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을 다녀와서
박범서
‘비자를 다시한번 확인하시고... 내일 인천공항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문자를 보내면서 그동안의 노산 산행 준비는 완료되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소풍 전날 마음 들뜬 초등학교 어린애처럼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 산행이 차질없이 그러면서도 보람있게 진행될 수 있을까하는 노파심에 또 한번 몸을 뒤척였다.
이른 아침부터 북적대는 공항에 도착하니 저멀리 낮익은 얼굴들이 눈에 보인다. 전부원 회장님을 비롯해 김우경 선배, 박흥수 선배께 인사를 하고 새벽4시에 가평에서 출발했다는 민수, 수현, 양훈이와 첫대면을 하였다. 여의도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처음 본 영규와도 반가운 악수를 하였다.
발권을 하고 짐을 부치고는 잔치국수 한그릇으로 요기를 하고, 팩소주와 양주 몇 병, 우리를 안내할 심의섭선배께 드릴 선물을 면세점에서 준비했다.
칭따오행 중국항공기는 8시 45분 이륙하여 한시간 남짓 비행 끝에 청도공항에 도착했다. 가방 하나가 나오지 않아 20여분 간 설왕설래한 끝에 찾은 것이외에 별 탈없이 우리는 마중나온 웨스트우드 사장을 따라 청도 공장견학을 위해 떠났다. 천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등산복을 만드는 광경은 젊은 사업가가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사업을 일구어 왔는지를 말해 주었고, 정원에 한반도 형상을 한 작은 호수가 여기가 한국기업임을 알려주었다.
공장을 떠나 청도 시내를 향하는 버스에서 상견례를 하고 북한 식당인 평양관에서 점심...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예의 그 푸른색 치마에 하얀 저고리, 왼쪽가슴에 김일성 뱃지를 단 아가씨들이 기계인형처럼 방긋 웃으며 안내한다. 뒤에서 누군가가 역시 남남북녀라며 수근대는 소리를 들으며 푸짐한 한정식에 그동안 기대했던 청도맥주을 곁들여 성찬을 즐겼다.
얼마가 지났을까 낮에는 좀처럼 안한다는 공연이 시작되는데 약간의 취기와 객창감 속에서 한동안 아가씨들의 춤과 노래에 빠져 들었다. 통일된 동작이 어색했지만 고운 목소리에 밝은 미소가 좋았다. 나만의 감정만은 아니었나보다. 전부원 회장님이 꽃다발을 들어 아가씨들과 사진촬영을 시작으로 박수를 치며 몇 곡을 따라 부르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마 첫날이 아니었으면 상쾌한 청도맥주에 소주를 섞어 몇 순배 돌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식사도중 김우경 선배께서 짝퉁시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셨고, 이는 바로 다음 일정으로 결정되었다. 말로만 들었던 중국의 짝퉁시장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김우경 선배로부터 물건 값을 후려쳐(?) 깍는 방법을 미리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 흥정은 담대함과 능청스러움이 필요했다. 역시 경험많은 김 선배께서 가격을 흥정해 주셨다. 2시간 남짓 쇼핑 후 버스로 돌아온 회원들의 흡족해 하는 표정이 재미있었다.
청도 구시가지를 거쳐 해안 도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청도시내는 중국의 유럽이라는 이름에 걸 맞게 유럽풍의 건물이 눈에 띠었고, 잘 정돈된 해안쪽 주택가는 호주의 골드코스트 주택가와도 비슷했다.
저녁은 정통 중국식당인 해몽원에서 진기한 중국식 요리를 즐겼다. 10층쯤되는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니 그 규모가 대단했다. 산해진미에 깔끔한 중국술이 잘 어울렸다. 나중에 합류한 김복채 선배로부터 아들의 과학고 합격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들 축하의 인사를 전했고, 10시쯤 다음날 산행을 위해 아쉬운 저녁을 마쳤다.
