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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權發品)
법회 시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태풍의 영향으로 여기도 피해가 좀 있네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그래도 법화경 한 구절이라도 공부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품인, 제28 보현보살권발품이라고, 이 보현보살은 우리 불교의 여러 보살들 중에서, 문수보살과 상대를 이루는 보살님이지요. 보현보살의 특징은 白象(백상), 흰 코끼리를 타고 계신다는 것이 보현보살의 특징이고,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있는 것이 문수보살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데로 보현보살은 행을 중심으로 나타낸 보살이고,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등장하고 있지요.
보현보살이 최후로 “발심하기를 권하는 품이다.” 그래서 보현보살권발품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발심하기를 권한다.” 발심이라는 것은 법화경에 대한 발심입니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법화경이 불교의 모든 것이고, 인생의 모든 것이고 부처님으로서도 최후의 말씀이시고, 그러므로 모든 것이라고 표현해도 부처님께 크게 망발은 아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현보살께서 이 법화경에 대한 마음을 내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이야기! 그 권하는 이야기에 지켜서 보호하기를 권하는 이야기도 있고, 법화경을 신봉하면 이익도 있다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1. 보현(普賢)보살이 영축산(靈鷲山)에 오다
1 그 때에 보현보살이 자재(自在)한 신통의 힘과 위덕(威德)과 잘 알려진 이름으로써 한량없고 그지없고 일컬을 수 없는 대보살들과 함께 동방(東方)에서 오는데, 지나오는 국토마다 모두 다 진동하고 보배 연꽃을 비 내리며, 한량없는 백 천 만억의 갖가지 풍악을 연주하였습니다.
보현보살이 이렇게 자재한 신통의 힘과 위덕의 힘으로 여러 보살들과 함께 이 영축산에 와서, 법화경을 찬탄하고 법화경에 대해 발심하기를 권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수없는 천신,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와 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의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각각 위덕과 신통의 힘을 나타내면서 사바세계의 기사굴산(耆사崛山) 중에 이르러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머리를 숙여 예배하며 오른쪽으로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보현보살이 이렇게 늦게야 등장을 하지요. 기사굴산 중 맨 처음에 서품에 있었던, 법화경이 맨 처음 어디에서 설해졌는가를 나타내는 그런 장소, 바로 기사굴산이지요. 지금 거기에서 설하고 있으니까, 보현보살이 와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한다는 것이지요.
2.법화경을 얻을 방법을 묻다
2 그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보현보살의 이야기이지요?
“세존이시여, 제가 보위덕상왕(寶威德上王) 부처님 국토에 있으면서, 멀리 이 사바세계에서 법화경(法華經)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백 천 만억 보살 대중들과 함께 와서 듣고자 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어떻게 하면 이 법화경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 법화경을 부처님 당시, 또 영산회상에 모인 대중들이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그 외의, 열반하신 그 뒤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법화경을 만날 수 있는가? 그래서 부처님의 바른 법이 오래도록 널리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현보살이 이러한 것을 부처님께 여쭙고 계십니다. 부처님은 법화경을 얻을 만한 네 가지 조건을 여기서 제시를 하고 있어요.
3. 법화경을 얻을 네 가지 조건
3 부처님께서 보현보살께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여래가 열반한 뒤에 이 법화경을 만날 수 있느니라.
지금 우리는 법화경 공부를 잘 하고 있으니까요, 네 가지 조건을 볼 필요도 없이 이미 다 갖춘 분들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갖고, 경전의 왕 이라는 이 법화경! 부처님 말씀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위대한 가르침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현보살에게 제시했던 네 가지 조건이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하나는 부처님들의 호념(護念)함이요. 부처님이 우리들을 보호해 주고 늘 생각해주고 감싸주고, 우리가 부처님 찾지 않아도, 부처님은 항상 우리를 염려해주고 보호해 준다는 뜻입니다.
둘은 여러 가지 덕의 근본을 심는 것이요. 선근을 심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스스로 복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것은 개인적인 생각 여하에 달려 있겠습니다만, 사실 우리가 법화경을 만나서, 법화경을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지상에서 제일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복이 진짜 좋은 복이예요. 의식주 문제는 그저 몸 관리 정도면 되고, 그저 이 몸 하나 뉘일 자리면 되고, 사실은 굶지 않을 정도면 되는 거예요.
이 몸을 가지고 정말 인생으로서 몸을 받은 이 복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렇게 성인의 가르침을 만나서 성인의 가르침에 환희하고 기뻐하는 거기에 뭔가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것! 이것이 정말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淸福(청복)이라고 그러지요.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아온 일이지만, 벼슬 높은 사람들 뭐 좋은 것이 있습디까? 하나도 좋은 것이 없지요. 벼슬 얻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고, 온갖 모함과 권모술수를 다 쓰고, 또 그것을 지키려고 했고, 거기에서 물러난 뒤에도 끝까지, 상을 주었던 것을 되돌려야 된다느니, 또 옛날에, 글쎄요. 일제시대 때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그렇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렇게 6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무슨 파 명단을 작성한 사전을 만드느니 어쩌느니... 아~그렇습니다. 인간사 에는 참,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성인의 가르침에 이렇게 열중하고, 즐기고 기뻐하는 이럴 때에 사람이 사는 가치! 이외에 어떻습니까? 세속적인 온갖 시시비비, 참으로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래서 두 번째 여러 가지 덕의 근본을 심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덕의 근본을 심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가진 것은 없고 벼슬은 하나도 없고 그저 겨우 연명하고, 요즘 아파트 지하에 가면 버린 옷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 입을 수 있는 옷을 주을 수 있는 시대 아닙니까? 괜찮아요. 그런 것을 주어다가 깨끗이 빨아서 입고 지낸다 하더라도... 이러한 성인의 중요한 말씀의 가치를 생각하고, 여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환희심을 느낄 수 있다면, 이것이 참으로 사람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사람 사는 것이에요. 세속적인 가치기준으로 내노라 하고 살려면 끝이 없습니다. 그저 항상 부족하지요. 그래서 이런 말씀이 참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셋은 바로 결정된 종류[正定聚]에 들어감이요. 이것은 정정취라고 하는 것인데, 바르게 결정된, 더 이상 변동이 없는 불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邪定聚(사정취)라는 것은, 俗(속)된 가르침을 믿는 것이 邪定聚이고, 不定聚(부정취)라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불교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삿된 것인가 어쩐 것인가? 이렇게 마음속에 아직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不定聚 라고 그래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지요.
