券之2
◈ 現郡勢
◈ 鄕校及 各所事蹟 中
翠竹堂 以後 三世 有功記 (1925)
皇明嚴祺 世居漂陽 創修縣學 又資供土田 以補之 人記其事 褒美之 則余觀於吾鄕 尤有感焉 翠竹堂金先生諱應鳴 當崇禎後 陳疏叫閽 蒙允復縣 而同時梅軒李先生諱光後 竹軒 李先生諱昌後 塤箎並和焉 縣之新創規節 靡不辨劃 而至於校堂 尤爲已任 然翠竹堂金先生 獨爲田十五斗落 以助之 盖復縣爲士也 納土慕聖也 其後曾孫諱世瑎氏 在校長 更葺殿廡 玄孫諱慶基氏 繼當校長 又創門樓 納沓三斗落者 一是遵先祖慕聖之誠心也 今又 六世孫武鼎甫 亦在校長 追念先世之志 辦具床器 嗚呼 武鼎甫一窮措也 殫心施力 不墜 徽績 仁其世世 克소如是 卽咸願錄于梓 以著厥美云 銘曰
奧在復設 功留縣庠 有祖有孫 亦世彌章 仁山屹彼 南川泱泱 遺風藹然 視此不忘
校任 金武鼎 掌議 朴基源
취죽당 이후 삼세 유공기(1925)
명나라 엄기嚴祺는 대대로 표양漂陽에 살았는데 현학縣學을 세우고 보수하였으며 또 농토를 제공하여 이를 도우니 사람들이 그 사실을 적어 그 아름다움褒美을 칭찬하였는데, 내가 우리 고장을 보고 더욱 느낀 바가 있었다. 翠竹堂 金先生의 이름은 應鳴인데 崇禎(1628~1644)後에 소장을 올리고 궁중에 호소하여 복현의 윤허를 얻어내었다. 동시에 매헌梅軒 李先生 이름은 광후光後 죽헌竹軒 李先生이름은 창후昌後인데 이 형제들도 이에 합류하였다. 현이 새로이 규범과 절차를 만들 때 계획을 실천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교당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자신의 임무로만 여겼다. 그리하여 취죽당 김 선생이 홀로 밭 十五斗落을 내어서 그 일을 오왔으니, 대저 현을 복설한 것은 선비를 위한 것이요, 토지를 헌납한 것은 성인을 경모한 까닭이다. 그후 증손曾孫 세해世瑎氏가 校長으로 있으면서 다시금 대성전의 기와를 이고, 현손玄孫 경기慶基氏는 교장직을 이어서 문루를 세우고 沓三斗落을 헌납했는데, 이는 한결같이 선조의 성현을 경모하는 정성을 수행한 것이다. 이제 六世孫 武鼎군이 역시 교장으로 있으면서 선조의 뜻을 따라서 제상과 제기를 힘써 구비하였으니 아! 무정 군은 한갓 가난한 서생이나 마음을 다하고 힘을 쏟아서 빛나는 공적을 떨어뜨리지 않고 대대로 이와 같이 잘 이어 갔으므로 모두 현판에 기록하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길 원하여 명을 짓는다. 아! 복현한 때에 공로가 향교에 있었도다. 조손이 대를 이어 더더욱 빛나도다. 인산이 높이 솟고 남천이 도도히 흐르도다. 남긴 명성 아름다우니 이를 보고 잊지 못하리라. 교임 김무정 장의 박기원
南川書院묘우 즉 상덕사 상량문지현이적의 찬왈
▣ 南川書院廟宇上樑文 李適意時知縣
남천서원묘우상량문 이적의시지
學士文人籌畫繩墨而會尊斯道也竈婦耘夫負戴土木而來感何德焉扶植棟樑瞻仰山斗粤我梅竹兩賢自是隴西名裔所貴者程夫子之伯仲道學何羡乎陸士龍之兄弟文章摳衣於旅老之門淵源有自嘔血於西宮之變忠孝無窮眷眷執善着脚誠闕惺惺主靜收心實地誰無父母誠孝獨稱王祥之鯉人皆兄弟友愛惟聞姜肱之衾晴窓棐几靜觀龜馬之圖方塘活水默察鳶魚之理探源洙泗幸生鄒魯之邦遯跡林泉又遭唐虞之世知尊周而亦當羞帝秦聞講和而因痛哭愛其親者未必遺其君赴湯火而抱積薪亦粤翠竹淸儀咸仰士林聲價早採蓮於碧沼滿耳香名晩誅茅於靑山掉頭塵事窮探義理四方之多士爭瞻訓誨昏蒙一時之文才大振幸逢二賢薰炙之日又有一縣復設之功叫
