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 평론에 당선되었던 덕분에, 관
례에 따라 그해 신춘문예 당선자들에게 한번씩 돌아오는 순번에
의해 조선일보 '일사일언' 란에, 네 꼭지의 글을 실은 적이 있
다.
원고를 정리하면서 여기 비리디언갤러리에도 한 번 올려 본다.
2000년 8월 22일자 조선일보 일사일언(一事一言) 원고
<사흘 단식>
사흘을 단식하고서 고은(高恩)의 소설을 영화화한 <화엄경>을 보러 갔
던 어떤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영화 중에 음식을 먹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지 횟수가 저절로
암기가 될 뿐 아니라, 하얀 밥을 상에 내어오는 장면이 있었는
데 그 때 스크린에서 밥 냄새가 나더라나.
이 이야기는 기술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시사를 던져준다. 첨단 전자 기술 덕택에 우리는 명곡과 명품을 언제
든지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주는 감동이 그만큼 늘어난 것은 아니
다. 오히려 감동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
다.
이것을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 분위기)의 상실'이라고
했다.
선조 임금이 피난 중에 맛있게 먹은 고기를 환궁하고서 다시
먹으니 맛이 없더라고 하는 야사의 얘기도 바로 아우라 상실의
좋은 예가 된다.
아우라를 '예술적 감동에 대한 허기'라고 해 보면, 예술 작품
을 제대로 만나는 일은 이러한 허기가 선행되고서야 가능할 것이
다.
그러한 허기 없이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미술품을 보
거나 권태로운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이는 창작자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적 영감과 허기
가 없이 타성적으로 생산해 내는 예술 작품은 작가를 매너리즘에 빠
지게 한다.
82년에 도미하여 미국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박모' 라는 작가
는 84년, 사흘을 단식한 후에 그의 작품에 모티프로 자주 등장하
는 밥솥을 로프로 목에 매달고 미국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
너는 퍼포먼스를 했다.
예술가의 정체성과 아우라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몸짓을 보여준
이 작가가 내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끝.
* 박모 라는 작가는 요즘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상금이 3천만원이나 되는 에르메스 예술상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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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전시실
조선일보 일사일언
녹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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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06 17:3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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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기는 좋은 반찬이 된다?... 좋은이야기죠.. 많은 사람들은.... 예술뿐만이 아니고.. 정신적인 ..또는 물질적인 범람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단식을 할 필요가 있지요.. 단식! 정신적인 ... 또는 물질적인... 또한 사랑에도... 단식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것 같더군요...허기속에 우리는 살아볼 필요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