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比 큰스님의 천수경 법문 (16)
참제업장 십이존불 (懺除業障 十二尊佛)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 南無懺除業障寶勝臟佛 보광왕화렴조불 寶光王火炎照佛 일체향화자재력왕불 一切香火自在力王佛 백억항하사결정불 白億恒河沙決定佛 진위덕불 振威德佛 금강견강소복괴산불 金剛堅强消伏壞散佛 보광월전묘음존왕불 普光月殿妙音尊王佛 환희장마니보적불 歡喜藏摩尼寶積佛 무진향승왕불 無盡香勝王佛 사자월불 獅子月佛 환희장엄주왕불 歡喜莊嚴珠王佛 제보당마니승광불 帝寶幢摩尼勝光佛
십악참회 (十惡懺悔)
살생중죄금일참회 殺生重罪今日懺悔 투도중죄금일참회 偸盜重罪今日懺悔 사음중죄금일참회 邪淫重罪今日懺悔 망어중죄금일참회 妄語重罪今日懺悔 기어중죄금일참회 綺語重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 兩舌重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 惡口重罪今日懺悔 탐애중죄금일참회 貪愛重罪今日懺悔
뿐만 아니라 탐진치 삼독이 근원이 돼서 온갖 백팔 번뇌라든지 팔만 사천 번뇌라든지 이런 것들이 다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온갖 업을 짓게 됐다. 또 그 탐진치 삼독은 무엇으로서 표현이 되느냐. 종신구의지소생 ( 從身口意之所生)이라 그랬죠. 종신구의지소생.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통해서, 이 말입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서, 뜻으로부터 생긴 바(所)다. 생긴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몸과 입과 뜻을 나쁘게 놀리는데 그 나쁘게 놀리는 일들이 온갖 불화고 악업이고 죄업이고 전쟁이고 싸움이고 이런 것으로 이제 나타나죠. 왜 그렇게 나타나는가. 탐욕때문에 또 어떤 원한관계, 진심(嗔心)때문에 또 무지몽매함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대개 전쟁 같은 거 보면은 권한을, 권세를 잡기 위해서 또는 영토를 빼앗기 위해서, 내 것으로 또는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보복을 위해서. 대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것 또는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 영토든지 권한이든지. 그 다음에 어떤 보복을 하기 위해서. 대개 그런 것으로 통해서 인간이 악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뭐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런 저런 이유는 다 그것은 사실은 중요한 근원은 아닌 거죠. 실제로 근원은 탐욕과 원한관계,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런 악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떤 역사를 읽어 보더라도 모두가 어떤 원한을 갚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땅을 빼앗고 권한을 빼앗기 위해서, 탐심이죠, 그것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인간의 전쟁사를 자세히 살펴보면은 모두가 탐심, 진심, 치심, 이 세 가지 때문이다. 두 말할 것 없이 그건 참 너무나도 옳은 말씀이죠. 그것은 몸과 입과 뜻을 작용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악업들을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내가 이제 다 참회한다, 다 뉘우친다, 이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뉘우친다.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고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경전을 읽고 절을 하고 참선을 하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단장 (斷障) 과 성덕 (成德)이다, 교리상으로 그런 표현을 하는데요. 장애를 끊는 것, 우리에게 부정적인 어떤 요소를 끊어버리고 제거해 버리는 것과 그 다음에 긍정적인 일들, 복과 지혜, 덕, 이런 것들을 쌓아가는 일이다, 그것을 단장(斷障), 끊을 斷 자, 장애라고 하는 障 자. 부정적인 모든 업장, 죄업, 삼독, 이런 것들을 제거하는 그런 입장을 단장(斷障)이라 그러죠. 그 다음에 성덕(成德)이라 하는 것은 그런 것을 끊고 어쩌자는 말이냐. 결국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것. 복과 지혜와 덕과 자비, 이 모든 것들을 그대로 우리가 성취시켜 가는 일, 이것이 불교 공부의 목적이고, 우리가 천수경을 외우는 목적이 바로 장애를 끊는 일과 덕을 이뤄가는 일, 이 두 가지라고 요약을 합니다. 불교 수행의 목적이 바로 그거죠.
