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지순한 부부사랑
글/죽암 장석대
나는 고향을 따나 전전하며 살다가 일산에 정착하여 황혼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죽어도 아쉬울 게 하나 없는 나이지만 지난 세월에 허리끈을 졸라 매고 달려 왔던 아
픔이 떠올라, 이 풍진한 세월에 더 살다 가려고 아침 동이 틀무렵 보온병에 커피 두 세 잔을 허리
춤에 차고 운동하러 인접해 있는 중산 체육공원으로 나갑니다.
아침 걷기운동은 악천후나 바쁜 일이 없는 한 습관처럼 하는 운동입니다. 나 뿐만 아니라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체육공원은 늘 붐빈답니다. 더욱이 축구장의 인조잔디와 400m 트랩에 우레탄
을 깔고, 군데군데 체력단련기구, 맨발로 걷는 지압산책길이 생김으로서 체육공원을 찾는 주민
들이 북쩍 늘어 났습니다. 외곽 600m의 폭신폭신한 우레탄 산책길을 5~8 바퀴 돌 때면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 각각입니다.
나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한 바퀴 도는데 8~9분이 걸립니다. 척추관협착증으로 한 쪽 다리가
불편해 졌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안쓰럽게 걷는 사람은 중풍환자들입니다. 웬 중풍환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중풍환자 중에 돋보이는 사람은 한 쌍의 70대 노부부였습니다. 중풍에
걸린 이 할머니는 3년 전만해도 유모차에 의지해서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녔고, 할아버지
는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 다녔습니다.
쉼터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환담하다가 일어설 때면 할머니는 곧잘 엉덩방아를 찧곤했습
니다. 할머니가 성한 팔을 쳐들어 일으켜 달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먼 산을 보며 "일어 나, 스스로
일어 나!" 하며 매몰차게 다그첬습니다. 나는 "저 인정머리 하나 없는 영감태기, 저렇게도 독한
사람 봤나" 하며 귓싸다기라도 갈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그 할머니가 작년 가을부터는 거추장스러운 유모차를 버리고 가벼운 푸라스틱 지팡이를
짚고 흐느적거리던 다리를 땅에 딛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결코 걷겠다는, 기어코
걷게 하겠다는 노부부의 결심과 피나는 노력의 대가였습니다. 그 노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본 나도 나의 일 같이 기뻤습니다.
잔득 찌푸린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 체육공원에 나가 운동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환담도 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였습니다. 할머니는 가볍게 일어서며 "여보, 이
지팡이를 이제 그만 버릴래“ 하니, 남편은 그저 웃고만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지팡이가 지겨
운 듯, 멀리 팽개쳤습니다. 그러고는 별안간 남편의 허리를 껴안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
습니다. 남편도 아내의 등을 도닥이며 울어댔습니다.
이 부부의 거동을 지켜보아 왔던 여러 사람들도 기쁨의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혜란이 불에
타면 난초가 슬퍼하고(惠焚蘭悲),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松茂栢悅)"는 옛 선인
들의 말이 이를 두고 한 말 같았습니다. 3년8개월이란 짧지도 않은 긴 세월 속에 걷고 말겠다는
할머니의 일염의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혹독하게 훈련시켜 아내를 걷게 한 할아버지의 지고지순
한 아내 사랑에 나는 감명받아 예상치 못한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돌아누으면 남남이 되는 부부
가 아니라, 70성상 사랑하며 미워하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진정한 부부사랑을 보았던 것입니다.
2010.5.22.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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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부부의 애뜻한 사랑에
감동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노부부의 사랑
잘봤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동네 일산 중산체육공원에서 있었던 일이네요.
저런 부부의 사랑을 본받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