正定聚(정정취), 바르게 결정된 종류라고 하는 말은 불심이 아주 확실해서 도대체 흔들릴 까닭이 없고, 너무나도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넷은 모든 중생을 구호하려는 마음을 냄이니라. 우리가 성인의 가르침을 만나서 바르게 살아가는데 대한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소신이 있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자 하는 자세가 중생을 구하려는 것이지요. 자꾸 권해서 “좋은 법회가 있다.” “좋은 가르침이 있다.” “좋은 책이 있다.”고 자꾸 여러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중생을 구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마음이 갖춰져 있으면,
선남자 선여인이 이렇게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여래가 열반한 뒤에 이 경을 만나게 되느니라.”
염화실 법우님들은 이미 벌써 이러한 조건을 갖춘 이들이라서 하등의 염려될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더욱더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요.
4.법화행자(法華行子)를 수호할 것을 서원하다
(1)외난(外難)을 수호하다
4 이 때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최후의 오백세(五百歲)의 흐리고 나쁜 세상에서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마땅히 수호하여 쇠망(衰亡)하는 근심을 덜고 편안함을 얻게 하며 그 결점을 엿보는 이가 없게 하겠습니다. 만일 마군(魔群)이거나 마의 아들이나 마의 여자나 마의 백성이나 마가 붙은 이나 야차나 나찰이나 구반다나 비사자나 길자나 부단나나 위타라 등의 사람을 괴롭게 하는 자가 그 결점을 얻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귀신 축에 드는, 삿된 생각을 가진 靈駕(영가)거나 사람이거나, 사람도 이런 귀신 노릇하는 사람 많지요. ‘저건 꼭 물귀신 같다’ 하는 소리를 흔히 하지 않습니까? 그런 등등 이런 사람들이 결점을 엿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보현보살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금강경에도 나오는데 후오백세, 후 후오백세, 이런 말을 쓰는데, 왜 이렇게 오백세를 단위로 했느냐 하면, 대승불교가 한창 발전할 시기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500년 되었을 때입니다. 그 때 살던 사람들이, “야~! 오백 년 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이쯤 되었다.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것이 이쯤 되었다.” 그러니 그 때 벌써 말세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대승경전에 말세라는 말이 많이 등장 합니다.
그 때 벌써 500년 정도 지났는데, 승려들도 그렇고, 불자들도 그렇고, 부처님 본래의 정신을 등지고 엉뚱한 데로 흐르고 있었지요. 그런 경향이 많았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요. 그래서 새롭게 불교 운동을 일으킨 이들이 대승불교 운동이라고 하지요. 그것이 부처님이 열반 하시고, 한 500년 무렵 되었을 때가, 가장 왕성하게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금강경, 유마경, 법화경이 그 무렵에 결집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500년을 단위로... 500년이 흘렀는데 또 500년이 더 흐르면 얼마나 달라질까? 그 다음에 거기서 또 500년이 흐르면 얼마나 달라질까? 그 다음에 거기서 또 500년이 흐르면 얼마나 달라질까? 이렇게 해서 다섯 번이 반복된다면, 500년이란 것이 다섯 번을 반복된다면, 그때는 형편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제5 오백년, 일 500년, 이 500년, 삼 500년, 사 500년, 제오 500년.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최후의 5백세라는 것은 제5 오백년을 말하는 것이지요. 아시는 바 대로 제일 500년은 解脫堅固(해탈견고)시대이고, 제이 500년은 禪定堅固(선정견고)시대이고, 제삼 500년은 多聞堅固(다문견고)시대이고, 제사 500년은 塔寺堅固(탑사견고)불사를 많이 하는 시대이고, 제오 500년은 불자들이 공부는 안하고 시시비비만 일삼을 것이다. 그래서 鬪爭堅固(투쟁견고)시대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꼭 연한으로써 500년, 1000년, 1500년, 2000년, 2500년, 이렇게 보기보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라도 어느 시대이든지 해탈에 이른 사람은 바로 부처님과, 부처님 열반 500년까지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 다음에 선정견고는 지금이라도 선정에 몰두하고, 더 이상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않는, 정말 선정만을 최후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선정견고 시대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염화실 법우님들은 일단은, 물론 개인적으로 기도도 하시고, 선정도 닦으시고, 해탈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법문을 하고 경전을 읽고, 보고 듣고 부처님 말씀이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고 이런 이론적인 공부, 경전의 말씀을 공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에 살더라도 다문견고 시대에 산다, 많을 多 자, 들을 聞 자입니다.
