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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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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가져다준 행복 | |||
닉네임 : 최일구 | 작성일 : 2006.08.21 18:30 | 조회 : 24 | 추천 : 0 |
어제 고향 안성엘 내려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영화 괴물을 봤습니다. 안성시 번화가(?)에 광신극장이라는 곳인데요 2시 40분부터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지방의 극장이라서 그런지 좌석이 지정되지는 않더군요. 6층과 4층 2개의 영화 상영관이 있었는데 4층에서 괴물을 상영중이었습니다. 주차를 하느라고 극장앞에 어머니를 먼저 기다리라고 해놓고 돌아오니 어머니 손에는 따끈한 옥수수 두자루가 쥐어져있었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극장앞 좌판에서 구입하셨다고 하더군요.
서울 생각하고 너무 일찍 극장에 도착하니 한시간이상이나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옷이라도 한벌 사줘요? 했더니 필요없다고 하시고 그럼 산보할때 운동화는 필요없어? 했더니 그럼 싼걸로 운동화나 하나살까? 하면서 저를 따라오시다가 몇발자국 떼다가 '아니다 됐다. 지금있는거 빨아신으면 된다'하시며 한사코 운동화 구입도 거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러면 내일 병원가서 고혈압약 받으러 가야되는데 병원이나 다녀오자고 하셨습니다. 항상 다니시는 병원이라 금새 의사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한달치 고혈압약과 골다공증약을 받아갔고 나왔습니다.
약봉지와 옥수수봉지를 손에 들고 다시 극장을 향했습니다. 극장으로 향하는 길가 상점에 들러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모친과 괴물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위해서였죠. 드디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극장로비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생수한통을 사갖고 오면서 표를 받는 아저씨에게 일회용카메라를 건네며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안심이 되질 않아서 무려 세장이나 찍었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회사 사무실의 디카를 가지고 내려올걸 약간의 후회도 들더군요.
어쨋든 벽에 붙은 매우 작은 괴물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저는 어머니 손을 잡고 컴컴한 극장안으로 들어가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되더군요. 지난달 시사회때 한번 봤기때문에 그렇게 긴장은 되지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기전에 모친께 영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해드리지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두자루의 옥수수가운데 한자루의 중간을 잘라서 저에게 권했습니다. 마치 연인처럼 어머니와 저는 둘이서 이렇게 찐옥수수와 생수를 먹으며 영화를 보기시작했죠.
<괴물>이 이렇게 어머니와 나를 가깝게 묶어주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모친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영화볼 생각이나 했겠나 싶었습니다.
영화시작 10분만에 예의 그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기 시작하는 장면이나오는데 모친이 깜짝 놀라시는걸 느낄수있었습니다. 노인네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미동도 하지않으시고 영화에 집중하셨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는데 앞서 사진을 찍어준 매표원 아저씨가 "할머니 영화 잘 보셨어요?"하고 인사를 건네자 어머니도 뭐라고 조용히 이야길 나누시더군요. 제가 앞서 나오느라 무슨 말인지 인파에 묻혀 잘들리질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난뒤 어머니를 모시고 이번에는 죽산면에서 사진관을 하는 아저씨네 가게로 향했습니다.일회용카메라로 촬영한 기념사진을 현상인화하기위해서였죠. 차안에서 노인네한테 물었습니다. "아까 그 아저씨하고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영화속에 앵커로 나오는 사람이 저기 내 아들이라구 했더니 그 사람이 '아이구 그러냐'면서 깜짝 놀라더라구"하시는 겁니다. 룸미러로 뒤에 앉아 있는 모친의 얼굴엔 뿌듯함이 묻어있더군요.
"영화 언제보고 지금 보시는거요?" "아버지 서울에서 국민학교 선생할때 보고 처음보는것 같구나" 역산해보면 그건 제가 국민학생때였습니다. 그러니 족히 37년전은 된겁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훨씬전인 10년전에는 아버지하고 보셨겠지하는 막연한 나의 생각은 산산조각이 난거였습니다.