다른 표현으론 이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이런 표현을 합니다마는 업장을 소멸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본다면은 우리의 부정적인 그런 업들을 하나하나 바로잡고 고쳐가고 또 좋은 것들, 긍정적이고 지혜와 덕이 될 그런 일들은 하나하나 배워서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불교 수행의 요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제 낱낱이 참회하는 십악참회가 앞에 나오죠. 십악참회가 나오기 전에 참제업장 십이존불(懺除業障 十二尊佛)이라 라고 해서 이것은 우리들의 참회를 증명하는 그런 열 두 부처님을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혼자 참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알아주고 증명해 줄 때 그 참회는 공인되는 것이고, 그 참회는 올바른 참회가 되고 또 증명하는 사람 앞에 우리가 참회를 했을 때 다시는 재차 범하지 않는 일이 더욱 쉬워지죠. 혼자 참회했으면은 또 혼자 쉽게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증명이라고 하는 것, 꼭 필요합니다. 증명하는 부처님, 또 증명 법사, 이런 표현을 쓰죠. 그래서 사실은 자기와의 약속도 남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의 각오, 자기의 결의, 이런 것들을 혼자 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 분명히 알려서 그 알린 것 때문에도 내가 더욱 더 열심히 지켜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거죠.
열두 분은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南無懺除業障寶勝臟佛), 업장을 참회하는 보승장불, 그 다음에 보광왕화렴조불(寶光王火炎照佛), 일체향화자재력왕불(一切香火自在力王佛), 백억항하사결정불(白億恒河沙決定佛), 진위덕불(振威德佛), 위덕을 떨치는 부처님, 그런 뜻이죠. 금강견강소복괴산불(金剛堅强消伏壞散佛), 보광월전묘음존왕불(普光月殿妙音尊王佛), 환희장마니보적불(歡喜藏摩尼寶積佛), 무진향승왕불(無盡香勝王佛), 사자월불(獅子月佛), 환희장엄주왕불(歡喜莊嚴珠王佛), 제보당마니승광불(帝寶幢摩尼勝光佛), 이렇게 해서 열 두 부처님입니다. 이 열 두 부처님이 나의 참회를 또 우리들의 참회를 증명하는 그런 부처님으로 여기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이름 속에서 여러 가지 뜻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것보다는 이 부처님이 언제 또 어느 시대에 나타났던 부처님이냐 하는 그런 문제는 여기서 별개의 것입니다. 경전을 통해서 우리가 많은 부처님을 만나게 되죠. 여기 <천수경>에 십이존불 뿐만이 아니라 천불, 또는 삼천불, 또는 만불, 이렇게 해서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 이렇게 해서 이름까지도 분명히 나와있는 그런 부처님을 우리는 경전에서 많이 봅니다. 도대체 이런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런 것들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부처님의 그 깨달음의 눈으로 우리들 중생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방법으로서 많은 부처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역사에 있지 않은 많은 불보살, 보살님들 또는 신장님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뭐 이런 불보살들이 꼭 있다, 없다 라고 하는 그런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우리가 생각을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러한 많은 부처님과 보살을 등장하는 이유, 이것은 말하자면 우리의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위대한 모습들, 본래의 우리 어떤 불성으로서의 인간 존엄, 이런 것들을 우리가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면은 사람 사람이 다 부처고, 천불 만불만이 부처가 아니고 그야말로 온 우주가 다 부처님의 화신이다 하는 데로까지 생각하리라고 여겨집니다.
