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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자립(개척)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본문 : 대상 1:24-42
제목 : 아브라함의 자손들
서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서 그의 자손들 모두가 다 구원 받고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모두가 구원을 얻지만 육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모두가 구원 얻는 것이 아니요 구원을 얻을 사람도 있고 구원에서 제외될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육적 혈통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셔야만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1. 약속 외의 아들 이스마엘입니다.
본문 24-31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람 곧-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세계는 이러하니 그 맏아들은 느바욧이요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라 이스마엘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이 아니고 나이 85세가 되도록 무자함을 지켜보던 사라가 초조하여 그의 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어 그로 통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아들을 낳기는 낳았지만 약속의 아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로 인하여 사라와 하갈 간에 사이가 좋지 아니하여 결국은 그 가정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전쟁의 불씨를 심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의 후손 중에서 모하멧이라는 이가 출생하여 오늘의 회교 시조가 되어 이삭의 후손들과 적이 되어 피를 흘리는 불행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조급한 생각에서 범한 실수가 오늘까지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실수의 대가입니다.
2. 약속의 아들 이삭입니다.
본문 34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의 아들은 에서와 이스라엘이더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에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잉태하게 하여 약속하신 아들 이삭이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그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을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음으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3-15)하였습니다. 사라는 참지 못하여 실수를 했지만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의 후손 야곱의 아들 유다의 계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조급하면 손해를 입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복을 거절한 에서입니다.
본문 35 "에서의 아들은 엘리바스와 르우엘과 여우스와 알람과 고라요"하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장자로 태어난 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복을 거절하여 나중에 복을 받고자 눈물을 흘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물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음행하는 자와 혹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받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17)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보다는 신앙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었지만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구원은 가족이나 교파 단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개인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만 위하고 자녀들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도 자식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선 자신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본문 : 대상 2:1-17
제목 : 아브라함에서 메시야까지
서론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비나답을 낳고 아비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하였습니다. 다윗부터 예수까지 계속 대가 이어지는 것은 다 기록할 수 없고 여기서는 야곱과 유다 그리고 다윗만 생각해보겠습니다.
1. 야곱입니다.
본문 1-2 "이스라엘(야곱)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로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가 이 땅에 오게 하셔서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야곱을 낳게 하시고 야곱은 장자가 아니었지만 그 계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큰 뜻을 이루어 그의 아들들 중에 하나를 택하여 메시야가 태어나도록 계획을 하셨습니다.
2. 유다입니다.
본문 3-4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로 말미암아 낳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음으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 베레스와 세레를 낳았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보면 족보는 자랑하기 어렵습니다.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자부사이입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자부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 베레스입니다. 무엇을 보아도 자랑할 정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족보는 자랑할 수 없게 하시고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메시야를 탄생시킬 계획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 다윗입니다.
본문 12-14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세째로 시므아와 네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하였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취하셔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합하도다 하시면서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이스라엘 이대 왕으로 삼으시고, 그의 실수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도덕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을 했지만 밧세바의 몸에서 솔로몬이 나게 하시고 그로 통해서 왕통을 계승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들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 족보라도 자랑할 수 없음을 배울 수 있으며 다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26-29).
본문 : 대상 3:1-9
제목 : 다윗이 낳은 아들 중에서
서론
아브라함에서부터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 앞장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다윗이 낳은 아들들 중에서 다윗의 후계자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차이가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이스라엘 제 이대 왕을 세우기 위하여 기름을 부을 때에 말째인 목동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1. 압살롬은 불효자의 대표입니다.
본문 2 "세째는 압살롬이라"하였습니다. 압살롬(Absalom)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세째 아들인데 그는 미남형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은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하였습니다(삼하 14:25). 그러나 성질은 과격하여 누이를 강간한 암논을 죽였습니다(삼하 13:28-29). 그리고 아버지를 피하여 도망하여 삼년간 망명생활을 하다가 요압의 도움으로 돌아왔으나 오랫동안 아버지를 대면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후에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곤경에 처하게 하고 자신이 스스로 왕이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군대와 싸우다가 패주하여 나뭇가지에 머리가 걸려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물이 좋다고 해서 크게 들어쓰시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다고 해서 쓰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불효자는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인물이 뛰어나며 재능이 있다고 해도 크게 들어 사용하시지 아니하십니다.
2. 나단은 깨우침의 대표입니다.
본문 5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이라"하였습니다. 그 중에 나단(Nathan)이라고 이름한 아들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다윗이 아들의 이름을 나단이라고 하였을까. 나단은 밧세바의 몸에서 낳은 아들 중 하나인데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서 다윗의 죄를 책망하여 그 책망으로 인하여 다윗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시 55:12)하였습니다. 이는 자기를 회개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 원수가 아니고 친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단 선지자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할 때에 비유를 들어서 책망하였습니다. 어떤 가난한 집에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인데 어떤 부자집에 손님이 오니까 자기 양과 소는 아끼고 가난한 사람의 집의 양을 잡아서 손님을 위하여 대접을 하였습니다, 하니까 다윗은 말하기를 그와 같은 일을 한 이는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나단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삼하 12:1-15). 그래서 다윗은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들의 이름을 나단이라고 짓고 늘 깨우치는 생활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양심 주는 자'라는 것입니다.
3. 솔로몬은 후계자의 대표입니다.
본문 5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밧세바)의 소생이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하시고 밧세바에서 낳은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이루시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자가 회개만 하면 과거는 기억도 하시지 않고 사랑과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여 낳은 아들입니다(회개후). 그래도 그를 왕위에 앉히시고 그를 통하여 성전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획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렀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대상 22:8-9)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했어도 용서하시고 용서한 후에는 그를 통하여 크신 역사를 이루십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범죄한 다윗을 통하여 큰 일을 하셨습니다. 특히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하시는데 불효자는 쓰시지 아니하시고 평화의 사람 솔로몬을 통하여 크신 일을 하셨습니다.
본문 : 대상 4:9-10
제목 : 기도하여 복 받은 사람
서론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영육간에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가서 아무 신에게 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복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복하고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물질적인 것이 대부분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은 영적인 것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복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엡 1:3).
1.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하였습니다. 야베스는 먼저 기도의 대상자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정하였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신들이 있고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들이 복을 준다고까지 하는 형편입니다. 시편 기자는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한다"(시 42:8)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하나님을 소개할 때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6-10). 그러므로 기도는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심이 옳은 것입니다.