佛事(불사), 가시적인 불사에만 관심이 있는 불자들 참 많지요. 그런 이들은 탑사견고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러지요.
불교에 들어와서 승려가 되었든 신도가 되었든 간에 시시비비나 살피고 그런 것만 눈에 들어오니까 투쟁도 하고 시시비비도 하고 잘 잘못만 자꾸 따지는 그런 사람들은 영원히 투쟁견고에 사는 것이지요. 부처님 당시 때에라도 그렇게 사는 사람은 투쟁견고 시대에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때에라도 어떤 가시적인 사찰, 경치, 탑, 불교예술품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그것이 불교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처님 당시가 되었든 어느 시대가 되었든 그것은 전부 탑사견고시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이해를 하면 됩니다.
이것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하면 세속적인 관념은 온갖 차별현상을 눈여겨보죠. 그 차별상을 눈여겨보면 그것은 곧 투쟁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차별을 쫓아가고 그 차별을 극복 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앞서려고 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나으려고 하는, 상대보다 나으려고 하는 그 마음이 투쟁이거든요. 그러다가 사찰에 왔다 이거죠.
사찰에 오거나 다른데서라도, 불교예술품, 절, 산, 탑, 불교미술 이런 것을 접하게 되면, 뭔가 ‘아, 그거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찰에 오면 일단 마음이 순화가 됩니다. 사실은... 좋은 명산대찰에 오면 어떤 악인도 마음이 저절로 부드러워지고, 선량해지고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어떻습니까? ‘야, 저렇게 명산대찰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있어서 저러한 문화재가 이렇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가? 그 정신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보려고 하지요. 그러다 보면 불교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게 되지요.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에 열중하는 사람! 이것이 다문견고시대에 사는 사람이지요. 다문을 이렇게 많이 하는 것은 결국 선정을 닦기 위한 것이다.
기도나 참선이나 간경이나 아주 깊이,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지식을 축적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아주 깊이 들어가는 것이 내 공부이고 내 살림살이가 되겠구나! 진짜 내 불교가 되겠구나! 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선정견고 이고, 그것이 깊어지면 결국은 갈 곳이 어디입니까? 해탈이지요.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500년의 차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저는 늘 그렇게 깨달았고, 그렇게 이해를 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2500년이 지난 시대라고 해서 모든 불자가 투쟁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 당시라고 해서 투쟁하는 불자가 없다는 뜻도 아니고요. 지금도 해탈한 사람이 없다는 뜻도 아니고요. 그렇게 볼 때 대다수 사람들을 어림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것 보다는 생판 속된 삶에서, 그 속된 삶이란 투쟁의 삶에서 뭔가 예술품, 사찰, 명산, 탑, 불교의 조각 이런 것에 관심을 갖다가 성인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다가 實智(실지)로 實參實語(실참실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은 해탈에 까지 이르게 되는 그런 과정을 그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법을 수호하다
5 이 사람이 다니거나 섰거나 이 경을 읽고 외우면 제가 그 때에 어금니 여섯 개 가진 흰 코끼리[六牙白象]를 타고 대보살들과 함께 그의 처소에 가서 몸을 나타내어 공양하고 수호하여 그 마음을 위로하겠습니다. 역시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六牙白象(육아백상) 이라고 해서, 보현보살은 육아백상을 타고,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그것이 조각이나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지요.
이 사람이 만일 앉아서 이 경을 생각할 적에 제가 그 때에 흰 코끼리를 타고 그 앞에 나타나되 그 사람이 만약 법화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잊었더라도 제가 마땅히 가르쳐 주어 함께 읽고 외워서 다시 통달하게 하겠습니다.
6 이 때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는 사람이 제 몸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더욱 정진하며, 저를 본 인연으로 삼매와 다라니를 얻을 것입니다. 이름이 선다라니(旋佗羅尼)와 백천만억 선다라니와 법음방편(法音方便) 선다라니 이니 이러한 다라니를 얻을 것입니다.
이런 다라니를 얻으면 참 중요한 것이, 앞에도 있었지만 법화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잊었더라도 제가 마땅히 가르쳐 주어 함께 읽고 외워서 다시 통달하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다라니라는 것은 우리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특히 성인의 말씀을 읽은 대로 들은 대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하는 그런 능력을 주로 다라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번역하면 摠持(총지)이지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기억해 가진다.’이런 뜻이지요. 다라니라는 것이... 그래서 이런 것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날 때가 참 많습니다.
경전을 수없이 읽었는데, 기억해 보면 그저 아름아름하고, 몇 구절만 떠오를 때 그럴 때 참, 아깝지요 답답하기도 하고... 이럴 때 한번 아란존자 같이 총명해서 다라니를 얻어가지고, 본 대로 들은 대로 다 외웠으면 법회할 때, 특히 강의할 때 얼마나 잘 써먹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공상이겠지요 마는, 어쨌든 좀 어린(未熟미숙)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이 경전을 이야기하는 입장에서는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7 세존이시여, 만일 오는 세상의 최후의 오백세(五百歲)의 흐리고 나쁜 세상에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로서 찾는 이, 받아 지니는 이, 읽는 이, 외우는 이, 쓰는 이들이 이 법화경을 닦아 익히려면 삼칠일(三七日)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니,
최소한도 21일은 용맹정진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삼칠일이 되면 제가 어금니 여섯 개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한량없는 보살에게 둘러싸여, 모든 중생들이 보기 좋아하는 몸으로 그 사람의 앞에 나타나서 법을 설하여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익케 하여 기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라니 신주(神呪)를 주겠습니다. 이 다라니의 힘으로 말미암아 사람 아닌 것들이 감히 파괴하지 못하며, 여인들이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경전에는 ‘여인들,’ ‘여인들’ 하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도 다 어찌 보면 소승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성이라고 고치면 좋겠지요.
