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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5일 일정으로 다녀온 태국 국제대회 기행문
제1일차(5월4일)
2012년 5월 4일 국제로타리3680지구 소속 우리 일행 46명은 경촌 강한식 지구 총재님을 선두로 해서 전임 총재이셨던 추공 노광두 총재님 내외분, 벽파 손영화 총재님 내외분, 차차기 포울 이익환 총재님 내외분과 차차차기 덕천 이인우 총재님과 그리고 각 클럽 회장님과 총무, 또 많은 회원님들이 대형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노은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3박 5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1시 30분쯤 인천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필자를 소개하자면 본인은 대원 차인성 6지역 대표님 소속인 대전한마음로타리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이은자 사무장이다.
우리클럽 회장님은 철산 이상철님이며, 총무는 인물로는 어디가도 빠지지 않을 만큼의 미남회원 대국 한택규님.
우리클럽 회장이신 철산 이상철님은 국제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내 놓고도 출발 전일 사업장에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아쉽게도 동참하지 못하셨다.
2011~12회기 우리 대전한마음클럽이 최우수클럽을 수상하는데 힘입어 나에게도 이렇게 큰 영광의 자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하기만한 내가 이처럼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 그것도 사무장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 대에는 경촌 강한식 총재님의 깊으신 배려와 대원 차인성 6지역 대표님과 늘봄 지구 재무님, 그리고 우리클럽의 회원님들과 철산 이상철회장님, 대국 총무, 또 전임 후임 회장님들이 아낌없이 힘을 실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출발해서 3시간 넘게 걸려 인천 공항에 도착.
출국 수속을 마치고 대한항공 KE653편에 우리는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와는 2시간의 시차가 난다고 했다. 우리나라 보다 2시간이 늦음에도 방콕 신공항
스완나품 국제공항(수바나브흐미-Suvarnabhumi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 시간으로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신공항에 대해 부연 설명을 잠시 붙여 보자면 공항의 크기가 어마어마~(가이드가 평수를 알려 줬었는데 정확한 수치는 진가민가) 자오지간 단일면적으로는 기네스붘에 오를 만큼 크다고 했다. 일년에 100만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이용한다는... 공항에서 폴만아이사완 파타야(Pattaya)호텔 숙소까지는 147km의 거리.
1시간 40분에 걸쳐 이동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다 보니 12시가 훨씬 넘었다.
우리 일행들은 그림 같은 주변 풍경들에 감탄하며 내일의 일정을 위해 노근한 심신을 뉘었다.
난 윤오 장미연 천지클럽 회장님과 룸메이트가 되어 묵게 되었는데, 출발 시부터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해와 갈지 말지를 놓고 갈등하다가 그래도 그냥 나를 배려하느라 무리해서 강행해준 회장님. 다행히도 상태가 호전되어 나름 잘 견디며 일정을 소화해 주셔서 고맙고 감사했다.
제2일차(4월5일)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조식은 바다를 끼고 앉은 호텔식당에서 그림처럼 우아하게 마치고 간단한 옷차림으로 바꿔 입은 우리 일행은 모두가 파타야 산호섬으로 향했다.
산호섬 해변가에서는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하여 우린 애초 바로 물놀이를 하기 적당한 옷차림으로 출발했지만 이동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비가 시작되더니 배를 타고 산호섬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굵은 빗줄기는 계속 되었다.
그렇게 물놀이를 하기도 전 이미 비에 다 젖어버린 옷차림이 각기 우습기도 했지만 비 때문에 또 한결 시원하기도 했다.
원래 이곳 현지의 날씨는 몇일 전까지만 해도 40°를 넘나드는 불볕 더위의 연속이었으며 근래 평균 날씨도 그 정도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이 많아 그런지 가끔가끔 쏟아 붓는 스콜로 인해 그 호사를 누리며 여행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산호섬에 도착해서 자유 시간을 가지며 우리는 바나나보트 타기 체험도 했고, 다시 근교로 이동해서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짜릿한 경험도 했다. 접수를 받으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퐁당?” “안퐁당?”하고 물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우리는 다 통한다.
