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경숙...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때 좀 촌스럽고 중학교 여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왠지 이름이 묵직한 느낌을 주어서 성격도 무거울 거 같았으나 유복하게 자라서인지
늘 밝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고 인사도 예의바르게 잘하는 학생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니까 이름이 촌스러워도 그닥 이름때문에 얼굴이 죽진 않았다.
내가 대학에 근무했을 때 가르친 명자, 운자, 덕자, 말자에 비하면 양반이다.
얼굴이야기하면 안되겠지만, 위에 말한 "~자"자로 끝나는 인간들은 진상이었다.
나만보면 "x따꺼!"라고 소리질러대고 술퍼먹고 주정부리고...
(손따꺼, 발따꺼,가 아니다. 남의 이름갖고 장난치면 되냐고...)
글타고 얼굴이 예쁘냐고? 푸풋!!!
옥떨메킹발(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를 킹콩이 발로 밟은 얼굴)
성격만 좋았지, 나를 못살게 군거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이다.
특히 명자라는 년. 나를 유독 못살게 군년
4층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출근하는 나를 보면
"애들아! X따꺼 온다!"
그러면 강의실안에 있던 여자애들이 창밖을 보면서
나를 보곤 까르르웃는다.
여지없이 " X따꺼! X따꺼! X따꺼! X따꺼! X따꺼!"
이건 시도때도 없다.
점심시간 때 점심먹으러 식당가면 내가 나오나 안나오나 강의실에서
내다보다가 또 한마디 한다.
"애들아! X따꺼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내 성씨가 조금 더럽게 생겼다.
아무런 생각없이 발음하면 괜찮은데
조금만 강하게 힘주면 완존히 욕이다, 욕.
사람들이 흔히 무슨 일이 잘 안되거나 망치면
한탄하면서 "에휴! 돗됐다, 돗..."했을 때의 거시기...
게다가 용법이 변형되면서 "졸라, 정라, 졸가치..."
그것도 모잘라 "졸라맨"까지 등장했지만,
잘못 듣거나 잘못 사용하면
절라도 말로 "쪼께, 껄쩍찌근하게 거시기"하다.
음~
절라도~
나는 누가 뭐래도 절라도가 좋다.
왜냐고?
왜냐고 묻지 마시라 제발!!
문근영을 좋아하거덩!
며칠전만 해도 김태희가 내 스타일이었는데
며칠전 이후로 문근영으로 바뀌었다.
영웅은 여색을 밝히는 법이거늘
언제까지고 항상 김태희가 내 이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한 "영웅"하거덩... 내생각에...
뭐, 김태희한테는 쫌 미안하긴 하다.
그래도 김태희는 나의 그러한 모습을 이해해 주겠지.
그건 그렇고
암튼, 빌어먹을! 써글!
이 작것들이 왜 남의 성씨갖고 장난이냐고!
그게 내탓이야? 조상 잘못둔 탓이지...
에휴!
그래도 명자년 생각하면 가슴이 여전히 아프다.
나를 가장 따르고 나에게 가장 잘해준 아이인데
대학졸업하고 곧바로 결혼하고 1년만에 딸낳고
딸아이 백일잔치도 못해주고 백혈병으로 죽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고 콱 막힌다.
스승이 되어서 무엇하나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
어느날인가 느닷없이 내가사는 집에 쳐들어 와서는
"선생님! 빨랫감 내놓으세요!"
하고선 다짜고짜 손빨래를 해댄다.
이건 뭐, 경우도 없다.
양말이며, 팬티며 난닝구며 커다란 대야에 담구고선
하이타인지 뭔지 뿌려대고 바지걷고선 콱콱 밟아대며
그러고선 잔소리한다.
"선생님빨래도 자주하시고요, 옷도 새걸로 입으시고요,
예쁜 옷도 사입으세요.
그래야 예쁜 사모님을 만나죠.
이러니 여태 장가를 못갔지..."
이런 떠구랄!
마음씨가 착하고 인정도 많고
학교다니면서 고아원이며 장애자센터며
노인복지회관이며 봉사활동도 부지런히 하고
아르바이트로 돈벌면 불우이웃돕기에도 내고
하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명자.
22살 나이에 70노부모를 두고 먼저 갔다.
명자 딸은 지금쯤, 12살은 되었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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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이란 아이는 내가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당시 대통년(나는 왜 대통령이 대통년으로 발음이 되는 걸까? 혀가 짧아서 그런가보다.)
으로 계셨던 전두악(이단어도 그렇다. 전두환이라고 발음되지 않는다. 병인가 보다.
병원진단이 필요할 듯하다.)이 과외금지를 시키는 통에 더럽게 힘들었다.
방학 땐, 공사판에 가서 일당 5000원짜리 노가다 뛰던지, 과수원가서 농약치던지,
학습지 찌라시 돌리던지...
대학병원가서 시체닦는 일만 안하고 거의 한거 같다.
장학금을 못타면 학교도 못다닐 판이니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장학금타고...
