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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통영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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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 남해 금산보리암, 상주해수욕장...통영 남망산공원, 수산과학관....
언 제 : 2004년 8월 6일 ~ 8월 8일
누구와 :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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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날(6일) 오후에 남해에 가서 자고 토요일날(7일) 새벽에 차를타고 금산
8부능선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금산 정상 망대에 올라가 일출을 보았다
금산 일출은 사람의 마음을 취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세상의 힘든 일을 다 잊어 버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일출을 기다린다
새날 새 희망의 염원을 실어서 붉게 떠오르는 해를 맞는다...
붉은 불덩이가 바다에서 솟아오른다....아.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눈이 부셔서 계속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떠오르는 불덩이....
아... 아름답다을 연거푸 소리내는 사람들....
빼어난 경치와 남해의 금강, 동물 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동물원으로 불리는 금산.
쪽빛 바다와 초록빛 들녁의 조화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으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금산 정상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 가장 유명한 보리암이 있다.
또한 금산은 바위마다 불교에 얽힌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고 보리암은 대장봉·형리암·
화엄봉·일월봉·삼불암 등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있다.
보리암에는 두 가지 사찰 연기설화가 전한다. 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화다.
장유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이다. 그런데 중인도의 아유타국 공주가 허씨성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아유타국이 멸망하여 인도와 인접해 있는 중국으로 옮겨와 있을 때,
중국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공주의 삼촌인 장유선사가 인도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 사이에서 열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 왕자를 장유선사가
데리고 출가를 했다는 것이다. 일곱 왕자를 데리고 출가한 장유선사가 거쳐간 곳은
영남일대에 많이 있는데 김해의 장유암은 그 확실한 사적지이고, 가야산과 지리산의
칠부처가 모두 장유선사의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장유선사가 처음 찾아든 곳이 가락국이 자리잡고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이 금산 보리암이라는 것이다.
장유선사는 금산의 천태망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원효대사 창건설이다. 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산의 승경에 끌려 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방광(防光)하는 듯 빛났다고
한다. 초옥을 짓고 수행을 하던 원효는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에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으며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고장. 해안의 절경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섬마을 남해. 남해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산이 금산이다.
금산은 온갖 전설이 담긴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석가세존이 돌로 만든 배를타고 오른쪽으로 나가 세존도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을
지닌 쌍홍문,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상사암,
가까이서 보면 日字, 멀리서 보면 月字로 보인다는 일월봉,
한두사람이 흔들어도 쉽게 흔들거리는 35t무게의 신비한 흔들바위,
태조 이성계의 건국신화가 담겨있는 부처님 좌상 같이 생긴 삼불암,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좌선하던 좌선대,
두 마리의 돼지를 닮은 저두암과 코끼리바위,
용과 호랑이가 구슬을 가지고 노는 형상인 용호농주암,
돌로 두드리면 장고소리와 같은 풍악소리가 들리는 음성굴,
용이 살다 승천했다는 길이 50m의 용굴,
그리고 향로봉과 촛대봉, 대장봉...
한려수도의 절경을 사방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인 금산(681m)은
어느것 하나 나무랄데 없는 비경 38경이 숨어 있다.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등 너무나 아름다운 산이다..
보리암에서 등산로 입구로 약5분 정도 내려가면 금산 38경 중 제1경으로 불리우는
쌍홍문이 장엄하게 버티고 서 있다. 이 쌍홍문은 석가 세존이 금산에서 득도를 하고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인도로 가기 위해 무념무상으로 걸어 가는데 산이 가로 막고
있다가 갑자기 웅장한 바위에 무지개 같은 구멍이 생기면서 석가세존이 가는 길을
열어 주어 세존도를 통하여 인도로 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세존은 무지개빛 바위 문으로 나가 40km나 떨어져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 갔다. 이 때 세존도 한복판에는 해상동굴이 만들어졌다.
