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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
마태복음 15장 21-28절
2008.09.14. 주일 낮 예배 새 소망교회 오 종 화 목사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강한 여자일까요? 첫째는 역시 힘이 센 여자가 아무래도 강한 여자일 것입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필에서 장미란 선수가 105kg의 몸무게를 갖고 인상 140kg, 용상 186kg 합계 326kg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날 밤 만큼 가슴 뿌듯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날 밤 해설가에 의하면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무거운 바벨을 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장미란 선수보다 약 50kg 쯤 더 나가는 선수가 장미란 선수보다 무려 20kg이상 못 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고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둘째로 돈 많은 여자가 강한 여자일 수 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가 시대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어서 돈만 많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권력을 쥔 여자가 강한 여자입니다. 옛날 헤로디아는 빌립이 죽자 남편의 형인 헤롯왕의 아내가 되어 권력을 쥐었습니다. 자기의 행위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하니 헤롯왕은 자기 생일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어 그에게 주었습니다. 이번 성지탐방은 흔히 갈 수 없는 오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들을 다녀왔습니다. 워낙 오지로 다녔기 때문에 힘이 들고 어려워서 함께 가신 지방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돌아가며 배탈이 나고 그래서 가져갔던 지사제와 정로환과 아스피린 타이레놀 등이 모자라 동이 났습니다. 일정 중에 시리아에 있는 세례요한의 목 무덤이 있는 유적지도 늦은 밤중에 가 보았습니다. 필리핀의 이멜다는 남편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필리핀을 쥐락펴락했습니다. 결국 권력을 잘못 사용한 이 여자들은 파멸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대처여사는 감리교인 인데 영국수상에 오르자 우후죽순인 노조를 정비하고 영국의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 놓았습니다. 대처여사가 죽으면 영국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것이 영국 국민들의 뜻이었습니다.
넷째는 인기 있는 유명인들도 강한 여자입니다.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는 전 세계 남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강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힘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권세도 아니고, 인기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강한 여자는 이런 여자들입니다.
첫째는 불타는 소원을 가슴에 품고 있는 여자입니다.
가슴에 소원을 품고 있는 자가 강한 여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소원을 주셨을 때 결코 패하지 않는 강한 여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의 가슴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이변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장미란 선수가 5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도 그렇고, 육상 100m와 2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자마이카의 우사인 볼트도 이변의 주인공들입니다. 올림픽에서는 물론 금메달을 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남아공 대표로 여자 수영 10km 마라톤에 참가한 22세의 나탈리 뒤 투아(Natalie du Toit)의 인간 승리 모습은 세계인에게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가 출발선에 서면서 왼쪽 다리를 뽑아내자 모든 사람이 경악했습니다. 한쪽 다리로 수영 마라톤 선수로 뽑힌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17세 때 고향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각국 대표 25명이 참가했는데 16위를 했습니다. 왼쪽 무릎 아래가 없어 물을 차는 힘이 부족한 데도 1위 라리사 일첸코에 불과 1분22초를 뒤졌을 뿐입니다. 경기 직후 그는 기자들에게 “이건 나의 꿈이었다. 나는 경기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2년 영연방 커먼웰스 게임에 장애인 대표로 출전해 50m와 100m 자유형 부문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 2004년 시드니 패럴림픽에서는 금5, 은1로 장애인 세계 최강을 과시했습니다. 지난 5월 3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10km 세계대회에서 1위에 불과 5.1초 뒤진 4위를 하여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것입니다. 미국 타임즈는 이번 올림픽에 주목해야 할 100인의 선수 중 우사인 볼트, 마이클 펠프스와 함께 그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경기 후 비장애인들과 경기를 한 소감을 묻자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들만큼 노력하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다리 수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투아가 방벽에 써 붙인 글을 소개했습니다.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못 미친 것이 아니다. 도전할 목표를 갖지 못한 것이다.” 꿈을 갖고, 소원을 갖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소원을 이루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람이 강한 여자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야겠다는 소원이 그의 가슴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역경도 끝까지 인내하며 매달리는 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인입니다. 시돈 지방에 사는 가나안 여인은 딸이 귀신들려 병들어 있어 어떻게든지 고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시돈지방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렇게 차가운 예수님의 반응에도 가나안 여인은 더 간절합니다. 예수님께 절하며 이렇게 간구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나 예수님의 냉대는 더 심해집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15:26)
예수님이 냉대할수록 가나안 여인의 집착은 더욱 끈질깁니다. 그 가슴 속에 어떻게 해서든지 딸을 살리고자 하는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엄마의 소원입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15:27)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목사님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차례로 배탈이 나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만 다른 음식은 몰라도 빵 하나만큼은 어딜 가나 맛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새롭게 안 것은 그 중동사람 부자들은 식사 때에 빵조각으로 손을 닦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아마도 여기 이 여인이 하는 말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했던 것은 주인이 손을 씻고 버린 빵 부스러기를 개가 먹지 않느냐는 뜻인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큰 소리로 가나안 여인을 칭찬하며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