(다음방송분) 이 참제업장 십이존불은 보통 우리가 <천수경>을 갖고 있는 것 중에서 보면은 참제업장 십이존불이 있는 <천수경>이 있고 또 없는 <천수경>도 있고 그래요. 이 ‘참제업장 십이존불’ 그리고 ‘십악참회’ 그리고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이라고 하는 것 하고 ‘죄무자성종심기…’ 그 게송까지 없고 바로 '일체아금개참회'에서 참회진언으로 넘어가는 그런 <천수경>이 있습니다. 또는 여기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십이존불’ 또 ‘십악참회' 그 다음에 ‘백겁적집죄’니 ‘죄무자성종심기’니 하는 이런 좋은 게송들이 들어있는 <천수경> 본도 있고 그 두 가지가 지금 유행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참고로 아시고 여기에서는 다 갖춰진,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갖춰진 <천수경>을 교재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참고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참제업장 십이존불은 어제까지 말씀드렸고 그 다음 십악참회(十惡懺悔). 십악참회. 열 두 분의 부처님을 나의 참회를 증명해주는 부처님으로 그렇게 모셨습니다. 모셔놓고 무엇을 참회할 것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 악이 있고 여러 가지 죄가 있고 여러 가지 비행이 있겠습니다마는 그것을 이제 간추리면은 열 가지 악이다, 이렇게 교리상으로 나와 있습니다.
살생중죄금일참회(殺生重罪今日懺悔)죠, 처음에는. 살생을 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내가 참회합니다. 불교의 자비 사상은 불살생을 으뜸으로 하고 있는 것은 다 잘 아시는 내용이죠. 불살생, 이건 뭐 사람을 죽이지 말라, 가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이런 아주 광범위한 입장에서의 살생을 금하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또 일상생활을 해 가면서 생명을 존중하긴 하되 사실은 알게 모르게 많이 살생을 하죠. 심지어 우리가 찬 물을 한 컵 마신다 하더라도 그 물 속에는 많은 균들이 있을 것이고 또 무슨 풀 한 포기 그 속에, 채소의 풀잎 속에 사실은 온갖 생명체가 다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를 생각해서 살아가면은 더욱 좋으련만은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불교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 살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문제 보다는 우리에게 문제시 된 것만 문제시 하자 하는 그런 이야기로 이해를 해야겠죠.
그런 뭐 자질구레한 무슨 파리 한 마리를 두고 또 모기 한 마리를 두고 이것을 불교적으로 불교의 자비사상으로서 이것을 죽여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런 정도의 문제가 사실은 그렇게 귀중하게 여기서 이야기 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인간에게서 문제되어지는 그런 살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로 보면은 생명을 존중히 여긴다고 하는 그런 사상으로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는 생명 존중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인명을 아주 경시하는 그런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볼 때 불교에 있어서의 이런 생명 존중의 사상, 어떤 살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생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하는 그런 사상, 참으로 훌륭한 자비 사상이죠.
원광법사의 화랑오계(花郞五戒)라고도 하고 세속오계(世俗五戒)라고도 하는 거기에도 보면은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고 했죠. 지극히 아주 현실적인 그런 말씀인데 가려서 해야된다, 살생을 하되 가려서 해야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앞서 말씀드린대로 물 한 모금만 마셔도 거기에는 온갖 생명이 사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까지를 우리가 생각해서 불살생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생은 가려서 해야 된다, 우리에게 문제되는 그런 것들을 우리가 함부로 불필요한 살생, 또 고의적인 살생, 이런 것을 해서는 안된다 하는 그런 의미로, 나아가서 온갖 생명을 존중하는 그런 입장으로까지 우리가 이해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옛날 초개비구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죠. 어떤 도둑떼가 지나가다가 이 스님을 만나서 이 스님의 소지품 그리고 옷, 이 모든 것을 빼앗고는 이 스님을 풀에다 묶어 두었습니다. 그 도둑들이 퍽 유식했던지 스님들은 풀 한 포기까지도 함부로 해치진 않는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어서 이 스님을 그야말로 온갖 소지품을 다 빼앗고는 풀에다 묶어 놨습니다. 그런데 그 풀을 뜯고 충분히 도망갈 수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었으나 이 스님은 풀의 그 생명을, 초목의 생명까지도 존중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정말 풀에 묶인 채 그대로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풀어줄 때까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그래서 초개(草芥)비구라, 풀에 묶여서, 참, 풀의 생명까지도 자비로서 아꼈던 그런 생명 존중의 표본인 그런 스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죠. 그것은 물론 풀에도 생명이 있고 또 물론 불필요하게 함부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되겠습니다마는 그만치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마음 가짐,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그런 모든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했던 모든 죄업들을 오늘 다 참회합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 다음에 투도중죄금일참회(偸盜重罪今日懺悔)죠, 투도偸盜, 투도라고 하는 것은 도둑질이란 뜻입니다. 훔칠 偸, 훔칠 盜 자죠. 훔친 모든 죄악들을 내가 오늘 다 참회합니다,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계율을 설한 그런 경전에 보면은 풀 한 포기, 돌 한 개라도 주지 않은 것은 남의 것은 함부로 가져서는 안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남의 물건을 갖지 않는 입장도 중요하겠습니다마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을 한다면은 베푸는 행위, 보시행으로 사실은 이것이 발전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보시를 하는 사람은 남의 물건을 가질 뜻은 없죠. 그러므로 보시행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이유가 투도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막는 의미도 되겠죠.
