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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낮은 곳에서 삶을 응시하며 인간 존재들 속의 응어리진 아픔을 그려내는데 온 삶을 바친 루오(Geroges Roualt, 1871~1958)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미술 시간을 통해서였다. 그후로도 나는, 어릿광대, 창녀, 서커스 단원, 무희 등의 소외된 사람들을 그림 속에서나마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준 루오의 작품을 접할 때면, 쓸쓸한 슬픔에 젖곤 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은 내 간절한 소망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올 초여름이 되어서야 대전미술관에서 마침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게다가 소문만 요란한 해외 거장들의 알맹이 빠진 국내전시회와는 달리, 이번 루오전에서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루오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비롯해 프랑스 및 일본 사설 컬렉션이 소장한 작품까지 무려 240점이 선보이고, 그 중에는 그토록 내가 보고 싶어했던 동판화 연작 <미제레레(Miserere)> 58점 모두가 포함되어 있으니, 대전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첫영성체를 모시기 위해 제단으로 향했던 열 두살 소녀의 설레임으로 들떠 있었다.
연작의 제목 <미제레레(Miserere)> 는 4세기 라틴어 번역본 ‘불가타 성경’의 시편 구절인 ‘미제레레 메이,데우스(Miserere Mei, Deus: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오는 자신의 <미제레레>연작을 위해, 그가 직접 지은 싯구나 성서에서 뽑은 싯구를 각 에칭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고개를 숙인 예수의 모습을 담은 첫 작품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시작되어 가시면류관을 쓰고 피흘리는 예수의 얼굴을 새긴 마지막 작품 ‘그 분의 상처로써 우리는 치료되었네’에 이르기까지의 총 58점의 동판 에칭 작품들은 1차 세계대전을 몸소 경험한 그의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의 철학을 담고 있다. 전쟁에 시달린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과 사회의 부조리를 인간 예수의 고통에 비유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 58점의 역작들은 한결같이 나로 하여금 연민과 우수를 느끼게 했다. 처음 이 판화집을 구상했던 1914년, 루오는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전쟁에 시달리는 인간 군상들의 비참한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통해 고찰하기 위해, 묵상과 같은 경건한 자세로 <미제레레 에 게레(Miserere et Guerre: 미제레레와 전쟁)>라는 제목의 동판화 작품집을 착수하였다고 한다. 100점이 넘는 밑그림을 인디아 잉크로 그리고 1921년부터 동판에 옮겨 제작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 후 1927년에야 최종 완성된 이 연작은, 2차 세계대전과 출판업자의 갑작스런 사고사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1948년 종전 후에나 비로서 판화집 <미제레레> 로 출간되게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루오를 좋아했던 시인 김지하는 <미제레레>를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고 고통 속에서 은총을 비는 것’이라 해석하면서, 루오를 비천한 삶과 존엄한 삶을 결합한 빛의 화가라 칭송했다고 한다. 많은 화가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추상의 세계로 도피하여 야수파, 입체파와 같은 화단에 속해 활동하던 시절, 홀로 순례자의 가시밭을 헤쳐나간 루오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평생지켜나가면서 후세 사람들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이번 전시회의 타이틀이기도 하다)’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앞에서 나는, 음울한 풍경 위에 둥글게 떠오르는 은총의 해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한 사내의 외로운 모습이야말로 순례자요 선승 같은 루오 자신이 아니였을까 싶어 자꾸만 우울해졌다. 다행이 함께 동행했던 친구는 화두를 던지는 한 점 한 점의 그림 앞에 멈추어 서서 작품과 영적인 교류를 하는 듯 보였지만, 함께 하고 있는 나란 존재를 무시당한 것만 같아 알량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어, 토라진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홀로 전시장에 남겨두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날이 우리 만남의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런 예감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많이 아껴주지 못한 옹졸했던 나의 이기심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건되 슬픔은 한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타인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갖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왼쪽의 작품은 <미제레레> 연작 중 하나인 ‘누군들 가면을 쓰지 않을까?’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때 사랑에 눈이 멀어 달콤한 밀어를 속삭였던 연인들의 열정이 시들해진 자리에 대신 자리잡은 편암함을 ‘사랑의 부족’으로 오해하는 어리석음은 계속 무거운 가면을 쓰고 있으라는 강요에 다름아니라는!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내가 받고 싶은 것만 갖고 싶어 떼쓰는 유아적인 이기심이 만들어낸 가면 쓴 너의 허상만을 쫓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임을! 이렇게 깨닫고 나니 그의 가슴에 내가 남긴 사랑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따듯한 연민으로 어둠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고립된 영혼들에게 한 줄기 햇살을 보여주려 노력했던 루오가 <미제레레(Miserere)>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다름아닌 어리석었던 나와 그런 나로 인해 무척이나 외로웠을 그를 위한 간절한 기도문이 아니었을까?
