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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불련(익산불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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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식 스크랩 선문답(禪問答) 모음
춘파김양희 추천 0 조회 223 10.12.22 15: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차나 들게(끽다거-喫茶去) - 조주 선사  

조주 종심 선사는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 의 화두로 유명한 선사이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는 무자(無字) 화두는 우리나라 선방 스님들이 가장 많이 참구하는 화두로 알려져 있다. 

하루는 두 사람의 선객이 조주 스님을 찾아와서 도를 물었다. 그러자 조주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에는 여기에 온 적이 있던가?"

"온 적이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들게(끽다거-喫茶去)"

이번에는 또 다른 한 명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가. 전에 여기에 온 일이 있었나?"

"예. 온적이 있습니다."

"그래? 차나 한 잔 들게"

곁에서 이런 광경을 지켜본 원주스님이 끼어들며 말했다.

"스님, 전에 온 일이없는 사람에게는 차를 들라고 하시는 것은 그렇다 치고, 전에 온 일이 있는 사람에게까지 차를 들라고 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그러자 조주 스님이 원주스님을 불렀다.

"원주야!"

"예"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게나."


2. 수레와 소 - 남악선사  

마조도일 선사는 석두희천 선사와 함께 선을 중국인의 체질에 맞게 토착화 시킴으로써, 중국 선종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선사이다. 마조선사와 석두 선사의 가풍은 명상적인 선풍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선을 실천하는 경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들 선사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사가 바로 선이었다.

젊은날 마조스님이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런 모습을 발견한 남악선사가 물었다.

"좌선을 열심히 하는 모양인데, 무엇이 되고자 함이냐?"

"부처가 되고자 함입니다."

그러자 곧 남악선사는 어디선가 벽돌을 하나 가지고 와서 열심히 갈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마조 스님이 좌선을 하다 말고 물었다.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거울을 만들련다."

"벽돌을 간다고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을 아무리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된단 말이냐?"

한 방 얻어 맞은 마조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레를 쳐야 하겠느냐, 소를 쳐야 하겠느냐?"

 
3. 날마다 좋은날 - 운문선사  

하루는 운문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십오일(十五日) 이전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묻지 않겠다. 하지만 십오일 이후에 대해서는 어디 한 마디 해보아라."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스승의 질문에 선듯 나서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스님은 스스로 답했다.

"날마다 다 좋은 날(一日時好日)이다." 

주) 십오일에 대해서는 구구한 해석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십오일은 보름달을 의미함으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즉 십오일 이전은 깨달음 이전이고 십오일 이후는 깨달음 이후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4. 똥막대기 - 운문선사  

오가칠종 가운데 하나인 운문종을 창종한 운문문언 선사는 언구의 정묘함과 기봉의 날카로움으로 유명하다.

어느날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운문선사는 마치 전광석화 같이 대답했다.

"간시궐" 

주) 간시궐이란 일반적으로 똥막대기로 해석되어 왔다. 옛날 중국에서는 화장실에 팽이처럼 나무를 깍아 만든 막대기가 있었는데 대변을 본 뒤에 휴지 대신 이 막대기를 썼다고 한다.

또는 똥통을 휘젓는 막대기라는 주장도 있고 심지어는 똥이 말라붙어서 막대기처럼 굳어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왜 부처님을 그토록 지저분한 것이라고 했을까가 화두이다.


5. 두 동강난 고양이 - 남전선사  

한 번은 남전선사의 제자들 사이에서 작은 분쟁이 일어났다. 한 스님이 기르는 고양이가 이웃 선상의 다리를 부러뜨렸기 때문에 일어난 시비였다. 이를 본 남전 스님이 한 손에 시퍼런 칼을 들고 한 손으로 고양이를 움켜잡아 번쩍 들어올리며 다투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제대로 한마디를 말한다면 베지 않으리라."

그러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우물거리며 한동안 긴장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자 남전 스님이 들고 있던 칼이 번쩍 빛을 발했고 두 동강난 고양이가 피를 뿌리며 땅에 나딩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 때 외출중이던 조주스님이 돌아왔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나서 물었다.

"자네라면 어떻게 했겠는냐?"

그러자 조주스님은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고, 이를 본 남전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6. 저울 눈금도 모르다니 - 흑안(黑眼) 

어떤 이가 흑안(黑眼) 스님에게 물었다.

“세간에서 만나기 어려운 스승이란 누구입니까?”

“선재동자의 주장자이네”

“불법의 큰 뜻이란 무엇입니까?”

