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는데 <*>
1993.06.10 글 / 이수석 회원
압구정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됩니다.
조상대대로 12대를 이어 살아오던 고향을 뒤에 두고 떠나게 될 때는 압구정의 옛 모습의 깡그리 망가지고 새로운
도시로 발전하는 것이 오히려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아내와의 금의환향을 약속하며 정착한 곳이 김포군
하성면 원산리 산 35번지에 위치한 5천여 평에 배나무 7년생 300주와 3년생 300주의 과수원으로 말이 과수원이지
지주가 서울사람으로 관리인을 둔 개간지로 척박한 황무지였습니다.
이곳에 이사한 첫날밤 4남매를 재워놓고 아내와 꼭 성공하여 다시 고향에 돌아가 옛이야기하며 살자고 굳게
약속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정착한 이듬해 부모님을 김포로 모셔와 식구는 대가족이 되었으며
여유가 없는 객지생활은 평탄치가 않았습니다. 압구정에서의 농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땅은 글자 그대로
황무지여서 과수원에 간작으로 채소와 곡식을 심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으며. 과일만은 수고한 만큼 희망을
주었으나 품종이 다양해서 수익성이 좋지 않아 수익성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기 위해 가지접을 붙였습니다.
노력한 댓 가를 꼭 돌려주는 땅의 정직함을 믿고 열심히 일하여 과일수확을 꽤 올렸으나 생각지도 않은 오일파동으로 과일값이 하락할 대로 하락하여 늘어난 것은 채무만이 눈 덩이처럼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4남매 남부끄럽지 않게 교육시켰으며 이제는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압구정의 선후배 여러분의 음으로 양으로 협조해 주신데 힘을 얻었으며 더욱 힘이 된 것은 압구정과 숙몽정(큰말 은행나무 자리에 있던 정자)의 정기를 받은 압구정의 고향주민들이 어느 곳에 살던지 꿋꿋하게 성공하여 부끄럼 없이 사는 모습에 더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은 고향이 있다는 것과 찾고 싶을 때 언제라도 찾으면 형제같이 맞아 주는 고향 분들의 고마움은 고향을 떠나본 사람만이 느끼는 기쁨입니다.
지난번 2월20일 장남인 영준이의 결혼식을 여러 고향 선후배님들의 성원과 축복 속에 무사히 마쳐 인천시 부평에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세간을 내었으며 본 회보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나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재산은 모으지 못했을지라도 착실한 기독교 생활로 세상을 바르게 사는 진리를 알았고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자녀들에게 재산보다 더 귀한 믿음을 물려주게 됨을 여러분 앞에 자랑하고 싶습니다.
긴 세월을 타향에서 살면서 고향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비록 농촌에 정착하면서 때로는 후회도 할
때가 있었지만 아내를 통해서 기독교생활을 하고 있어 부끄럼 없이 세상의 밝은 빛 가운데 살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은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며 이곳 주민들은 물론 면민들에게도 큰 힘이 되는 길잡이가 되어 감을 큰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곳에 이주한지 6년째 되던 해부터 3년간 동리 이장 일을 보았고 현재는 개발위원으로서 이 고장 발전에 중추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개발의 물결로 공장이 난립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대변자로 나서서 주민들의
재산 지키기에 앞장서는데 힘쓰고. 한편으로는 내 농장에 화원을 대대적으로 시작하여 본업을 삼아 이제는 생활을
안정감 있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선후배님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향우회를 이끌어가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타향에서
고향걱정을 하며 마음 아픈 것은 아직도 향우회사무실이 정착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때입니다.
제 꿈이 있다면 향우회사무실을 마련하는데 저의 조금의 재물이라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하루속히 왔으며 하는
것입니다. 향우회 모든 회원들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협조와 격려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분들이 있는 한
우리 향우회는 영원할 것이며 사무실을 구입할 날이 꼭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