2. 영육이 잘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하였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한이 없습니다. 영혼도 잘 되고 싶고 육신적으로도 잘 되고 싶으며 영육간에 더불어 모든 면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영혼에 관하여서는 관심이 없고 육의 물질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어 인간의 본능대로 행동하다가 결국 그대로 죽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복만은 아니고 영적인 복도 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물질만 가지고는 사람의 마음에 만족함이 없고 영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에 만족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먼저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물질적인 복도 받아서 사는 날까지 영육간에 풍족한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 6:33)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 3서 1:2)고 하였습니다.
3. 평안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목적이 영육간에 아울러 복을 받는 것이고 영육간에 아울러 복을 받은 것은 정신적으로 평안하여 근심이나 환난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개인이나 가정이 평안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그리고 늘 불안과 공포가 있다면 이 또한 좋은 현상은 아닌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영적으로는 신령한 은혜와 육적으로는 건강과 물질을 받고 정신적으로 평안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줄 압니다.
결론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서 영육간에 복을 받고 평생토록 평안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기도도 들으시는 것을 믿고 야베스처럼 간절하게 기도하여 응답받는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대상 5:1-2
제목 : 축복을 상실한 르우벤
서론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이며 레아의 소생입니다(창 29:32). 그런데 그는 장자이지만 그의 행위가 좋지 못하여 장자의 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장자 가인도 동생보다 못하였고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도 동생 이삭만 못하였으며 이삭의 장자 에서도 그의 동생 야곱만 못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행위가 잘못되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벧전 3:10-12).
1. 르우벤은 장자였습니다.
본문 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하였습니다. 장자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도 장자가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은 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기로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가 동생에게 죽 한 그릇과 바꾸어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장자가 받을 복을 동생 야곱이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
-17)하였습니다. 여하간 장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뻐할 일이 아니고 장자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성도답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였습니다.
본문 1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하였습니다. 르우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하였습니다. 그가 한 짓은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고 신앙적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의 훗일에 되어질 일을 말하면서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남에게 외경될 만한 덕의 힘, 범하기 어려운 위엄)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 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 49:2-4). 이는 르우벤의 서모를 범한 것을 말하는데 복은 고사하고 만인 앞에서 맞아 죽을 짓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세계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장자의 명분을 상실하였습니다.
본문 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하였습니다. 성적인 타락은 일시적인 쾌락을 누리지만 그 벌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탐대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 형편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곳곳마다 죄짓는 장소가 늘어나고 특히 성적으로 타락하여 소돔성을 방불케하는 실정입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는 엄청난 죄를 범했으니 그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끓어오르는 성욕을 제어하여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짓고 복을 받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믿음을 돈독하게 가지고 그 분에게 기도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고후 7:1).
본문 : 대상 6:31-48
제목 : 찬송하는 직무
서론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1-2).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시 147:1, 7)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이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특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찬양을 맡아 부를 찬양대들은 찬양할 봉사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집에서 해야 합니다.
본문 31-32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하였습니다. 물론 찬송은 어디서나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대를 조직하여 부르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지어놓은 성전 안에서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많은 교회들이 찬양대를 조직하여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서 찬양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하는 일에 차원에서 참예해야 할 것입니다.
2. 사명자로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33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 아들들이 이러하니 그핫의 자손 중에 헤만은 찬송하는 자라 저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요"하였습니다. 이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을 말하고 특별히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나 찬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하게 음악에 소질이 있고 은사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가대에 가입을 하여서 하나님께 주신 달란트를 유감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달란트는 남겨야 칭찬을 받지 그냥 묻어두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명자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든지 음악에 소질이 있고 주를 위하여 찬양하고 싶은 심정에서 성가대 임명받아서 열심히 찬양을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찬양도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부르면 더욱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3. 찬송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본문 31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하였습니다. 찬송하는 일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그래서 찬양대원들은 수고스럽지만 한번 맡은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임을 맡은 자들이 은혜를 받고 찬양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하는 목적이 분명하지 아니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찬송은 곡조 붙인 기도요 삶의 기쁨을 표현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찬송하는 직무가 매우 중요한 사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론
찬양대의 직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과 사람들에게 칭찬과 기쁨을 드리고 자신과 후손이 잘 되는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상 7:20-27
제목 : 자식으로 인하여 고통하는 에브라임
서론
속담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자녀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답답하고 괴로워서 하는 말인 줄 압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가 없어서 우는 이들도 많습니다. 여하간 자녀로 인해 문제가 되는 가정이 적지 아니합니다. 에브라임도 자녀들로 인하여 상처를 크게 입은 사람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1. 자식들이 타살 당하였습니다.
본문 20-21 "에브라임의 아들은 수델라요 그 아들은 베렛이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그 아들은 사밧이요 그 아들은 수델라며 저가 또 에살과 엘르앗을 낳았더니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식들이 타살당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리고 슬픈 일입니다. 그리하여 부모의 고통은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2. 형제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22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하였습니다.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에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같이 모여서 사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리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0-12)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위로자가 없는 것같이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형제가 위로하였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3. 하나님께서 고통을 덜어 주셨습니다.
본문 23 "그 후에 에브라임이 그 아내와 동침하였더니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집에 재앙을 받았으므로 그 이름을 브리아라 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에브라임에게 다시 아들을 주셨고 또한 후손(에브라임지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여호수아는 유명한 지도자가 나오게 하여서 에브라임을 많이 위로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는 여러모로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바라보고 힘을 얻고 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을 당하지만 특히 자녀로 인하여 받는 고통이 적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형제로 통하여 때로는 짐승을 통해서 천사를 통해서 위로하시며 때로는 하나님께서 직접 위로하셔서 고통을 덜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 대상 8:33-40
제목 : 베냐민 지파의 인물들
서론
어느 가문에나 유명한 인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에서도 훌륭한 인물들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가문이나 훌륭한 인물들이 있다는 것은 가문의 명예요 자랑거리입니다.
1. 사울왕이 있었습니다.