“십년동안 숯을 팔았으면서도 아직 저울 눈금도 모르다니.”

 
7.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 흑간(黑澗) 

어떤 이가 흑간(黑澗)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은 어디 일까요?”

“귀를 잘라버리고 거리에 눕는 자리이지”

“그 조용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스님은 자기 갈비뼈를 손으로 더듬어 보였다.


8. 독이란 진실한 성품이 없어서 - 담장(曇莊) 선사

담장(曇莊) 선사가 오랜 행각 끝에 한 암자에 더불고 있었다. 어느날 큰 구렁이가 한 마리 나타나서 어금니를 드러내고 독기를 뿜었다. 시자가 피하라고 권하자, 선사가 말했다.

“죽음을 어찌 피하겠는가? 저가 독을 가지고 오면 나는 자비로 받아들인다. 독이란 진실한 성품이 없어 격분하여 발동하면서 더욱 허망한 것이고 자비는 멀고 가까운 인연을 가리지 않으니 원수와 친척이 같다.”


9. 백정의 집 - 현소(玄素) 

어느날 한 백정이 현소(玄素) 스님에게 와서 “부디 저희집에 오셔서 제를 지내주십시요” 라고 청했다. 스님이 쾌히 승낙하고 백정의 집에서 제를 지내고 오자, 대중이 모두 의아스럽게 여기고 수군거렸다.

이에 스님이 말했다. “불성은 평등하여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를 차별하지 않느니 제도할 수 있는 이라면 명부의 끝까지 가서 제도할 뿐 차별하지 않는다.”


10.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 

어떤 이가 홍도(弘滔) 스님에게 물었다.

“ 마음을 쉬어버려서 말을 잊어버린 때는 어떠합니까?”

“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지.”


11. 죽은 후에도 마음이 있는가 

대주스님이 길을 가는데 한 청년이 졸졸 쫓아왔다.

그 청년은 죽음에 대해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윽고 청년은 대주스님에게 여쭈었다.

“스님, 몸이 죽은 후에도 마음이 있습니까?”

스님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몸은 마음따라 있는 것이지, 어찌 몸이 죽는다고 마음이 없겠느냐.”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보여 주십시요”

대주스님은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내일 아침이 있다는 걸 아느냐?”

“네, 압니다.”

“그러면 내일 아침을 내게 보여 주겠느냐?”

“내일 아침은 분명히 있지만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 보아라. 장님이 해를 보지 못한다고 해가 없다고 하겠느냐.”


12. 작은 불씨 하나로 

과거에 죄를 많이 지은 사내가 근심하다가 마침내 대주 스님을 찾아와 스님께 여쭈었다.

“열심히 스행하면 과거의 죄, 저의 업이 없어집니까?”

“깨달으면 없어지지. 마치 아침 이슬에 해가 비친 것처럼.”

“정말 모든 업이 없어지나요?”

“그럼, 그럼, 수레에 잔뜩 쌓인 짚더미도 작은 불씨 하나로 모두 태울 수 있지 않느냐. 업은 마른 풀과 같고 지혜는 불씨와 같은 것. 한꺼번에 없앨 수 있고 말고.”


13. 한마리 검은 암소가 되리라. 

남전 스님이 곧 세상을 뜨려 하자., 제자가 와서 물었다.

“스님, 돌아가시고 나면 어디로 가시렵니까?”

“산 밑에 가서 한마리 검은 암소가 되리라.”

제자가 다시 물었다.

“저도 스님을 따라갈 수 있겠는지요?”

“그러고 싶으면 가서 한 줄기의 풀을 물어와야지.”



14. 알던 것 다 잊으니

어느 날 아침 위산스님이 말재주가 능하고 학문을 자랑하는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남에게서 듣고 보았거나 경전이나 책자에서 본 것 뿐이다. 나는 그런 것은 묻지 않겠다. 그대가 처음 태어나 동서를 알지 못했을 때의 본분사(本分事)를 한마디 일러 보라, 내가 그대의 공부를 가늠하려 하노라.”

향엄을 아무런 대답도 못하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이것저것 몇 마디 했으나 모두 용납되지 않는 언구뿐이었다. 마침내 위산스님에게 도를 일러 주실 것을 청했으나 위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해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대 스스로 깨닫는 것만이 그대의 안목이다. ”

향엄은 곧 방으로 돌아가 모든 서적을 뒤졌으나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언구가 없었다. 마침내 책을 몽땅 꺼내다가 불질러 버렸다. 때마침 어떤 학인이 다가와서 책 한권 달라고 하자 향엄이 말했다.