언어로는 시원스럽게 소통되지 않아도 Body-Language로도 부족함은 없었으니.
난 물론 “안퐁당”....이었다.
순간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그 짜릿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될 수 없었다.
욕심 같아서는 서너 바퀴 더 돌아 주었으면 좋겠드만 한 바퀴의 경험은 너무 아쉬웠다.
우리는 젖은몸 상태 그대로 이동해서 한식당에서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워 먹고 바로 호텔로 이동. 잠시 동안의 휴식과 샤워를 마치고 다시 다음 일정을 위해 출발했다.
현지 갑부 할머니의 개인사유지로 된 농장.
본인이 직접 가족들과 함께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농눅빌리지.
처음에는 취미로 분재를 시작했다는데 지금은 약 200만평 규모의 범위로 농장 내를 차로 움직일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이어서 태국 전통춤의 공연과 코끼리 쇼까지 관람하고 다시 다음 행선지로 이동.
파타야 수상시장과 황금불사원을 관람한 후 바닷가로 이동. 씨푸트 석식을 즐긴 후 그 유명한 트랜스젠더들이 벌이는 알카자 쇼를 구경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치게 되었는데 그 쇼를 지켜보면서 왠지 즐거움 보다는 그들 내면에 숨겨진 아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제3일(5월6일)
오늘은 국제대회 본 회의에 참석하는 날.
우리 일행들은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옮겨가기 위해 전날보다 더 이른 시간에 기상하여 움직였다.
국제회의에 참석할 복장(정장)으로 아예 갖춰 입고 움직이자니 날도 더운데 다소 불편함은 따랐다. 당일 날씨는 전날과는 달리 몹시 더웠다.
파인애플 농장도 방문하여 태국에서 재배되는 이름 모를 과일들 맛도 보고, 호랑이 공원도 관람. 그렇게 방콕으로 이동해서 MK스끼(우리식으로 말하면 샤브샤브)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국제대회 사전 등록을 하기 위해 1시 반쯤 바로 국제 행사장으로 모두는 이동했다.
컨벤션센터(IMPACT Arena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비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어머어마한 규모였다. 행사 프로그램 식순을 보니,오전, 오후로 나눠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가름할 수 없을 만큼의 수용인원.
우리 지구가 참석한 오후 개막식 인원만 해도 15,000여명이 모였었다고 하니 상상이 안간다.
통계상으로 이번 행사에 사전 등록한 로타리안의 수가 4만명이 넘었었다고 하니.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르겠으나 재미삼아 우리클럽 대국 총무와 나는 행사장 면적을 가름해 보기 위해 기둥을 세어 보았다.
(기둥과 기둥 한 칸의 간격을 15m로 보고 그 숫자가 26개나 되니 계산을 각자~)
갑자기 이런 방정맞은 생각도 잠시 몰래 해 봤었다.
만약에 전 세계적으로 모인 이곳 국제적인 행사장에 테러라도 일어난다면?
서둘러 세찬 도리질로 내 안일한 상상을 지워내고 짧은 기도문으로 대신했다.
3시40분에 개회식이 진행된다기에 우리 46명의 일행들은 편안한 자리를 각기 골라 앉았다.
식이 끝나면 우왕좌왕 하지 말고 나중에 3번 출입구 앞에서 모두 만나기로 약속하고....
개회선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태국 공주의 인사말이 있었으나 동시통역이 가능한 이어폰을 구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관계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메시지를 공간 차의 불편함도 감수하며 그저 준비된 대형스크린에 의존, 멀리서 영상을 지켜보는데 그쳤다.
