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족(혹은 크메르 이슬람)은 프놈펜 같은 캄보디아의 대도시 근교와 메콩 강 유역에 거주한다. 이들의 언어는 짬어이며, 이는 많은 근대 여러 인도 언어들에서 사용되는 데와나가리(데바나가리(Devanagari) 자모를 사용하는 폴리네시안계 말레이( Malayo-Polynesian) 언어이다.
오래 전 짬족은 베트남의 남부 지방에 "참파"(Champa)라고 불리는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였었다. 참파 왕국은 늘 전쟁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1400년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흥왕했었다. 그러나, 1471년 베트남인들의 침입으로 참파왕국은 무너지게 되었고, 당시 참파왕국의 자유시민들과 귀족들은 캄보디아 땅으로 피난해야 했다. 치욕스러웠던 과거의 이러한 역사는, 최근에 정부가 새로이 소수종족의 자유권을 약속함으로써 다시 짬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살렸다.
사실 정부와 공산주의 크메르루즈 간의 내전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혼란으로 빠지게 되었던 1969년 이전까지 캄보디아는 잘 성장하고 있었던 나라였다. 크메르 루즈가 통치하던 기간(1975-1979) 동안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삶의 모습
(크메르의 세계 추가사진) 전통무용을 추고 있는 짬족 여인들. 사진은 베트남 남부에서 촬영된 것이다. (사진: Jérémy Couture, 2008-7-7)
1975년 크메르 루즈 정권은 캄보디아를 거의 파괴시켰다. 당시 만연한 기아(굶주림)로 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통화는 폐지되었고, 의약품들은 끊어졌으며,종교는 탄압되고,교육 정책 또한 정지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들을 단순히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또 어떤 사람들은 단지 안경을 썼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로 죽음을 당해야 했다. 이러한 크메르 루즈 정권의 만행은 "이상적 농촌사회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졌다. 1975년 당시 캄보디아에 살고 있던 무슬림 짬족 인구는 25만명에 달했었지만, 크메르 루즈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그 수가 격감했다.
본래부터, 짬족은 소수종족 집단으로 이미 차별을 당해왔으며, 또한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완전히 멸절되어야 할 종족으로 낙인지워졌던것이다. 그래서, 많은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짬족 사람들은 무작위 체포되어 고난을 당했다. 자신들의 모국어(짬어) 사용을 금지 당했고 무슬림들에게는 식품으로 금기시되는 돼지고지를 먹도록 강요당했다. 이러한 잔혹행위를 피해서 수천명의 짬족 사람들이 숲으로 도망하였으나, 크메르 루즈의 추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고 결국 다시 사로잡혀 사형을 당했다. 그 당시 약 10만 명의 짬족이 살해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작은 집단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무슬림 짬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 남았던 일부 짬족 생존자들이 있었으나 결국 질병과 기아로 사망하기도 했다.
오늘날, 남아있는 짬족 사람들은 농사, 어업, 배 만들기, 소규모 상업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폭격, 내전, 베트남과의 전쟁은 한때 번성하였던 농업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었다. 땅이 비옥하지는 않지만, 평원들은 매 우기 때마다 범람을 이룬다. 이 범람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어류가 매우 풍부해지고, 이 시기가 끝나면서 비교적 비옥한 충적토를 남기게 된다.
짬족 마을은 극도로 가난하며 그러한 마을들을 영구적인 정착지로 보기 힘들다. 가옥들은 대나무로 만들어지며 홍수를 대비하여 땅에서 일정 높이를 띄워 집을 세운다. 어류와 쌀 그리고 야채가 일상적인 음식이나, 대부분의 생활 필수품들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일반적인 가정들은 집에 장식품이나 가정용품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캄보디아의 짬족은 외삼촌이 가정에서 권위를 갖는 것 등과 같은 자신들만의 문화적 특징들을 일부 잘 보존하여 왔다. 허나, 이미 많은 부분에 있어 짬족은 캄보디아인의 생활양식에 융화되었고 오늘날 많은 짬족 사람들이 크메르어(Khmer)를 사용하고 있다.
짬족 사회는 모계중심(여성에 의해 혈통이 이어짐)의 사회이다. 이는 1975-1979년에 이르는 크메르 루즈정권의 잔혹행위로 인해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훨씬 많이 사망함으로써 비정상적인 성비(sex ratio)를 갖게 된 데에서 기인한다. 현재 짬족 사회에서는 한때 남성들이 감당했던 일들도 여성들이 수행해야만 한다.
종교
참파 왕국은 가장 전성기때에, 인도의 힌두 문화와 말레이족의 이슬람 문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서로 다른 종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종국에 짬족은 쉬아파(Shafite-‘쉬아’란 분파라는 뜻으로 수니파-정통파-이외의 분파를 총칭하며,교조 마호메트의 사위였던 ‘알리 브 아비 탈리브’를 추종함으로 시작됨) 이슬람의 변형된 모습을 나타냈다. 짬족의 독특한 전통중의 하나는 죽은 사람을 두 번 매장하는 것이다. 사망 직후에 즉시 죽은 사람을 임시 무덤에 매장하고, 일년 후, 다시 죽은 사람의 뼈를 추려서 영구적인 무덤으로 가져가서 고인의 반지들과 같이 매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