이 사건을 놓고 예수님도 역시 민족주의자였고, 시온니즘에 빠진 유대인이었고, 인종차별주의 자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가나안 여인을 개 취급하시지 않았느냐는 얘기입니다.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너무 겉핥기식 해석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십니다. 역사의 주관자요, 역사의 시작과 끝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한 말씀, 한 말씀은 모두가 중생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이나 기사이적들, 그리고 행하심도 모두가 천국진리를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소원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너를 짓기 전에 이미 아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가나안 여인을 냉대하시는 까닭은 그녀의 그 큰 믿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어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려는 사람은 이 가나안 여인처럼 끝까지 매달려 간구할 때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모범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끈질긴 믿음, 인내하는 믿음, 끝까지 매달리는 믿음, 그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여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예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재능이 많은 연예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운동선수들도 보면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상에 오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사람이 정상에 오르기도 합니다.
미국 텍사스에 컨츄리 뮤직 스타 클린트 블랙(Clint Black)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1,600만장의 앨범을 팔았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어렸을 때 신문을 팔았습니다. 매일같이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휴스톤 포스트신문을 팔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신문팔이를 대하는 사람들은 늘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면전에서 “나는 쓰레기 같은 그 신문을 원치 않는다”며 문을 꽝 닫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격려하고 다시 문을 두드려 그 신문이 얼마나 좋은 신문인지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결국 그 남자는 이 소년에게서 신문을 사고 말았습니다. 얼마 안 되어 블랙은 그 신문사에서 최고의 판매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성공적인 판매원들처럼 신입 판매원들을 훈련시키는 직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신입 판매원 훈련을 시키면서 그는 하모니카와 기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18세에 그는 전문음악가가 되기 위해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어렵고 오랜 시련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멈추지 않았습니다. 1,600만장의 앨범이 팔린 유명한 가수가 된 후 그는 말합니다. “나는 결코 나의 꿈(소원)을 향한 시각을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 결심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성공할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은 채 끝까지 굳건한 의지로 나아가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가나안 여인도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나 예수님에게서 냉대를 받아도 거부를 당해도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부르짖었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도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너는 할 수 있다.” 어떤 사업가는 “온순한 사람은 세계를 상속받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시장 점유율을 높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부인인 엘리나(Eleanor)는 아침 일찍 볼티모어 감옥소를 방문하기 위해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남편의 새벽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떠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나가 어디에 있느냐?”는 대통령의 말에 비서는 “네, 지금 감옥소에 있습니다. 각하”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난 별로 놀라지 않는다. 무슨 죄로 갔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두 부부의 재미있는 일화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엘리나 루즈벨트는 해야 할 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에는 결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2-5절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여인이 있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재판관은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다가 과부가 너무 번거롭게 하니 할 수 없이 그 여인의 소청을 들어주었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비유를 들려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7-8)
예수님은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인내심을 갖고 끈기 있게 매달리는 기도와 직접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믿음은 오래 참음이라는 말입니다. 가나안 여인이나 못된 재판관을 설득한 여인은 끈질김으로 강한 여자가 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여인의 탄원에 대한 예수님의 궁극적인 응답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8)
그 즉시 그의 딸이 치유되었습니다. 여기‘믿음’은 무엇을 말합니까? 단순히‘믿는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어떤 지적인정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신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증명하신 진리들을 외치는 것입니다. 믿음은 힘들고 어려울 때, 친구들이 당신을 버릴 때, 바로 그때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의 소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나안 여인으로부터 매우 크고 소중한 것을 교훈으로 얻습니다. 큰 믿음은 언제나 힘들고 어려울 때 나타난 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때 큰 믿음이 나타나는 줄로, 발휘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선택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신발 흙털이개가 될 것이냐? 선택은 분명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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