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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의 3시집 <혼자 우는 뒷북> 해설
정갈한 서정의 사실적 형상화
―양태의 시인의 시세계
문학평론가 리 헌 석
(사) 대전예술단체 총연합회장
1. 양태의 시인 살펴보기
양태의 시인은 1942년 2월 15일, 충남 부여군 구룡면 동방리 638번지에서 태어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그 곳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이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벗어난다. 그리하여 구룡초등학교, 홍산중학교를 졸업한 시인이 공주시에 소재한 공주사범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사범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지역사회에서 몇몇에 불과할 정도로 영재였다.
그는 청년기에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지만, 군에 입대하여 소정의 근무를 마치고 전역한다. 다시 교사로 부임하여 근무하던 중에 중등학교 미술과 교사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중등학교에서 평생을 보낸다. 중등학교 교사, 교감, 장학사, 교장 등을 거치며 대전과 충남의 교육 발전에 43년간 이바지하고 2004년에 정년퇴임을 맞는다.
그는 신탄진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에 문학을 전공하는 교사를 만난다. 그리하여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문학 창작의 열정이 새로이 눈을 뜨게 되고, 재임 중에 2권의 시집을 발간한다. 미술을 전공하였기 때문인지 문학 작품 역시 사실성을 바탕으로 빚어져 있어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무리가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첫 시집 『어오러지 어오러지』(2002)를 발간하고, 정년퇴임 기념의 성격으로 두 번째 시집 『이명(耳鳴)』(2004)을 발간한다. 이후 형식적인 등단의 과정을 거치지만, 그는 저서 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2002년에 배인환 양태의 조일남 김지은 등 4인이 모여 동인회 ‘전원’을 창립하고, 매월 문학 창작에 대한 연찬회를 개최한다. 2005년에는 이정웅 양창환 등이 새로 가입하여 동인지 『전원』을 창간하고, 이후에 강가람 박숙자 이옥순 등이 참여하여 2010년에 6집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열정적으로 작품을 창작한 그는 2010년에 세 번째 시집 『혼자 우는 뒷북』(2010)을 발간한다. 이 시집에 수록한 작품을 독자들보다 먼저 읽고, 그 문학적 성과를 정리하는 것이 본고의 집필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첫 시집과 둘째 시집의 일부 작품도 감상하기로 한다.
2. 『어오러지 어오러지』에서 자화상 읽기
첫 시집의 서문에서 그는 <시 같지 않은 시 나부랭이 써 놓고/ 시집이란 걸 내는 것/ 이 또한 부질없는 짓이거늘/ 한심한 나>라고 하여, 작품 발표에 대한 결벽성 및 엄격성을 보인다. 그렇지만, 작품으로 들어가면, 서정에 충실한 진실을 만난다.
「나의 학점」에서 그는 <마음이 약해서/ 팍팍 밀지 못하는/ 교장학/ F학점>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교장으로서 강력하게 추진할 것은 추진해야 할 터이지만, 마음이 온유한 그는 쓴 소리를 할 줄 몰라서 스스로에게 F학점을 주고 있다. 이와 달리 <한 잔 술에/ 쓰러지는/ 주효율(酒效率)은/ A학점>이라고 하여 주량이 작은 자신을 변호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찰은 자신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순수성에 다름 아니다.
그는 「소부리 송가」에서 고향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소부리’는 충남 부여의 옛 이름이어서 그가 백제의 고도(古都)인 부여 출신임을 말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를 몰아낸 신라가 ‘소부리주’를 만들어 내려오다가 현재의 부여군이 되었는데, ‘소부리’는 부여를 뜻한다. ‘이 강’은 부여의 백마강일 터이고, ‘자온대’는 백마강 가에 있는 바위를 말하며, ‘낙화암’ 역시 궁성터에 있는 강변의 절벽이다.