본문 33 "넬은 기스를 낳았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하였습니다. 사울은 그 인물이 준수하고 효자이며 하나님의 사람을 예우할 줄 아는 예의의 사람이었고(삼상 9:1-10) 겸손하고(삼상 9:20-21) 성령에 감동된 자였습니다(삼상 11:6). 이 모든 점에서 볼 때는 사울은 가문을 빛낼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그의 말로는 자살로서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2. 신앙의 사람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본문 34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과 므립바알이 미가를 낳았고"하였습니다. 사울의 아들은 사울과 같지 아니하고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인정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신앙적으로도 바로 행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잘못을 범하지 아니하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20:12-17, 24). 신앙이 좋은 사람은 수직관계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예의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이라도 신앙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 끼어있다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요셉 하나를 보시고 요셉이 고용살이 하는 집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창 39:5).
3. 용사를 낳은 울람이 있었습니다.
본문 40 "울람의 아들은 다 큰 용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일백 오십인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하였습니다. 이는 베냐민 자손들은 무시할 수 없는 만만치 아니한 지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바울 사도와 같이 유명한 인물이 있었습니다(골 3:4-9). 이는 베냐민 지파에게 큰 복을 주신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정에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대대로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그의 아들들에게 또한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에도 베냐민 지파와 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아 가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대상 9:14-34
제목 : 성전을 위하여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봅니다. 특히 레위인(성전에서 주의 일만 하는 자들)들의 활동을 보는데 그들은 모든 일을 분담해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전에서 일한 것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성전 문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본문 14-27 "레위 사람 중에서는… 문지기는 살룸과 악굽과 달몬과 아히만과 그 형제들이니 살룸은 그 두목이라 이 사람들은 전에 왕의 문동편 곧 레위 자손의 영의 문지기며 고라의 증손 에비아삽의 손자 고레이 아들 살룸과 그 종족 형제 곧 고라의 자손이 수종드는 일을 맡아 성막 문들을 지켰으니 그 열조도 여호와의 영을 맡고 그 들어가는 곳을 지켰으며…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일백 열 둘이니 이는 그 향리에서 그 보계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자라… 이는 문지기의 두목된 레위 사람 넷이 긴요한 직분을 맡아 하나님 전 모든 방과 곳간을 지켰음이라. 저희는 하나님의 전을 맡은 직분이 있으므로 전 사면에 유하며 아침마다 문을 여는 책임이 있었더라"하였습니다. 다윗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2. 각종 직책에 따라 일하였습니다.
본문 28-32 "그 중에 어떤 자는 섬기는데 쓰는 기명을 맡아서 그 수효대로 들여가고 수효대로 내어오며 또 어떤 자는 성소의 기구와 모든 기명과 고운 가루와 포도주와 기름과 유향과 향품을 맡았으며 또 제사장의 아들 중에 어떤 자는 향품으로 향기름을 만들었으며 고라 자손 살룸의 아들 중에 어떤 자는 향품으로 향기름을 만들었으며 고라 자손 살룸의 장자 맛디댜라 하는 레위 사람은 남비에 지지는 것을 맡았으며 또 그 형제 그핫 자손 중에 어떤 자는 진설하는 떡을 안식일마다 준비하였더라"하였습니다. 교회 일은 한 가지 일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얼마든지 성전을 위하여 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도 할 수 있고 부자도 할 수 있으며 빈부귀천 차별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각종 직분은 지체와 같기 때문에 누구든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3. 찬송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본문 33-34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상은 대대로 레위의 족장이요 으뜸이라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하였습니다. 찬송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고 큰 일이요 중대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사람에게는 은혜를 끼치는 일이라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개인에게는 기도하는 일과도 같고 다른 사람에게는 봉사하는 일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되었든지 간에 주야로 그 일에 대하여 골몰하였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얼마나 골몰하게 일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결론
성전 안에서 일한 사람들도 매우 잘 한 일이지만 성전 근교에 있는 사람들도 이레마다 성전에 와서 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정을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전적 하나님의 일만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도 많은 것입니다. 어찌되었든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매우 잘 하는 일입니다(25).
본문 : 대상 10:1-7
제목 : 사울의 죄로 인하여
서론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한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겸손하여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겸손하여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려 결국에는 그 죄로 망하고 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지은 죄는 그를 망하게 하는데 충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삼상 26:10). 그래서 죄는 무서운 것이므로 멀리해야 하겠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망하였는가를 살펴보고 우리들은 그를 거울 삼아 죄로 인하여 사울과 같이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1. 사울 자신이 자살하였습니다.
본문 3-5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서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하여 자기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병기 가진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하였습니다. 자살은 용감한 것도 아니고 신앙 정조를 지키는 일도 아니며 이는 비굴한 짓이요 죄인이 마지막 몸부림치는 발악의 추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작전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백해무익 뿐입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임의대로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자살은 죄 외에 죄를 더 지을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자식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본문 2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하였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죄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가에 대하여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한 사람의 희생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죄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죄로 인하여 자식들까지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은 매우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복을 물려주려며는 죄를 범치 아니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자신 때문에 죄 없는 자녀들이 벌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하간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자식들에게까지 죽임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3.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본문 1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인 사울이 범죄하니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가슴아픈 일입니다. 사울의 죄로 인하여 자신은 물론이지만 자녀들까지 죽임을 당하고 나아가서는 백성들까지도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는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며 국가를 망치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온 인류가 사망에 이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본문 6-7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저희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사울의 범죄로 인하여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망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죄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상 11:4-21
제목 : 다윗 왕이 유명하기까지는
서론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사람을 말하고 무엇이나 혼자 처리하려고 하지만 혼자서는 장군이 못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협조하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피조물이라는 의식이 없이 자기가 창조주나 되는 것같이 잘못된 생각에서 한 말인줄 압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10분만 공기를 거두신다면 어느 누구도 살아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다윗도 자신이 훌륭해서 왕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람들의 많은 협조가 있었기에 된 것입니다.
1. 요압의 협력이 있었습니다.
본문 4-7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토인이 거기 거하였더라 여부스 토인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이는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다윗이 가로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두목이 되었고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한 고로 무리가 다윗성이라 일컬었으므로 두목이 되었고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한 고로 무리가 다윗성이라 일컬었으며"하였습니다. 요압의 용맹성이 없었다고 한다면 다윗은 많은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훌륭하게 되는 데는 반드시 타인의 협조가 있어야 합니다. 성공은 타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마시고 자란 연약한 순과도 같은 것입니다. 즉 자기를 위하여 희생한 그들의 수고를 모르고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께 쓸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것은 다른 삶의 협조가 어느 정도냐 여하에 따라서 성공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2. 용사들의 협력이 있었습니다.
