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가 입사한 곳이 <삼선무역>이라는 무역회사였는데, 도복 전문 수출업체였습니다. 아마, 그곳에 입사하여 얼마 안 되었을 때였을 겁니다.” 어느날 일본 바이어들이 그가 다니는 회사를 방문했을 때였다고 한다.
“제가 만든 시제품을 입어 보고는 여기는 이래서 불편하고, 또 저기는 저래서 불편하다고 불평을 늘어 놓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그랬죠. 일본에서 생산되는 도복과 똑같은 패턴으로 옷을 만들었는데, 이 놈들 괜히 생트집을 잡고 있구나”라구요.
똑같은 패턴을 놓고 옷을 만들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몰랐던 그는 몇 날 몇 일 동안 이 문제로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을 해도 쉽사리 그 해답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패턴을 놓고 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겉모양과 치수는 자로 재 놓은 듯 판박이 그 차제였기 때문이다.
답답해 하던 그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해답을 얻어낼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그의 성실함을 눈 여겨 보던 그 회사 사장이 김 사장에게 일본에서 온 패턴 기술자를 붙여준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실로 행운과도 같은 기회였다. ‘행운’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이유는 당시(1970년대), 패턴 기술은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 유출을 꺼리는 기업 측에서 기술 공개 자체를 꺼리기도 했거니와 따로 배울 만한 곳도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좀처럼 패턴 기술을 익힐 기회 자체가 없었던 때문이다.
아무튼, 일본 기술자에게 패턴 기술을 익히고 난 그는 그제서야 일전에 자신이 찾지 못했던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목 부분과 암홀 부분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치수와 수축률(세탁했을 때 원단이 줄어드는 비율)을 계산하지 않은 결과였던 것이다.
자동차 부품이나 반도체와 같이 몇 백분의 일, 몇 천분의 일의 공차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의류 역시 공차를 요하는 부분에 정확한 공차를 주지 않으면 실제로 착용했을 때 언뜻 육안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옷이라도 착용감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렇게 그때부터 착실하게 경력과 기술을 쌓아가며 성실하게 일해오던 그에게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독립할 기회가 찾아왔다. 20여년 남짓 내 집같이 드나들며 정들었던 회사가 그만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부도를 맞아 도산을 하고 만 것이다.
91년, 난생 처음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한 김 사장은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며 납품할 곳을 찾았지만, 거래처 확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야 본인이 맡은 한 가지 직분에만 충실하면 되었지만, 이제 직접 경영을 결심한 이상 다양한 상황(제작, 판매, 거래처 확보, 납품)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한가지에만 매달릴 수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독립 초창기에는 살기 위해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 납품을 주로 했던 김 사장은 93년도부터 자체 브랜드인 <황소표>를 만들고, 그때부터 품질 경영에 회사의 사활을 걸기로 했다. 평생 OEM으로만 만족할 수 없다는 자존심의 발로였고, 이제 자신도 독자 상표로 승부를 걸 때가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댈 곳이 많다 보면 그만큼 나약해지고 자꾸만 기대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입니다. 그걸 깨트리고 나와야 우물 안 개구리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홀로서기가 가능한 것이죠.”
자체 브랜드인 황소표를 내걸고 시작한 지도 벌써 10여년이 넘는 세월, 이제 그의 황소표 유도복도 업계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또, 좀처럼 받기 어렵다는 ‘대한유도협회’로부터 공식 유도복 지정업체라는 ‘공인’도 진작 받아낸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계의 소문과 인정은 김 사장의 꿈에 비하면 지극히 작고 초라할 뿐이다. 김 정식 사장의 꿈은 좀 더 멀리, 그리고 아주 높은 곳에 있다.
내수 시장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 무술 시장에서도 당당하게 황소표 유도복으로, 아니 이번에 세계 무술 시장개척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새 브랜드 ‘무사(MUSA-Fighiting Sports Maker)’로 세계무술 시장에서 초일류 도복 메이커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 국내 시장부터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품질’과 ‘디자인’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완전히 잡는 그 날, 그는 이미 초일류 도복 메이커의 오너로써 세계 시장에 우뚝 선 거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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