또한 서시 형식의 「서가(序歌)」에서는 기독교 신자로서의 자신을 노래하는데, 문학적 변용(變容)을 거치기 때문에 감동의 메아리가 커진다. <왼쪽 갈빗대 하나 빼어 내실 제/ 별빛은 그대로 끄지 않으시고/ 매끄러운 살갗을 빚으시면서/ 봄바람 살짝 묻으시더니>에서 그의 종교적 성향을 확인하게 한다. <산란히 뒷동산에 옷깃을 여며/ 홀연 찢어지는 기적 소리로/ 우릴 서로 떨어져 앉히더니> <봄바람 살짝 묻은 자리엔/ 사모의 정이 일고/ 갈빗대 빼인 몸에선/ 그리움 하나씩 깜빡입니다.> 등으로 사랑의 오롯함을 드러낸다.
불이 물에게 푹 빠지고 싶을 때
물이 불을 꽉 품고 싶을 때
늦바람 무섭다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랑하고 싶을 때
―「낙조 3」 전문
시인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서 해변의 노을을 마주하고 있다. ‘꽂지’에 있는 ‘할미바위’ ‘할아비바위’의 전설도 애틋한 사랑을 전하고 있는 바다에서 <눈감고 팔 벌린 바다>를 만난다. 그 바다에게 시인은 <무르녹는 감빛으로/ 절절 끓는/ 해 덩어리>를 그냥 꿀꺽 삼키라고 말한다. 이는 서경과 서정이 어우러지는 단순한 해석도 가능하지만, 남녀의 사랑으로 비유될 수도 있기에 시의 맛은 오묘하다.
이를 바탕으로 「낙조 3」이 빚어진다. ‘불’과 ‘물’은 화합할 수 없는 운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저녁바다에서 만난 ‘낙조’는 하늘, 바다, 땅을 온전하게 하나로 귀일시킨다. 이러한 문학적 형상화는 관능적 정서를 환기하기도 한다. 특히 <늦바람 무섭다>에서 보이는 다의성은 이 작품을 새롭게 인식시킨다. 1차적으로 ‘늦바람’은 바다에서 ‘저녁때’ 만난 바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낙조와 상응하여 서경적인 아름다움을 생성한다. 2차적으로 시인의 연치가 노경(老境)에 이르렀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시인은 남은 세월을 반추하며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랑을 나누고 싶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하여 그는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좀 긴 작품이지만, 작품성으로 승부한 시가 「그 담장」이다.
처음에는, 담쟁이덩굴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틈이 없는 틈을 내며
차단된 절망의 벽에 고성능 흡착의 촉수를 박으며
빙벽 동반하듯 새로운 길을 만들며
요지부동의 직립을 정복하고 있었다.
이어서, 물이
오르고 있었다.
컴퓨터 칩의 회로보다 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미로를 더듬어
직립하고 싶은 진화의 갈등을 채우며
꿈틀꿈틀
초록의 피가 오르고 있었다.
그 다음,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푹푹 찌는 전쟁 속을
머리칼 세우며 성난 기세로
걷잡을 수 없이 독이 오른 불길이 타고 있었다.
검초록의 그 불길, 활활 타올라
그 담장 환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동시에, 그 담장 싸늘하게
식고 있었다.
이제는
눈이 올라가고 있다.
수직으로 붐비게 하강하는 눈발 속에
천천히 상승하는 눈의 무게
그 한 가운데 떠 있는
폐허의 가장자리, 그 담장이
내려앉고 있다.
담쟁이덩굴의 직립 진화욕이
화석이 되고 있다.
―「그 담장」 전문
이 작품은 담에 붙어 오르는 담쟁이를 노래하고 있다. 특정한 속성을 찾아내어 노래하였다기보다는 담쟁이덩굴의 사계(四季)를 비유와 상징으로 형상화하고 있어, 여타의 작품과 차별된다.
봄이 되어 바라본 담장, <처음에는, 담쟁이덩굴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고 있었다>면서 <차단된 절망의 벽>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개척자로 승화시킨다. 여름이 다가오면, 담쟁이덩굴은 짙은 녹색으로 담을 변화시킨다. <이어서, 물이/ 오르고 있었다>면서 성장의 가능성 위에 <초록의 피>가 흘러 담장은 온통 청록의 세상이 된다. 가을이 오면, 시인은 다시 담장에서 단풍이 든 담쟁이덩굴을 만난다. <그 다음,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면서 <머리칼 세우며 성난 기세로/ 걷잡을 수 없이 독이 오른 불길>을 연상할 정도로 폭발적 정서를 환기한다. 겨울이 되면, 담쟁이덩굴 위에 눈이 쌓인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는/ 눈이 올라가고 있다>면서 폐허의 가장자리에서 살아있는 ‘화석’을 만난다.