본문 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세워 왕을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위하는 일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생명까지 내놓는 용사들 때문에 다윗은 성공한 것입니다.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가로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리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17-19)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용감한 용사들의 희생적인 헌신이 없었으면 다윗이 그렇게 위대하게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함께 도와주셨습니다.
본문 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며 이스라엘 제2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랫 사람들로 인하여 위대하게 된 것을 알고 자신의 연약함으르 회개하는 심정에서 용사들이 피를 흘리면서 떠온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또한 자신의 욕망 때문에 용사들이 피를 흘리면서 물을 떠왔다고 생각하고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그 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이는 자기를 위해 협력한 사람들의 희생을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겠다는 뜻으로 그들의 희생을 인정하고 그들이 떠온 물을 용사들의 피로 여기고 마시지 아니한 것입니다. 다윗을 위대하게 만든 사람들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알고 겸손하려고 애쓰는 다윗도 훌륭한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성공하려며는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협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하게 인정받는 사람들은 겸손하여 자기를 도와 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기를 도와 준 아랫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할 줄 아는 미덕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상 12:16-22
제목 : 독불 장군은 없다
서론
세상에 어느 누구도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없으면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이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해선 안 되겠습니다. 다윗이 성공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사람들이 도왔기 때문에 위대하게 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도왔습니다.
본문 18 "때에 성신이 삼십 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서 다윗을 도와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시지 아니하였다면 어느 누구도 다윗을 도우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울 자로 삼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사 41:10).
2.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도왔습니다.
본문 16-17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오매 다윗이 나가서 맞아 저희에게 일러 가로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와 연합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붙이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열조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현대판 까마귀의 기적을 초래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직접 하지 아니하고 그들로 하여금 다윗을 돕도록 만들었습니다. 세상에는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3. 므낫세 지파가 도왔습니다.
본문 20-22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르대니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적당을 쳤으니 다 큰 군대요 군대 장관이 됨이었더라"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도와주시기 때문에 다윗은 성장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야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혼자 일어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기업이 성장하려며는 먼저 고용인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업 뿐만 아니고 매사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도와주는 이들이 어떻게 도와주느냐 여하에 따라 성공 여부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음을 알고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그 다음은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면에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 대상 13:1-4
제목 : 우리가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서론
다윗은 사울이 방치해 두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 와서 예루살렘성을 거룩하고 복된 성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귀하게 여기고 경외를 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왕이 된 즉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키는 일에 자기에게 주신 권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잘 한 일입니다. 사람이 잘될 때에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하라고 잘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 백성들의 동의를 구하였습니다.
본문 2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 모이게 하고"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해도 단독으로 강행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동의를 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자라고 해도 백성들을 무시하면 주인을 무시하는 하인과 같이 결과가 좋지 아니한 것입니다. 권세는 군림하는 특권이 아니고 오직 백성을 위하여 봉사하는 직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와 같은 사실을 잊는다면 폭군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반드시 의논하고 왕의 위치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사울 때의 잘못을 통감하였습니다.
본문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냐 하매"하였습니다. 과거를 반성하면서도 사울만 잘못하였다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백성 모두를 포함해서) 모두 잘못하였다고 시인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궤에 대한 관심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회개하고 앞으로 잘 해보겠다는 뜻에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방치해 놓고 어떻게 복을 받겠느냐는 것이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분에게 대한 무관심 속에서 무슨 복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왕을 비롯해서 모든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이 있다고 해도 현재만 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3. 백성들이 협조하였습니다.
본문 4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고 한지라"하였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법궤를 메어오도록 동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즉 백성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였습니다. 다윗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백성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백성들도 왕이 하는 일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따르는 것도 나라가 복을 받을 징조인 것입니다. 강제적으로 하면 움직이기는 하겠지만 실제는 마음 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쁨으로 참예하는 것은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열심은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을 추진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좋은 일을 망쳐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옥에 티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하려며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결론
사울왕 때에 버려두었던 하나님의 법궤를 왕이 된 다윗이 백성들을 설득하여 다윗성으로 옮겨오라고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법궤를 옮기는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이 하는 방법으로 하다가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선한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결과가 아름답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이 선하면 반드시 방법도 선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상 14:1-17
제목 : 다윗이 받은 은혜
서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받은 것이 많았습니다. 다윗 뿐만 아니고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다 받은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받은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해야 합니다. 시편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받았다고(고전 4:7)하였습니다. 그럼 다윗이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물질을 받았습니다.
본문 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어 그 궁궐을 건축하게 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두로 왕을 시켜서 물질을 제공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에게 주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시든지 필요에 따라서 제공하여 주십니다. 그 예로 엘리야 한 사람을 위하여 사르밧 과부를 동원하시고 까마귀를 동원하시고 심지어는 하늘에 있는 천사까지도 동원하셔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궁궐이 필요하니까 두로 왕을 통해서 지어주셨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필요한 것은 구하여 받고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왕이 된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진흥하게 하셨음이더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 삼으신 목적이 다윗 자신의 부귀나 개인의 행복을 위하여서가 아니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을 태평하게 살도록 하는데 있었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돈을 벌든지 지위가 높아지면 타인을 위한 봉사보다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을 행복하게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3.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본문 8-16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 오매 다윗이 듣고 방비하러 나갔으나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를 침범하였는지라.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이에 무리가 바알부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하나님이 물을 흩음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함으로 그곳 이름을 바알부라심이라 칭하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자기의 전술이나 힘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받은 은혜인 것입니다.
본문 : 대상 15:1-15
제목 : 다윗이 법궤를 옮김
서론
다윗은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하나님의 법궤를 위하여 장막을 짓고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대단히 잘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입니다. 사람이 잘 되면 우선 하나님께 대한 관심보다 자기 만족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니 매우 잘한 일입니다.
1. 법궤 놓을 처소부터 준비하였습니다.
본문 1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왕궁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하였습니다. 먼저 법궤를 모실 수 있도록 처소부터 준비하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 성전은 아니었지만 법궤를 위한 장막을 따로 마련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법궤에 대한 관심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과 달리 법궤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관심들이 있고 그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주었으면 싶은 생각 간절합니다.