종종 밥굶으면서 까지 대학다니자니 인생 참 꾸지다는 생각도 그렇지만,
생활이 어려운 큰형님 댁에 안면에 철판깔고 들어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밖에 나와 자취하는데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통학하랴
힘들어서 뒤지는 줄 알았다.
암튼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힘들게 학교다녔다더라...
겨울방학 때 형님댁에 눌러앉아 있자니 눈치도 보이고
내가 공부를 좀 잘한다니까 소문을 들었던지
경숙이 어머니란 분이 집에 찾아와서 어렵사리 말한다.
아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야겠는데 성적이 많이 떨어져서
인문계원서를 쓰기 어렵다고.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 때
성적을 올려야한다고.
형수는 몰래바이트하다가 걸리면 어떻게 감당하려느냐고
펄쩍뛰었지만, 그게 대수야? 돈이 눈에 보이는데????
지금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당시 몰래바이트해주고
한달 받은 과외비가 삼만원이었다.
그걸로 읽고싶은 책사고 이재옥토플책 사고, 영어사전사고
민병철 생활영어회화책 사고
타임지 사다읽고 돼지고기 두어근 사오고 그랬다.
그것도 두달하고 끝났다.
경숙이 아버지가 반대했거덩...
내가 남자이니 딸래미가 사춘기라 자칫 옆으로 샐 수 있다.
(싸구려 3류잡지에 나오는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 과외하던 여고 1년생을 건드려서
아예 부모가 데리고 살아라고 내보냈다나?
뭐, 말도 안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기는 세상이니...)
몰래바이트하다가 걸리면 집잃고 직장잃고 망신당하고
나는 학교퇴학당하고 피차 피해줄테니 하지말자,
뭐, 그런 핑계를 대면서...
이해가 간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
내가 워낙 그쪽계통으로 모질랭이다 보니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이해도 안가고
몰래바이트 못하게 되니 괜히 속상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불안에 떨일이 없으니 속은 편하고...
경숙이란 아이.
성격도 좋고 착하고 늘 밝은 아이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하였지만,
성적은 늘지 않았다.
부모가 넉넉하게 사는 분들이고
예쁜 딸이라고 부모가 잘먹이고 잘입히고 잘해주니까
굳이 공부를 잘해야 할 필요도 없고 공부를 못해도
주변에서 "예쁘다, 예쁘다." 하니 공주병도 있고
공부는 건성건성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때문에 혼낼 수도 없고 화낼 수도 없고
야단칠 수도 없고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것이다.
경숙이를 보면서 나도 결혼을 해서 딸을 낳으면
저렇게 예쁘게 키워야지 하지만, 공부는 잘하게 해야지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땐 그랬다.
경숙이와 과외를 그만두고선 만나본 적은 없다.
혹시 인문계고등학교는 들어갔나? 하는 궁금증은 있었지만
괜히 오해받을까봐 누구에게도 안물어 보았다.
그러던 차에 시내버스를 타고가다가
모 여자상업고등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웃으면서 걸어가는
경숙이를 보고선 그때 여상에 다니는 줄 알았다.
나도 시골에서 똥꼬(農高)에 똥지게학과(農學科-다들 그렇게 벌렀거덩.
사실, 똥많이 만졌다. 사람똥, 돼지똥, 소똥 닭똥, 오리똥...
제일 더러운게 역시 사람똥이다. 뭘먹고 그렇게 더러운지...)를
나왔지만, 실업계 학교다닌다고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내경우는 가정형편도 어렵고 공부도 못하고..)
당시만해도 상업고등학교는 반에서 성적이 손가락 안에
꼽는 아이들도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경쟁률이 높았고
도시에서 상고다닌다고 하면 머리도 좋고 실력도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 학교이야기 하지말자. 기죽는다.
시골에서 농고다닐 때 도시에서 인문계다니다
방학 때 집에온 여학생을 보았을 때.
역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천재들은 다른가 보다.
그랬는데,
경숙이가 여상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선
의외이기도 하였으나 대학안가고 취업하려고
여상에 간 줄 알았다. 그러곤 끝이었다.
그뒤론 몰랐던 것이 나도 사느라 바빴고
빌어먹을 일들이 칡덩굴줄기처럼 이리저리 얽히는 통에
누굴생각한다는 게 사치였다.
그랬다가 거지행색으로 슈퍼에 먹을거 사갖고 오다가
우연히 보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경숙이란 아이도 지금쯤 직장에 다니거나
대학에 다니면 4학년이거나 그랬을 거란 어설픈 추측이 들었다.
거의 7~8년 되었으니 말이다.
언뜻 스쳐지나는 생각이 그아이의 밝고 환하고 웃음띤 얼굴이었다.
그리고 "혹시~" 하는 일말의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첫댓글 시골버스 님의 작품 속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 처럼 신비적 직관과 초인적 사상이 살금살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 - 아마추어 초급평론가 -
빈말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작가로 나서 보세요..
앞으로 두분의 사랑이 전개 되겠지요?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