▶讀解: 學士와 文人이 책략을 繩墨승묵놓듯이 하여 모이은 것은 道를 존중하는 것이요. 竈婦조부(부엌데기)와 밭가는 농부가 흙과 나무를 등에지고 머리에 이고 오는것은 덕망에 감동한 것이라. 들보와 기둥을 붙들어 세우고 산과 북두칠성을 우려러 보도다. 우리 梅軒 竹軒 兩賢人은 본래 隴西의 명문 후예로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程夫子 伯仲(明道伊川)의 道學이니 어찌 陸士龍 兄弟의 文章을 부러워 하리오. 旅軒의 門에 들어가니 淵源이 스스로 있고 西宮之變에 피를 토하니 忠孝가 無窮하도다. 착한일 하기를 뒤돌아 보며 정성스레 행하였고 고요히 깨달아서 실지로 마음에 거두도다. 누가 무모에게 효도 아니하리오마는 홀로 王祥之鯉를 말하고 사람은 다 兄弟間의 友愛하여도 오직 姜肱之衾를 이야기 하며밝은창 책상에 龜馬之圖를 정관하고 모난못 맑은물에 鳶魚之理를 묵찰하여 洙泗의 근원을 탐하며 다행이 鄒魯의 나라에 태어났고 임천에 자취를 감추니 또한 唐虞의 세상을 만났도다. 周나라를 존중함에 秦帝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강화의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니 어버이를 사랑하며 그 임금을 버리지 않으니 불에 다달아 섶을 지도다. 또한 翠竹의 맑은 거동은 士林이 다 우러러 보고 좋은 평판이 있어 일찍이 푸른못에 蓮을 캐고 耳에 가득한 향기로운 이름 이라 늦게 청산에 띠집을 지어서 머리에 塵事(속세의 어리러운일)를 가리로다. 義理를 궁탐하니 사방의 많은 선비가 다투어 가르침을 바라보고 어둡고 어린 한태의 文才가 크게 떨치도다. 다행이 二賢의 교화를 받는 날을 만났고 또한 한 고을을 부설하는 공이 있도다.
九閽而安民少試濟世之才應一擧而入庠只爲悅親之志天臨孝廬猛虎禦暴客之至地僻遯庵金鶴羞銓官之招寓慕羹墻殂豆之議齊發創建祠宇杖屨之地猶存抛樑東龍山屹立撑蒼穹由來勝地如相遇偃蹇三賢去後風抛樑西孜孜爲善聽晨雞終知此役儒林慶鹿洞規模一一稽抛樑南德野仁山碧似藍川柳溪花留杖屨習飛春鳥聽經談抛樑北蘇我殘氓誰布德道學年來如此優當時何不仕於國抛樑上細察鳶飛天宇曠矜式後生誰復能儒林處處徒瞻望抛樑下三聖山前智水瀉冠者絃邊童子歌依然濂洛好風雅伏願上樑之後謹將感慕之實永如營始之初左豆右邊寧有享禮之墜上棟下宇已見廟貌之新
▶讀解: 九閽구궐(대궐)에 부르짖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젊을 때 세상을 건지는 재주요 한번 과거에 응시하여 國庠에 들어가니 어버이를 즐겁게 하는 뜻이라 하늘이 孝廬(상제가 거처할 곳)을 돌보니 猛虎가 도적의 침입을 막고 벽지 숨은집에서 황금학이 전관의 부름을 부끄럽게 생각했네. 추모하는 생각이 豆之의 의논을 함께 발의하여 사당을 지으니 장구의 땅을 보존했네.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龍山이 우뚝솟아 푸른하늘을 떠 바치고 전에부터 좋은땅이 서로 만난것 같고 우뚝한 三賢이 간뒤에 유풍이로다.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부지런히 착한 일하며 새벽 닭소리 들으니 마침내 이 일이 儒林의 경사임을 알겠고 鹿洞의 규모를 하나 하나 상고했네 들보를 남으로 던지니 德野와 仁山이 쪽같이 푸르고 시내버들과 사냇가 꽃밭에 현인들이 머물며 나는것을 익히는 봄새가 글이야기를 듣네 들보를 북으로 던지니 새로 살아난 우리 쇠잔한 백성에게 누가 덕을 베풀꼬. 道學을 여러해 전부터 이같이 근심했네. 당시에 어찌하여 나라에 벼슬하지 않았던고 들보를 위로 던지니 하늘 넓은데 솔개 나는 것을 살피고 후생에게 범도가 되는 것을 누가 능히 하리오. 유림이 곳곳에서 우러러 보도다.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三聖山앞에 智水가 흐르고 갓쓴이의 풍류가에 동자가 노래하니 의연히 염락의 좋은 風雅로다. 엎드려 원하건데 上樑을 한 뒤로 삼기히 느끼고 추모하는 결실을 가지고 연원히 경영하여 처음과 같이 하여 좌두 우변하면 어찌 항례가 떨어 지겠나 上棟과 下宇가 이미 사당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도다.
◈ 名所樓臺及寺刹題詠
◈ 舊誌姓氏
◈ 貫土姓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