얼마전 한국을 찾은 헬렌 옥슨버리의 그림책『곰 사냥을 떠나자』의 글작가인 마이클 로렌의 글에 안데르센 상 수상 작가인 쿠엔틴 블레이크의 그림이 전하는 슬픔의 이야기는 바로 작가 마이클 로렌이 그의 삶에 가장 큰 상실감을 안겨준 아들 에디를 그리워하며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려 노력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슬픔이 너무 클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말해버리고 싶어져 누구든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그와는 반대로 그 누구에게도 말할기 싫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아파한다. 그러다 슬퍼 미친 척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탁자를 쾅 내려치기도 하고,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행복했던 때와 비교해 너무 달라져버렸기 때문에 마음 속 슬픔 주머니가 터지면서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슬픔이 자신에게 큰 상처를 남길까 두려워 슬픔 곁을 피해가는 사람들도 있다. 애써 즐거운 생각만 떠올리려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나만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하고, 몰두할 꺼리를 찾아 오락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책은 ‘슬픔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또한 책은 ‘슬픔은 어디에나 있고, 어느 곳에서든 나타나 우리에게 온다’고 대답하면서, 슬픔에 휩싸인 작가의 마음을 한 편의 시로 보여주고 있다.
슬픔은 깊고 어둡네
침대 밑 공간처럼
슬픔은 높고 가볍네
머리 위 하늘처럼
슬픔이 깊고 어두울 때
감히 거기에 갈 수 없네
슬픔이 높고 가벼울 때
엷은 공기가 되고 싶네
슬픔은 분명 어둡기에 두렵고, 두렵기에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슬픔이 가볍게 날아가 버릴 풍선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작가는 차라리 자신이 풍선처럼 가벼운 존재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었노라고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애통한 상실감을 절절히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책은 슬픔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슬픔이 우리를 집어삼켜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한, 슬픔의 얼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슬픔의 원인을 헤아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에디와의 좋은 기억을 따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나선 작가는 학예회에서 노인 역을 하던 에디를, 소파에서 베개 받기 놀이를 하던 에디를 회상해낸다. 그리고 에디가 가장 좋아했던 생일 케이크, 그리고 촛불…. 작가는 촛불 켜놓은 어두운 방에 비록 외톨이로 턱을 괴고 앉아 텅 빈 벽을 스쳐 지나가는 지난 세월의 에디를 바라보고 있자면 무척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도 그림자로만 일렁이는 에디가 자신의 마음에 차츰 들어와 늘 함께 하는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충분히 깊은 밤 숨겨진 채로, 숨겨진 채로,
그것이 내 속의 빛과 희망이라면
내게는 장려하게 보이는 태양이
어찌 삶의 환희를 괴롭히는가
그것은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
미제레레, 미제레레
이 삶의 즐거움
아직은 없도다!
(주케로와 보노가 함께 작곡한 Miserere 중에서)
한 때 그의 눈을 부시게 할만큼 찬란했던 태양은 그에게 다시 떠오를 것 같지 않았을 것이다. 이태리 출신의 락음악 작곡가 주케로와 U2의 멤버였던 보노가 함께 작곡한 <Miserere>의 노랫말처럼, 보첼리는 그에게 찾아온 절망감에 희망을 포기한 채, 아직은 삶의 즐거움이 당도하지 않았노라고 수 천, 수 만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어둠 속에 갇혀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은 밤 숨겨진 채로, 숨겨진 채로’만 자신의 재능과 꿈을 외면하면서 지내기에 그가 기억하는 태양의 빛은 너무나도 선명했을련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세상의 환희를 향해 스스로의 아픔을 딛고 자신의 우물 밖으로 나왔다. <Miserere>의 녹음에 참여할 테너를 찾는 오디션에 참가한 보첼리의 데모 테이프를 들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보첼리의 음색이야말로 왕년의 대 테너 카를로 베르곤치를 연상시킨다며 그를 적극 추천했다. <Miserere>의 첫 녹음은 주케로와 루치아노 파바로트의 이중창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곡이 실린 음반의 반응이 폭발적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라이브 공연을 원했다. 바쁜 공연 스케줄에 시간을 낼 수 없던 파바로티는 자신 대신 보첼리를 무대에 보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의 나이 34살이 되던 1992년의 일이었다. 12살에 시력을 상실하고 ‘이 삶의 즐거움 아직은 없도다!’라고 노래했던 그에게, 22년 후 무대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열렬한 관중의 사랑은 찬란한 태양이 되어 새 삶의 환희를 맛보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1996년 주케로와 함께 한 <Miserere>가 담긴 그의 3집 앨범 음반 <<ROMANZA>>의 주옥 같은 곡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업적 성공보다 보첼리를 기쁘게 해준 것은 당연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슬픔’ 극복하고 어둠 속에도 형형한 은총의 태양이 비친다고 믿으며 자신의 슬픔을 극복해 낸 내면의 힘을 인정받게 된 데 있지 않았을까?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고 고통 속에서 은총을 비는 것’이라고 루오의 <Miserere>를 감상한 시인 김지하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안드레아 보첼리만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내가 보첼리의 <Miserere>를 들으면서 느꼈던 회화적 서정성과 루오의 <Miserere> 동판화 연작을 보면서 느꼈던 색채의 음악성은 어둠을 성찰하는 구도자로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슬픔만큼 깊이가 있었다.
첫댓글 보첼리가 좋아졌습니다...전 저런 사람들을 좋아해요. 어둠을 극복한 빛은 더 눈 부신 법이죠. 정말..보첼리 멋진 사람!
어제 영화 '레이'를 보았는데요, '레이'는 충격(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보았네요)때문에 7살에 눈이 멀죠. 눈 안보이는 사람이라고 괄시하고 속이는 사람들 틈에서도 잡초에서 연꽃으로 피어나죠. 그런데 약이 문제예요. 예술가들에게 약의 문제..... 꼭 욕할 수도 없을 듯하긴 하지만! 덥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