남행의 벽파(碧波)에 발 등을 씻으며, 허리에 구름띠를 두르고 서 있는 금산의 이마에
자리잡고 앉아, 망망한 남해의 하늘 끝을 내려다 보고 있는 보리암의 '보리'는 '깨달
아 도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유서 깊은 사찰들은 대부분 깊은 산속의 울창한 산림 속에 세워져 있는데, 보리암은
유독 신선들만이 내려 쉬었을 것으로 느껴지는 금산의 영봉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보리암에는 기단석 위에 나침반을 올려 놓으면 불가사의한 '자기난리'가 일어나는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싣고온 파사석으로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하고 있지만, 탑의 형태로 보아서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 맞은편에 상주해수욕장과 망망한 대해를 은은한 미소로 내려보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해수관세음보살은 우리 민족에게만 숭상되어온 관음보살으로 알려져 있다.
해수관음보살은 보리암에 오는 많은 중생들이 소원을 풀기를 바라는 뜻에서 모신 것이다.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으로 소문난
사찰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깨달음의 종교이지만 구원의 종교인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불교의
수행자들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어려운 수행에 힘쓰지만 대부분의 중생은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처님이나 보살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렇게 중생의 깨달음을 도와주는 불보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널리 숭배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관세음보살이다.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늘 외우고 항상 마음
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예배하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되며 현세에서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음신앙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져 나가기 시작해
서기 6세기말에는 신라 백제 등 삼국에 모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 시기부터
관음보살상이 대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삼국유사' 등에도 관음신앙의 기록이 많이
발견된다.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3대 성지, 즉 3대 기도도량은 남해 보리암,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이다.이들 세 곳은 모두 신비한 창건설화와 많은 영험담이 전해져 내려오며
오늘날에도 불교 신도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기도도량이다.
바라보는 곳마다 아름다운 바위들... 남해바다인 상주해수욕장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을
이루는 곳이었다
금산의 망대, 상사암, 일월봉, 흔들바위, 보리암, 제석봉, 쌍홍문, 삼층석탑등을 구경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남해시내에 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남해대교를 구경하러 갔다
남해대교는 남해도를 육지와 연결시킨 길이 660m, 교각높이 80m, 폭 12m의 현수교인
아름다운 다리이다
남해대교 옆에는 남해 충열사가 있으며 충렬사 앞 바다에는 거북선을 실제 크기와 같이 만들어
놓고 직접 거북선 배에 들어가 견학을 하게끔 해 놓았었다
거북선을 구경하고 충렬사에 올라가 충렬사를 구경하고 해안일주도로를 타고 사촌해수욕장에 갔다
사촌해수욕장은 조그만한 해수욕장으로 가족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옷을 입은채로 좋아하면서 바다에 뛰어 들었다
2시간정도 아이들이 해수욕을 하고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렸다
남면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가천 앵강만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곳에
가천 암수바위가 나온다
가천암수바위는 마을 안에 있었는데 주차장이 좁아서 주차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가천 암수바위는 일명 가천미륵불이라 한다. 조선 후기 여성들의 구원처였던 미륵신앙이
담긴 문화재이다.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천재지변을 막고, 풍어를 이룰 수 있다고 전해진다.
바위의 크기는 숫바위 높이 5,8m, 둘레 2.5m, 암바위 높이 3.9m, 둘레 2.3m의 선돌의
형상으로 숫바위는 남성의 성기형상이며, 암바위는 아기를 밴 여인의 형상이다.