그래서 이 투도는 사실은 오늘날은 우리가 여러 가지 의미로 풀이해야 할 입장입니다. 뭐 다른 사람에 대한 재산권에 대한 침해라든지 불법적인 어떤 약탈이라든지 이런 것들. 또 탈세의 문제라든지 이런 것까지도 사실은 이 투도에 다 해당되거든요. 그러므로 이 투도의 문제는 아주 광범위하게 우리가 이해를 하고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어쨌든 작은 어떤 남의 물건을 훔친 것에서부터 탈세, 불법약탈, 남의 집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 나아가서는 아주 그야말로 중요한 어떤 재산을 함부로 손해보이는 그런 일들까지 모두가 죄업이다, 악업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나에게서 있지 않게 해주십사 하는 그런 뜻에서 ‘투도중죄금일참회’ 라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사음중죄금일참회(邪淫重罪今日懺悔)죠. 삿된 음행, 삿된 음행한 무거운 죄를 금일에 참회합니다. 그러니까 경전에 보면은 자기 사람에게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 보면은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체에 지족하라. 자기 사람에게 만족함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의 길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죠. 그래서 여기서 삿된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사람 이외의 어떤 대상에 대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삿된 음행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지은 온갖, 그런 방면의 죄를 금일에 참회합니다 하는 그런 내용이죠.
그 다음에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重罪今日懺悔)라고 합니다, 망어(妄語)중죄.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거짓말한 죄입니다. 망어는 거짓말이죠. 거짓말 한 중죄를 금일 참회한다.
그 다음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기어(綺語)는 비단 綺 자인데 비단결 같은 말. 아주 번지지르한 말. 그럼으로써 이 번지르르한 말 속에는 반드시 저의가 있게 마련인 것이고 또 그것은 결국 남을 모함에 빠뜨리고 또 속이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비단결 같은 말을 해서 온갖 죄를 범하게 된 그런 일들을 오늘 참회합니다, 그런 말이죠. 뭐 유교에도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 하는 그런 말이 있죠. 아주 교언. 아주 번지지르한 말. 아주 교묘한 말. 그것은 인(仁)과, 어진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번지르르한 말, 이것은 무거운 죄다. 오늘 모두 참회하겠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인데요, 양설(兩舌)은 두 가지 혀, 이런 말인데, 말하자면 두 가지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서는 이 말하고 저 사람에게 가서는 저 말하고. 갑에게 한 말과 을에게 한 말이 다르죠. 그래서 결국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고 하니 이간질을 붙히는, 이간질을 시키는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두 가지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은. 또 두 가지 말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한 가지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어쩌면은 둘 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죄가 되겠죠. 그러므로 두 가지 말한 죄를 오늘 참회합니다.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重罪今日懺悔). 악구(惡口)는 악담입니다. 아주 그 심한 표현들을 우리가 쓰죠. 아주 그 그야말로 자기의 자녀들에게도 거침없는 그야말로 입에 담기도 거북스러운 그런 아주 그 악담을 막 사정없이 씁니다. 물론 뭐 쓰게 될 때야 화가 나서 쓰겠지만은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자녀에게도 좋지를 않고 본인에게도 큰 죄업이 되고 또 그것을 통해서 보다 더 다른 많은 불행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에 대한 것은 참으로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되겠죠.