일상에서 만나는 담쟁이덩굴을 치밀하게 관찰한 시인은 새로운 시각으로 그 속성을 변용(變容)시킨다. 이러한 변용이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때, 작품의 가치는 커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는 그의 첫 시집 『어오러지 어오러지』에는 여행지에서의 서경과 서정, 생활 속에서 얻은 서정과 지혜를 듬뿍 담아내고 있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절실하게 노래하여 독자들과 만난다.
3. 『이명(耳鳴)』을 통해 세상 읽기
양태의 시인은 불혹(不惑)의 연치부터 이명(耳鳴, 귀울림)을 안고 산다. 작품 ‘하나’에서 <시름시름/ 사랑니 않던 객창(客窓) 가/ 그 후줄근한 몸살에서/ 깨어나던 사십대/ 마(魔)의 초입(初入)>이라 밝힌다. 이는 작품 ‘예순’에서도 표출된다. <가을볕 칭얼대던/ 내 불혹의 해변에/ 예고 없이 밀어닥친 밀물, 너의 등장>을 적시하며, 아직은 절망의 밤이 아니라고 한다. 이와 함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너와의 동행을 자축하자>고 한다.
그 증상은 <내 왼쪽 귀에/ 느닷없이 들어온 귀뚜리 한 마리>가 귀 속에서 <다짜고짜> 울어대는 소리와 같다고 한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같은 이명이 쉬지 않고 들려오는 것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일일 터이다. 그러나 그는 ‘둘’에서 <그 교훈을 깨달은 것은/ 내 왼쪽 귀에/ 이명(耳鳴)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고 하였으니, 부정을 극복하고 긍정을 생성한 그의 내면이 놀라울 뿐이다.
그는 이와 같은 귀울림 증세를 완화하거나 고치기 위하여 무던히 노력하였을 터이다. 그렇지만 치료할 수 없는 숙명적 현상이라 깨달았기에 괴로움의 단초(端初)를 오히려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처음에는 안타깝고 괴로운 일들을 ‘귀울림’으로 노래한다. 그러다가 생활 속에서 찾아낸 시상(詩想)을 ‘귀울림’에 귀납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리하여 그 당시에 빚은 작품들을 「귀울림」 연작시 88편을 묶어 시집을 발간한다.
이 연작시들은 ‘귀울림’ 그 자체를 반영한 것도 있고, 부정적인 사물에 대한 비유로 활용된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긍정적 시심도 담고 있다. 이는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사실적 귀울림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는 단서가 된다. 시집의 서문에서 그는 <당혹, 낙담, 실망, 저주, 방치, 포기, 체념…./ 이명!/ 너와의 동행에서 비롯된/ 모든 오해의 편린들을 묻고/ 절망하지 않는 세월을/ 걷고 싶다.>고 밝힌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안을 빗질하며
출근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삶이 투쟁인 양 날마다
오기의 칼날을 세우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저 서슬 퍼런 광란의 날들을 위하여
이순을 바라보는 산자락에
나의 자존을 묻는다.
―「이명(耳鳴) 스물아홉」 전문
살아가면서 자신의 자존(自存)을 묻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일 것이다. 가난하게는 살아도 자존심을 버리지는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는 가난하게 살다가 죽어도 나라를 되찾아 민족의 자존을 지켜주기만 하면 좋겠다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대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자존’은 지켜야 할 것이지, 묻거나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존을 산자락에 묻고자 한다. 이는 하나를 버리고 다른 가치를 생성하고자 하는 소망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확인해 보면 버려야 할 것은 불안, 투쟁, 서슬 퍼런 광란의 날들로 보인다. 이런 것들을 버리고,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장 시절에 쓴 작품이기 때문에 연작시 ‘서른’에서 보이는 것처럼 교육적인 소망을 찾기도 한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글 읽는 소리/ 별빛 흔들어 새벽을 깨우며/ 총명한 눈빛으로 한밤을 헤치면서/ 푸른 달빛 채우는 소리>를 그는 가치로운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는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절망의 말세에 복음 같은/ 우리 아이들 글 읽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찾고자 하는 소리가 특정한 사물에 한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삽상한 듯, 때로는 처연한 듯, 또는 자연에 동화된 듯한 사물들에서 시상(詩想)의 구체성을 찾아낸다. ‘귀울림’의 고통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정시를 감상하기로 한다.