“내가 평생 이 책들 때문에 바보가 되었거늘, 그대가 또 달라고 하는가?”

향엄은 한 권도 주지 않고 전부 불태우며 굳게 각오했다.

“금생에는 불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오늘까지 나를 당할 자 없으리라 여겼는데, 오늘 위산스님에게 한 방망이 맞아 그 생각이 깨끗이 없어졌다. 지금부터 나는 국먹고 밥먹는 평범한 중으로 여생을 보내리라.

향엄은 위산 스님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향엄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수행에 몰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청소하면서 무심코 던진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혀 나는 소리를 듣고 확연히 깨달았다. 

한번 던져서 알던 것 잊으니
다시는 더 닦을 것 없구나.
곳곳에 자취가 없으니
빛과 소리 밖의 위의로다.
시방의 도를 아는 이라면
나를 일러 상상기(上上機)라 부르리 


15. 법당은 훌륭하지만

신찬(神贊)은 오랜 행각 끝에 백장스님을 만나 깊이 깨닫고는 옛 스승의 은혜를 갚고자 다시 옛절로 돌아왔다.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곁을 떠나서 무슨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가?”

“아무런 공부도 없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이 깨우치지 못함을 늘 안타갑게 여기던 터에 어느날은 ㅅ승이 목욕을 하면서 등을 밀어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신찬은 스승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스승의 등을 문지르면서 안타까운 듯이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좋은 법당이건만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구나!”

스승이 언뜻 듣고 이상히 여겨 고개를 돌리자 또 말했다.

“성스럽지 못한 부처지만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

스승은 몹시 이상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또 어느날 스승이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벌이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창에다 자꾸 머리만 부딪치고 있었다. 이를 본 신찬이 말했다.

“세계가 저렇게 넓고 큰데 나가려 하지 않고 창문만 두드리니 나귀의 해에나 나갈런지!”

스승은 읽던 책을 덮고 돌아서서 물었다.

“그대의 말들이 이상하구나,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다오.”

신찬은 백장스님으로부터 깨달은 선문(禪門)의 심요(心要)를 다음과 같이 설했다. 

신령스러운 광채가 훤하게 빛나니
근(根)과 진(塵)을 멀리 벗어났도다.
본체의 진상(眞常)이 드러났으니
문자와 언어에 구애됨이 없도다. 

마음의 성품은 오염됨이 없어서
본래부터 뚜렷하고 밝으니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곧 참다운 부처라네. 

스승은 감격하며 말했다.

“늘그막에 이런 지극한 설법을 듣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16. 그대의 빛 그대의 복 

어떤 이가 마조(馬祖) 스님에게 물었다.

“술과 고기를 먹어도 괜챦겠습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먹으면 그건 자네의 빚이고 안 먹으면 그건 자네의 복이다.”


17. 불쌍한 나귀들 같으니 

비구니 묘신(妙信) 스님이 앙산(仰山) 혜적(慧寂) 스님의 문하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날 사천 출신의 스님 17명이 절에 도착하여 머물고 있었다. 한무리가 되어 스승을 찾아다니는 그들은 잠시 쉬는동안 육조 혜능스님의 ‘풍동번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묘신스님이 부엌일을 하다가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불쌍한 나귀들 같으니, 17마리나 되는 나귀들이 얼마나 많은 짚신을 닳아 없앴을까? 불법은 꿈속의 일이 아니건만.”

묘신스님의 질타를 받은 스님들은 대오각성하여 행각을 그만두고 사천으로 돌아가 수행에 전력하였다.

18. 곳곳에서 그를 만났다.

동산(洞山) 양개(良价) 스님과 신산(神山) 승밀(僧密) 스님이 함께 여행하다가 큰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신산스님이 먼저 건너고 동산스님도 나중에 건너는데 냇물을 건너는 도중 동산스님은 물 속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동산스님이 밝은 얼굴로 크게 웃자 신산스님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웃으시오?”

“돌아가신 스승님의 정중하신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시지요.”

이에 동산스님이 게송을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절대로 남에게서 찾으려 말라.
멀고 멀어서 나와는 성글다.
나 지금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그는 진짜 나이건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니
진실로 그렇게 알아야
비로소 참되다 하리라



19. 벽계스님 3년 설법

이조(李朝)의 불교 탄압이 극에 달하여 스님들이 할 수 없이 절을 떠나 깊은 산 속에 은둔하거나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환속을 하던 그런 때였다. 이즈음 벽송(碧松)스님도 절에서 쫏겨나 선지식을 찾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마침내 벽송은 어느 산골짜기에 이르러, 토굴에 숨어 살면서 정진을 계속하고 있던 벽계 선사를 만나게 되었다.