또한 가천 미륵불이 있는 가천마을 앞에 탁트인 망망대해와 옹기종기한 계단식 논밭이
선조들의 고된 삶과 숙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남면 숙호부터 평산까지 약 15km의 남면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평산 암섬, 항촌, 선구,
가천 해안 등 앵강만과 남면 해안의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남면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서포 김만중의 유허지인 노도가 나온다
노도는 김만중이 한글소설을 꽃피운 삿갓 모양의 섬인데 배를 타야 갈수 가 있었다
도로에서 멀리 삿갓모양의 노도를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노도는 남해의 유인도 3개 중 하나로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서포는 이곳에서 어머니를 그리는 사씨남정기를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노도에는 서포 김만중 선생이 한글소설을 집필하던 집터와 선생이 손수 팠다는 샘터, 그리고
유허비가 남아 있다. 샘터에는 아직도 맑은 물이 솟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남해는 김만중 선생 외에도 화전별곡을 노래한 자암 김구 선생 등 많은 유배객들이 문화의 꽃을 피웠던
유서 깊은 곳이다. 노도에는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문학탐방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에게 아주 유익한 곳으로, 앵강만과 남해바다의 푸르름이 서포
선생의 문학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면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남해에서 가장크고 아름다우며 금산의 절경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금빛 백사장 상주해수욕장이 나온다
차를 식당앞에 잠시 주차해 놓고 해수욕장을 가 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금산의 산세가 반달모양을 이루면서 만들어낸 둥근 천연호수인가? 아름다운 상주해수욕장의 수면은
잔잔하고 자연의 미소처럼 조용해 가족들의 피서지로는 안성맞춤이다.
상주해수욕장은 남해의 거센 파도를 막아 주는 섬을 품고 있어 파도가 잔잔하고 주변 곳곳에서
낚시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썰물 때는 해안에서 작은 바다 생물들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는 곳이다.
우리가족은 아름다운 상주해수욕장구경하고 아쉬움을 달래면서 다시 차를 몰고갔다
상주해수욕장에서 조금가면 송정해수욕장이 나온다
송정해수욕장은 주차장을 생태주차공원으로 만들어 놓아서 주차장이 과일나무로 되어 있었다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만드는 생태주차공원....
해변의 단애들이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 송정해수욕장은 금포해안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고 있다. 백사장 길이 2km정도는 되어보이며 폭이 넓고,
부드러운 은빛 모래, 거울같이 맑은 바닷물과 100년 이상된 해송이 길게 자리잡고 있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생태주차공원을 구경하고 비포장도로를 조금가다보면 어업전진 기지인
아름다운 미조항이 나온다
미조항에서 점심식사로 해물탕을 시켜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미조항에서 조금가면 물미해안이 나오는데 멀리 도로에서 주차를 해 놓고 보았는데
섬들과 해변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물미해안을 조금지나면 물건 방조어부림이 나온다
물건방조어부림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 지켜주고 고기 모이게 하는 나무이며 해안은 몽돌
해안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미조항에서 물미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가면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해안절경을 이루고 있다
물미해안에서 조금가다보면 창선교가 나온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지족해협에 건설된 창선교는 창선면 지족마을과 삼동면 지족마을을
잇는 길이 440m의 다리로 95년 12월20일 개통되었다고 한다.
창선교 근처에는 원시어업죽방렴이 옛날과 같이 만들어져 있어서 지금도 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죽방렴과 어우러져 물속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 빨갛고 예쁜 창선교를 보고는 이내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다.
원시성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박아 주렴처럼 엮어 만든다.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 원시적으로 고기를
잡는 방법으로, 지족 해협에 24통이 남아 전국에서 가장 많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다.
이곳에서 잡힌 생선은 최고의 횟감이다.
물살 빠른 바다에 사는 고기는 탄력성이 높아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냉동 생선이나 참치통조림,
주어지는 먹이로 배를 채워 유영을 잃어버린 가두리 횟감 따위에 익숙한 사람들은 죽방렴
멸치회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남해 답사에 만족할 것이다.
죽방렴은 지족마을에서 하차하여 창선교 위에서 보면 양쪽에 모두 설치되어 구경하기가 좋고, 해안을
따라가면서 볼 수도 있다. 지족해협의 양쪽 해안은 낚시가 잘되고 고기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창선교와
죽방렴이 엮어내는 현대와 원시의 절묘한 조화는 최고의 볼거리가 된다.
