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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역(시편 16:1-11)
오늘 읽은 시편 16편 표제에는 ‘믹담’(Michtam) 이라고 했는데 황금의 시, 귀한 시, 명심 시라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매우 가치 있고 정금보다도 더 귀한 시인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내용을 보게 되면 구약의 영역에서는 감추어진 참된 보물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1-2절은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복이 되는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여기서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보호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시은소라는 것이 있어서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일단 시은소에 몸을 숨기면 손을 대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하자면 시은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말하자면 긴장과 초조, 불안과 공포에서 허덕이고 있다가 어떤 때는 지치고 쓰러지며 삶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우리 심령의 참된 안식처, 피난처가 어디입니까? 그것이 돈입니까? 지식입니까? 명예입니까? 권세입니까? 예술입니까? 사랑입니까? 이런 것들이 무엇엔가 쫓기고 있는 우리 심령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가 있습니까? 거기에 피할만 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피할 수 있는 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시편에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산성이시라, 피난처시라 했는데 바로 이런 뜻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우리와 예수님 사이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말씀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면서 이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를 때 절대 안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27-30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어떤 사본에,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만물보다 크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그리고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절대 안전합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은 요한 칼뱅의 강령의 하나인 구원의 안정성(the security of salvation)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장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도 주님의 양인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며 또한 영생 얻은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할 때 우리는 사실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인데 우리를 주님의 양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안전합니까?
갓난아이가 그냥 두면 살 수 없는데 어떻게 자라납니까? 어머니의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어린애를 어머니의 손에서 빼앗을 수 있습니까? 어진 어머니는 차라리 자기의 생명을 바칠지언정 자기의 아기를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꼭 그렇습니다.
우리 어린 심령이 어떻게 성장해서 구원을 완성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은 우리의 어린 심령을 붙들어 주십니다. 인도하여 주십니다. 생명수로 먹여 주십니다.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원수가 올 때 막아 주십니다. 시험에 빠지려 할 때 우리를 이끌어 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오늘까지 보존하고 우리의 연약한 심령이 아주 멸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하늘나라까지 능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한 번은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갔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있다가 물 위에 무엇이 보이니까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나다”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확인하고 마음에 안도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나도 물 위로 걸어가게 해 주세요” 그래서 예수님의 오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담대히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물결이 밀어닥치는 것을 보자 두려운 생각이 나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했어요?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세요.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건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체험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이 세상 죄악 물결에 휩쓸려 빠져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의 튼튼한 손이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아주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보호를 기다리며 주님께 피하는 사람은 절대 안전합니다. 누가 감히 건드리지도 못합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주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그에게 복종시켜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 우리 각자의 의무이며 권리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의지하고 필요를 채워 달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내가 돈이 얼마 필요한데 아버지더러 달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하면 이것은 거지행세입니다. 똑같이 돈 달라는 일인데 아버지께 달라는 것은 당당한 자식으로서의 권리이지만 남에게 달라고 하면 구걸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하는 것은 주님밖에 다른 이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라야 복이 됩니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신앙은 두 주인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한 주인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뭐랬어요?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자의 불행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있으면 바로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모두가 다른 신입니다. 다른 신들에게 예물을 드리면 괴로움이 더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신들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 신들이 우리에게 평화와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체험합니다. 돈을 섬기는 맘몬신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거스틴이 “오, 주님.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품 안에서 참 평안을 찾기까지는 조급하고 불안하나이다”라고 고백한 말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옛날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1-2)
여러분, 이 시간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었으면 온전히 다 제거해 버리십시다. 다윗의 말대로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맙시다.”
이제 본문 5-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산업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익을 취하며 육신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는 내 산업과 내 잔의 소득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소득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내 상태가 초라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기쁘게 그것을 따르겠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소원합니다. “내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부어 주시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세요. 내게 그의 약속 가운데 있는 유익을 주시고, 약속으로써 영원한 생명과 미래의 행복을 누릴 자격을 주소서. 그러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내 복을 위해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산업과 잔의 소득으로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6절에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리에 들어갈 때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평화를 주시고 만족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참된 평화, 참된 만족, 참된 기쁨은 외부의 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참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8절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행복한 생활의 첫째 비결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행복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며 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떤 불리한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언제나 행복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는 하루도 불행을 느끼시며 사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의 모든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산을 바라볼 때, 녹음이 우거진 싱싱한 나무, 우람찬 바위, 아름다운 꽃, 시원하게 흐르는 냇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시편 121:1-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했습니다. 동녘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바다가 잔잔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평안할 때만 함께 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는 엉뚱하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하였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행복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환경과 조건이 좋아서였습니까? 아닙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도 어려운, 감당키 힘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환경이 결코 요셉을 불행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시편 23: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으면서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마음의 평화를 소유하며 행복하게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의 비결입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밤새 지켜 주시고 피곤을 풀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음식을 주신 하나님, 식욕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옷을 입을 때 의복을 장만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일터에 나갈 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일하면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동안 나를 지켜 주신 하나님을 보세요.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세요. 잠자리에 드실 때도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가 삶에 지치고 피곤하다가도 하나님의 품에 안겨 내 영혼이 소생케 하심을 입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너무도 괴로워 눈물을 흘리다가도 하나님의 손이 내가 흘린 눈물을 닦아주실 때 그 행복은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실망과 좌절을 느끼지 아니하고 오히려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10절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이 약속이야말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위로와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이 말씀은 하나님과 영원한 친교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교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와 기도를 통해서 친교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드린 기도를 보세요.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시는 줄 아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한 것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와 같은 대화 속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의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일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맞지 아니할 때 불행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할 때 거기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도 언제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거기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있을 때에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도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세상의 행복이란 쥐엄 열매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떡을 먹고 배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으로 만족과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비록 그가 탕자라고 하더라도 돼지의 먹이를 먹고 배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그 까닭은 우리의 생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살며 그 안에서 기쁨의 생활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하나님을 항상 우리 앞에 모시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고독한 밤에도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환난의 날에도 세상 바라보며 한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8절 하반절에 뭐랬어요?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신 것을 확신할 때 행복합니다.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주님이 내 곁에 언제나 계신 것을 믿을 때 두렵지 아니합니다. 고독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1.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날 사랑하는 이는 오직 예수라
2. 미친 바람 휘몰아 어둠 닥쳐도 주 날 도와주시니 겁낼 것 없네
3. 인생살이 고달파 낙심 말아라 영원한 그 사랑이 주안에 있네
후렴) 예수 내 친구 오직 내 사랑 온 천지가 변해도 주 날 버리잖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참된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아니합니다. 어떤 두려움에서도 요동치 아니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나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고 내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어떤 어려운 시련이 닥쳐와도 하나님이 내 오른쪽에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가 두려울 때에 그를 의뢰하리니” 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항상 내 우편에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삼은 사람, 우리 앞에 주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사람, 주님이 우편에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요동치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기쁘고, 영광이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히 거할 것입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영원하신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