청청한 솔밭은 솔바람으로 채우시고
허허로운 대숲은 대 바람 마을 보내시고
강물에 강이 잠겨
바닷물에 뜨는 바다
듣는가
들리는가
황혼에 실려 가는
꽃상여 소리
깊은 밤 홀로 타는
향불 소리
흙 속에 묻히는 흙의 소리
하늘에 떠도는 하늘의 소리
―「이명(耳鳴) 서른하나」 전문
이러한 서정의 바탕으로, 그는 <바람 한 점 없는/ 갑갑한 이 골목>에서 <무시로 범람하는/ 씨알들의 함성>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척박한 토양>에 뿌리를 내려 <역사의 한복판>에서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즉 <시대의 뒤안길>에서 찬란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소망은 종교적 경지로 승화되기도 한다. <무애(无涯)의 세월을 낚아/ 무상(無常)의 의미를 빚으시는/ 보이지 않는 당신>을 경외하기도 하고, <하늘이 부르고/ 땅이 화답하는/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기도 한다.
물론 그가 찾는 것이 ‘책 읽는 소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스물’에서 그는 문학창작의 본질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아낸다. 이는 시인으로서 언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뜻하는데, 삶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성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가다가/ 목적어 놓치면 어쩌지> <오다가/ 서술어 흘리면 어쩌지> <그러다가/ 토씨마저 잃으면 어쩌지> 등으로 노심초사하다가 <죽어도 주어만은/ 죽을 수 없다는/ 절절한 절규>에 이른다. 문장에서의 ‘주어’는 1인칭의 ‘나’일 수도 있으며, 2인칭의 ‘그대’일 수도 있고, 세상의 다양한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이 위치에 따라 모두 주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본질적인 평등의식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의식이 양태의 시인의 내면적 지향이기도 하다.
4. 『혼자 우는 뒷북』의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에서 정미소를 운영하여, 자녀들을 양육하시던 부친이 2005년에 작고한다. 부친의 발병과 그의 정년퇴임이 시기적으로 들어맞아 간병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수십 편의 작품으로 빚는다. 그 중 38편만을 뽑아 ‘제1부 아버지’에 수록한다. 부친이 작고한 뒤에 마음을 상한 모친이 편찮으셔서 그는 다시 간병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빚은 여러 작품 중에서 28편을 뽑아 ‘제2부 어머니’에 수록한다.
그가 간병하던 아버지는 <온갖 탑새기 뒤집어쓰면서/ 새우잠 겨우겨우 돌리던 방축리 방앗간/ 그 5마력짜리 시골 정미소/ 끊어질 듯 넘어질 듯 가쁜 숨 몰아/ 빚 고개, 눈치고개, 코치고개, 염치고개 가까스로 넘고 넘어/ 6남매 밥 먹여 학교 보내고/ 절망의 위궤양 쓸어안으며 쓰러질 듯 꺾어질 듯/ 기적처럼 회생한 팔순의 고목>(「아버지의 방 2」)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양태의 시인은 만일을 대비하여 부친을 모실 곳에 치표(置標)를 한다. 「치표(置標)하던 날」에 그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숨 가쁜 우리 아버지 숨차게 재촉하는/ 당신 무덤을 서둘러 치표했다.> <남아 있는 자리 중 가장 높은 좌표/ 토질도 괜찮은 데 터를 잡았는데/ 당신은 불만이시다/ 조금 더 올려 잡아 자식들을 아래에 거느리고 싶었단다.> <떼를 더 촘촘히 심었어야 했다고 하셨다./ 떼는 촘촘히 심는 것보다/ 촘촘히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 그래도 그게 아니라고 하셨다.> 이러한 상황과 부친의 소망을 결합하여 그는 실천하는 ‘효’를 작품으로 빚는다.