죽방렴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몰을 보면 좋으련만 갈길이 바빠서 차에 몸을 실코 삼천포대교로 갔다
삼천포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큰 현수교로 3개 섬 이어주는 4개의 다리중의 하나이다
남해대교에 이어 남해섬을 뭍과 연결시켜주는 제2의 교량. 총연장 3.15km의 창선·삼천포대교는 2003년
4월 완공을 하였다. 4개의 섬을 잇는 각기 다른 4개의 아름다운 교량으로 이루어진 창선·삼천포대교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삼천포대교 아래에는 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가족은 공원에서 잠사 휴식을 하면서 빨갛고 아름다운 삼천포대교를 감상하였다
삼천포대교를 지나면 사천시가 나온다.. 옛날에는 삼천포였는데 언재부터인가 사천으로 바뀐곳이다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사천시내를 지나 통영까지 가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다
벌써 어둠이 짖어오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달아공원에 가서 일몰을 보려고 하였는데 삼천포대교
공원에서 시간을 지쳬하는 바람에 일몰을 못봐서 아쉬움이 남았다
통영에 도착하여 숙소인 모텔을 정해놓고 항남식당에서 우짜를 먹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인터넷을 보고 알았는지 통영에 가면 꼭 우짜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짜는 항남식당이 맛있는데 일요일날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늦게라도 꼭 우짜를 먹기위해 모텔에서 물어보니 가르쳐주어서
바로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우짜는 우동면을 짜장국물에 말아서 먹는 것인데 색다른 맛이 있었다
우짜를 먹고 생선회와 술집으로 유명한 해저터널근처에 있는울산다찌를 택시를 타고 갔다
울산다찌는 맥주5병이 기본으로 기본안주가 나오며 맥주를 추가로 시키면 또다른 안주가
나오는데 맥주 5병을 다 먹고 1병을 더 시키니 살아있는 오도리(대하) 2마리가 나왔다 .
맥주 한병에 6천원이고 소주 한병에 1만원인데 기본이 3만원인 것이다
아이들 음료수를 합해 4만원을 술값으로 지불하였는데 글쎄 배가 고파서 그런지
그런대로 ?ダ? 있었는데 ...? 생각보다 다운...
울산다찌에서 나와 바로옆에 해저터널로 통영운하을 건너갔다.
땅을 파서 굴을 뚫었다는 의미인데 사투리로 판데굴, 폰데굴, 폰디굴로 불리는 해저터널은,
옛날에는 통영시내와 마주보는 미륵도와의 바다목인 판데목을 건너가기 위하여 메웠다가
다시 파내어 돌다리를 놓아 겨우 인마(人馬)가 통행하고 다리 밑으로는 작은 배가 다녔었다.
1932년 12월까지 5년 6개월 동안 판데목을 넓히고 그 밑을 파 내어 길이 461m, 너비 5m,
높이 3.5m의 콘크리트 터널을 만든 것으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 이다.
이 터널은 당시 미륵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 수단으로 차량이 통행 하였으나
충무교가 완공되고 난 뒤부터는 도보로만 통행이 가능하다.
터널 양쪽 입구 이마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뜻은
"용문 을 거쳐 산양(山陽)에 달한다" 라는 뜻이라 한다.
일본인들이 그 많은 경비와 시간, 인력을 동원해서 해저터널을 건설한 이유 중에 하나가
임진왜란 때 자기 선조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 원혼이 떠도는 그곳을 위로 지나 다니지 말고
밑으로 다니라고 만들었다는 뒷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조선인들은 그 일본의 원혼들을 밟고 다니기 위해서 운하교를 건설하였다고 하니
두 민족간의 앙금이 얼마나 깊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해저터널을 지나 택시를 타고 숙소에 와서 캔맥주 한병먹고 꿈나라로....