아침 7시 30분에 기상하여 식사를 마친 후 심의섭 선배와 따님이 준비한 물과 김밥, 초콜렛이 든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차에 올랐다. 한 40여분 갔을 때 저 멀리 노산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길가에서는 성채 모양의 안전대를 만들기 위해 인부들이 떼지어 벽돌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100% 인력에 의지해 오밀조밀 일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전날 술기운에 졸며 깨며 가는데 노산 입구에서 도착했는지 차안이 술렁거렸다. 제복을 입은 안내원인 듯한 젊은이가 차에 올라와 한번 거만한 눈으로 훑어보더니 내려간다. 아직도 중국엔 완장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10여분을 더 가니 주차장이 나오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해 주시는 심의섭 선배님은 뒤도 안보시고 걸음을 재촉하신다. 뒤에서 몇사람이 너무 빠르다며 볼멘소리를 하였지만 들은체 만체...
나중에 말씀하시기로는 초반에 땀을 내고, 숨이 한번 차고 풀려야 오늘 전체산행에서 고생을 덜 한다는 것이었다. 복장이며, 걸음걸이며 한말씀 한말씀이 가히 산악전문가다운 면모였다.
일반인들은 좀처럼 가기 힘들다는 코스를 정해 오르다가 도교 사당 아래서 중국 전통차를 한잔씩 마셨다. 도교의 본산이라는 노산에서 몇 백년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진한 향이 스펀지에 물이 배듯 땀을 낸 전신에 스며들었다. 정상부근에 이르자 주변에 아름답고 웅장한 경관이 보는 이를 압도하였다. 하늘에서 쏟아졌을까, 땅에서 구슬같은 바위가 터져나왔을까.. 시루떡을 여러겹 포개 놓은 듯한 형상을 지닌 겹겹의 바위층도 있고, 어떤 곳은 지상의 탐욕을 경계하여 사천왕이 바윗덩어리를 곳곳에 집어던진 듯한 거친 바위가 지상을 누르고 하늘에 솟구쳐 있기도 하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빼곡히 차 있는 산, 시원한 물줄기 하나 없는 팍팍한 산세 때문에 지기가 왕성하여 일찍이 도교의 수행지였다고 하는 산, 그것이 노산이었다.
정상부근에서 사진을 찍고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꿀맛이었다. 쏼라거리는 중국인 등산객들은 평상복에 운동화를 신고 잘도 걷고 잘도 먹었다. 그들은 우리 옆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시끄러웠다.
밥을 먹을 때가지만 해도 우리에게 고생길이 열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후에는 쭉 수풀을 헤치고 2시간 이상을 내려와야 했으니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무가지에 찔리기 십상이었고 모두들 지쳐 경치를 볼 여유도 없은 듯이 보였다. 한참을 내려오니 운동장 같은 넓은 바위가 눈앞에 펼쳐지고 우린 거기에서 늘어져 한동안을 쉬었다. 잠시 후 누군가 시작했는지 장기자랑이 펼쳐지고.. 김우경 선배의 근엄한(?) 음담패설에 흥수형의 노랫가락이 어우러져 잠시 피곤을 달랬다.
한참을 내려오니 바다가 보이고 저 멀리 민가가 눈에 들어 왔다. 산행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느낌이 들자 다시 힘이 생겼다.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쳐다보니 굽이굽이 많이도 걸어 왔음이 대견스러웠다.
다시 올 수 없는 노산은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갔다.
언어를 통해 자연과 개인의 느낌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 내가 그래도 여행의 짧은 기록이나마 남기고 싶은 것은 자연과 함께 동행했던 이들과 다양한 느낌을 함께 하였고, 이런 경험의 기록이 우리 율백회라는 공통체에 적지않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확신때문이다.
더 많은 회원들이 산에서 함께 호흡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끝.
첫댓글 노산을 다시 다녀 온듯한~ 총무님의 글 "깜짝"놀랐어요. 율백회의 지존 총무님 수고 많으셨어요^^
에구에구!!!총무보 형제형 총무의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하다...이렇게 위대한 총무님이 계시니까.
형! 존경스럽습니다. 노산에 두번 갔다온듯..... 마음마저 설레군요.
와~~ 엄청난 소감문이신데요 ^^ 무지 가고 싶었는데... 글을 보니... 정말 못간 거 후회가 되네요 ^^;;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어 2일차 산행으로 소감을 마무리 했는데 3일차의 즐거운 경험은 연권이가 한번 써보심이 어떨런지..
대단하십니다...노산 산행후기를 읽으면서 그당시의 일들이 새로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