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째날, Mar. 9(Wed) Monterosso Al Mare-Pisa- Rome
바닷빛에서 기울어진 탑, 그리고 로마의 밤까지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몬테로쏘 알 마레의 아침, 친퀘테레의 해안길은 마치 그림 속의 풍경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절벽 위에 다소곳이 매달린 집들은 바다와 함께 호흡하며 세월을 견뎌온 듯했고, 파도는 그 집들의 기초를 받쳐주는 영원한 친구 같았다. 짙푸른 바다와 돌길을 따라 걷는 동안, 여행이란 결국 낯선 풍경 속에서 마음을 열어가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 길의 끝자락에서 차에 올랐다. 지중해의 향기를 뒤로하고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이탈리아의 시골길과 도시를 잇는 색다른 장면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피사. 이곳은 학생 시절 교과서의 삽화로만 접하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울어진 탑의 고장이었다. 눈앞에 선 그 사탑은 생각보다 더 경이로웠다. 단순히 기울어진 돌탑이 아니라, 중세의 장인들이 쌓아올린 시간의 기적이었으며,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나는 탑을 올려다보며 갈릴레오를 떠올렸다. 그가 이곳에서 실험을 통해 지동설의 진리를 세상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문득 마음을 울렸다. 진리를 향한 그의 도전은 바로 이 기울어진 탑처럼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었다. 옆에서 친구 정영식공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과서 속 삽화가 눈앞의 실물로 다가온 순간, 그는 마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정말 신기하다"라는 그의 짧은 말 속에 여행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피사를 떠날 즈음, 해는 이미 서쪽 하늘로 기울고 있었다. 몬테로소 알 마레를 떠나 이태리 서행안을 따라 피사를 경유 450여 km를 달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켠 채 도착한 곳은 로마였다. 그러나 로마의 첫인상은 장엄하기보다 다소 혼란스러웠다. 늦은 시각에 호텔을 찾지 못해, 짐을 들고 로마역을 배회하던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히 호텔을 안내해 준 현지인들의 손길은 낯선 도시에서의 불안을 잠재워 주었다. 결국 우리는 가까운 두 호텔에 나뉘어 방을 잡을 수 있었고, 허기를 달래듯 늦은 저녁을 먹은 뒤 긴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튿날부터는 ‘영원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은 로마의 장대한 유적과 광장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만큼은, 바닷빛으로 시작해 기울어진 탑을 지나, 혼란스러운 로마의 한 귀퉁이에서 잠든 여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여행은 결국, 예정된 경로보다 그 순간순간의 경험이 더 깊이 새겨진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적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