어지럽게 하는 유혹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저도 이 사람을 항상 수호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주문을 설하지요. 저 앞에서 다라니품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최후로 또 주문으로 보현보살이 이렇게 주문을 외워서, 법화경을 지키고, 법화경을 따르고 공부하는 이들을 수호한다는 것입니다.
(3)주문을 설하다
8 오직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저에게 이 다라니 신주를 설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곧 부처님 앞에서 주문(呪文)을 설하였습니다.
“아단디1 단다바디2 단다바데3 단다구사례4 단다수다례5 수다례6 수다라바디7 붓다바선녜8 살바다라니아바다니9살바바사아바다니10 수아바다니11 싱가바리사니12 싱가녈가다니13 아싱기14 싱가파가디15 뎨례아다싱가도랴아라뎨바라뎨16 살바싱가삼마디가란디17 살바달마수바리찰뎨18 살바살타루다교사랴아노가디19 신아비기리디뎨20”
여기까지가 보현보살이 수호하기 위해서, 설하는 주문이 되겠습니다. 이 주문은 뜻이 아주 깊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저 앞에서 다라니품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도대체 어떤 뜻이 담겨있는가 알고 싶다. 이런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다른 법화경 해설서를 보면, 간혹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을 좀 더 깊이 공부 하실 분들은 그런 것을 구해서 참고하시기 바라고, 이 다라니나 주문이나 진언은 뜻을 모르고 외워도 그만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5.보현보살의 위신력(威神力)
9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보살이 이 다라니를 듣는 이는 마땅히 보현의 신통의 힘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법화경이 염부제(閻浮提)에 유통할 적에 받아 지니는 이는 마땅히 다 보현의 위덕과 신통의 힘인 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보현보살의 위신력을 나타내는 그런 내용인데, 직접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신주를 외우고, 또 다 마땅히 보현의 위덕과 신통의 힘인 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 말대로라면, 만약 법화경이 염부제에 유통할 적에 받아 지니는 이는,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염부제거든요. 우리가 있는 곳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염부제에서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이렇게 또 강의를 하고 이렇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다 보현보살의 신통력이다! 보현보살의 신통의 힘이다! 이렇게 생각 하는 것도 참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제가 기술이 없고 기계에 어두워서, 태풍의 영향으로 차질이 많았습니다. 이해하시구요. 오늘 법화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9월 8일 염화실 인터넷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저희 방송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데 아직 고쳐지지가 않아가지고 진행이 매끄럽지가 못합니다. 양해하시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법화경 마지막 시간이 되겠네요. 보현보살권발품 이게 법화경 상, 하로 나누고 품으로도 28품이나 되는 아주 방대한 경전인데 어떻게 보면 사실은 이게 길다면 상당히 긴 경전인데 벌써 3월 4일 부터 시작해서 뭐 처음에는 매일하다가 중간부터는 토요일 일요일 쉬고 또 사이 사이에 다른 법문이 들어가고 그렇게 했는데 어쨋건 이렇게 해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끝나는데 까지 이렇게 제가 힘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우님들이 모두 이렇게 열심히 들어주신 그 청중들의 성의에 기인한 것이다 라고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오늘 저녁에 314쪽 수승한 선근이 되다 라고 하는 그런 그 내용을 가지고 마지막 부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법화경을 중심으로 수행하고 공부하는 이들은 말하자면 수승한 선근이 된다. 아주 뛰어난 수승하다고 하는 것을 이제 우리 불교에서 참 잘 쓰는 말인데 참 좋은 말이죠. 수승한 선근이 되다 그랬습니다.
6. 수승한 선근이 되다
10 만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하고 뜻을 해설하고 설한 대로 수행(修行) 하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보현의 행을 행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깊이 선근(善根)을 심으며 모든 여래(如來)의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시는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법화경을 잘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고 기억하고 또 뜻을 해설하고 또 설한 대로 수행하는 이는 보현의 행을 행한다 그랬습니다. 불교는 뭐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보살행으로 회향해야 그것이 깨달음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불교는 그게 목적이에요.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세상에 펼칠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보탬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 이게 사실은 목적입니다. 뭐 혼자 뭐 천 번 만 번 높은 경지를 깨닫고 뭐 아무것도 옆 사람에게 보탬이 안된다면 그건 깨달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한사람 제도하는 것은 부불법외도라, 불법에 붙어있는 외도다 해서 부처님이 아주 통렬하게 꾸짖으신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뭐 그 이익이 설사 깨달음이라 해도 그것은 외도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고 비록 깨달음의 경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작은 보살의 행위라 하더라도 그 작은 보살행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쳐주고 이치를 깨닫게 해주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떤 그 진리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익과 행복에 보탬이 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불자의 길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그 삶을 우리는 보살행이라고 그렇게 하죠. 불교에서 그래서 보살이 닦아야 할 덕목을 육바라밀 또는 십바라밀 그 다음에 사무량심, 사서법 뭐 여러 가지를 듭니다. 그런데 보살행도 뭐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보살행을 들 때 보현보살의 행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여기도 마지막 품에 보현보살권발품이 나와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화엄경에 보면 수행자의 대표자를, 선제동자를 이제 내세웠는데 선제동자는 오십삼 선지식을 뵐 때 마다 늘 묻는 말이 한결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행을 닦고 보살행을 실천할 수가 있겠습니까? 한결 같이 보살행에 대해서 묻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그 물음에 알맞게 다 보살행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라고 그렇게 보는 것이 바람직하죠. 그래서 그 보살행의 대표는 보현보살의 행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 최후의 보현행원품을 우리가 숭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현행원품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화엄경의 결론이지만 또 불교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랬어요. 그 보살행도 여러 가지가 많고 보현행도 여러 가지가 많은데 보현행원품 에는 이제 보현보살이 10가지 행원을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10가지 행원을 대표로 들고 있습니다.
