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와 함께 캄보디아의 상징 중 하나인 압사라(apsara) 이미지들을 외설적으로 사용했는가 여부를 놓고, 캄보디아 국내외의 크메르인 사회가 떠들석하다. "리어후"(Reahu)라는 크메르계 미국인 화가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세미 누드 작품들이 바로 그 논란의 중심에 있다. 리어후는 앙코르 사원들에 조각된 캄보디아 산징 중 하나인 압사라 여신들의 가슴을 노출시키는가 하면, 역시 가슴을 노출시킨 크메르루즈 소녀 게릴라 등을 그려, 예술과 외설의 경계 논란을 넘어서 크메르 민족주의의 적대적 반응을 얻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 웹사이트 폐쇄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 논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크메르의 세계"는 2008년 12월 말 보도된 <프놈펜포스트>의 기사와 함께, 호주의 전문연구자 펙 레빈(Peg LeVine) 박사가 <프놈펜포스트> 편집자 앞으로 보낸 서한을 함께 번역하여 게시한다. 리어후 본인의 입장도 게시하려 하였으나, 현재 인터넷 상에서 내용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추후로 미루기로 한다. 한편 펙 레빈 박사의 서한은 미학 분야 전공자답게 상당히 현학적인 만연체로 쓰여진 글이었으나, 가능한 한 보다 건조한 문체로 바꾸려고 노력하였으니 이 점을 고려하며 독해해 주길 요망함.[크메르의 세계] |
(보도) The Phnom Penh Post 2008-12-26 (번역) 크메르의 세계
논란의 예술가는 투쟁 중
Controversial artist fights back
기사작성 : 삼 릿(Sam Rith), 코넬리우스 란(Cornelius Rahn)
가슴을 노출시킨 압사라(Apsara) 무용수와 크메르루즈(Khmer Rouge) 소녀 병사를 묘사함으로써 대중적 능욕을 억제하지 않는 이 신비로운 예술가는, 자신에 대한 비평들에 대항해 일련의 목표 타격적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다.
(사진) 프놈펜포스트가 기사에 첨부한 Reahu의 작품. 논란이 되고 있는 크메르루즈 소녀 병사의 누드 작품이다.
가슴을 드러낸 압사라 무용수와 옷을 별로 걸치지 않은 크메르루즈 소녀병사들을 그린 자신의 작품에 대해 비판의 광풍이 몰아친 이후, 스스로를 "리어후"(Reahu)라 부르는 이 크메르계 미국인 화가는 일련의 웹사이트들에서 자신을 공격한 비판자들에 대해 반격을 개시했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reahu.net)에 게시된 글을 통해, "만일 나의 작업이 크메르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크메르 문화는 여전히 크메르루즈 치하에 놓여있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어후의 누드그림들은 캄보디아 보수층들에게 충격을 주어, 그의 웹사이트에는 험한 메세지들이 올라왔으며, 캄보디아 정부는 그의 웹사이트를 전면 폐쇄할 것을 요청했다.
리어후에 대한 비판자 중에는 뚜올 슬렝 감옥의 극소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캄보디아 화가 완 낫(Vann Nath)도 포함되어 있다. 완 낫은 가슴을 노출시킨 크메르루즈 소녀병사의 그림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했다. 그는 "[리어후가] 크메르루즈 정권 하에서 고통받은 수백만 캄보디아인들의 슬픔을 자극했다는 점과 이런 주제를 놓고 조롱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잉 깐타 파위(Ing Kantha Phavi) 여성부 장관은, 이 그림들로 인해 70-80%의 캄보디아 여성들이 불쾌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캄보디아에서 리어후의 웹사이트를 차단하도록 요청하겠다고 했다. 잉 깐타 파위 장관은 "그 그림들에서처럼 [사람들이 벗고 있었다면] 크메르루즈 당원들이 살해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는 도전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는 비판자들에 대해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제 그림이 [어떤 방식으로] 크메르 문화를 파괴한다는거죠?"라고 도전적으로 반문하거나, "문화에 관한 한 어떤 잘못도 없다. 만일 그 문화가 강력한 것이고 당신이 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면, 아무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웹사이트에 때때로 감정 섞인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그는 "불평하는 이들을 보며 판단컨데, 우리가 크메르인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21세기를 창조해 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제발 마음의 문을 여세요. 당신은 당신의 오두막 둘레에 쳐진 담장을 넘어서 볼 수 있어야만 한다"고 적기도 했다.
