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침마당 생방송 출연 현장 스케치 (2007.9 생방송 아침마당 방송)
2007년 9월 27일 약한 비
추석이 지나자마자 마음이 분주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라디오가 아닌 텔레비전에 방송출연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녹화 방송이 아닌 생방송이라 그 부담감은 전혀 작지 않았다.
PD님과 작가님의 간곡한 부탁에 출연 승낙은 했지만 시간이 가까울수록 나와 내 아내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몇 번의 메일로 원고와 진행 방향에 대해 의견은 나누었지만 아직 총연습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일찍 전주로 내려오라는 구성 진의 요청으로 우리는 서둘러 용인에서 전주로 차를 몰았다. 간간이 아스팔트를 촉촉이 적시는 빗줄기가 싫지 않았다. 어차피 추석을 연이은 시간이라 이틀 더 휴무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루 더 일을 하는 것보다 이 한 번의 경험이 내 인생의 거친 파도를 잔잔하게 만들어 줄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은 어차피 거센 파도를 견뎌내야 하고 우리 가는 길에 가시밭길 있거든 밟고 넘어가야 할 길이 아니던가?
추석이 끝난 후의 도로는 한가했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듯해서 우리는 덕진공원에 차를 세우고 전주비빔밥을 먹은 다음 저수지의 반을 가득 메운 연꽃 위 철 다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토란 잎 두 배 크기인 연잎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장관을 연출하며 저마다 해를 향해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이따금 고개 들어 하늘 보기가 부끄러운 몇몇 이파리들만 머리를 조아리며 물속만 뚫어지리라 바라보았다. 또 시간이 흐르고 찬바람 불면 저들은 다들 무릎을 꺾어 내 탓이라고 저마다 자기반성의 시간을 겨울의 단상 위에 올려놓겠지.
밤이건 낮이건 / 해 질 녘 스산한 그림자 거두어 가면 / 덜 아프련만 / 널따란 이파리 뭐 그리 숨길 게 많은지 / 세상 근심 다 안고 / 물결 출렁이는 만큼 / 흔들리고 있었다. (시집 내 가슴에 섬 하나 '덕진 공원에 우는 꽃' 일부분) 어쩌면 출렁이는 만큼 흔들릴 수 있었기에 저렇게 우아한 연꽃으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건 아닐까?
방송국에 도착한 우리는 미리 마중을 나온 작가님과 PD님을 만나 촬영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는 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간략히 적은 원고를 들고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그늘 평상에 앉아 대본을 연습했다. 예전부터 양반 촌이라 불리던 이곳을 보존하고자 한옥마을이란 이름으로 각종 공예전시회, 한지 인쇄, 풀잎공예, 국악 체험, 등등 많은 행사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주거니 받거니 대본연습을 하는데 질문만 눈에 들어올 뿐 대본은 암기가 되지 않았다. PD님 말씀도 대본대로 촬영하면 촬영을 망치는 거라면서 질문의 요지만 파악하고 대답은 즉흥적으로 하라는 말씀이셨다. 이미 내가 경험했던 인생을 바탕으로 대답하는 것이니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밤에 다시 만난 제작진과 우리는 한정식으로 식사를 마친 다음 정해주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소도시라서 그런지 호텔 시설은 여타 모텔수준보다도 못했다.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숙소부터 개선해야 할 듯싶었다. 호텔에서 다시 한 번 연습하고 우리는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2007년 9월 28일 금요일 비
새벽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알람이 울리기 20분 전에 이미 일어난 우리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방송국으로 향했다.
오전 7시, 미리 도착해 있는 분장사에게 우리는 화장을 받았다. 아내는 화면에 가장 잘 받는 화장을 마치 신부화장을 하듯 했고, 나는 결혼식 때도 하지 않았던 화장을 처음으로 했다.
오전 7시 40분, 우리는 서둘러 스튜디오로 향했다. 아침뉴스를 진행 중이던 김태은 아나운서가 방송을 끝내고 바로 도착했다. 남성 아나운서와 두 분이 진행을 맡았다. 방청객들도 미리 들어와 앉았다. 총연습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서로 인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화면에 올라가는 시와 내가 낭송하는 속도 조절을 위해 몇 분의 시간이 더 할애되었다.
초조, 불안, 긴장, 방송사고, 등 온갖 긴장과 떨림 현상이 반복되었다. 녹화 방송도 아닌 생방송에서 혹시라도 내가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아내도 심히 긴장이 되는 듯 좌불안석이다.
오전 8시 25분, 신호가 울리고 화면에는 '아침마당 전북'이라는 로고가 올라갔다. 신호 음악이 끝나고 스튜디오의 모든 조명은 불이 들어왔다. 이윽고, 진행자의 인사가 시작되었다. 추석 덕담이 오가고 재래시장으로 화재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뻥튀기에 대한 화재로 이어졌다. 뻥튀기 기계에서는 뻥튀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시도 나온다더라라는 아나운서의 말에 청중들이 놀란 듯 진행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김태은 아나운서의 설명이 이어졌다.
"바로 뻥튀기 기계에서 시를 튀기는 뻥튀기 파는 시인 김덕길님과 아내 되시는 정영숙님을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정해진 질문을 능수 능란하게 이어갔고, 나는 정해진 질문에 원고 없는 입담을 풀어놓기에 이르렀다. 이미 내가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질문이 막힌다거나 그런 점은 거의 없었다. 나도나를 모를 상황이 스튜디오를 사로잡았다. 나의 현란한 동작과 설득력 있는 화술은 시종일관 스튜디오에 모인 청중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아내 역시 떨리긴 했지만 할 말은 여유 있게 혹은 감동까지 섞으며 종횡무진 대화를 풀어나갔다.
두 편의 시를 낭송하면서 화면에 올라가는 시와 목소리를 맞추다 보니 낭송이 조금 어색했지만 그것 말고는 대부분 원활하게 방송이 진행되었다. 앞으로 출간될 노점일기의 홍보까지 무난하게 할 수 있도록 아나운서는 시간을 할애해 주셨다. 내 생에 처음으로 출연한 생방송에서 나는 미약하나마 작은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사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내가 잘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의 말이 매우 잘했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다시 보기를 클릭해서 보는데 정말 저렇게 잘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가히 수준급이었다. 칠보에 사시는 매형께서 이 프로그램을 보셨다는 연락이 왔다. 어쩌면 전라북도에서 뻥튀기 장사를 하면 정말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방송이 끝났다. 근 한 달을 머리 싸매고 방송 때문에 고민했던 시간이 이제 다 끝났다. 30분을 위해 한 달을 고생하는 제작진들의 수고로움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너무 평범한 나를 생방송에 출연하게끔 이끌어주신 정읍통문의 이진우님, 아침마당의 담당 이 PD님, 송작가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 올리는 바이다. 아울러 나처럼 노점에서 고생하며 열심히 생업에 열중하실 많은 노점 상인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앞으로 더 독자들의 가슴에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필을 쓸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