그게 첫째 이제 예경제불이라고 했는데 제가 늘 주장하는 인불사상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고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하는 이 원리를 역시 보현행원의 예경제불원에다가 뿌리를 두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도 이제 보현의 행을 행한다 그랬습니다.
이 법화경을 잘 실천하는 사람은 이미 보현의 행을 행하는 사람이다. 보살행의 대표가 바로 보현보살의 행이기 때문에 그런 그 훌륭한 보현의 행을 행하는 일이 바로 이 법화경의 정신과 맞아 떨어진다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처소에서 깊이 선근(善根)을 심으며 모든 여래(如來)의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시는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어릴 때 선생님이 심부름 하나만 시켜도 그것이 몇 날 몇 일 자랑거리가 됐죠. 그런데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하면 그건 또 대단한 자랑거리가 될 겁니다. 상당히 여러 날 자랑거리가 될 것이고 아마 평생 못잊을 그런 자랑거리가 되겠죠.
그런데 여래께서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셨다 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그 영광이겠습니까?
정말 두고두고 자랑거리고 정말 없던 신심도 일어날 것이고 정말 부처님의 일을 위해서 정말 뭐 이 몸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그 헌신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날 것입니다.
바로 이 법화경 수행자는 그런 그 여래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런 그 입장에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여래께서 그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신 것을 입은 그런 아주 영광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법화행자의 공덕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이제 뭐 그물이, 참 그 그물코 라고 그러는데 그 구멍이 참 여러 개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 새를 잡는 그물이든 고기를 잡는 그물이든 그 그물에 새를 잡는 경우를 대게 이제 이야기를 옛날에 많이 했는데 그물 그 구멍이 여러 개 라고 해서 모든 구멍에 새가 다 걸리는 거는 아니에요 그런데 구멍 하나에 새가 한 마리 걸린다고요. 그렇다고 구멍 하나만 만들어 놓고 그물이다 이렇게 하면 그건 또 맞지 않는 거죠. 그건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듯이 부처님도 중생들을 건지는데 별의별 방편을 많이 씁니다. 여기 이제 소개되는 이런 내용으로 또 우리가 참 감동을 하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가지고 신심을 내고 나아가서는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 아주 관세음보살 같은, 지장보살 같은, 또는 보현, 문수 같은 그런 보살행을 실천궁행할 수 있는 그런 그 길도 이런데서 원인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7. 법화행자(法華行子)의 공덕
11 만약 다만 쓰기만 하여도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고는 마땅히 도리천상(忉利天上)에 태어날 것이다. 그랬어요.
팔만사천 천녀(天女)들이 온갖 풍류를 연주하면서 와서 맞이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칠보관(七寶冠)을 쓰고 시녀들 속에서 호사하며 즐길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하고 뜻을 해설하고 말한 대로 수행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랬습니다.
받아 쓰기만 해도 그런데 이렇게 만일 다 한다면, 오종법사의 행을 다 한다면 뭐 엄청난 그런 그 공덕이 있다 그런 뜻이죠.
만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뜻을 해설하면 이 사람은 목숨이 마치면 일천 부처님께서 손을 내밀어주어, 두렵지도 않고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도 않고, 곧 도솔천상(兜率天上)의 미륵보살이 계신데 왕생(往生)할 것입니다. 미륵보살은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있는 대보살들에게 둘러 싸여서 백천 만억 천녀의 권속들이 있는 가운데 태어나게 되는 이와 같은 공덕과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순수하게 이렇게 믿으면 또 그렇게 됩니다. 뭐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온갖 것이 다 이루어진다 라고 하면서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염염물생 이라고 하는 그런 구절이 있어요. 순간순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조금도의심을 내지 말라 그랬습니다. 참 그게 중요해요.
우리가 경전을 공부하든 또 관세음보살을 한 번 부르던 간에 거기에 대한 그런 그 가르침을 그대로 믿는 것이 이익합니다. 뭐 그 결과가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 그거는 그 다음의 문제에요.
제가 관음경을 말하면서 기적의 경전이다 했는데 순수하게 믿고 열심히 부르는 그 순간 벌써 그것은 기적이다 이렇게 이제 해설을 내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믿고 하는 그 순간, 그 진실함, 그 정성스러움, 이게 중요한 거죠. 그 순간 그 사람은 아주 진실하게 살았고, 의심없이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고, 순수하게 살았다, 이렇게 이제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법화경의 공덕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 대목도 역시 우리가 그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12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일심으로 스스로 쓰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쓰게 하여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하고 말한 대로 수행할 것입니다.
