는 '수다'라는 말이나(영화제목 <킬러들의 수다>), 이 영화 감독
이 장진임을 안다면, 굳이 네 명의 사나이가 장식한 웃기고 폼 나는 포스
터를 보지 않고서도 대부분 대충 감 잡을 것이다.
<킬러들의 수다>는 장진감독의 전작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의
연장선이며 꺾이지 않는 상승 곡선의 전개도다. 다시 말하면 <킬러들의
수다>는 장진 특유의 기지와 유머, 고급 교양 잡지의 영화 언어와 능력
의 도배 위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려진 수작이다. (다시 한 번) 다시 말
하면(이번이 정말 끝이다), <킬러들의 수다>는 정교하고 재밌으면서도 메
시지의 깊은 여운을 갖는 영화다.
<킬러들의 수다>의 첫 번째 미덕은 '재미'다.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선
입견 때문일 수도 있고(그러나 절대 나쁜 것은 아님) 영화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킬러들의 수다>에 대
한 코멘트를 요청받는다면, 난 단연코 '재미(이 영화 진짜 웃겨!!)'를 먼
저 말할 것이다. 저마다 독특한 색을 가진 다양한 캐릭터들이 논리적으
로 빈틈없는 시나리오에 일사불란하게 배치돼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필연
인 상황에서 기발하고 세련된 대사를 뱉어낼 때(상황과 시간의 완벽한 시
간차!!) 배를 잡지 않는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화면분할 등
의 기법을 사용하는 감독의 재치 있는 노고(신하균이 임무를 수행 못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관객의 허파에 바람을 펌프질하는데 일조한
다. 너무 튀어 작위적으로 여겨지는 몇몇 부분이 있긴 하지만, <킬러
들...>이 제공하는 '웃음'은 뒷맛까지 깔끔한 훌륭한 세공품임에 틀림없
다.
하지만 <킬러들...>의 미덕은 단지 '재미'만으론 그쳐선 안된다. 앞에
서 말했듯, <킬러들...>의 '재미'는 캐릭터, 시나리오, 대사 등을 비롯
해 많은 것들이 빚어낸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인데, 이 '재미'를 살펴보면
<킬러들...>을 잘 알 수 있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장진 감독은 캐릭터에 일가견이 있는 듯 보인다.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비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그의 영화 속 인
물들은 색깔이 뚜렷하다. 게다가 그들은 스크린 안에 생생히 살아 있어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이러한 느낌은 <킬러들...>에도 여전한데, 네 명
의 킬러들, 검사(정진영 뿐 아니라 그의 상관까지도), 의뢰인들 등은 바
로 그 예이다. 이들의 활약을 보노라면 스크린 밖의 감독과 배우의 관계
도 느껴지는데, 실제로 장진 사단의 존재가 여전히 반갑게 나타난다(신하
균, 정재영,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 악당 등). 물론 캐릭터의 수훈을 감
독에게만 돌려선 안될 것이다. 대부분 좋은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중에
서도 신현준(상연 분)과 원빈(하연 분)의 연기는 인상에 남는다. 신현준
은 이미지 변신에 100%(+a) 성공했고(지금조차 생각만 해도 웃긴다), 원
빈은 부족하긴 해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하균은 전체적으로 좋은 연기
를 보여줬지만,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의 강한 인상 탓인지 그의 모습은 약간의 어색함을 갖게 했다.
시나리오도 흠이 없다. 킬러들을 기치에 걸고 진행되는 스토리 라인이
나 작은 에피소드들의 인과관계나 평범하면서도 세련되게 재밌고 예리한
대사는 틈을 보이지 않는다. 복선도 잘 활용할 뿐 아니라(자동차 안에서
의뢰받는 영화의 첫 장면, 상연(신현준)의 존재를 조 검사가 눈치챌 때
쓰이는 장면 등), 플롯도 기승전결이 잘 짜여져 있는데, 주의할 점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연극무대 살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킬러들...>
의 클라이맥스는 상연(신현준)이 조 검사(정진영)에게 쫓기는 씬인데, 이
것은 <킬러들...>의 진의는 (비록 화려한 액션이 있을지라도) '킬링
(killing)'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이에 대해선 잠시 후 다시 말하겠
다).