태국의 막내공주라고 했는데 원래 장애가 있어 그렇게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것이 아니라 최근 장기에 이상이 있어 수술을 받은 후라서 그렇다는... 위에 언니와 오빠가 하나씩 있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왕자는 태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인 왕의 나이가 현재 84세. 24세에 왕의 자리에 올라 가장 길게 장기 집권한 왕의 명성으로도 기네스붘에 올랐다 하니. 아버지의 장수로 지금 환갑이 넘은 아들은 왕위를 물려받는다고 해도 그 자리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짧을 수 밖에....
태국 공주의 메시지 전달에 이어서 방콕 국제대회 위원장이신 O.P. Vaish씨의 환영사가 있었고, 이어 태국 전통무용 공연이 펼쳐졌으며, 연속으로 로타리 170여 국의 깃발 입장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3680지구 내에서 지금껏 국제대회에 참가한 인원으로는 최대치라고 알고 있는데 각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가 등장하고 소개될 때마다 환호하는 그 나라 로타리안들... 그 환호성의 정도로도 그 나라 로타리안 참가 인원들을 가름할 만 했다. 순서에 입각해 우리나라 국기가 등장 소개 될 때 우리는 목이 터져라 환호했지만 우리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에는 어림도 없었다. 다소 위축되었던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큰 행사에 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RI 깃발이 입장하는 것으로 깃발 입장이 끝났고, 이어 주체 국인 태국 국가와 RI 회장을 배출한 인도국가의 연주가 있었으며, RI 회장이신 캴리얀 배너지 회장의 가족 소개가 있었으며 곧이어 배너지회장의 인사말로 이어졌다. 그는 로타리의 국제화와 공익성을 강조하였고 향후 로타리 발전을 위해 봉사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인사 시간이 끝나고 방콕 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는 순서로 그날의 일정은 완료되었다.
우리가 끝까지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공식적인 행사는 뒷날에도 계속 이어져 5월9일에 행사 폐막을 하게 된다고 했다. 식장에서는 만날 수 없었으나 그 다음날 호텔에서 우리 자매클럽인 3590지구 통영로타리클럽 형호 박이기 회장님 내외분을 뵐 수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분들은 폐막식까지 지켜보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본 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우리가 묵게 될 호텔 근교의 어느 한 호텔에서 최고급 뷔페로 석식을 즐긴 후 그 호텔 라운지에 올라 태국 시내 야경을 구경했다.
국제행사를 마친 각국의 로타리안들이 다 그곳으로 모였는지 교통은 마비되어 정신없었고 건물에 냉방 시설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라운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열기가 더해져 찜통을 방불케 했다.
우리 모두는 서둘러 다음 숙소인 태국의 몬티엔 리버싸이드호텔로 자리를 옮겨 여정을 풀었다.
☯ 여기서 태국의 정보를 발췌해 옮겨 보면.
태국과 한국의 관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의 옛 이름인 시암 왕조는 1391년과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교류가 중단되었다. 단절된 양국관계는 1950 년 태국정부가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한국전쟁 (6.25)에 파견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태국 군대는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나머지는 한국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돌아왔고 젊은 세대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 고고학자들은 반치앙(Ban Chiang)의 북동쪽 작은 마을 근처에서 약 5천6백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후 몬족, 크메르족, 타이족을 비롯한 많은 종족들의 이민 행렬이 이어지게 되었고 지금의 태국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중국 남쪽으로부터 기름진 땅과 강, 계곡을 따라 천천히 이동해온 무리들이었다. 약 11,12세기경에는 크메르족이 앙코르로부터 대부분의 지역을 통치하기도 했다.