다음날 혼자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 새벽시장인 서호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서호시장은 어민들이 직접 잡은 해삼물과 어패류들을 가지고 와서 팔고 있었다
통영에가면 멸치를 꼭 사야지 하면서 왔는데 마침 아주머니들이 말린 멸치를 팔고 있었다
제일좋은 멸치 2박스를 샀는데 가격이 아주 저렴하고 맛이 있었다...
다시 시장에서 아이들 보양에 좋다는 살아있는 문어를 4마리 샀는데 가격 또한 저렴했다
숙소로 오는길에 뚱보할매김밥집에 들러 충무김밥을 2인분 사서 숙소에 와서 아침을
라면을 끓여 놓고 김밥과 ?ダ斂? 아침식사를 하였다
통영에서는 제일먼저 남망산공원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통영항을 끼고있는 남망산 공원은 시민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다.
남망산 공원으로 오르며 보면 통영항에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와 더불어
오밀 조밀하게 섬들이 수를 놓은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한 조각을 볼 수가 있다.
그런 만큼 바다 쪽으로 도드라져 나온 이 산은 통영시를 스쳐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쯤 올라 봄직한 곳이다. 멀리 한산도가 보이며 동호만과 도남관광단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남망산 꼭대기에 올라 공원 안을 한차례 둘러 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바다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눈에 띈다.
어떤이는 공의 다른 동상에 비해서 작고 초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동상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렇고 1953년에 세워진 이 동상은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점이 그렇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의 실측에 가장 근접하게 만들어 진 것이 특징이며 다른 동상들은 정면을 향해
있으나 본 동상은 몸은 정면으로 향하고 있지만 얼굴은 좌측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가까이는
제승당을 바라보고 있으며 멀리로는 일본이 쳐 들어 오는지를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요즘같이 일본의 끊임없는 독도의 영유권 발언과 한국 어선들에 대한 강압적 행위와 역사왜곡
등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남망산에 오르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유심히 바라보기 바란다.
일본을 향해서 쳐다보고 있는 그 눈빛과 긴 칼을 불끈 쥔 손을 확인 하시기 바란다.
동상 옆에는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지은 "한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남망산에 오르면...남녘남(南) 바라볼망(望), 저 멀리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인
남망산에 오르면, 제일 먼저, 전수회관 앞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벤취에 앉아서 통영항을
바라 보아라.
모름지기 유치환 선생이 보았을 에메럴드 빛 하늘이 바다에 떠 있을 것이다.
그 바다가 네게 희망을 줄 것이다.
유치환 시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 ! 누구인가 ?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으로 구성된 야외 조각 공원은 5,000여 평의 부지에 바다와 육지가 조화된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한 작품마다 예술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미지 세계를 향한 희망과
안식 감을 일깨워 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든 조각작품에는 작가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 중에 유난히 바다와 조화를 잘 이룬 아름다운 작품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그 작품에는 작가의 이름이 없었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것이 조각작품인지 감나무인지…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조각품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남망산공원에 올라갔을때 날씨가 무척 더워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남망산 조각공원과 충무공 이순신 시비와 동상을 구경하고 산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세병관에 갔다
세병관은 경남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건물로 2002년 10월에 국보 305로 승격 지정된 건물이다
정면 9칸 56자, 단층 팔작지붕. 1603년(선조)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완성된 이후에는 삼도수군 통제사영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평화를 갈구하고 전쟁을 종식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의 마지막 두 구(句)에서 따왔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의 시에
"어찌 하면 장사를 얻어서 /
하늘에 있는 은하수를 끌어와 /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어서 /
다시는 전쟁에 쓰지 않도록 할까 ?"
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병기를 깨끗이 씻는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말인 "세병"을 따다가 이름을 붙인 집이 세병관이다.