아주 순수하고 의심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고 하는 이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에요. 잘 안 믿고 머리 굴려가지고 이러 저리 합리적으로 뭐 해석을 할려고 들고, 또는 이 시대의 무슨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 같지만 그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걸 아셔야 되요. 그 지혜가 있다고 하고 뭐 똑똑하다 해도 설 똑똑한 것이고 지혜도 엉터리 지혜라고 하는 거죠. 그걸 간혜, 바짝 마른 지혜다 라고 경전에서 그걸 다 지적했습니다. 정말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성인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어요.
8. 보현보살의 서원
13 세존이시여, 저는 신통의 힘으로 이 경을 수호하며,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남섬부주 널리 선포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이게 이제 보현보살의 서원입니다. 이 경을 잘 수호하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도 남섬부주 널리 선표해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 그래서 지금 어떻습니까? 26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우리가 이렇게 읽을 수 있고 들을 수가 있고 사유할 수가 있고 독송하고 사경하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것이 이 경전에 의한다면 보현보살 같은 그런 그 훌륭한 보살님들이 수호 하고 지켜준 덕택이다 그렇게 이제 봐야겠죠. 그럼 보현보살은 어떻게 해서 이럴 수 있었느냐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9. 보현보살의 내력을 말하다.
14 그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찬탄하시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보현(普賢) 이여, 그대가 이 경을 보호하고 도와서 많은 중생들을 안락(安樂)하고 이익(利益)케 하였으니, 그대는 부사의한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자비가 깊고 커서 오래 전부터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으며, 능히 이렇게 신통한 서원(誓願)을 세워서 이 경을 받아 지니니 내가 마땅히 신통한 힘으로써 보현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는 이를 수호(守護)하리라.
여긴 또 이제 앞에서는 보현보살이 법화경을 수호한다 했는데 부처님께서 보현보살 이름을 받아지니는 이를 수호한다 이렇게 했습니다. 참 보현보살은 우리나라의 관음이라고 하는 이름의 절이라든지 불명이라든지 암자라든지 참 많죠. 보현도 이제 거기에 못지않습니다. 뭐 걸핏하면 보현행, 보현화, 보현성, 뭐 또 보현암, 보현사, 그 보현사 치고 유명한 게 이제 묘향산 보현사가 아주 유명하죠. 서산스님이 계셨던 그 사찰 언제 한 번 가볼 수 있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듭니다. 보현보살도 우리 불교에 참으로 아주 큰 보살이죠.
우리 예불문에 사대보살 중에 문수, 보현, 관음, 지장, 그렇게 이제 되어 있죠. 그와 같이 보현보살은 우리가 알고 또 이해하고 뭐 깨달은 것을 몸으로 표현 하자고 하는 이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현보살이 바로 그런 그 몸으로 실천궁행하고 표현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이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10. 법화행자는 이러하니라
15 보현이여, 만일 이 법화경(法華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하여 닦아 익히고 쓰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이 경전을 들은 것이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공양한 것이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부처님이 훌륭하다고 찬탄한 것이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손으로 그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 되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옷으로 덮어준 것이 되느니라.
참 좋은 내용이죠. 이러한 것들이 다 이제 우리가 법화경을 신심을 내서 공부하는 그런 모든 법화행자의 그 신심 속에 이런 것이 다 포함됩니다. 석가모니가 옷으로 덮어주고 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부처님이 이 사람은 훌륭하다고 찬탄하고 꼭 훌륭하다고 찬탄을 해야 되고 찬탄한 소리를 들어야만 찬탄을 받는게 아니죠.
이미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일이 벌써 찬탄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직접적인 찬탄이 어디 있습니까? 공부하고 있는 그 일 자체가 그게 제일 좋은 찬탄이죠. 사실은.
공부하고 있다. 아이구 잘한다 라고 누가 뭐 말해주는 것, 그건 뭐 글쎄 어린아이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좀 성인이 된 사람들은 이미 공부하고 있는 그 일이 부처님으로 부터 인정받는 일이고 찬탄 받는 일이고 또 나에게 큰 영험이고 기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시간에 우리가 뭐 다른 곳에서 별별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별별 세상일에 휩쓸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지않습니까? 이게 기적 아니고 뭡니까? 이게 큰 찬탄이고 부처님으로 부터 찬탄을 받는 것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받는 것이고 옷으로써 덮어주는 것을 우리가 입게 되는 그런 그 행복이다 이렇게 생각 해야죠.
이걸 가슴깊이 느껴셔야 할텐데... 그 다음
16 이런 사람은 더 이상 세간의 욕락을 탐하지 않으며, 외도(外道)의 경서(經書)와 글씨를 좋아하지 않으며, 또 그 사람들을 친근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백정이나 돼지, 양, 닭, 개를 기르는 이나 사냥꾼이나 여색(女色)을 판매하는 나쁜 이들을 친근하지도 않느니라.
글쎄요. 성인의 가르침을 공부 열심히 하는 이들이 뭐 이런 위에 든 이런 내용에 마음 쓸 까닭이 없죠. 저절로 그런 것은 뭐 멀리하라 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멀리할 줄 알고 멀리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마음이 순박하고 정직하며 바르게 기억하고 복덕의 힘이 있으므로 삼독(三毒)의 시달림을 받지도 않느니라. 질투, 아만, 사만(邪慢), 뛰어난 체하는 이들의 괴롭힘도 받지 않느니라. 이 사람은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아서 보현의 행을 능히 닦느니라.