12세기 초, 타이족은 북쪽의 란나(Lanna), 파야오(Phayao), 수코타이(Sukhothai)에 조그만 공국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1238년에 이르러서는 2명의 타이 지도자들이 크메르 영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최초의 독립 왕국인 수코타이("행복의 새벽"이라는 의미)를 세웠다. 수코타이 왕국은 향후 짜오프라야(Chao Praya)강 유역을 따라 발전하게 되는 타이왕국의 기초가 되었으며, 태국의 국교인 테라바다 불교(Theravada Buddhism), 소승불교를 확립하고, 태국 문자의 발명, 미술, 조각, 건축과 문학 등 태국 예술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수코타이 왕국이 1300년경에 쇠퇴일로를 걸으면서 결국에는 신흥 왕국인 아유타야(Ayutthaya)의 종속국이 된다. 1350년에 건립된 아유타야 왕국은 짜오프라야 강 남부 멀리까지의 지역을 영토하에 두었고, 1767년 버어마의 침략을 받기까지 태국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417년간 33명의 왕이 통치한 아유타야 왕국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켜 전체적으로는 크메르의 영향에서 벗어나 아라비아, 인도, 중국, 일본 및 유럽과도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 아유타야의 붕괴는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의 붕괴와 비견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후에 탁신(Taksin)왕이 버어마(현 미얀마)를 몰아내고 수개월만에 타이왕국을 재건, 톤부리(Thon Buri)에 수도를 정했으며 1782년에 이르러 짝끄리(Chakri)왕조의 초대왕인 라마1세가 짜오프라야 강 유역의 방콕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짝끄리 왕조의 국왕 가운데 1851년부터 1868년까지 통치한 라마 4세 몽쿳(Mongkut) 국왕과 1868년에서 1910년 사이에 통치했던 그의 아들 라마 5세 쭐라롱껀(Chulalongkorn) 국왕은 탁월한 외교술과 선별적 현대화를 통해 태국을 서구 제국 열강의 식민지화 공세로부터 지켜내었다.
현재의 태국은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여 1932년 이래 현재의 라마 9세 푸미폰 아둘랴데(H.M. King Bhumibol Adulyadej) 국왕에 이르기까지 태국의 국왕들은 국회를 통하여 입법권을, 수상이 이끄는 내각을 통하여 행정권을, 사법부를 통해 사법권을 행사해 오고 있다.
그리고 태국 화폐의 기본은 바트로 1바트는 100사탕으로 이루어진다. 구리로 만든 동전은 25사탕, 50사탕 짜리가 있으며, 은 동전은 1바트, 5바트, 10바트 짜리가 있다. 지폐로는 10, 20, 50, 100, 500, 1000 바트화가 있다.
이 나라의 기후 조건은 열대 기후에 속하므로 늘 기온과 습도가 높다. 계절은 대체로 3가지로 나뉜다. 3~5월의 여름은 1년중 가장 기온이 높아 북동부에서는 40℃를 넘는 날도 있다. 5~10월은 우계로서(사무이 섬은 11~12월 중순)스콜(비. 우박. 천둥 등을 동반하는 갑작스런 바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11월~2월은 건계다. 비도 거의 내리지 않고 비교적 지내기 편하다. 일반적으로 여행 성수기도 이즈음이다. 다만 기온은 1,2월이라도 30℃를 넘는 날이 많아 더위만은 다른 계절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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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일차(5월7일)
오늘 일정은 조금 시간을 늦춰 7시 반까지 식사를 마치고 움직이기로 했다.
출국하는 날... 그간의 여정을 꼼꼼히 꾸려 이동차에 실었다.
호텔식으로 조식을 마치고 태국의 방콕 시내의 주요한 관광 지역인 왕궁과 왕궁 안에 있는 에메랄드 사원을 관람하였다. 이곳에는 신성한 곳인 만큼 소매가 없는 복장은 불가.
하의도 물론 노출이 심한 복장은 안된다고 하였다. 그 대신 신발은 자유롭게 허용되었다는 것. 우리가 방문한 에메랄드 사원은 태국 국왕 및 가족을 위한 사원으로 4개의 불상이 있지만 지금은 에메랄드를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들은 멋진 곳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도 찍으며 즐겼다. 그렇게 오전 관광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그동안의 여정을 녹여줄 태국 전통의 전신 맛사지를 받기 위해 이동했다. 정말 수준급의 맛사지사들... 정말 행복했다.