한국에 현존하는 목조 고 건축 중에서 경복궁 경회루나 여수 진남관 등과 함께 평면 건물이
큰 건물중에 하나이다. 4면이 모두 개방되고 내부도 막힌 벽이 없이 기둥만 정연하게 배열되었다.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에 각각 고주를 한 줄로 세워 그 위에 대량(大樑)을 걸쳤으며
이 고주와 변주는 태량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건물 측면의 가운데 있는 기둥에서부터 대량에 걸쳐 충량이 배치되었다. 내부 천장은 연등천창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중앙 후면은 한 단 높은 단을 만들었다. 이 단 앞에도 기둥을 한 줄로 세워
그 위의 대량을 중간에서 바쳤다.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였으며 그 구성은 외목(外目) 도리를
받힌 2익공집의 형식과 비슷하나 쇠서의 형태는 다포집의 형식과 같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화반을 받히고 있다.
세병관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안에 "두룡포기사비"가 있는데 이 비석은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이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 통제영을 설치한 치적을 새겨놓은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이다. 이 비는 인조 3년(1625년)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는데,
당시 창원 대도호 부사 박홍미가 지은 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慧眼)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세병관 앞에는 통영 향토역사관이 있다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가 있는 곳이다.
향토역사관에는 총2천 5백여점의 향토관련 소장유물 가운데 약 천여점의 유물을 시대별 각
전시실에 상설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아래와 같이 구분 되어져 있다.
선사,고대,중세 전시실
임진왜란 전시실
통제영 전시실
통제영 12공방 전시실
일제 강점기 전시실
중요 무형문화재 전시실
특히 통제영의 12공방(工房) 전시실에는 부채,갓,동구리,탕건,그림,목가구,장석,화살 및 화살통,
나전칠기,말안장,금은장구,가죽,신발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지방의 외공방으로는
그 규모가 제일 컸을 뿐만 아니라 가장 정교하고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기로 이름났었다. 그 맥은
오늘에 이어져 통영의 전통공예로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
향토역사관에서 미륵도쪽으로 조금가면 통영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는 팔사품(보물 제440호)으로 유명하다.
명 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이순신장군의 전공을 명나라
황제에게 보고하자, 황제 신종이 장군에게 보내 온 물건들이다. 도독인(都督印)을 제외하고
모두 한 쌍씩 인데, 그 중의 한 벌과, 도독인 모조품을 아산 현충사로 옮겼다.
그 내용은, 1).도독인 1개:동으로 만든 도장. 2).호두령패 1쌍:한쪽에 검은 칠을 하고 "令(명)"
자를 새긴 다음 붉은색으로 메웠고, 다른 쪽에는 분칠 을 하고 "大將(대장)" 의 두 자를 썼다.
나무로 만들었고 녹피 갑에 넣었으며, 갑에는 표범을 그리고 역시 녹비로 끈을 달았다.
3).귀도(鬼刀): 칼의 전체길이는 137.9cm.칼자루는 박달나무로 만들고 용두를, 그 아래에는
귀두(鬼頭)를 새겼다. 칼집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종이로 싸서 붉은 칠을 한 다음 채색으로
용의 비늘을 표현하였다. 4).참도 1쌍: 칼자루는 상어껍질로 싸고 붉은 칠을 한 다음,
쇠가죽 오라기를 감았다.칼집은 나무로 만들고 쇠가죽으로 싸서 붉은 칠을 하였으며,
은도금을 한 쇠로 장식 하였다. 5).독전기 1쌍: 남색 비단으로 만듬. 6).홍소령기(紅小令旗) 1쌍:
붉은 비단으로 만들고 남색 비단으로 "令" 자를 붙혔다. 7).남소령기(藍小令旗) 1쌍.
8).곡나팔 1쌍: 구리로 만들었고 나팔입은 퍼졌으며 4마디로 되어 있다. 붉은 줄을 달았고,
목이 구부러져 이런 이름이 붙었다.
통영 충렬사는 1606년(선조 39년) 이운룡 제7대 통제사가 왕명으로 이 충무공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이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다.