<킬러들...>은 감독의 폭넓은 역량을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에
대한 능력 뿐 아니라 전성기의 홍콩영화와 헐리우드 영화를 떠올리는 청
부살인 시퀀스들과 자동차 폭파 장면 같은 훌륭한 인용의 흔적이나 셰익
스피어의 <햄릿>을 사용하는 솜씨는 앞에서 말한 대로 '고급 교양 잡
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킬러들...>이 보여주는 감독의 면모는 '폭넓
음'만은 아니다. 영화 내내 그는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보편
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킬러다. 사람들
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하는지 난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끊
이질 않고 우릴 찾는 걸 보면 지금 사람들에게 우리가 간절히 필요한 것
만은 분명하다"란 도입부의 내레이션과 롱숏으로 잡힌 도심의 이 곳 저
곳은 현실에 대해 뭔가 말하겠다는 감독의 출사표로 여겨진다. 그리고 영
화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실제로 현실의 구석구석
을 날카롭게 파헤쳐(심지어 학교까지) 출사표를 절감케 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해결할 길을 감독은 보편적인 것에서 찾는다. 이는 상연과 조 검
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잡는 각기 다른 길을 걷
지만, 둘이 서로 통한다는 암시(화이의 옛 애인을 패는 것, 조 검사가 상
연을 잡지 않고 총상만 입히는 것, 자수하러 온 그를 돌려보내는 것 등)
는 그들이 걷는 길은 같음을 알려준다. 그들이 걷는 길은 '정의', '평
등' 같은 보이지 않고 광범위해 잡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잡아야
하는 따위의 것들을 향해 있다(상연이 갖고 있는 평범한 의뢰인들의 기념
사진, 악당을 잡으려는 조 검사의 노력을 떠올려보시라). 이러한 메시지
는 장진의 연인 '화이'에게서 분명해진다. 전작들에 비해 비중이 현저히
떨어지고 나타난 모양도 달라졌지만, 화이는 여전히 큰 존재감을 갖고 있
다. <킬러들...>에서 애인에게 버림받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 임신부(이름
이 '화이'), 그녀의 뱃 속에 있는 아기("딸이면 '화이'라고 지을거예
요"란 그녀의 대사), 상연이 도주를 포기할 때 그에게 천진한 동심을 동
하게 한 철장 너머의 소녀('화이'로 생각된다)로 나타나는 '화이'는 살인
을 포기시키고(임신부), 절망의 나락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며(철창너머
의 소녀), 생명을 잉태하고(임신부), 결코 죽지 않는다(뱃속의 아이). 이
쯤 되고 보면 '화이'는 베아트리체가 아니라 성모 마리아가 돼버린다. 그
렇기에 <킬러들...>에서 보여진 '화이'의 다양한 변주와 주인공들의 사랑
을 독차지하는 앵커우먼의 등장은 '화이'의 성모화와 극의 진행을 위해
감독이 선택한 방법으로 해석된다. '화이'를 통해 구체화한 감독의 목소
리는 조 검사에게 쫓기며 '옳다고 믿던 것이 무너질 때 흘리는 눈물'을
흘리는 상연을 통해 폐부를 파고들다가 조 검사의 정의에 대한 신념과 상
연의 동의, 킬러들의 코믹하지만 감격스런 엔딩을 통해 마무리짓는다.
그 목소리는 사람에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 희망이란, 사랑,
용기, 인내 등등(의 온갖 좋은 것)의 산물임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확실
한 해피엔딩으로 <킬러들의 수다>는 막을 내린다.
명석함과 재치에 분명한 색깔과 단호한 의지까지 갖춘 장진 감독은 개인
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감독이다. 아직까진 '딜레탄트(dilletante)'의 경
박한 오만과 얕은 깊이가 있진 않나 하는 생각에 최종적인 판단은 내리
지 않고 있지만, 이번에 나온 <킬러들의 수다>는 그가 변하지 않았으면서
도 한층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를 떠올리니 <킬러들...>을 떠올리
는 것만큼 기분이 좋아진다.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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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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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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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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