2. 레위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본문 2-4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과거를 생각하고 이번에는 침착하게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법궤를 옮기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기의 뜻대로 법궤를 수레에 싣고 가려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서 법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위 사람들에게 맡겨서 옮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를 위하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지 자기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위치 탈선은 타락의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2-13).
3. 하나님의 명령대로 옮겨왔습니다.
본문 14-15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하였습니다. 이는 과거에는 다윗의 생각대로 하다가 실패하였지만 이번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어떻게 해 드릴까가 중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진리는 고금역사를 막론하고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결론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하나님의 궤를 모셔놓고 그의 법도대로 살려하는 다윗의 그 정신은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법궤 모실 처소부터 준비하고 레위 사람들로 메어오게 하였으며 법도대로 그 일을 끝냈습니다. 이 점이 복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본문 : 대상 16:1-11
제목 : 하나님의 법궤를 중심하여
서론
다윗이 왕이 된 후에 그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에 안치되고 그 법궤를 중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법궤가 이방인들의 손을 떠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로 돌아왔으니 백성들은 기뻐하며 성직자들은 성직을 다시 행하게 되었으니 또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비롯하여 백성들은 법궤를 중심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1. 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문 1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하였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법을 상징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가 필요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자들의 수고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복을 받는 일들이 교회에서 나타나야 합니다(계 1:3). 다시 말씀을 드리면 법궤를 중심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을 말하고 그의 말씀을 중심하는 것을 말하며 그로 인하여 성도들끼리 사랑을 중심하여 하나님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최대의 수단이요 방법인 것입니다. 예배는 인간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드리는 거룩한 예식인 것입니다.
2.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본문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하였습니다. 수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수평으로는 사람을 축복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교회는 언제나 축복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정성을 받으시는 장소이지만 성도들끼리 교제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는 모이기를 전혀 힘쓰고 떡떼기를 하며 서로 물건을 통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끼리 주의 말씀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태도이기도 합니다(엡 4:1). 성도들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축복하고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 찬양하였습니다.
본문 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7-9)하였습니다. 사람의 최대의 기쁨은 하나님을 찬양할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말하기를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도로서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나 구속하신 목적이 영광과 찬양 받으시는데 있기 때문입니다(사 43:7, 21, 엡 1:6-14).
결론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중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백성들을 축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상 17:1-12
제목 : 선한 일이라고 다 내 뜻대로 되는가
서론
사람이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다 사람의 뜻대로 척척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주의 일을 한다고 해서 칭찬과 상급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한 일을 하는 이들이 자기들의 뜻대로 척척 이루어지는 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수도 없으며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일이나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미리 알고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1. 성전도 마음대로 못집니다.
본문 1-4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휘장 밑에 있도다 나단이 다윗에게 고하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성전 짓는 일 자체가 나빠서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심이 아니요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아니하는 사람이 성전을 지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짓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버려진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까지 옮겨왔고 법궤를 안치할 장막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다윗은 준비를 하고 솔로몬이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리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나 사람의 생각대로 아니되기 때문입니다.
2. 성전 짓지 못했다고 책망은 없습니다.
본문 7-8 "연하여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성전을 못 지었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전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짓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아니하시고 노를 발하는 일도 있습니다(학 1:4-11). 그러나 하나님께서 짓지 못하게 하셔서 짓지 아니한 것은 그렇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하나님의 교회는 안 지어도 된다는 생각도 잘못이고 무조건 자기가 교회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 11-12 "네 수한이 차서 네가 열조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의 생각대로 되지는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 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선한 일이라고 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좋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가 한 말을 기억하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고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따르려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갈 6:9-10).
결론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일이요 선한 일이라고만 판단이 되면 무조건 잘 될 줄로만 알며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아니한 일방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하다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뒤로 물러가 낙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 : 대상 18:1-8
제목 : 대적에게 항복을 받으라
서론
지상은 싸움터라고 보아도 잘못이 없습니다. 가난과도 싸워야 하고 질병과도 싸워야 하며 정욕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보면 싸워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시니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하였습니다. 문제는 적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언제나 적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본문 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며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무엇과 싸우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로 통하여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였으므로 이미 이긴 것입니다. 머리가 깨졌으니 사람을 해칠 수가 없습니다(창 3:15). 그러므로 무서워하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저를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벧전 5:8-9). 그리하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시기 때문에 이기는 것입니다(시 118:6-8).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께 기도하여 대승리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이 이깁니다.
본문 1 "이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빼앗고"하였습니다. 다윗은 전문적으로 전쟁이나 하는 전략가가 아니고 왕으로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이긴 것도 작전을 잘 세워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전쟁도 하나님께 기도해보니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는 확답을 듣고 전쟁하는 형식만 갖춘 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전쟁을 이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한 전쟁에서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가 직접 죽이지 아니하여도 하나님께서 18만 이상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지지는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3. 이기면 진 자를 지배합니다.
본문 2 "또 모압을 치매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하였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죽이기 아니면 죽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정복하지 아니하면 정복을 당하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복당하면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정복하면 다스려야 되는 것이 싸움의 법칙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노릇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우리 성도들도 마귀와 싸워서 이기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에 싸움에서 지면 마귀의 종노릇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종노릇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영력이 충만한 성도가 되어서, 사단과 싸워서 승리하여 마귀를 지배하고 살아야지 마귀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본문 : 대상 19:1-5
제목 : 천태만상
서론
세상에는 5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각기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며 언어도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키가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많은 사람들의 성격이 하나만 같다면 살기좋은 세상이 되든지 아니면 악의 세상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가 아니라는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본문에 나타나있는 사람만 가지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2 "다윗이 가로되 하눈의 아비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하였습니다. 나하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매우 잘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주는 자가 복이 있다"(행 20:35)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선행을 하면 장래에 참된 생명을 취한다고 하였습니다(딤전 6:17-19). 여하간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사람입니다.