벽송은 그날부터 선사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토굴 하나를 더 지어 선사와 같이 생활하였다. 날마다 두 사람은 산에서 나무를 해서 그것을 장에 내다 팔아 하루하루 연명해 갔다. 그런데 벽송이 산에 오를 때마다 선사에게 도(道)에 대해 여쭈었건만 그때마다 선사는 '내일 해주지.' 하고 설법을 미루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하루하루 설법을 미루어 나간 지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벽송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벽송은 선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스님께서 3년이 지나도록 설법을 미루기만 하시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을 시봉자에게 남기고 그 곳을 떠나갔다. 이때 선사는 나무를 한 짐 해서 토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토굴에 당도해 시봉자의 애기를 전해들은 선사는

"왜 안 가르쳐 주었겠느냐. 자고 나서 인사할 때도 가르쳐 주었고 산에 가서 나무할 때도 가르쳐 주었건만 ……" 하고 중얼거리며 곧장 토굴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산 밑을 돌아나가는 벽송을 큰소리로 불러세웠다. 선사의 부름에 벽송이 뒤를 돌아다보자 선사는 주먹을 불쑥 내밀면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내 법을 받아라!"

이때 벽송이 크게 깨우쳤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가 한마음으로 돌려지니 주먹 하나 내민 그것에도 수많은 경전이 한꺼번에 들어 있고, 삼천 대천 세계가 운행되고 우주 만물이 들고 나는 이치가 그 속에 스며 있다. 말로 하면 그 말이 떨어지니 그냥 주먹을 내밀었던 것이다."



20. 불락인과 

옛날 백장 스님이 수좌들을 데리고 한 도량에 살고 있을 때였다.

백장 스님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있어서 늘 청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나면 그 노인도 물러나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설법이 끝나고 수좌들이 다 물러났는데도 이 노인만이 버티고 서 있었다.

스님이 이상히 여겨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섭존자가 있던 시절 이 사찰의 주지였는데 그때 어느 학인이 [공부를 많이 했으면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고 물어 와서 [불락인과](不落因果: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때문에 5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청컨대 스님께서 진리를 설하여 이 여우의 몸을 벗게 해 주십시오." 하고 묻기를 이번엔 스님께서 그 질문에 대답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백장 스님은

"불매인과"(不昧因果:인과에 매이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순간 노인이 홀연히 깨닫고 인사하며 말하기를

"저는 이미 여우의 몸을 벗어나서 뒷산에 있으니 바라건대 스님께서 죽은 승과 같이 장례를 치러 주시오." 하고 사라졌다.

백장 스님이 "식후에 죽은 승의 장례가 있다"고 대중에게 고하자 대중들은 "모두 편안해서 열반당에 한 사람의 병자도 없었는데 어째서 죽은 승의 장례가 있다고 할까." 하고 모두 수근거렸다.

식후에 스님은 대중을 데리고 뒷산 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여우를 끄집어내고 장례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 밤에야 백장 스님은 법당에 대중을 모아놓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다.

이때 대중 가영 황벽이란 수좌가 벌떡 일어나

"옛 어른이 대답을 잘못하여 5백 생을 여우로 보냈는데 그때 만일 조금도 틀림없이 대답을 바로 했더라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1. 불락인과, 불매인과 

그때 만일 조금도 틀림없이 대답을 바로 했더라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백장 스님이 말하기를

"앞으로 가까이 오라. 그대를 위해 가르쳐 주리라." 라고 하자 황벽이 앞으로 나아가 스님의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그러자 스님이 껄껄 웃어 가로되

"오랑캐의 수염이 붉다 하더니 붉은 수염의 오랑캐도 있었구나."라고 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공부를 많이 하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라고 올바르게 얘기를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여우의 몸을 받았는가. 이것이 첫째 관문이다. 불락인과와 불매인과가 어떻게 다른가. 이것이 둘째 관문이다. 또 오랑캐의 수염이 붉다 하더니 붉은 수염의 오랑캐도 있었구나, 즉 쉽게 말해서 꽃이 붉다 하더니 붉은 꽃도 있었구나 하고 한 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이것이 셋째 관문이다. 그러나 관문이라 했다 해서 문을 찾아 들려고 하는 사람은 참 자기의 보배를 찾을 수 없다. 사방이 터져서 문이 없는데도 문이 있고, 문이 많으나 한 문도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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