젖먹이 젖 사래들 듯
늙으신 아버지
약 사래 잘 든다
그럴 땐 아기 등 쓸 듯
등 두드려드리지만
가루약을 달라신다
가루약을 드리니
욕지기가 나서 못 먹겠단다
그래도 참고 드셔야 한다니까
너 한번 먹어보란다
어머니 장맛 다시듯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며
고소하니 맛만 좋다고 하였다
톡, 털어 한 입에
넣어드렸다
―「늙은 아기 어르기」 전문
이 작품을 통하여 병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병실에는 환자인 부친이 병상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양태의 시인과 그의 모친이 간병하고 있다. 가루약을 달라고 하여 말없이 드린다. 부친은 그 약을 먹으면 욕지기가 나서 먹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참고 드시라고 하니까, “너 한번 먹어봐라.”고 역정을 내신다. 지켜보시던 모친이 손가락으로 가루약을 찍어 맛을 보고 “고소하니 맛만 좋네.”라고 하신다. 그럴 때에 얼른 부친의 입에 가루약을 톡 털어 넣는다. 병실에서 볼 수 있는 간병의 정경이지만,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몸소 실천했기 때문일 터이다. 직접 간병을 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사실적 묘사가 불가능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병을 하다 보면, 환자도 환자이지만, 간병인이 병이 날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그 과정이 「나는 일어날 수 없고」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 <아버지는 밤새 뒤척이고/ 나는 일어날 수가 없다>. 간병에 지친 그의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한 잠도 주무시지 않고/ 후두둑 후두둑 내려치는/ 겨울비 소리 섞어/ 아픈 삭신의 통증들/ 마디마디 꺾으시는지// 그 미안하게 아픈 소리 들으면서도/ 내 몸은 일어날 수 없다>고 진술한다. 그렇게 간병을 하던 부친이 작고하여 장례를 모신다.
저세상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 누우신 관
잠시 허리 붙이셨던 이승의 마당과 뒤꼍들 비잉 돌아
동구 밖 꽃상여에 모시고 따라가던 날
세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어서
갑자기 몰려든 문상객들 접대 걱정이 아니어도
애고 애고 호곡소리 안 나와 우리 오형제
패거리로 큰 흉이 되던 날
현실은 땅 속에 묻혀 식어가는 시체처럼 싸늘한 것이어서
어찌어찌 스무날을 건너온 설날 아침
아버지 추도 기도문을 읽기 시작하자
울컥 치미는 회한과 설움과 안쓰러움과 죄송함들이
뒤범벅으로 솟구쳐 올라 울먹이는 사이
무덤 속 같은 그 적막 사이로
새로남교회 민 집사님, 제수씨가 뛰어들었다.
―「혼자 우는 뒷북」 일부
작고하신 부친을 안장한다. 그 이후로 그는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 회한에 사로잡힌다. 「정리(整理)」에서 <나, 아버지 된 지 삼십여 년/ 궂은 날 물새지 않는 신발이었던 적 있었던가?/ 피곤한 밤의 포근한 깔판, 담요이었던 적 몇 번이던가?/ 추위를 덮어주던 이불이었던 적 있었던가?/ 시린 속 감싸주고 가려주는 속옷이 되어 주었던 적 있기는 있었던가?> 등 자문(自問)을 통하여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설까, 시인은 꿈에서도 부친을 만난다. 「오늘 새벽」에서 그는 <옛날에 살던 방앗간이었다/ 비척비척 아버지/ 지상의 마지막 작품인 듯/ 평상 두 개를 고치>시는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비 나리는 고모령’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자 그도 노래를 <따라 계집애처럼 엉엉 우는데/ 문간에서 이 모양 보시던 아버지/ 애비야 애비야 부르셨다./ 나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잠 깬 뒤까지> 흐느끼던 날의 새벽 정경이 작품으로 태어난다.
부친이 작고하고 난 뒤, 모친의 환후가 깊어진다. 부친을 여읜 시인에게는 모친의 환후가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서 모친에게 좋은 곳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드시게 하고 싶다. 그는 「어머니, 방문 열고」 <동학사 가는 길 벚꽃이 환해요/ 한가위 보름달같이/ 당신의 미소같이/ 구석구석 세상이 다 환해요>라고 말씀드린다. 특히 <적적에 문 잠그고/ 혼자 울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 <꽃처럼 환한 날들 며칠은 더 갈 거예요> <어머니!/ 동학사 가는 꽃길이 환해요/ 한번 내다 보셔요>라며 어머니를 모신다. 그렇지만 노인의 환후는 점점 더 깊어진다.