2. 은혜를 보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2 "이제 내가 그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고 사자를 보내어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복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조상(조의를 포함)하매"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사람이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이 사회는 살 맛이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는 세상이요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는 세상이며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는 세상입니다. 이 얼마나 각박한 세상입니까. 배은은 배신이요 도전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땅에는 은혜를 갚는 사람도 있지만 갚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3. 이간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3-4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를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사물의 중간 되는 토막)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 보내매"하였습니다. 이는 암몬 자손들의 간악한 성품을 드러낸 것입니다. 암몬 자손들은 롯이 그의 딸과 범죄하여 낳은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악인들입니다. 악인들은 언제나 생각하는 자체가 선하지 못하고 항상 악할 뿐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은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호의도 거절하는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입니다. 다윗의 호의를 적반하장격으로 역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간질하는 것은 간신과 같아서 친한 사이를 원수 사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결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5). 그들은 열심히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 죄가 되어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위하여 중간에서 희생하는 이들도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느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선한 편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의 태도가 천태만상이라고 하여도 나 혼자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 대상 20:1-8
제목 : 다윗의 승리
서론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는 패하지 아니하고 전사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전쟁에서 패하지 아니하였지만 그의 신복들도 용감하여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역사인 것입니다.
1. 요압이 싸워서 이겼습니다.
본문 1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훼파하고 가서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하였습니다. 요압(Joab)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요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인데 다윗의 가장 유명한 용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게 하고 자기가 나가서 적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그 기쁨의 승전의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였습니다. 다윗이 그와 같이 유명하게 된 원인은 아랫사람들의 희생적인 헌신 때문이었다고 해도 잘못은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랫 사람들의 협조하지 아니하고 성공한 사람 보았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보필해야 하고 윗 사람은 아랫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2. 다윗은 전리품을 취하였습니다.
본문 2-3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있는 면류관을 취하여 달아보니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그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그 가운데 백성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을 하게 하니라 다윗이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모든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요압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모든 전공을 다윗에게 돌린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윗 왕은 요압 때문에 전쟁에서도 이겼지만 전리품도 무수히 취할 수 있었으니 용감한 부하 덕분에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은 것입니다. 아랫사람 잘 만나는 것이 이와같이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적과 싸워서 크게 손해 본 것 없습니다. 명예도 얻고 물질도 얻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한 증거입니다.
3. 계속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본문 4-8 "이 후에 블레셋 사람과 게셀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 죽이매 저희가 항복하였더라 다시 블레셋 사람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 큰 자 하나는 매손과 매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 넷이 있는데 저도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능욕하는 고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저를 죽이니라 가드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전쟁이 없는 날이 없는 것입니다. 피흘리는 전쟁이 아니면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의 전쟁 즉 경쟁이 아니고 전쟁으로 보아야 하는 살벌한 현실이고 보면 모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사실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윗과 같이 싸우면 싸우는 족족 승리는 거두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싸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무엇과 싸워서라도 이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 대상 21:1-17
제목 : 다윗의 죄 때문에
서론
요압으로인하여 전쟁에서 대 승리를 거두고도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인구 조사를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이스라엘 민족 칠만명이 죽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가 아니고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받은 죄 값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죄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벧전 3:10-12). 그럼 다윗이 지은 죄가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귀로 인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본문 1-4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 게 하라 요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는 잊어 먹고 사단의 격동(감동)으로 인하여 전쟁에 나가서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파악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요압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뜻대로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무서운 죄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2.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겼습니다.
본문 7-8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하였습니다. 다윗이 한 짓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괘씸하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정말 문제가 안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여겨질 때에 사울을 물리치시고 그 다음의 왕을 삼으셨는데 이제는 괘씸한 짓을 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는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들은 죽어서 심판을 받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벌을 받지 아니할 수도 있지만 성도들은 죽어서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기 떄문에 살아 생전에 벌을 다 받고 가야 합니다(고전 11:31-32, 요 5:24).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죄 값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죄를 범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도 좋지만 아예 요셉처럼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이 더욱 좋은 것입니다.
3. 죄 값으로 벌을 받았습니다.
본문 9-14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이르시되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 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더라"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많이 봐주신 것입니다.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 가지 다 내리셨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다윗의 죄로 인하여 백성들이 죽었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결론
본문 15-17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사자를 보내셨더니 사자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하였습니다. 다윗이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백성들이 재앙을 받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하는 말입니다. 이는 죄 지음을 크게 후회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문 : 대상 22:1-19
제목 : 다윗과 성전
서론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좋아하였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의 소원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헌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못하여서 그의 손으로 짓지 못하고 그의 아들 대에 가서 지었습니다. 그 스스로는 성전을 짓지 못하였지만 성전에 대하여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재료를 준비하였습니다.
본문 1-5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철을 한 없이 준비하고… 놋을 준비하고…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자신은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난 이후부터는 자신이 죽기 전에 성전 지을 재료를 준비해놓고 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전 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많이 준비하였습니다. 이는 자기가 못한 일은 자기 아들이라도 반드시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아니한 이와 같은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2. 아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6-16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난미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슴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또 공장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하였습니다(15-16). 이는 아들을 통해서라도 기어코 뜻을 이루겠다는 그의 의지의 일부분을 보인 것입니다.
3. 백성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17-19 "다윗이 또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명하여 그 아들 솔로몬을 도우라 하여 가로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강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거민을 내 손에 붙이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에 드리게 하라 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 손으로 직접 성전은 짓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관심이 없는 때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중심하여 삶의 기쁨을 맛보려고 하였습니다.
결론
다윗은 사유 재산을 들여서 좋은 재료를 많이 준비하여 자식에게 부탁하고 백성들에게 부탁하여 기어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말았습니다. 우리들도 주의 일을 하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신이 못하면 자식이 해도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 대상 23:1-6
제목 : 인생 황혼에 할 일
서론
다윗도 사람인지라 늙은 것은 막을 수 없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음을 알아차린 그는 인생 마무리를 잘 지어보겠다고 생각을 한 나머지 아들을 불러서 왕위를 물려주고 신앙생활 잘 하라고 부탁하고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하여 재능에 따라서 일을 맡기고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해가 뜨면 지듯이 인생도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있는 상태를 인생 황혼기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지요. 한번쯤 살펴보고 남은 여생을 보람되게 살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1. 자기가 하는 일을 인계하는 것입니다.