그들의 노고에 일정한 사례보다 더 보답하고 싶었으나 규정을 벗어나면 전례로 굳어진다는 가이드의 충고에 마음을 접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진한 포옹으로 답했다.
그런 후 한인이 운영하는 한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수육에 김치찌개...맛은 그런대로.. 다음은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단지 진주 전시장을 찾아 관람했다.
나에게는 별로 해당사항 없는 일정이어서 다소 짜증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름 보석에 대한 식견을 더 한층 높일 수 있었던 계기로 만족했다.
다음은 우리가 기대했던 짜오프라야강의 수상가옥 등을 쾌속선을 타고 관람하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선상에서 본 수상가옥들과 강변에 펼쳐진 가옥들은 관광지역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낙후된 태국의 일면을 볼 수 있어 색달랐다. 배를 타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한 가족으로 보이는 선장과 몽키 바나나와 꽃목걸이는 파는 아내. 그리고 시끄럽고 더운 선상에서 세상모르고 자다깬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주변 환경을 제압해 갔다. 덕천 이인우 차차차기 총재님이 아이를 안고 선상을 한바퀴 돌며 일명 앵벌이를 재현했었던 모습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일시에 웃음바다가 되어버린 선상.
죽겠다고 울어대는 어린 아이... 그런 아이의 손에 또 아낌없이 지폐를 쥐어주는 우리의 넉넉한 마음, 그것이 따뜻함으로 전해졌는지 그 광경을 백밀러로 지켜보던 아이 아버지의 흐믓한 미소에서도 우리는 다시 작은 행복을 음미했다.
선상에서는 식빵과 같은 모양의 빵도 팔고 있었다.
빵을 전해 받고 나는 아무 의구심 없이 조각내어 먹어 보았다.
아무 맛도 없고 뻣뻣하기만 하길래 밀쳐놓고 있는데.... 아뿔사 그 빵은 식용이 아니라 조금 후에 도착할 장소에 물고기 밥이랜다. (내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또 함박 웃음)
우리나라 메기와 비슷한 어종인데 식용으로 쓰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만 먹고 자라서 별 맛은 없다고 한다. 작은 배의 유람을 마치고 우리는 선상에서 즐길 석식을 음미하기 위해 큰 배로 갈아탔다. 짜오프라야강 선상 디너 석식은 정말 환상이었다.
2층 선상에서의 식사 도중 초대된 가수와의 화합.
우리 가요를 멋 떨어지게 불러 더욱 친근감을 주었다.
그 선상에는 국제대회에 참석한 우리 지구뿐 아니라 대만, 필리핀, 인도 로타리안들과도 함께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를 뒤로하고 오자니 많이 아쉬웠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도 2시간 30분 정도의 많은 시간이 남아 다소 지루하겠다 생각했었는데 면세점을 돌며 쇼핑을 하다 보니 시간은 깜빡할 사이에 빨리 지나갔다.
나를 이곳까지 보내 주신 우리 클럽 철산 이상철 회장님과 대국 한택규총무님, 그리고 6지역 대표님과 전임 회장님들, 차기, 차차기 회장님까지 너무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여러 사람들까지 귀찮게 하며 준비한 태국 전통주...
그 무거운 것을 끝까지 책임져 주느라 고생하신 대국 한택규 우리 총무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이렇게 3박5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로타리안 신분이 아닌 저를 많이 챙겨주신 경촌 강한식 총재님을 비롯해서 6지역 대표님, 늘봄 재구 재무님, 그리고 사사로이는 선배님이기도 한 양재 성지용 연수위원장님과 각 클럽 회장님들과 옆에서 챙겨주신 천지클럽 윤오 회장님과 나의 실질적인 보호자였던 대국 한택규 총무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꾸벅~~
참고로 다음해 2012~13년도 회기 국제대회는 포루투갈에서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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