"캄보디아 문서보존센터"(Document Center of Cambodia: DC-Cam)의 요욱 창(Youk Chhang) 사무국장은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해 크메르루즈에 대한 노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예술가들은 과거 크메르루즈 지도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작학성을 복수하기 위해 그 정권 하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을 그리거나, 감성적 저항과 도발적 디자인 등을 사용해 표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건 AK-47 소총을 과거 크메르루즈 지도자들의 입 속에 겨눈 [화가인] 것처럼 보이네요"라고 덧붙였다.
리어후의 작품은 많은 애호가들을 지지자로 불러모으기도 했는데, 이 지지자들은 비판자들이 캄보디아 예술에 대해 무지하다고 지적한다. 리어후의 사이트에 글을 남긴 한 지지자는 "우리 캄보디아 사원들 벽에 새겨진 모든 압사라 여인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크메르 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크메르인이 앙코르를 창조한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사악하다고 말해야만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지지자는 비판자들의 글을 리어후의 웹사이트에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비판들이 예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과 역사, 문화에 무지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비시켜 보여줄 것"이라 주장했다.
한편 마이스페이스 닷 컴(Myspace.com)의 프로필 란에서, 리어후는 자신이 "순혈의 크메르인"(pure-bred Khmer)으로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소개했다.
펙 레빈 박사가 프놈펜포스트 편집자 앞으로 보낸 서한
(2009-1-2)
편집자 님 귀하,
귀사 <프놈펜포스트>(The Phnom Penh Post)의 2008년 12월 26일자 보도에서, 삼 릿(Sam Rith) 기자와 코넬리우스 란(Cornelius Rahn) 기자가 작성한 기사 <논란의 예술가는 투쟁 중>(Controversial Artist Fights Back)이란 기사에서 이미 지적한 바대로, 리어후(Reahu)라는 이름의 크메르계 미국인 화가의 작품들이 정당하다고 할만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슴을 노출시킨 압사라(Apsara) 무용수와 크메르루즈(Khmer Rouge) 소녀 병사를 묘사함으로써 대중적 능욕을 억제하지 않는 이 신비로운 예술가는, 자신에 대한 비평들에 대항해 일련의 목표 타격적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사진) 리어후 홈페이지의 초기화면 모습. ☞ 확대화면보기
굳이 예술적 자유나 열린 마음, 혹은 "문화적 세기의 증거"(evidence of the strength of a culture)를 둘러싼 논쟁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이미 30년 이상 전에 그 조각상의 몸체를 손상당한 압사라들을 위해 한 마디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신상들의 우아한 육체와 영혼은 앙코르와트(Angkor Wat) 사원들에서 크메르루즈에 의해 붉은색 신앙 페인트 세례를 견뎌냈습니다. 이제 겨우 이 신상들에 묻은 칠들이 벗겨지려 하고 있고, 이 신상들의 매력이야말로 항상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치유적 심리 인류학자"(clinical psychologist-anthropologist)로서, 저는 리어후가 자신이 그린 상(像, image)에 부여한 "의미"를 정당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상(이미지)들은 그 자체로는 상이 아닙니다. 만일 그가 압사라에 부가된 선조들의 문화적 첨가물을 남용하려 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그 격렬함을 "이용한 것"(uses)입니다. 리어후의 상들은 그 자체로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압사라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음으로써 "어린 소년병들에 대한 착취" 문제와 같은 또 다른 정치적 입장에 서서 시도한 것이라면, 그의 상들(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홀로 서 있기만 하고 관람자들이 스스로 그의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투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저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이 주제에 대한 "부활하는" 도전과 논란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가 도전하는 방식의 질적 수준은 캄보디아의 "제의적 기반시설"(ritual infrastructure)을 파괴한 의미를 정당화시킨 크메르루즈의 강압성을 다시금 재규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만, 그 비전을 정당화시켜 줄 수단이 중립적이거나 건설적이거나 혹은 파괴적인 3가지 경우가 존재합니다. 저는 리어후의 도발에 내재된 비전 혹은 의도를 아직은 확신하지 못한 상태입니다만, 그의 수단이 캄보디아의 문화적 기반의 복원과 보존에 적어도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회과학자이자 동시에 예술가로서, 저는 "반-문화적 범죄"(Crimes Against Cultures)가 "발전이라는 이름"(Name of Development) 하에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되고, [타인들에게] 강요하며, 그러한 위치를 영속화시켜 나가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적 권리와 자유에 관한 북미인들의 "신념들"(beliefs)을 가진 이들은, 과연 선조들의 통곡소리를 인지할 능력을 갖고 있을까요? 만일 그들이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그 잔학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러고도 그들이 과연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요?