본문 1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으로 이스라엘 왕을 삼고"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일시적으로 아들에게 왕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완전히 왕위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어서 도저히 일을 감당치도 못하면서 후계자에게 인계해 주지도 아니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발전을 전해하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기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대비하지 아니한다면 국가의 번영의 길을 막는 것이나 다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현명한 사람인지라 그와 같은 일을 사전에 방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생황혼기에 지혜롭게 처신하였음을 똑똑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오늘의 사람들엑 ㅔ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2. 인재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본문 2-3 "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였으니 모든 남자이 명수가 삼만 팔천인데"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 지을 준비는 완벽하게 갖추어 놓고 이제는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는 일군을 발굴해서 재능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맡기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전쟁에 나아가서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의 수를 계수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그 일로 인하여 백성들이 칠만이나 죽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와 같은 목적에서 사람을 계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계수한 것입니다. 즉 선한 목적을 위하여 계수하였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해서 하나님의 교회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 황혼기에 해야할 일입니다. 죽을 때에 일군하나 키우지 못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헌신하는 맥을 끊어 버리면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3. 적성에 맞게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 4-6 "그 중에 이만 사천은 여호와의전 사무를 보살피는 자요 육천은 유사와 재판관이요 사천은 문지기요 사천은 다윗읜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 다윗이 레위의 아들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의 각 족속을 따라 그 반열을 나누었더라"하였습니다. 특히 레위인들이 놀며는 안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전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일을 분담해서 맡긴 것입니다. 사무보는 일, 재판하는 일, 문지기 보는 일, 악기를 가지고 찬송하는 일 등 분야별로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다윗이 성전에 대한 관심이 참으로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죽기 전에 성전 지을 재료를 준비하고 이어서 성전에서 봉사한 일군들을 발굴하여 재능에 따라서 일을 맡긴 것은 매우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을 짓을 한 것입니다.
결론
황혼이 짙어지면 어두움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활동이 바빠지게 됩니다. 새들은 둥지를 찾기에 바쁘고 사람들은 집을 찾기에 바쁘며 기는 짐승들은 굴을 찾기에 바쁜 것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인생들은 천국갈 준비에 바빠야 하겠습니다. 그동안의 생활을 정비해볼 필요성도 있고 죽음을 의식하고 죽을 준비도 해야 하겠으며 재림 맞을 준비도 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매우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은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없이 최선을 다하고 갔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상 24:1-19
제목 : 하나님의 일은 나누어서 함이 좋다
서론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면 직분은 그의 지체와 같은 것입니다. 지체는 경쟁을 위해서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선을 행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직분도 하나님 교회 발전을 위하여 봉사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이 높고 낮음이 아니고 질서를 위해서 필요에 따라 반차(divisions) 구분하여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심이라"(엡 4:11-12)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세운 제도도 주를 위하여 순복함이 옳은 것입니다.
1. 질서를 위한 제도입니다.
본문 1-3 "아론 자손의 반차가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라… 다윗이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으로 더불어 저희를 나누어 각각 그 섬기는 직무를 맡겼는데"하였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하였습니다. 즉 조화가 맞는 질서의 하나님이시라 그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하였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고전 12:27-31)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각각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2:8-11, 롬 12:4-5).
2. 제비를 뽑아서 맡겼습니다.
본문 5 "이에 제비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하였습니다. 이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투표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하였습니다. 물론 투표를 해도 부정은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지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공평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 하나를 선택할 때에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서 선택하였습니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3-26)하였습니다. 직분자의 선택은 기도하고 제비를 뽑는 것이 합당한 방법입니다. 그리하여 뽑힌 자가 구할 것은 충성 뿐입니다(고전 4:1-2).
3. 목적은 수종드는데 있습니다.
본문 19 "이와 같은 반차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희 조상 아론에게 명하신 규례대로 수종들었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각종 직분은 계급이 아니며 권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를 위하여 수종드는 직이라는 것입니다. 직분을 계급이나 권세로 안다면 본인은 물론이지만 그가 속한 교회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들(사도들)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은 섬기는 직이요 희생하는 직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은 감사하고(딤전 1:12)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계 2:10). 그렇게 하면 결코 그 일이 헛되지 아니할 것입니다(고전 15:58). 그러나 반대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바울 사도처럼 교회 일을 염려하는 일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고후 11:23-28).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직분은 군림할 수 있는 계급이 아님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은 혼자서는 것도 아니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각각 재능대로 분담하여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상 25:1-7
제목 : 찬양대 역할
서론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앞뜰)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시 135:2-3)하였습니다. 그리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시 150:6).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찬양대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내고 성도들에게는 은혜를 끼치는 역할을 하고 자신들에게는 복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대르 조직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럼 찬양대가 교회에서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령한 노래를 하는 일입니다.
본문 1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분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하였습니다. 찬양대는 세상적인 노래를 부르는 음악 단체가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의 인간 지으신 목적에 따라(사 43:21)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를 부르면 슬프던 사람이 기쁨이 생기고 기쁘던 사람은 더욱 기쁨이 충만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령한 노래를 하는 단체가 교회 성가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무엇보다도 이방인과(불신자) 구별이 되어야 하고 음악에 소질이 있어야 하며 구속 받은 체험도 있어야 합니다. 세상 노래는 소질만 있으면 어느 음악 단체에서든지 일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찬양대는 반드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신령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2. 여호와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본문 3 "여두둔에게 이르러는 그 아들 그달리야와 스리와 여사야와 하사뱌와 맛디디야 여섯 사람이니 그 아비 여두둔의 수하에 속하여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꼭 물질만이 아니며 기도도 감사의 제물이 될 수 있고 찬송도 감사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찬양으로 주께 영광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찬양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며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나 구속하여 주신 목적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는데 있는 것입니다(엡 1:6-14). 그러므로 찬송은 기쁨으로 불러야 마땅한 것입니다. 감사는 무엇을 기대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받은 은혜 보답하는 뜻에서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3. 교회에서 예배에 봉사하는 일입니다.