그렇죠. 보현의 행, 바로 이 법화경의 인불사상,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 보현행원품에도 첫 조항이 열 가지 행원 가운데 첫 조항이 예경제불,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올 곧은 사상이고 보현의 사상이고 보살행의대표적인 길이고 그것이 이제 행복의 열쇠입니다. 달리 다른 열쇠가 없어요.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가 알고 그 가치를 인정 해주고 그래서 그 가치를 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가치이고 그래서 모두를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일이고 뭐 그런 일이 되겠죠.
17 보현이여, 여래가 열반한 뒤 최후 오백세(五百世)에 어떤 사람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이가 있으면 응당히 이렇게 생각하리라.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도량(道場)에 나아가서 마군의 무리를 깨뜨리고
도량에 나아가서 마군의 무리를 깨뜨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도량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그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한국에 있든 어디에 있든 간에 바로 그러한 경지에 나아간다 이런 뜻이죠.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며, 법륜(法輪)을 굴리고 법고(法鼓)를 치며, 법의 소라를 불고 법의 비를 내리며, 마땅히 하늘과 인간의 대중 가운데서 사자좌에 앉을 줄로 생각할 것이니라.
참 위로 거슬러 올라 가면 아무래도 불법 공부하기가 사회의 분위기상 좋았다고 봐야 겠죠. 그러나 지금 뭐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사실은 인성은 메말라 가고 또 성인의 가르침은 차츰차츰 멀리 하는 그런 경향을 우리가 역역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시대에 살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한 최후 오백세 이천오백년 이후 사람들로써 정말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일이라면 이건 뭐 대단한 일이라는 거죠. 대단한 일, 그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 보리도량(道場)에 나아가서 마군의 무리를 깨뜨리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며, 법륜(法輪)을 굴리고 법고(法鼓)를 치며, 법의 소라를 불고 법의 비를 내리고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가정 한 개인에게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더욱더 널리 확대 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우리가 하는 거죠.
18 보현이여. 만일 후세에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이는 다시 의복이나 침구나 음식이나 살림하는 물품을 탐하지 않아도 그 소원이 헛되지 아니하리라. 또 이 세상에서 그 복의 과보(果報)를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뭐 그런 물질적인 것 까지도 저절로 따라 온다 이런 말이예요. 뭐 불교 공부해서 물질적인 것을 구할려고 사실 처음부터 그런 의미는 아니예요. 그러나 또 그런 것을 위해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 좀 많습니까? 그런 것 까지도 해결된다 이겁니다.
가능하죠. 얼마든지 모든 것이 이치에 맞게 살게 되고 이치를 깨달아서 이치에 맞게 살줄 안다면 물질은 저절로 들어오게 되어 있는 거죠. 법화경 공부란게 뭡니까? 바른 이치, 참답고 바른 이치를 우리가 배워서 그것을 몸소 느끼고 실천구명 하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뭐 저절로 돈벌이도 되는 것이고 사업도 잘되는 것이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19 만일 어떤 사람이 업신여기며 말하기를 '너는 미친 사람일 뿐이다. 부질없이 이런 행을 하는 것이요, 아무 소득도 없으리라.'고 하면, 이 죄보(罪報)로 날 적마다 눈이 멀게 되리라. 만약 공양하고 찬탄하는 이는 이 세상에서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법화경 공부하는 사람을 그렇게 미친 사람이다, 부질없는 행위다, 아무 소득도 없다, 가족 가운데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 이것은 주의를 줘야 합니다. 절대 그런 말은 않도록 해야 되죠. 크게 찬탄은 하지 않더라도 비난하고 쓸데없는 이런 불신을 하는 것은 참 그 분에게 법을 비방하는 그런 아주 무거운 죄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죠. 가능하면 어떨게 하더라도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또 친구나 친지들을 이해 못하는 이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 이해를 못하면 뭐 이런 말로써 공갈이라도 한번 쯤 쳐서 방편으로 겁을 줄 수도 있어요. 법화경 내용으로 보면 간혹 그런 방편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0 만일 이 경을 받아 지니는 이를 보고 그의 허물을 드러내면, 그것이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이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백라병(白癩病)을 얻을 것이니라. 만약 경멸하고 비웃으면 세세생생에 이가 성글고 빠지고, 입술이 추악하고, 코가 납작하고, 손발이 삐뚤어지리라. 눈은 튀어나오거나 움푹 패일 것이고, 몸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나고, 나쁜 부스럼에 피고름이 흐르고 배에 물이 차게[水腹]되고 숨이 가쁘며, 여러 가지 나쁘고 중한 병에 걸리리라. 그러므로 보현이여,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이를 보거든 마땅히 일어나서 멀리 나가 영접하여 부처님을 공경하듯이 할 것이니라."