과연 리어후는 압사라 상에 깃든 상징적 의미에 대한 어떤 "지각적"(perceptual) 지식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요? 혹시라도 리어후가 압사라의 화관과 장신구, 자세 및 착용 보석들, 그리고 장엄용 화환의 다양성을 카탈로그로 만든 1927년에 출판된 삽포 마르샬(Sappho Marchal)의 도화집을 알고 있기나 할까요? 이 도화집에는 무려 1,900종에 이르는 상들이 들어 있는데 말이죠.
"기술 민족학"(ethnography)에 대한 정형화된 공부를 하던 9년 동안의 시기에, 저 역시 예술 작품을 직접 창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 과정에서 1975-1979년 사이에 크메르루즈가 저지른 "전통적 제의"(traditional rituals)의 파괴를 그림으로 그렸고, "국립 싱가폴대학 출판부"(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Press)를 통해 곧 출간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저는 제가 발견한 것을 토대로 제 견해를 그렸습니다. 또한 제가 "타부"(Taboo: 금기사항)라고 부르는 도예, 밀랍, 청동 조작들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조각상들은 크메르루즈의 극단성을 표현한 3차원 이미지들입니다. 즉 크메르루즈는 사람들이 자신의 굶주린 몸을 매만질 때 스스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그로테스크한 영역 혹은 타부의 영역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록한 죽음의 잔학성은 이중적 고통을 표현합니다. 즉 인민들은 크메르주즈에 의해 영적 보호소(spirit protection)를 파괴당했고, 국가는 영적 기반(spirit infrastructure)이 없는 상태로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정신적 피난처였던 승려들과 와트, 그리고 제의의례를 상실했던 것이죠. 지난 10년 이상 저는 문서로 기록된 학살(Genocide)과 동반해서 발생한 "제의살"(Ritualcide: 필자가 만든 용어입니다)을 일으킨 동력을 분석해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리어후의 웹사이트(reahu.net)를 통해 그가 순혈의 크메르인으로 크메르계-미국인이란 점을 알고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리어후는 그 웹사이트에서 "만일 나의 작업이 크메르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크메르 문화는 여전히 크메르루즈 치하에 놓여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고 써놓았습니다. "당신의" 크메르 문화라고 지칭함으로써, 리어후는 자신이 "크메르계 미국인"(Khmer-American)에 대비되는 "미국계-크메르인"(American-Khmer)일 수도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저는 그의 대담성에 도전합니다. "제의살"의 영속화에 대한 도전을 통해 예술을 사용하도록, 그리고 "돌봄에 대한 예술적 의무"(Cultural Duty of Care)로서 문화적 기반을 복원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 말이죠.
(호주) 모나쉬 대학 Monash University 모나쉬 아시아연구소 Monash Asia Institute
박사 펙 레빈 Dr Peg LeVine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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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 읽어볼수록, 펙 레빈의 경우엔 웬지 책 팔아먹을 요량으로 이 논쟁에 끼어든 것 같다는 인상도 갖게 되네여.... 구사하는 언어도 지나치게 현학적이라 다소 지식인의 병폐를 보여주는듯도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