오후로 접어든 37번 국도는 이제 가을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교통체증도 없는 휴일의 국도를 따라 20여분만에 사진관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네 사진관에 도착해 일회용카메라 현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3방이나 찍은 사진은 전혀 찍히질 않았습니다. 극장 매표원 아저씨의 잘못인지 사진기가 불량인지....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그럼 오늘 괴물 어머니하고 본것을 기념하는 스튜디오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아저씨가 디카로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걸 그자리에서 인화했습니다. 같은 사진을 작은 액자에 담은것 2개와 큰것 1개로 뽑았습니다. 사진값을 굳이 받지 않겠다는 아저씨 내외에게 그럼 저녁을 사기로 하고 삼겹살집을 찾았습니다.
아저씨는 조카인 제가 자랑스러운듯이 음식을 날라오는 주인에게 "이 사람 몰라요? 텔레비에 나오는 사람인데"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촌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저를 알턱이 없지요. "저는 텔레비전을 잘 못봐서요..."
저녁을 먹으면서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이젠 나도 아들이 나온 괴물영화를 봤으니 누가 봤냐고 물어보면 할말이 있어서 됐다고 하시면서 그런데 꿈자리에 괴물이 나올까 겁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영화의 충격이 커보이셨습니다.
아저씨내외, 어머니와함게 식당을 나왔습니다. 어제는 마침 죽산장날이었습니다. 옛날같으면 5일장인 죽산장날은 인파로 북저였지만 대형 마트가 두개나 들어선 지금은 재래시장의 상점들은 경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어둠이 깔린 재래시장의 상점가엔 불이 환하게 켜졌지만 인적은 드물었습니다. 이곳에서만 30년가까이 사진관을 운영해온 아저씨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여기 쭉뻗은 시장통에 한번 봐라 사람하나 있나. 노무현이가 다 퍼줘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정말 죽을맛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이 시장통에 장사하나 기똥차게 잘되는 집이 있지"
"그게 어딘데요"
그러자 아재는 턱을 하늘로 향하며 말했습니다. "요즘 텔레비에 많이 나오는데지 여기 2층좀봐"
저의 시선도 아재가 가르친 방향을 따라 위로 올라갔습니다. 2층짜리 상가 2층엔 그야말로 요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다이야기>횟집(?)간판이 괴물처럼 붙어있었습니다.
승용차로 10분거리인 집에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큰액자는 어머니방에 작은 액자는 사랑채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올라왔습니다. 짧은 휴일의 바쁜 일정이었지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는데서 <괴물>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괴물과도 같은 <바다이야기>가 이 작은 면단위까지 침투해있다는 사실에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도착해 현관입구에 어머니와함께 찍은 또 다른 작은 액자 사진을 올려놨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출근길에 어머니와 찍은 그 액자를 들여다 보며 현관문을 나섰죠.
뿌듯하고 모친으로부터 힘을 얻는것 같았습니다.
이제 출퇴근길에 매일 어머니께 문안인사를 드리게됐기때문이죠.
제가 국민학교 졸업하고 처음입니다. |
첫댓글 최회장이 이렇게 장문의 글을 감동있게 쓰다니 믿어지지 않는다...어머님의 무한한 아들사랑과 모친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인간 최일삼을 오늘날 이렇게 큰 사람으로 만들었으리라. 훌륭하신 어머님께 더욱 효도하시면 어머님께서는 자식사랑과 자랑으로 여생을 행복하시게 편안히 보내시겠지.......자네의 착한 아들로서 쓴 좋은 글 잘 읽었네...앞으로도 자주 글 올리시길...
글쓴이가 '최더플"로 되어 있어서 최회장이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최회장의 글솜씨를 넘는 것 같고 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읽고나서 자세히 보니 최회장의 글이 아니라 최일구 기자의 글이구만.....그러니 스타 앵커지...그런 아우를 둔 형도 훌륭하고...
하하하... 일구씨 솜씨구만 그래. 입으로 벌어먹고 사는 앵커 치고는 잘 썼네. 언제 들어도 푸근한 단어가 어머니여. 다른 사람의 효도 얘기에도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