신구의 삼업을 통해서 우리가 죄업을 짓는다 그렇게 했는데 여기서 십악참회, 열 가지 악에 대해서 가만히 살펴보면은 몸으로 세 가지, 그 다음에 생각으로 세 가지, 말로는 네 가지입니다. 그만치 입으로 짓는 죄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천수경의 맨 첫 마디가 정구업진언이었죠. 구업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입조심하라,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라고 하는 그런 내용이 천수경의 첫 마디다 라고 봤을 때 이 십악에서도 입으로 짓는 업이 네 가지나 된다, 제일 많다라고 하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은 말로 움직이는 동물입니다. 말에 참 잘 움직이죠. 또 이를테면 우리가 간단한 아주 작은 문제를 가지고 옳거니 그르거니 하다가 보면은 그 문제는 정작 어디 가버리고 말 잘못한 것에 대해서, 말 함부로 한 것에 대해서 문제가 돼서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 거죠.
이를테면은 만 원 짜리 물건을 사오라고 했는데 이 만 원 짜리를 샀다. 그랬을 경우 이제 왜 만 원 짜리를 사라고 했는데 이 만 원 짜리를 샀느냐. 이것을 좋게 이야기를 하면 괜찮겠는데 그 돈, 만 원 더 쓴 것 때문에 아주 험한 말이 오고 가다 보면은 두 마디 세 마디만 넘어가면은 그 때는 이미 돈 만 원 더 쓴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어떻게 표현을 했느냐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 하는 그 말을 물고 시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은 시비가 다시 또 새로운 시비를 불러 일으키게 되죠. 그래서 돈 만 원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고 사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리고는 이제 인격을 무시했느니 함부로 말을 했느니 그럴 수가 있느니 또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일찍부터 나에게 좋지 아니한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렇게 해서 있지도 아니하는 그런 마음들을 들춰내고 그래서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게 돼죠. 그래서 결국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사태로까지 몰고 가는 그런 경우가 사실은 많습니다. 이 중생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 중생들의 그 입놀림이라고 하는 것, 참으로 조심해야 되겠죠. 그러므로 십악참회 중에서도 네 가지가 입에 대한 이야기고, 또 천수경의 첫머리에도 입조심하라 라고 하는 이런 부처님의 교훈에는 우리가 참으로 마음에 새겨야 할 그런 천리(天理)가 담겨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은 탐애중죄금일참회(貪愛重罪今日懺悔)라고 그렇게 돼 있죠. 탐애. 이것은 탐욕도 되고 물질에 대한 탐욕도 되고 애정적인 애착의 탐애도 되고 그렇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저 앞에서 사음에 대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보통 일반적으로 탐심, 애착,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탐진치 삼독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참, 탐심만치 우리에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없죠. 뭐 부처님은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한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저 설산을 황금으로 만들고 그 설산을 또 배로 늘려서 황금을 만든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탐욕을 다 채우지 못한다,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한 인간의 탐욕, 설산을 두 배로 늘려서 황금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한 인간의 탐욕은 채우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탐욕입니다. 탐욕은 끝이 없다. 욕심은 끝이 없다, 이런 말을 우리가 흔히 하죠. 정말 우리가 깊이 새겨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탐애한 무거운 죄를 오늘 모두 참회합니다, 하는 그러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집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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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문무량서원학 원해여래진실의. 법문무량서원학 원해여래진실의. 법문무량서원학 원해여래진실의. _()()()_ mary 님! 고맙습니다.
항상 깊은 감사드리는 것,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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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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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나무관세음보살..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