본문 6-7 "이들이 다 그 아비의 수하에 속하여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아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서 노래하며 섬겼으며 아삽과 여두둔과 헤만은 왕의 수하에 속하였으니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 팔십 팔 인이라"하였습니다. 찬양대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돕는 봉사의 기관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기를 "그런즉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다"(고전 14:26)고 하였습니다. 예배는 기도와 찬송과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자의 입장에서 연습도 충분히 해야 하겠고 행동도 조심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일은 희생 없이는 엄두도 못낼 어려운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집례하는 자와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섬기는 자의 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찬양대의 역할은 매우 중대함을 깨닫고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신령한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로서 예배를 돕는 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봉사해야 찬양대로서 올바른 태도인 줄로 압니다. 끝까지 찬양하여 세상을 떠나서도 하늘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영원한 찬양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성도들에게는 많은 은혜를 끼치는 찬양대원들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본문 : 대상 26:1-32
제목 : 성전 일과 바깥 일
서론
성도들의 의무는 세상사람들보다 더 많은 줄 압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 22:20-21)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위엣 것만 생각하면 광신자가 되고 땅의 것만 생각하면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엿새 동안에 힘써 일하여야 하고 이레되는 날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출 20:8-9). 은혜받은 사람은 가정적이고(막 5:18-20) 교회적이 되어야 합니다(행 3:1-10). 본문을 통해서 교회일과 사회 및 가정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1. 교회에서 안내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 1-19(본문 1 "문지기") 자신이 작성해 보십시오.
2. 하나님의 교회 성물 관리도 해야 합니다.
본문 20-28 (본문 20 "성물관리")
3. 사회 및 가정일도 해야 합니다.
본문 29-31(본문 29 "바깥 일")
결론
성도들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엡 4:1). 성도의 의무를 이행하고 국민된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고(렘 48:10) 가정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딤전 5:8). 그러므로 성도들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보다는 더욱 부지런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가정에서도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들에게는 덕을 세우며 자신과 후손에게는 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상 27:1-15
제목 : 다윗의 군대 관리
서론
다윗은 왕이 되어서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의 군인 우리아를 일선에 내 보내어 죽게하고 그의 아내를 가로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성들을 위하여 군대를 조직하여 최대한으로 백성들의 편리를 도모하려고 하였습니다. 군인은 나라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1. 군인은 국가를 위하여 필요합니다.
본문 1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족장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유사들이"하였습니다. 군인의 의무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을 바쳐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전 2:3-4)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군인은 나라와 민족과 군인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정해진 기간을 무사히 마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군인은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군인이 없는 나라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립국이라고 해도 군대와 같은 자위대 및 민방위대가 있는 것입니다.
2. 합리적으로 조직하였습니다.
본문 1 "그 인수대로 반차가 나누이니 각 반열이 이만 사천명이었더라"하였습니다. 한 반열에 이만 사천명씩 반장 하나씩 두어 통솔하도록 하였습니다. 한 반열에 이만 사천명씩 해서 반장 하나씩 두어 통솔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지혜롭게 통솔하기 위하여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군 체제를 합리적으로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직무를 분산시켜 군 관리의 현대화를 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 지역을 군사 요새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휘관들을 임용할 때에 어느 누구라도 특혜를 부여한 적이 없고 능력 위주로 하여 인사 행정에 불만이 없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군을 관리하는 데는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군은 특수한 사회이기 때문에 여간 신경을 쓰지 아니하면 계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3. 백성들의 관리를 도모하였습니다.
본문 1 "일년동안 달마다 체번하여 들어가며 나왔으니"하였습니다. 일년에 한 달식은 집에서 가정 일을 도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체번(당번을 서로 갈아 듦)하였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그는 군의 통수자로서 백성들의 짐을 덜어주려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왕으로서 국가 안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백성들의 생업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군대 관리였습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군인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 당시에 군인들이 예수께 묻기를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눅 3:14)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무기가 있다고 해서 백성들을 괴롭히면 평안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단체가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서 백성들은 불안에 떨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그와 같은 인상을 받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국민이 군을 신뢰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결론
다윗은 군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자로서 군인들을 관리할 때에 백성들이 편안하고 안심하게 생업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나라의 대통령이 지혜롭게 군을 관리하여 백성들이 군을 믿고 생업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상 28:2-21
제목 : 다윗이 솔로몬을 격려함
서론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실 것을 예측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아버지로서 또한 부왕으로서 마지막 부탁의 말씀을 남기면서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으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1-3)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이와 같은 부모를 둔 솔로몬도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0 "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하였습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신다고 격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기뻐하였겠습니까. 누구라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이와 같은 격려를 자식에게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주의 종들이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1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이 있으니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도우리라"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도울 일은 정치적인 것보다도 신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왕으로서 하는 일을 도와주신다는 말로 격려를 하고 또한 나이 어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경험 없는 솔로몬을 레위 사람들 즉 제사장들이 솔로몬의 신앙생활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도와 준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전의 모든 역사를 도와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큰 사명이 있는데 성전에 대한 일이라면 전문가인 제사장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입니다.
3. 백성들이 함께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1 "또 모든 공역에 공교한 공장(물건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너와 함께 할 것이요 또 모든 장관과 백성이 온전히 네 명령 아래 있으리라"하였습니다. 백성들 속에는 기술자도 있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솔로몬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도와줄 때에 왕노릇도 제대로 할 수 있지 그렇지 아니하면 결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유명한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 보십시요. 위인 뒤에는 반드시 현모양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불 장군은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백성들의 협력없이는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백성들이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아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직전에 자식에게 왕위도 물려주고 신앙생활도 잘 하라고 당부하고 아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격려의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삶의 마무리입니까. 우리들도 얼마를 살든지 인생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상 29:1-30
제목 : 존귀하게 살다가 죽은 다윗
서론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한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대체로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전생에는 다 말할 수 없지만 본장에서 나타난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성전을 위하여 물질을 드렸습니다.
본문 1-9 "다윗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내가 이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려놓고도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14). 그리고 자기가 드린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면서 드리고도 심히 기뻐하였습니다(16-17).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평생에 존귀하게 살도록 허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 찬송을 드렸습니다.
본문 10-13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의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의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하였습니다. 감사는 억지로는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입니다. 감사는 물질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정성을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찬송을 주께 드렸습니다. 사람이 평생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것은 복 받은 생활인 것입니다.
3.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었습니다.
본문 28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하였습니다. 다윗이 왕위를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 주었을 때에 백성들은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라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왕이 되었는데 후손이 왕이 되지 못하면 이는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좋은 왕이 되어서 아버지 뒤를 이어 나라를 치리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한 때는 다윗이 사무엘에게도 멸시를 받았고 사울에게도 쫓겨다녔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괴롭기도 하였고 성전을 지으려는 열심까지도 묵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생을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죽음도 후회 없이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들도 다윗처럼 후회 없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는 날까지는 주를 위하여 몸 드리고 찬송드리며 살고 죽을 때에 후손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신앙생활 잘 하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