신새벽 문틈 사이를
비집고 기어 나오는
불빛
참다가 견디다가
만성으로
터져버린 전두통(前頭痛)의
파열음(破裂音)
사대삭신 육천마디 마디
욱신욱신
내가 쑤신다
―「어머니의 방」 전문
두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친이지만 자녀를 위한 기도는 절실하다. 이러한 모성을 단형의 작품으로 빚은 것이「어머니의 기도소리」다. <교회 의자에서 어머니 기도하신다/ 밥상머리에서 어머니 기도하신다/ 한결같은 기원 끌고 다니기 반세기/ 하도 닳고 닳아서/ 간간히 새어나오는, 끄응 끙/ 앓는 소리// 답답한 내 기도의 문설주에/ 꽝꽝 대못을 친다>고 노래한다. 그는 찐빵을 사면서도 <홀로 계신 노모의 휑뎅그렁한 틀니>를 연상할 정도로 모친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
어머니에 대한 아련함은 슬픔과 닿아 있다. 부친의 작고도 슬프고 괴로운 것이었겠지만, 그보다 앞서 자녀를 먼저 보내고 통증으로 보냈을 모친의 세월이 비감하다.
그의 여동생 ‘순’이 먼저 타계한 슬픔을 쓴 작품에 <네 막내 동생과/ 못난 큰 오라비가/ 너의 관을 덮는다> <너의 삶/ 너의 세월/ 너의 희생/ 너무도 정갈하여/ 곱게 펴서 묻는다> <찔레꽃 만발하던/ 1940년대 봄/ 영리하고 예쁘던/ 갓 돌 지난 네 언니/ 연숙이/ 홍역으로 잃어버린/ 어머님 가슴에/ 너를 묻는다> <제대하고 돌아오던/ 1960년대 겨울/ 늦동이 막내/ 화성이를 놓치시고/ 허망의 그늘 속에/ 서성이시던/ 아버님의 가슴속에/ 너를 묻는다>고 애상적 정서가 폭발한다. 결국 그의 모친은 세 자녀를 먼저 보내고, 그 통증을 가슴에 묻고 사신 분이다. 그래서 시인의 가슴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막막한 것 같다.
5. 시인의 성채(城砦)에서 나서기
양태의 시인은 이제 68세, 고희(古稀)가 얼마 남지 않은 노익장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효’ ‘불효’를 걱정하는 자녀의 입장이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듯이 스스로 자신의 연치(年齒)를 확인하기에 이른다.
이 시집의 「발시(跋詩)」에서 그는 <부처님 제자들은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가고/ 예수님 제자들은 요단강 건너 천국으로 가고/ 우리네 조상님들은 삼도천 건너 저승>을 가셨다고 정리하면서, 누구나 한번은 죽어야 하는 게 운명임을 수용한다. 이러한 바탕에서 <어렸을 적 어머니, 물가에 가지마라 신신당부하셨는데/ 어언간 나, 강가에 나와 서성>이는 자신을 깨닫는다.
그가 인식한 죽음의 과정은 ‘강’을 건너는 것이다. <영국에서나, 이집트에서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처님을 믿건, 예수님을 믿건, 아무것도 믿지 않건/ 물, 건너와서 물, 건너가네>라는 서술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가에 나와서 서성이고 있는 자신도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서가 도출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람은 그만큼 순수해진다는 것이다. 정치적 야심, 경제적 치부, 세상의 자잘한 욕심 등이 자신의 죽음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대부분 마음을 비우게 된다. 그런 상태가 시를 담을 수 있는 순정(純正)한 영지(領地)라 하겠다.
이제 양태의 시인은 순정의 영지에 이르러, 세상의 여러 욕심에서 벗어나 좋은 작품을 빚기에 매진할 것 같다. 그리하여 맑고 아름다운 서정을 작품으로 노래할 것이다. 이런 믿음과 기대로 작품 감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