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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
▣방송 : 2007. 9. 15(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김현기PD
▣작가 : 박민경
13세기, 고려의 40년 대몽항쟁!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제패한 최강 몽골군에 대적해
두 차례나 몽골군을 격퇴한 고려의 영웅이 있었다.
그는 바로 김 윤 후〔金允候〕
몽골군의 총사령관인 살리타를 처인성에서 사살하고〔1232년〕
몽골 황족인 에쿠의 주력부대를
70일간의 항쟁 끝에 퇴각시킨다.〔1253년〕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역사 속에서 잊혀진 그의 업적을
한국사 傳이 새롭게 조명한다.
▶처인성에서 출토된 고려도검 김윤후의 첫 승전지인 처인성. 이곳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대몽항쟁의 치열함을 증명하듯 화살촉과 칼이 발견되었는데, 고려시대 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매우 드문 발견이다. 처인성에서 출토된 고려도검은 현재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에 보존되어 있다. 한국사 傳 제작진이 고려도검을 통해 처인성 전투의 흔적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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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 그는 누구인가?
▶첫 번째 승전(1232년) : 몽골의 총사령관 살리타 사살 처인성 전투 : 화살 하나로 풍전등화의 고려를 구하다
1232년, 고려가 대몽항쟁의 의지를 밝히며 강화도로 천도하자 몽골은 2차 고려 침략을 단행한다. 고려 침 략을 이끈 몽골의 장수는 살리타(撒禮塔). 살리타는 몽 골군의 총 사령관으로,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부상 하고 있는 몽골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고려를 침공해 내려오던 살리타의 운명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용인군 아곡리에 위치한 처인성. 살리타는 제대로 된 군사조차 남아있지 않은 처인성을 공격하면서 방심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살리타와 몽골군을 향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매복한 처인성 부곡민들의 기습 공격이었다. 처인성 안으로 피신한 부곡민들을 모아 매복 전투를 계획하고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 인물, 바로 김윤후였다.
▶두 번째 승전(1253년) : 충주산성, 그 70일의 기록
충주산성 전투 : 노비문서를 불태워 백성의 힘을 하나로
1253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출륙 환도하라는 몽 골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자, 몽골은 황족인 에쿠(也窟)가 직접 지휘하는 최정예병을 고려에 투입한다. 몽골군은 고려 정벌을 끝내겠다는 각오로 한 층 더 잔인하게 고려를 도륙하면서 전략 적 요충지인 충주까지 밀어 닥쳤다. 당시 충주에는 살리타를 사 살한 처인성 승첩의 주인공, 김윤후가 방호별감으로 있었다. 끝까지 항전하는 김윤후와 몽골군의 싸움은 70여일을 넘겼다. 그 사이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고 투항을 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김윤후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노획한 소와 말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김윤후의 결단에 백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한다. 결국 몽골군은 충주에서 퇴각하고 만다.
역사에서 잊혀진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대몽항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지역민들의 신분이 단체로 승격된 지역은 모두 네 곳. 그 중 무려 두 곳의 지휘관이 바로 김윤후이다. 바로 처인성과 충주 지역, 그러나 이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김윤후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왜 역사 속에 잊혀진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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