아 이래야 되는데 이거 참 큰일이네요. 이런 보현보살권발품에 공부하기를 마음내라고 권하는 그런 그 품인데 이런 그 아주 어떻게 들으면 좀 섬짓한 그런 방편의 말씀이 이렇게 있습니다. 꼭 이렇게 된다고 그런 것보다는 좀 사실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이런 방편도 간혹 필요한 때가 있죠. 그러니까 법화경이 좋아서 우리가 지금 이 끝까지 이런 공부를 따라오신 분들께 무슨 해당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간혹 주위에 법화경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 하거나 뭐 하는 그런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절대 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일이니까요. 절대 욕하거나 미워하거나 그래선 않되고 어떻게 하더라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끝내는 참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이 참 위대하고 훌륭하다 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무턱대고 이렇게 밝은 세상에 미신적인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자꾸 사람들에게 권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비난을 듣죠. 뭐 무당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말하자면 들어내 놓고 하는 그런 경우가 아직도 많지 않습니까? 또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구요. 그렇게 하다보니 식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그런 점들을 보고 사람들이 불교전체를 매도하는 그런 사례가 종종 있지않습니까?
이건 이제 불자의 탓이고 불자의 잘못입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고 바르게 공부하고 깊이 공부해서 부처님의 올곧은 사상을 우리가 몸소 실천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킬려고 하는 그런 노력, 바람직한 포교활동이 부족하다 하는 그런 그이유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그것도 바른 가르침이라야 바른 가르침을 펴는 그 일이 인생으로써 가장 소중하고 값지다는 거죠. 그리고 가장 급한 일이라고 경전에서 누누이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1. 보현보살권발품을 설한 공덕
21 이 보현권발품(普賢權發品)을 말씀하실 때에 항하사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보살들은 백천만억 선다라니를 얻고, 삼천대천 세계의 티끌 수 보살들은 보현의 도를 구족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적에 보현 등의 여러 보살과 사리불(舍利佛) 등의 여러 성문(聲聞)과 천신들과 용과 사람과 사람 아닌 이 등 모든 대중이 모두 크게 환희하여 부처님 말씀을 받아 지니고 예배하고 물러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법화경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하권 종 이렇게 이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 법화경을 한 마디로 정리를 하면 누차 말씀드렸고 처음에도 말씀드렸고 중간에도 말씀드렸고 오늘도 그런 말씀을 보현행원의 첫째 항목이 인불사상人佛思想인 예경제불이다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이 법화경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불사상人佛思想입니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런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부처님이니까 그 내용을 우리가 속속들이 잘 이해하면 그것 이해한다는 게 깨달아서 이해한다든지 설명을 듣고 이해하든지 간에 어째든 그런 깊은 그런 이해를 했을 때,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우리가 이해를 했을 때 부처님이라는 사실 외에는 달리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정말 부처님이 시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이것이 인불사상이고 바로 법화경 사상이고 또 이것을, 인불사상을 우리가 제대로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그 수많은 보살행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곧 보현행자요, 법화행자다 그런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법화경 강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 동안 법우님 여러분들 부족한 강의 잘 경청해 주셔서 아주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실 오십여 분, 지금도 쉰네 분이 이렇게 올라와서 경청하고 계시는데 이 분들이 힘이 되어 사실은 저도 이렇게 열성으로 뭐 본래 불교를 좋아하고 특히 법화경을 좋아하는 저의 개인적인 사정도 있습니다만 경청하시는 염화실 여러 법우님들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 즉 사람이 사는 일과 모든 존재의 참되고 바른 이치를 공부하고 그것을 전하는 일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가장소중하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급한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사실 그동안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그렇게 살았어요. 뭐 부족하지만 그러한 저의 소신도 변함이 없고 부족하나마 그렇게 살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비록 내가 이렇게 법을 전하는 일 이것 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저의 소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그 일은 세세생생 할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힘 닿는데 까지 그렇게 살고 세세생생 할 일이죠.
오늘로써 법화경을 마치구요. 한 달 정도 중국에 가서 입원치료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몸이 그렇게 성한 사람이 아니죠. 상당히 중환자 입니다. 그래서 한달 정도 휴강합니다.
그렇게 아시고 모두가 주인이 되어 염화실관리 잘 해주시고 자주 들어오셔서 글도 많이 읽으시고 여러 가지 글과 올려져 있는 강의 많지 않습니까? 뭐 불교공부 실컷 할 수 있고 불교경전공부 다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염화실입니다. 열심히 공부 하시기를 신신당부 드립니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는 10일날 회향법회 이렇게 명칭을 붙여서 우리가 니르바나후원회의 밤에 아울러서 함께 하게 되었는데 본래 인터넷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흔적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끝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또 이렇게 오프라인 상에서 만나게 되었으니까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 답답하고 또 섭섭한 것은 정말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그 동안 법문 한 것을 일일이 듣고 녹취하신 분이 계세요. 세 분이 그 일을 하셨는데 저와 비슷한 처지라 저 보다 더 못한 경우도 있고 그래서 거동이 상당히 어려운 분들이라서 10일날 참석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그 공덕과 그 은혜 우리가 일일이 말하지 안더라도 다 이해하리라고 그렇게 생각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아니면 10일날 말씀드려도 되지만 참석 못하실 분들이 많이 계시고 그렇게 중요한 분들이 참석을 못하게 되서 이 시간을 빌어서 그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일일이 그 분들하고 대화 한번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이심전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계실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 혼자만 이해하는게 아니겠죠. 많은 우리 법우님들이 깊이 이해하시리라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 분들에게 이 시간을 빌어서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뭐 감사드린다는 이 말 가지고 되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쓰는 말이 이것 뿐이니 어쩝니까?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것으로써 법화경 강의 모두 마치고 한 달여 후에 다른 강의 생각을 해서 다시 강의가 재개될 것입니다. 모두들 정말 건강하게 부처님의 가호로 건강하게 지내시고 또 가정 가정마다 개인 개인마다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