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화순․보성 가족여행기
(2002.02.25토)
담양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소쇄원 → 화순 운주사, 세계고인돌유적지 → 보성 녹차밭(대한다원) → 보성 울포해수욕장 → 순천
2012년2월25일(토) 오전9시30분에 출발하여 천안-논산, 호남고속도로(광주를 거쳐 12시 30분에 담양의 죽녹원에 도착했다. 비가 내릴 듯한 흐리고 스산한 날씨가 여행의 기분을 덜 느끼게 했지만 모처럼의 국내 여행이어서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더욱이 새로 장만한 자가용을 타고 여행을 가는 거라 우리 모두 즐거워했다. 넓은 평야에 나지막하에 펼쳐진 소박한 도시인 담양은 대나무 주산지로 예로부터 죽제품의 전통수공업이 발달한 곳이다. 멀리 산등성이에 2층의 정자가 고즈넉하게 서있는 곳에 죽녹원이 자리잡고 있다.(담양읍 향교리 282) 2003년 5월에 조성하여 약16만m2의 울창한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는데, 죽림욕울 즐길 수 있는 2.2km의 산책로는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춥고 비가 올 것 같은 스산한 날씨에 거니는 것도 좋은데 한여름의 죽림욕은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하며 상쾌한 기분에 들떠 대나무 숲을 거닐었다. 쭉쭉 벋은 대나무 숲에서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곧 비가 올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죽녹원 입구> <죽녹원 운수대통길> <죽녹원 내>
다음에는 여름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음 여정지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을 향했다. 죽녹원에서 담양천변에 주차를 했는데 맞은편의 제방이 관방제림이다. 관방제림은 담양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인공 숲을 조성(인조26년. 1648년)하였다. 이곳에는 팽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등 200년 이상이 되는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관방제림>
전라남도에는 과거 많은 메타세콰이어 가로가 있었으나 새로운 도로 개발로 대다수 사라지고 일부만이 남아있는데 구도로가에 남아있다. 작은 소도로를 지나면 여지없이 쭉쭉 뻗은 가로수가 담양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죽녹원에서 약2km 떨어진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은 관방제림을 지나 수 km가 이어져 있는데 푸른 싱그로움은 없지만 쭉쭉 벋어있는 나무와 진한 황토의 잎이 적셔놓은 듯한 대지와 지평선 모습이 나름데로 운치있었다. 마침 안개가 자욱하여 몽환적인 모습을 연출하여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지 시작하면서 새찬 바람이 불어와 다시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메타세콰이어길도 2012년 1월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담양에 오면 죽통밥과 떡갈비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휴게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은 터라 아쉬움을 달래면서 다음 여정지인 소쇄원(瀟灑園)으로 향했다. 죽녹원에서 남쪽으로 20km떨어진 남면 지곡리 123번지로 1519년 조선중기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로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賜死)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서 소쇄원을 조성했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들의 교류처 역할을 한 곳이다. 소쇄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제월당(霽月堂.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드한 공간이며, 광풍각(光風閣.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기Ⅰ」에서 건축물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와 배치 특히 한여름 폭포수와 어우러진 정자와 자연이 특히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담양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오늘에야 그 소망을 이루었다. 비록 겨울이라 물은 흐르지 않지만 한여름의 건축과 자연 속의 녹음을 상상만해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이용하면서 변형하지 않고 건축물이 자연에 녹아드는 것처럼 조성하는 뛰어난 미학을 가졌다.
<소쇄원 입구> <제월당> <광풍각>
입구에서 마을주민이 파는 은행과 매실액기스를 값싸게 샀다. 3천원의 땅콩엿을 샀는데 시골이라 인심이 후덕하였다. 관광지이지만 시골처럼 소박한 아주머니들의 난전이 정겹게 느껴졌다. 여행 중에 땅콩엿을 아주 만나게 먹었다. 아쉬움을 달래고 우리는 50km 떨어진 화순의 운주사로 향했다. 비가 올듯 말듯한 차가운 칼바람을 가르며 남쪽으로 향했다.
운주사(雲柱寺)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20번지에 위치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석불과 석탑을 가진 사찰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운주사는 해발 100m 내외의 비교적 낮은 야산지대로 평지와 야산 등 반경 200m 범위 내에 산재해 있는데, 1984년 전남대학교의 발굴에 의해 석탑18기, 석불 52구가 남아있다. 그후 20구가 추가 수습되었다. 1481년의 동국여지승람에는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 초기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석불과 석탑은 그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소박한 것으로 조성연도는 12세기 고려시대 중기에서 후기까지 서서히 조성되었다.
<운주사 입구> <운주사 석불> <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 <와불 가는 길> <미완성 와불>
사찰내 많은 석불과 석탑이 있는 곳은 유래가 없다. 사찰의 입구와 언덕과 산그늘 등 사방에 펼쳐져 있는 석탑과 석불이 다른 불교의 세계로 온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아주 신비스러운 사찰이다.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여기저기 아지자기하게 불탑과 불상이 적절히 놓여있어 운치를 자아냈다. 화창한 따뜻한 봄에 다시한번 오고 싶은 곳이다.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10km떨어진 화순의 세계고인돌 유적지로 향했다. 화순의 고인돌 유적지는 2000년 12월2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효산리와 대산리를 잇는 보검재의 계곡일대(5km)에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되어 있다. 입구에 선사시대의 움집 체험장이 있었다. 화순고인돌유적지에서는 유일하게 입장료가 없다.
<선사시대 움집> <고인돌 유적지>
이 곳 역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내려서 관람하기가 어려웠다.
녹차의 고향 보성으로 향했다. 40km를 4차선 국도를 타고 가니 산등성이에 계단식의 녹차밭이 펼쳐져 있었다. 5시30분에 도착하여 녹차 박물관을 노크하니 문을 닫아 견학기회를 노치고 주변의 풍광을 보면서 녹차의 고향을 뒤로하고 남해의 울포해수욕장을 향했다.
울포 해수욕장은 보성의 작은 어촌이자 해수욕장이다.
겨울바다로 한산하고 썰물때가 되어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울포 해수욕장에서>
찬우가 최근에 간장 게장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하여 남해에 온김에 요기나 하고 갈까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울포해수욕장 근처에는 없어서 60km 떨어진 순천의 학운정(순천시 조례동 1818-6, 061-722-8678)을 가게 되었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왔다. 1시간을 지나 학운정에 도착하여 간장게장 정식과 보리밥을 먹었다. 학운정 식당은 토요일인데도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60km를 달려서 순천까지 왔는데 인터넷 검색이 사기였나 하고 잠시 후회를 하고 있던 순간 푸짐하고 맞깔스런 음식을 보니 한갓 기우인 것을 알았다. 우리가족은 남도의 음식을 찬미하며 간만에 아주 맛있는 저녁을 흡족하게 먹었다. 찬우도 몇 달간 먹고 싶다고 노래하던 원을 풀고 맛있게 먹었다. 어두운 저녁에 순천을 도착하여 주변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다음으로 기약하고 저녁 7시30분 천안을 향해 출발해 10시에 도착했다. 1일 여행도 괜찮고 굳이 1박을 고집하지 않고도 충분히 알찬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