"忠烈祠" 현판은 1663년에 현종이 사액(賜額)한 것으로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경내에는
이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 및 내삼문을 비롯 한 5섯개의 문과 강한루, 전시관 등이 있다.
이 곳에는 정조어제기판이 보관되어 있고, 정문 밖에는 통제사 김위영의 타루비 등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 사당안에는 임진왜란 때에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나라의 수군 도독 진인이 이순신의
빼어난 전공을 그때에 명나라 황제이던 신종에게 보고함으로써 신종이 이순신에게 보낸 선물인
이른바 명조 팔사품이 보관되어 있다.
경내에는 300년이 넘는 동백나무(기념물 제74호)가 있다.
충렬사 바로 앞에있는 이 유명한 우물은 충렬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1670년 제51대 김경 통제사가
팠다고 전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하나만 팠더니 물이 탁하고 곧 말라서 동시에 두개를 팠더니
비로소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졌다고 한다.
위에 있는 샘을 일정(日井) 아래에 있는 샘을 월정(月井)이라 하였는데 일정물은 이충무공의
향사(享祀)에 사용하고 월정물은 민가에서 사용했다.
이 일(日)정과 월(月)정을 합하여 명정(明井)이라 부르는데, 사체나 상여가 이 우물을 지나면
물이 흐려지는 이변이 생긴다하여 지금도 이를 금하고 있다. 한때 일정과 월정을 합하여 팔각정으로
개축을 하였더니 돌림병이 발생하는 이변이 생겨 팔각정을 허물고 명정을 복원 하였다.
이 샘은 햇볕을 받지 않으면 물이 흐려지므로 지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오랜 가뭄에도 물이
줄어들지 아니하므로 몇 년 전만해도 주민의 주요 식수원이 되어 왔었다.
충렬사을 뒤로하고 통영대교를 지나가 오른쪽으로 가면 산양일주도로가 나온다
산양일주도로 중간 지점에 위치한 조그마한 공원으로 바다 경치를 즐기다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 맞춤이다.
이곳에 세워진 관혜정(觀海停)에 오르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앞 바다와 그 위에 점점이 떠있는
학림도,저도,만지도,추도,곤리도 등 많은 섬들을 조망 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으며 주위를 둘러싼 양식장들과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오가는 배들은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복잡한 도시생활을 떠나 이곳에서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동해안의 전동진에 일출이 있다면 이곳 달아공원에는 일몰이 있다.
달아공원의 일몰은 통영시가 선정한 "통영팔경" 중에 하나이며 특히 여름에는 낭만을 찾는
사람들과 사진 작가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 광경은 과히 장관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꼭 석양을 보지 않더라도 달아공원의 바다는 넉넉함을 안겨 준다.
통영 수산과학관은 해안가의 산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고 시설도 아주 잘 해 놓았었다...
수산과학관은 실내이기 때문에 냉방장치가 잘 되어 있었으며 볼것이 아주 많았었다..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도남관광단지내에 있는 마리나콘도와 콘도앞 정원을 구경하고
시내를 들어와 시락국으로 유명한 서호시장내에 있는 원조시락국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아주 맛이 있었으나 시장안에 있어서 시설이 안좋았다.
식사후 바로 집으로 출발하여 집에 도착하니 7시가 되었다...
이번 여행은 좋은 구경은 많이 하였는데 남해로 가는날 과속으로 카메라에 찍혔고
통영에서 오는날 졸음운전으로 앞바퀴가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사고가 났으나
운전대을 꼭 잡고 졸았으므로 차가 심하게 흔들렸을 뿐 큰사고가 없었으나
honey가 졸다가 놀랬을 뿐 천만 다행이였다...
덥고 힘들고 피곤한 여행을 한 것 같다....
남해와 통영의 해안도로에서의 환상의 드라이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다음에 다시 통영 여행을 하게 되면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한산도와 소매물도등
섬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다도해.섬.해금강등을 디카에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